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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8]김재연 수필 '4월이 오면' 외2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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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9  12: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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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김재연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수필 수십 편 발표.  '현대시선' 수필로 등단.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1.  4월이 오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범쯤 들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의 시<황무지>에 쓴 첫 구절이다. 시 전체의 내용은 그 시대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를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4자는 죽음과 발음이 같아서 전화번호도 가능한 4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한국에도 역사적으로 4월에 아픈 사건들이 여러 번 일어났다. 4자는 사람들에게 그리 호감 가는 숫자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4월은 늘 나에게 특별함을 선물해 주었다. 겨울의 긴 추위를 지나 꽃샘추위와 함께 드디어 4월이 왔다. 온 들판이 자연의 조화로 연초록빛이 물드는 계절이다. 겨우내 잠자코 서 있던 나뭇가지에서 볼록볼록 사춘기 여자애들의 젖 망울이 움튼다. 4월은 꿈과 희망이 움트는 계절이다. 이제부터 젊음이 시작된다. 해마다 이런 청춘의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아직도 사춘기 소녀인 것 같다. 

   4월이 오면 먼 들판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귀속을 맴돈다. 싱숭생숭 해진다. 나를 끌어당기는 싱그러움에 도저히 넋 놓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불안하고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4월이 오는 소리다. 나를 설레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계절이다. 가느다란 팔을 흔들며 너도 나도 눈을 뜨는 개나리꽃이 서울의 대로변을 노랗게 물들인다. 봄의 궁전을 방불케 한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하르르 흔들리는 연분홍빛 벚꽃으로 눈부신 길을 걷노라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진달래꽃이 활짝 웃는 앞동산으로 마음의 화살이 날아간다. 집 앞에 드문드문 심은 목련나무 가지에 무수히 켜져 있는 하얀 목련꽃 초롱불이 4월의 밤을 환하게 비춘다. 

  따스한 햇살이 온 들판을 애무하는 이 계절에 집안에 나를 가두는 일은 불공평한 일이다. 긴 기다림에 답답했던 마음을 달래고자 산책로에 나서본다. 아지랑이가 은빛 너울을 쓰고 저 멀리서 나를 반기며 걸어온다. 싱긋한 봄 향기가 나를 향해 부드러운 바람을 선사한다. 폐부로 느껴지는 봄내음이다. 냇가에 생머리를 실실이 풀어 헤친 수양버들이 나를 반기듯 손짓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냇가의 버들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주던 오빠가 오늘따라 보고 싶어진다. 늦은 밤에도 굵기가 다른 피리를 계속 불다 보면 입술과 잇몸이 아팠다. 어른들은 밤에 피리를 불면 구렁이가 찾아온다고 하셨다.  

  4월이면 꽁꽁 얼었던 내 마음속에 매년 약속한 듯 움터 나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매년 봄이면 나물 캐는 버릇이 몸에 베여 있었다. 불그레한 꼬리를 삐죽이 내밀고 나오는 달래가 이른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 언 땅에서도 하얀 머리를 땅에 파묻고 생명을 약동하는 달래가 참 대견스럽다. 상긋한 봄 향기를 듬뿍 담은 파랗게 돋아나는 냉이도 뒤질세라 돋아 나온다. 숙성된 항아리에서 시골 된장 한 숟가락을 푹 떠서 뚝배기에 풀어 넣는다. 달래랑 냉이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밥 도적이 따로 없다. 향과 맛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돌아가신 엄마의 부뚜막 냄새다. 고향의 아련한 추억이다. 

  4월이면 내 마음의 산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도 내 맘은 고향의 향수에 젖어 들판으로 여행을 떠난다. 돌 사이나 자갈길 사이에 비집고 나온 강인한 민들레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이맘때면 상긋한 향이 군침을 돌게 하는 돌미나리도 예쁜 얼굴을 하나, 둘씩 내민다. 새파란 봄나물을 한 뿌리 한 뿌리씩 정성 담아 캔다. 

  봄나물 캘 무렵이면 한마을에 사는 단짝인 애화. 명화, 현화랑 약속해서 들로 가는 길은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엄마가 노릇노릇 뭉쳐준 누룽지와 콩가루에 주먹밥을 묻혀서 싸준 것이 유일한 간식이었다. 들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 음식은 지금도 잊지 못할 엄마의 손맛이다. 우리는 희희낙락 웃고 떠들며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물을 캤다. 큰비가 쏟아져 걸음아 날 살리라고 허둥지둥 뛰다가 나물바구니를 뒤엎으면 친구들이 하나같이 달려와 주워 주느라 한바탕 눈물 나게 웃기도 했다. 밤에 눈을 감아도 눈앞은 온통 민들레 밭이다. 헛것이 보였다. 민들레 캐오는 날은 우리 가족의 비빔밥 파티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봄나물 드시는 날이면 자연이 준 가장 행복한 선물을 받은 날이라고 하셨다. 봄나물로도 우리가족은 입이 즐겁고 맘이 부자가 된듯했다. 큰 양푼에 민들레, 미나리, 달래를 가득 넣고 할머니표 고추장까지 넣는다. 엄마가 큰 주걱으로 쓱쓱 비벼대면 콩나물 같은 우리 형제들은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비빔밥 양푼에만 눈길이 꽂힌다. 

  몇 년 전 지인들과 장항에 간 적이 있었다. 안내해 주시는 분은 그 고장의 토박이였다. 마침 4월이라 나는 그런 청정지역에는 나물이 많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여기는 나물이 없냐고 내가 여러 번 물었다. 그분은 여기는 바닷가라 나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바다를 둘러싼 숲을 지나고 있는데 내 눈에 딱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파란 미나리가 줄지어 서서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우리 일행은 함께 나물 뜯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봄을 만나 너도나도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옆에 신기하게도 하얀 스치롬프박스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듯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미나리를 꽉꽉 채워 넣고 잊지 못할 추억의 사진까지 담아왔다. 

  꽃이 한참 잎을 펼칠 무렵에 불청객인 꽃샘추위가 들이닥칠 때도 있다. 비바람까지 함께 찾아와 시샘을 부린다. 어떤 해는 벚꽃이 금방 피었다가 쓸려가듯이 나뭇가지만 휭하니 남을 때도 있었다. 다시 겨울이 온 듯 착각도 한다. 4월은 겨울과 봄이 뒤엉켜 분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듯이 우리의 인생길에도 추울 때도 따뜻할 때도 있을 것이다.  

  4월은 해마다 나에게 새 희망과 꿈을 움트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모든 아름다운 결과는 새싹이 움트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한 톨의 새싹을 틔우기 위해 나무는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을 잉태할 감로수를 겨우내 끌어들이고 있었다. 4월에는 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옷을 가볍게 입어 맘의 무게도 가벼워진 듯하다.
  4월은 더는 잔인하지 않다. 불길함의 상징이 아니다. 아팠던 상처를 보듬고 우리에게 다가올 희망찬 내일을 향해 푸르른 들판으로 나래쳐 보자. 봄이 사뿐사뿐 오고 있다. 4월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2. 빈틈


  빈틈은 허술하고 부족하다는 뜻과, 물체와 물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틈이 없다면 얼마나 숨 막히고 답답했을까? 이러한 빈틈으로 인해 실무적인 큰 차질이 없다면, 약간의 허술함이 가끔 분위기 전환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지 않게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덜렁이>란 별명이 붙어 다녔다는 사실을 아마 깜깜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선사해 주신 별명이었다. 시험 치를 때면 나는 수학 문제를 다 풀어 놓고 마지막 소수점을 엉뚱한 곳에다 찍기도 하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가끔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나의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면 <덜렁이>란 별명을 붙여준 선생님이 한없이 야속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완벽하게 일 처리하는 걸 보면 나는 늘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는 노력도 많이 해봤다. 하지만 작심삼일뿐이었다. 늘 어딘가에 나사 하나가 빠져서 실수투성이였다. 정중한 자리일수록 나 자신이 불안해졌다. 조신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식사 중에 사레가 들어 얼굴이 지지 벌게지는 일이 가끔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차분하면서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한 지인이 자신은 음주가무 중 음주만 할 수 있지 다른 예체능에서는 완전 빵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인들이 우리니까 너를 데리고 놀지 하면서 놀려댄다고 했다. 그의 허구픈 웃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 편하게 그에게로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 엿보였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 지인은 예체능까지 잘했으면 아주 완벽한 사람이었다. 인간성이 좋아서 친구가 그에게 차를 사줄 정도였으니 그의 빈틈이 큰 작용을 한듯했다. 그만큼 큰 도움을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 똑똑한 사람보다는 편안한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게 된다. 

  며칠 전, 절친인 동창의 영상 전화를 받았다. 속옷 차림으로 나타난 친구에게 나는 옷도 입지 않고 전화를 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친구는 오히려 크게 웃으면서 우리 사이에 그런 격식이 필요하냐고, 어릴 때 버들방천에서 볼 것 다 본 사이지 않냐고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친구가 하는 말이 우리세대는 지금 중년에 들어서서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움을 가지지만, 정신적인 공허함으로 외롭고 우울해질 수 있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빈 공간 꼭 필요하다고 했다. 만난 지 불과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 얼굴이 보고 싶어 영상 전화를 했다는 친구, 내가 친구에게 그렇게 편한 상대가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마웠다.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넘어 밤 열한 시가 되었다. 말이 통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삼십 년 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이박삼일 날을 새며 토론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던 이십 대가 문득 생각났다. 친구들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문학에 대해, 허심탄회하며 얘기를 나누던 그때가 그립다. 얼마만의 진지한 대화인가? 이 친구처럼 숨김없이 벗은 채로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친구가 과연 내 주변에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알고 지낸지 이십여 년 된 친구가 있는데 모두가 인정하는 똑순이지만 그 친구와는 마음 주기가 왠지 조심스럽고 편치가 않다. 너무 자기주장이 강하고 빈틈이 없어 될 수 있으면 함께 하는 자리를 피하고 싶을 정도이다. 속이 꽉 차고 빈틈이 없는 사람은 왠지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고, 날이 선 칼처럼 사람을 괜히 긴장시킨다. 

  모든 일에 뛰어나고 빈틈없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 된다. 잘난 것은 능력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열등감을 가지게 되는 상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너무 잘나도 외롭고 힘들다. 재능이 출중할수록 자신의 빈틈도 가끔 보여 주어야 사람들이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이 더욱 매력을 가질 수 있고 인간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유리는 단단하다. 매끄러워서 물기 하나도 붙어 있을 수가 없다. 창문을 닦을 때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자칫하면 얼룩이 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기 하나, 얼룩이 하나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유리는 부담스럽다. 대도시에서 고층건물들을 멋스럽게 유리로 지은 것을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와 반면에 여름에는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일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자칫 부딪히면 금방 깨져서 유리 파편들이 사방팔방으로 달아난다. 안과 바깥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 주는 유리의 장점에 비해 단점도 적지 않은 것이다.
  스펀지는 구멍이 많다. 물기를 있는 대로 빨아들인다. 촉감도 부드럽다. 상대의 장점이나 허물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빈틈이 많다. 우리 안에 누군가 들어오게 하려면 내 안에 빈틈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면 나의 빈틈을 보여줘야 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니 완벽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얌전한 성격이었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완벽한 성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덜렁이> 성격만은 가능한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여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왔다. 완벽함보다는 넉넉함으로 사람들이 기댈 수 있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빈자리를 만들어 쉬게 하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시원한 바람이라도 선물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쉼터를 마음껏 제공해 주고 싶다. 누구랑 비교하지 않고 내가 받은 달란트를 사람들에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랴!  

 
   
메밀 꽃 핀 전야

3. 메밀사랑

 

  요즘 같은 폭염날씨에 위장까지 뻥~뚫리는 메밀묵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살얼음이 동동 뜨는 오이냉국에 김치를 송송 썰고, 깨소금을 뿌린 메밀묵 한 그릇을 뚝딱 말아먹으면 그야말로 별미일 것이다. 부모님이 손수 만든 메밀묵이 오늘따라 눈앞에 어른거린다. 돌절구로 찧어서 만든 메밀묵은 매끈매끈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먹거리가 넘쳐 나는 시대다. 운동 부족으로 더부룩해진 내장의 불순물들을 메밀묵으로 말끔히 씻으면 좋겠다. 머릿속에 가득 찼던 번뇌도 함께 씻겨 버릴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다. 자식 사랑이 남달랐던 부모님은 뒤뜰에 있는 풀밭을 개간해서 조그마한 메밀밭을 만드셨다. 해마다 구월이 오면, 집 뒤편에 소금처럼 하얀 메밀꽃들이 작은 파도처럼 일렁이었다. 메밀꽃에서 나는 구수하고 은은한 냄새는 부모님의 살 내음인양 부드러웠다. 달 밝은 저녁이었다. 나는 동네 조무래기들이랑 메밀밭에서 키득키득 웃음을 참아 가며 숨바꼭질하며 쫓아다니기도 했다. 동년의 추억이 하얀 꽃잎처럼 피어난다. 부모님은 늦은 밤에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달빛을 빌어서도 해주셨다. 바자 옆으로 우리 형제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호박, 제철 과일을 심어서 자투리 밭을 알뜰히 활용했다. 

  옛날에는 첫 방아를 찧을 때나, 메밀 음식을 만들 때 돌절구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이사할 때마다 무거운 돌절구만은 빼놓지 않고 잘 모시고 다녔다. 부모님이 절구에 빻아서 만든 음식들은 우리 형제들의 입을 한없이 즐겁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메밀 음식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먹을 수가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돈을 주고도 사 먹을 곳이 그리 흔하지가 않았다. 한국에 와서 가끔 재래시장에 가서 메밀묵을 사 먹으면 왠지 뭔가 빠진 맛이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개구쟁이 오빠들의 웃는 얼굴이 빠져 있었던가 보다. 나의 입맛은 아직도 시골의 순수한 우리 전통 맛에, 어머니의 정성 어린 손맛에 길들어져 있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힘든 그 시절에는 손이 많이 가는 메밀 음식을 해 먹는 집은 온 동네에서 한두 집뿐이었다. 정말 귀한 손님이 올 때나 먹어 볼 수 있는 희귀한 음식이었다. 가끔 우리 형제들이 메밀 음식이 먹고 싶다며 어머니께 졸라댔다. 할아버지 생신 때만 만들던, 깊이 간직했던 메밀을 어머니는 하루 전에 푹 불려 놓았다. 이튿날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함께 절구질하셨다. 두 분은 절구질하면서 늘 민요를 흥얼거렸다. 말이 필요 없는 장단이었고 박자였다. 또한, 수십 년간 손잡고 살아온 높 낮은 인생길의 수레바퀴였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 귓가에 쟁쟁히 남아있는 민요, 타령들을 요즘은 나도 몰래 따라 부르게 된다. 아버지께서 절구 고를 높이 올릴 때면 어머니는 세파에 상접한 손으로 절구 변두리에 흩어진 메밀을 잽싸게 싹싹 모아 놓으신다.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허물을 용서하고 보듬는 부모님의 우묵한 절구 사랑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옆에서 잔심부름하면서 메밀전과 메밀묵 먹을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우리 집은 늘 일을 한다기보다는 일을 즐기는 편이었다. 

  메밀 빻는 작업이 끝나면 어머니께서는 큰 대야에 물을 붓고 메밀껍질을 보자기에 거르기 시작했다. 메밀은 빻기 전의 껍질은 탱탱하며 세모나 있고 끝이 뾰족하다. 절구에서 찧고 빻는 과정을 거쳐 껍질을 벗기고 보니 하얗고 보드라운 속살이 보자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흔들고 짜며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메밀 녹말이 가라앉았다. 고운 앙금이 신기해서 만져 보면, 부모님의 솜사탕 같은 사랑이 와 닿는 촉감이었다. 

  이때쯤, 아버지께서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셨다. 늘 그랬듯이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이 추울세라 아궁이에 불 피우는 담당이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불을 지피고 계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큰 가마솥 곁에서 거른 앙금을 주걱으로 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젓다가 솥 온도가 가해질수록 점점 빨리 저었다. 솥에 누룽지가 앉으면 화근 내가 나기 때문이었다. 열기로 인해 어머니는 땀을 훔치면서 저었다. 메밀은 속속들이 익어야 먹고 난 뒤 설사가 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알려 주셨다. 폭 익은 메밀묵 같은 사람이 되라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를 속으로만 끓이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도 젓는 요령을 터득해서 어머니를 도와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마무리할 때가 되면 주걱을 들었을 때 뚝뚝 끊기면 메밀묵이 완성된 것이라고 하셨다. 네모난 그릇에 퍼 담아 메밀묵이 굳을 때까지 어머니는 여러 번 눌러 보며 확인하셨다. 부모님께서 성인이 되어가는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듯이......

  어머니는 더운 열기가 꽉 찬 부엌에서, 메밀 전을 부치며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닦으셨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집 울안에 차고 넘쳤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 풍경이었다. 메밀묵을 만든 날은 우리 집의 잔칫날 같기도 했다. 호르르 메밀묵을 숨 가쁘게 먹어대는 병아리 같은 우리 형제들을 바라보시느라 부모님은 수저들 엄두를 못 내셨다. 메밀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이 나에게 훈훈한 향수를 불러다 주었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골수까지 베이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가슴 벅차도록. 

  내가 한국에 와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먹었던 메밀전문집을 손꼽는다면 한참은 꼽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점심이나 저녁 외식을 하게 되면 늘 소화에 부담을 주지 않는 메밀 음식을 선택했다.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외식도 모자라서 메밀쌀을 아예 집에 사다 놓고 쌀에 섞어서 지어 먹기도 했다. 몇 년 전, 휴가철에 평창의 유명한 메밀전문집을 차로 두 시간 달려서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 허술한 시장골목 가게에서, 부모님이 돌절구에 빻아서 만들어 주셨던 메밀막국수와 메밀 전을 맛볼 수 있을 줄이야! 혼자서 2인분을 뚝딱 먹었다. 

  메밀에 대한 나의 사랑은 특별했다. 메밀 베개를 오랫동안 사용해 온 나는 습관이 되어서 값비싼 라텍스 베개보다도 메밀 베개가 더 편안하고 숙면에 도움이 되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날에도 귓가에 사그락 거리는 메밀껍질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갈 수가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차 종류 중에서도 메밀차를 가장 즐겨 마셨다. 샛노란 메밀 차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해진다. 구수한 메밀 차를 마시면 혈관까지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메밀은 이 시대 누구나 잘 아는 건강식품이고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이기도 하다. 메밀은 한의학에서는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노폐물을 제거한다고 했다. 우리 선조님들은 이미 오래전 한식과 한의학에 깃들어 있는 건강의 비밀을 예지해온 영안이 있었던가보다. 어쩌면 세상에 혼탁해진 우리들의 시야를 메밀의 효능으로 씻어 주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오늘 점심에도 나는 37도의 폭염에 살얼음이 살살 뜨는 메밀막국수를 먹으며 지친 속을 달랜다. 모진 세월 속에 메밀처럼 견뎌 오신 부모님의 애환을 그려본다. 부모님의 메밀 사랑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신 전통음식의 보석 같은 사랑이었다. 이심전심 후손들에게 전해진 소중한 전통문화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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