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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6]이혜선 시 '새소리 택배' 외 10수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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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8  11: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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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만나는 2019 한국 문인의 정감세계... 

 
   
▲ 이혜선 약력: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동국문학인회 회장.『자유문학』추천위원, 『문학과 창작』,『불교문예』편집위원.•한국 문인협회 이사.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한국문학 아카데미,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선사 문예대학, 하남 문예대학 지도교수.•시집 『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평론집『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전자책)『 New Sprouts within You』 영역시집(공저) 『유치환 시의 효용론적 연구』외 논문  다수.(상세 약력 하단 참조)

1.  새소리 택배                     

  구례 사는 후배가 택배를 보내왔다

  울안의 앵두 매실 머위대도 따지 못했어요 콩은 밭에서 콩깍지가 터졌고 고구마 두 이랑은 살얼음 낀 뒤에야 캐었답니다 감 몇 개 그대로 까치밥이 되고 밤은 쥐들 먹이가, 대추와 산수유는 새들 먹이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 집 남새밭에는 언제나 새들 지저귀는 소리 끊이지 않아요

  상자를 여니 서리 맞은 누런 호박 한 개와 대추가 들어 있었다 고구마 여나믄 개와 주황색 감이 남새밭과 감나무를 데리고 들어 있었다 바삐 통통거리는 그녀 발소리 속에 내년 봄에 핀 산수유꽃망울도 질세라 연노랑 하늘을 서둘러 열고 있었다

  빈 상자 속에서 또롱또롱 새소리가 방울방울 튀어나왔다 뒤이어 지리산이 큰 걸음으로 걸어나왔다

 

2. 간장사리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단지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툇마루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보먼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이웃집 연기도 더러 챙기며
묵을수록 약이 되는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3. 흘린 술이 반이다      

 

그 인사동 포장마차 술자리의 화두는
‘흘린 술이 반이다’

연속극 보며 훌쩍이는 내 눈, 턱 밑에 와서
“우리 애기 또 우네” 일삼아 놀리던 그이
요즘 들어 누가 슬픈 얘기만 해도
그이가 먼저 눈물 그렁그렁
오늘도 퇴근길에 라디오 들으며 한참 울다가 서둘러 왔다는 그이

새끼제비 날아간 저녁밥상, 마주 앉은 희끗한 머리칼
둘이 서로 측은히 건네다 본다

흘린 술이 반이기 때문일까
함께 마셔야 할 술이 반쯤 남았다고
믿고 싶은 눈짓일까, 안 보이는 생명의 술병 속에 

 

4. 해돋이            

 

그 여자

눈동자에 불이 화라락

젖가슴이 탱탱해졌다

온몸에 새싹 돋아났다

그남자의 눈짓 한 번에,


해넘이

그 남자

중심축이 기우뚱

얼이 빠져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그녀의 한숨 한 번에, 


5.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고속도로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
물방울에 기대는 물을 보았다
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 내려앉아
깊은 잠 들고 있었다

 

6. 아버지       

                       
                                                
   아버지
   어젯 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 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 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개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땡볕도 천둥도 막아 주는 마을 앞 둥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 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7. 수락산 노인요양원        
                                

고둥껍질을 보았다

무논에 엎어져 둥둥 떠다니는 빈 고둥껍질
바스라져 거름이 되는 어미고둥껍질이다

속살 파먹고 자라난 새끼 고둥들
제 살 곳 찾아
뿔뿔이 기어나간 뒤
텅 빈 껍질 속엔 기다림의 귀만 자라난다, 부풀어 오른다

아기고둥들 고물거리던 젖내음
아장아장 걸으며 웃던 발가락
손뼉 치며 춤추던 혀 짧은 노래소리
주소와 전화번호 다 없애고 흔적 없이 떠난 아들의 마지막 눈빛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 눈빛까지
나선형 주름 갈피갈피에서 수시로 걸어나온다

‘수락산 노인요양원’ 1호 병실에 누워 있는 그녀는
심장과 내장까지 새끼 먹여 기르느라
뼈도 살도 삭아내려
무논에 둥둥 떠다니다 기꺼이 바스라지는
빈 고둥껍질이다 어미고둥껍질이다 


8. 불이不二, 봄나무        

 

한 톨의 씨앗을 텃밭에 심는다
감나무 한 그루 마당에 심는다

더디게 꽃 피더라도
내 떠나고 없는 날에 열매 맺더라도,

푸른 잎 무성히 달고
꿈 꿀 것이다

튼실히 뿌리 내려
물길 찾아 쭉쭉 뻗어갈 것이다

땡볕 나그네 그늘이 되고
목마른 이 한모금 생수가 되리라

살아있는 날까지 꿈꾸는 이
흙에 묻혀서도 꿈꾸는 이,

봄나무 그대는
봄마다 새싹으로 돋아난다

 

9. 불이不二, 그대 안의 새싹   

    

무를 깎다가 빗나간 칼이
손바닥을 깊숙히 찔렀다
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피가
멎지 않고 흘렀다

손이 퉁퉁 부어, 마음도 덩달아 부어올라
눈도 코도 귀도 없는 나날이 영원히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갇힌 창 안쪽에서, 부기 빠진 상처가 딱지를 만들며
제자리를 잡아갔다

그 뒤로 나는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아무리 피가 흘러도)
바깥에서 부는 꽃바람, 먼 곳의 눈빛을 기다리지 않는다
촘촘한 시침의 그물 짜는 어부가 되어
내 안의 바다 깊푸른 수심에
가만히 두레박줄을 풀어놓는다

저 깊은 뿌리에서 연초록 새싹이, 기쁨의 꽃 한 송이가
피어오를 때까지 숨을 고르며
고요히 두레박줄을 당긴다

[시작노트] ‘무’는 무우도 無도 되는 중의적 의미로 쓰였다.
허무의식을 느끼는 일상의 삶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철학적 사유를 생활시로 형상화시켜 표현해본 작품이다. 먼 곳의 누군가가 와서 치유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상처를 스스로 자기 혀로 핥으며 치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한 편으로는 고마운 自燈明의 능력을, 모든 ‘그대들’에게도 다 존재하는 자기 안의 능력을,

 

10. 운문호일雲門好日, 마른 닭뼈     

 

닭튀김을 먹고 남은 뼈를
뒷마당에 널어 말린다

맑은 가을볕손가락이 뼈들을 바짝 바짝 말린다
길고 짧은 뼈들을 속속들이 말린다

제자들과 길을 가던 석가모니는
길가의 마른뼈 무더기를 보자 그 앞에 절했다지
몇 생 전前 부모의 뼈인지도 모른다고
검은뼈 흰뼈 삭은뼈 덜 삭은뼈에 공손히 절했다지*

나도 오늘
말라가는 닭뼈에 마음으로 절한다
몇 생 전 부모님 뼈,
몇 생 후의 나의 뼈,

굽이굽이 휘어지는 강물의 흰 뼈가 보인다
산비탈 오르며 미끄러져 주저앉는 뒷모습
굽어진 구름의 등뼈가 보인다
뒤틀린 바람의 무릎관절이 다 보인다

바람 든 이승의 무릎 꿇고 다시금
마른 닭뼈에 절한다

*<부모은중경>에서 차용 


11. 코이법칙     


코이라는 비단잉어는

어항에서 키우면 8센티미터밖에 안 자란다

냇물에 풀어놓으면

무한정 커진다

너의 꿈나무처럼,

 

李惠仙 약력: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월간 『시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인,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제 32회 윤동주문학상, 제29회 한국현대시인상, 제24회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제1회 자유문학상, 제7회 선사문학상, 2012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수상. 2016<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한국 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한국 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시문학회와 강동문인회 회장 역임 (현재 지도위원 및 고문)
•국어국문학회, 동악어문학회, 국어교육학회, 우리어문학회 평생회원
•  「현대향가」 「유유」 「진단시」, 「남북시」동인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세종대학교, 신구대학, 대림대학 강사를 지냄.
<현재>
• 동국문학인회 회장.  『자유문학』추천위원, 『문학과 창작』 『불교문예』편집위원.
•한국 문인협회 이사.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학 아카데미,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선사 문예대학, 하남 문예대학 지도교수
•시집 『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평론집『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전자책)『 New Sprouts within You』 영역시집(공저) 『유치환 시의 효용론적 연구』외 논문 다수.
•<세계일보>에 <이혜선의 한 주의 시> 연재 (2013.12.~2014.9.)

e-mail: hs920@hanmail.net  
blog.daum.net/hs920  (다음 블로그 <시인 이혜선의 문학서재>)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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