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김택 약력: 본명 림금철,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 동포문인협회 부회장
한국 문인협회 회원, 백두아동문학상, 동포문학 대상 등 수상. 동시집 "이슬", 시집 "고독 그리고 그리움" 출판.

 

1.  망치와 마우스   (외 17 수)

 

망치와 마우스를
련결한 가는 선우에서
나는 전류를 느껴
팍 팍 튄다
일에 지쳐 멍든 가슴
병원에 눕혀놓고
그것을 그린다
끓는 피로 물든 빠알간 마우스

망치와 마우스를
련결한 가는 선우에
숱한 목숨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굶주림에 입을 짝 짝 벌린
새끼를 위한 목숨들
그것을 그리는 마우스는
제정신 아니고 뿌리 날 지경
그렇게 한해 두해 지나간다

망치소리는
가슴 가슴을 누르고
오늘도 울고 있는 마우스는
피를 토하며
고향을 바라본다

 

2 . 가을날의 어느 일요일

                   

자전거 타고
공단5거리로 가는데
뒤에서 노오란 가을들이
따라오다
저만치서 그만 둔다

중국집에서
배갈 두병 사들고 나오니
노오란 가을들은 취해서
길거리에
이리 저리 나딩굴고있다

가을이 묻어나는 거리
빈 술병만 휘휘 휘파람 분다

 

3.  나는 쇠가루를 마신다   

                             

그라인더 돌려
반짝반짝 빛나는
고운 눈동자는
회사와 제품에 양보하고
서해바다에까지
흩날리는 쇠가루를
커피에 타서
나는 지루함을 마신다

양심 한점 없이
빼빼마른
손가락질에 억울해
하다가도

나의 뒤통수를 더욱 아프게
손가락질 하는
어릴적에도 못 배운
그 욕질엔 다시
격분을 타서 마신다

나는 하루아침에도
내국인이었다
외국인이 되었다 하는
카멜레온 같은
신세에 슬픔을 타 마신다

백두산 칼바람엔
따뜻함과
그리움을 타 마신다

마시고 마셔 인젠 더
마실수 없어
도로 토해낸다
지루함과 억울함과 격분과
슬픔과 그리움을 토해
거기에 붓을 찍고
자랑스럽지 않게 모국에서
눈물의 시를 쓴다

 

4.한 노무자의 죽음    


 
살꽃이 용접불꽃으로
팍 팍 튀며
공장안 구석 구석과
밑바닥이 단단한 철판위에
촛불로 떨어진다

밀어 내고 끌어안고
짓 밟히고 부서지다
나중에 쓰레기로 내버려지는
그 작은 뜨거움들.

웃으며 바다 건너
고향으로 보내는
골회함엔 소금꽃이 하얗다
흔들리는 호각소리에
호르르 사라지는 인생.

 

5.  그해 겨울은 추웠다

                         

개구리 폴짝
처음 우물을 뛰였다가
반 남은 땅에 내려
바다 바람에 휘날리던
그때는 겨울이였다

바깥 같은 집안에서
찬 목석들의 눈치 보며
얼음목재 나르고 나르던
그해 겨울은 추웠다

연필 보다 무거운 망치로
해와 달을 두드리며
김치쪼각 배에 두르고
찬 바다바람 막던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6 . 그리움
 


일에 지쳐
까닥 않고 잠시 죽어버린 밤
밤이면 윙윙 날아다니는
 
가끔씩 찾아오는 휴일도
용케 밀어버리고 와
애들처럼 매달려
살갑게 구는
 
마시는 술
술잔에 풍덩 들어앉아
눈물 따르고
 
자는 잠과 꿈에
자꾸자꾸 유령처럼 나타나
흔들어 깨워놓고
 
참으려 해도 참지 못하게
울려 해도 울지 못하게
 
부모를 모시고 고향과 같이
처자들 손잡고
친구와 이웃을 데리고
 
나를 꼼짝 못하게
내 머리 속 공간
꽁꽁 묶어놓고 가는
 
손에도 잡히지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게
그러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 분단의 경계선에서 평화를 외치며...

7.  보이지 않는 나무 


 
프레스공장 차가운 바닥
철판위에
사과나무 한그루 자란다

피빛으로 빠알간 사과에는
로동자들의 땀이 줄줄 흐르고
끊어진 손가락과 발등과
허리뼈들이 매달려 있다
가끔 인육이 썩은 냄새도
비릿하게 풍긴다

그래도 사과라
그 풍기는 향기에
용접불도 꽃으로 피여나고
금속들이 부딪치는 악청도
음악으로 들려온다

그 나무가 비바람 맞아
좌우로 흔들릴 때면
로동자들은 피땀속에 빠져들어
자기의 끊어진 손가락과
발등과 허리뼈를 붙잡고
살려달라 소리 지른다

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열매와 키높이에만
여념 없는 보이지 않는 나무여.

 

8 . 밝은 달빛은 슬프다
     


밝은 달빛이
윙 윙 돌며 멈출 줄 모른다
밝은 달빛이
망치 들고 밤 가는 줄 모른다
밝은 달빛이
흘리는 땀에는 피 즐벅하다
밝은 달빛의
끊어진 손가락에서는
조상의 숨결이 아파 한다
밝은 달빛이
웃는 웃음은 웃음이 아니고
여린 살점들이 금속에 짖눌려
가루가 되고
독약이 되고
죽음이 되고
귀신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흰 나비 되고
씨앗이 되고
삐뚤어진 열매 되는
무성의 힘이고
과정이고
방향이고.

밝은 달빛은
슬프다

ㅡ시화공단에서.

 

9.  망치자루

 

해도 두드려 보고
쓰러졌다
별도 다독여 보고
죽었다
연길강도 마셔보고
서해바다에도 빠졌었다

주린창자 싫어
큰 소리로 두드렸고
싫토록
두드렸다

공장밖에 버려진
피비린 눈물 말라붙은
나무쫑아리 한토막
무덤 찾는데

한낮
뜨거운 해볕이
말없이
안고 사라진다

 

10.  쇠먼지

 

망치에 맞아 죽고
그라인더에 가루되고
압연기에 깔려 죽고
돌아가는 기계에 찢겨져 죽은
나는 쇠먼지

울고
터지고
기브스하고
목발하고
혀를 물고 쓰러져
죽어서도
죽어서도
여기 저기 날아다니며
어덴가에 내려 앉아
살려고
살아 남으려고 애 쓴다

살아 남아서
숨쉬는 로봇과
부딪치는 금속과
말라가는 피들이 남긴
멍든 유언도
또박 또박 받아 적고.
 ...

지쳐죽은 쇠먼지는
이밤도
아무데나 내려
살아 남으려 버둥질 친다

 

11.  생산 라인  

 

여러 나라의 여윈 사람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비싼 설비를 대신해
싸구려의 두손을 내들었다

그 위로 천이백도 알미늄이
부글부글 끓으며 쏟아진다
그 위에서 쇠덩어리 쪼개지며
빛나는 제품으로 바뀐다
그 위에서 쾅 쾅 프레스 노래부르고
그 위에서 전자품이 총싸움 하고
그 위로 쌍용자동차 웃으며 씽 씽

한 손이 닳으면 다른 손이 교체되고
한 얼굴이 짤리면 다른 여윈 얼굴이
똑ㅡ같이 웃으며 들어와 서있다

그 손과 얼굴들은
낮이건 밤이건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놀려야만 했고
손쉽든 힘들든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야 했다
피로 물든 납품서
금빛 뿌리는 저 앞까지

지치더라도
죽더라도.

 

 12.  그 자리에

 

300톤 프레스 3호기
손목짤려 중국으로 돌아간
김아저씨 일 하던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서 있다

비린내 묻은 바닥 닦아놓고
원 주인을 그려보며
범 아가리 같은 기계앞 그 자리에
오늘엔 내가  서 있다

네손가락에 기름때 가득 묻고
식지만 하얗게 그대로인 장갑
그런 면장갑 끼고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서 있다

쿵쿵 뛰는 마음을 달래며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서 있을 그 자리에 
오늘엔 내가 서 있다

 

13.  무너지는 꿈

 

볕이 뜨거우니
쇠덩이도 부글부글
태양도 타고 피도 파도친다

멍든 가슴에 바늘이 와닿자
푸르른 하늘로 치솟아 오르다가
넓은 바다에 쫘르르
뿌려지는 꿈 쪼각들

소리치며 손을 저어대다
힘없이 죽는다.

 

▲ 소양강 처녀와 더불어 컷 한점...

 

14.  시냇물

           

잡초들 목을 조이고
돌틈이 끼여 죽여도
살아야 한다 살아야
강에 빠져 개뻘 걸어도
마음만은  맑은데
머리 없는
작은 손에는
피 묻은 망치 뿐.
낮에 두드리면
해가 달려와 도와주고
밤에 두드릴 땐
달이 내려와
노래  불러주고.
철 지붕밑에 갇혀
고독한 몸은
용접불로 녹이고
제품 아닌
스트레스를 갈고
붙히고 두드려도
그냥 살아야 한다
살아 흘러가야 한다
저기 저
아침해 피를 토하는
바다를 향해.

 

15.  타공(打工)

 

뼈만 남아 해골 된
이 눈엔
부품도 다 해골로
보인다
아침부터 해골 밀치고
일어나
망치 잡고 일하는
해골들
별이 지쳐 꺼졌어도
전등불 켜고
계속 망치질 한다
두드린다
한 달 두드리면
딸애의 우유값이요
반 년만 두드리면
아들애의 등록금이라
망치가 닿을 때마다
불빛이 반짝반짝
해골이  이쁘게 웃는다
해골을 두드리다가
두드리다가 그대로
해골우에 싸늘히
앉아 쉬고 누워 쉬고.

 

16.  별을 만들다

               

캄캄한 밤하늘에
또 하나의 별이 걸린다

목박스 포장 하조 현장서
철야* 련속 삼일째 
쓰러지던 지친 혼

천이백도 펄펄 끓는
알루미늄 도가니 속을
허염치던 그 고통

쇠를 갈고 찢고 붙히며
쇠가루를 커피에 타
마시던 억울함과 지겨움

프레스에 눌리워
짤려 나간
오른쪽 식지들이

뜨거운채로
쓰거운채로
철 지붕 뚫고
밤 하늘에 치솟아
어둠속에서 반짝 반짝.

 

17.  하늘을 두드려라

 

오십 칠 층 꼭대기에
사다리 놓고 올라가
하늘을 두드려라
실오리 끈에
찬 목숨 처 매고
따슨 밥 달란다

바람부는 사막에서
해를 머리에 이고
메아리 찾아 두드린다
끝도 없고 오아시스도
안 보이는 저 앞에
무덤만이 손 젖는데

매일 같이 망치 들기엔
손잡이가 너무
짧구나

오른 쪽으로 넘어져도
두드려야 하고
왼 쪽으로 넘어져도
두드리는 한 생

바다위에서 반짝이던
별들도 이 밤엔
숨 죽이고
쳐다만 본다

 

18.  꽃은 웃으며 피었다

 

가을이 오니
공장 문앞 쓰레기 더미에서
꽃이 피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서도
꽃은 피었다
해빛 없는 깜깜한 밤
용접불 밑에서도
피는 꽃

막말속에서도
스트레스 마시고도
꽃은 따뜻하게 피었다
반짝 반짝 빛나다가
씨들고 질가
걱정했어도
어느새 꾸욱 참고
허리 펴고
피었다 꽃은

땀을 먹고 피었고
피빛 칠하고도 피었고
썩은 육신의 위에서도
피었다 꽃은

꽃은 웃으며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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