[장편 기행문/류재순 소설가]

 [서울=동북아신문] [ 3 ] 이곳저곳 볼거리, 그리고 그 의미 

A: 정체불명의 스톤헨지, 그리고 윈저 성영국기행을 시작 할 때부터 우리는 안개와 비가 많으리라는 영국의 기후 특점에 비추어 사람마다 우선 비옷과 우산을 다들 준비하였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어느 날이나 날씨가 다 맑았다 특히 관광 할 때는 햇볕이 따가울 정도여서 여사님 둘이는 양산을 받쳐 들고 걸었다. 그러자 가이드가 그 분들께 대오에서 떨어져 걸으라는 충고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쉽지 않게 내려 쬐는 영국 하늘의 햇볕을 영국 사람들은 소중하게 여기며 모처럼의 일광욕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눈에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고 걷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 행위이기 때문이다.  
▲ 불가사의의 스톰헨지
매번 버스를 탈 때면 우리는 가이드에게 오늘은 우산을 들고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이것은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라고 두 손을 벌린다. 그만큼 맑은 날씨 같아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겠다.영국은 날씨가 영국 사람들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겨울엔 거의 한달 내내 햇빛을 보기 힘들다 한다.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해가 잘 나지 않는 어둠침침한 날들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그들만의 마음속 깊은 곳의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 생각의 깊은 곬을 만든다고들 한다. 영국에 대 문호들이 많은 것도 이렇게 고독과 사색을 만들어 내는 날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이번 관광에서는 해가 나는 날이 꾀 있었는데 그날 스톤헨지 관광을 위해 버스에 오를 땐 아무래도 날씨가 침울하고 쌀쌀 하였다. 우리는 우산과 비옷도 챙기고 겉옷을 더 껴입고 떠났다. 그런데도 스톤헨지를 찾아 영국 남부의 윌트셔 주 숄르베리 대 평원에 왔을 때는 7월인데도 제법 초겨울 같은 바람이 쌩쌩 불어쳤다. 나는 목축업이 대단히 발달한 윈체스터에서 선물용으로 샀던 캐시미어 목도리를 가방에서 꺼내 몸을 덮었다.  4천 오백년 전, 선사 시대의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 여개가 황야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지금도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세게 7대 불가사의 하나로 꼽힌다고 했다. 대자연은 영원한 신비이고 역사 속에 묻혀 진 비밀들은 영원한 탐구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비슷한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이미 많이 접촉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신비설은 계속 흐르고 관광객은 계속 찾아온다. 8월의 날씨가 이럴게 춥다니, 우리는 급급히 스타박스를 찾아 따뜻한 커피로 몸을 덥혔다.이튿날, 우리는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니 우리는 남단의 런던에서 시작하여 북단의 스코틀랜드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서쪽과 동쪽을 모두 누비며 영국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돌아가는 길에 원 계획에 있었던 “테스‘의 저자 토머스하디가 태어난 도체스터를 들리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 웨스트 민스터 사원
먼저 윈체스터 성공회의 대성당에 들렸다. 영국엔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장로회 등이 있는데 주요 성공회가 대부분이다. 그곳엔 크누트 대왕, 윌리엄 2세, 에그버트, 윌리엄 워커가 잠들고 있는데 앞에서 말 했다시피 오스틴이 그 속에 큰 자리를 같이 차지하고 잠들고 있다는 것은 영국인들의 문인들에 대한 높은 숭배와 가치관 부여를 알 수 있다 이어서 우리는 런던 근처의 윈저성에 도착 하였다. 이곳은 런던 근교의 성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말에 와서 쉬는 궁전이며 국빈을 영접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왕이 올 때는 탑 위에 영국 국기가 아닌 왕실기로 바뀐다고 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바로 2주전에 세계적인 풍문을 날렸던 다이애나비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와 미국 할러우드 배우 매건 마크리의 결혼식이 여기서 거행 됐었다는 점으로 나는 많이 흥분 되었다. 영국 왕실 최초 혼혈 왕세자비라고 한다.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웨딩마차가 요란스레 들어왔을 멋진 그 왕의 길에서 앞을 다투어 인증 샵을 날렸다. 
▲ 버킹검 궁전 광장 동상
 저녁에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국에 왔으니 뮤지컬 하나는 꼭 보고 가야 한다는 뜻에서 런던시 중심에 있는 화려한 차이나타운에 들어가서 홍콩 식 석식을 끝낸 후 그날 극장가에서 연출 하게 될 “맘마 미야”(mamma mia)를 보러들 떠났다. 가격은 자리 위치에 따라 65 파운드에서 35 파운드(10만원에서 6만원)였다. 영어에 익숙치 못한 나로서는 관람을 포기 하였지만 갔다 돌아 온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무대 장치는 의외로 간단하였지만 영국인들의 감상 분위기는 모두를 숙연케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더 큰 인상을 남긴 것은 런던의 택시 기사들의 신사적인 풍격과 책임감이었다. 그들은 여성 손님이 차에서 내리는 것에 끝이지 않고 집으로 완전 들어가는 것을 차 라이트를 켜고 끝까지 지켜봐 줄뿐만 아니라 집에 올라가서 커튼을 들고 Bye Bye 하는 것을 보고서야 떠난다는 것이다. 정말 감동이었다. B: 런던을 거닐다런던은 진짜 볼거리가 많았다.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 박물관, 그밖에도 유명한 런던 브리지… 여행 마지막 날엔 런던의 볼거리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찰스디킨스박물관을 구경하였다. 그는 “크리스마스 캐럴 ” “올버 트위스트“등으로 대성공을 거둔 서민 출신 인기 작가였는데 300년 전, 3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던 모습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 런던 차이나 타운
다음은 유명한 세계 3대박물관중의 하나인 대영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에는 전 세계의 문명권의 역사 문화 유적 800만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람을 하면서 알고 보니 그 대부분은 모두 중세기에 많은 식민지를 만들며 타국에서 “약탈‘해온 귀중한 문물임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당시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위력과 탐욕의 전리품들이라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박물관 입구에 보면 첫눈에 안겨오는 것은 불교의 대형 부처상이다. 중국, 혹은 인도의 문물? 똑똑히 알 수 없었다. 운반중 과실이었는지 팔 하나가 떨어진 상태다. 그다음 보이는 아늑한 한국식 한옥모델 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 기원전 196년에 제작된 로제타석은 지금도 이집트 사람들이 꼭 돌려받고 싶어 하는 유물이라고 한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 문자로 상형문자를 최초로 해석하게 해준 이집트의 문명세계를 밝혀내는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이라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프랑스군이 발견한 이 문물은 이집트가 영국군과의 전투패배에서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바친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리스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신전 전시관도 주목을 끌었다. 그 속에는 영국 배가 그 문물들을 실어오다 바다에 침몰하여 그 아까운 장식물들 대부분을 다 잃어버리고 조각들만 남았다는 스토리가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훼손당하고 잃어버린 중국의 유명한 문물-원명원 (园明院)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그다음엔 “사자사냥”이라는 아주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벽화가 주목을 받았다. 사자 사냥을 즐겼던 아시라이왕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집트 미라가 전시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세에 다시 살아나기 위해 죽는 즉시로 70일 동안 핏기 없이 가공하여 40일 산에서 바싹 말려 이루어진다는 각양각색의 미라들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착과 그 허망함을 사색해 보았다. 
▲ 버킹검 궁전
 대영박물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살고 있다는 버킹엄 궁전으로 갔다. 이 궁전은 1837년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왕실 수장이 살고 있는 주거지라 한다. 국왕이 궁전에 있을 때는 궁전 정면에 왕실기가 게양되고 부재중일 때는 유니언잭 깃발이 게양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가던 날은 노란색 깃발인데 그게 바로 왕실기라 하였다. 우리는 버킹엄궁의 넓은 궁원을 산책하면서 엘레자베스 2세에 대해서 얘기했고 그의 남편 필립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의 남편은 유머 감각이 아주 좋다고 하는데 20세 전에 아주 게으름을 피우고 늦잠을 잘 자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질의에 그는 웃으며 "당신도 나처럼 귀엽고 아름다운 여인을 데리고 자면 이렇게 아침에 게을러집니다. "라는 유머로 웃어 넘겼고 나이가 들어 어떤 외출 시에 바지 앞 지퍼를 채우지 않아 사람들이 지적해 주었을 때도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나이 들고 병든 새는 새장을 열어 놓아도 날아가지 않는다.”라는 센스 있는 한마디로 민망한 분위기를 웃음 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성공회 본부로 국왕의 대관식과 결혼식, 장례식이 거행되는 왕실 교회인바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 이기도하다. 성당밖에 따로 무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당 안에 유해를 안치한다. 역대 왕들과 총리들, 그리고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위인들의 무덤이 성당 곳곳에 있는데 우리가 주목한 것은 이곳에도 역시 유명 문인들-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키플린 등이 있었으며 다른 지역에 묻힌 섹스피어,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등의 기념비까지 보충해 놓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문인들의 가치와 열애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사원의 마지막 출구 바닥에 양귀비꽃으로 장식된 추모 기념 판이 있었다. 관광 중 어떤 전쟁 기념관을 지날 때 마다 우리는 늘 이런 양귀비 꽃다발을 발견하게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인들이 적에게 포위되어 한 달간 싸우며 버텼는데 지원대가 도착 하였을 때는 전원이 사망한 상태였고 그 땅에 양귀비꽃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매년 11월 11일이면 영국인들은 왼쪽 가슴에 빨간 양귀비꽃을 달고 전사한 열사들을 경건하게 추모 한다고 한다.  사원의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은 영국건물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뾰족 뾰족한 고딕 형 지붕으로 된 클래식한 품격의 최고치인 것 같았다. 이러한 건축물은 가는 곳마다 눈에 안겨 온다. 그 모던한 구성감각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 여행코스로 우리는 런던 템스 강의 유람선을 타며 유명한 런던교, 타워 브리지를 관람하였다. 템스 강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의 주요 무대여서 하루에도 수백 척의 배가 템스 강을 오갔다고 한다. 그러나 조수간만의 차이가(간조와 만조에 따라 달라지는 해수면 높이의 차이) 6 m 이상 인데다가 다리와 강 수면이 10 m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배들이 쉽게 통과하지 못했던 탓에 1984년에 지금의 개폐식 다리, 즉 다리의 높낮이를 상황에 따라 조절 할 수 있는 지금의 타워 브리지가 탄생 되었다고 한다. 유람선에 앉아 양 옆을 바라보니 저 멀리 채 완성되지 못한 85층의 런던타워가 보였고 국회 의사당, 빅벤 시계탑,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런던만이 뽐내는 여러 멋진 건물들이 끝없이 보였다.  
▲ 높낮이를 조절하는 다리
 끝말, 런던을 떠나며13일간의 해외 문학탐방을 끝내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였다.해가 뜨지 않는 나라, 그러나 기어이“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 옛 훈장을 메고 있는 나라- 영국을 얼마간 알게 되었다. 관광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무한대의 그린세계, 하늘의 구름, 새, 풍차 흰 양떼들…그것들은 밝은 날 흐린 날 상관없이 대자연과 인류의 큰 재앙 없이 여유 있고 평화로운 이 섬나라에 펼쳐져 있다. 중세기부터 떠안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훈장은 그들의 머리위에서 아직도 빛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별처럼 이고 있으며 그 시기를 역사에 남긴 문호들을 어느 유명한 성당 사원에도 똑같이 빛나는 별로 가슴에 안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사회의 하나의 정체성으로 내세울 만큼 그 가치를 인정한다고 한다. 우리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감동으로 안겨 오는지 모른다. 물론 아쉬운 이야기도 들었다. 자연은 아름다우나 고율의 세금과 높은 물가로 실질 소득은 적으며 의료 복지가 잘 되어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데다 친절하기까지 한다지만 예약과 실질 진료 혜택이 너무 동떨어져 작년에 수술을 기다리다 죽은 사람이 4,200명이라니 무상복지의 실질적인“혜택”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 깊이 느낀 것이라면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은 오래된 옛 건물이나 도로에 손을 함부로 대지 않고 원상 보유다. 런던 한 복판에도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이 그대로 있으며 이에 따르는 불편함을 감수 하면서도 전통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다. 중세기 모습을 재현하듯 보존하고 있는 500여년씩 된 건축물들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건물이던 뭐 던 역사를 가진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대로 고수해 나가는 그들의 아집을 엿볼 수 있다. 역시 귀족적이고 신사적인 지존에 묻힌 애착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중세기 훈장은 계속 빛나고 끊임없는 관광객들의 발길 속에서 그들은 그 빛의 혜택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여행은 끝이 없고 스토리도 끝이 없으리라 김재진 시인이 쓴 여행 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지구의 반대편을 걸어와 함께 시간을 나누던친구와 작별하듯 여행은 때로기약 없는 이별일 때 있어라 닫혀 진 문 밖으로 음악이 흐르고때로는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모르는 여인을 안고 싶을 때 있어라 2018, 7, 15 서울에서 류재순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 베이징과 서울에서 각각 출판 소설, 수필 등 50여 편 발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