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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시/성해동]단풍(외 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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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5  08: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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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해동 약력: 1968년 중국 흑룡강성 수화시 태생. 1988년 <흑룡강신문>에 처녀작 '오기가 있는 사나이' 등 시와 에세이 다수 발표. 2014년부터 한국에 체류.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시 습작에 몰두. 現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1. 단풍

깨어보니 꺅
꿈인 듯 꿈 아닌 꿈같은 꿈이라

장롱 깊숙이 뒤져서
오랜만에 떠나는 외출
이 한복 차림 어때요

조급해 말고
준비한 대로
진정 맞이할 만큼만 간직할 것을

아직 장조림과 마늘장아찌로
미처 가을 채비도 못 했는데

이 시대 짙게 화장한 겉모습에
시도 때도 없이 날뛰는 인간의 본능에
발버둥 치며 떼쓰고 어리광이 치는데
다짜고짜 내 눈을 키스하는 가을 바람에

뚝뚝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인 듯 눈물 아닌 눈물 같은 눈물

 

2. 단풍 큐브

구멍 뚫린 내 밀짚모자에
화환을 얹는 당신

당신께
한발작도 성큼 다가가지 못하는 허수아비
혼자서는 한바퀴도 돌지 못하는 바람개비
울긋불긋 물들다 어질어질 흐트러진 마음
뻘겋게 신열을 앓다가 바스락 신음하는가

빨강 상처
노랑 고백
갈색 추억

상하좌우 빙글빙글
괜스레 돌리는 갈바람아
혹시나 맞춰지려나 이 가을 다 가기전

방긋이 웃고 싶은데
저 들녘의 배추처럼

 

3. 단풍나무

그 누구와 통화를 하는가?

코스모스 반기고 달빛이 머무는 골목길에
뽀글뽀글 가지치기한 파마머리
한복 차림 단아한 그대여

여름내 하얗게 삶고 빨아서
하늘에 널은 눅눅한 구름도
이제 피죤 향기가 그윽한데

시린 햇살 닮아가는 모습
삭고 곪아 문드러진 속내
툭툭 저 은행 열매가 구리다

미처 다 토로하지 못했는데
점점 약해지는 신호
간당간당한 와이파이 끝내
벗어나는 서비스 구역
소진되는 연둣빛 그리움인가

언제면 재충전 되어
아, 그대 내밀한 기도 소리
온 골짜기에 메아리칠까

봄에 가득하던 배터리가
깜빡깜빡 경고음이 빨간
방전된 휴대폰이다. 단풍나무는

 

4. 북한산 단풍

역시 한발 늦었나
갈바람 재촉하여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장엄한 무량사 종소리
합장하고 참배하는 단풍잎들
여울져 무량한 불심에

지난 계절은 낙엽으로 묻고
욕심은 훌훌 계곡물에 헹구고
경건히 기도하는데

하늘만을 바라보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람과 얘기하는

언제쯤 나는
네가 되려나

때로는 되놈
때로는 교포
때로는 동포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이 가슴속
마지막 잎새는 화르르 불타는데

횡악이다가
부아악이다가
삼각산이다가
지금은 북한산아

 

5. 스피또500

날갯짓한다. 학 한 마리가
여섯 개 하트 수면 위를

‘이억 원’이 파르르 첫째 수면에 떠 올라
‘이억 원’이 파드닥 둘째 수면에 떠 올라

어라?!
복식호흡에 붙이는 담배 한 대
짠짠짠 얼굴 셋이 같으면 행운이라지
잠깐 숨을 고르고 파닥파닥
수면 위로 솟는 학

‘ㅇ’이 ‘오’로 변하며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오백 원’
아, 이번에는 생뚱맞은 ‘오천 원’
드디어 ‘ㅇ’이 ‘이’인데
아뿔싸, ‘이천만 원’이 웬일인가

열정은 번아웃
월급은 로그아웃
인생은 삼진아웃 아저씨
퇴근길에 들어선 구멍가게
정성은 오백 원
욕심은 이억 원

이제 마지막 남은 수면
한껏 비상하는 학
첫 초성은 ‘ㅇ’응

 

6. 단추를 달면서

툭,
일탈하는 넋

아, 너무 오래 입었나
아무리 빨고 다림질하여도
잘 채워지지 않는 세상
옷 한 벌 입는 것이 힘들다

지퍼 이라면
차갑게 꽁꽁 닫힌 가슴팍
거침없이 질주하며 보여주련만

숭 숭 숭 숭
뚫린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땀 한 땀
시간의 숨결로 꿰매어

쑥쑥 해와 달로 채워서
흰 와이셔츠 벌어진 욕심을
정갈히 매무시한다

어제가 아닌
내일도 아닌
지금 오늘을

 

7. 능소화의 고백

잉태하였어. 불덩이를
잠 못 이루는 열대야
나팔관을 지나서 자궁 깊숙이
사정하는 하늬바람에

서성이었어. 깨금발로
내력 모르는 길목에서 초록 저고리
낮에는 돌담에 턱을 괴고
밤에는 가죽나무에 주황빛 등불 밝히고

뜨개질하였어. 그리움을
더위 먹고 바람맞고 비에 젖어도
깡마른 나무줄기로
여름내 한 코 한 코

가난한 이파리들 아직도 남았는데
들끓는 불덩이를 주체하지 못했는데
저 콧날 같은 솔숲 길로 높새바람 불어와
잠시 광기에 헐떡거리다

훌쩍 뛰어내렸어. 내 넋은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마침내 독을 품은 채
시들지 않은 채

 

8. 가을 우울증

혹시 그대는 아시나요?

나무에 단풍이 드는
가을꽃 향기가 유달리 짙은
그 이유를

저만치 다가오는 겨울에
짧아지는 번식할 시간에
서둘러 곤충을 유혹하려

다시 돌아올 봄을 맞으려
새로운 싹을 틔우고자

빛바랜 영혼이라도
덕지덕지 칠하는 캔버스인가

들이마신 이 숨도
다 내뱉지 못하는데
저 높낮이 다른 나무들이 연주하는
내 갈비뼈 사이사이
짜릿짜릿한 이 선율에

한동안 난 또 앓을 테지
가을 우울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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