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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글/주해봉]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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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5  08: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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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해봉 약력: 흑룡강성 탕원현 조선족고급중학교 교사. 2000년에 한국 입국. 단편소설 '인생은 유희가 이니다', '주소 없는 편지', '변색안경',"외토리' 등과 수필 '생의 이미지', '깍쟁이 반추', '기다림의 멋' 등을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송화강, 은하수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 현재 고양시에 거주
[서울=동북아신문]연녹색을 자랑하며 웃음 짓던 앳된 나뭇잎들이 어제만 같이 여겨지건만 눈 깜짝할 사이에 추풍에 온몸을 맡기더니 급기야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다.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들을 살며시 흔들며 가을의 도래를 알리던 나무들은 한 해 동안 만든 잎들을 다시 하나 둘씩 떨어뜨린다. 자연의 섭리라고나 할까?! 가을은 그렇게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소리 없이 깊어간다.

    늦가을 비에 제법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노라니 어쩌면 가을은 잔잔히 흐르는 음악소리에도 쓸쓸함을 가질 수 있는 계절이고 가을은 작은 바람소리에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고독함 마저 몰려드는 유난히도 감성적인 계절이 아닐까란 생각 이 오롯이 든다.

    가을의 절정리라 할 수 있은 10월, 그 10월의 막바지에 찾은 경희선 철도연선의 가을 숲길,(백마역-곡산역 구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핏빛으로 빨갛게 익은 단풍나무, 이미 낙엽이 되어 숲길을 아늑하게 수놓고 있는 각양각색의 나뭇잎들, 지난여름 꽃으로 피우지는 못했어도 짙은 초록색으로 즐거워하던 찬란한 숲은 어느덧 온통 울긋불긋 꽃나무로 변신한 채 깊어 가는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가을의 절정이 무엇인지 나무들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속에 반복되는 삶, 누구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마음이 힘들어 질 때가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 해도 때로는 세상살이가 싫어질 때, 그럴 땐 어김없이 찾게 되는 나만의 숲길, 경희선 철도연선의 가을 숲길은 오늘도 가을빛으로 곱게 물든 풍경으로 내 마음을 고요와 침묵으로 깊은 묵상 안에 잠기게 한다.

    쪽빛 하늘, 따사로운 햇살, 빨강, 노란 단풍 빛, 싱그러운 나무 향기, 문산 과 서울을 오가는 통일호열차... 순식간에 무언의 이미지로 내 삶의 여백을 빼곡히 수놓아주는 숲길이다. 그 풍경은 가을을 예찬하는 숲의 아름다움과 함께 황홀과 몽환적인 공간으로 일상에서 지치고 피폐해진 초췌한 나를 조용히 초대한다.

    절정을 이루고 있는 단풍 빛의 황홀한 색채 속에서 끓어 넘치는 흥분과 설렘을 애써 억누르며 숲길 옆의 작은 정자에 앉는다.

   두 손을 꼭 잡고 다정한 자세로 단풍 빛을 즐기며 사랑을 익혀가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 단풍 잎 하나 따서 연인의 머리에 살며시 꽂아주는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안겨오며 온몸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빠져 든다.

   가을바람에 하느작대는 단풍잎과 때 이르게 떨어져 뒹굴고 있는 나뭇잎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용히 거닐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의 모습, 그런 모습 바라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고 서울행 문산행 열차들이 지나치며 무시로 귓속을 씻어주는 절주 있는 굉음에 약동하는 세상의 모습을 실감했다.

   온 몸을 완전히 핏빛으로 불태우며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단풍잎들을 바라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1년365일 긴 일상에 비해 단풍으로 황홀한 시기는 그야말로 짧은 것을! 저 울긋불긋 단풍 빛도 머지않아 소실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뜨겁게 타오르는 정열의, 사랑의 순간 역시 긴 인생, 긴 만남에 있어서는 찰나의 시간일지도 모르며 그“반짝”의 순간이 때론 평생의 힘이 되고 평생의 추억으로 되는 기억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한 것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는 뉘우침, 죽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오늘의 삶은 오로지 산 자에게만 허락된 순간의 광휘로 가득한 삶이라는 진리, 가을 숲은, 가을 나뭇잎은 말없이 은근한 몸짓으로 조곤조곤 귀띔해준다.

   “막둥아, 날씨가 차가워지는데 아픈 곳 없이 잘 지내고 있지?” 초가집 처마 밑에 걸어둔 마른 시래기처럼 애잔한 그리움으로 잔잔히 가슴 적시는 엄마냄새가 듬뿍 배인 귀에 익은 육성,

   삶의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나 따뜻한 가슴 한 자락 선뜻 나눠주고 가을 속으로 표연히 떠난 빛바랜 여인의 잊을 수 없는 체취!...단풍잎이 핏빛으로 물들며 절정을 이룰 때면, 그리고 가을이 깊어 나뭇잎들이 하나 둘씩 이별을 고하며 낙엽으로 이름을 바꿀 때면 느닷없이, 아니 어김없이 만질 수 없는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으로 스멀스멀 고여 든다.

   찬란한 가을 태양아래 화사하게 웃고 있는 단풍잎들을 손으로 살며시 어루만져 본다. 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는 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 따뜻한 사랑이야기들이 분명 숨어있었다. 때 이르게 낙엽이 되어 뒹굴고 있는 단풍잎들도 주어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을이 더 깊어 가기 전에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아니, 겨우내 달고 있는 침엽수가 아닌 한 그루 활엽수처럼 내 과욕의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싶다는 생각도 불현 듯 가져본다. 행복이란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의 중간쯤에 있는 작은 간이역이라 누군가 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너무 빨리 지나치기 때문에 이 작은 역을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통일호 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저 여객들도 아마 그래서 경희선 철도연선의 이 아름다운 가을 숲길의 풍경을 가슴에 다 담지는 못하지 않을까!

   덧없이 흐르는 게 세월임이 틀림없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청춘도 그렇게 흘러갔고 인생이라는 쪽배도 오늘이라는 파도를 뒤로하며 멈춤 없이 자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열성을 다해 가을을 물들이던 단풍잎들은 욕심도 투정도 없이 순응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여유롭게 낙하하는 낙엽 한 잎 살며시 받아보았다. “안녕히 계셔요. 이 가을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그리고 꿈속에서 노닐다가 더 찐한 그리움 한 가득 안고 다시 올게요. 헤!헤!”작은 단풍잎이 던져주는 무언의 메시지! 보잘 것 없는 작은 낙엽일 수도 있지만 떠나는 단풍잎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본연의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놀랍게 발견한다.

   경희선을 달리는 통일호 열차의 굉음이 무시로 사색을 무너뜨린다. 파란 하는가에 저녁노울 곱게 물들 때까지 가을 숲길 거닐며 단풍나무 잎 잎에 고인 세월의 흔적 뒤지며 밤새도록 단풍나무와 끝없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더불어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열차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갈마든다. 저 달리는 통일호 열차에 앉아 차창 밖의 단풍잎에서 길어 올린 옛 추억이 파란 동년시절 개구쟁이 옛 모습으로 잠시나마 머물 수도 있으니! 그러면 그 머무름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엄마냄새도 실컷 맡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발걸음 다그치는 10월이 못내 아쉽고 얄밉다. 말없이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과 하나가 되고 싶은 순간이다. 괜히 먼 하늘 초점 없이 바라보며 뒷모습 허전해 보이는 사람들과 술 한 잔 기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을이 각일각 깊어만 간다. 경희선 철도연선의 가을 풍경에서 나는 깊어가는 가을과 몸과 마음을 섞으며 하나가 되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가을이 남긴 형형색색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 본다.

   가을, 가을은 분명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다.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인만큼 나의 그리움도, 행복감도, 그리고 고독감도 멈춤 없이 쭉- 이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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