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춘화 약력: 중국 하얼빈 교사 출신.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서울=동북아신문]후배와 십자수가게(十字绣专卖店)에 들렸다. 뜨개질, 수놓이, 코바느질 이와 같이 옛날에는 여자들 속에서 유행되었던 수공과는 멀어진 지금, 고물 같은 존재의 십자수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구경하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벽에 걸린 액자에 넣은 완성된 자수를 보면서 현대적 감각이 묘하게 엉킨 새로운 멋을 아! 하고 느끼면서 견본도 몇 개 보았다. 후배가 극성스레 몇 개의 도안(图案)을 골라준다. 난 조금이라도 어두운 색은 다 밀어놓고 산뜻한 도안만 몇개 보다가 그중 하나를 골랐다.

두 그루의 나무, 가지에 산뜻하게 아롱다롱 가득 열린 산뜻한 비현실적인 색감의 열매 그 복판에는 빨갛고 큰 심장이 세 개 포개져 있는 그림이었다. 꽉 찬듯한 열매의 감각도 좋고 따뜻한 감이 묻어나는 비현실적인 산뜻한 색상의 환상적인 어울림도 좋았지만 중간에 있는 벌렁이는 심장이 유난히 눈길을 끌며 인간적이미지를 심어주어 시적 감각이 다분한 도안이었다. 심장. 아! 나의 심장의 콩콩 뛰는 박동소리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후배는 글이 씌어있는 도안을 선호하는 편이였다. 난 글자는 싫어. 글자라면 오히려 짧은 자작시를 수놓고 싶은데…나의 생각에 잠긴듯한 말에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후배는 좋다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며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진심을 보여주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나는 십자수 모형을 들고 한뜸한뜸 수놓아갔다.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한국말방송을 들어가며 옛날의 수공업자로 돌아간듯한 느낌에 재미를 맛본다. 며칠후 산뜻하게 물들어가는 수놓이판을 보는데 처음에는 어렴풋하던 생각들이 굵게 뭉치면서 톡톡 사색의 문을 노크한다.왜 조금이라도 어두운 색은 싫었을가? 왜 산뜻한 색이 먼저 눈에 들가? 전에는 좀 어두운 색을 도도하다고 좋아 했잖아. 난 홀연 내가 좋아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 동일한 대상에 2분법으로 숨은듯한 야릇한 느낌이 들어 헝클어진 수놓이 실을 풀어가며 잠의식을 파보았다 어두운 감각---아픔이나 고민이거나 우울한것들을 마음에 저장해두던 지난날이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의 스트레스일 거다. 되돌려주면서 튕길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다 비워버리고 간단해지고 단순해지고 싶고 그 길을 따라 많이 걸어나왔다. 자신의 지적 힘을 이용하여 취사선택을 잘 한듯하다. 확실히 비여있고 깨끗해진 자신의 마음 밭에 즐거움 같은 종자를 담는 일은 보다 건설적이여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색채가 나의 마음에 파문을 주는 것이 아닐까!  간혹 사람들은 지나간 상처를 붙들고 그 장본인듯한 지난 일을 곱씹으며 상대의 이런저런 흉을 보는데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인 것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을 옆에서 몇 번 듣다 나면 세월이 흘렀는지 멈추었는지 모르겠다는 착각이 든다. 알고보면 마음은 참으로 잘 깨지는 질그릇과 같다. 한번 깨지면 다시 완전해질 수 없는 듯 마음의 구름들을 몰아내는 작업은 관련되는 쌍방이 호흡을 맞추어야 진도가 있는 일이어서 그만큼 난도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두 사람의 불 조화, 갈등, 그것의 뒤에 버티고 있는 나무는 너무나 많은 것을 걸머쥐고 있다. 마치 한국과 조선의 갈등처럼. 자존심의 대결이라도 하려는듯 악순환이다. 기실 근본적인 불 조화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화, 이념. 가치관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닐 수 없다.  사람지간의 갈등, 그 대결로인하여 주위의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든다. 갈등의 깊이를 파는 새로운 일이 생기고 그 말을 들어주자니 부담스럽다. 위안이란 것이 눅거리가 아닌 것 이다. 같이 동조할 수 없는 매 사람의 입장과 가치관, 객관성 때문이다. 그리고 그후의 행동과 표정까지 불편스럽다. 남의 마음을 위하여 자신을 “죽이는”일이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인데 관련되게 만든다. 나라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인근 나라까지 말려들어 복잡한 관계를 구축하며 피곤하게 만든다. 이처럼 불화는 언제나 크고 작은 파문이 뒤따르는 법이다. 마구 엉킨 것들은 엉킨 실마리를 풀듯 살살 풀어나가야 삶의 수놓이를 막힘이 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고 비워버리고 잊는다는 것은 남과 자신을 위하여 숨통을 틔우고 물꼬를 틔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전히 지운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허물고 불을 지르는 일이어서 진통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울타리를 허무는 일처럼 생각되어 자기보호심리가 배격할 수도 있다. 그러니 힘든 일이고 따라서 자신을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어두운 색채를 밀어놓는 선택은 잘 된 것이다.그런데 꼬리가 붙는다. 나의 어두운 색을 거부하는 뒷면에는 무엇이 묻혀 있지? 저물어지고 아름다움을 상실해간다는 현실? 그것은 어두운 이미지와 이어져있는 것이어서 젊은 혈기를 고집하는 마음이 배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이 시점에서는 모를 또 다른 내용과 삶의 깨우침이 묻혀있는 것일까? 딱히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제일 짙은 감각은 자신이 산뜻한 색깔을 좋아하고 있다는 변화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마음 속에 넣어둔 것들이 소중하고 밝고 반짝거리여 즐겁다. 그 보물의 내원은 여러 가지며 입고가 틔어있다. 제일 중요한 내원은 희망이고 신심의 건강과 마음속에서 자꾸 가지 뻗는 탈바꿈의 시도와 딸애의 발랄한 모습 등이다. 꿈이 무엇인지 똑똑한 방향이 없이 단순히 흥취로 학습을 대하던 딸애가 한국의 으뜸의 대학인 서울대에서 열심히 학습하고 성장하고 일류의 회사인 LG화학 정보전자소재연구소에 취직하고…그런 딸애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짬을 이용하여 중국어 강사도 하고 수영도 배우고 헬스장도 정기적으로 가서 운동하고 열심히 사는 풋풋한 기운은 나에게 샘물 같은 에너지를 넣어주고 있다. 서로가 적극적인 영향을 주는 현실은 참으로 신기롭다. 마치 형태도 없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확실한 존재를 확인해주며 마음을 즐거움으로 출렁이게 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하나하나 담아두는 즐거운 감각에는 지장이 없다. 자신이 계속 걷고있다는 감각도 마음의 주름을 펴준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서로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정서변화도 보살피며 신경 써주는 마음과 생각들은 아지랑이와 같은 실존하는 존재로 서로의 마음을 덥혀준다. 후배는 수놓은 것을 빨리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를 어떻게 수판에 옮기겠는가 하는것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방법을 찾으면서 재간과 진심을 보여준다.  그러고보니 밝은 색채를 선호하는것은 세상의 보다 밝은 면, 목소리, 빛을 담아두자는 마음의 핸들이 조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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