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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중국 수필선]란웨이개(烂尾狗), 딩즈고양이(钉子猫) 등 3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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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8  17: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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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란웨이개(烂尾狗), 딩즈고양이(钉子猫)
 글/아즈(阿紫)
 
12년전에 결혼하였을 때, 집에는 단지 두 고등 동물만 있었는데 바로 아내와 나였다. 그 후, 다른 포유동물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가맹한 것은 헨리인데, 이 개는 원래 장인어른이 기르던 포인터개(波音达犬)이다. 장인어른은 정년퇴직한 후 한 회사에서 근무하였는데 사업부에서 개를 기르기 불편하여 우리에게 잠시 맡겨 기르게 했다. 그런데 뜻밖으로 11년이나 기르게 되었다. 지금 이 늙은이는 여전히 신체가 건강하고 세가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투기 좋아하고, 색을 좋아하고, 먹기를 좋아한다. 아마 아직도 수년간 우리를 괴롭힐 것 같다.
아내는 늘 “헨리는 마치 부실공사(烂尾) 건물 같아요. 아빠가 우리에게 내맡겨 버린 후, 너무나도 우리를 괴롭혔어요라고 원망했다. ‘헨리가 두 살 나던 해에, 한번은 잔디밭에서 비둘기를 발견하고 강아지 줄에서 벗어나 쫓아 가다가 한 할머니를 치어 넘어뜨렸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검진 비용을 적잖게 냈다. 4살 때, ‘헨리는 자기에게 집적거리는 귀빈을 물어서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 이 몇년간 배상금을 계산해보면 헨리의 몸값은 그야말로 상당하다.
나는 늘 “하지만 만약헨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미 이혼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몇년간, 우리는 말다툼이 많았는데, 매 번 양측의 감정이 격해질 때면, ‘헨리가 우리 사이에 가로 누워 망연한 눈길로 나를 쳐다 보았다가 또 아내를 바라보곤 하면서 번마다 성공적으로 우리의 분쟁을 화해시켰다. 이것만 생각해도 우리는 꼭 ‘헨리’로 하여금 편안한 만년을 누리게 해야 한다. 나는 ‘헨리’가 죽은 후, 그의 유골을 남겨두었다가 앞으로 우리의 무덤에 묻고 저승에서도 계속하여 우리를 화해시키게 할 예정이다.
‘헨리’는 동성, 동류들과는 아주 흉악스럽게 대했지만 종류가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아주 대범했다.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동네의 일부 학부모들은 자식이 놀이만 탐내다가 학습에 영향을 줄까봐 각종 애완동물을 바구니와 함께 창밖으로 버린다. 우리는 비단털쥐(仓鼠) 한마리와 토끼 한마리를 주었는데 집에서 ‘헨리’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최근 몇년, 우리는 또 길고양이 새끼를 여러마리 입양했는데 많을 적에는 8, 9마리 되다보니 ‘헨리’의 생활 공간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헨리는 그대로 참았다. 초저녁에 우리가 ‘헨리’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면 한 두 마리 길고양이가 뒤에서 따라다니곤 한다. 그들은 아마도 ‘헨리’를 큰형님으로 보는 것 같다. 고양이와 개가 동반하여 걸을 때마다,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구경하는가 하면,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지난 2년간,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신진 대사가 비교적 원활하여 인터넷에 올리면 보통 한 달도 안 가서 누군가가 입양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고양이를 점점 보내기가 어려웠다. 백신을 제대로 접종시킨 고양이마저 입양하려는 사람이 적은데 아마도 고양이의 번식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같이 고양이를 기르는 한 친구는우리 집에는 고양기가 25마리 있는데 이 놈들은 마치딩즈후(钉子户,도시 건설의 토지 징발에 불복하여 집을 내놓지 않는 세대주)’와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외과의사여서 수입이 적지 않지만 벌써 딩즈후들을 먹이느라 파산하게 되었다.
마워이두(马未都)는 일찍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서로 혜택을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헨리 그리고 우리 집 꼬마 고양이들은 우리와 확실히 호혜 행위 법칙에 부합된다. 이처럼 많은 딩즈후들을 힘들게 기르는 것은 보기에는 일방적인 지출같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노력은 일종의 수행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사상적 경지를 높여 주기에 우리는 여전히 호혜적 관계에 있다.
 
 2. 꼬마여, 너의 그 입양된 적 있는 눈빛
 글/밍챈차(明前茶)
 
퇴근할 때, 교외의 CBD 넓은 거리에는 이미 오가는 사람이 적어졌다. 공기 속의 계수나무 꽃 향기는 성기고 풋풋하게 변하여 더 이상 활짝 피었을 때처럼 향기롭고 풍성하지 않다.
나의 곁에서 걸어가는 한 여인은 모니터를 향해 계속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웃고 난 후, 여러가지 걱정과 근심을 문의하는가 하면, 또 한숨을 쉬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의 주의력은 스크린에 집중되어 마치 원맨쇼를 하는 것 같았다. 2분 동안 듣고 나서 나는 그녀가 고향에 입양되어 있는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상심하여 외할머니가 그를 동영상 앞에 불러오면 아이는 발차기와 싱갱이를 하면서 화합하지 않았다. 마침내 야근에 지친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하는데 흥미를 잃었다.
“나도 하루 빨리 너를 난징(南京)에 데려오고 싶단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중한 비음이 있었다.
입양된 경력이 있는 아이의 눈빛은 부모님과 헤어지지 않은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 이전에 핸드폰과 같은 통신수단이 없을 때, 몇 년 동안 외할머니 집에 입양된 아이로서 부모님이 그리워지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우체국의 장거리 전화방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번호에 따라 호출된 후에 접선 복무원의 지령에 따라 한 투명한 정자에 들어가 장거리 전화를거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이런 행동이 많게 되자 마침내 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
“넌 전화도 안 하고 자주 여기에 와서 뭘 하느냐?”
나는 당황해서 일어나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발끝만 바라보았다.
“전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요. 이 전화로 난징에 연결할 수 있나요?”
“베이징에도 연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전화하는 사람들은 보통 친구에게 경조사 통지를 하는데, 너 같은 꼬마가 이곳에 와서 무슨 소란을 피우느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다만 마음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남자에게 노호할 뿐이다.
얼마후, 같은 반급의 한 여학생이 나에게 시 중심을 흘러 지나는 운하가 서북 방향에서 흘러 오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곳은 너의 부모가 계신 방향이 아니냐? 나는 그 강에서 길고 긴 예인선을 늘 보는데 혹시 배위의 사람에게 부탁하여 너의 부모에게 말을 전할 수 있을거다.”
예닐곱 살의 어린이는 그야말로 천진해서 나는 상상 외로 그의 말을 믿었다. 하학 후에 우리 두 가닥의 머리꼬리가 흐트러진 소녀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하나, 하나의 돌다리를 건너,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수증기가 자욱한 운하 제방으로 갔다.
그곳은 인근 주민이 작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채소와 무를 드문드문 심었다. 흙 비린내와 물 비린내가 섞여 우리의 얼굴을 서글프게 감싸고 있었다. 채소밭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우리는 마침내 그 혼탁한 운하를 보았고, 붕 기적을 울리는 화물운반선을 보았다.석양이 선창위의 기름기가 번쩍이는 까만 우천을 밝게 비춘 것을 보았다.
뱃머리 위의 여인은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연탄난로를 피우고, 막내아이를 등에 업고 허리를 구부려 야채볶음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서 좀 큰 아이 두 명이 갑판위에 잠자리를 세우고 쫓으며 장난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때때로 그들에게 호통을 쳤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었다. 나는 갑자기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이 가족의 표류를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고독을 동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반평생을 배에서 생활한 이 사람들은 자식들이 모두 부모의 곁에 있다. 그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 갔는데 나에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지? 그날, 나는 배를 따라 아주 멀리멀리 걸어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석양이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 운하의 밤이슬이 내려왔기 때문에 나의 신발 위에는 제방 위의 진흙이 가득 묻었다. 여러해가 지난 후, 나는 그 배를 쫓아가는 저녁 무렵이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종래로 헤어진 어린시절을 겪어 본 적 없으면 오직 행복하고 평범한 영혼을 양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코 샤넬(可可香奈儿) 여사는 그녀의 만년에 자기의 어린 시절 수녀원학교에 다닌 참담한 경력을오직 어린 시절에 철저한 외로움을 겪어야만 뮤즈(缪斯, muse)의 차디찬 키스가 너의 이마에 떨어진다고 비유했다.
 
  3. 사랑하는 한 탐욕이 가장 많다
   글 /쇼우요(肖遥)
   
▲ 루이전(如懿传)의 루이
요즘 인기리에 방영된<루의전(如懿传)>을 보니, 과연 그 인기의 이유가 있었다.
후궁에서 다른 비빈들은 자기가 동반하고 있는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맹수 혹은 곧 맹수로 변신하게 될 것임을 다소 알고 있었지만 오직 루의만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기대하고 진심으로 함께할 뿐이다. 무협소설에서 가장 살상력이 강한 병기는 빙퍼선전(冰魄神针)이라 하는데 차거운빙신(冰心)으로 만들어져 다른 권모병기들을 순식간에 무력하게 한다. 하지만 빙신(冰心)과 빈전(冰针)은 세상에서 가장 보기 드문 물건으로서 오염되기 쉬워 마치 온실 속의 꽃봉오리와 같다.
<주역(周易)>잠룡재연, 견룡재전, 비룡재천, 항룡유회(潜龙在渊,见龙在田,飞龙在天,亢龙有悔)”라고 했는데, 사물발전의 법칙도 대부분 이와 마찬가지이다. 깊은 못 속에 잠복해 있는 용은 따뜻한 정감을 나눌 수 있지만 하늘에서 호풍환우하는 비룡이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처럼 흑화되고 함께 싸우는 파트너이기에 온실 속의 꽃봉오리를 보호하거나 빙원이 오염되지 않게 보호할 기분이 없다.
<루의전> 첫 시작을 보면 사랑이 의지할 곳 없고, 살아 남기 위해 오로지 싸워야 하는 것이라는 후반의 흐름을 거의 예측할 수 있다. 지난 번 궁정 투쟁의 챔피언인 태후가 좌석에 앉아 새 황제의 옛 사랑과 새 비빈들을 내려다 보며너희들은 꽃망울처럼 신선하고 연하구나라고 말한다. 꽃봉오리들은 태후의 이 말이 자기들의 젊음과 아리따움을 질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여기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부러움이 조금이나마 있지만 주요하게는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에 대한 감회와 이 꽃다운 여인들을 위해 흘리는 식은 땀이다. 오직 경험해 본 사람만이 후궁은 사실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전쟁터로서 어떤 사람은 시체가 되어 죽게 되고, 어떤 사람은 죽음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되고, 최후의 승자는 오직 한사람뿐이라는것을 알게 된다.
이 드라마에 대해 “높은 직위에 있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옥신각신 암투를 벌이고, 서로 함정을 파 상대방을 해치는 모습을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도 영화와 텔레비전 문화의 일대 가관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진짜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이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피비린내가 풍기고, 꿀벌은 향기가 가장 풍기는 꽃을 주시하며, 파리는 가장 썩고 구린내 나는 덩어리를 노리게 되는데 이것은 생물의 본능에 불과하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속에서 살아 가면서 어느 누가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고, 자신이 권력의 진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척하는가?
다시 말해, 권력의 진공 속에만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신기한 점은 바로 생장하는 토양과 조건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자주 말하는 평등에만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사랑은 납치의 형식으로도 나타난다. 영화 <붉은 수수밭(红高粱)>에서 쥬얼(九儿)이 수수밭에서 워예예(我爷爷)와 하는 사랑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할 수 있는데 당사자들은 그래도 불같은 사랑을 한다. 사랑 자체가 본래 기적이고, 뜻밖이고, 우담화이고, 불꽃이다. 사랑은 심지어 엉망진창으로 혼탁한 공기 속에서 살아나는 한 송이 꽃의 경이로움이다.
사랑은 쉽게 전기가 나가지만 생활은 계속 해야 한다. 사랑만 하고 바치려 하지 않고, 경험하려 하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가장 탐욕스러운 것이다. 칼빛과칼의 그림자, 옥신각신 싸움은 모두 사랑이 부여하는 세트일 수 있는데 마치 루의(如懿)처럼 마침내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고, 사랑의 이상이 티끌 속으로 떨어졌고, 삶의 현실을 위해 싸워왔고 발버둥쳤다. 루의뿐 아니라 좋은 작품에는 모두 이처럼 아름다운 힘이 있는데,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생활의 흐름은 진실이고 그들 자신도 진실하기때문이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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