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보는 2019 한국문인의 정감세계

▲ 백성일 약력 : 심상 신인상등단, 시집 < 멈추고 싶은 시간 /외 사화집 >,
작가와 문학상, 백두산 문학상, 시정회 회장, 심상문학 회원, 대구 시인협회 회원, 동북아신문 상임이사.  '제1회 백두산문학상' 수상, '도라지' 문학지 해외문학상 수상.  

1. 붉은 장미의 향기여

 

심장을 찌르는 큐피트
화살의 아픔을 모른채
도도함을 지키기 위하여
온몸을 창으로 무장한
절박함이 애잔하다
장미를 보고
장미라 부르지 못하고
그냥 장미라 부른다.

오월의 하늘을 질투한 먹구름이
하늘을 더듬더니 힘은 잠간이고
그리움 되어 떨어지며
얼굴을 적시는 희열을 안고
활짝 핀 봄 속에서
장미를 보고
장미라 부르지 못하고
그냥 장미라고 부른다.

아-아!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붉은 장미의 향기여


2. 바람 이었네

 

하늘과 땅은
흰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함박눈이 내리네

마음은 소년이 되어
몸으로 세상을 쓸고 다니며
흘린 낙엽에 생각이 멈추고
쓸고 다니는 바람 이었네

단풍이 낙엽 되고
마음은 세월을 먹어버리고
푸른 잎의 시절 찾아 헤매네

내가 낙엽인지 나만 모른채
함박눈은 소년의 얼굴을 적시며
이리저리 어제를
쓸고 다니는 바람 이었네

 

3. 이슬

 

심술 가득한 바람이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멀미의 고통을 숨기고
몽롱한 꿈속인가
어제도 내일도 없고
마주치는 눈빛도
부끄러운
아침나절의 안개꽃
향기 되어 날리는
끝없는 바람의 시샘에도
사랑과 몸은 하나 되고
햇살이 슬쩍 들어다보니
수정이 되어 반짝 거린다

 

4. 시(詩)를 마시면서

 

가야산 마루에 걸터앉아
노을을 안주 삼아
시(詩)를 마시고 있는데
산중턱에서 흰 구름이 올라와
슬그머니 자리하여
마시고 또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고
동녘의 이글거리는 불꽃
생각 밖에 일이며
석양이 귓속말로 사랑할 날도
많지 않다고 일러주는데,
비가 되어 흰 구름을 적시니
방울방울 맺히고
앞산도 덩달아 흉내 낸다

 

▲ 백두산 미인송

5. 할매 한태 물어보고

 

중국 길림시 어느 작은 주막집 그를 만났다
오십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 통성명도하지 않고
뜬금없이 고향부터 묻는다.
“경상도 대구라에”
가는 말이 있으면 오는 말이 있듯이
“나도 경상도라에”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같은 동네 사람을 만났으니
경상도 어디인지 물으니 뜸들이고 나도 침묵 한다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할매 한태 물어보고 할매 한태 물어보고”
구름 잡듯이 할매는 기어들어가는 죄인처럼
사년 전에 하늘나라로 이사갔다한다
약속한 것처럼 술잔은 바쁘고 슬픔에 지친
부모 잃은 소년처럼 토해낸다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다 스마트폰만
할매 한태 사주었다면 오늘 같은 날 물어보면 되는데”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고 내손을 덥석 잡으며
“그러면 내 고향도 경상도 대구인기라”
수정 같은 보석이 술잔을 일렁이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래, 니 고향도 경상도 대구인기라”
우리는 죄 없는 흰 술만 죽이고 정신은 몽롱하고, 그는
“대구가 어디라에”
“어디기는 경상도에 있는 기라”

 

6. 낙장불입

 

시월 단풍을 보고
바람풍이라
예전부터 남자는
풍을 칠 줄 알아야 하고

사나이의 허세가
세월을 쫓아다녔고
삶은
낙장불입 이였다

그래도
시월의 단풍은
바람풍이다

  

7. 천재소년의 고래잡이 낚시

 

천재소년은 올해 열일곱 살이다
오늘도 목욕탕에서 고래잡이 낚시 한다
바늘도 없는 낚싯대를 물에 담가 놓고
몸도 눈도 요동 없이
뚫어지게 목욕탕 물만 들어다본다
아버지가 뒤에서 물어 본다
고래 잡아 무엇 할 것인지
하늘만큼 땅만큼 큰고래를 잡아서
시장에 가서 돈 많이 받고 판다고 한다
돈은 어디에 쓸 것인지 물어보니
낚싯대 산다고 한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고래잡고 또 고래팔고
또 낚싯대 사고
또 목욕탕에서 고려잡고 또 고래팔고
개미 쳇바퀴 돌 듯
천재소년은 낚시에 바쁘다
강물은 소년의 나이를 업고 쉼 없이 달아나며
소년은 계속 개미 쳇바퀴 돌리고
오늘도,
하늘만한 고래 잡는 꿈을 꾼다

 

8. 연꽃 향기

 

뭉글 뭉글한 구름이 솜사탕 되어
발자국 소리 죽이고
사뿐히 파란 가슴위에 내러 앉았네.
기다림에 지친 만남은
눈물이 구슬 되어 가슴을 더듬고
두 몸이 하나 되어
황홀한 정사를 이루고
흙탕물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청정한 몸과 마음
그대의 향기가
세상을 정화시키고
아! 이제,
잊을 수 없으며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해도
푸른 마음은
그대를 쓸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9. 청춘을 덫으로 묶어놓고

 

칠복이놈 장딴지 알통
옆 눈으로 보면서
허우적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마음이 애잔하여
예전부터 들은 구석이 있어
봄부터 장어와 벗하여 지내고 보니
어느 날,
그림자가 고추밭 작대기 같고
얼굴은 방금 찐 찐빵 외피다
고속도로 차창밖에
푸른 숲들도 싱그럽게
청춘의 향기 날리는데
내 님은 옆자리서
졸음과 싸우고 있으며
핸들은 가볍고
흘러간 옛 노래 열창 한다

빛바랜 사진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10. 바람의 실체

 

강 뚝 숨은 곳에서도
한그루 나무가 싹틔우고
푸름을 자랑하며 단풍 되어
살아 있음을 알리는데,
허공중의 허공
실체도 보이지 않고
눈으로 귀로 손으로도
확인할 수 없으며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나는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잘 알고
초여름 서늘한 어느 날
상쾌함이 가슴속까지
적시는 너의 기운을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행인 것을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행하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이미 내 가슴속 깊은 곳까지
흔적을 남기고,
허공중의 허공인줄 알았는데
너의 실체가
단풍 되어 살아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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