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강성 탕원현 조선족고급중학교 교사. 2000년에 한국 입국. 단편소설 '인생은 유희가 이니다', '주소 없는 편지', '변색안경',"외토리' 등과 수필 '생의 이미지', '깍쟁이 반추', '기다림의 멋' 등을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송화강, 은하수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 현재 고양시에 거주
[서울=동북아신문]청명한 하늘 아래서 사과 한 입 베어 물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에 분명 가을 냄새가 묻었다. 여름내 푸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도 불그레 가을 색을 조금씩 칠하고 있다. “백로” 가 오더니 “추분” 도 지났다. 이제 추석이 지나면 “한로”, “상강”이 차례로 다가와 찬 이슬 내리고 무서리 내낼 것이다.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른다고 여기는 건 실체적인 진실이 아니라 우리 신체의 감각적 반응일 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자글자글 끓던 ,끈적끈적 심술부리던  여름빛이 숙지고 가을볕이 은실처럼 뿌리는 걸 보며 새삼 세월이 흐르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년설로 뒤덮였던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검은 흙바닥을 드러내고 북극 얼음이 녹으며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진입하는 징후 속에서도 여전히 가을이 오는 것은 참으로 감격할 일이다.

   회사 옆의 늙은 상수리나무에서 가을의 도래를 알리기라도 하듯 후-두둑 알알이 염근 도토리 열매가 연신 떨어진다. 나무 꼭대기에서 되록되록 주위를 살피던 귀여운 다람쥐가 떨어진 도토리에 욕심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때가 결실의 때인 만큼 후-두둑 
후-두둑 도토리 열매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시름없이 자유낙하를 한다.

   사실 어디 도토리 열매뿐이랴! 사과도, 대추도, 감도 가을을 맞아 볼이 탐스럽게 붉어졌다. 온통 향연이다. 과일의 단 내음이 거리에 가득하다. 논에는 누렇게 익은 고개 숙인 벼들이 바람에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말 그대로 풍성한 가을이고 풍요로운 한가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템포 속에서 변화무쌍한 사물들의 놀라운 변모에 수시로 감탄을 금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석연치 않게 무겁고 허전함은 왜서일까!

   사흘 전 화창한 가을 하늘아래서 따가운 가을볕을 머리에 이고 여름 내내 구슬땀으로 가꿔 오신 고구마를 캐기에 여념이 없으시던 어떤 연로한 어머니의 모습이 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기설기 무성하게 우거진 고구마 줄기를 일일이 걷어내시고 다시 거의 반년 간 덮여 있던 검정비닐을 벗겨 내시는 모습,  발로 힘껏 삽을 밟아도 잘 들어가지 않는 밭고랑을 조막 호미로 간신히 파헤치던 어머니, 이마엔 어느 덧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았고 활등처럼 휜 가냘프고 왜소한 잔등도 (허리)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호미질에 여념이 없다. 힘겨운 호미질에 두 팔이 떨리기 까지 하였지만   굵직굵직한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만면이 웃음꽃으로 변하는 그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 적이었다.

   “고구마 농사가 너무나  힘드신데 , 연로하신 몸으로  왜 이렇게 많이 하셔요? 오히려 돈으로 사서 드시는 편이 훨씬  나으실 텐데요!” “자네는 아직 모르는 일일 수도 있지! 힘은 들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내 손으로 가꾼 것들을 안겨주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 어머니의 답변에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가을볕에 까맣게 그을린 어머님의 주름 깊은 얼굴과 탐스럽게 익은 탱탱한 고구마의 모습을 넋을 놓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수확의 계절에  어머니가 보내신 생각 밖의  달콤한 고구마를 받아 안고 그 자식들은, 그리고 그 손자 손녀들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지만 자식들의 웃음과 기쁨을 위해 엄마의 거치러 진  두 손은 더더욱 갈퀴손으로 변했고 주름진 얼굴엔 또 다른 주름이 자리매김 하였음을 생각이나 하였을까?!

   어쩌면 이 가을은  분명  수확의 계절이고 결실의 계절이지만 자식만을  위해 품어주시고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어머니들에겐 자신을 잃어 가는 상실의 계절은 아닐지?!   가을이 바야흐로 깊어만 간다. 아직 푸른빛을 훨씬 많이 자랑하는 저 나무들도 멀지 않아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을 테고 또 좀 지나면 머뭇거림 없이 그 옷마저도 미련 없이 벗어 버리고 헐벗은 모습으로 온 몸을 내보이며 가을을 지워가겠지?! 결국 저 수많은 나뭇잎들도 푸른빛에서 붉은, 누른빛으로 바뀌고 드디어 가냘픈 낙엽으로 탈바꿈하며 소실될 것이고! 어쩌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의 모습과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추수 방학이 되어 내가 외지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논밭에서 가을걷이를 하시다 말고 그 길로 달려 오셔 닭을 손수 잡아 닭볶음탕을 끓여 주시던 어머니, 맛나게 먹는  나의 모습 바라보시며 가을볕에 까맣게 탄 얼굴에 함박꽃 웃음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어머니의 그 자애로운 모습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른다.   

   가을은 누군가 에게는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 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 에게는 상실의 계절, 비움의 계절인 것 같다. 나는 지금 결실과 상실, 채움과 비움이 공존하는 계절, 가을 앞에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가을의 의미를 다시 새롭게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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