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박수산 약력 : 중국 길림성 서란시 평안진 태생, 길림사범을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 현재 한국 모 기업에 근무. 1983년 처녀작 '두릅나물'로 <도라지>에 발표. 2011년 '첫차에 목숨을 걸다'로 지필문학회 신인상 수상, 한국문단 등단. 동포문학 4호 시부문 대상 수상. 시, 수필 수 십편 발표. 시산맥문학회 특별회원, 애지문학회 특별회원, 재한중국동포 문인협회 시분과 부과장. 

 

1. 고향

 

오라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철없던 시절
머리채 잡아당기며 별명을 부르고
만날 때마다 울려놓았던 순이 찾아
그때는 미워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서, 가물에 쩍쩍 갈라진 논밭 물 때문에
주먹으로 눌렀던 철이 찾아
그때는 너무 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제사상 차려놓고
마지막 숨결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 혼이라도 불러보고 싶다.

가서, 무너진 집터라도 둘러보고 싶다.
가서, 사라지는 냄새라도 붙들고 싶다.
가서, 묶어놓았던 설움을 확 풀어놓고 싶다.
  
반겨주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풋옥수수 한 솥 삶아놓고
낯선 이들에게 나누어 드리며
그땐 우린 이렇게
소박하지만, 욕심 없이 세월을 엮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풀피리 만들어 불고 또 불다
예쁜 아가씨 지나가면
그땐 우린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그저 풀피리만 불고 또 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진달래꽃 출렁이는 산에 올라
고사리도 꺾고 더덕도 캐며
지워지는 향기를 머리에 꽉 담고 싶다.
 
가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고추장 바른 건 두부에 대파를 말아
배갈 한잔을 카- 하고
잊어버린 맛을 되찾고 싶다.

가서, 마을 뒤 철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다.
가서, 철둑 너머 맑은 물도랑에 발을 당구고 싶다.
가서. 학교마당에서 어린애처럼 퐁퐁 뛰놀고 싶다.

아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막걸리 몇 동이 빚어
낯선 이들에게 권하며
내 그림자도 여기에 묻혀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산에 올라
구덩이를 파서 묘목을 넣고
살 같은 흙을 꽁꽁 밟아주고 싶다.

가서, 만년을 보낼 수 있게
깨끗한 공기를 남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2. 첫차에 목숨을 걸다

              
이른 새벽 무언가 등에 업은 그림자
이 골목 저 골목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수탁이 첫 홰를 치듯
지하철 벨 소리가 어둠을 벗기자
열차는 쌩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
 
굴러가는 그림자들
등에 업은 무언가가 출렁인다
 
쿵쿵 발 울림소리
지하철 역사가 흔들린다
 
지하철 무인 검 표구는
천천히 지나가라고 빽빽 소리친다
 
청렴한 법관처럼 기관사는
인정사정 안 보고 떠나버린다
 
아직 술이 덜 깬 사내는
떠나는 열차를 쳐다보며 혀를 찬다
 
다리 절룩거리던 아줌마는
입에 거품을 문다
 
지하철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는 15분 후에 있다고 뜬다
 
승강장 여기저기서
업고 달려온 그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3. 오렌지 먹기                       
 
 
껍질 벗기기가 귀찮아 
통째로는 먹지 못 할까 엉뚱하게 생각하다
손톱으로 뜯고 또 뜯어 겨우 껍질을 벗겼다.

하얀 혈관으로 피를 주고받으며 
붙어 있는 알맹이들
맨살은 물렁하다.

입에다 넣고 단물을 넘기는데
갑자기 산 뱀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우린 서로 너무 많이 껍질을 벗기고 쪽을 갈랐다.
항상 껍질을 벗기고 쪽을 가르는데 열중했던 
과거가 머리에서 꿈틀거린다.

원래 하나였는데 두부처럼 여러모로 가르고
같이 숨을 쉬는 땅인데 공기조차 골라 따로 숨을 쉬고
한끝을 쥐고 종점까지 당겨야 하는데
한 줄을 놓고 서로 양쪽에서 당겼다.
가르다 못해 제 핏줄도 대담하게 남의 족보에다 버젓이 올려놓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사방에서 통 것들이 입맛을 다신다

 


4. 못


끝이 뾰족한 못
박으면 쏙 들어가서 자리 하나 잡는다.
 
좋은 자릴 잡으려고
어릴 때부터 남의 말을 배워야 했고
통학버스에 실려 하루에 몇 개의 학원을 다녀야 했다.
 
높은 곳에 희망을 묶어둔 숱한 못
가방끈을 늘이느라 분주하다
오늘도 학원가의 문턱에는 단내가 나고
귀가하는 발걸음 소리가 혼탁하다.
 
또 몇 년을 고시원에 박혀
날을 세우며
어딘가 박힐 자리를 찾느라 서성거린다.
 
졸업증과 자격증으로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또 다듬었지만
어깨가 축 처져 면접장에서 되돌아 나오는 못
 
가방끈은 많이 길어졌지만
못을 박을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5. 중국동포     

 
차라리 한글을 몰랐으면 좋겠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
중국동포란 글자만 나오면 무리 지어 댓글들이 발동을 건다.
 
어느새 한 군단이 되어
싹 쓸어 버릴 듯
줄 화살을 날리고 있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남들은 하고 싶어도 감히 못 하는 일
예사롭게 하고 있다.
 
제 핏줄을 다른 족보에 버젓이 올려놓고
화살에 독을 가득 묻혀
전멸시키지 못해 아우성친다.
 
한 그루의 나무 위에서
잎과 가지가 나란히 풍경을 만들어
온 세상에 찬탄의 목소리를 높이련만
지금은 잎 하나라도 가지 하나라도
더 끊어버리려고
광란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싸움시켜놓고 제 몸에 수혈하는 썩어가는 가지들
지금 어느 곳에 엎드려 좋아서 낄낄댈 거다.
 
그것도 모르고 제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잎과 가지인데
뇌사에 걸렸을까
제 보루에다 화살을 마구 날리고 있다.
 
차라리 한글을 몰랐으면 좋겠다.
죽어가는 잎과 가지들을 안 보았으면 좋겠다

 


6. 뒷모습
      


한낮 고양이만 기웃거리던 헐렁한 골목,
어둠이 짐을 풀자
발걸음 소리가 자박거린다. 

배가 나온 검은 비닐봉지
손가락에 매달려 신음을 하나
부딪치는 소리가 서늘하다. 

가방끈에 눌리어 축 처진 넥타이
뒤축이 몸보다 반 박자 늦어 
길바닥이 푸념을 깔아놓는다.  

파지가 산이 돼서 기어가는 유모차
과식을 했는지
골목에다 내용물을 토해버린다.
 
문 여는 소리에 잠을 깬 불빛
어둠을 쫓아내느라 덜컹거린다. 

만상을 개봉한 골목 
고기 굽는 냄새라도 기어 다녀
아직은 숨소리에 기름기가 묻혀있다.

 

7. 돌콩 
           


며칠을 고깃배 밑창에 엎드려
바다의 짠맛을 삼키며 바람을 지켜온 그녀였다. 
가끔 경찰을 피해서 다녀야 할 때 숙명이라 생각했다.
퉁퉁 부은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웃기도 했다.

골목이 많은 세상
널려 있는 거미줄에 걸렸을 때
그땐 동이 체로 쓴맛을 삼켜야 했지만
바람의 임자가 견뎌야 할 산통이라 생각했다.
 
두고 온 피붙이가 고아로 된 것을 걱정할 때도
귀신도 배낭 메고 찾아다닌다는.
오직 그것만이 문을 여는 열쇠라 생각했다.
 
얼굴의 주름과 저금통장의 잔액이 정비례하지만
바람이 반비례로 되어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꽃은 수정했을 때다.

이젠 피붙이를 옆에 끼고 함께 출퇴근하는 것만 남았다

 

씨앗의 이야기


8. 그녀


하얀 국화 속을 비집고 들어가 국화 흉내가 낯설다

지켜보던 사립문이 꽝 열리며
사과나무 밑으로 뛰어가서 훌쩍거리는 댕기 머리
울바자 틈새로 기어 나와 머릿속에 인화됐다.

모래로 잘 다져진 학교마당
노을이 휘어질 때까지 
둘이서 제기차기 놀 때
새엄마의 고함에 용수철이 됐던 모습
지금도 눈앞에서 뛰고 있다. 

비가 놀다간 뒤
철둑 옆에 해당화 곱다며 손뼉 칠 때
손가락에 피를 묻히며 머리에 꽂아 줄 때
지금처럼 환하게 웃었더라.

애들을 집에 돌려보내고 교수안 짜다.
가끔 복도에 나가면
마주치던 다듬어진 얼굴
그때 꽃으로 보아주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 걸린다. 

그녀한테 새 자전거 얻어 타고
약혼녀 만나러 갈 때
겨우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내주던 모습이 지금에야 살아난다. 

하얀 눈이 어지러운 마을 길을 덮던 어느 날
식당 집 아들과 눈이 맞아
먼 도시로 짐을 쌌다고 귀를 깨웠다.

허기를 채우면서 숱한 골목을 지나
바다 건너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 이야

낯선 그녀의 자손들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해야 했다.

 

9. 넥타이

 

양복을 입고
행사장에 갈 채비를 하다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잡노라니
손이 떨린다.

합법으로 살고 싶어 고향 갈 때
무거운 선물함에
무게 있는 아버지의 양복도 담았다.

마을 어귀까지 나와
기다리는 아버지
80이 훨씬 넘으셨어도
갓 돌 지난 아들처럼 웃으며 걸어오신다.

내가 입던 구식 양복 벗겨버리고
새 양복 입혀드리니
넥타이에 손을 떼지 못한다.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모시고 나가려고
아버지 방에 갔는데  
언제 혼자 양복을 꺼내 입었을까

새 양복에 뒤짐까지 받쳐 방안은 환한데
비뚤게 얽혀 맨 넥타이가 눈을 흐린다.
풀고 다시 맬 때 손이 떨려
끝내 아내가 고쳐 맸다.

먼 길을 가신 아버지
오늘도 넥타이를 혼자 맬 수 있을까
돈 냄새에 코를 박고
타향에서 넥타이를 바로 잡노라니 
손이 떨린다        

 

10.담쟁이 잎* 

 

아니,
허공에 사다리 놓고 오른다.
숱한 담쟁이 잎이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줄기는 보이지 않아도
마구 돋아나는 담쟁이
잎의 색깔과 지문은 달라도
한잎 두잎 돋아 허공을 덮는다. 

제일 소중한 것이
아무 이유 없이
빼앗겨야 하는 억울함을 위로 해서일까
아니면 오염된 허공을 저주 해서일까
밀물처럼 허공을 덮고 있다. 

사이사이 끼어있는 꽃송이 
채 피지도 못한 꽃.
그 꽃을 대신할 수 있을까 
쳐다보는 눈언저리가 소금밭이 된다.

나도 꽃을 피울 수 없다고 
수천 잎 수만 잎이 머리를 내밀고 
깨끗이 정화할 듯
허공에다 여과기를 설치하고 있다. 

* 여대생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포스트잇이
지금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고 있다

 

11.황세들의 욕심

 
지날 때마다 쳐다보면 왜 이리 부러울까 
공장들만 꽉 박아 실어 소음만 출렁이는 곳
칙칙한 건물 사이로 휘청거리며 흐르는 작은 개천,
퀴퀴한 냄새가 발걸음만 재촉하지만
땅따먹기라도 하듯 빼곡히 자라는 갈대숲 사이로 
시름없이 황새 몇 마리
방자하게 엉덩이를 배딱거리며 기어 나오니 
갈대들의 자존심이 흔들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 마리뿐인데.
이제는 식구가 많이 늘었나 봐
노랗고 통통한 발로 살랑살랑 물의 저력도 눌러보고
긴 부리로 물속을 주물러 먹이도 빨아드리며.   
하얀 날개를 쫙 펼쳐 시간을 당겼다 놓는 것이 참말로 한가롭다.
보기에도 얕고 좁은 계천,
긴 날개로 바람을 설렁설렁 불러오면  
차가 달리는 길가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조금만 더 날고 날면 넓고 깨끗한 계천과 하천이 많겠다만,  
그래도 지날 때마다 수걱수걱 물속을 파고
서걱서걱 자갈을 번지며    
느긋이 일상을 이어가니 왜 이리 정다울까
가끔 공장들을 들었다 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개천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다
소음이 빠지면
또다시 개천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새들
이제는 여기에다 아예 호적을 붙였나 봐

 


12. 저녁이 좋다 

 

푹 퍼진 저녁을 기다린다.

저녁이 돌아오면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 잡지 않아도 된다.
종일 한쪽에다 독을 쏟으며 눈길을 가두지 않아도 된다.
뜬 얼굴에 웃음 담으며 허리 굽히지 않아도 된다.

저녁이 돌아오면
퉁퉁 부은 신경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고 주무를 수도 있다.
다독이며 잠을 재울 수도 있다.

저녁이 돌아오면
틀을 뜯어버린 집에서 숨소리를 바로 잡으며 고개 숙인 내일을 마음껏 느껴본다.
이때면 내가 사장이고 내가 과장이고 내가 직원이다.

날이 선 아침이 없고 성이 난 낮이 없고 푹 퍼진 저녁만 있다면
내 발걸음도 항상 리듬을 탈거다.

 

13. 상처

 

둘이 다정히 앉아
웃음만 가득 채워 넣고 찍은 사진
날이 선 현실 앞에서 찢어져야만 했던 그때
흘러가는 세월만이 상처를 기웠다 

​끝도 없이 지나온 구불텅한 산길
방향 없이 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느라
언제 한번 숨을 고르게 쉬어본 적 있었던가

어느 날 내 귀를 열고 들어온 전화 하나
묻어두어도 썩지 않는 그리움 때문에
나도 몰래 마음에다 자리하나 내주었다

눈물로 다리를 놓고 건너온 강
다시 건너가려면
또 다른 눈물들이 다리를 놓아줘야 하기에

나는 오늘도
가만히 전화번호의 문을 열고도
전화를 걸지도
전화번호를 버리지도 못해
벌어진 상처에다 소금을 뿌린다.


14. 나무의 이사

 
아파트 출구
몇 달 전에 심은 몇 그루의 침엽수
살았는지 죽었는지
큰 병 앓고 있는 사람처럼 누르끼레하다

그 옆
아예 말라죽은 향나무 한 그루
뿌리째 뽑아버리고
측백나무를 심는 조경원

이번에는 죽지 말고 잘 살라고
웅덩이에 물을 붓고
거름까지 준 것도 부족해
영양주사를 꽂는다.

출구 맞은편
싸움소리 잦던 102동 철이네
오늘 철이 엄마는
어린 아들을 남편한테 넘겨주고
여행용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헤어짐이 또 다른 삶의 출구라면
떠나면서 가슴에 심어지는 것은
뿌리를 꺾는 아픔일 것이다

어딘가에 심어질 여자 하나
가방을 들고 지나간다.


15. 다시 키를 줍다
 

왕고참이 앉았던 자리
자동차 키가 떨어져 있다
 
주워서 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슬쩍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히던 얼굴이 스쳐 가고,

쩔렁!
떨어지는 열쇠꾸러미

쌓였던 스트레스 확 풀리기도 전
먼저 걱정이 쌓인다.

나는 다시 쓰레기통을 뒤진다

 
16. 지하철에서 잠자는 아가씨

 
내 어찌 모르랴
잠을 업고 다니는 나이
달게 잠을 자야 하는 이른 새벽
취직을 위해

더 좋은 대학을 위해
그리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몸도 쪼개 써야 하고
잠도 쪼개 자야 하는
가난한 젊은이들

묶어놓은 잠이 풀어져
내 어깨로 살며시 건너온다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책을 보다 말고 낯선 어깨를 베개 삼아
쓰러지겠느냐

나도 오늘 건설현장에 가서
숱한 건설자재를 어깨로 날라야
하루의 일당을 벌지만,
아저씨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란
이 어깨밖에 없구나

아가씨야
한잠 푹 자거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
이 세상에 너를 괴롭힌다고 굴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여라


17. 딸의 제사상
           

한밤중
그녀 혼자 십 년 전에 사고로 죽은,
딸애의 제사상을 차린다.

가난한 살림
어린 딸에게만 물려주고 싶지 않아
천근 같은 빚을 짊어지고 고국으로 왔다
빛의 무게를 줄여 보려고
밤낮도 가리지 않고 소처럼 일했다

불법체류란 딱지가 몸에 붙어
발각되면 쫓겨나는 몸
집에 있는 가족들 딸애의 불행을 숨겼다.

딸이 죽는 순간,
그녀는 밥을 먹고 있었다.
애타게 어미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주린 배를 채우느라 바빴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딸,
정신 잃고 쓰러진 적 몇 번이던가
꿈이 산산이 조각난 그녀
당을 치며 통곡한 적 몇 번이던가

딸을 따라 같이 죽어야 했는데
죽어지지도 않는 그녀
이제 어미가 할 수 있는 건
상을 차려 딸의 혼이라도 불러
꿈속에서라도 딸을 만나 보는 것

오늘도 그녀는
딸의 생일을 맞아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휴대폰과 전자수첩을 사진 앞에 올려놓고
눈물로써 제사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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