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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제55회 한국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신성성]목 불(木佛)- 신상성 소설의 특징과 개요/ 신상성 작가노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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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30  10: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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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상 성 申相星 약력 :writer119@naver.com. 소설가, 문학박사,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 소설당선(1979). 서울문예디지털대학 및 피지(FIJI)수바외대 설립자겸 초대총장, (전)한국펜클럽(PEN)대외위원장, (사)한중문예콘텐츠협회이사장, 국제한국어평생교육원장, 한반도문학 발행인, 대한언론인회 명예회원, 문예운동, 조선문학, 한국문학신문 등 편집위원, 용인대 명예교수. 중국 낙양외대, 천진외대 석좌교수 등.수상; 국가교육훈장(홍조), 국가유공자(월남전), 한국문학상, 경기도문화상, 한국펜문학상, 동국문학상, 한국노벨문학상, 장백산 해외문학상(중국) 등 다수 소설집; 처용의 웃음소리, 목숨의 끝, 행촌동 패랭이꽃, 인도향 등, 평론집; 한국소설사의 재인식, 한국통일문학사, 북한소설의 이해 등, 수필집;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시간도 머물다 넘는 고갯길 등시집;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등 저서 약50여권.

목 불

 

(木佛)

 

1.

법당 지붕 위에 핀 풀꽃들이 늦여름 땡볕에 졸고 있다.

뜬구름도 잠깐 멈추고 내려다보는 법주사 법당 뜨락엔 가사자락들이 바쁘게 펄럭이고 있다.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 정적이다. 그 바쁜 동작이 산중의 고요와 고독을 더욱 깊이 가라앉히는 것 같다. 그것은 혼자 있는 고독보다 군중 속의 고독이 더 고독하다는 현장일까.

정오 공양을 위해 방장스님을 앞세운 감색과 회색의 가사 행렬이 가까운 듯 먼 듯 길게 이어졌다. 그 줄 사이로 파란 눈의 서양 승려가 빨간 보자기에 싸인 밥주발을 들고 법당 안에서 도량하고 있었다. 그 밥주발은 손 귀한 아들을 부처님께 팔러 온 어느 중년여인의 발원이었다. 그미는 간절한 동작으로 108배를 하고 있다.

읍내 병원장의 후처인 그 여인은 이미 100일 가까이 기도가 이어져 오고 있어서 법주사 대중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혜운(慧雲)은 관음전 유리창 너머 그미의 가녀린 목덜미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중생들의 목숨 건 발원이 어디 이 여인뿐이랴, 다시 대웅전 지붕 위에 핀 노란 풀꽃을 올려다 보았다.

지난 주보다 잡초 풀꽃이 모두 123개로 늘어났다. 노란꽃 87개, 하얀꼿 21개, 잡색 15개 모두 123개 풀꽃 얼굴들이다. 얼마 전 쏟아진 폭우 덕분에 오랜만에 갈증을 풀었는지 확 한꺼번에 피었다. 그들의 소곤대는 말소리도 들렸다. “용머리 왕좌에 제일 높게 자리 잡았던 왕 민들레 가족들은 독수리봉 산까치를 따라 날아갔대?”

이번 하안거(夏安居)에서 얻은 것이란? 해마다 여름, 겨울 안거를 거른 적이 별로 없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지붕 위의 풀꽃이나, 뒤뜰 장독대 위에 숨어 있는 잔설(殘雪)조각 숫자만 찬찬히 헤아릴 뿐이다. 해제 법문도 벌써 끝났지만, 한나절 이렇게 바위 끝에 앉아서 일어설 줄 몰랐다.

‘고타마 싯달타 설법이란 잿더미 속의 똥 막대기일 뿐이다....스스로 무릎 치지 못하면 ...’ 스승인 통도사 조실의 할! 생각이 나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혜운은 할! 할! 할! 때마다 얻어맞은 등허리 죽비를 생각했다. 그 하안거 반장은 무슨 원수가 졌는지 다른 도반(道伴)들은 놔두고 혜운만 따로 불러내곤 했다.

방장도 아닌 일개 반장이 논산훈련소 내무반 반장같이 거쿨지다. 도량 밖 마루 끝에 무릎 꿇혀 놓고 등허리를 갈겼다. 그 밤나무 몽둥이는 혜운과 몇 명에게 피튀기는 찜질 전용물이었다. 하필이면 밤나무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벼락 맞은 밤나무는 고승들의 할! 신주(神柱)로 쓰인다고 했던가.

저녁 공양까지 잊은 채 위험천만의 벼랑 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다. 잠깐 졸았다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다. 더러 어설픈 초짜 수행자들이 해까닥하여 자살 아닌 자살로 뼈가루를 추려내기도 했다. 뜬금없는 빗줄기가 민머리통을 때리자 혜운은 비로소 어깨를 폈다. 부동의 자세로 굳어진 관절과 등뼈가 시큰하게 저려온다.

선방(禪房) 뒤쪽 연못으로 갔다. 데억진 연꽃 속의 황금빛 금붕어들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게 지느러미 파도치고 있었다. 대낮 법당 뜨락과 같은 야밤의 연못 속 정중동이다. 연꽃 잎, 앞뒤에는 이미 어두움이 엉겨 있었고, 대웅전 한복판을 태극무늬로 휘돌아 흘러나가는 물소리가 귓가를 잡아당겼다. 잦은머리와 휘몰이가 반복되는 판소리로 절규하며 떠내려간다. 봉사 아베 눈 뜨는 심청가 장면 절정 가락이다.

혜운은 날캉, 법매 스님 생각이 났다. 그 물소리는 도반인 법매가 즐겨 뜯는 클래식 기타의 A쎄븐 떨림 같았다. 법매는 이미 하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둘러 요사채로 내려갔다. 역시, 법매는 없었다. 혜운은 걸망을 둘러메고 일주문을 급히 나섰다.

같이 하안거에 동참했던 행자승 몇 명이 일주문에 비친 달그림자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들도 화두에 불면에 화엄에 지금 치를 떨며 환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사문의 승려와 보살들이 저녁공양을 하고 나오며 밤하늘에 대고 무작정 합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무무명’(無無明)... 빛이 없다는 생각 그 자체도 없어야 한다? 사부대중들은 대관절 밤 허공에 대고 뭣을 염원하는 것인가? 이 머꼬? 혜운은 불이문(不二門) 근처에서 법당에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 마지막 합장을 하고 돌아섰다. 깊은 산자락에 덮친 두꺼운 그림자로 인해 사찰 전체가 뜬금없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적막강산이 되었다.

선대고승들의 비석들을 휘휘 돌아 또 하나의 자기 그림자를 따라 층계를 내려섰다.그 노란 풀꽃은 하필이면 썩어가는 지붕 위에서 필게 뭐람, 누가 봐주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여름이면 열심히 피우는 것일까? 풀꽃은 풀꽃대로 잔설은 잔설대로의 자연생태인데 자연은 또 왜 그렇게 열심히 살까?

또한 인간들은 왜 자기 멋대로 의미를 부여할까?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꽃은 피어도 소리치지 않는다. 왜, 왜, 부질없는 짓이다. 금강경에선 결국 키워드가 ‘인생은 결국 허망한 것’이다. 며 이마에 면돗날을 긋는다. 그런데 화엄경에선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정수리를 도끼로 때린다.

결제 때면 혹시나 하는 어떤 기대가 해제 때면 역시나 하는 더 큰 절망만 거듭 안겨준다. 거미줄 같은 기대가 쇠사슬 같은 절망으로 왼 몸을 칭칭 감는 것이다. 우주 같은 허무? 허무 같은 우주? ‘무무명(無無明), 세상에 처음부터 빛이 없었으며, 빛이 없다는 생각조차도 없는 것이다’

이제 결제 같은 것은 다시는 안하리라고 또 다짐해 보지만, 이번 겨울 폭설이 내리면 또 번복하고 말리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현재로서는 결제 이상의 어떤 가학적 구속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법매같이 토굴 속에 마냥 잠겨 있기만은 세월이 아깝다.

사하촌(寺下村) 입구 마을에서 법매를 겨우 만났다. 고목나무 아래에서 스스로 멍 때리고 앉아있는 법매의 모습은 근처의 바윗돌과 같이 견고하면서도 무상한 애상감을 던져준다. 한참만에 시체가 눈을 뜨듯 멀뚱하게 빈 하늘을 훑었다.

「인자, 임자는 워디로 간당가?」

「글쎄, 탁발승이 갈 데가 따로 있능감?」

법매가 한참만에 운을 떼었다. 다시금, 깊은 침묵에 잠겼다.

「글쎄, 자네가 찾으려는 그 생짜 ‘자연음’은 포충망에 잡혔나?」

「참말로, 자네는 그 목불(木佛)을 체포했능가?」

「글쎄세, 이 걸뱅이 짓도 이제 열 손가락 하고 또 시작하는 판 아잉가, 자네나

나나... 손바닥에 잡은 게 머야. 손금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뿐이잖아?」

「안 그런능가? 내사 이제 4차원 신선세계에 입단하는 거 같긴 한데...이자, 그 진실한 자연음이란 외부에서 찾는 기 아이라, 내 내부에서 얻어야 한다는 걸 이번 하안거에서 무릎을 쳤네! 」

「뭔 쌩과부 쏘시지 씹는 소리여? 나한테 사기치는 겨? 」

「그 지극한 지상의 ‘소리’란 실제로 듣는 청각음이 아니고, 내 마음 깊이 숨어 있던 심각음(心覺音)같은 거! 마, 상징음 같은 거라 이기야...암튼 화두를 잡아봐야 안 되것나 잉?」

「대단한 일야, 십여 년 만에 시각에서 청각으로 다시 심각으로까지 도달했응께 말야...대오각성 발전이니?」

「발전이 아니라, 실패일지도 모르능 기라, 성공이니 실패니 카는 것도 머시 성공이야 앵?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이라, 관념, 관념일 뿐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모통이를 접어나오며, 둘은 핏줄 쓰이는 우정으로 서로 눈동자를 눈도끼로 찍어냈다. 10여년 송광사 동안거에서 처음 만난 이후 벌써 열번 이상의 여름과 겨울을 놓쳤다. 삭발 이후, 가장 오랜 도반이지만 실제 같이 지낸 적은 거의 없다.

동-하안거 결제 때나 100일간 한방에 기숙해 보긴 하지만 만나도 별 말이 없었다.단지, 서로 발원하는 대상이 우주적으로 묘하게 일치한다는 데에서 오는 막연한 동질감 같은 거 뿐이다. 혜운이 나무로 된 목각 ‘괴불’(怪佛)을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반면, 법매는 천상의 ‘자연음’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 즉 구상과 추상의 차이일 뿐 어떤 가장 치열한 미학성을 갈구하는 것은 똑같다. 그 지상적인 것이 어떤 해탈이나 열반일지 모르지만 다른 스님과 달리 그 둘은 어떤 ‘추상적 구상’ 이미지에 목숨 걸고 있다.

‘구상적 추상?’ 아직도 수양이 덜된 탓일까. 집착을 갖지 말라고 했는데? 인연을 두지 말라고 했는데? 불립문자(不立文字)! 혜운은 다시 치를 떨며 자괴하는 눈빛으로 법매를 돌아보았다. 4개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싯돌로 튀겼다. 그 때문일까, 법매가 먼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법매는 ‘소리에 소리판’에 신들린 선무당 같다. 그의 손에 무슨 악기든 들려주면 그 악기 자체의 원재료 음을 냈다. 피리든 퉁소나 키타든 그 재질이 소나무면 소나무 소리를, 박달나무면 박달 바람소리를 원음으로 내었다. 그는 이 세상에 없는 소리까지 들려준다. 원래의 생태음으로 가곡에서부터 팝송까지 가살스럽게 불어준다.

달밤에 그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을라치면 발끝이 시리다 못해 환각에 빠진다.나이롱 끈이건 팬티 고무줄이건 그의 손가락 끝에서 튕겨졌다 하면 세상에서 처음듣는 환상의 신비음으로 생산되었다. 혜운이 법매와 같이 행자승으로 전국 사찰을 도량할 때에 그 ‘원래의 생음소리’ 때문에 숙소에서 쫒겨나기도 했다.

요사채에 숨겨져 있는 가야금이나 관광객이 들고 온 키타를 법매가 치면 주지승이나 공양주스님에게 땡초라며 쫓겨나기가 일쑤였다. 법매는 자기가 튕겨내는 그런 생태음도 세속음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이런 혼탁음이 아닌 어떤 지순한 ‘자연음’이 분명 존재해 있을 거라며 온 세상을 헤매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산소리, 바닷소리, 우주의 숨소리, 그 생명음을 채집하러 다니는 것이다. 때로는 티벳 해골 골짜기에서, 때로는 갠지스강 화장터 잿더미에서 퉁소를 불고 있는 장면을 카톡이나 유튜브로 보내기도 했다. 그는 밤 소리, 낮 소리도 구분 할 수 있고, 지하수 물소리, 은하수 별빛 소리도 오선지에 옮겨 보냈다.

환청같이, 환상같기도 하지만 그가 실제로 창조해 내는 오선지 노랫가락을 따라 키타 등으로 쳐보면 뜬금없이 온 몸을 감전시키곤 한다. 섬뜩한 칼날 위에서 춤 추는 무당이 성교하다 울부짖는 절정의 신음소리 같다. 그 누구도 내지 못하는 묘법연화경 염불소리 같기도 하다. 미친놈이다.

신묘한 음계로 안국동 조계사 본사의 큰 스님 염제 때나 국가차원의 문화재 영산회상 행사 때 범패 등에 불려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영산회상 같이 여러 명의 합주에는 전혀 화음이 안 되어 독주만 했다. 요사한 괴음이 섞여 있어서 주위에 있는 고승들이나 보살들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곰보 같은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갈대 잎이나 대나무 잎 등으로 풀피리를 만들어 불면 더욱 절묘했다.

그렇게 그가 한바탕 곱추춤과 함께 풀피리, 퉁소, 통키타 등을 불고 나면 남녀노소 누구나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남자들은 오줌을 싸거나 여자들은 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를 신돈(辛旽) 같은 괴승이라고도 또는 무당땡초라고 멸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절하게 좋아했다. 대개 핸폰으로 녹음하여 밤이면 혼자 틀고 앉아 지랄 발광도 했다.

   
<목불> 표지  

 

2.

혜운은 동네 한복판의 자동차 길을 버리고 길도 없는 산길을 택했다. 날카로운 아카시아 가시와 도둑놈 갈쿠리가 좋았다. 그리고 정적... 이따금 여우와 늑대의 울음소리가 빗기는 중국 신쟝 우루무치 아가들 공동묘지 애장터 같은 깊은 적막이 좋았다. 그냥 이대로 밤새도록 산기슭을 타기로 했다.

이번 법주사 해제 때 법어가 생각난다. ‘절하는 무릎이 얼음과 같더라도 따뜻함을 생각하지 말며, 굶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더라도 밥 생각을 하지 말라. 암굴에 조응하는 메아리로 염불삼고, 슬피우는 뭇 새들의 울음소리로 마음의 벗을 삼을 지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시바하.’ 아, 갈공(喝恐) 스님, 아니 공갈 큰 스님한테 먼저 알현해야제?

벌써, 치매인가, 아니면 해제 전날 바로 이틀 전, 밤나무 몽둥이로 늑사하게 얻어터진 늑골이 아직도 기절해 있었는가?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하나님인 갈공 스님을 깜박 잊고 있었다니? 해제 때면 문안 드리던 통도사 갈공 조실(祖室) 스님에게 일단은 인사를 드려야겠기에 골짜기로 바로 돌아서 내려섰다. 그 조실에겐 거의 십여년 문안 드리지만 늘 똑같은 문답의 반복이다.

「스님 혜운 문안입니다아!」 그것도 대여섯번 반복한 뒤에야, 나즈막히 「진작에 알고 있다. 이 땡초야! 그래 이번 안거에는 뭐 좀 얻었느냐?」

이럴 땐 대답을 안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댓돌 위에 선 채로 몇 시간이고 합장하고 있어야지 눈썹이라도 꿈틀거렸다간 불호령이다.

「네에, 공갈 아니 갈공 큰 스님 아직도 공부가 미진한가 봅니다?」

「일월산의 괴불(怪佛)은 아직도 못 찾았느냐? 」 이 단어만 나오면 불알 끝이 찔금거린다.

「이 땡초야, 이젠 백두대간 쪽을 찾아보거라. 몇 년 저에 돌던 동 서 남 해안선 끄트머리와 뭐가 닿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오너라! 이 새꺄, 어서 꺼져! 」

「네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소승은 물러갑니다아.」

해마다 이런 식의 상면이다. 얼굴 한번 못본 채, 댓돌 위에서 방 안의 할베 조실과 대화이다. 지난 겨울에는 두어 시간씩 떨고 있어야 했다. 꼼짝없이 선 채로 비를 맞을 때는 슬그머니 도망치기도 했다. 발뒤꿈치를 돌리는 순간 몽니가 개새끼! 욕설과 함께 떨어진다. 강아지 훈련도 이 정도는 아니리라.

갈공 스님이 지시하는 대로 서해안, 동해안, 남해안 쪽의 크고 작은 사찰을 다 순례해야 했고, 이제는 지리산 줄기를 타고 소백산맥 등허리를 타는 내륙지방 육지를 돌 차례다. ‘생자필멸(生者必滅) 불생불멸(不生不滅)’ 일진대 난 뭣 하러 태어나서, 쌍욕과 몽둥이 찜질만 반복적으로 당해야 하는가.

혜운은 눈썹 끝에 개새끼, 쌍팔자? 스스로 흔들어 보았다. 10여년 전 햇병아리 수행자 시절, 법매와 같이 갈공 조실에게 문안드릴 때 혜운이 몰래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갈공이 대관절 무슨 태평양 군사령관 같기에 그 많은 스님들이 얼어 있나? 하고 들여다 본 것이다.

“이 새꺄! 좃 까고 싶어 얼릉 드르와!”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창호지 문짝이 날캉 열리며 그 둘의 코 끝을 날렸다. 크윽! ‘등 뒤에도 눈깔이 달렸나? 느기미?’ 같이 도망치면서 법매가 욕을 했다. 그 공갈은 가부좌한 채 문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었는데 어찌 앉은 채로 문짝을 쾅 여닫는가? 느기미!

작년에는 그래도 갈공의 주선으로 혜운은 인도 일대를 순방하고 왔다. 그를 대면하기가 지극히 까다롭기도 했지만 지극히 자상한 면도 있었다.

덕분에 네팔의 오지까지 들어가서 불상순례를 했지만, 역시 그곳에도 혜운이 바라는 괴불은 없었다. 고통스럽게 이그러져 있거나 전혀 엉뚱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생경하고 이질적인 불상들의 이미지만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고 분산되는 눈동자만 가슴 속에 딱총으로 찍혔다.

그런 절망 때문에 조실이 다시 주선한 파리 루불 박물관 탐사 등 포기하고 말았다. 그가 말하는 ‘괴불’의 보물찾기엔 이제 지쳤다. 한국의 동․서․남해안에도 네팔의 석가모니 탄생지에도 없었다. 혜운 자신이 덕수궁 국전 이후, 그렇게도 만나길 원하는 목불이 바로 갈공 조실이 말하는 괴불과 일치할 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이 자꾸 허물어지고 있다. 본국에 없는 목불의 이미지가 외국에 나간다고 있을 턱이 없다.  

덕수궁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국전(國展) 조각전 속에서 혜운은 그 운명적 ‘목불’(木佛)을 만났다. 혜운이 삭발하고 나서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은 부처의 이미지를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국전에서 한번 만났던 것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 목불 자체를 볼 수 없다면 그 비슷한 이미지라도 한번 찾아보자는 것뿐이다. 그냥 그것 뿐이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종교적 의미나 존재론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이 머꼬? 하는 어떤 실마리가 그로 인해서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숨 쉬고 있는가? 하는 의문의 실타래가 단박 풀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의미를 어려운 데서 풀지 말라. 순간적이지만 충격적인 그 이미지에서 어떤 대오각성이 터질 것이다. 갈공의 조용한 법어도 생각난다. 혜운은 실존 자체의 어떤 비의(秘意)같은 것에 눈도끼가 찍히면 정말 무릎을 칠 것 같다. 우선은 그런 기대로 숨 쉬고 있다.

덕수궁 국전 당시에 보았을 때는 별로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 우연히 보았던 그 목불에 대한 집념이 이상하게 독버섯마냥 뻗어나더니 암세포 같이 혜운의 뇌수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두대의 이슬을 생각하며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닫다가 한밤 중 잠이 깬 사형수는 달빛의 소리를 처음 깨달았다는 어느 조폭 사형수의 일기도 생각났다.

그날 혜운은 홀어머니와 가을 국전을 더듬고 있었다. 대학강사인 어머니는 5십 줄을 넘어섰는데도 늘 소녀와 같은 감상과 감각을 갖고 있었다. 국전뿐이 아니다. 음악회나 발레 심지어 최신 째즈 쇼 같은 것도 일부러 보여주었다. 당시 혜운의 애인도 같이 동반해 주었다.

6․25때 경찰인 남편을 일찌감치 여읜 어머니는 남은 혼자만의 여생 시간을 그렇게 잘게 쪼개어 즐겼다. 그날따라 약속시간이 두 시간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는 애인을 포기하고 혜운은 어머니와 단둘이 토요일 오후 덕수궁 분위기에 취했다. 어머니는 추상회화 쪽을 주로 감상했고, 혜운은 조각들의 숲에서 존재론적 이미지들을 찾았다.

해마다 비슷한 조형과 색(色), 선(線), 형(形) 등에 짜증이 났지만 일부 작품은 구상과 제목이 대담하고 반어적 실험성이 강한 것도 있었다. 소재나 이미지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크기만한 추상, 반추상의 목각들 속에서 뜻밖의 반팔 크기 입상(立像) 목불(木佛)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그곳을 두어 번 반복했던 걸음 끝에 눈에 띄었을 정도로 별로 주목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단박 발걸음을 옮기기에는 무엇인가 아련한 호소력이 발뒤꿈치를 잡아끌었다. 뒤돌아와 다시 자세히 뜯어보아도 그렇게 정치(情致)하다거나 예민하지 못했다. 여름 장마철엔가 언뜻 얼굴을 내밀다가 가없이 허물어지는 구름 같은 이미지의 불상(佛相)이었지만 전체적인 영감이 강렬하고 날카로왔다.

그러나 그뿐, 어머니와 다시 대한문(大漢門)을 나서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후, 재수 때 학원 강의실 책상 앞에서 졸 때면 그 이미지가 선뜻 나타나곤 했지만 의식화까지는 못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원하던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합격하고 본관 앞 캠퍼스 잔디밭에서 뒹굴기 시작하던 6월 언젠가부터 그 목불의 이미지가 집요하게 뒤통수를 다시 공중 폭격기로 출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석조관 앞 한복판에 서 있는 청동입불상(靑銅立佛像) 부처의 깊은 음영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른한 오후 게으른 낮잠 속에서 청동 부처는 이따금 핵 미사일로 법문을 했다. 무슨 방언인지 산스크리스트어 원어인지 묘법연화경 귀절을 목탁소리를 배경으로 때렸다.

아아, 덕수궁 목불! 한쪽 귀가 잘려나간 괴불? ‘신랑의 미소’ 기왓장 절반이 잔인하게 잘려나간 나무조각상이다. 강의실을 나들명거릴 때마다 청동입불상 앞을 지나치려면 벼락이 떨어졌다. 이 머꼬? 귀창이 짖어질 정도로 칼질을 해댔다. 목을 조이는 답답함과 갈증이다.

그렇다고 목불을 찾기 위해 중(僧)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어머니는 혜운에게 무슨 귀신 눈알이 씌었느냐며 무당까지 불렀다. ‘그런 쇠꼬리 고집불통은 어찌 네 아버지를 꼭 닮아 결국 자식까지 나를 버리느냐’고 어머니는 몇 번 기절도 했지만, 혜운은 결국 산 속으로 뒷걸음 쳐 버리고 말았다.

6.25 때, 의정부 미군 후송변원에서 한쪽 팔을 갈쿠리로 대신하고 나온 아버지는 또 다시, 자원 입대하여 설악산 공비토벌에 나선 것이다. 당시 설악지구 경찰경비대 대장이었던 아버지는 의병 전역임데도 불구하고 퇴원하자 곧바로 백의종군하겠다며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붕대로 칭칭 감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오색약수터 골짜기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남편의 목숨을 건 조국애를 사랑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수절할 수 있었고, 유복자인 혜운을 위해서도 평생을 바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까지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남편의 뼛가루는 동해안 백두대간 태백산 꼭지에 묻었단다.

혜운은 어쩌면 이번 해제 문안 걸음이 갈공 조실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조여왔다. 지난 겨울 동안거 해제 때 뵈올 때는 그 쩡쩡하던 평소의 몸집이 지푸라기처럼 무너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번 넘어진 황소마냥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3.

요요한 달빛과 황황한 산 속, 새벽공기와 이슬로 몸과 맘을 씻어내며 팔공산 계곡 쪽으로 내려섰다. 멀리 새벽 첫 버스가 졸면서 다가왔다. 눈 못 뜬 새끼 강아지 같이 버스 안내양은 졸고 있고, 운전기사는 줄담배로 졸음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피해 뒤로 갔다. 절망을 선반에 얹고, 눈썹 아래까지 내려 쓴 밀짚모자를 벗었다.

「어머? 혜운스님 아니세요? 아니이, 이런 데서 만나다니... 아까 손을 들어 버스를 세울 때부터 어쩐지 어깨짓이 낯익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혜운이 천천히 옆 좌석을 돌아다 봤을 때는 백합 같이 창백한 웃음이 환하게 다가왔다. 그 눈꼬리 끝에 연결되는 것은 ‘새미’ 라는 오랜 이름이다. 시커먼 토굴 속에 개똥참외같이 노오란 영양실조의 소녀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버스가 막다른 그 마을로 들어가는 노선이란 생각이 얼른 스쳤다. 행길 반대편에서 타야 하는 걸 깜박 잊었다.

「아니, 새미 보살 어쩐 일이세요?」

「보살이 아니라 숙녀아잉교, 나까지 처녀귀신 만들끼라요? 내사 어제 밤에 기차타고, 오늘 아침에 이 버스를 탔다 아이라예? 이거 아부지 약이라예...」

「아참, 달노인께선 편찮으시단 말 들었습니다만 요 몇 년째 못 가 뵈었군요. 그래 좀 어떻습니까?」

「글씨로 아부지는요? 정신이 사는 건지 혼령이 사는 건지 모르것다 안 카요. 맹물만 생키고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누워 있다가도 펄떡 일어나 또 칼질을 안 하능교. 무시라이...」

해안선을 따라 전국 사찰순례를 하던 어느 해인가, 산세가 유난히 돋보이던 지리산 쪽에서 몽유병자마냥 헤매던 적이 있었다. 산 새와 산 꽃에 취하여 저녁 해를 놓쳤다. 애장터 속을 뒤지다가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서야 밤이란 걸 알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닫다가 오한과 공복이 엄습했다. 그 불빛에 자석 끌리듯 다가가 보니 암자 같은 토굴이었다. 낮이었다면 발견되지도 못할 오두막인데 야밤의 광솔불 때문에 발각이 된 것 같다.  

이튿날 아침 공양시간에 습관적으로 눈이 떠졌다. 질척하고 냄새 나는 토굴 밖으로 나오니 나무조각 파편들이 어지럽게 동산을 이루고 있다. 나무결을 보니 참나무, 향나무, 오동나무 들이었다. 새벽 잔별 빛을 모아 오솔길을 따라 나섰다. 그 길목 끝은 낭떠러지였고 아침안개가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토굴 뒤로 해서 올라갔다. 고개를 하나 넘자 어린애들의 돌무덤들이 재잘거리며 누워있었고, 그중에는 여우와 늑대들에게 파헤쳐져서 찢기워진 어린애 시체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어젯밤 폭우로 하얗게 씻기워진 뼈다귀들이었다. 공동묘지 한복판으로 해서 산중턱에 올랐다. 어디선가 폭포수 소리가 가슴 속을 냉갈령하게 씻어 내렸다.

혜운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던 바위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화엄경’을 소리쳤다. 신비하면서도 음습한 분위기가 가슴 속으로 뱀 또아리 틀 듯 파고든다. 반나절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다시 토굴로 돌아왔다. 나무조각 더미 위에 앉아있던 소녀가 혜운을 보자 손을 덥썩 잡고 토굴 안으로 끌었다.

「스님요, 공양 안 하능교? 울메나 기댜렸는디요...여게선 사람이 되기 그리운기라예...」

토굴 맨 안쪽 벽에는 촛불이 가물거렸고, 이끼같이 배인 향 냄새 뒤로 개금을 한 불상이 노려보고 있었다. 암자라기보다 폐광 같은 암울한 공기가 어떤 살기마저 띠었다. 미완성 목불상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어지러웠고, 크고 작은 조각칼들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개미굴같이 뚫려있는 방 가운데 맨 안쪽에는 어느 백발노인이 등을 돌린 채 밤나무를 조각칼로 뜯어내고 있었다. ‘울 아부지 아잉교!’ 그 소녀가 울가망하게 말하며 아버지를 몇 번이나 불렸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통나무만 밀가루 반죽하듯 열중하고 있었다. 거의 어둠 속인데 관솔불이 불상(佛相)의 개금에 반사되어 칼날에 섬광을 일으켰다. 도깨비 놀음 같은 반사광이 벽을 난자하게 어지럽혔다.

「울 아베는 언캉 안 저렇능교, 몇 달 가도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있능기라예, 무시라...」

그 소녀가 약5년전 처음 만난 새미였다. 나는 무엇인가 강렬한 호기심에 끌려 며칠을 그 토굴에서 묵기로 했다. 걸망을 불상 옆에 밀어놓고 우선 부삽과 곡괭이를 들고 애장터로 갔다. 파헤쳐진 돌무덤을 원상대로 다스려 주었다. 곧 끝날 것 같은 애장터 작업이 며칠 걸렸다. 돌밭이라 어렵고 힘들었다.

거의 일주일 남짓 되도록 달 노인을 정면으로 만나지 못했다. 벼랑 위에 위태롭게 뚫려있는 토굴엔 길 잃은 산바람이나 몰려다니는 낙엽들이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이따금 겨우살이에 쫓긴 산토끼나 다람쥐들이 스며들기도 하고, 밤이면 야수들이 토굴입구를 어정거리며 울부짖기도 했다.

혜운은 산 속의 칡이나 열매를 따다 새미에게 주기도 하며, 토굴의 겨우살이 준비를 거들어 주었다. 새미는 경계하면서도 몹시 따랐다. 혜운이 벼랑에서 염불하거나 폭포수에서 목욕할 때면 느닷없이 나타나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도망치기도 했다. 같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새미는 토굴생활의 신비를 하나씩 벗겨가며 옛날얘기를 해주었다.

처음 산에 들어와서는 화전민 같이 옥수수를 비롯하여 고추, 참깨, 고구마 등 오밀조밀 엮어서 자급자족 했단다. 일부는 달 노인 마을에 내려가서 곡식이나 소금 등 일용품과 바꿔오기도 했다. 산새 울음소리며 풀꽃, 여우 얘기 그리고 어머니 얘기도 늘어놓았다.

산자락을 휘감고 넘어가는 애장터 돌무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토굴입구의 찬바람이 마음에 걸렸다. 겨울나기 대비는커녕 식량준비도 속수무책이다. 예전 같으면 달 노인이 달랑 마을에 내려가 필요한 곡식이며 소금 성냥 등을 준비하는데 작년 겨울부터는 거동에 불편하여 그만큼 늦어진단다. 이제 목불상 조각일만 겨우 지탱하는 정도라고 했다.

새미는 도망간 어머니 얘기를 할 땐 눈물 같은 걸 적셔내기도 했다. 찢어지는 가난과 아버지의 고집으로 어머니는 3번째 가출을 했고, 4번째 나간 이후는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단다. 한때 짐승의 젖이며 동네 아주머니의 동냥젖도 얻어먹었던 새미의 오빠는 5살 때 애장터에 묻혔다.

부산으로 다시 나가자는 어머니의 주장을 아버지가 고집으로 맞서자 어머니는 결국 가출했단다. 어머니도 부산 동아대 동양화과 출신이란다. 새미는 아버지의 영혼이 배여 있는 그 조각들을 어머니가 파는 걸 보지 못했다. 아들이 병 들었는데도 시내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빠의 영혼을 팔 수는 없다고 했다.

이따금 안국동 화랑 주인들이나 화가 스님들이 찾아와선 푼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혜운은 우선 이 가을 추수라도 해주고 떠나자면 여기저기 일궈 놓은 콩, 고추, 고구마 등을 거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렀다. 새미와 출세간에 묘한 인연의 업보 같은 걸 헤아려 보다가 혜운은 머릴 저었다.

한밤 중 달만 뜨면 미친 듯이 나무를 파내는 달 노인의 모습이 거통스럽다. 달빛을 등지고 능엄경을 읊조리며 나무를 떡 주무르듯 하는 그의 모습 자체가 하나의 조각 같았다. 거문고 타는 듯이 물결쳐 나가는 그의 손끝에서 불사출의 음양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 불상이 바닷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듯 황금빛으로 내비쳤다. 그것은 그가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파도가 요동치면서 자연스럽게 불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달 노인의 작업이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밤낮으로 몰두하기도 하고, 또는 계속 며칠을 눈 한번 안 뜨고 잠에 빠지기도 하고, 모가지만 내놓은 채 계곡 물 속에서 그대로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울 때도 있었다.

초인인지 귀신인지. 어쨌든 미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겠다. 혜운이 양잿물에 염의(染衣)를 빨고 있는데 달 노인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세탁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달 노인이 앞장서 나갔다. 처음으로 그의 비밀한 작업실로 안내했다. 지나면서 훔쳐보던 그 작업실 안쪽에는 또 조그만 토방이 있었다.

그 아뜨리에에는 크고 작은 불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입상, 좌상, 와상 또는 웃는 모습, 찡그린 모습 등의 불상들이 많았다. 불상 외에 독수리, 호랑이, 늑대 등 야생 동물들도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느린 그의 동작 속엔 격렬한 몸부림 같은 게 흘렀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초극같은 거?

그의 미쳐 있는 눈빛에 혜운은 어떤 전율을 감전 받으며 불상들을 찬찬히 훑어나갔다. 맨 안쪽 구석에 얼굴이 반쯤 잘려나간 목불을 발견했다. 아아,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덕수궁 국전에서 보았던 그 목불이다! 기절할 것 같은 충격을 참아내며 등 뒤에 있는 달 노인에게 눈으로 물었다.

그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꺼억!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더니 가지라고 손짓했다. 그 목불을 가지고 토굴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갑자기 천근무게로 압박되어 도저히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겨우 제자리에 놓고서야 발뒤꿈치가 띄어졌다. 이상한 일이다. 목불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다니?

혜운은 식은땀을 훔쳐내며 달 노인의 뒤를 다시 따라나갔다. 멀리 간절곶이 보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혜운은 달노인과 오랜만에 다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농주병을 달게 비워가며 달 노인은 엉뚱한 심청가 창(唱)을 읊었다. 별빛 사이로 핏덩이가 흘러나오듯 응어리진 한 같은 것이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왔다.

달 노인은 자기의 무엇인가를 절규하며 몸부림쳤다. 도망간 아내에 대한 한일까, 시집 못 간 새미에 대한 한일까. 세상 사는 게 어디 한이 한 두 가지이겠는가. 더구나 예술에 미친 사람들은 마네 같이 모두가 자기 귀를 도끼로 찍어내고 싶을 것이다.

「혜운 스님이 찾아다니는 그 불상이란? 그냥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또 설사 그 괴불을 만난다 해도 또 그 이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글쎄요? 그 다음은 생각해보지 않았군요? 전 그냥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

「스님! 이 순간 그냥 만났다! 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옛날 덕수궁 국전에서 보았

던 그 불상을 지금 이 순간에 여기서 이렇게 보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그 괴

불이 분명히 여기 놓여 있지 않습니까?」

혜운은 하늘 끝을올려보았다.

「내 얼굴을, 내 눈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십시요. 대관절 당신은 무엇을 찾고,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세상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목불도 한낱 이미지이지요. 돌아서면 인생 자체가 그림자 아닌가요?」

 

4.

그날 밤, 혜운은 반쪽이 날라간 목불이 언뜻 표범이 되어 자기의 얼굴을 물어뜯는 악몽에 시달렸다. 동이 트자마자 혜운은 걸망을 찾아매고 도망치듯 그 토굴을 빠져 나왔다. 그런 지 거의 오륙 년쯤 되었을까, 다시 새미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때의 소녀가 지금은 숙녀로 싱싱한 물이 올라있다.

첫 번째의 인연과 같이 이번의 해후도 다소 엉뚱하다. 우연이 필연이고 필연이 우연 아닌가. 태어나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고, 죽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차를 이쪽에서 타든 건너편에서 타든 한 바퀴 돌아오는 원점은 같은 것이다. 동서남 해안의 끄트머리는 어디에 닿는가 태백산 꼭대기인가?

갈공 큰 스님이 내준 보물찾기는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갈공한테 해제 문안 드리러 가는 길에 엉뚱한 곳에 잡힌 셈이다. 우연히 새미를 만난 게 아니고 이미 새미가 혜운의 법주사 하안거 해제 일에 맞추어 와서 몰래 뒤를 따라온 것이다.

「아부지요. 지가 안 왔능겨, 퍼떡 일어나 보이소. 혜운 스님도 안 왔능겨?」

새미가 토굴에 들어서자마자 작업실로 달려갔다. 반듯이 누워 천장을 노려 보고 있는 달노인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눈꺼풀이 푹 내려앉은 달 노인을 내려다 보고 있던 혜운은 합장을 했다. 곧 열반에 들 것 같은 해골이었다. 애장터 옆에다 다비식 준비라도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달 노인은 그렇게 쉽사리 숨 넘어가진 않았다.

새미가 얻어온 한약 뿌리 때문인지 조금씩 화색이 돌더니 사흘만에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어디서 그런 철사줄 같은 힘줄이 뻗어나간 것일까? 달 노인은 목불 작업장을 아예 야외로 옮겼다. 폭포수 옆 절벽 밑은 평소 그가 폭주에 폭음에 폭소에 스스로 기절하곤 하던 곳이다.

새미가 가리켜주는 바위굴 속에서 혜운은 밤나무 박달나무, 오동나무 등을 그 폭포수 절벽 밑 작업장으로 옮겨주었다. 그 속에 재여 있는 나무들은 간절곶 앞 바다 물속에서 3년을 재웠다가, 다시 햇볕에 말리기를 3년 그리고 이 바위굴 속에서 3년 도합 9년을 재이면서 달 노인이 하나씩 꺼내 쓴다고 했다.

달 노인은 새미의 눈물 섞인 깨죽이나 밤죽도 날캉 물리치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정하수만 받아 마시며 작업에 열중했다. 벼랑 끝 위험천만의 바위 위에서 가부좌한 채 명상에 잠겨있다간 미친 듯 나무를 파내곤 했다. 불안했지만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염원하던 불상을 남기려고 용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혜운은 새미의 손목을 이끌고 애장터를 올라가 손질해 주었다. 새미의 동생 5살짜리 무덤에 법주사 대웅정 지붕 위에 피던 노란 풀꽃들도 꺾어다 심어주었다. 산 속의 일이 끝나면 달 노인의 작업장을 멀리 들렀다가 내려오곤 했다.

혹시 시체로 드러누워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깡술에 취해 있을 때는 몰래 숨어들어가 작업진행 상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무엇이 그에게 죽음 이상의 혼불을 지펴놓는 것일까, 마지막 피맺힌 이슬 한 방울이라도 아껴 열중하고 있는 그의 불상조각들을 돌아볼 적마다 나는 왜 내가 직접 조각하는 것마냥 이렇게 흔들리고 있을까?

괜히 새미를 따라 온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덕수궁 목불상 이후, 뼛속으로 스미는 전율 같은 것, 황혼 대 낮과 밤의 갈림길에서 던져주는 환희와 환멸과 법열이 춤추는 관솔불과 향 내음이 함께 악패듯 살아나온다.

「스님! 무엇을 그렇게 들여다 보십니까? 아무리 찾아도 그 속에는 괴불이 없습니다. 괴불은 어디에도 없고 스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네에? 나는 중이 아니고 땡초일 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스님! 나는 당신이 통도사 갈공 조실의 수좌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네에? 혜운은 자칫 헝클어지는 실타래 같은 낭패감으로 달 노인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그 목불상이 덕수궁 국전에 입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썩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금상에 자만했습니다. 대작을 꿈꾸고 주위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내도 아들까지도... 나는 한국 최고의 조각가, 목불 무형문화재 승계자로 꼭 될 수 있을 것이란 거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시간도 예술도 인간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 이 작품도 제가 이제껏 보아 온 보물들 가운데 가장 생명감 있는 대작입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도 샐패작입니다. 벌써 며칠 전부터 부정 타고 있습니다. 일전에 스님이 보신 그 반쪽 목불상이 바로 덕수궁 국전의 내 입상작이었습니다.」

먹구름 속의 그믐달이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달 노인의 낮은 음성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눈동자에서 소리 없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도 한때 통도사 조실에게서 시퍼런 삭발도 하고 불침도 받으며 용맹정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세상 인연이 뜨거워선지 실패했습니다. 조각쟁이로서 진실한 부처상(佛相)을 찾아 전국 절간을 찾았지만 결국 맨 처음 떠났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나와 비숫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네에 나도 한때 탱화와 전각에 좀 미쳐서 인도철학과를 다녔지만 쳤지만 지금은 다 버리고 그저 땡초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의 눈썹만 꿈틀거려도 척 압니다! 여기는 혜운 스님 외에도 서울에서 모모한 미대 교수들이 몰려오곤 합니다. 그리곤 여기 이미지들을 훔쳐다가 국전에 비슷하게 내밀곤하지요… 우습지요. 인간의 욕망이란게.」

새미가 칙 즑을 짜낸 한약을 즤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나, 스님, 나는 이제 한계점으로 주저 앉았습니다. 어떤 진상(眞像) 이미지를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끼로 찍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남아있는 그 반쪽이 오히려 시퍼렇게 살아서 나를 계속 몰아부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통도사 갈공 조실의 오도송(悟道頌)이 바람결에 들리는 것 같다. ‘보현보살 털구멍 속으로 깊이 들어가 문수보살을 붙잡아 패배시키니 대지가 한가하더라, 동지에 볕이 나니 소나무는 스스로 푸르고 석인(石人)은 학을 타고 청산을 지나가네.’

이제서야 까마득하던 그 의미를 조금 인지할 것도 같다. 혜운은 다시 합장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그런 일이 있는 후 며칠이 지났다. 새벽 공양을 위해 새미를 앞세우고 폭포수 절벽에 갔던 혜운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달 노인이 평소의 가부좌 자세로 열반에 든 것이다.

가벼운 사람가죽 타는 비릿한 기름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달 노인은 나무에 기름을 먹일 때 쓰는 기름통을 머리끝에서부터 거꾸로 붓고 스스로 관솔불을 당긴 것이다. 새미는 이미 예견한듯이 흐트러짐이 없이 등신불(等身佛) 아버지 앞에 합장을 했다.

달 노인의 육신은 쇠붙이 같은 기름 덩어리로 남았다. 신라 왕자가 중국 산동성에 등신불 지장보살로 남아있다. 근처 폭포수 바위에는 달 노인의 혈서도 빨간 구렁이 같이 살아서 기어가고 있었다. ‘木佛不渡火 土佛不渡水 金佛不渡爐’ 가소롭다. (木佛은 불에 갈 수 없고, 土佛은 물에 갈 수 없으며, 金佛은 용광로에 갈 수 없으니...)

결국, 나무는 불에 타고, 흙은 물에 무너지고, 쇠붙이는 용광로에 녹아버리고 마는 게 아닌가. 뒤돌아서면 그냥 한낱 그림자에 불과한 걸… 무엇을 바라고 목숨을 걸고 욕망을 헛되이 해왔는가. 혜운은 등신불 달 노인 앞에 꿇어 앉았던 무릎을 폈다. 먹구름이 다시 하늘을 가렸다.

--- 내가 그렇게 찾으려던 목불이란 바로 달 노인의 그 반쪽이었구나. 목불을, 목숨을 밖에서 찾는 게 아니고, 바로 내 마음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을! 아니, 그 이미지를 마음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을! 영원한 목불이란 없다. 세상 모든 게 사물이 아니고 정신이 아닌가?

혜운은 달 노인의 다비식을 끝낸 다음 애장터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갈공 조실이 몰아부친 ‘괴불’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정수리가 번쩍 번개를 쳤다. 아찔하다. 때마침 쏟아지는 폭우로 달 노인의 육신과 목불상과 혈서는 냉갈령하게 씻겨져 골짜기 폭포수와 함께 떠내려갔다.

혜운의 마음 속엔 오히려 달 노인의 혼령이, 진언(眞言)이, 깨달음이 시퍼렇게 살아서 배꼽에 꿈틀거렸다. 혜안(慧眼)이 뻥 뚫렸다. 새벽 별, 이슬 같은 삽상함이다. 다음 날, 혜운은 걸망을 메고 토굴 앞에 섰다. 새미가 따라 나왔다.

「혜운 스님, 이제 저도 머리를 깎고 다시 통도사 뒤 가사암(袈裟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용맹정진 후, 돌아와 아버지의 흔적을 제가 다시 일으켜 볼 생각이에요. 이 토굴을 지키고 싶어요. 아프리카 수단에서 아직도 그림 그리고 있는 엄니도 모시고 올 거예요. 」

혜운 스님은 골짜기를 내려가는 새미의 걸망 뒤를 한참 내려다 보았다. 아, 맞았어!

내가 목숨 걸고 찾았던 ‘목불’은 바로 달 노인의 얼굴이었어! 아니 내 마음이었어! 혜

운은 무릎을 쳤다. 모든 게 공(空)이 아닌가?

목불이란 허상도, 달 노인이란 실상도 뒤돌아 서면 한낱 ‘그림자’이다. 새미의 흔들

며 내려가는 크나큰 엉덩이를 보고 대오각성하다니? 통도사 갈공 조실에게 이번에는 무엇이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까? 어금니 새로 웃음이 삐져나와다.

(끝)   

 

신상성 소설의 특징과 개요 

 

1. 신상성의 <목불>(木佛) 스토리 텔링

한국에서 최고의 스테디 셀러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다. 현재 약190회 재판을 거듭하고 있다. 소외된 약자를 대변하는 단편들을 모았다. 우리 사회 ‘을’의 고통과 고난을 영화장면 보듯 고발하였다. ‘갑’질의 칼질에 분노와 절망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소설집이 이번에 나온 신상성의 <목불>이다. 한 젊은 승려 ‘법매’의 처절한 고행길을 뒤좇아 가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주인공은 대중 속에서 서민들 틈에 끼어 고통을 같이 한다. 어쩌면 혼자 몸이기 때문에 더 처절한 세상의 창 끝, 칼 끝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낸다. 아니 일부러 그런 불 속에 뛰어들어 복싱선수로 링 위에 올라가기까지 한다.

법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눈동자를’ 찾아 전국을 방랑한다. 그것은 국전에서 처음 부딪힌 그 ‘목불’(木佛)과 같은 눈동자를 찾는 수행과정이다. 스승의 하명에 의해 수행승으로 진실된 눈동자를 찾아 만행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부처님 같은 진실한 눈동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법매는 WBA 세계 복싱 챔피언 대회에서 상대선수를 KO 시켜 결국 죽이게 된다. 허가받은 살인이다. 깊은 번뇌에 빠져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찾기는커녕 오히려, 세계 유명 복서가 되어 살인자까지 하게 되었다. 양산 통도사 조실 스님의 낮고 낮은 목소리가 솔바람 소리로 외마디 장단을 친다.  

… 독사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막는 것같이 분노의 불길을 잡아라! 잡아버린 사람만이 모든 집착에서 멀리 떠날 수 있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혼자 가거라!... 

 

2. 신상성 소설의 특징

작가 신상성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 당선(1979년) 이후, 약4십년간 평생 낙서를 해오면서 약7십여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비평가들은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는 혹평 아니면 희귀 문제작이라는 깃발을 올렸다. 늘 양극단으로 치고받았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어떤 유형이나 유행을 초월하는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홍기삼(전 동국대 총장)은 <처용의 웃음소리> 서평에서 “신상성 소설은 그 내용보다도 형식에 있어서 종종 예외적 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대체 그의 소설 분위기와 크게 일치하거나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냥그 대로 다만 ‘신상성의 소설’이라는 그런 느낌만을 남긴다. 어떤 작가의 영향권에 있다거나 유행성 감각이 강하다거나 하는 종류의 무수한 소설들과 그런 점에서 단연 구별된다.”(198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3. 작가의 근황

지금도 신상성은 외롭다.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에서는 우파든, 좌파든 어느 정권이든 그를 따돌렸다. 오히려, 그것이 작가의 길이라며 본인은 호탕하게 웃는다. 문학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초월해야 하며 거기에 아부해서는 안된다. 우주적 세계성 보편성을 가지려면 외톨이가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가 뒤늦게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부시절 스승인 조연현 한양대 교수(당시 한국문협 이사장)를 다시 재회한다. 그의 수제자였던 신상성의 첫 소설집 <처용의 웃음소리>(동호서관 1981)에 그 스승은 다음과 같이 대뜸 머리말을 휘갈겼다.

신군의 석사학위 논문이 ‘우리나라 중편소설의 구조적 연구’였는데 학위를 받은 다음 여기에 관한 평론을 다시 나에게 가져왔다.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이어서 내가 [현대문학]에 발표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신군은 작가에의 길과, 평론가에의 길과, 학자에의 길, 세가지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자기 가슴을 가리키면서 소리친다. 아직도 자기 가슴에는 뻥 뚫린 바람소리만 들린다며 웃는다.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세상은, 사기와 배신의 악성무좀으로 까맣게 덮혀 있다. 사악한 자들은 회전문 같은 권력과 금력을 회전문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죄값을 받아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선한자들이 피눈물로 생을 마감해선 안 된다. 그래서 여기 <목불>에서는 인과응보적인 통쾌한 보복 그리고 근원적 인간성 회복을 제시해 보았다.”

이제 세상을 놓아버리자고 해도 놓아지지 않는다. 좀비 같은 욕심 때문일까. 작가는 예외적으로 온. 오프라인 두 개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평생 용인대 등 교육계에 있으면서 오랜 꿈이었다. 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두 번이나 배신과 강탈로 학교를 강탈 당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홍제동의 ‘서울문예디지털대학’과 먼 나라 남태평양 피지(Fiji)에 세운 ‘수바외대’ 각각 두 개 대학의 이사장이자 초대 총장이었다. 인간과 사회와 세상에 대한 처절한 분노 혐오 절망을 망치질 당했다. 그러나 그는 두 손을 높이 쳐들며 자기자신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고 했다.

“아, 인두불로 내 온 몸을 지져대는 고통을 받아왔다. 이제 나도 니체 같은 철학가 또는 또스토옙스키 같은 문학가 흉내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을까?‘ 그는 프로이트, 라깡, 들뢰즈의 한숨 소리가 한강 양수리 남북 물결이 부딪치며 내는 함성소리를 흉내내며 1십여년만에 또 하나의 ‘절망노트’ <목불>을 내놓았다. 이게 뒤늦게 제55회 ‘한국문학상’을 움켜쥐게 된 것이다. (끝)

 

* 신상성 작가노트  

솔바람 소리는 사철마다 색깔과 냄새가 달랐다. 계절마다 다른 악보였고 아침 저녁으로도 달랐다. 특히 한밤 중 대자연 속에서 듣는 음정은 그대로 부처에 이르는 최상의 선(禪)이었다. 많은 제자 가운데 가섭(迦葉)만이 부처님이 치켜든 연꽃의 의미를 말없이 깨닫듯이, 우주가 고이 잠든 적막은 무상계, 무무명(無無明)의 낱말이 면돗날로 귀를 자른다. 양산 통도사 조실 스님의 낮고 낮은 목소리가 솔바람 소리로 외마디 장단을 친다.

… 독사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막는 것같이 분노의 불길을 잡아버린 사람은 이 모든 집착에서 멀리 떠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리, 혼자 가라….

평생 낙서를 해오고 있지만 가슴에는 뻥 뚫린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제 세상을 놓아버리자고 해도 놓아지지 않는다. 좀비 같은 욕심 때문이다. 특히 온- 오프라인 두 개 대학을 설립했지만 하나같이 강탈 당했다. 그것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서울문예디지털대학과 먼 나라 남태평양 피지(Fiji)에 세운 ‘수바외대’이다.

세상의 배신과 분노, 철학가들은 거기에 절망하면서 불면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푸로이트, 라깡, 들뢰즈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또 하나의 ‘절망노트’<목불>을 오랜만에 내놓는다.  

* 신상성 작가연보 

1. (수필집) [계절을 앓는 흰칼라], 동호서관, 1979.12. pp.292.

2. (제1소설집)[처용의 웃음소리], 동호서관, 1981.12. pp.275.

3. (평론집) [한국명작의 영원한 향기], 동호서관, 1982.06. pp.229.

4. (평론집) [한국문학의 공간구조], 형설출판사, 1986.03. pp.430.

5. (제2소설집)[늑대를 기다립니다], 경운출판사, 1987.05. pp.317.

6. (평론집) [한국 근대소설론], 경운출판사, 1987.08. pp.250.

7. (시집)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경운출판사, 1988.02. pp.113.

8. (평론집) [한국소설사의 재인식], 경운출판사, 1988.03. pp.552.

9. (평론집) [문학의 이해], 경운출판사, 1988.03. pp.437.

10. (편저) [국어국문학 총자료집], 경운출판사, 1988.05. pp.250.  

11. (공저) [한국태권도사], 경운출판사, 1988.08. pp.432.

12. (공저) [논문작성법], 경운출판사, 1989.09. pp.328.

13. (제3소설집)[행촌동 패랭이 꽃] 경운출판사, 1990.01. pp.351.

14. (중편소설집)[목숨의 끝], 고려원, 1990.02. pp.155.

15. (평론집) [김남천연구(2권)], 경운출판사, 1990.05. pp.(각)553.

16. (장편소설) [늑대와 달빛], 성현출판사, 1991.01. pp.209.

17. (수필집)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경운출판사, 1992.01. pp.285.

18. (편저) [문학과 인생], 대한체대, 1992.02. pp.422.

19. (편저) [문장과 언어], 대한체대, 1992.02. pp.242.

20. (평론집) [한국가족사소설연구], 경운출판사, 1992.03. pp.269.  

21. (수필집) [잠자는 사자의 콧수염], 경운출판사, 1992.05. pp.286.

22. (편저) [스포츠와 비평(2권)], 대한체대, 1992.07. pp.(각)227.

23. (韓譯) [여행건강 기공술], 아사달의 꽃, 1992.11. pp.190.

24. (편저) [한국 단편명작선(3권)], 아사달의 꽃, 1993.02. pp.(각)410.

25. (시집/공저) [모닥불], 자유지성사, 1993.04. pp.136.

26. (평론집) [한국통일문학사론], 아사달의 꽃, 1993.08. pp.662.

27. (편저) [스포츠미학론], 가람출판사, 1993.09. pp.333.

28. (저서) [소설창작론], 아사달의 꽃, 1993.10. pp.366.

29. (장편소설) [나무보다 태양을 향한화살], 술래출판사, 1993.10. pp.350.

30. (中譯) [한국태권도사], 중국청뚜과기대, 1994.04. pp.115.  

31. (편저) [세계명작 읽기], 아사달의 꽃, 1994.04. pp.402.

32. (제4소설집)[거북이는 토끼와 경주-]. 명동비지니스, 1997.12. pp.319.

33. (중편소설)[멀리서 만나는 평행선], 태학사, 1998.11. pp.486.

34. (저서) [글쓰기 어떻게 할까], 태학사, 1999.03. pp.323.

36. (저서) [문예창작입문], 태학사, 1999.04. pp.886.

37. (공저) [북한소설의 이해], 두남출판사, 2001.06. pp.252.

38. (저서) [세계문화유산답사기], 두남출판사, 2001.11. pp.308 .

39. (英韓譯) [가난한아빠, 부자아들] 동서문화(3권),2002.01.pp.(각)350.

40. (전자책) [처용의 웃음소리] 한국문학도서관, 2004.06.pp.285.

41. (전자책) [멀리서 만나는 평행선] 한국문학도서관, 2004.07.pp.486.

42. (수필집) [시간도 머물다 넘는 고갯길] 창조문학사, 2006.03.PP.425.

43. (대표선집) [내 마음 속의 들쥐] 온북스, 2008.03.25. pp.413.

44. (정년기념) [시간도 흘러드는 고갯마루] 정년기념 2009.02.20. pp.388.

45. (국제교류) 신상성 편 [한중대표소설선집] 2016.09.01. pp.534 

46. (국제교류) 신상성 편 [跳舞的時裝](중국어판,북경중역출판사 2016.12.01.pp.484. 

47. (문학전문잡지)신상성 편 [한반도문학](제1~4집) 아시아예술출판사

2016.~2018.(매년2회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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