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미란 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사랑하는 미영아,

밤이 깊었는데 너 위챗 모멘트엔 좀전에도 제품광고 사진이 올라오는구나. 건강도 안 좋으면서 이 시간까지 안 자면 어떡하니?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연년생으로 태어난데다 생김새며 키, 목소리까지 비슷해서 우리 둘은 쌍둥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었지. 심지어 최근에도 너의 신랑의 친구들이 날 너로 착각하고 내게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우린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고 결혼을 한 후에도 가까운 곳에 살며 하루가 멀다 하게 만났으니 가히 쌍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내 친구들은 늘 나를 부러워했단다. 친구같은 여동생이 있어서 얼마나 좋냐며. 그래, 넌 나의 동생이자 둘도 없는 절친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젤 먼저 찾는 사람이 너였으니. 우리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알 정도로 교감이 통했다.40여년의 세월동안 우리의 삶의 궤적은 늘 반경 5키로미터 안에 있었다. 재작년엔 함께 서울로 이사와서 같은 빌라에 입주해서 살고 있지. 가끔 넌 우스개로 이렇게 말하곤 했어. “이젠 날 그만 따라다녀, 지긋지긋하다.”별도 졸고 있는 이 시각, 나는 조용히 떠올려본다. 늘 니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언제부터 상황이 역전이 되었지? 세 딸 중 둘째딸로 태어난 너는 어릴 때 천덕꾸러기였다. 이 표현이 좀 심했나? 글깨나 만지작거린다는 이 언니가 고작 너의 어린 시절을 이 단어로 규정짓다니, 화가 나겠지? 그래도 참어, 내 맘이다. 왜?  맏이로 태어난 난 온 가족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막내는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았지. 나는 워낙 울보다보니 늘 엄마나 할머니 등에 업혀서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넌 업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더라. 어쩜 넌 태어날 때부터 자립심이 강한 둘째들의 유전자를 그대로 지니고 태어났나봐.  어릴 때 우린 할머니를 유난히 따랐지, 잠을 잘 때면 난 늘 해오던대로 할머니의 왼쪽에 누워 팔베개를 베고 할머니의 축 늘어진 젖가슴을 조물락거리며 할머니가 하시는 옛말을 자장가 삼아 잠을 자곤 했어. 막내는 할머니의 오른 편에 누웠고. 그러면 넌 시무룩해서 슬그머니 엄마방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어. 옷도 먹을 것도 귀하던 그 시절, 어쩌다 새 옷이나 새 책가방이 생기면 늘 내 몫이었어. 내가 먼저 입고 내가 쓴 담에야 너한테 차례졌어. 잔칫집이나 환갑집에 갈 일이 있을 때면 할머니는 나만 데리고 다녔지. 그게 너에겐 은근히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야.  한번은 니가 항의를 했어, 할머니에게. 다음 번에는 널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그러마 하고 웃으며 대답하셨지, 물론 언니인 나는 잘 알고 있었어. 할머니가 다음번에도 무조건 날 데리고 가실 거란걸. 그때 니가 일곱살쯤 되었나? 드디어 어느날 할머니가 잔칫집에 갈 채비를 하시자 넌 어느새 낌새를 챘어. 준비를 마치고 미리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 널 재미있어하며 나와 할머닌 뒷문으로 빠져나갔지. 그날 니가 얼마나 실망하고 상심했을지 나는 전혀 몰랐단다. 나는 다만 그것이 나의 특권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야.  학교에 가도 넌 미영이라는 이름보다는 곽미란이의 동생으로 더 많이 불리웠지. 심지어 선생님들은 언니가 공부를 잘하니 동생도 당연히 언니만큼 잘 할거란 라벨을 제멋대로 너에게 붙여주었던 모양이야. 이건 그야말로 불공평한 것이지. 너는 너답게, 곽미영으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는데 말이야. 아마 그때 부터였을 거야, 뭐든지 언니인 나랑 똑같은 대우를 해주길 바라는 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어.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나름 공정, 공평을 지향했던 거야. 얼마나 나랑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 글쎄,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배침을 맞는 나를 보더니, 너도 의사에게 배침을 놔달라고 했겠니?  너는 일을 해도 나와 똑같이 하거나 더 많이 하려고 했어. 승부욕이 생긴 거지. 벼가을을 할 때도 나이가 한 살 많은 내가 너보다 낫질을 더 잘해서 더 많이 베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너는 쉴참에 나와 너의 벼단을 세어보곤 내가 쉬는 동안에 부지런히 날 따라잡았지. 이런 승부욕이 줄곧 작용한 건지 넌 결혼도 나보다 먼저 했고 애도 나보다 먼저 낳았다. 상해에서 집도 나보다 먼저 사고 차도 나보다 먼저 샀구나. 스마트폰도 니가 아마 먼저 사용했을 걸.  늘 대중앞에 서는 나 대신, 너는 묵묵히 보이지 않는 뒷쪽에서 일을 할 때가 많았어. 교회에서 내가 어린이반 교사로 봉사할 때 넌 주방에서 식사당번으로 일을 했고, 사회초입 시절 같은 회사에 근무할 때도 나는 사무실에서, 넌 현장에서 일을 했지. 그래, 넌 어떻게든 이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거야.  딸만 셋인 우리집에서 부모님은 당연히 맏이인 내가 모시게 될 줄 알았지만 정작 부모님을 모신 건 너였다.  십여년 전에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리셨던 그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입원을 시키기 전날 밤, 나는 뜬눈으로 꼴딱 밤을 지새웠다.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갑자기 목돈을 어디 가서 빌릴까 하는 생각에 말이야. 그런데 이튿날 아침 니가 나에게 속삭였지. “언니야, 너무 걱정 마. 내 통장에 십만 원이 있어. 그걸로 당분간 치료비용은 될 거야.” 그때 넌 대기업에서 꽤나 높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지. 그건 그야말로 설중송탄이었다. “치료나 새나, 이대로 집에 가서 기다리다가 칵 죽어버리면 되지”하고 모진 말을 내뱉으시던 아버지가 제일 걱정한 것은 역시 돈이었다. 아버지에게 그 통장을 보여드렸을 때 아버지는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긴 줄로 나는 안다. 니가 아버지를 살렸어, 미영아! 그 후, 엄마가 간암말기로 판정을 받았을 때도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은 대부분 너 담당이었다. 워낙 약삭빨라 너와 함께 가면 시름이 놓인다는 게 엄마의 주장이었어. 나중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엄마의 병 간호에 가장 적극적인 건 너였다. 너와 내가 같이 있으면 사람들은 첨에는 쌍둥이냐고 물었다가 연년생이라고 하면 니가 언닌 줄 안다. 그때마다 난 내가 너보다 더 동안이라며 우쭐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언니처럼 행동하는 너의 행동거지를 보고 판단한 줄도 나는 안다.  엄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났을 때도 그 슬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엄마에 대한 기억을 너와 함께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달랑 오빠 한분 밖에 계시지 않아 참 많이 외로웠다는 엄마는 딸을 셋이나 낳아 우리가 팍팍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의지하고 도우며 덜 외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너는 먼저 한국으로 왔다. 뒤따라나온 나를 데리고 부동산에 찾아가서 셋집 계약을 하고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는 일을 너는 척척 가르쳐줬지. 그래서 난 얼마나 수월했는지 몰라.  그뿐이랴! 회사일이며 각종 행사로 늘 바쁜 나 대신 전업주부인 너는 나의 딸내미의 저녁식사도 늘 챙겨주고 딸내미의 학교 행사까지도 일일이 신경써 주었어. 그래서 난 시름 놓고 내 일에 전념할 수 있었지.이제야 알만하구나, 지긋지긋하니 좀 떨어져서 살자는 너의 말뜻을. 엄마의 성격을 쏙 빼닮은 넌 집안의 행사를 일일이 챙겨야 직성이 풀렸고 내가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집에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너가 입버릇처럼 늘 말하는 언니노릇이란 이런 의무보다는 내가 어렸을 적 누렸던 언니로서의 권위와 특권을 누려보고 싶은 거란걸 난 안다.  언니와 동생의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로또당첨 확률에 버금가지 않을까? 이건 정말 굉장한 인연이야. 그래서 말인데, 미영아, 이번 생에는 어쩔 수 없고 다음 생에는 니가 언니로 태어나렴. 혹 쌍둥이로 태어난다 하면 1초라도 먼저 태어나렴.  요즘 너 무슨 사업 한다고 줄기차게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데, 건강 잘 챙겨가며 일 해. 늘 앞에 나서는 걸 꺼려하던 너가 강연도 하고 리더로 일하는 걸 보며 이제 내가 곽미영의 언니에요 하고 자랑하고 다닐 날이 곧 올거 같아 은근히 기쁘거든. 잘 부탁한다, 미영아!내일도 화이팅하길! 너를 사랑하는 웬쑤같은 언니가. 2018년 10월 12일 곽미란 grace_kwak@163.com수필가, 변역가, 숭실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 출간. 미니시집 '찰나' 번역. 수필, 기행문, 시 수십 편 발표. , 동북아신문 기자,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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