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방예금 약력: 중국 (흑룡강 오상) 방송국 1급 아나운서, 흑룡강신문, 흑룡강방송 특약기자. 2015년부터 수필 창작 시작, 흑룡강신문, 요녕신문, 송화강, 청년생활 다수 발표. 수차 KBS 한민족 방송 우수상 수상, 2018년 3월 한국 계간 “현대시서” 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한국 문단 등단.

“응, 나도”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인데 아빠가 저에게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응, 나도’하구요. 이게 뭐지? 전 한 순간 어정쩡해졌어요. 하지만 이내 뭔지 깨달았어요.”여강사가 강의도중 자신의 스토리를 얘기했다. “응, 나도”에 대한 스토리다. 여강사는 올해 38세이다. 38년 동안 한 번도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아빠, 사랑해”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정확하게 6시간 후 여강사의 아버지가 딸에게 “응, 나도”하는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여강사의 아버지가 왜서 딸이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을 한 그 자리에서 “딸, 나도 사랑해”라고 하지 않고, 왜 몇 시간이 지난 후 문자를 보냈을까? 그것도 “응 나도 사랑해”가 아닌 애매모호한 “응, 나도”하고. 멋 적어서? 어색해서? 게면쩍어서? 쑥스러워서? 습관이 안 되어서? 이 부녀가 그린 그림이 우리 민족의 특징-성격적 양상을 잘 보여준 축소판이 아닌가 싶다. 우리 민족은, 아니 동양인(중국인,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특성이 있다. 중국식 표현을 쓴다면 ‘함축(含蓄)적이다’. 외국영화를 보면 서양인들은 스킨십이 아주 자연스럽고 부부사이에, 부모 형제사이에, 친구 사이에, 연인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한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표현에 너무 인색하다. 속으로 사랑하면서도 “죽어라”고, “사랑한다”라고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이 “어려운” 말을 여강사가 한 것이다. 여강사는 그야말로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13년 전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저자가 일본인인데 그 때 당시 그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물은 얼 때 수정체를 형성하는데 경우에 따라 수정체가 예쁘게도 형성되고 추하게도 형성된다. 저자가 실험을 해봤는데 물에 대고 ‘사랑한다, 예쁘다’등 긍정적인 말을 해주면 물은 아주 예쁘고도 규칙적인 수정체를 형성하지만 반면에 ‘미워, 사라져’라는 말을 하면 추하고도 일그러진 수정체를 형성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도 형성된 수정체는 그 모양이 아주 아름답다. 반면에 슬픈 음악을 들려주면 수정체는 아주 불규칙적으로 형성된다. 저자가 우리 민족의 대표성적 음악인 ‘아리랑’을 들려주었을 때 물의 수정체는 아주 아름답고 멋스러웠다. 바로 장송곡을 들려주자 예쁜 수정체가 순식간에 파괴되어 보기 흉한 수정체로 바뀌어버렸다. 물이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 싶다! 수정체를 특제카메라로 촬영을 했는데 촬영한 작품 마다 ‘어떤 말을 해주었을 때’, ‘어떤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라고 주석을 달았다.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과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형성된 수정체는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정화시키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런 현상을 과학자들은 자기마당이 형성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천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해? 굳이 그걸 말로 표현해야 돼? 행동으로 표현하면 돼지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필요하다면, 좋다면 해야 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끔 텔레비전에서 서로 다른 당에 소속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이 회의도중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 영국에서는 여야 간 국회의원들이 격한 충돌이 자주 일어나서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상대를 호칭할 때 이름 앞에 ‘존경하는’을 붙여서 호칭하도록 규정했다고 한다. 상대를 존경하든 안 하든 ‘존경하는 000국회의원님’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하자 영국 국회는 몸싸움이 사라지고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화평이 찾아왔다고 한다. “사랑한다, 존경한다”라는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꾸고 결과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딸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여강사의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적어도 수명이 1년은 연장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여강사는 어떻게 태어나서 38년 만에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육과 훈련과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여강사가 소속되어있는 회사에서 회사원들 사이에 인사말을 무조건 ‘사랑한다’로 하도록 회사규칙을 만든 것이다. 만나서 하는 첫 인사가 ‘사랑합니다’이다. 어떤가? 분명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것이라고 짐작된다. 나도 그렇다. ‘사랑한다’는 말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말을 듣는 자체만으로도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회사 직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를 인사말로 서로 주고받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을 연속 21번 하면 습관이 된다고 하는데 이들은 몇 개의 21번을 거쳤을까?’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가져올 시너지효과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사랑한다’는데 어쩔거냐구? 그 여강사가 소속된 회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어쩜 이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는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어딘가는 평화가 깃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꼭 그럴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를 위해서, 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말문’을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고.  
▲ 나의 기억, "아빠와 우산"
 사랑니 뽑기                                  
 두 달 전에 사랑니 두 대를 뽑았다. 그 중 한대는 뽑을 때 너무 고생해서 아마 영영 잊어질 것 같지 않다. 먼저 왼쪽 아래 사랑니를 뽑았다. 국부 마취제를 맞고 나서 이가 단 몇 초 만에 뽑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뽑으러 갔다. 당연히 잠간이면 "작업"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진료침상에 누웠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이 한대를 뽑는데 좋이 한 시간 넘게 걸릴 줄이야. 마취제를 놓고 나서 10여분을 역사해서 이가 뽑히는가 싶었는데 뽑힌 게 아니고 끊어졌단다. 끊어진 뿌리를 뽑아야 한다.
 조금 남은 이 뿌리를 뽑는 "공사"가 그렇게 번거롭고 고통스럽고 지루할 줄이야. 진료침상에 입을 최대한으로 벌린 주인공이 누워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기구를 번갈아 교체하며 부지런히 주인공의 입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자그마한 망치 같은 것을 넣고 한쪽에 대고 두드리는가 싶더니 뽑기를 시도해본다. 뽑히지 않는다. 또 한 번  망치를 넣고 두드리고 나서 집게로 뽑기 시작했다. 또 실패다. 입을 하 벌린 채 치과의에게 맡기고 있는데 괴롭기 짝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양악이 아파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참기 힘든 건 타액이 쉴새없이 분비되는데 어떤 땐 일어나 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구를 전기드릴로 바꾸었다. 이 뿌리에 대고 스위치를 넣으니 "윙'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강하게 났다. 집게가 집을 수 있게끔 이 뿌리에 턱을 만든 것 같았다. 전기드릴을 빼내더니 집게로 뽑기 시작했다. 집게가 턱에 걸리는 느낌에 이번엔 뽑히겠지 했는데 또 실패다. 망치로 두드리기를 또 한 번, 이어서 집게가 들어가서 이 뿌리를 꽉 집었다. 느낌이 좋았다. 치과의가 힘을 주는 순간 뭔가 쑥 뽑혀나가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완고한 이 뿌리가 뽑혀 나온 것이다. 치과의는 애를 먹이던 이 뿌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길게 생긴 입쌀 알 만 했다. 아마 너무 작아서 애를 먹었나보다. 
 사랑니, 참말로 예쁜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해석했다.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맨 안쪽 끝에 새로 나는 작은 어금니 ". 그런데 이름처럼 사랑받는 이는 아닌 상 싶다. 몇 년 전에 딸애가 사랑니를 뽑는다고 해서 생니를 뽑아도 되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거의 다 뽑으면 좋다고 했다. 내가 사랑니를 뽑기로 한데는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사랑니와 안 쪽 이발 사이에 음식물이 자꾸 끼여서 너무 귀찮고 짜증스러워 났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뽑기로 했는데 이렇게 곤욕을 치른 것이다. 그리고 뽑고 보니 두 대 다 뿌리가 짧고 기형으로 휘어져있었다. 뽑기 전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형이라는 말에 속이 시원해났다.
 이 뿌리를 뽑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서는  " 각인, 뿌리, 체질" 세 단어가 엇갈아 맴돌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어느 유명인사가 쓴 칼럼에 나온 세 단어다. 사람은 뭔가가 각인되어 있고 뿌리내려 있다고 한다. 각인된 것에 따라 응답 받고 뿌린 내린 것에 따라 열매 맺는다고 한다. 그 각인과 뿌리가 체질이 되어 그 체질대로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 하다면 이 각인과 뿌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다 각인된 것과 뿌리내린 것에 따른 결과라는  말이다. 안 좋은 각인과 뿌리는 꼭 마치 사랑니와도 같은 것 같다. 존재자체가 별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정상적인 존재들이 하는 일들을 방해한다. 때문에 뽑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뽑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 각인은 어떻게 되고 뿌리는 어떻게 내리는 걸까? 계속 보고 듣는 것이 나중에 각인이 되고 뿌리가 내린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는 가정의 자식이 나중에 장가가서 아내에게 폭력을 쓰는 확률이 일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보다 높다고 한 것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보고 듣고 한 것이 은연중에 각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선배를 만났었는데 선배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애가 어릴 때 남편이 한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마작 판을 벌렸는데 어른들이 마작 노는 것을 구경하던 4살짜리 아들이 어느 날 마작 쪽을 꺼내놓고 배열하는데 아주 예쁘게 그 것도 아주 절도 있게 배열하더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각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독서하기를 바란다면 독서를 권고하기에 앞서 부모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하다면 잘못된 각인은 어떻게 바꾸고 안 좋은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은 능동적인 훈련과 수동적인 훈련 두 가지가 있다. 
 반복적인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을 거쳐도 잘 안 바뀌고 잘 뽑혀지지 않는 것이 각인이고 뿌리다. 마치 나의 사랑니 뽑기와 같다. 
 혹은 겉은 많이 뽑힌 것 같은데 뿌리가 남아 언제든 치고 올라올 태세다. 더 크게 치고 올라오는 것도 있다. 남편 한 친구의 외삼촌은 이름난 노름꾼이다. 노름을 놀지 않으려고 스스로 한쪽 손 네 손가락을 끊었는데 현재는 발까지 동원해 더 심하게 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습관의 힘"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주제는 좋은 습관은 성공을 낳고 나쁜 습관은 실패를 부른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절대적으로 성공을 낳는다고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쁜 습관은 절대 성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매일 한 번씩 연거퍼 스물 한번을 하면 그 것이 습관이 된다고 한다. 스물한 번을 지속하는 과정이 바로 훈련이다. 능동적인 훈련은 의지력이 필요하다. 훈련을 지속하는 과정이 나쁜 각인이 빠져나가고 좋은 각인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이다.
 비록 과정은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사랑니는 결국엔 속 시원하게 뽑혀나갔다. 사랑니 뽑기는 눈에 보이는 과정이고 결과이다. 보다 힘든 건 눈에 안 보이는 안 좋은 정신, 사상, 이념의 각인, 뿌리, 체질을 뽑아버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다면 나를 지배하는 각인, 뿌리는 어떤 것이고 난 어떤 체질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니 뿌리를 빼는 동안 나는 속으로 내내 기도했다. 내 몸에 배여 있는 모든 안 좋은 것들이 오늘 뽑히는 사랑니처럼 송두리 채 뽑히게 해달라고.

 

브랜드의 창출과 그 가치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들, 갖가지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 넓고 긴 연못. 푸르른 나무 잎 새로 햇빛이 칠색무지개로 굴절되어 눈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숲 사이로 나있는 돌판 산책로에선 사람들이 삼삼오오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연못가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연못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기에 분주하다. 아담한 유럽식 건축물이 각별히 시야를 ‘자극’했는데 화장실이란다...... 내 고향 오상의 금산(金山)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변했다, 변했어, 너무 몰라보게 변했어.”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동창회 행사 코스로 금산공원을 찾은 동창들의 입에서는 연속 감탄이 쏟아져 나온다. 나의 학창시절 금산은 공원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산일뿐이었다. 금산공원의 포인트가 된 연못은 원래 작은 호수였다. 산 입구에는 대면적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한 여름날 과수나무 밑 그늘 밑에 앉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금산이 여느 산과 다른 풍경이었다. 현재 금산은 국가 급 생태공원으로 되어 오상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금산공원을 빠져 나와 시청 방향으로 향했다. 시청 주변에 즐비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은 제법 대도시 풍치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오상은 흑룡강성에서 가장 가난한 현(시) 가운데의 하나로 나라의 구제를 받던 곳이었다. 도로는 중심거리를 제외하고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바람이 부는 날이면 먼지가 세차게 흩날려 숨이 꽉꽉 막힐 정도였고, 비 오는 날이면 신발에 진흙이 떡처럼 들어붙어 발을 내디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바람현 먼지진 진창가”, “아버지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산다”는 타이틀이 붙었겠는가.  하얼빈-오상 공로를 달리는 택시에 이 주인공이 앉아있다. 3년 전부터 해마다 찾는 고향이지만 번마다 새롭고 정겹다. 매번 고향 행이 그러하듯 나는 눈길을 차창 밖에서 떼지 못하였다. 차가 오상경내인 우가진(牛家镇)에 들어서면서 예전과 다른 풍경이 시야에 안겨왔다. 몇 년 전 밀과 옥수수가 들어섰던 벌판에선 대신 벼 모들이 함초롬히 물을 머금고 자라 있었다. 한전이 수전으로 개답된 것이다. 그 밖에도 더 신선한 풍경은 도로 양편에 눈에 띄게 많아진 ‘미업(米业)’ 광고판이었다. 목적지인 오상시내 안에 들어서기까지 미업 광고판이 100개는 훨씬 넘는 것 같았다. ‘오상입쌀’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다. 수전면적이 30여 년 전 100만무에서 현재 250여만무로 늘어난 오상은 수전생산에서 천혜의 자연자원을 갖추고 있다. 공기, 기후가 벼농사에 알맞은 건 물론 토질이 비옥하고 수력자원이 아주 풍부한 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온은 쌀의 품질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민락조선족향 입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해 항상 시장 평균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그러했듯 3, 4십여 년 전 대부분 오상 농민들도 가을이 되면 입쌀 판로를 걱정해야 했고 쌀값이 떨어 질 가봐 걱정해야 했다.  이에 대비해 오상시에서는 90년대 초부터 민락입쌀을 주축으로 한 오상입쌀 브랜드화 전략을 내놓았다. 브랜드 창출은 홍보를 떠날 수 없다. 그 때 방송국에서 근무한 나는 ‘오상입쌀 브랜드 창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파종으로부터 모내기, 포전 관리, 수확, 가공에 이르기까지 추적취재를 진행하면서 오상입쌀 생산에 대해 대내외로 홍보를 진행하였다. 이 때 떠오르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오상입쌀의 1등 공신인 전영태 오상시용봉산향 농업기술보급소 소장이다. 전영태 씨가 80년대에 개발한 산량 높고 맛 좋은 “장립향(长粒香)”입쌀은 10여년간 현지 농민들과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우리 취재팀이 이를 소재로 촬영 제작한 TV다큐멘터리 “대지의 풍작을 위하여”는 성 방송프로 평의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이렇게 전영태 씨와 오상입쌀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오상시 정부차원의 홍보와 전영태 씨의 성과가 매칭이 되었던 것이다.  ‘오상입쌀’은 단순 쌀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상품이 되었으며 명실상부한 명브랜드가 되었다. 비단 오상입쌀 뿐만 아니라 양질 벼품종 개발자인 전영태 자신도 브랜드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전영태 씨가 개발한 “도화향2호” 벼종자가 없으면 오상입쌀의 오늘이 없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도화향” 덕에 오상 농민들의 수입은 주변 농민들의 평균 2배가 된다고 한다. “특히 햅쌀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이고 중국 공산당 고위층, 우리 청와대 격인 중난하이에도 공급된다.”이는 지난해 한국 KBS 방송 저녁 9시 뉴스에서 방송된 내용이다.  작년 중국 관영매체인 CCTV에서는 “쌀 생산으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오상시 농민들이 너도나도 시내에 들어와 아파트를 사 오상시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이룬다”는 보도를 한 적 있다. 오상은 현재 GDP가 흑룡강성 동급 시 가운데서 제8위라고 한다.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오상입쌀 브랜드화 전략이 이룩한 성과가운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특정한 상품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드다. 브랜드에 따라 이미지도 상품도 달라진다. 오상입쌀 브랜드는 그 가치가 얼마나 될까? 2016년 ‘중국브랜드가치 평가정보’ 영예판에는 “도화향(稻花香)”을 전형적인 대표로 하는 ‘오상입쌀’이 639억5500만위안의 브랜드 가치로 당당하게 ‘중국 제1미’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올해는 전영태 씨가 개발한 ‘오우도4호’(도화향2호)가 제1회 전국 양질미(자포니카)품종품질감정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오상입쌀 브랜드는 탐구와 탐색이 나은 결과물이다. 벼 생산과 홍보 전략과 전술에 대한 부단한 탐구와 탐색으로 ‘오상입쌀“이란 브랜드를 창출하였고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브랜드란 무엇일까? 똑같은 커피라도 길거리 자판기 커피는 한 잔에 1원밖에 안 하지만 고급호텔의 커피는 몇 십 원 한다. 이게 바로 브랜드다. 이미지가 바로 브랜드다. 내 이름 석자가 브랜드라고 했다. 오상입쌀 브랜드 창출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영태 씨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전영태 씨때문에 오상입쌀이 떴고 오상이 떴다. 조선족 위상이 올라갔다. 이 것이야말로 어마어마한 브랜드 가치가 아닌가 싶다. 브랜드가 배출되기 까지 쏟은 땀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탐구와 탐색이 있는 삶이 바로 명브랜드이다. 주어진 삶을 브랜딩고저 활기찬 아침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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