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제1편

우리 집 대물림 보배 '어머니의 근로정신'

우리 집에는 큰 형, 누나, 나, 남동생, 여동생 해서 오남매가 있다. 어머니는 한생을 자식들을 따뜻히 안아주셨다. 젖을 먹여 주셨고, 옷을 입혀 주셨고, 밥을 지어 먹이셨다. 또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셨다. 지극한 모성애로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힘을 주셨으며 더울새로 추울새라 항상 자식들을 가슴에 꼭 품고 키우셨다. 

어머니는 평소 아주 검소하고 소박한 말투와 행동으로 자식들을 교육하셨다. 솜씨 있는 그 손으로 우리들의 옷을 지어주셨고, 낡고 닳아서 해어진 옷들을 꿰매주셨다. 두부를 직접 만드셨고,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그셨다. 김치도 손수 담그셨으며, 돼지도 우리에서 기르셨다. 밭에는 채소를 심고 가꾸었으며,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아주 근검하고 소박하게 그 고난의 세월을 묵묵히 이겨내셨다. 이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한 페이지가 되었다. .

어머니는 우리에게 노인분들을 만나면 항상 꼭 인사를 하라, 허리를 굽히고 아주 예의바르게 인사하라고 가르치셨다. 평상시에 남과 싸우지 말고, 남을 욕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한테서 이득을 보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평소 우리 오남매더러 절대로 농민의 본성을 잊지 말라고 하셨으며, 농사일도 열심히 잘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농사일을 배우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곡식의 종자에 대해 알려주셨다. 특히, 조(좁쌀)와 벼의 종자 재배방법, 활용방법 등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 친가는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농민, 농업인으로서의 근본정신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가르친 것은 농민들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 농민들에게 있는 두터운 우애와 선량한 모습, 남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 등이었으며 이는 우리들에게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가 어느 날 아주 진지하게 식량에 대한 시구 한 구절을 읽어주셨다.

“호미 잡고 일한지 한 낮, 정오 때가 되었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의 땀은 땅에 떨어져 땅을 적시네.

누가 알랴 밥그릇 속에 담긴 수고와 쌀알은 아주 밀접한 사이임을.”

“봄에 한 알의 씨앗을 뿌려 가을에 많은 열매를 얻는 도리,

사면에 놀고 있는 땅이 없으니, 농부의 우려는 굶어 죽을까?”

어머니의 근검절약, 근면 노동과 그의 사람됨과 일처리 방식은 우리들에게 항상 모범과 이정표가 되어 기억에 아주 깊게 남아있다.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신뢰로 어머니의 모범적인 행동들을 지침으로 삼아왔다.

“진심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며, 성실하고 착실하게 맡은 바 일을 잘하라”는 인생의 교훈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 집 남자 형제들은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또한,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고, 수염도 길게 기르지 않으며, 손톱도 길게 기르지 않는다. 거동은 단정하고, 의복은 정결하며, 상대방과 대화 시에는 아주 친절하게 어르신들을 만나며, (문병과 모대의 갖추어)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교육하실 때에는 항시 높은 표준과 엄격한 요구를 하셨다. 우리 가정은 아버지께서 타지에서 일하셨기에 가정 내의 일은 모두 어머니가 다 하셨다. (그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셔서 무거운 중노동은 할 수 없으셨다.) 우리 오 남매는 모두 학교에 다녔다. 우리 가정의 경제 재원은 아버지 한 사람의 월급에 의존하여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께서는 월급 중 10원~20원을 (당시는 모든 것이 공급제) 생산대에 바쳐 식량과 채소 값으로 연말에 정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매달 우리 가정의 지출은 얼마이며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생산대에서 돼지를 잡았다. 아마 동생이 그 장소에 있었는데, 생산대에서 동생 편으로 돼지고기 3근(1.5kg)을 집에 가져가라고 보내주었다. 그러나 돼지고기를 본 어머니께는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동생에게 돼지고기를 빨리 생산대 분배한 장소로 다시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우리 가정 환경은 아직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즉시 가져다주라고 하셨다. 동생은 내키지 않았지만 울면서 돼지고기를 가져다주었다.

어머니께서는 “사람은 빈곤해도 의지는 굳세야 한다. 현재 우리는 남의 빚을 갚아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여느 다른 집들과 같이 고기를 먹으며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실제로 이러한 가풍 속에서 우리들은 아주 생생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왔고, 우리가 어려서부터 경험해 온 것들은 사람됨에 있어서 기본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교훈들은 하나하나씩 뼈 속 깊이 새겨졌으며,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버텨나갈 수 있는 토대와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이렇게 교육하셨다.

또한, 어머니의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 습관은 다른 사람들의 긍정과 칭찬을 받았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아주 솜씨 있게 잘 하셨으며, 그의 손길은 우리 집 모든 옷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의복, 양말, 신발 등을 꼭 마치 릴레이 하듯이 큰 아이에게서 작은 아이에게로 이어서 물려받아 입어왔다. 큰 아이가 입고 나서 낡고 작아지면 다음으로 작은 아이들이 이어 입었다. 특히 봄철이 되면 어머니의 손길은 윗옷, 바지, 양말, 솜옷 등을 바느질하시느라 더욱 바빠지셨다. 때로는 새벽 3시부터 경유등을 켜놓고 한땀 한땀 바느질로 바지를 지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바로 입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들에게 우리가 낡은 옷이나 기운 옷을 입더라도 깨끗하게 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손길은 재주가 아주 좋아 바느질을 할 때에도 실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이 다른 실의 한 부분을 이용하여 매듭이지지 않게 연결하여 쓰기가 일수였다. 이렇게 하면 바느질하는 시간도 절약되어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본인만의 솜씨와 정교한 손의 예술성을 가진 어머니의 손은 아주 고귀하셨고, 참으로 사랑스러우셨다.

어머니가 담그고 만드신 김치, 된장, 두부는 맛이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어머니가 만드신 모든 음식은 어찌하여 그리도 맛이 좋았을까? 김치를 담그실 때도 보면 배추를 깨끗하게 다듬어 희석한 소금물에 담가 살균함과 동시에 배추가 잘 삭은 후 미리 준비한 김칫독( 즉, 도자기)을 사용하신다. (김칫독은 금속으로 된 것,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은 쓰지 않으셨음) 김치를 담그실 때에는 (수석)위생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위생 고무장갑을 착용하셨으며, 주위 환경도 깨끗이 하여 바이러스나 불량한 물건이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마늘과 고춧가루도 합리적으로 배합을 하여 한 개 한 개씩 모두 다 절차와 순서를 지켜 참답게, 세밀하게 하시니 이렇게 애정과 사랑으로 담그신 김치가 어떻게 맛이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기업에서도 엄숙한 태도와 함께 애정 있는 눈길로 직원을 대한다면 분명 좋은 제품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어머니께서는 자기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으셨다. 두부를 만들 때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서실을 써서 두부를 만드는데 우리 어머니는 김치 국물로 천천히 두부가 형성되도록 하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는 상큼한 맛이 약간 나기 때문에 독특하면서도 맛이 좋아 입안에서 저절로 술술 녹아내린다.

우리 어머니께서 한 평생 기울이고 쏟아 부으셨던 심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타지에서 일하셔서 떨어져 지내며 양쪽에서 생활을 했기에 어머니는 30여 년간 몸소 직접 가장의 역할을 하셨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성들이 해야 하는 일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집을 수리하는 것, 불 땔 나무, 쟁기들의 자루 등을 관리하는 것 등등 모든 일들의 대부분을 어머니의 손과 마음을 거쳐 직접 다 해내셨다. 열심히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력과 힘을 다 바쳐 한평생을 보내신 어머니께 사랑과 효도의 마음으로 이 짧은 글을 쓰면서 한 말씀 올리고 싶다.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러하시다. 평범한 일에서도 자기 자신이 먼저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시며 자녀들에게 한 평생 선생님의 역할을 하시고, 지극한 모성애를 자녀들에게 한평생 보여주신 세상의 어머님들께 수고하셨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제2편

 대호입좌(對號入座) 지정된 좌석

 

우리들은 일상생활과 업무적인 수요로 대중교통의 하나인 버스를 이용할 때가 많다. 그리고 버스 좌석에는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라고 명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의 표현이다. 어떤 버스 좌석에서는 배가 부른 임산부의 모습을 만화나 캐릭터로 그려 후대들에 대하여 배려를 알리기도 한다.

한번은 임산부가 버스에 오르자 대호입좌석에 앉아있던 어떤 사람이 급히 일어나 그 임산부에게 좌석을 양보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아주 존경하는 표정을 담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임산부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기도 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좌석이 필요한 이들에게 좌석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런 배려와 양보 행위는 단지 예의와 관련되는 것이지만 이는 또한 우리 개개인의 행동지침이 되기도 한다. 단지 간단히 좌석을 양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은 그 사람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문명은 보다 발전해가고 있으며, 물질적∙경제적으로도 보다 풍요로워지고 있는 이 때에 사람들의 사상과 의식은 더 풍부해지며 상호간 예의도 잘 발전되어 왔다. 이 시점에 있어서도 대호입좌는 중요한 것이다. 대호입좌는 배려와 양보의 시작이다.

우리는 대호입좌는 아주 작은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를 실제 행동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평소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자립 행위와 자각 행위는) 소수의 행동이 다수의 행동으로 옮겨지면 몇몇 사람의 행위가 여러 대중의 행동으로 변하여 티가 잘 나지 않게 되며, 한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한번 하기는 쉽지만 한 평생 동안 계속해서 좋은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한 송이 꽃은 피었지만 봄은 이룰 수 없으며, 백화가 만발할 때야만 봄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호입좌’(대중교통에서 임산부 노약자 좌석을 말함)의 중요한 점은 좌석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이다. ‘대호입좌’는 실제로는 (애착심) 이타심을 나타낸 사례이다. 이런 이타심은 시간∙공간 제한도 없으며, 동서고금 모든 시대마다 발견되어 왔다. 남송의 린안 (현 항주시)은 경제와 문화가 발달된 시의 하나로 개혁과 개방의 물결과 더불어 모든 면에서 앞선 모습을 보여주며, 대도시의 신성함을 알리는 풍경이 보이고 있다.

옛날 무술인 들이 집결된 구역에서 과거 번성했던 한 때를 그리면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빈곤한 자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열심히 일하고 이익을 얻었다. (지금의 도매상과) 비슷한 수단으로서 ‘작방’한테서 물건을 받아가지고 자기가 지역을 돌아다니며 팔아 와서는 다시 작방에게 물건 값을 주고 남은 것을 생계수단으로 썼다. 돈 한 푼 없던 사람도 장사를 할 수 있었고, 이런 식으로 가정의 의식주를 해결하였다. 어떤 이들은 버스에서 자리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 장사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도록 물건을 선불하여 주는 일은 작은 일이고, 시시하여 재미가 없으므로 하려거든 큰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작은 일이 많이 모이면 비로소 큰 일이 되고, 간단한 일을 반복적으로 자주하면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한 발자국, 한 걸음씩 많이 걸으면 만리장성도 걸을 수 있다. 아주 작은 평범한 일이더라도 많이 하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

현대인들은 높은 과학기술과 정보화된 문명, 그리고, 발달해 온 문화 지식들에 치중하여, 예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것들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사회적으로도 묵은 밥(짠밥)이 되고 있다. 우리들은 배움에 있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배우고 열심히 하며, 또한, 아주 미덕이 되는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높은 기술과 지식을 학습해서 실제 작업장에서 이용하며, 현실 생활에서 문화 지식수준도 높여 다른 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뒤떨어지지도 말자. 오직 이래야만이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에 도움을 주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도 자기 피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피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호입좌’는 들여다보면 내용이 풍부하며 생동적이고, 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또한, 의미가 깊고 친절스럽다. 그러면 ‘대호입좌’의 정신으로서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말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며 친절하고도 아주 열정적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감동을 받지 않겠는가?

이래야만 기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사나 동료, 친구, 동창생, 부대 전우 등을 대할 때에 있어 (문명한 언어) 올바른 언어로 반드시 주동적으로 먼저 인사를 하며, 아주 예의 있게 말은 순서와 이치에 합당하게 하면 상대방은 나의 정감 있고 애정 있는 태도, 말과 모습이 머릿속에 쏙쏙 박혀 들어갈 것이다. 옛말에 “좋은 말 한마디가 석자 두께로 얼어붙은 얼음을 한 순간에 녹여 버린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누구와 싸웠거나 꾸지람을 들었을 때는 불안해하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상대방을 찾아가 사실의 경과를 들어보고 그와 내면적으로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는 것이 좋다. 우리는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말과 일을 많이 하자.

다른 사람이 격렬한 운동과 강도가 높은 노동을 했을 때나 갈 길이 길어 질 때에는 그들에게 (더운) 마실 차나 음료를 (부어) 주는 것도 좋다. 만일 다음의 경우들과 같은 일에 봉착했을 시에는 도와주는 것이 좋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을 시에는 즉시 관련 기관에 연계하여 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도와주며, 다른 사람이 차표를 분실했을 때에도 도와준다. 다른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망 시, 가정이 불화와 재난에 빠졌을 때, 연인들이 헤어졌을 때 등등 여러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점을 고려하여 우려하는 점과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되도록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똑같은 병에 꿀을 넣지 않고, 독약을 넣겠는가?”인 것이다. 매일 무의미하며 심심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같은 하루 24시간을 보내는데 다른 사람과 사회에 유익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제3편

감사와 은혜의 덕을 갚다

 

옛날 옛적 깊은 산골짜기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상처를 입은 호랑이 한 마리가 집 근처에서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를 본 할머니는 두려움 없이 호랑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상처가 괜찮으니 호랑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며칠 후 할머니 댁 문 앞에는 누군가 놓아두고 간 토끼, 노루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매일같이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는 할머니가 치료하여 준 그 호랑이가 고마운 은혜를 갚기 위하여 한 일이었다.

 

우리들은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사람 사이에 있어서 감격과 은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인과 무고, 생각이 없는 사랑은 없으며, 역시 원인과 무고, 생각이 없는 미움도 없다. 현실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교제를 하여 성공을 시도한다. 자고로 그들은 방법과 수단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삶과 교섭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소개하여 서로 알도록 한다. 그러나 최종 그의 처사는 많은 사람의 허심을 자아내게 하며, 그들 중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사귀지 못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감사와 은혜로운 일도 없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끝났으며 헤어지게 된다. 사람간의 교제는 공허함에 빠지게 한다. 실제로 깊고 두터운 감정은 올 수 없으며 이를 갚은 사례는 아주 적다.

정확하고 올바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만큼 당신을 지지하는가와 얼마만큼의 모험을 안고 가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평상시에 얼마만큼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울릴 수 있는 일을 행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늘 말하듯이 서로 예의상에서 오고 간다. 물론 사람과 사람의 감정 교류와 예의를 주고받는 일은 상품의 물물교환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수양을 한 층 더 고양하고, 평소에 다른 사람을 위해 행하며, 다른 사람과 같이 행하라. 상대방을 위해 더 책임을 지고, 능력이 허용하는 한에서 주동적으로 먼저 나서서 상대방의 어려움과 곤란을 해결해 주자.

상대방이 현재까지 큰 권세가 없을 때에도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상대방도 당신에 대해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감사와 은혜는 당신의 문제 해결 능력과 이를 해결한 성적으로 말한다. 한 장, 한 장의 명함이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상호간 은혜갚음은 깊이 이어져 왔으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향토 중국> 비효통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중국은 상호간에 서로 익숙한 사회이며, 백성으로 구성된 사회이다. 중국은 농업대국이며 농촌이 대부분의 땅을 점하고 있었다. 농촌 인구 대다수는 향토 속에서 그들은 토지와 정을 맺고 살았으며, 꼭 마치 토지처럼 점차 증가하였다. 1979년 개혁개방으로 배우기 시작하여 농촌 인구는 사회 발전에 발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공간은 점차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식주에 있어서도 변화하였으며 특히 단독 마당을 가진 집, 여러 층의 집 등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삶의 변화된 모습에 따라서 아주 긴 시간 이웃을 벗으로 살아 온 방식 또한 변화되었다. 현대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을 사회의 흐름 속에 들어서게 했다. 그리고 상호간은 점점 멀어지고, 상호간의 정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인터넷 통신망 중 영상을 3일내로 설정하고 있는데 왜 그런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교섭은 3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감정상의 교류가 많아야 하며, 이는 역시 거대한 매력이다. 또한, 상호간에 있어서 감정의 교류는 여전히 사회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 상호간의 감정적 교류는 구체적인 행동에서 나타나야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옛날의 모습으로 정을 그리워한다. 특히나 나이가 조금 많으신 분들은 더욱 그러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들, 부모와 병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명절 때나 가정에 일이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새롭게 변화하여도 감사와 은혜의 덕목은 변화하기 어렵다. 우리들은 감사와 은혜를 갚을 때 (“정결”할 때) 예를 들면, 그들이 중한 병에 걸렸거나 퇴직 통지서를 받았거나와 같은 큰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나 사람과 사람이 서로 헤어져야 할 때, 임종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등등의 경우에, 우리는 반드시 직접 가서 보고 위안이 되는 말 한마디라도 서로 주고받음으로서 감사와 은혜를 표현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현대의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하여 요즘에는 인터넷 영상통화를 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부모 형제들에게 돈을 좀 부쳐준다. 이도 좋다. 그러나 이는 감사와 은혜가 아니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데 그친다. 사회의 발전과 진보 속에서 감사와 은혜는 이상과 신념으로 깊이 수립되어있어야 한다.

또한, 현대 사회의 발전된 모습과 진보 속에서도 감사와 은혜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일평생동안 감사와 은혜 넘치는 일을 많이 하여야 한다. 어떤 노인들은 자기의 자녀를 위하여 경상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또한, 경상적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이는 감사와 은혜를 중요시 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를 본다. 전화를 자주하든가, 영상 통화를 자주하지 않고 상대방이 곤란에 처해 있으면 선뜻 나선다. 부르면 즉시 오고, 진정으로 감사와 은혜로운 사람이 되며 말로만 (사장하는 말만) 하지 말고 여러 방면에서 감사와 은혜로 일을 많이 하자.

알다시피 “선은 선으로 대하고, 악은 악으로 대한다,” 시기가 성숙되지 않아 아직 보답하지 못할 뿐 시기가 성숙되면 모든 것을 다 보답할 것이다. 인생은 아주 짧다. 이러한 인생에 있어서 착한 일을 많이 하며 감사와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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