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선 시인
[서울=동북아신문] 간장사리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단지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툇마루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보먼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이웃집 연기도 더러 챙기며
묵을수록 약이 되는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李惠仙 hs920@hanmail.net
동국대 국문학과, 세종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 외 다수. 저서 『문학과 꿈의 변용』 『이혜선의 명시산책』. 세종우수도서 선정(2016). 윤동주문학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외 다수 수상. 동국대 외래 교수, 세종대, 대림대, 신구대 강사역임. 현재 동국문학인회 회장. 한국 문인협회 및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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