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한국문인의 정감세계...

▲ 김남희 약력 : 사천시 삼천포 출생. 시 전문지 심상 등단. 부산 문인협회, 부산 시인협회, 한국 문인협회, 심상 작가와 문학 회원. 최치원 문학상, 부산시인협회 우수상, 한올문학 본상, 작가와 문학 문학상 , 중국 도라지 해외문학상 등 수상 다수. 저서‘노을속에 물들어가는 풍경’ 외 4권

해바라기 사랑

 
여자로 태어난 게 죄가 될 순 없다고
스스로 마음 달래 보지만
몰라요 왜 그렇게 서운한지
출가외인이란
이름 석 자 뒤에 따라 붙는
본적(本籍) 마 져 바뀌고도
이름까지 잊고 산지가 오래랍니다
 
가끔은 우편물 속에서
내 이름이 보일 때
소중한 보석 하나 얻은 기분이고
누가 내 이름 불러 줄 때
기쁨은 밤하늘 별 만큼이나
빤짝빤짝 빛나는
 
이름도 본적도 다 잊고
바보로 사는 여자가 되어
오늘도 나는
해바라기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자의 운명이라기에
해바라기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은
잠깐 스쳐간 바람 이며
젊은 날의 반항은
뒤 돌아보면 모두가
부질없는 바람의 장난 이었네
 
무심코 스쳐 지나간 그대
인연은
스쳐지나간 바람이 아니라
머물기 위한 되돌림 표 였네
 
사랑의 종말을 알고도 바람은 시치미 떼고
젖은 눈 빛 으로 지켜보면서
지루한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묵직한 하늘 이었네
 
아! 사랑은
열병처럼 번져 쑥대밭 만드는
황량한 바람 이었네 
  
   
햇살 같은 사랑으로
 
 
오후 늦은 시간
퇴근할 시간은 다가오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우산 하나 달랑 들고 길을 나섰네
어느 선술집 인정에 흠뻑 취해
발목 잡혀 있을
그대 마음 훔치려
 
황혼과 함께 찾아온
울적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오랜만에 인파로 북적대는 대로에서
젊은 연인들처럼 살며시
허리를 끌어안고 걸었네
 
멋쩍어 하는 그대 에게
“비오는 날이면 이런 낭만도 있어야제”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 한 마디에
소년처럼 빨개지는
그대 모습이 참 사랑 스럽다
 
장난기에 녹아나는 햇살 같은 사랑
옷이야 젖든 말든
사랑에 흠뻑 취한
어느 비 오는 날
  
   
  
유정( 有情)
   

 
그윽한 눈길에 끌려
잠시
밑바닥까지 흔들리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배를 떠올렸네
그 순간이었지 아마
내가 본 참담하고 절박한 모습
네 눈 속에 담긴
간절한 마음
차마 떨칠 수 없는
그리움의 흔적
그 눈 길 마 져 피해야 할
내 가슴에 남은
마지막
정한(情限)   
 

▲ 장미의 언어

꽃집 앞을 지나며
  
 
고것이 날 유혹 했어
무심코 지나가던 대로에서
잔잔한 눈웃음에
이성을 잃었던 게야
코끝을 스치던 알 수 없는 향기에 취해
마음을 다 빼앗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머니를 다 털렸더라고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이 나이에 그대를
뜨겁게 사랑 할 수 있다는 거
너를 보면 아직도
두근거리는 감성이 남아 있다는 거   
   
   
  
초승달
  
 
 
저것 봐 언니야
무심코 쳐다본 하늘
 
숯검정으로 눈썹 그려
마주보고 깔깔대던
흰 버선발 치마폭에 감춘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던 언니야
 
저것 봐 저것 봐
댓돌 위 코고무신 한 짝
초승달로 떴다야
 
한 획 그어 문양 새긴  
초저녁달
  
      
  
청산 가는 길
  
 
 
어디
한 세상 힘들게 사는 것이
너 뿐인 줄 아느냐
산비둘기 한 마리
저 혼자 몸 달아 산 빛 흔든다


새야 새야
울 엄마 무덤가에 와서 우는 새야
산골짝 붉게 적시는 철쭉은 피어
무명치마 홑저고리
방울방울 얼룩진
백용사 풍경 소리 천리를 넘는 구나
울 엄마 밟고 가신
청산 가는 길   
   
      
  
모과
  
 
 
그, 첫눈에 반했지
향기만 있고 실체가 없는
그림자만 있고 존재가 없는
은근한 유혹
 
바람도 품어보고
태양도 품어보고
목숨 뜨겁게 달궈 보지만
그래도 부족한 농익은 속내
헛헛한 가슴 데우는
곰삭은 사랑
 
시월이 가고 긴 침묵
그대 우아한 자태
우려내는 긴 겨울 밤
  
   
   
얼음
  
 
 
당신의 뜨거운 입김으로
결빙된 내 마음 좀 녹여주오
두들겨도 깨지지 않는 유리벽에 갇혀
뛰쳐나갈 방법이 나에겐 없소
한 겨울 느닷없이 찾아온 한파
이 지독한 형벌
이 가혹한 굴레
기웃대던 햇살 한 줄기
혀를 차며 비껴가고
동구 밖 어데 쯤 미동도 없는 전봇대 움켜쥐고
울부짖는 겨울바람
팽팽하게 조여 오는 결박
신음 소리 마 져 마비된
당신, 내 심장 좀 꺼내주오
사랑은 무모하고 조건 없는 것이라면서요
 


어머니라는 이름의 명약
  
 
 
깊은 밤 아기가 고열에 시달리면
갑자기 에미는 해 줄게 하나도 없지
보이지 않는 뜨거운 가슴 끼리
지름길 달려오는
저, 가쁜 숨소리
그 와중에
보름달 하나 둥그렇게 떠서
파고드는 젖가슴이 신 이고 하늘이다
누가 뭐래도
면허가 확실한 명약이다
대명천지 다 찾아봐도
이 단내 나는 거룩한 순간 또 있을까
 
에미라는 위대한 명의
사랑은 그 품 안에서 날마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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