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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2]단편소설/이광복 '동행'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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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4  2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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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복 약력 : 현(제27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국립한국문학관건립운영소위원회 위원,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 재경부여군민회 자문위원, 나누리장학문화재단 이사, 대한민국 명예해군 (상세 약력 하단 참조).

[서울=동북아신문]늦가을의 한낮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 이처럼 계절이 바뀌었는지 송암리(松岩里)의 가을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다. 저 멀리 망덕산(望德山)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고, 산 밑으로 펼쳐진 송암저수지 수면은 명경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금물결로 출렁대던 저수지 아래 드넓은 들녘은 이 근래 가을걷이가 끝나 허허롭기 짝이 없었고, 동구 앞 반석다리[盤石橋]를 지난 시내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S자 모양의 자갈길을 따라 꾸불꾸불 서원리(書院里)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설화당(雪花堂) 툇마루에 느슨히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무심하게 깊어 가는 가을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행랑채 맨 끝방 문이 열렸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 선생이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린 채 댓돌로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는 힐끔 이쪽을 쳐다보며 목례를 보내왔는데, 나 역시 가벼운 고갯짓으로 답례를 보냈다. 잠시 후 그는 굴뚝 모퉁이로 돌아나가 연못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에 소변을 좔좔 내갈기고는 체육복의 괴춤을 추스르며 어슬렁어슬렁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말했다.

“날씨가 참 좋군요.”

“그렇소. 공부 많이 하셨소?”

“아뇨. 머리가 맑지 않아서 그런지 공부도 잘 안 되는군요.”

“거 참…….”

“박 사장님, 산책이나 나갈까요.”

“그럽시다.”

우리는 대번 의기투합하여 설화당을 나왔다. 바람이 불어오자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떨어지며 팔랑팔랑 흩날렸고, 솟을대문 위로 맵시 있게 굽어 올라간 소나무를 향해 참새 떼가 우르르 내려앉고 있었다. 김 선생이 말했다.

“산에는 단풍 들고…… 바람 끝이 제법 쌀쌀한 것을 보면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군요.”

“계절의 변화를 누가 막겠소.”

우리는 선문답을 주고받듯, 별로 실속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을 주민들의 발길이 가장 뜸한 실개천을 따라 느티나무 아래로 올라갔다. 여름 내내 무성했던 길가의 잔디며 바랭이 같은 한해살이 잡초들도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김 선생과 나는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는데, 이 길은 무엇보다도 인적이 드물어 우리 같은 외지 사람이 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남의 마을에 와서 이 고장 주민들과 정면으로 마주친다는 것처럼 멋쩍은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당당한 입장이라면 몰라도 나 같은 처지에서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그 자체가 어색하고 쑥스럽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마을길이 끝나는 곳에 작은 방죽이 있었다. 우리는 방죽 가장자리를 따라 다시 산길로 이어지는 설화산 초입에서 멈추었다. 숲으로부터 제법 썰렁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는데, 우리는 누가 먼저 제의한 것도 아니지만, 피차 약속이라도 한 듯 평상처럼 떡 벌어진 너럭바위에 엇비슷이 걸터앉아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기로 하였다.

방죽 뚝방에는 멍석에 널어놓은 고추들이 눈부신 가을 햇살을 받으며 잘 건조돼 가고 있었다. 그 위로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날아다녔고, 이따금 투실투실 살진 방아깨비나 풀무치 같은 풀벌레들이 누르뎅뎅한 풀밭에서 투명한 날개를 펼친 채 푸릉푸릉 머리 위로 치솟아 오르곤 하였다. 김 선생이 물었다.

“박 사장님은 서울에 안 가세요?”

“글쎄요…….”

나는 흐지부지 말끝을 흐렸다. 서울에 남아 있는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삼삼했으므로 콧날이 시큰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서울이지만, 그러나 내게는 그럴 수 없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문제는 사업 실패와 그로 인한 가정 파탄이었다. 결혼 이후 나는 아내와 종종 의견 충돌을 빚어 왔지만, 소위 아이엠에프(IMF) 구제 금융 체제가 시작되자마자 잇따라 얻어맞은 연쇄부도야말로 내 인생에 치명타를 안겨 주었다.

하기야 사업이 그런 대로 잘 풀려 나갈 때에도 아내는 나를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다. 신혼 초기부터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비위를 건드리곤 했는데, 그나마 사업이 거덜 난 뒤로는 나를 남편이 아니라 하잘것없는 똥 친 막대기쯤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피땀 흘려 일궈 논 사업이 하루아침에 결딴난 것도 억울한 일이건만,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까지 나를 인간쓰레기쯤으로 취급할 때에는 참으로 분통이 터지다 못해 뼈에서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아내와 결별하기로 작정했다. 아직 정식으로 이혼 수속을 밟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사실상 결별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잖아도 아슬아슬했던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아이엠에프 한파로 완전히 동파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사업도, 사랑도, 가정도 모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재기불능의 상태로 들어선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남은 살이나 연하인 김 선생에게 너절하기 짝이 없는 사생활의 전모를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내한테 버림받은 이야기는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김 선생이 물었다.

“박 사장님은 서울에서 무슨 사업을 하셨어요?”

“지나간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소. 내 과거는 모두가 한갓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주인아주머니한테 개략적인 말씀은 들었습니다. 박 사장님께서는 서울에 계실 때 아주 큰 사업을 했다고 그러시더군요.”

주인아주머니란 설화당을 관리하고 있는 예산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래 설화당은 조선왕조 중엽에 지은 어느 정승의 고택(古宅)으로 그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였다. 고래 등 같은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행랑채, 정자 등 여러 동(棟)의 건물이 처마를 맞대고 있었으며, 특히 정원에는 희귀한 나무들과 기기묘묘한 석물, 그리고 연못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일종의 선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설화당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옛 주인들은 대대로 벼슬길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고, 그런 만큼 오랜 세월 하인들이며 식객, 심지어 아첨배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루며 북적거렸지만, 근대 이후 격동기를 거치면서 후손들이 별 볼일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객지로 나간 뒤에는 설화당 또한 거의 방치돼 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설화당이 지금처럼 그런 대로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예산댁의 정성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예산댁은 설화당 주인의 먼 인척으로 십여 년 전부터 이 집을 혼자 관리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늙마에 홀로 설화당을 지켰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고시생들이나 행상, 길 잃은 등산객 등 외지사람에게 헐값으로 숙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몇 닢 비상금을 챙겨 집을 나온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독신자 합숙소와 대학촌의 하숙집을 전전하다가 고시생들로부터 이 산골에 설화당이라는, 나 같은 백수건달이 부담 없이 지낼 만한 한적하고 좋은 집이 있다는 것을 귀동냥하게 되었다. 그 직후 나는 그 지긋지긋했던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이곳 송암리에 내려온 뒤로 내 삶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설화당에 묵으면서 아내와의 갈등이며, 모진 세파에 시달려 발기발기 찢어진 심신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었다. 아내 곁에 남아 있는 두 딸을 생각할라치면 그리움이 북받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지만, 설화당에 머무르는 동안 내 삶이 죽어 가는 나무에 새 움 돋아나듯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기쁘기 한량없었다.

사실 집을 떠나기 전, 나는 몇 번인가 목숨을 끊어 세상을 버리려고 시도했었다. 구차스럽게 살아 봤자 별 의미도 없으련만,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나의 기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하였다. 목숨이란 참으로 고래 힘줄보다도 더 질긴 듯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들어온 뒤로는 이것저것 잡다한 세상살이를 잊을 수 있었고, 며칠 전에는 마침내 일생일대의 중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출가입산을 의미했다. 내친 김에 아예 절에 들어가 삭발하고 수도승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며칠 전이었다. 나는 예산댁에게 이 고장에 무슨무슨 절이 있는지 알아보았고, 예산댁은 근동에 있는 절들을 주욱 꿰다가 망덕산 등성이를 넘어가면 남쪽 기슭에 고찰(古刹) 망덕사(望德寺)가 있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물론 설화산에도 몇몇 암자들이 있었지만, 이왕 입산할 바에는 그래도 절다운 절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 간절한 내 소망이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망덕사는 짙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내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내가 최종적으로 찾아가야 할 곳은 망덕사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만 하면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그런 대로 잘 풀릴 듯한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반드시 망덕사를 찾아가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척이 천리라고 했던가, 나는 빈둥빈둥 날짜만 축내면서 여지껏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도 있지만, 입산에 앞서 채무 청산이며 이혼 수속 등 몇 가지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으므로 아직 그 일을 결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언젠가 예산댁이 서울에서 무슨 일을 했었느냐고 묻길래 사실대로 말했었지……. 하기야 한때는 잘 나가던 적도 있었소.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제법 큰 가구공장을 운영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소.”

“하긴……. 저도 벌써 5년째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산간 오지로 떠도는 동안 저도 어느덧 나이 30을 넘기고 말았지 뭡니까”

“아무쪼록 요번에는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소.”

“고맙습니다.”

김 선생은 스님처럼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창백해 보였는데, 몇 해 동안 방안에만 틀어박혀 공부하느라 제대로 햇볕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라이터로 담배개비에 불을 붙이고 나서 내가 물었다.

“김 선생……. 혹시 사귀는 아가씨라도 있소?”

“웬걸요. 공부하기도 벅찬 마당에 여성을 사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되지 않겠소?”

“해야겠죠. 지금도 부모님들의 성화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저의 일차적 목표는 고시에 합격하는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연애다, 결혼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자를 선택할 때 정말 조심하시오. 결혼은 중대한 일이니까. 남자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 입장에서도 결혼은 절대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오.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오다가다 만나 한솥밥을 먹게 된 지도 어언 석 달이 지났소 그려.”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이젠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떠나다니……?”

“본래 고시생들은 한 군데 오래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주 옮겨 다니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소?”

“있지요. 한 곳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나태해지기 쉽거든요. 더구나 아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고……. 고시생에게 아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어느 누구와도 정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번 정을 붙이면 공부에 지장이 생기니까요. 염불보다 잿밥에만 맘이 쓰이게 되면 곤란하잖습니까?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질색입니다. 시험을 치러서 단번에 합격한다면 몰라도 합격 여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잖습니까?”

나는 그제서야 아, 그랬었구나, 하고 짤막한 탄성을 자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 송암리에 왔을 때만 해도 설화당에는 대여섯 명의 고시생이 있었고, 많을 때에는 여덟 명이 행랑채와 사랑채의 이 방 저 방에 틀어박혀 공부했었는데, 그들은 잘해야 한두 달 머물다가 어디론지 훌쩍 떠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김 선생은 어디로 떠날 생각이오?”

“특별히 정해진 곳은 없습니다. 며칠 동안 더 궁리해 볼까 합니다.”

“그럼 이 동네로 오기 전에는 어디 있었소?”

“망덕사에 있었죠.”

그의 입에서 망덕사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온몸이 쩌르르 하는 전율을 느꼈다. 망덕사라면 머지않아 내가 입산하게 될, 그리하여 머리 깎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될 바로 그 절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되물었다.

“저 산 너머에 있는 망덕사 말이오?”

“그렇습니다. 망덕사는 제게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는 제가 처음 고시 공부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지만,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다가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다시 찾곤 하지요. 망덕사에 있을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공부도 잘 됐거든요. 지난봄까지만 해도 저는 신림동 고시촌에 있었어요. 근데 영 마음을 잡을 수가 없더군요. 고시촌 분위기가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고 할까, 어쨌든 그 분위기에 적응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도 했지만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별 공부도 못 하고 두 달 있다가 다시 강원도 치악산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는 시름시름 몸이 아파 고생만 하다 다시 망덕사로 돌아왔지요.”

“그럼 아주 망덕사에 눌러 있지 그랬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곳에만 오래 눌러 있으면 공부가 잘 안 되거든요. 지난여름, 망덕사에 있다가 공부가 잘 안 되길래 다시 거처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마침 이 마을에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설화당에 오셨군…….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오. 그럼 한 가지 더 물어 봅시다.”

“뭡니까?”

“망덕사와 그렇게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면 그곳 스님들도 아주 잘 아시겠소 그려?”

“조금 아는 편이죠.”

“아는 편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제가 실지로 공부했던 곳은 엄격히 말해서 망덕사 경내가 아니라 그 절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이죠.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마을까지 통틀어 그냥 망덕사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절과 마을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저는 망덕사 입구에 있는 보살님 집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렇다고 망덕사 스님들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산책길에 일주문이나 대웅전 마당 같은 곳에서 스님들과 마주치면 그저 인사 정도 드리곤 했지요.”

“망덕사 입구에 마을도 있단 말이오?”

“민가가 여남은 가구 있지요. 그곳 사람들은 농사도 짓고, 약초도 캐면서 오순도순 살아간답니다.”

“아, 말만 들어도 기막히군……. 나도 사실은 그런 곳에 가고 싶었소.”

“서울에는 아주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까?”

“아니오. 언젠가는 돌아갈 생각이오. 하지만 세상만사가 모두 귀찮아 우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푸욱 쉬고 싶을 따름이오.”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마음에도 없는 말을 즉흥적으로 둘러댔다. 나이도 한참 적은 사람한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양심에 켕기긴 했지만, 그러나 지금 이 마당에서 콩이네 팥이네 긴 말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 선생이 물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들이 기다리거나 말거나 관심 두지 않기로 했소. 집에 돌아가 봤자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혹시 망덕사에는 스님이 몇 분이나 계신지 아시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서너 분 계실 겁니다. 그야 보살님께 여쭤보면 대번 알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좋소. 여기서 망덕사까지는 정확히 얼마나 됩니까?”

“자동차 편으로 가려면 망덕산을 끼고 한 바퀴 삐잉 돌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한 나절쯤 걸리겠죠. 그럴 바에는 등산하는 셈치고 직접 망덕산을 넘어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제가 이 마을에 올 때에도 걸어서 저 산을 넘어 왔습니다. 망덕산은 역시 명산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기막히지만 산 자체가 특이합니다. 맨 꼭대기에 장군바위가 있고, 그 밑에는 동굴과 옹달샘도 있지요. 제가 망덕사에 있을 때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저 산에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는 검지를 곧게 뻗어 망덕산을 가리켰다. 어느 사이엔가 망덕산 날망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망덕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김 선생의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하였다. 자동차를 타고 한 나절 동안이나 엉뚱한 곳을 삐잉삐잉 도는 것보다 곧장 망덕산을 넘어 지름길로 질러가는 것이 훨씬 손쉽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내가 물었다.

“김 선생……. 날 망덕사까지 안내해 줄 수 있겠소?”

“지금요?”

“그렇소.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말 나온 김에 한 번 가 봅시다.”

“그건…….”

김 선생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어느덧 해는 중천을 벗어나 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검은 구름 몇 점이 해를 가리며 망덕산 쪽으로 스멀스멀 흘러가고 있었다. 산간의 날씨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햇살이 눈부셨지만, 어느 사이엔가 망덕산 일대가 온통 구름으로 뒤덮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이곳에 몇 달 동안 머물면서 아직도 망덕사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오로지 내 게으름 탓이었소. 마침 잘 됐지 뭐요. 우리 큰 맘 먹고 저 산을 넘어 봅시다.”

“그야 어렵지 않지만…….”

김 선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미적미적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벌써 망덕사에 가 있었고, 나는 그를 길라잡이로 끌어들이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필터 끄트머리까지 타 들어온 담배꽁초를 방죽으로 집어 던지면서 내가 말했다.

“김 선생……. 머리도 식힐 겸 우리 함께 그곳에 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 며칠 후 김 선생이 설화당을 떠나면 나 혼자 가야 할 텐데…….”

“하지만 지금은 좀…….”

김 선생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골똘히 계산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망덕사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나를 위해 시간 좀 내주시오.”

“그렇게도 망덕사에 가고 싶으십니까?”

“그렇소. 난 오래 전부터 망덕사에 가 보려고 별러왔소. 그곳에 가면 내게도 무슨 희망이 있을 것 같아요.”

“박 사장님 혼자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잖습니까?”

“나야 이 고장 지리를 잘 모르잖소. 더욱이 저 높은 산을 혼자 넘는다는 것이 어디 쉽겠소?”

“산에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좀 험하긴 하지만, 저쪽 서원리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면 등산로가 나오지요.”

“그래도 그렇지……. 무슨 청승으로 혼자 저 엄청난 산을 넘겠소? 망덕사에 가 봤자 아는 사람도 없고……. 김 선생은 망덕사를 제2의 고향이라고 했잖소?”

“근데 저는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사실은…….”

김 선생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꼴깍 집어삼켰다. 내가 사업과 가정에 얽힌 부끄러운 이야기를 굳이 털어놓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도 어쩌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했다. 내가 말했다.

“타관에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오? 나는 이 고장에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소. 만약 망덕사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진작 그곳으로 떠났을 것이오.”

“박 사장님은 공부하는 고시생도 아니면서 굳이 거처를 옮기려는 이유가 뭡니까?”

“한 군데 너무 오래 있으니까 싫증도 나고……. 좀 더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오래 머물고 싶어요.”

그 말도 사실은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오직 하루라도 빨리 망덕사를 사전답사하고 싶은, 그리하여 조속한 시일 안에 속세의 모든 인연을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 조급한 욕망에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얼토당토않은 말을 거침없이 술술 내뱉고 있었다. 김 선생이 말했다.

“지금 출발하면 도착 시간이 좀 애매할 것 같아요.”

“너무 늦었단 말이오?”

“아닙니다. 벌건 대낮에 도착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가급적이면 해가 져서 땅거미가 내릴 무렵 도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 선생은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이론을 펴고 있었다. 하필이면 해가 져서 어두워졌을 때 도착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그의 속셈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물었다.

“저 산을 넘어 망덕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글쎄요……. 망덕사에서 이쪽으로 넘어 본 적은 있지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 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두어 시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망덕사까지 동행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곳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김 선생은 줄곧 이 핑계 저 핑계 여러 가지 애매모호한 구실을 달아 슬슬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가 의견 통일을 위해 서로 밀고 당기는 사이 구름은 망덕산 정상을 중심으로 더욱 넓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소. 날씨도 흐려지는 데다 산간에서는 해가 일찍 저물잖소?”

“괜찮습니다. 어차피 망덕사에 도착하면 하룻밤 묵고 와야 할 텐데 뭘 그러십니까? 이왕이면 보살님 댁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밥이 모자라면 보살님이 새 밥을 지어주실 겁니다. 물론 우리 주인아주머니한테도 말씀을 드리고 떠나야겠죠.”

“그렇다면 오늘 동행해 주겠다 그 말이오?”

“하하하……. 박 사장님께서 그렇게 간곡히 사정하시는데 어쩔 수 없잖습니까?”

“고맙소. 자, 그럼 일단 설화당으로 가서 출발 준비를 서두릅시다.”

우리는 곧 너럭바위에서 일어났고, 조금 전에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설화당으로 들어섰다. 그때 예산댁은 김치를 담그기 위해 안채 대청에서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소쿠리에는 하얀 마늘이 담겨 있었고, 널따랗게 펼쳐 놓은 신문지 위에는 부스스한 마늘 껍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김 선생이 예산댁에게 말했다.

“박 사장님 모시고 망덕사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산을 넘으려고 그러실까. 날씨조차 저렇게 끄무레한데……. 오늘 같은 날 산을 얕잡아 보면 큰일 나요.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떠나지 그러세요?”

예산댁은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리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자칫 김 선생의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으므로 내가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정도 산이라면 해지기 전에 가뿐히 넘을 수 있을 겁니다.”

“아이구, 박 사장님……. 망덕산이 얼마나 큰 산인지 모르시는군요. 여기서 보기에는 하찮은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엄청나게 깊어요. 전문적으로 등산하는 사람들도 종종 길을 잃곤 한답니다.”

“김 선생이 길을 잘 아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내가 자신 있게 말했고, 그 말의 꼬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김 선생이 재빨리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가 말했다.

“길을 잘 안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다만, 망덕사에 있을 때 한 달에 한두 번씩 저 산에 올랐다고 했을 뿐입니다. 지난번 이 마을에 올 때에도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왔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쪽에서 저쪽으로 망덕산을 넘어 본 적은 없다니까요.”

“하하하……. 날카롭기가 면도날 같소. 역시 저명한 법률가가 되실 분은 다르다니까…….”

나는 일부러 김 선생을 한껏 추켜세우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기어이 망덕사에 가려는 나의 속내를 숨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 선생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붙잡아 두기 위한 얕은 술책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면서 김 선생이 말했다.

“자, 그럼 떠나실까요.”

“그럽시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졸라 맨 뒤 우리는 다시 설화당을 나섰고, 은행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마을 안길을 거쳐 동구 앞 반석다리를 건넜다. 잔뜩 찌푸린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해가 두어 발쯤 남아 있었는데 바람결은 점점 더 쌀쌀해지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렇게 청명했던 날씨가 잠깐 사이에 전혀 딴판으로 돌변하였고, 우리가 모래와 자갈로 다져진 S자 모양의 도로를 따라 서원리에 이르렀을 때에는 짙은 먹구름으로 주위가 컴컴해지고 있었다.

서원리는 저 옛날 망덕서원(望德書院)이 있었던 곳이지만, 서원은 이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시절에 헐렸고, 마을마저 쇠락할 대로 쇠락하여 삐뚜룸하게 기운 농가와 잡초로 뒤덮인 폐가 몇 채가 드문드문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도로가 끝나는 시내버스 종점을 지나 망덕산으로 들어섰고,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진 오불꼬불한 등산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산댁이 말했듯 망덕산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험준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망덕산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골이 깊고 봉우리가 높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능선과 계곡에 숲이 울창했고, 보일락 말락 좁디좁은 등산로가 나 있긴 했지만, 군데군데 길이 끊어져 한 번 길을 잃었다 하면 앞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가 중턱쯤 이르렀을 때에는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소나무 가지가 쉬익쉬익 울부짖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참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에서는 낙엽이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져 계곡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김 선생과 나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삼가면서 등짝에 진땀이 묻어날 정도로 발길을 재촉했지만, 우리가 마악 망덕산 중턱을 벗어날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져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김 선생이 말했다.

“박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아무리 가을 해가 짧다고 하지만 이렇게 일찍 어두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 건데…….”

나는 급기야 김 선생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당초 망덕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어째서 그처럼 뜨뜻미지근하게 질질 시간을 끌며 애를 먹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조금만 서둘렀더라도 진작 망덕사에 도착했을 텐데, 김 선생이 괜히 시간을 끌며 뭉기적거리는 바람에 우리는 칠흑 같은 산 속을 헤매게 된 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달은 고사하고 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산 속이 어떻게 어두웠던지 곁에서 누군가가 뺨을 치고 달아난다 해도 모를 지경이었다. 김 선생은 아예 짐승처럼 납작 엎드려서 길을 찾느라 두 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엉금엉금 기었다. 만약 아무 데나 발을 잘못 디뎠다가 자칫 실족하는 날에는 어느 골짜기에 처박힐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힐끗 뒤를 돌아다보면, 까마득히 먼 저 아래로 서원리와 송암리 일대의 불빛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점점이 흩어져서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들은 마치 무슨 보석을 연상케 하였다. 짙은 어둠에 갇힌 우리는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미친 년 머리카락처럼 뒤엉킨 가시덤불을 헤치고,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아스라한 암벽을 기어오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김 선생을 놓칠까 봐 기를 쓰고 그의 꽁무니를 따라붙었다. 가시덤불에 긁힌 손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암벽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므로 금세 손바닥이 바위에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입김으로 손을 녹여보려 했지만, 입에서는 소태처럼 쓰디쓴 냄새가 풀풀 피어올랐고, 입김만으로 손을 녹인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다를 바 없었다.

손이 얼마나 곱았던지 이제는 감각조차 없어졌다. 팔다리가 뻐근하게 저려왔고, 살을 에는 날 돋친 바람에 콧날이며 귓불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등줄기에는 생땀이 소나기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꿈결인 듯 예산댁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이구, 박 사장님……. 망덕산이 얼마나 큰 산인지 모르시는군요. 여기서 보기에는 하찮은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엄청나게 깊어요. 전문적으로 등산하는 사람들도 종종 길을 잃곤 한답니다.

그 말이 귓가에 앵앵거리고 있을 때, 힘껏 움켜쥐었던 돌부리가 휘청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돌부리가 휘청한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오한을 느끼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에는 내 뒤통수가 김 선생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불현듯 서울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거의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허연 입김을 내뿜으면서 김 선생이 물었다.

“박 사장님……. 이제 정신이 좀 드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저 위에서 떨어지셨습니다.”

“아흐, 이럴 수가…….”

나는 그제서야 암벽 돌부리가 아닌, 암벽 위에 건성으로 얹혀 있던 돌멩이를 잘못 잡고 힘을 쓰는 바람에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벽의 높이는 서너 길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상처 한 군데 없이, 거짓말처럼 멀쩡한 것을 본다면 참으로 천우신조란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암벽에서 추락할 때, 머리가 바위에 부딪쳤더라면 뇌진탕으로 즉사했거나, 아니면 설령 목숨만은 건졌다 해도 몸뚱이가 묵사발이 되어 중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나를 살려준 것은 순전히 가랑잎이었다. 내가 추락한 곳에는 가랑잎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고, 그 가랑잎이 솜이불처럼 푹신하게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선생이 말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박 사장님께서 떨어질 때 저는 크게 다치신 줄 알았습니다. 자, 저길 보십시오. 장군바위가 보이지 않습니까? 조금만 가면 정상입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살 길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위로 망덕산 정상을 가로지르는 먹빛 능선이 거무튀튀한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낙타 등처럼 울멍줄멍한 능선 한켠으로 거대한 바위가 희뜩하게 드러나 보였다. 일단 정상에만 오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아니 동서남북만이라도 분간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벌써 기진맥진하여 한 발자국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후회, 그리고 무서움…….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과, 금방이라도 목구멍이 눌어붙을 것처럼 타는 갈증에다 시장기까지 겹쳐 사지가 파김치처럼 늘어지고 있었다. 망덕사에 가지 않으려고 머뭇거리던 김 선생을 졸라 산에 오른 것이 한없이 후회스러웠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무서웠으며,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리하여 찬물을 끼얹을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쫘악쫘악 번졌고, 초상집 개 떨듯 덜덜 떠는 동안 아랫니와 윗니가 딱딱거리며 마주쳐 나중에는 관자놀이까지 뻐근해지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이제 죽는 일만 남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 선생은 아직 젊지만, 나는 어느덧 장년에 접어들었으므로 한결 더 지치게 마련이었다. 이렇듯 죽을 지경에 이르자 후회와 원망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들끓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망덕사 이야기가 나와 이런 개죽음을 자초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한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아예 세상을 떠나려 했었지만, 정작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사정이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새 삶의 출발점으로 설정했던 망덕사에 가보지도 못하고 이 산속에서 귀신도 모르게 생짜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노릇이었다. 더듬더듬 나무 등걸에 의지해 몸을 기대면서 내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김 선생……. 난 한 발자국도 갈 수가 없소. 아흐……, 목말라 죽겠소.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망덕산에 뼈를 묻게 됐소 그려. 이대로 죽을 바에는 차라리 불을 지르는 게 어떻겠소?”

“불을 지르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산불을 내자는 뜻이오. 산에 불이 붙으면 경찰이나 소방대원들이 출동할 것 아니겠소? 그때 경찰이나 소방대원들에게 구조를 요청합시다. 내게 라이터가 있소.”

“안 됩니다. 불을 지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살 길이 있습니다. 정상까지만 올라가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자, 저를 따라 오십시오.”

김 선생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손바닥을 꽈악 거머쥐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부쩍부쩍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김 선생의 손바닥에서 스며 나오는 체온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는 내 손을 움켜잡은 채 낑낑대며 암벽을 기어올랐고, 나는 사력을 다해 발가락 끝으로 암벽을 긁어내리면서 그에게 이끌려 가고 있었다.

암벽을 벗어나자 펑퍼짐한 언덕이 나왔고, 한 길 이상 우거진 억새풀 사이로 드디어 장군바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었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김 선생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죽자 살자 발버둥쳤다. 오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혀가 타서 입안이 끈끈하였고, 목구멍에서는 줄곧 쓴물이 넘어오고 있었다. 삶과 죽음, 그것은 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얄팍한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미 탈진할 대로 탈진했으므로 입을 벌려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내가 간신히 말했다.

“김 선생, 난 도저히 더 이상 못 가겠소.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상이 바로 저긴데…….”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언덕 위에 축 널브러지고 말았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정신이 몽롱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모두 꿈결처럼 느껴졌다. 그때 마침 거센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후둑후둑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번쩍 정신이 들긴 했으나, 몸뚱이는 뻣뻣이 굳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었다.

김 선생이 나를 일으켜 가슴 안으로 등을 들이밀었는데, 그의 목덜미며 등짝에서는 시큼한 땀 냄새가 풀풀 치솟고 있었다. 그는 대뜸 나를 들춰 업었고,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허우적거리면서 장군바위가 있는 정상 쪽으로 다가갔다. 어디선가 짐승들이 깩깩거렸고, 콩알보다도 훨씬 굵은 우박과 함께 날 돋친 바람이 머리끝을 베면서 지나갔다. 내가 말했다.

“이제 우린 꼼짝없이 죽었소.”

“박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정상입니다. 저길 보십시오. 저기 망덕사 불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는 턱까지 차 오른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장군바위 근처에 짐 부리듯 내려놓았다. 저 까마득히 먼 골짜기에서 망덕사의 불빛들이 손짓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런 몸으로 그곳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우리는 이제 송암리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망덕사까지 직행할 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꼼짝없이 산에 갇힌 셈이었다. 저 아래 깊은 계곡의 불빛을 가리키면서 내가 물었다.

“저기가 망덕사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오늘밤은 일단 여기서 묵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때 서둘러 내려가기로 하지요. 그러면 해 뜨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빌어먹을……. 조금만 일찍 출발했어도 저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김 선생은 말이 없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내 겨드랑이에 어깨를 떠받쳤고, 한 팔로 등을 휘어감아 껴안은 채 장군바위 비탈을 돌아 나갔다. 그러자 병풍처럼 휘어진 바위 모퉁이가 나왔는데, 그 안은 거짓말처럼 바람 한 점 없이 안온하였다. 어쩌면 우람한 장군바위가 바람막이 구실을 해주어 그런지도 몰랐다.

나를 잘 앉혀 놓고, 김 선생은 다짜고짜 바위 언저리에 쌓여 있는 가랑잎과 솔가리들을 손가락으로 북북 긁어모았다. 그의 손놀림은 기민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죽을 고생을 했으면서도 그에게는 아직 얼마간의 힘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박 사장님……. 이젠 살았습니다. 라이터로 불을 켜 보십시오.”

나는 점퍼 주머니를 뒤적여 라이터를 꺼냈는데, 시린 추위에 얼어터진 손이 곱을 대로 곱아 제대로 불을 켤 수가 없었다. 내가 입김으로 후후 손을 녹이면서 연거푸 헛손질을 하는 동안 김 선생은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계속 낙엽들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가 긁어모은 땔감이 한 무더기 수북하게 쌓였을 때 드디어 라이터에 불이 켜졌다. 김 선생이 낙엽 한 움큼으로 불쏘시개를 만들어 불꽃 끄트머리에 요리조리 들이대자 마침내 가랑잎 한 끝에 불이 붙었다. 겉에 쌓였던 낙엽은 우박을 맞았으므로 축축했지만, 그 밑에 깊숙이 깔려 있던 가랑잎들은 손에 쥐면 바삭바삭 바스라질 정도로 잘 말라 금세 불이 붙은 것이었다.

평소 하찮게 여겨왔던 라이터가 이렇듯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김 선생과 나는 모닥불을 피움으로써 최소한 동사(凍死)만은 면하게 된 셈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모닥불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싸움에 나갔다 실컷 물어뜯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개처럼 헐떡거렸다.

불길은 제법 기세 좋게 타오르면서 칠흑 같은 어둠을 널름널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바위 밑에는 움막 같은 동굴이 있었고, 그 안쪽 한 모퉁이에는 옹달샘까지 있었다. 동굴 암벽 밑으로 옹달샘에서 넘친 물이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도랑을 이루면서 낙엽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는데, 나는 동굴 안쪽 모퉁이로 기어 들어가 옹달샘에 고개를 처박고 목울대가 뻐근할 정도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은 달고 시원했다. 입가에 묻어난 물기를 손등으로 쓰윽 훔쳐내면서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이제야 비로소 염라대왕이 기다리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 선생도 내 곁에 나란히 두 손을 짚고 엎드려 한바탕 정신없이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얼마 후 그가 힐끗 이쪽으로 눈길을 보내왔는데, 그의 입가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모닥불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굴이 움푹 패어 휘어진 곳에 타다 남은 나무 등걸과 삭정이 같은 땔감들이 보였다. 이 근래 누군가가 이곳에 들어와 밥을 지어먹었거나 화톳불을 피워 놓고 한둔을 한 모양이었다. 김 선생은 그런 땔감들을 주워다 모닥불 위에 X자 모양으로 가로세로 얼기설기 척척 얹어 놓는 것이었다.

잘 마른 땔감에 불이 붙어 불꽃이 혓바닥을 널름거릴 때마다 물결치듯 동굴 벽에 얼룽얼룽 이상스런 무늬가 생겨나곤 하였다.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이 녹느라 손등이며 얼굴이 근질근질하였고, 온몸이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처럼 화닥거리면서 얼얼하였다. 그런데도 김 선생은 밖으로 나가 삭정이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이젠 좀 쉬시오.”

“아, 아닙니다. 여기서 밤을 지새려면 땔감이 더 필요합니다. 다행히 우박은 그쳤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 뭡니까?”

“난 순전히 김 선생 덕택에 목숨을 건졌소. 하지만 조금 전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는 김 선생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르오. 송암리에서 조금만 일찍 출발했더라도 우린 안전하게 망덕사에 도착했을 것 아니오? 근데 김 선생은 어째서 자꾸만 출발 시간을 뒤로 늦추었는지 모르겠소. 난 아직도 그 속셈을 알 수가 없어요. 왜 하필이면 해가 져서 땅거미가 내릴 때 도착하려 했는지…….”

“그야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체면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시험에서 매번 낙방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벌건 대낮에 망덕사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김 선생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급소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아픔에 휩싸였다. 내가 그 알량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상처투성이의 구구한 이야기들을 애써 숨기고 있었던 것처럼 김 선생의 내면에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사연이 서리서리 얽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잠시 김 선생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불빛이 벌겋게 어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살려내기 위해 그토록 애썼건만, 이제껏 그를 원망했던 내 자신이 너무 미워서 당장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주위는 온통 어둠뿐인데, 아직도 저 멀리 송암리의 불빛들이 가물거렸고, 그 반대쪽 깊디깊은 골짜기에서는 여전히 망덕사의 불빛들이 너울너울 손짓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야행성 짐승들이 끊임없이 깩깩거렸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억새풀이 서걱거리면서 나무들도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어느덧 모닥불은 알불이 되어 아까보다도 한결 더 불땀 좋게 활활 타올랐다. 그런 잉걸불에 타고남은 나무 등걸과 삭정이가 한 동가리씩 바위 바닥에 투둑투둑 삭아내려 숯이 돼가고 있었는데, 추위에 얼었던 몸이 나른하게 녹으면서 내 눈은 썩은 동태 눈알처럼 갤갤 풀려가고 있었다. (*)

 

이광복(소설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 약력

 

충남 부여 출생

73년 문화공보부 문예작품 현상모집 장막희곡 입선

74년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 당선

76년 『현대문학』 소설 초회 추천

77년 『현대문학』 소설 완료 추천

79년 『월간독서』 장편소설 현상모집 당선

창작집 『화려한 밀실』『사육제』『겨울여행』『먼 길』『동행』 간행

장편소설 『풍랑의 도시』『목신의 마을』『폭설』『술래잡기』『겨울무지개』『바람잡기』『열망』『송주임』『이혼시대(전3권)』『삼국지(전8권)』『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사랑과 운명』『불멸의 혼(계백)』『구름잡기』󰡔안개의 계절󰡕 󰡔황금의 후예󰡕 간행

정인호 애국지사 전기 『끝나지 않은 항일투쟁』 간행

콩트집 『풍선 속의 여자』『슈퍼맨』 간행

전래동화 『에밀레종』 간행

항해일지 『태평양을 마당처럼󰡕 간행

교양서적 『세계는 없다』『금강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천수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문학과 행복󰡕 간행

영화대본 『시련과 영광』(국립영상제작소) 『아, 대한민국』(국립영상제작소) 『꼬레야 꼬레야니』(K-TV) 『시베리아 횡단철도』(K-TV) 외 다수

제7회 동포문학상, 제20회 한국소설문학상, 제14회 조연현문학상, 대통령 표창(2회), 제1회 문학저널창작문학상, 제19회 한국예총 예술문화상(공로상), 노동부장관 표창, 제14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제28회 PEN문학상, 부여100년을 빛낸 인물(문화예술부문), 제30회 한국예총 예술문화대상, 제3회 익재문학상, 제9회 정과정문학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국립한국문학관건립운영소위원회 위원,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 재경부여군민회 자문위원, 나누리장학문화재단 이사, 대한민국 명예해군.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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