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14] 김경애의 수필 '통일하모니'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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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14] 김경애의 수필 '통일하모니' 외1편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9.01.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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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김경애 약력 : 중국 제4회 애심여성 컵 은상 수상. 시, 수필, 수기 다수 발표.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롯데면세점 동원 매니저, 승헌인터내셔널 대표, 한반도통일문학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1. 통일하모니

 

지난 1월 18일, 나는 잠 이룰 수 없는 하룻밤을 보냈다. 지인의 초청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저녁 음악회에 다녀온 후였다. “4.27 시대를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열린 통일음악회.  '뉴스통신사 뉴스1'과 '우리 민족 서로돕기 운동'에서 주최하고 KBS교향악단에서 주관, 통일부와 KEB하나은행에서 후원하는 유일무이한 '통일 신년음악회 하나콘서트'였다.
 
일행과 함께 미리 도착해서 자리에 앉은 나는 처음엔 좀 실망했다. 가물에 콩난 듯이 썰렁한 객석을 바라보며 타이틀이 통일음악회인데 어쩌면 통일에 대한 열망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 싶었다. 늦을까 봐 저녁도 안 먹고 달려왔더니?…가만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공연 시간 오 분전이 되자 관객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고 2000여 석이나 되는 공연장은 금방 꽉 찬 콩나물시루처럼 빈자리 없이 채워졌다. 공연은 정각 20시가 되자 그 막을 열었다. 그제야 나는 가슴이 후더워지기 시작했다.

공연 첫 순서는 오프닝 시 낭송이었다. 6.15시민합창단의 21명의 단원으로 꾸려진 이들은 오렌지, 블루, 레드, 화이트 네 가지 컬러의 티를 입고 등장했다. 그들 중 두 명이 앞에 나서서 2000년 1차 이산가족 상봉 때 서울에 왔던 북한의 오영재 시인이 남한의 동생 가족을 만난 뒤 돌아가서 썼다는 시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를 낭송했다.
  
“아, 혈육입니다. 다 같이 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혈육입니다. 다 같이 아버지 어머니의 애무를 받으며 자란 혈육입니다…통일만이 살길입니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어린 날 그때처럼 한 지붕 밑에서 이별 없이 살아 봅시다….” 시 낭송이 끝나자 합창단은 통일 메들리를 무려 여덟 곡이나 합창했다.

공존과 공영을 간절히 읊조리는 남한의 시민대표들과 북한 시인의 마음은 관중석에 그대로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달됐다. 나도 가슴이 뭉클해나고 눈시울이 촉촉해 났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는 자연스럽게 온 민족의 화두가 되었고,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통일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문학과 예술의 혼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통일에 대한 갈망과 관점에 대하여 시를 써봤지만 아직도 생각이 그렇게 무르익지 않았음을 느끼게 됐다. 이런 감성자극의 무대가 꼭 필요한 것이고, 서로가 공감하는 대화의 창이 너무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주제와 운률이 다소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런 마음의 부담을 서서히 걷어주며 선율의 음색이 점차 밝아지자, 나는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벅차오르는 정감에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나로 이어지는 미래는 바로 이런 정감일 것이다!…. 

연출 작품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였다. 한국 전쟁 12주년 기념식 때 의뢰받아서 작곡되었다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그리고 민요 창부타령을 기초로 하여 북한의 인민예술가인 김연규가 관현악곡으로 재창작한 "모란봉", 만수대예술단의 최성환이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재창작한 “북녘 관현악곡 아리랑 판타치” 순으로 연주가 됐다. 
 
어떻게 보면 칼과 총과 무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펜과 음악과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통해 그 아픔을 더 처절하게 돌아보고 반성하고 경계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으리라.  

나의 눈시울은 어느덧 촉촉이 젖어 있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6.25전쟁으로 인해서 남북이 갈라지고 드넓은 '만주 땅'으로 이주를 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 타향에 묻힌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눈에 삼삼히 밟혀왔다. 겨우 걸음마를 타면서 부모님 손잡고 만주 땅으로 따라가야만 했던 아버지랑 어머니의 불행한 어린 시절! 그리고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기면서도 아홉 명이나 되는 자식들도 많다고 생각지 않으시고 남쪽에 두고 온 딸자식 생각하며 양자까지 거두어주셨던 굳건하고 양반이신 할아버지! 고향의 구운밤은 아기 주먹보다 더 크고 맛있다고 늘 외우시던 고우신 우리 할머니!… 아, 백의민족의 넋이 고이 담긴 흰 저고리와 몽당치마와, 검정 고무신!…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던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하시고 영영 만주 땅에 묻혀버린 한맺힌 우리 조상님들의 넋!….

통일은, 간단히 말하면 남과 북이 합치는 것이다. 전쟁 끝에 나누어진 남과 북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남의 농간으로 인해 오해가 생긴 부부가 실수로 이혼을 했다가 다시 재혼하는 셈. 70년간 헤어져 있으면서도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나 몰라라 앵돌아지기도 했지만, 항상 서로를 걱정하고 기회만 있으면 과거를 지우고 오해로 인한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싶어해온 마음, 보란 듯이 자식들을 양 무릎에 앉히고 싶은 것이 여늬 부모가 된 마음이지 않을까? 나는, 남과 북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반쪽 부모라도 함께 살아온 자식들은 어쩌면 괜찮았을 수도 있지만, 부모가 이혼한 난리 통에 집 나갔다가 아예 돌아오지도 못하고 이방인이 되어서 수많은 세월 타향살이하던 자식들도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왔건 우리는 한 부모 슬하의 형제이다. 이젠 우리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서 통일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부모가 합친다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경사가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있겠는가?

최성환 작곡가가 창작한 북녘 관현악곡 “아리랑 판타지”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수는 아리랑 한 곡만으로도 통할 수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었다. 무겁고 어두운 음색을 들으며 암울했던 과거가 연상되면서 애달픈 달빛아래의 이별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하다가도 점차 밝고 경쾌한 아리랑으로 바뀌어졌다. 그러면 금방 한복을 곱게 입은 우리 무두가 둥글게 둥글게 모여서 천지를 배경으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보는 듯 싶었다. 때로는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전보를 나르는 다급한 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가도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평화로운 봄날에 따스한 햇빛샤워를 하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음악의 세계는 이렇듯 참으로 오묘했다. 특히, 러시아,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다가 현재 수원대학교 음악대학 박태영 교수의 지휘는 정말 멋진 환상의 하모니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왔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게 됐다. 

또, 2018년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러서 많은 감동과 찬사를 받았다는 소프라노 황수미의 목소리는 더 말할 것 없이 애절한 아리랑을 뽑아냈고 뛰어난 미모는 여느 연예인 못지않았다. 드러난 어깨며 요염한 자태는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선우예권은 2017년 북미 최고의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크루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따내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로서 등장할 때부터 우뢰소리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는 자신과 악단이 함께 연주하는 곡속에 흠뻑 도취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발레를 추는 소녀처럼 현란하게 미끄럼을 탔다. 저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때까지 얼마나 피 터지는 노력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자식 가진 부모로서 코끝이 찡해났다.

세상에는 끝나지 않는 연회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왠지 길지만 짧은 듯했고 이날 밤만은 날이 새도록 아리랑 연주를 듣고 싶어졌었다. 이런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앙코르곡 연주가 시작됐다.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악단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박자를 맞춰 손뼉을 쳐가면서 몇 번이나 연주를 반복했다. 통일 신년음악회는 그렇게 아쉬운 막을 내렸었다.
 
썰물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관객들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음악으로 잠시나마 통일되었던 우리들의 마음이 밀물처럼 대중 속에 흘러들어서 그 느낌 그 감성으로 통일에 대한 갈망을 같이 노래 부르고 같이 춤을 춘다면 기필코 통일의 날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도 가슴 속 깊이 '통일하모니'를 품고 떳떳한 부모가 있는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보듬으면서 오손도손 잘 살아갈 날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 "커피가 준비됐으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2. “준비됐으면 가즈아~!”

 

나는 어려서부터 귀여운 인형보다 빨간 차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서른 살 즈음에 빨간 승용차 한대 구매하려고 운전면허증을 따놓기는 했는데 장롱 속에 고이 넣어 둔 지가 어언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가지 핑계로 승용차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어왔는데 그건 아무래도 나에게 이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화가 필 무렵 미리 남쪽으로 봄 마중을 달려갈 때도,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푸르른 동해바다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촛대바위가 새삼스럽게 그리울 때도,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이랑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했을 때도, 연장 근무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향할 때도, 이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 내가 가려고하는 목적지까지 군말 없이 데려다주는 눈물 나게 고마운 친구다.

어느 주말, 친정엄마네 집에 들리다 보니 생각보다 출근이 좀 늦어지게 되었다. 시계는 8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설사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해도 1분 사이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계단을 세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런데 내려가 보니 웬걸 하철이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정 출발 시간이 8시 2분인데 웬일이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날름 탔다.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때마침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열차는 청량리역 신호대기로 3분만 더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객 여러분,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속말로 중얼거리며 나는 아무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급한 일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았다. 다음 열차는 주말이라서 20분 후에야 도착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지각은 피할 수 있겠네, 이래서 내가 하철이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호호”
 
그렇게 좋아하던 하철이가 잠깐 얄미울 때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야흐로 지난해 여름이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승헌이가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기러기 엄마를 만나러 한국으로 나왔었다.

그날은 압구정에 있는 안과에 승헌이의 정기검사 예약이 잡혀있었던지라 우리 모자는 1호선을 타고 출발해서 종로3가에서 3호선을 환승하려고 오손도손 환승 통로를 걷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하철이가 플랫폼으로 신이 난 듯 몸을 흔들어대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한 두 사람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같이 뛰어가지 않으면 뭔가 자기만 이상한 것 같아서 너도나도 뒤질세라 뛰어가기 시작한다. 주말이라 어린아이들도 적지 않게 있었던지라 영화 <부산역>을 방불케 한다.  일명 지하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기둥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김밥 팔던 할머니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찬다.
“어메~~ 다칠라, 5분이면 또 온당께….”
헐레벌떡 뛰어갔지만 하철이는 “출입문 닫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두 마디 뱉어버리고는 휘 리릭~ 바람을 일구며 갈 길을 재촉한다. 나를 비롯하여 몇몇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괘씸하다는 듯 멀어져가는 하철이 뒤꽁무니에 레이저를 마구 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철이는 우리를 골려주기라도 하듯 뱀처럼 기다란 꼬리를 흐느적거리며 금방 사라져버렸다.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던 승헌이가 어깨를 으쓱하고 두 팔을 벌려 보이며 한마디 한다.
“서울은 교통수단이 이렇게 편리한데 서울 사람들은 왜 뛰어다녀요? 5분이면 또 온다고 하잖아요…”

나는 아쉬움과 책망이 뒤섞인 이상야릇한 눈길로 승헌이를 살짝 흘겨봤다. 한편으로는 시간개념이 너무 철저한 하철이가 얄미웠고 한편으로는 승헌이가 성격이 너무 느긋해진 것 같아서 꾸지람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승헌이가 천천히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어린아이 달래듯 다독인다.

180cm 키의 승헌이는 이제 더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뛰어다닐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말없이 엄마를 바라보는 승헌이의 눈길과 마주치자 나는 문득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지만 5분의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 생활을 시작해서부터 나는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는 듯 그런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았다. 이제는 양반처럼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승헌이와 언제나 기다려주는 하철이를 생각하며 5분의 여유를 가지고 이 편한 세상 느긋하게 살아봐야겠다.

하철이와 승헌이 덕분에 나는 여유와는 담을 쌓고 살던 지나온 삶을 잠깐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유는 떡국 위의 양반 김 가루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없어도 되지만 얹으면 더 맛있는 떡국, 갑자기 기분 좋게 한살 더 먹은 느낌이 든다.

단 하루라도 안보면 그리운 친구 하철이와  지금은 중국에 가있는  친구 같은 아들 승헌에게 멀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줘서 항상 고맙고 하늘만큼 땅만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은 대중교통 이용이 너무 편리하다. 충전된 코레일 카드 한 장 손에  들고 이젠 여유롭게 떠나자! 가끔은 애마에게 쿨 하게 휴가를 주고 하철이랑 나무 한그루 심자. “룰루랄라,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러 갈 마음의 준비가 됐으면 하철이와 다함께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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