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매화 905204688@qq.com흑룡강성 동녕현 출생. 흑룡강 신문 수필공모 동상, 제1회 전국조선족여성애심컵수필공모 동상, 한국신춘문예상 등 수상. 수필, 소설 수십 편 발표.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재한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늘 뿌옇게 흐리고 춥기만 하던 겨울, 그리고 다른 겨울보다 더 추었던 겨울이 끝내 봄에게 자리를 내주더니 어느덧 꽃피는 계절이 다가 왔다.

벌써 매화꽃 축제요, 진달래 축제요, 벚꽃축제요, 하면서 개화시일을 보도하는 tv가 무척 얄미운 것은 나의 기분탓이라 해야겠다. 마치 축제를 위하여 피어나는 꽃인 것처럼 보도가 그렇게 반갑지 않는 것은 그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나는 올해도 봄이 싫어진다. 출퇴근때문에 어서 빨리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렸건만 정작 봄이 왔는데 꽃피는 따뜻한 봄이 왔건만 봄이 싫어지는 내가 이상한 것 같다. 그 약속, 꽃을 즐기는 엄마와 함께 벚꽃구경 가자던 그 약속을 난 못 지켰다. 세상에 한분 뿐인 사랑하는 엄마가 나의 곁을 떠난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3년전 5월 우리 형제자매들은 중국에 혼자 계시는 80여세의 엄마를 한국으로 모셔왔다. 일다니는 오빠에게 밥이라도 지어주겠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오빠네 집에 계시게 하셨다. 둘째언니네 집과 불과 20여 미터, 그리고 건강하시던 엄마라 나는 시간나는대로 엄마보러 다녔고 언니들도 자주 혼자 집지킴이 된 엄마를 모시고 바람쐬이러 다니군 하여 나는 엄마가 그렇게 빨리 갈줄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편히 쉬라면서 집근처 시장도 알려 드리고 가까운 교회도 다니게 해 드렸더니 엄마도 무척 기뻐하셨다. 어느날 엄마보러 갔다가 길가의 화단에 걸터앉으셔서 화단의 풀을 뽑으시는 엄마를 보고 난 난리를 쳤다. “어머니, 한국에는 화단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요. 왜 그러세요?”“내가 심심해서 그래, 봐, 꽃들이 얼마나 예쁘냐?” 그제야 엄마가 꽃을 즐기시던 먼 기억의 저쪽에 가라 앉아있던 쪼각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내가 한국에 오기전까지도 시골의 우리집 앞마당에는 엄마가 심으신 봉숭아며 백일홍, 분꽃 그리고 가을에 피는 국화꽃들이 가득했으며 터밭의 고추밭 머리에도 봉숭아꽃이 한포기씩 심어져있었다. 어머니는 유독 봉숭아를 즐기시는 것 같았다. 저녁이면 가끔씩 우리집 앞마당은 이웃아줌마들이 꽃구경하면서 수다 떠는 모임장소가 되기도 했었다.“어머니 내년 봄이 되면 우리 함께 벚꽃 구경가요. 올해는 이미 다 지났으니 내년에 꼭 가요. 어머니 꽃 좋아 하시잖아요.”“그래 꼭 가자. 너의 언니들이랑 같이 가자” 어머니의 환해 지시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무척 뿌듯해 났다. 하지만 나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머니만은 건강하시다고 그토록 믿어왔건만 이듬해 3월 중순 어머니는 감기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셔서 검사 받고 약도 드셨지만 낫는 것 같기도 하다가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언니가 전화 왔다. 우리는 병원에 가시지 않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대학병원에 갔었다. 교수선생님의 정밀검사를 위해 입원하라는 것과 우리들의 그토록 입원하자는 애원도 마다하시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갈길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여 일만에 엄마는 담담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지는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어느 새벽녘 어머니는 노환으로 조용히 우리 자식들과 이별하셨다. 지는 벚꽃과 함께 돌아가셨다. 나와 언니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신 우리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자식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셨다. 약속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믿음과 신뢰가 떨어진다며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뒤축이 닳은 신발 때문에 삐진 언니와 꼭 새신을 사준다는 약속을 엄마는 쉴참에 약초 캐서 판돈으로 지키셨고 우리들과 새학기엔 꼭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는 학용품 약속은 손끝까지 파랗게 물들이며 캔 나물 판돈으로 지키셨고 현성중학교 다니던 나의 학부모회 약속도 어머니는 새벽 첫차로 오셨다가 다시 돌아가서 밭일을 하시면서 지키셨다. 그후에도 외손주들의 돐 옷은 꼭 외할머니가 사입힌다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은 어머니의 괴춤의 우리들이 드린 용돈으로 지키셨다. 그것도 7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의 첫돐 옷을 어머머니는 빠짐없이 사주셨다. 그렇게 어머니께서는 우리와의 약속은 칼같이 지키시면서도 내가 어머니와 한 약속은 그렇게 힘드셨는지 무엇이 그렇게 갈길이 급하셨는지 지키지 않으셨다. 벚꽃축제의 어느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휠체어로 기력을 잃으신 어머니늘 모시고 벚꽃구경을 가자했더니 어머니는 너희들만 힘들거라면서 연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키져지지 못한 약속은 벌써 3년이 지났다.  삶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준비하면서도 어머니는 오직 자식 사랑뿐이었다.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여전히 흘러가는 강물같은 어머니의 사랑, 자식들이 쓸데 없는 돈을 쓴다고 병원 입원을 마다 하셨던 어머니, 자식들이 힘들가봐 그토록 좋아하시는 꽃구경도 마다하신 어머니! 왜 이 딸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셨는지?…. 만약에 만약에 기적이 일어나 어머니와 하루만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하루종일 벚꽃놀이를 할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하게 되면 그땐 꼭 이약속을 지킬 것이다. 봄날에 맺은 우리만의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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