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8호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1. 우정동 시장통의 울언니  우정동 시장통의 약국을 지나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불쑥 나타난분이언니 반찬가게 한국영감이 뭣이라고젊은 나이에 시집와서입만 열면 중국년이라 무시하는영감탱이는 늙어서 놀고데리고 온 아들놈은 어려서 놀고친정 한번 못 가보고주름만 접은 이십여년 언니의 태양 같던 얼굴이쌍달 같던 가슴이팔, 다리, 허리가물엿처럼 녹아내려김치, 깍뚜기, 콩자반도라지 무침, 무 말랭이, 깻잎장아찌...언니의 눈물처럼 짭쪼름하고언니의 슬픔처럼 얼큰한게푹~ 녹인 언니 맛이라며맛있다고들 난리법석을 놓으며천원 이천원으로언니를 사먹은 우정동사람들 그렇게 이십 여년을자름자름하게 썰려서 팔리던 언니가슴을 열어 이것 저것 떼내고녹쓴 무릎을 갈아버리고비뚤어진 허리에 쇠고리를 걸어앉은뱅이 의자로 새롭게 출시 되고앉은뱅이 의자는 새벽부터 구르고 구르고시장통이 잠들 때까지 드르륵 드르륵평생 긁지 않던 바가지를한꺼번에 다 긁어버리겠다는 듯이이십여년을 가슴에 묻은 고향을다 긁어버리겠다는 듯이우정동사람들의 마음도 얼얼하게드르륵 드르륵 구르고 구르는분이 언니는 지금, 황혼이 바쁘다  2. 그는 억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억새를 좋아한다고 억수로 좋아한다고 했다11월의 억새만치나 세어버린 머리카락의그는, 억새구경도 못했다고 했다시간이 도무지 없다고 했다일들이그의 손을 그의 발을그의 허리를 그의 가슴을그의 머리와 손, 발톱 까지를꾸 욱 눌러버려그는 움직일 수 조차 없다고 했다그를 기다리던 억새는 속절없이 지쳐가고그 역시 억새보다 더 휘청거리고억새를 보려면 내년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는 억새도 없는 도시에서억새를 좋아한다고 했다수없이 밟혀 찢어진 콘크리트속에서그는, 억새가 되어 흔들렸다   3. 겨울 강   마른가지 주어다가 빈 둥지 틀던 새야꿈에 겨울 강을 건넜구나타향살이 주름잡던 반백의 고독이잿빛으로 흘러가며 눈을 아리누나백노들이 하늘 향해 목련으로 피어 울고까마귀들이 강위를 나비춤으로 맴도누나낚시줄 늘이고 고독 낚는 무덤아,저 귀신 달래줄 목탁소리 없느냐원혼이 떠도는 반공에 햇빛만 눈시구나   4. 그 풍경  돋보기를 걸고 본다아주아주 빛 바랜 사진을다섯 살배기 딸애가자기 머리 통 만한 참외를 들고 웃는다삭아서 새까만 이가 다 드러나도록활짝 웃는다아이의 뒤에는 도랑이 흐르고젊은 내가 빨래를 하고그 뒤에 올망졸망 보이는낮다란 흙집들그래 맞어 그 뒤엔 큰 길이 있었고소달구지들이 투덕 툭 툭 소똥 굴리며 굴러 갔고손잡이 뜨락또르가 통 통 통 볼부은 소리를 냈지큰 길 옆에는 학교가 있었고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왁작지껄 시끄럽고교실 안에는 낭랑한 글 소리가 넘치고 넘쳐서마을을 잠겨 버렸지그랬었지그랬는데 나는 울며 불며 매달리는 여덟 살 딸애를 뿌리쳤지낮다란 흙집들이 싫었고도랑에서 빨래하는 내가 싫었고큰길에서 투덕 툭 툭 똥 싸는 소들이 싫었고통 통 통 볼부은 소리를 내는 손잡이 뜨락또르가 싫었지그랬었지그랬는데 고층빌등의 아파트에서드럼세탁기로 빨래를 하며고급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아주 잘 살고 있다고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나는 그때가그때 그 풍경이그 색바랜 사진속의 모두가자꾸만 생각나고 그리워진다가슴 한 켠에서 여덟 살 딸애의 울음소리가자꾸만 울려나온다  
▲ 시름없이 웃으며 피고 지는 들꽃과 그 향기
 5. 세잎꿩 비름의 再起  세잎꿩 비름이 늦가을 된 서리에 쓰러지고진물이 고인 침묵의 나날들 뿌리의 상처를 찢어 싹을 틔우고터져나오는 아픔들이 꽃으로 피어꽃들의 가슴을 열어 줄기를 올리고줄기의 오체투지로 세잎의 비늘을 떠 올리며 저 암흑속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프게 전해오는 홀로서기의 나날들개콘을 보며 웃다가드라마를 보고 찔끔거리다가해빛이 부서지는 강가를 거닐다가따슨 이불속에서 뒹굴다가 꿀잠에 빠지다가새털구름, 양떼구름, 접시구름, 비닐구름들을 다 올려다보고 시간이 없다고 툴툴대기만 하는 나의 나날들 고삐에 끌려다니다가 쏘맥 한잔으로 풀며 나의 하루는 후딱 가버리는데지겨운 일상뿐이라고 인생사주나 보며 귀인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는데 저 눈 덮힌 땅속에서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고어둠속은 재기의 꿈들로 빛날 것이고봄이면 작품들이 치솟을 것이니  6. 입을 다문 시간들  밖은 겨울시체처럼 싸늘하다나가려고 입속을 맴돌다가 끝내 나가지 못한다한번 나갔다가 떨었던 기억이나가볼 엄두를 싹둑 자른다 갇혀산지 역사만치 오래다 가끔 튀어나와 집앞 음나무의 가랑잎에 툭 나앉아서드문드문 찾아오는 비늘구름들과 휘여휘여 즐기다가길 옆 들고양이들 맑은 눈속으로 들어가 새롬새롬 쉬기도 하고서리맞은 장미꽃 갈피에서 주절주절 흐르다가해 지면 잔에 담긴 술이 되기도 한다 바람도 들지 않는 빛 없는 가슴에시큼함으로 되새김되는 긴 시간 말이 홍어처럼 삭는다말이 메주처럼 뜨겁다  7. 담쟁이  치매로 달립니다칠십평생 잡으셨던그 손을 놓고이파리에게가지에게피와 살까지 다 내어주고혼자 간답니다 영감, 왜 그러우나도 가고 싶소담을 넘으려는 손가락 물어 뜯으며참아왔던 날들이 단풍이 되었습니다손톱, 발톱 닳아가며 치열하게써내려간 삶의 흔적들박제로 굳어진 어머님의 일기를담벼락에 새겼습니다  8.지평선  열심히 뛰였던 일상들이 허무하게 빠스라지오방향표의 간판들이 메아리 없이 죽어가오 입을 벌린 흙구뎅이들이 교태를 부리고온 몸을 흔들며 뿌리박는 나무들이 숲을 이뤘소 여기가 천국이라오 바람에 씻긴 달의 냄새들이수많은 별의 어휘를 부리는 괴성들이말 달리던 잿 빛의 초원에 이슬로 맺혔소 지상과 하늘의 틈바구니에서커다란 불덩이가 튕겨나오고나는 희미하게 퍼져나가며영혼없이 소멸되가오  9. 홍시  옥탑방, 별하고 가까운데갈 수 없는 너의 방 학벌에 자격증에 사랑의 중력에해빛아래서 발광 한다 족보도 묻지 않아 과거도 필요 없어형수씨든 제수씨든 가을의 끝에 해와 달을 말리다가내 씨가 말라간다   10. 산사나무  햇빛의 언어로 고백하고달빛의 은유로 마음을 녹이던뜨거운 여름의 시어비의 연가로 점자를 새기고바람의 찬송으로 감성을 부풀리던깊어가는 가을의 작문겨울의 축복이 흩날리는천국의 계단을 오르고미련없이 추락하는찔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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