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2019년부터 본지는 한중문학인들의 작품 개성을 잘 나타내는 작품을 특집으로 싣는다. 시는 매인 10여 편,  수필은 2~3편, 소설은 1~2편 등 분량이다. 첫 순으로 저명 시낭송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안나 시인의 최근 시작품을 선보인다.  <편집자 주>  
 
▲ 고안나 약력 : 시인. 시낭송가,한국오페라교육문화진흥원 추진위원. 국제에이즈 연맹 한국 홍보이사, 부산시인협회 회원. 모닥불문학회 부회장. 시전문지『작가와 문학』편집위원, 시전문지『청암문학』부산시 지부장, 동북아신문 상임이사. 미당문학회 이사. 미당시낭송회 회원, 한국낭송가협회전문시낭송가로 활동.  중국 '도라지 문학지 해외문학상' 등 수상 다수. 2018 '제3회 중한문화예술교류공헌상' ,  '2018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줄장미
 
생각에 쫓겨
바쁘게 마음 옮기는
몸 엉킨 넝쿨이야
행동을 감고 있지 넝쿨 법칙은 잔인해
소용돌이치는 붉은 울음이지
너 울고
나 울고
넝쿨에 쫓겨
주저 없이 담벼락 넘는
입 봉한 슬픔이야 파도치는 삶 가졌을 뿐
파도를 본 적 없지
방랑의 어디 쯤바다로 가고 있어
다시 오는가 묻지 마
나는 법칙에 살지

고장 난 뻐꾸기시계
 
문밖 죽음이 기다린다면
지금은 참회의 시간
생각은 살아
잠들지 못한 꿈에서 깨면
미처 들여놓지 못한 발끝
한 마디 탄식조차 할 수 없는
몸의 소리여
지나간 모든 것들은
시간의 밖
한갓 사유에 지나지 않지
어디까지가 방황이며
진실은 언제쯤 만나게 될까
희미한 기억 더듬노니
지구를 돌리던 때
동에서 서로
태양을 끌고 다니던 때
미친 사랑이라도 좋았지
반쯤 열린 문 열고 나와
목 터져라 한바탕 울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미쳐갈 것이야

술병 
대문 앞 쓸다가
모로 누워있는 소주병 하나
쓰레기 더미에 몸 숨긴 채
억지 잠이라도 청한 걸까
제 몸 가둘 곳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분명 쓰레기 봉지를 이탈했거나
제 속을 훔쳐간 누군가에 의해
버림받았을
한 번쯤, 어느 심장에 강하게 박혔을
그러다 헐렁해진 마음에서 뽑혔을
생각은 깊고 가슴은 뜨거운
노숙자처럼,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달빛처럼
알 수 없는 당신의 행방
빈껍데기의 설움 아는가
제 갈 길 찾지 못하고
중얼거리는 소리, 알듯 말듯 
 
 이슬 

 몸 돌려 중심 잡아도
나는 물방울
단번에 깨질 푸른 잎의 열매
시린 눈 깜빡일 때
한 방울의 눈물
발길 멈춘 풀잎
그 위에 오소소 떨고 있지
움츠린 나, 선경(仙境)의 열매
아슬아슬한 벼랑 끝날개를 다오
당신 꿈 깨어날 때
어차피 이별이지
마음 붙잡지 못하는 풀잎에
맺힌 투명한 씨앗
몸 뒤척이는 유리구슬
오! 잠간의 목숨이여  틈   훔쳐보고 있지
늘 불완전한
마음 속 비밀 감출 수 없지
그저, 바람 한 점 들락거릴 뿐
침묵은 관대하고
적막은 무심하지
그냥 묵묵하게
죽은 듯 가만히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
보이지 않는 손의 힘
또 다른 운명에 이르는
피할 수 없는 비상구
정적과 어둠
그 속에서 당신을 찾고 있어
태양의 심장을 훔쳐보는 이카루스
가장 뜨겁고 가까운 

수평선 
 서로의 사이에는
물결치는 소리가 있지
분명한 것은 영원히 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문득, 깊은 생각에 잠길 때
고요히 물 위에 떠 있지
아니, 수억만 톤 허공을 받치고 있지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은 허상
나는 분명 있고 없음이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당신 눈동자 속에 갇히지
가까이 오면 더 멀리 달아나는
이 완전한 분리
해협 건너오는 배들
열고 들어오는 문이지
때로는 가슴 찢어지는 통증이 있지
가서는 오지 않는 마음이 있지
걷잡을 수 없는
그 사이,
스스로 존재하는 
그 푸른 눈빛  빈 깡통 몸으로 울었다   바람의 악다구니 견디다 못해
빈 깡통 하나 몸으로 운다
길 떠나던 낙엽들 덩달아 운다
텅 빈 아스팔트 위
어둠이라는 큰 새 한 마리
세상 점령한 채 침묵 삼키고 있다
몸속 빛의 일부 남겨두었던 가로등
가물거리다 숨 거둔다털어도 털어낼 수 없는 어둠
어두침침한 그믐달 알겠다는 듯
마지못해 벗은 나뭇가지에 걸렸다
언제 집 밖으로 나왔는지
누가 속을 털어갔는지
빼앗긴 그 무엇보다
입 맞추었던 달콤한 기억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듯
슬픔 토해내는 소리
껍데기를 위한 진혼곡일까
바람의 발자국 다가올수록
아무것도 모른 채 함께 우는 밤
떠나버린 귀뚜라미는
어디로 갔을까

문  
들락거리는 것들은 스스로 발이 있어
소리 없이 살짝 들어왔다
말없이 빠져나가지
슬픔은 가냘픈 그림자 끌고
웅성거리는 숲을 들이기도 하고
쓸쓸한 새의 목청 불러들여
웅얼거리는 바람소리 청하기도 하고
짙은 빛깔의 저녁노을 데리고 오지
갑자기 생각난 듯
바깥 초록을 불러들이고 싶었는데
느닷없이 찾아든 가시덤불이 가로 막았지
너무 믿지는 말게
사실을 속이고 있는지 몰라
깨닫지 못한 것들이
삐거덕거리며 앓고 있는 중이야
석양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환영하겠어
하지만, 잘못 쏜 화살은 막아야 해
열리고 닫히는
피는 꽃과 지는 꽃
그 아스라한 경계  
▲ 산과 강과 안개와 햇빛
        안개 
 이 부드러운 저음의 문장
보일 듯 말 듯
산 하나 옮기고
산 둘 옮기고
미처 당신이 생각지 못한 사이
신발 끄는 소리와
빗질한 여인의 머릿결 숨기지
바람의 방향은 내 몸의 움직임
나는 서막이지
여자처럼 은밀하게 속삭이지
어떤 힘의 개입에 빠져들수록
먼 그대의 하늘과
완만하게 젖은 소리뿐
나는 발설하지 않지
오직 행동뿐
서서히 움직이다
빈 몸으로 떠나는 나는,
 잔설  
길 잃었다
구석진 곳 까지 온 게 잘못이다
도토리 몇 알 숨겨주려
후미진 비탈 찾는 것이 아니었다
나긋나긋 내려앉던 눈발
고인 눈물이 될 줄
내가 나를 잊어버릴 때쯤
세상은 바뀌는 중이다
정해진 시간 어디에도 없고
헤진 옷자락 사이
길 잃은 소리마저 죽었다
누가 또 울고 간다

돌담  
너와 나 우리 만남이라 하자
어깨와 어깨 걸친 약속이라 하자
함께일 때 불리는 이름이라 하자
한 몸으로 지탱하는 힘이라 하자
힘이 갈라놓은 견고한 경계라 하자
이쪽과 저쪽 엄연한 구분이라 하자
우리가 갈라놓은 그 안에서 해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떠오르고
어김없는 질서 속에 어울려 산다
다른 얼굴 다른 모양 다른 생각들이 
둥글게 저물어가는 것
내가 나의 태생을 알 수 없듯
너는 뿌리마저 망각한 채
한순간 와르르 무너진다면! 담쟁이 귀뚜라미 풀벌레 까막까치 다녀간
그 발밑 숨죽인 채 엎드린 우리는지금,
햇살 아래 사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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