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예금 약력: 중국 (흑룡강 오상) 방송국 1급 아나운서, 흑룡강신문, 흑룡강방송 특약기자. 2015년부터 수필 창작 시작, 흑룡강신문, 요녕신문, 송화강, 청년생활 다수 발표. 수차 KBS 한민족 방송 우수상 수상, 2018년 3월 한국 계간 “현대시서” 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한국 문단 등단.
[서울=동북아신문]어머니만 생각하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아리고 아프다. 올 7월 4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족중하교를 졸업한 어머니는 그 시기 시골에선 수재였다. 어머니는 한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중국말과 조선말에 능통한 덕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급판매합잡사 판매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게 되면서 좋은 직장을 떼우고 말았다. 시댁이 '계급대오 청리', '사청운동'에 걸리면서 거기에 연루되었 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의 첫째 큰 아버지와 둘째 큰 아버지가 위만시기 경찰을 한 것이 큰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계급성분이 나쁘니 중요한 근무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운명은 바로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고 해야겠다. 나의 밑으로 동생 둘을 잃고 큰 타격을 입은 데다 산후 풍을 얻은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집 안팎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젊었을 적 책 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집 안 일엔 거의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삶이 너무 고달파 몇 번을 집을 뛰쳐나가려고 맘먹었는지 모른다고 자식들이 다 큰 다음 어머니가 한 얘기다. 그런데 어린 나를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더란다. 6살 때 친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눈치 밥을 먹고 자란 어머니는 자식을 또다시 엄마 없는 자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밑으로 동생 둘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더구나 가정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밤낮 책과 씨름하는 아버지와 살면서 어머니는 가정의 모든 중임을 떠메었다. 개혁개방 전엔 열심히 가마니를 짜서 생활비를 보태던 어머니는 시장경제로 바뀌자 남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옛날 생산대 소마우간 자리를 사서 집 앞뒤로 3무가 넘는 쓰리기장을 메우고 약재인 패모를 심기 시작했다. 재배 후 3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패모를 팔아 쓰레기장을 메우느라 투자한 자금 1만원을 뽑고도 2만원을 손에 쥐었다. 어머니가 선줄을 끈 터에 친정 조선족동네가 패모전문재배기지가 되었다. 어머니의 뛰어난 시장의식은 또 한 번 검증되었다. 농대 동물의학을 전공한 사위가 미국 산 친환경 동물사료를 대리판매하자 또 새끼돼지를 사서 먹이면서 촌에서 사료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선코를 떼면서 한족과 조선족이 혼합해 사는 두 개 촌이 양돈기지가 되었다. 사료가 가격은 국산보다 비쌌지만 사육한 돼지가 근육양이 많아 보기보다 무게가 나가고 돼지고기 맛이 좋아 신속히 인근 지역까지 소문나 판매양이 신속히 증가되었다. 어머니 덕에 남편의 사료장사는 몇 년간 호황을 누리었다. 이렇게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이었지만 가난한 선비인 아버지와 살아오면서 지치고 피로할 때마다 하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점을 치는 일이었다. "점쟁이 말이 엄만 네 아버지와 살면 평생 앓는 다더라." 어머니는 종종 이 말을 우리 앞에서 외우군 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식들이 옷을 사 줄 때마다 어머니는 또 새 옷을 펼쳐 놓고 입버릇처럼 늘 외웠다. "가난뱅이가 솜 옷 두 벌이면 죽을 때가 오라지 않다더라." 이러기를 몇 십 년. 말이 씨가 된다고 어머니는 점쟁이의 말처럼 평생 앓음 자랑을 하다가 66세 되던 해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몸져 누워 고생하다가 73세 되던 해 기나긴 투병생활과 작별을 고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이게 숙명이라는 걸까. 어머니가 외우던 말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얼마 전 옛 직장동료의 어머니가 심장 스텐드(心脏支架)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직장동료가 들려주는 말에 나는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10년 전에 직장동료의 이모가 역시 이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로 동료의 친정엄마가 종종 외우던 말이 있었단다. "너의 이모 심혈관 질병은 우리 가문의 유전 질병인데, 나도 아마 앞으로 너의 이모와 똑같은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 수술을 대비해 돈을 모아야 겠다." 이렇게 정기적금을 하기를 꼭 10년이 되던 해 동료의 친정어머니는 자기가 예언한대로 심장 스텐드 수술을 받았다. 우리가 자주 하는 생각과 자주 하는 말들은 일종의 심리적 사인이라고 했다. 사인을 자주 보내면 그 것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심리학 전문가는 얘기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겠다. 어느 석학이 연구 분석한 결과인데, 사람들은 백분의 팔십은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한다고 한다.  청도에 있을 때 내가 잘 아는 한 한국인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였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 예컨데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이런 말도 그는 용납하지 못했다, "배고파 살겠다, 힘들어 살겠다"로 얘기하란다. 그의 사전에서는 ‘부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에 일아나면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기를 불어넣는다고 했다. "넌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넌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라고. 그만큼 그는 축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을 살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는가 보다.  어머니가 그때 점쟁이 말을 무시하고 건강회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 ‘자식들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고생 끝에 락’이라고, ‘이제부턴 누릴 일만 남았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면 단언하건데 어머니는 아마 긴 시간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제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해도 하루 24시간 근심걱정만 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한다면 어느 날인가는 쓰러지고 말 것이다. 모든 근심걱정과 모든 부정적인 것을 날려 보내자. 걱정하든 안하든 생길 일은 어차피 생기게 되어 있고 생기지 않을 일은 아무리 해도 생기지 않게 되어 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너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 오늘을 성공하라.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