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하얀 무지개/ 2006, 그해 겨울-너무 추웠던 그해 겨울의 간이역…

 [서울=동북아신문] 소설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류재순 약력: 중국작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중단편소설집 북경민족출판사/서울'과학과 사상사' 출판. '도라지' 해외조선족 문학상', '설원문학상'소설대상 등 수상 다수.

제1편        
    
     2006,  그해 겨울
    너무 추웠던 그해 겨울의 간이역…

 

진눈개비가 어지럽게 흩날린다.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처져 있는 내 마음에 우수를 난무한다.
한집의 가정부로 집에도 가지 못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있는 나는 주인집의 저녁 준비를 하려고 쌀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급작스레 귀청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큰일 났어요,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갔어요!”
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상대방은 우리가 ‘얼음 꽃 미인’이라고 부르는 민정이었다. 그만큼 차분한 말투와 침착성이 일관되었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 뒤쫓기는 듯 당황하였다. 아니,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가다니? 나는 머리가 띵해 나며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 시키며 자초지종을 케어 물었다. 민정은 숨 가쁘게 널뛰기로 대충대충 상황을 설명하였다.

성남 씨는 어제 저녁, 오랜만에 처남을 만나-다시 말해 몇 년 전에 암으로 저 세상에 간 마누라의 오빠를 서울에서 만났다고 한다. 가슴에 오래 묻어 놓았던 슬픔의 보따리를 풀며 두 사람은 만취하도록 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지하철까지 나와 처남을 보낸 후 성남 씨는 그만 술기운에 지하철 장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 플레트홈을 순회하던 지하철 경찰이 의자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을 일어나라고 흔들었다. 성남 씨는 취중의 잠결에 눈을 감은채로 귀찮다고 팔을 들어 휙 쳤는데 재수 없게 안경 낀 경찰의 눈두덩을 쳤다. 같이 동행하던 두 경찰이 와락 성남 씨를 끌어 당겨 땅에 팽개쳤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성남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같이 주먹질을 했다. 발길에 무수히 걷어차인 그는 결국 외국인이란 것이 탄로가 되며 출입국에 잡혀 들어갔다.

“어떻게 해요, 빨리 구해 내야 할 텐데요!“ 그래도 나이 둬 살 많은 나를 언니처럼 여기고 나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 그에게 나는 그녀가 어떻게 이처럼 상세하게 먼저 알았는지 미처 물을 여지도 없이 전화기를 놓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마침 그날은 나의 남편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말귀를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멍해있는 남편에게 빨리 은행에 가서 현금 한 200만 원 정도 꺼 내여 출입국에 찾아가 사람을 구해보라 부탁하였다. 언젠가 누구도 잡혀 간 사람을 돈으로 해결해 나왔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급히 폰을 닫았다.
늦은 밤, 나는 자그마한 "아줌마 방"에 들어와 마음을 조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웬일인지 남편은 계속 전화도 받지 않고 소식도 없다. 윙윙거리는 창밖의 눈보라 소리는 신음하는 짐승의 괴성 같았다.

어느 날 이였던가, 그날은 때 이른 찬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남편은 현장 일에서 다친 다리 통증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고 나와 지팡이를 짚고 사거리를 지나 쩔뚝쩔뚝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씽-하고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빗살 속으로 쏜살같이 지나며 남편이 짚고 가는 지팡이를 쳤다. 놀란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이 오토바이는 이미 종적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아직 누구 하나 선뜻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였다.
"다친대는 없습니까?"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며 오십대 남자가 부리나케 옆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에 직접 몸을 부딪치지 않았어도 오토바이와 지팡이와의 갑작스런 충격으로 남편은 이미 저 만큼 나굴러 떨어졌다. 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말이 아니었다. 상 중등 키에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그는 두말없이 남편을 업고 병원으로 되돌아 뛰었다. 그게 바로 성남 씨였다.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였을 때 같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고향친구 철수 씨도 찾아왔다. 그날 저녁 내가 성남 씨를 위하여 저녁상을 준비하며 그전에 나와 한식당에서 일했던 민정이와 월매도 불렀다. 우리는 아무 허물없이 너무 잘 어울려 졌다.
우리에겐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외로움, 똑같이 풍기는 "이방인의 냄새", 똑같이 안고 사는 힘든 노동의 고달픔이 있었다. 우리는 만남 그 자체부터 한 동아리가 되어 휴식일이면 꼭 한곳에 모이군 하였다..

중국의 어느 한 무역회사의 대표로 한국에 들어 왔다가 사업 실패로 중국 측의 귀국 통보를 받았지만 마누라 암 치료에 쏟아 넣었던 빚 때문에 그대로 물러앉았다는 김 성남 씨, 러시아 보따리 장사 때 남편을 잃어버리고 한국 돈 천 여 만원을 브로커에 넘겨주고도 한국에서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남아 억척스레 돈을 벌어야 하는 민정이, 그리고 술 만 마시면 마누라 때리기가 장기인 남편과 갈라지려 절대 중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월매. 그리고 또 한사람 철수 씨, 그림그리기 손재간이 있어 어느 건축회사의 설계사로 있었다는 그는 건설 현장에서 철근 오야지로 일하며 수입이 그중 좋은 편이다. 다만 같이 한국에 들어 온 마누라가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장년 어느 지방에 내려가 먹고 자고 하는데서 일하다 보니 역시 항상 외로움을 타고 있는 그다. 그래서 우리와 합류가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와 남편은 유일하게 같이 동참한 부부였다. 한국 친척 초청으로 들어와 이젠 한국 국적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들보다 둬 살 더 많았는데 그들은 우리 두 내외간을 항상 친 형님 언니처럼 따르며 많은 것을 우리 두 내외와 상의하고 의뢰하군 하였다. 국적을 가졌어도 이방인이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그들과의 모임은 역시 즐거운 마음의 쉼 터였다.

주말 휴식일이 되면 우리는 혼자 셋집을 잡고 있는 성남 씨 집에 모여 들었다. 우리만의 메인홀이였다. 그 집 창문의 블라인드는 항상 드리워져 빛을 막고 있어 타향 생활에 불안함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어쩐지 아늑한 안주감을 주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성남 씨는. 입을 꾹 다물고 늘 내용이 담긴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교포들 치고는 퍽 젠틀맨의 멋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항상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끝까지 잘 들어 주며 자기의 의사는 겸손하게 뒤로 양보하는 풍격이 있었다. 그리고 한번 만났던 사람을 두 번째 만날 때 는 꼭 이름을 맞춰주는 책임감 있는 기억력 때문에 다들 그를 좋아하였다. 여성들에겐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따뜻했으며 화를 내는 것을 거의 못 봤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과오로 자신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격언"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스겟 소리도 곧잘 하였다. 그럴 때면 민정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성남 씨를 할끔 바라보군 하였다.
  성남 씨는 우리가 모일 날이 되면 항상 냉장고에 먹 거리를 그득 준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와 우리 남편, 그리고 철수는 물론 우리 여성들도 잘하던 못하던 맥주나 중국산 포도주를 놓고 즐겼다. 그중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다 한국에 왔다는, 애교가 많은 월매는 늘 남자들을 잘 챙겨주었다.
“오빠, 요것 좀.”
얼굴에 별빛 같은 눈웃음을 반짝이며 안주도 착착 집어서 남자들 접시에 잘 놔 주고 술잔에 술도 잘 따라 주었다. 옛날 같으면 술집의 기생 같다고 우리는 입을 막고 삐죽거렸으련만 타향의 슬픈 생활의 환난지우(患難之友)라는 아픔 때문이었는지 우리 동성들의 마음에도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물론 월매가 성남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살피며 매번 이미 애인이라도 된 듯이 성남 씨를 각별히 챙길 때면 성남 씨는 가끔 겸연쩍어 우리 눈치를 슬쩍 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오히려 ‘풋 하하’하고 웃음보를 터터리군 하였다.
 단 한 사람이 웃지 않고 있었다. 민정이었다. 월매와는 달리 다문 입을 잘 열지 않는 민정은 어딘가 조금은 쌀쌀한 기운까지 도는 찬 여자-그야말로 얼음 위에 피고 있는 얼음 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모임에 올 때마다 먹 거리를 잘 사오고 설거지를 도맡아 하였다. 그리고 일단 노래방에 만 가면 그의 애잔한 슬픈 노래들은 우리의 가슴을 적셔 놓았다. 한번은 그녀가 우리 교포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 드라마 "황금사과"에서 나오는"꿈꾸는 카사비앙카"를 불렀다..
"석양은 물드는데,
그댄 어디에 있나
… …
바다와 맞다은 그곳에
붉은빛의 부겐빌레라
그대를 기다리네"

이 노래를 얼마나 애절히 부르고 있었던지 우리는 숨도 크게 안 쉬고 듣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부겐빌레라’는 걸 알고 있어?' 하고 물었더니 "네,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꽃나무 이름인데 당년에 프랑스의 제독이자 탐험가인 부겐빌리 이름에서 나온거란 걸 책에서 봤어요." 하며 야무진 대답을 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노래방에 갈 때 마다 한 번씩 부르는 노래 한곡이 또 있었다. 바로 "님과 함께"였다.' 새 곡들을 많이도 알고 있는 그가 이런 오래되고 조금은 신물이 난 이 노래를, 그리고 그의 애상과 우수에 맞지 않게 이런 경쾌한 노래를 한번 씩 부를 때 면 우리는 의아한 생각으로 바라보다가도 미래의 그 어떤 동경에 빠진 듯이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눈을 감고 엉덩이를 살록살록 흔들며 깊이 심취된 우아한 모습과 그 자태를 동반하는 애잔한 맑은 목소리에 번번이 홀딱 매혹되여 쿵짝쿵짝 다같이 춤을 추며 돌아갔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타향생활의 아글타글하는 고생살이도 우리 모두 그 하나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특히 노래방에 만가면 탠버린을 흔들어 대고 있는 철수는 그 옛날 중국에서 한동안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좀 했었으며 지금 그 고된 노동 속에서도 변함없는 텔렌트 같은 몸매와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를 부르는 민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우리가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철수는 민정에게 은근슬쩍 제 2차로의 약속을 받아내려 그녀의 뒤를 급히 쫓았다. 그러면 민정은 큰언니인 내 곁을 바짝 붙어 걸어간다. 왜, 철수가 싫어? 노래방에 갈 때 마다 주머닛돈을 아끼지 않는 철수가 조금은 안쓰러워 나는 슬쩍 비춰 보았다. 그냥요. 민정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잠깐씩 생각에 잠긴다. 혹 민정도 월매처럼 성남 씨를? 싹싹하고 얼굴 어여쁜 월매, 새침데기면서도 제 할 일은 말끔히 다 해치우며 멋진 몸매에 노래까지 잘하는 얼음 꽃 미인 민정이, 그런데 성남의 태도에선 그 .어떤 기미도 보아낼 수 없었다. 하긴 그들 모두 돌 싱 이긴 하지만 아직은 스테디 한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나에게도 몇 년 전 이혼을 하고 혼자 있는 질녀가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여서 성남이란 남자의 인품을 얘기해줬더니 질녀가 홀 하였다. 성남에게 나의 뜻을 비쳐 봤다. 성남은 또 그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길 뿐 확실한 대답을 적이 피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 년을 함께 지낸 우리 동아리는 이젠 정말 한집 식구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가다니.

한참 마음을 조이고 있는데 뒤늦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 참, 뜻밖이요! 성남 씨가 불법체류 자라네, 돈을 가지고 흥정할 일이 아니었소. 면회는 되여 성남 씨를 만났는데 몸을 많이 다쳤다누만. 출입국에 요구하여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더니 글쎄 지하철에서 경찰 발길에 차여 갈비뼈 세대나 금가고 상했다오. 병원에 입원 시켜 놓고 오느라 정신이 없었소. 개자식들!”
그러니까 그해 중국 대외 무역부측의 소환통보를 받고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눌러 앉은 것이 결국은 불법이란 결과를 초래 한 것이다. 그런 내막 까지는 우리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에 가슴이 떨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평소엔 종래로 화를 낼 줄 모르던 그다. 가슴속 깊이 묻혀있던 저 세상 간 마누라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얼마나 욱 하고 올리 밀었으면 그토록 인사불성이 되도록 만취 했을까?
 사실 성남이 무역대표로 한국에 들어와 한창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간경화 후기로 고생하던 그의 부인이 시급히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성남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팔을 걷어 올리고 혈액 검사를 하였다. 하늘이 도와 줬나, 남편이 부인에게 직접 이식할 수 있는 천재난봉(千載難逢)의 기회를 얻었다. 돈도 없고 이식할 대상도 기다릴 수도 없었던 그 상황에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었으랴 그러나 간이식후 워낙 건장한 체구였던 성남은 무사히 회복이 잘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이식을 받은 부인은 거부 반응으로 상용적인 면역억제제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끝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부인은 남편의 손을 잡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한마디 말을 남기였다.
"그래도 당신 참 고마웠어, 내가 하늘에서 도와 줄 테니 꼭 좋은 사람 만나요!"
그의 고향 친구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우리 몇이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술김에 무의식적인 실수로 경찰의 눈두덩을 쳐 안경까지 깨여 졌다고 해도 술 취한 사람에게 갈비뼈가 다 부러 지도록 발길질을 했다니. 분을 삭이지 못해 한참 가슴앓이를 하던 나는 한밤중에 철수에게 전화를 했다. 월매나 민정이 보다는 어쩐지 그에게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성남 자신은 불법 체류라는 낙인만으로도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지 않는가. 철수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씨발, 때려죽일 놈들! 경찰이란 놈들이 술 취한 사람을 그 지경 만들어 놓다니, 다 교포라고 깔보고 그런거야!“

. 나는 월매에게도 민정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사실 성남이 그날 출입국에 잡혀 가던 날 때맞춰 성남에게 민정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문득 걸려온 민정의 전화에 자기가 지금 어떻게 출입국에 잡혀왔다는 소식만 전하고 더 상세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두 충격을 받는 상태였다. 그들은 일제히 내일 출입국에 성남 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였다. 철수와 월매는 몰라도 민정은 역시 불법체류자니 출입국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나는 신심 당부하였다. 이튿날, 철수와 월매가 출입국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성남 씨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고 있으니 일단은 치료 받는 동안 우리가 어떤 대책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벌서 며칠째 서울 출입국을 쫓아 다녔다. 발길질을 한 그 경찰에겐 아무런 법적 처벌도 없은 체 치료중인 성남은 이제 곧 강제추방이란다. 정말 뚜껑이 열리고 꼭지가 돌 일이다. 가슴은 꽉 막혀 버렸고 힘없는 우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문도 열 수 없었다. 아, 나는 머리를 들고 초점 없는 눈길로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해를 막고 해는 숨어 버리고, 쌀쌀한 바람은 뺨을 때린다. 올 겨울 서울의 하늘은 항상 그렇게 어둠침침하고 서울의 길은 어디나 올리막 길 같다. 공원 길목에 걸려있는 누가 쓴 시 한줄이 눈에 띄운다
"바람이 분다, 괜찮아, 괜찮아."
제밀할, 괜찮기는, 모든 것은 틀어지고 엉망이다. 배부른 소리는 걷어치우라! 벌어진 사태 앞에서 이렇게 하릴없이 나날을 소모하고 있는 나는 주위에 대한 영문 모를 간헐적인 분노로 한참씩 자신을 괴롭힌다. 성남은 벌써 몇 번이나 소식을 전해 왔다. 자기는 모든 것을 다 달갑게 접수하고 있으니 제발 친구들은 조용히 있으라고.

우리의 생각은 이처럼 흐리터분하고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침울하다. 대책도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궁지에 몰리면 담을 뛰어 넘는다고들 한다. 그것은 상식일가 초탈일가? 세상만사의 순리에 따른 순응이냐, 아니면 내 판단의 주장과 욕망을 위한 담 뛰어 넘기냐? 실타래처럼 헝컬어진 사유를 물고 침묵은 지속되고 그 둔중한 침묵 속에서 스릴한 무엇이 잉태되고 있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나의 남편과 철수는 성남 씨를 보려 병원에 갔다. 출입국의 한 젊은이가 성남 씨 옆에서 지킴이 역을 하고 있었다. 곧 떠나야하는 성남 씨를 위해서 하루 일을 전패하고 일부러 왔다고 지킴이 직원에게 해석하였다. 그들은 직원과 같이 울안에 나가 한담도 하고 담배도 같이 피우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운 그들은 모두 속이 출출 하였다. 같이 나가서 간단히 국밥이라도 하고 들어오죠? 아니요. 철수의 말에 지킴이 대답은 단호하였다. 침묵이 흘렀다.
“저 사람 저렇게 링겔 맞으며 계속 자고 있는데 제가 한턱 쏠 테니 잠깐 식사하고 들어옵시다.”
남편이 지킴이를 잡아 당겼다 지킴이는 쿨쿨 자고 있는 환자를 한참 지켜보더니 생각 밖으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식사를 하며 캠 맥주 세 통까지 굽을 낸 그들은 기분들이 한결 느슨해졌다.
“아이고 난 오줌이 마려 화장실에 좀…”
“나 두요”
두 사람이 급히 화장실로 가고 젊은 지킴이는 혼자 뚜벅뚜벅 병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병원 길 건너 왼쪽 굽인 돌이에서 월매를 태운 택시 한 대가 길 한쪽에서 민정이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으로 휙 하고 다가와 멈춰 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나의 남편과 철수가 몸을 제대로 가늠 못하는 성남을 부축하여 감쪽같이 택시에 올라탔다.
병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완전 다른 구역의 한 2층 집에서 나는 찬을 준비하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은 산란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질녀가 구해낸 세집인데 얼마 전에 지방에 내려가 일하게 되여 집이 비어 있었다.
 
드디어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쿵당쿵당 다급히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구부린 성남, 그리고 당황한 눈길을 나에게 던져오는 남편과 철수,
다급히 뒤 따라 올라 온 민정과 월매…
후-나는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우리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감각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민정이가 정신을 차린 듯 말하였다.
‘일단은 편히들 앉으세요. 언니가 음식을 다 준비해 놨는데.”

민정 이와 월매가 주방에 내려가 음식상을 차려 들여왔다. 나는 그동안 오래 동안 옷도 못 갈아입었을 성남 씨를 위하여 미리 준비해 온 옷가지들을 내 놓았다. 성남은 화장실로 들어가 환자복을 벗고 속옷부터 몽땅 갈아입었다.
"나 빨리 집에 좀 갔다 와야겠어요."
성남이 불쑥 말했다.
"이 상황에 어딜 간다고?"
우리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소리 쳤다.
"그분들과 찍은 사진 액자들과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챙겨 와야 합니다."
그때에야 우린 생각이 났다. 그해 중국 무역대표로 성남이 한국에 갓 왔을 때 국회의 모모한 분들과 찍은 사진 액자들이 그 집 벽에 걸려 있었다.
"잘됐네, 그 분들께 좀 도와 달라하면 되겠네."
철수가 흥분하여 말하였다.
"그분들께 그렇게 루를 끼치는 게 아닙니다!"
성남의 단호한 말투였다. 얼굴빛마저 생경해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이 상황에 누가 감히 '탈주범'의 집을 찾아간담?
 성남은 두말없이 일어나 신을 찾아 신는다.
"안돼요, 조용히 집에 계세요!"
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민정이 어느새 신을 끌고 문밖을 나섰다.
"안 돼, 너도 불법인데"
나의 말은 그의 쾅하는 문소리에 묻혀 버렸다.
"꼭 챙겨야 해? 별나게도!"
월매가 나가버린 민정을 향해 볼 맨 소리를 하였다.

.서울의 밤은 유난히 밝고 소란스럽다 .사랑에 울고 웃는 서울의 밤거리, 희망과 절망에 우여우여 소리치는 서울의 밤거리, 달과 별이 짙은 구름 속에 깊이 묻혀 있어도 네온등들은 제가끔의 황홀한 불빛으로 어둠을 샅샅이 들춰내고 있다. 그리고 들쑹날쑹 꽃혀져 있는 서울 밤하늘의 수많은 십자가들, 그 아래로는 삼엄한 경찰차들이 거리를 누빈다.
-불법체류자! 누군가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잡는 것 같다. 민정은 잔뜩 얼어붙은 가슴을 안고 어두운 골목을 찾아 밤 고양이 마냥 조심스레 걸어갔다. 드디어 민정은 텅 빈 성남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우리가 공동으로 알고 있는 감춰놓은 키를 찾아 집안을 정리하였다. 국회의원님 들과 찍은 벽에 걸려있는 액자들-한때의 ‘영광’을 다 내려 챙겨 넣었다. 이것저것 깔끔히 다 정리를 한 민정은 부리나케 문밖을 나섰다.

"저 집인 것 같은데"
민정이 금방 골목길로 되돌아서는데 저쪽 골목 어귀에서 경찰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언듯하였다. 민정은 잽싸게 어둠속에 묻어 들어갔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차려 놓은 음식을 월매가 제일 먼저 성남 씨 입으로 가져갔다.
“너무 고생 많았어, 자기가 추방되는 줄 알고 난 정말 눈앞이 캄캄했었다구. 이젠 정말 다행이다.”
월매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하였다.
삐걱하는 문소리와 함께 민정이 사색이 되어 집안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물건을 가득 담은 짐 가방이 들려 있었다. 백지장이 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린 할 말을 잃었다.
"민정 씨!"
갈린 목소리와 함께 성남이 울뚝 일어섰다. 우린 충혈 된 그의 두 눈에 푹 젖은 무엇이 글썽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정서와 행동에 대해 항상 소심하던 그였다!

“자, 우리의 탈출기, 아무튼 오늘 끝내 성공했으니 술 한 잔 합시다… 다들 잔을 들어 건배!”
누군가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 크게 한마디 띠였다.
이 때였다. 철수의 휴대폰 소리가 우리의 귀를 찔렀다. 모두의 눈길이 소리 나고 있는 그의 폰에 꽃혔다. 숨소리도 멈췄는데 벽시계 소리만 똑-딱, 똑-딱…
  모르는 번호인데? 폰을 한참 뚫어지게 응시하던 철수가 머리를 기우뚱하였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불안한 예감이 번개처럼 휙 지나갔다.

“ 받지 마, 빨리 전화기 꺼! 혹시 위치 추적이라도…”
오늘 그 지킴이는 자기 전화번호 모른다고 폰을 든 철수가 당황히 설명 하였다. 아차, 처음 출입국에 성남 씨 면회하러 갔을 때 방문 서명 단에 전화번호까지 적게 했었지? 철수가 끝내 생각을 더듬어 냈다. 출입국 쪽에선 벌써 다 연계가 되고 깐깐한 추적이 시작 된 것이다! 사실 그 첫 방문 때 만해도 오늘의 계획은 전혀 없었지 않는가. 얼마가 지나자 나의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오늘 사건에 직접 노출 되지도 않았고 나만은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혹 일이 커진다 해도 강제추방 같은 건 없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일하는 집 주인에게 잠시 말미를 얻어 나온 나였기에 주인집의 전화가 올 가봐 유독 나만 휴대폰을 켜놓고 있었던 것이다. 폰 뚜껑을 열면 통화가 되는 나의 휴대폰은 번호를 확인 하려는 순간, 벌써 저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디십니까, 혹 남편 분과 같이 있습니까?”
아차, 나는 나의 실수를 직감하였다.
“네? 남편요? 전 지금 일 하는 집에 있는 데요"

이제 위치 추적이 될 거예요 민정의 말 이였다. 우리는 차려놓은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 한 체 부랴 부랴 문밖을 나섰다. 빨리 흩어져 각자 갈 곳으로 가서 숨어 있자고 하였다. 계단을 내리며 나는 남편과 철수에게 휴대폰을 절대 더 쓰지 말고 버리라고 신심 당부하였다. 뒤를 보니 민정이가 성남을 부추겨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거리에 나왔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나도 빨리 일하는 집에 도착해야했다. 철수와 월매도 제가끔 택시를 잡아타고 뿔뿔이 도망치고 있었다. 성남 씨에게만은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시골이던 어디든 멀리멀리 도망치라고 부탁하였다. 나도 차를 잡아타고 떠났다. 모두들 나 몰라라 도망가기 바쁘다. 무의식중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았다. 민정이가 성남 씨의 팔 하나를 제목에 얹고 걷고 있었는데 마침 택시 하나가 그 옆을 지나다 섰다. 그들 둘은 같이 급히 차에 올랐다. 나는 눈시울이 흐릿해졌고 가슴이 젖어 올랐다. 아, 얼음 미인!

납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힘겨운 나날이 지속 되었다. 사람만 탈출시키면 일거 대성공 일거라는 생각은 오산 이였다. 법무부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일하는 집에까지 찾아 왔다. 그들의 호출을 받고 밖으로 나와 보니 남편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된 판인가? 쏘아보는 나의 눈길을 피하며 남편이 가만히 나에게 알려 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이 우리 집에 뛰어 들었소, 집도 몽땅 뒤집어 놓고 미처 버리지 못한 내 휴대폰도 찾아내고, 그 휴대폰에서 통화명단들에, 전화번호들에 다 들통 나고 말았다니까"

끝내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어제 저녁 그들은 남편을 법무부에 불러다 놓고 사실을 실토하라고 위협 공갈하였으며 내 남편의 휴대폰으로 유관 명단에 다 전화를 하였다. 내가 그렇게나 휴대폰들을 다 버리라고 당부 했건만 내 남편도 그들도 버리지 않았다. 내 남편의 전화번호가 뜨자 철수와 월매는 고스란히 다 전화를 받았다. 법무부에서는 별 큰 힘 들이지 않고 이 세 사람을 가둬 들였다. 물론 남편은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구치소에서 나왔다. 후에 법적 조치가 따라갈 것이니 우선 집에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단 민정과 성남은 정말 휴대폰을 버렸는지 통화도 되지 않고 출입국에서도 단서를 잡지 못했다.

. 그날은 월매를 면회하는 날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 두등이 퉁퉁 부어 눈도 바로 뜨지 못하는 월매는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하소연하였다.
 "언니, 나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어떻게 해! 우리 집 그 알콜 중독 놈 새끼 어떤 여자와 살다 빚만 잔뜩 받아 안고 지금도 매일 술 퍼마시며 내 돌아가기만 눈 빠지게 기다린대요. 내가 돈을 몽땅 안내놓으면 때려죽이려 할 거야! 흑흑…"
한참 울던 그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마디 더 하였다.
"근데요, 성남 씨와 민정이 소식은 전혀 없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들 같이 있는 것 같아, 앙큼한 계집년!"
월매의 입에서 드디어 야멸찬 한 마디가 튕겨 나왔다. 지방에 내려갔다 돌아온 나의 질녀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니, 집 안 꼴이 왜 이렇게 됐어요? "
두서없이 나날을 보내느라 도망친 후 뒷수습 하는 것도 깜박하고 있었다. 나는 성남에게 닥친 재앙을 얘기해주었다.
"아이고, 그런 재수 없는 남자를 소개하려 했어요? 나도 불법인데 큰일 날 번 했네요."
나는 똑같은 불법이었던 얼음꽃 미인이 생각나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 났다.

 외로운 타향살이에서 나를 친언니 친누나처럼 따라주며 서로를 구하다 사고를 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건가?
내가 갇혀있는 친구들을 찾아 출입국을 얼마나 쫓아 다녔던지 출입국 직원들은 나에 대해 아주 익숙해 졌다.

그날도, 출입국 구치소에 갇혀서 고생하는 친구들을 면회하고 또 조사과에 가서 친구들에 대한 선처를 빌고 나온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출입국 복도 장의자에 앉아 흑흑 울고 있었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씽씽 몰아쳤다.
하나의 나무가지가 물결 사나운 소용돌이 속에서 빙빙 돌며 허덕이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범피중류{泛彼 中流}란 것이 있는가 아무리 똑바로 가려해도 세상이란 물살은 기어이 너를 흔들어 놓고 뒤집어 놓으려 한다. 법의 천평은 누구를 위해 평형을 잡고 있나요?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갑자기 누군가 울고 있는 내 눈앞에 휴지통을 갖다 놓는 것이었다. 조금 있더니 휴지 두 장을 빼 내여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눈물을 닦으며 앞을 바라보니 30대 좀 넘어 보이는 젊은이였다. 누구세요? 나의 의아해 하는 눈길을 보더니 이곳 사무실 직원이라고 알려 주었다. 벌써 여러 날 여기 와서 매일 친구들 위해 찾아다니고 우시는 걸 봤습니다. 그 말에 나는 울음이 더 왈칵하고 쏟아졌다. 그는 계속 내 옆에서 휴지를 뽑아주며 눈물을 닦게 하였다.
“그만우시고 이젠 집에 돌아가세요,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 택시 잡기도 힘 들것 같네요. 나도 퇴근 시간 다 되였으니 제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이 낯선 한국 젊은 직원을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모처럼 마음이 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그의 차에 탔다.

눈발이 풀풀 날리는 도로 위를 달리며 그는 나와 많은 얘기를 했다. 참, 대단 하십니다. 중국 교포들은 친구지간에 이렇게나 의리를 지키시는 군요, 한국 사회에선 이미 낯 선 풍경입니다. 지금 서울에 대단한 센세이션입니다. 잘 하셨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친구를 빼내기 위해 그런 큰 모험을 걸고 작전들 하신 것도 그렇고 또 친구가 붙들려 들어 왔다고 해결하시려고 매일 와서 하소연하고 우시는 것도, 그런데 전번에 그 젊은 지킴이 직원 말이에요, 신입 공무원 이였어요, 도망간 두 사람 찾지 못하면 해고 될지도 몰라요.
 네? 해고?
나는 머릿속이 다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해고당한 그 신입공무원의 얼굴이 깨여진 유리 조각처럼 일그러진 성남과 민정의 얼굴에 꽃혀서 다같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 깨였다. 새벽의 꿈이였다.

어둠이 염치없이 야금야금 낮볕을 먹어가고 있는 저녁, 바람이 좀 누그러들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 문고리를 쥐였다. 갑자기 가방 속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나는 가방 속에 손을 넣고 폰을 꺼 내였다.
"여보세요?"
묵묵부답
"누구세요 말씀 하세요"
"누님, 접니다."
뜸을 한참 들이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성남의 목소리였다 .나는 죄여드는 철갑을 뒤집어 쓴듯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저 땜에 너무 죄송해서, 근데 지금 바깥 사정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지금 통화가 얼마나 위험 한가를 직감하고 있는 나는 도청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며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어떻게 보내느냐 등을 물을 수 도 없었다.
나는 급급히 이쪽 사정을 대충대충 알려 주었다. 철수 월매가 잡혀 들어간 것, 그리고 그 신임 공무원의 해임 위기.
"네? 그 신임 공무원의 해임 위기까지?"
너무 충격적인 소식 이었던가 저쪽에선 더는 말을 못하고 떨렁 전화를 놓아 버렸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폰에서는 걸 수 없는 전화라고 알려 줬다. 공중 전화인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또다시 밤을 새웠다. 그들이 아직 무사히 있다는 점이 한시름 놓이게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마음속의 불안감은 심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났다. 집으로 들어 온 남편이 성급히 새 소식을 알려 주었다.
“여보, 성남 씨와 민정이가 끝내 출입국에 잡혀 들어 왔다오.”
응? 난 마음이 덜컹했다. 그러나 금방 또 안도의 한숨이 푸하고 나왔다. 마치 다행이다 싶도록. 이건 또 뭔가? 정말 나로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극도의 엇갈린 정서의 교차점 이였다. 그들까지 잡혀 들어 올 가봐 얼마나 마음을 조였던 나였던가.

사실 출입국에서는 그사이 서울과 지방에 숱한 사복 경찰들을 풀어놓고 샅샅이 뒤집고 있었다고 한다.
무슨 살인 죄수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강력 대처 할 줄 몰랐다.


오랜 흐린 날씨 끝에 모처럼 따사로운 겨울해가 서울의 한강을 비추고 있었다. 구름들 사이에서 태양은 오랜만의 기지개를 켜며 살얼음 아래서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의 물결에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한강변의 마른 나무와 풀잎들이 가벼운 바람결에 귀를 열고 몸을 흐느적이고 있다. 쉽지 않게 찾아온 한적하고 고즈넉한 한강변의 자태다.
 두 중년 남녀가 저 멀리 다리 위에서 내려 팔짱을 끼고 천천히 강변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이 바깥공기가 정말 오랜만이란 듯이 가슴을 쫙 펴고 심호흡을 한다.
택시를 타고 같이 도망치던 그날 밤, 그들 둘은 사우나 방에서 밤을 새운 후, 교포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한강변 어느 빌라의 낡고 축축한 싸구려 지하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민정은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얼음 속에 포장 되어 있던 뜨거운 사랑을 드디어 마음 놓고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한 번도 성남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험을 무릅쓰고 장을 봐오고 약을 사오며 살뜰히 보살폈다.

저 한강 나루터에서 물오리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그러자 뒤에서 또 한 마리가 푸르릉 날아오른다. 두 사람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사색에 잠긴 듯 한참 바라본다.
"아마 같이 있는 짝궁인 거봐요"
"역시 운명을 같이 하는 놈들이군."
운명을 같이 한다는 말에 민정은 생각에 잠기었다. 민정은 성남이 안고 있는 아픔들을 조용히 옆에서 살펴보았다. 그의 과묵이 좋았고 그의 교양과 품위가 좋았다. 전 남편과 비교가 되였으며 매일같이 분주한 식당 홀 서빙에서 무시로 그의 손목을 잡고 그의 엉덩이를 건드려 보는 그 많은 뭇 사내들과 비교가 되였다 .성남은 말없이 그의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에게는 천번의 키스와 백번의 색스는 아니어도, 월매나 나의 질녀와는 다른 자신만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누가 삭풍에 끄달리는 나무숲은 고통 받는 짐승과도 같다고 하였다. 곰팡이 냄새 그득한 지하방에서 도주범이란 곽 안에서 그들은 숨소리 죽여 가며 신음하는, 삭풍에 끄달리는 숲속의 짐승 같았지만 서로를 품어 주고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며 같이 가야할 운명을 후회 없이 맞이하고 있었다.
.
저 다리 밑에서 누군가 한강변에서 팔을 끼고 조용히 산책하고 있는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정 이는 허리를 굽히며 말하고 있었다.
"이거 행운의 네 잎 크로버 아닌가요? 불쌍하게 다 말라 얼어 버렸네요. 돌아오는 봄날에는 다시 살아 날가요."
그 옛날, 나폴레온이 허리를 굽혀 땅위의 네 잎 크로버를 만질 때 적군의 총알이 그의 머리위를 스쳐 날아가 그의 목숨을 건져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풀은 행운의 상징물이 되였다고 하지만 이 마르고 얼어버린 행운의 풀은 과연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우리 걸음을 좀 다그칩시다. 저기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해도 출입국까지는 아마 시간이 꾀 걸릴 거요."
"알았어요. 난 당신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햇빛 좀 더 쬐이라고, 우리가 싸놓은 짐은 그 사람들이 출국할 때 갖다 주겠지요?"
말을 마친 두 남녀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들의 얼굴엔 있어 본 적 없는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아까 그 두 사람 갑자기 어디로 갔지?"
한강변 어느 은행에서 민정이 돈을 꺼낸 단서를 발견하고 한강변으로 찾아와 긴가 민가 확실한 파악 없이 아까부터 그 두 남녀의 행적을 뒤쫓고, 있던 두 사복 경찰은 다시 한강 대교 아래쪽으로 들어가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사람이 귀에서 이어폰을 내려놓으며 놀란 듯이 말한다.
"아니, 그 두 사람 방금 출입국에 와 자진 신고 했다네!”
“네?”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그들은 총총 한강변을 떠났다.

성남은 그날 나와 통화를 한 후 깊은 충격에 빠졌다. 둘은 자신들의 행로를 놓고 모진 진통을 겪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의 대가를 속출 시키고도 궁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러나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감당 못해 휘청이는 곤고한 삶의 좌표를 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까지 주어져야 하는가? 단연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진신고를 결정하였다.
 출입국에 와서 그들은 불법이던 불법이 아니던 이번 사건에 연루 된 외국인은 몽땅 강제 추방이란 최후 결론을 듣게 되었다.
.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저 친구들 하고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어떠한 처분도 제가 가중으로 받겠습니다!"
 소나무 껍질같이 갈라 터지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는 아픔과 회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옆에 서있는 민정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는 날이 닥쳐왔다. 성남도, 민정도, 월매도, 철수도 모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 두 내외는 그들을 보내 주려 마지막으로 출입국에 왔다. 이제 곧 그들은 외국인"보호소" 화성을 거쳐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언제 다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어요?"
울음 섞인 월매의 피타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 성남의 자수로 출입국에서는 앞으로 일단 환대 정책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후의 일은 모두 미지수다.
"면목 없습니다 .평생 이 짐을 지고 가게 될 것입니다."
말을 하는 성남은 고통스레 눈을 감아 버린다.
결국 공든 탑은 이렇게 와르르 다 무너졌다. 우린 억이 막혀 말도 안 나왔다.

"아저씨 부디 건강하십시요! 아무 때 건 꼭 다시 돌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성남을 마주하고 서 있는 젊은이는 바로 그 지킴이 신입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와-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엇 때문에 참았던 눈물과 서러움이 이렇게 갑자기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아, 2006년, 그해 겨울은 너무 춥고 캄캄하였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깨달은….
       
              
            에필로그

바로 한해 뒤엔 2007년, 한국엔 재외동포들에 대한 “방문취업(H-2비자)제”라는 새로운 정책이 실행되었다. 자유왕래가 보장되고 단순노무 같은 제한적인 취업보장이 이루어져 한국에 3D업종 등 인적 자원이 많이 개선 되였고 중국 동포들의 불법체류가 크게 줄었다  지금은 F-4비자,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인권 보장, 재입국을 할 수 있는 합리화한 제도 등 부단한 개선이 실행되고 있다.
2006년에 떠나간 친구들의 소식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 일이 지금 발생했다면…
한 시대는 한 시대의 비극과 아픔이 있다. 그것을 기억해 두는 것이 역사이다.

     서울에서

 

▲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나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사진=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가운데)과 해외 문학상 수상자 박인애 시인.

 

 제2편 

하얀 무지개
                        
 

오래된 열기에 몸체를 한껏 줄이며 맥을 풀고 흘러가던 세린하(细鳞河)강물은 한식경 잘되게 급작스레 퍼부어 댄 소낙비에 시원히 갈증을 푼 철부지 애들 마냥 크고 작은 돌 자갈들을 신나게 마구 부딪치며 쏴쏴 소리쳐 흘러간다. 나는 예금 이와 나란히 책가방을 메고 싱그런 흙냄새로 코구멍을 가득 메우며 세린하 강가의 젖은 풀숲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바짓가랑이가 다 젖어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세린하 강둑길로 왕가툰(王家屯)을 지나서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예금이가 사는 영안툰(永安屯)이 보인다. 하학 후 으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토요일의 반나절 수업은 나로 하여금 친구네 집까지 따라가 놀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금이는 과자봉지안의 닭똥과자를 한 움큼 꺼내어 내 손에 쥐여 준다.
닭똥과자-말 그대로 닭똥 모양으로 튀겨 나온 과자 모양새를 보고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불렀다. 모양은 그래도 그 특별히 바삭하고 달콤한 이색 맛은  우리의 입안에서 행복의 천국을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힘든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공부를 하고 있는 나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맛 볼 수 없는 사치의 간식이었다. 나는 친구가 주는 과자를 입에 한참 물고 그 맛을 음미하다 바삭바삭 씹으며 신이 나게 “친구 따라 강남 가”고 있었다.

물기 가득 먹은 대기 속에서 씻은 듯 말끔해진 하늘 중천에 눈부신 태양이 우리 정수리를 따갑게 내려 쪼였다.
“저것 봐,무지개!”
예금이가 가리키는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채색 띠 같은 오색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찬란한 햇빛, 무한정 시야를 넓혀주는 청신한 공기, 무지개는 요정마냥  하늘에 동화 같은 다리를 걸어놓고 우리를 유혹하였다...
“와!”
많은 무지개를 보아왔으나 그날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지평선 저 어딘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인 덧 싶었다. 우리는 고개를 젖히고 입을 하 벌린 채 아무 소리 없이 한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예금이가 문득 한마디 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전번 가을에 흰색 무지개를 봤데”
“뭐? 무지개가 흰색?”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큰 소리로 말도 안 된다고 우기고 싶었지만 주말이면 번번이 그에게서 닭똥과자를 얻어먹는 고마움이 있어 억지로 꾹 참고 입을 봉하였다. 예금 이는 “재봉틀 집” 외동딸이었다. 그에게는 손재봉틀 일로 동네 사람들의 옷을 지어주며 품삯을 받는 재간 있고 인물 좋은 어머니가 계셨다. 그래서인지 예금이의 주머니엔 잔돈푼이 늘 떨어지지 않았다. 예금이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 인물체격도 최고였지만 옷도 언제나 예쁘게 잘 입고 다녔고 책가방에 군거짓거리도 늘 있었다.
특히 닭똥과자는 그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그와 나는 친구들이 다 인정하는 십대 문학소녀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틈만 생기면 저 멀리 세린하를 끼고 있는 우리 학교 근처의 버들 방천으로 가서 이해 못할 돈키호테의 대사를 모방해 보고 푸시킨 시를 읊곤 했다. 머리가 좋은 그는 교과서에 있는 고리키의 “해연의 노래”를 늘 큰 소리로 줄줄 낭송도 잘 하였다. 물론 공부는 내가 더 잘하였다. 나는 숙제를 꼬박꼬박 완성하는 노력파였지만 그는 대충대충 눈가림으로 해치워도 나와 조금 차가 날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음도 좋으셨고 아는 것도 많으셨다. 그날도 예금이가 나를 데려 온걸 보고 반겨 맞으시며 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이며 절인 깻잎을 내 놓으시며 배불리 먹으라 하였다. 그리고 예금이와 함께 오래 놀고 잠을 잔 후 내일 돌아가라 하셨다. 또 남은 헝겊 조박들로 만든 작은 속옷 하나도 입으라고 내 책가방에 넣어 주셨다. 나는 주말을 그의 집에서 보내기가 일수였다. 이 모든 걸 나의 할머니까지 다 알고 계실만큼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정말 하얀 무지개가 있어요?"
"그래, 분명히 봤다. 다른 사람들도 봤다고 하더라. 햇빛이 부족하거나 물방울이 부족 하거나, 벼로 말하면 결실을 못 맺은 쭉정이 같은 것이지..."

 우리는 어머니가 들으실 가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학을 얘기했고 반의 남자애들을 얘기했다. 예금이는 반의 반장인 민철 이가 책가방 안에 몰래 넣어줬다는 연애 쪽지도 나에게 보여 줬다. 이불 속에서의 예금의 커다란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다른 재간이 없는 나는 문학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데 예금이는 좀 망설이고 있었다.
 음악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 교경절(校庆节) 때면 번번이 무대에 올라 맑은 목소리로 독창을 하군 하는 그에겐  또 다른 꿈이 싹 트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선생님은 그가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졌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시험 준비를 한창 하던 어느 날 이었다. 전반이 발칵 뒤집어졌다. 예금 이와 반장의 연애편지가 선생님의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발견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연신 조용하라고 교탁을 탕탕 두드렸지만 들쑤셔놓은 벌집 마냥 교실은 끝없이 웅성거렸다.
“잘난 척 하더니 연애질이나 하고”
“누가 그러는데 세린하 다리 밑에서 둘이 뽀뽀 하는 것도 봤데 ”
점점 이상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상에 엎드려 울던 예금 이는 끝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같이 뒤따라 나서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꽥 소리를 지르셨다 반에서 수석으로 첫 공청단 입단(入共青团)신청서 승인을 받았던 그들 둘의 명액은 다른 학생에게 넘어갔다.

오랫동안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어수선한 학교생활 속에서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주말에 내가 그를 찾아 갔을 때 그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나에게 하였다 -한 마을에 사는 어느 언니 벌 되는 친구와 함께 북조선에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외지로 옷감을 사러 나가신 어머니가 집에 없는 사이에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한창 북조선에선 이쪽을 향해 인력과 인재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때인지라
예금이 같은 경우, 나이도 어리고 노래 잘하고 인물 좋으니 예술대학 같은데도 거뜬 입학시켜 줄 거란 것이다. 모두 다 그 언니의 말 이었다. 북조선에 가서 유명한 가수로 태어나겠다고 하였다. 예금이의 얼굴은 또 다시 생기가 떠올랐고 그의 입에선 계속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말렸다.
나는 예금이가 북조선에 가는 것이 더 큰 출세의 길이 될 지 아닐 지는 아예 생각도 안했다. 단 그와 갈라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말렸다. 그러나 자신감에 잔뜩 부풀어져 있는 예금이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나를 마주하고 소리쳤다.
“두고 봐, 이담에 너까지 데려갈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 가서 너도 유명한 소설작가가 될 수 도 있잖아! 생각해봐 너는 작가 나는 가수, 아주 우린 유명 빵빵일걸!”
손뼉까지 치며 부산을 떨었다. 헤픈 웃음, 넘치는 열정, 안하무인식의 충만된 자신감- 예전의 그가 다시 살아났다. 그의 마음은 모든 것이 이미 굳게 결정된 상태였다. 그의 뒤에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한 동네 선배언니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학교숙소를 향해 세린하 강변 길섶을 투벅투벅 걸었다. 세린하는 누가 어디서 부르기라도 하는 듯 햇빛 아래서 물고기 비늘 같은 잔물결을 이루며 반짝반짝 줄기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강줄기의 끝은 어디일까...

 세린하의 강물처럼 이미 저 멀리로 출렁출렁 흘러가버린 이 모든 옛일들이 지금 다시 고향을 찾아가는 나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돌아간다. 이번에 가면 꼭 한번 찾아가 봐야지. 이번 귀향길의 가장 큰 계획 중의 하나다. 그때 집에 돌아와 딸의 행적을 알게 된 그녀 어머니가 만사를 불사하고 압록강을 건너가 예금이를 찾기 시작하였다. 반년도 안 되어 예금이는 코 뀐 송아지처럼 꼼짝 없이 끌려 돌아왔다.
그 어머니는 평양의 어느 한 작은 방직공장에서 그녀를 찾아 내였다. 일하는 데는 보통 방직공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는 과외 문예 연출 단으로, 희망 있는 어린 가수로 자그마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연출하는 것을 본 평양 어느 예술단의 단장은 그를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외동딸을 타향에 두고 떠나올 그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예금이는 징징 울면서도 그 동안 그리웠던 어머니였는지라 또다시 고향에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겠다는 풍성같이 부풀었던 꿈을 가라 앉일 수 없었다.
 
아무 경험도 없는 그는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 지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수소문하였다. 그리고 집에 사람이 없을 땐 무작정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연습을 하였다. 그때의 중국은 호적 거주지가 한 사람의 평생 일터를 붙들어 놓던 때였다. 초등학업을 졸업하고 집에 눌러 앉은 소년 소녀들조차 방법 없이 농사꾼 밖에 될 수 없었던 그 답답하고 소통 없던 시절에 농사일에 바쁜, 하나의 이름 없는 작은 현성의 자그마한 촌부락에서 그의 두서없는 열정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현실을 무시하는 예금이의 머리가 좀 이상하다고까지 하였다.

뜻밖의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Y시의 가무단에서 가수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소식을 접했을 때는 면접 볼 날이 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생전 가보지 않았던 Y시를 향해 부랴부랴 떠났다.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에서 떠나 Y시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하루반의 시간이 다 소비 된 상태였다. 긴장하고 떨고 지치고, 끝내는 그의 편도선염이 도지고 말았다. 완벽한 준비들을 하고 온 뭇 가수들 앞에서 그는 아무런 실력도 보여줄 수 없었다.
"저 원래 노래 잘해요 나의 병 나을 때 까지 좀 기다려 줄 수 있나요? “
이 낯선 응시자의 당돌한 말에 면접관들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렇게 두 모녀는 김빠진 공처럼 후줄근히 집으로 돌아 왔다.
몇 년 만에 한번 있을 듯 말 듯 한 기회를 그녀는 이렇게 놓치고 말았다.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이 면접 본 여느 가수 들 보다도 노래를 잘한다고 자신하고 있었고 평양에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어머니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나는 가끔 그녀를 만났다. 내가 학교에서 우리끼리 조직한 문학서클 얘기를 하면 그녀도 같이 흥분되어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의 운명을 얘기를 하며 그 중의 대사들을 큰 소리로 줄줄 외웠다. 그리고 북조선의 유명 시인 조기천의 시도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는지 몰랐다. 사실 자기도 가끔 시를 쓴다고 하였다.
그가 낭송하는 자작시를 듣노라면 교실 책상머리 얘기만 알고 있던 우리 같은 단순한 문학도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넓은 폭의 생활 감수성과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고 있어 나를 심히 놀래우군 하였다. 나는 우리 문학 서클에 가입하라고 하였다. 그녀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진절머리 나는 학교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그래도 자기는 가수가 되는 것이 적성이라 하였다. 방법도 정보도 스승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진 자그마한 촌마을에서 그는 방향 잃은 사슴마냥 마구 날뛰었다.

그때 우리 집은 시골이 아닌 국가의 양식공급을 타먹는 작은 시민생활을 하고 있는 때여서 가끔은 배급 받는 밀가루를 가지고 중국 한족들에게 배운 대로 물만두를 만들어 먹곤 하였다. 조선족 시골 사람들이 잘 먹어보지 못하는 중국식 물만두를 예금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나의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그녀가 오면 갖은 애를 써 꼭 물만두를 해 먹여 보냈다. 그러면서 예금이가 노래를 잘하니 한마디 불러 보라 한다.
그러면 그는 서슴없이 그 작은 방에서 목청을 높여 평양에 있을 때 항상 무대에서 불렀었다는 ‘박연폭포’를 부른다. 그는 우리 둘만을 상대해서도 항상 무대에 나선 것 마냥 얼굴 표정과 몸 연기를 살려가며 목청을 제대로 돋우어 부르는 턱에 옆에 사는 중국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고 킥킥 거렸다. 할머니와 나는 급기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런 상황은 우리 집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저 정신병 아니야?- 소문은 이상하게 나번졌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행운은 찾아왔다. 소란스러운 문화대혁명의 비상 속에 수많은 학생들은 ‘투쟁’하러 다니느라 바빴고, 놀러 다니느라 바빴다. 역전 대합실은 항상 고교생, 대학생들로 웅성거렸다. 예금이는 문화대혁명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가수 꿈 출로를 위해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고군작전하며 항상 여기저기 차를 타고 다녔다.
강성(江城)의 저녁 대합실엔 국방색 헐렁한 홍위병 복장을 입고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는 수많은 홍위병들로 벅적거렸다. 바로 그 속에 물 오른 봄버들 같은 날씬한 몸매, 한참 부푸는 가슴을 팽팽히 감싸고 있는 맞춤형 평복을 입고 어디론가 빠져나가려고 출구를 찾고 있는 한 청초한 앳된 여자의 커다란 맑은 눈동자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녀의 말쑥하고 겁기어린 하얀 얼굴은 이 열기 띤 대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서 두려운 듯 방황하는 어린양 같이 귀엽고 불쌍해 보였다. 그 모습은 한 대학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화대혁명 때문에 휴학이 된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북경대학 졸업을 앞 둔 남학생이었다. 그는 예금을 바라보며 자기네 대학교정에선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다는 생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지루한 문화혁명도 거의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예금이가 우리 집엘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은 희열에 들떠 있었다. 그는 그 북경대의 남자친구에 대해 끝없이 얘기하였다. 자기는 중학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을 실토할 때 그 남자는 이렇게 예쁜 여자가 학벌이 뭐가 대수냐며 "그래도 이것이 힘을 냈어!" 하며 자기 대학 마크를 시위하더란 것이다.
"아, 그 남자는 공과전공이어도 문학예술 모르는 게 없어, 정말 내가 딱 찾고 있던 사람 같아!"
 뜻밖에 자신의 소울 메이드를 찾았다는 행복에 푹 젖어있는 그는 잠시 가수의 꿈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하였다. 그때 그는 수많은 사랑 시를 밤낮 쓰고 있었다. 사랑에 빠져 행복해 하는 친구의 얼굴은 태양보다 더 찬란해 보였다. 그의 결혼으로 더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도 결혼하고 애들을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그녀를 찾아가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강성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번화한 동시장(东市场)을 돌아보고 있었다. 옷 가게 앞에서 체구가 늘씬하게 잘 빠진 어떤 여자가 옷 장사와 가격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예금이 아니니?!” 나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휙 돌리던 그녀도 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 남편 따라 남방 어느 도시에 간 거 아니었어?"
그의 남편은 남방의 어느 대도시의 큰 공장에서 기술공정사로 취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진작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몇 해만에 만난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항상 자신감에 충만 되어 있던 그의 얼굴엔 어쩐지 옛적의 도도하던 빛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내가 묻는 말에 한 오리 가냘픈 웃음을 얼굴에 남기며 어서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하였다. 그의 집은 번화한 동시장의 뒤 모퉁이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그가 차려준 밥을 먹고 우리는 또 다시 한 이불을 덮고 밤을 새우며 얘기를 나누었다.
결혼 후, 그는 줄줄이 딸 셋을 낳았다. 물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들이길 바랬다 . 남편은 그를 자기 부모님들이 계시는 강성으로 집 하나를 사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달마다 생활비를 보내온다고 하였다. 생활은 이럭저럭 유지가 되었지만 남편 없이  혼자 애들을 키우느라 힘겨운 생활이 역력하였다. 나는 그녀의 방을 둘러보며 옛날에 그가 추구하던 그 무슨 흔적 같은 거라도 남아 있나 찾아보았다.
보풀진 소설책과 시집 몇 권이 있었고 음악책 몇 권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 처녀시절에 가수가 되겠다고 여기저기 쫓아다닐 때 찍은 사진 몇 장이 크게 확대되어 액자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결혼사진에 담겨진 행복이 피어나는 그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진속의 한 송이 화려한 꽃으로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갈라 살아야만 하느냐고 나는 따지고 물었다. 남편의 그 공장엔 대학시절 같은 전공이었던 여자 동창이 같이 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대학 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 남자를 벌주기 위해 평생  남자의 옆에서 시집을 가지 않으련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독한 여자도 있다니!~
"아니, 네가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어?"
이런 얘기 그 사람은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해 .
 하느님 맙소사! 너의 자존심은?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당겨 마구 흔들었다.
"에잇, 재미없다. 우리 다른 얘기하자"
분명 많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찾아 온 친구에게 구구절절 털어놓고 싶지 않은 게다. 아니 아프게 가라앉은 앙금을 다시 흔들어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또다시 문학에 대하여 가수에 대하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자기가 Y시의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 ‘푸른 머리야’로 작곡을 했다며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밤중인데 무슨 노래냐며 내가 극구 말렸지만 그는 옛적과 똑같이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애들도 상관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뜻밖에 그 감성에 푹 젖은 노래의 정서가 너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니 너 언제 작곡도 배웠어?"
그는 히히 웃으며 자기는 오선지도 잘 모르지만 일단 감정이 솟구치면 어디선지 알 수 없는 멜로디가 술술 나온다는 것이었다. 필기가 없어도 한번 작곡 된 곡은 순서 하나 틀림없이 그대로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작곡해서 어디다 발표 좀하지?"
"내가 뭐 오선지를 적을 줄 알아야지."
그는 자기가 작곡했다는 여러 곡을 불렀다. 모두 서정 곡들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곡들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무튼 그는 천재인 것이 분명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나는 다시 반시간 남아 급행열차를 타고 강성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이미 근 십 몇 년 만에 고향에 도착한 것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동창들과 고향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었지만 예금이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소식도 두절되었다. 만나보고 싶은 예금이는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는 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너무나 많은 것들이 궁금하였다. 나는 한국에 왔다간 고교동창을 먼저 찾아갔다. 혹시 예금이란 친구를 알 수 있느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 친구의 전화를 통하여 순식간에 퍼졌다 뒤따라 동창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 예금이는 없었다. 나는 조급히 예금이를 묻기 시작했다.
동창이라면 초중 고중 동창이 다 섞여 있는데 예금이가 이 고장에 생활하고 있기만 하다면야 당연히 이 좌석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애타게 찾고 있자 한 친구가 예금이는 확실히 아직 이곳 강성에 산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왜 안 불렀냐고 화를 내었다.
"너 걔 하구 아직도 친해? 왜 꼭 불러야 돼? 그 완전 미치광이야!"
한 남자 동창이 퉁명스레 대답을 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옆에 앉은 동창에게 조용히 예금이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보았다. 이튿날 나는 그 전화번호로 예금이를 찾아 갔다. 그녀는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문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예금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녀의 자세는 옛날 버들가지처럼 쭉 뻗었던 멋쟁이 몸매가 아니었다.
그리고 검은 포도 알처럼 맑고 또랑또랑하던 눈망울은 물에 풀려져 있는 새알같이 힘이 없었다. 두서없이 그려진 눈가의 아이섀도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어쩐지 슬퍼졌다. 낡은 아파트는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층계를 올라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잘 오르질 못하고 있었다.
"올 봄에 Y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어,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나의 놀란 시선을 감지한 그녀가 힘없이 말하였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천천히 올랐다. 문 앞에 도착하니 집안에서 깽깽 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너 강아지 키워?”
그녀는 말없이 씩 웃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새하얀 강아지 세 마리가 오구굿 달려 나와 깽깽 거리며 주인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이상한 냄새가 코 속으로 확 스며들었다. 그는 강아지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답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먹이를 장만해 놓고 강아지들을 불렀다.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제일 먼저 나의 눈에 안겨 오는 것은 맞은 켠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엄청 큰 사진액자였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그 액자 앞으로 다가갔다. 분명 예금이의 결혼사진이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있는 남자는? 나는 근시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저 남자-나도 알고 있는 Y시의 유명한 문학선배? 바로 그 ‘푸른 머리야’를 쓴 시인이었다. 예금이가 그 옛날 그 시에 작곡을 하여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맑은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푸른머리 벚나무ㅡ가없는 들판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 푸른 스카프를 날리며 서 있는 여름소녀의 상상에 심취 되어 있었다. 시인은 나의 친구와는 적어도 십년 이상은 연령차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우리 모두 그 시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내 친구의 얼굴도 사진사에 의하여 젊음으로 많이 손질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너 남편은? 딸들은 다 시집가서 잘들 살고?”
나는 알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묻고 싶은 말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뭐가 그렇게 급해, 다 얘기 할게, 우리가 서로 소식을 끊고 있은 세월이 얼만데, 나한텐 엄청 많은 일들이...”

그는 내 손을 잡아당겨 같이 소파에 앉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곤 한참을 머리를 수그리고 묵묵히 있더니 흩어 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금이의 남편은 몇 번이고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티고 남편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다. 남편도 끝까지 외지에서 독신생활을 고집하였다. 원래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잦은 연회와 파티에서 늘 만취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도 맑은 정신일 때가 별로 없었단다.
어느 날, 그 먼 곳에서 갑자기 소식이 왔다.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그때 중국 돈 몇 십 만이라는 상상 밖의 수액의 돈을 통장에 남겼다. 회사에서 몇 번이나 뛰어 난 연구 성과로 거금의 장려금을 탔었단다. 예금이는 즉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숨어서 울고 있는 그 여자도 봤다!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웬일인지 예금이는 달려가 그 여자를 붙들고 같이 울고 싶었다.

 시집간 세 딸들에게도 얼마의 금액을 나눠주었다. 그리곤 마음을 달래려 Y시로 떠났다.
여관의 한 장사꾼 아줌마가 저녁이 되자 그녀를 무도장으로 끌었다.
아직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하는 예금이의 미모와 몸매, 노래와 춤, 천부적인 재능은 금방 무도장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슬픈 노래도 불렀고 슬픈 춤도 추었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십여 년 전에 상처하고 혼자 살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났다. 퇴직하고 할 일이 별로 없는 그 남자는 가끔 이렇게 무도장에 나와서 고독을 푼다고 했다.
그런데 춤을 추며 인사를 하고보니 그 남자가 바로 ‘푸른 머리야’를 쓴 시인이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 남자는 오선지도 잘 모르는 이 미모의 여자가 자신의 그 옛 시에 그처럼 감성 깊은 멜로디를 맞춰 넣은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예금이의 숨겨진 천재 같은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똑같이 미쳐 있었지, 역시 비슷한 사람끼리 알아보게 되어 있는 것 같아”
그녀가 그 남자를 데리고 강성으로 돌아와 딸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남자가 떠나기 바쁘게 딸들은 약속이나 한듯 우르르 몰려와 돈을 몽땅 내어놓으라고 달려들었다. 왜 아빠가 남긴 그 피 같은 거액의 돈을 가지고 이렇게 급급히 다른 남자 품으로 들어가느냐고 떠들었다. 떠들고 싸우고... 그녀는 기진맥진하였다.
홧김에 그녀는 남은 돈을 몽땅 딸들에게 돌려주고 쫓아버렸다. 그리고 빈집을 뒤로 한 채 Y시로 다시 찾아갔다. 그 남자와 밤을 새우며 인생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문학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얘기했으며 무도장으로, 커피숍으로, 공원으로 마음을 풀었다.
“그래도 그 남자가 내 인생에서 제일 내 마음을 잘 알아 줬던 것 같아. 참 좋은 사람이었지!”
액자의 사진을 보며 예금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말을 끊고 있었다. 그 힘없는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얘기를 계속 했다. 어느 날인가 그 남자가 속이 불편하다고 하였다. 많은 검사를 끝낸 의사는 말기췌장암이라는 무서운 선고를 하였다.
그녀는 첫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보다 훨씬 더 충격이었다고 털어 놓았다.몇 년 동안 병수발을 하면서 그는 뒤에서 한 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그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 남자의 뒷수습을 다 끝내고 강성으로 돌아오려던 날, 깊은 수심에 잠겨 있던 그는 무의식중에 붉은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승용차에 부딪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고 다리가 골절되었다. 그는 심신이 만신창이 되어 Y시를 떠나 다시 이고장의 비어있던 옛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휭 해진 집안엔 낡은 가구들 몇 점이 조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개털이 날려 다녔다. 봄철이어서 강아지들도 털갈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털이 묻을 것 같아 나는 내 가방 놓을 자리를 찾느라 한참 서성거렸다 내 모양새를 보고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다.
“집안이...내가 다리도 허리도 잘 못 쓰니 집안 꼴이”

침대는 두 개였다. 그의 집에만 오면 항상 한 이불을 덮고 밤을 새우며 끝없는 얘기로 밤을 새우던 일이 생각났다. 오늘 저녁엔 어떻게 하는 거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말하였다.
“이 강아지들 셋 다 아직 어려서 내가 데리고 이 침대에서 잘 테니, 넌 저쪽 침대에 가서 혼자 편하게 자라”
“강아지를 데리고 한 침대에서 자?”
 머리를 끄덕였다. 강아지들은 그의 유일한 식구니까 한 이불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밤을 강아지들과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이불이라니, 그 털?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방안이 캄캄하였다. 그녀의 입에선 더는 문학과 예술, 자작곡들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간혹 이것저것 물으면 동문서답 식이었고 어찌 보면, 이상하게 횡설수설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의 이불속에서 강아지들의 깽깽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아아,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독하면 저럴까? 나는 코등이 찡해졌다. 내가 안간힘을 써서 겨우 잠이 들려 할 무렵이다.
“너 외로움이란 거 알아?"
“알만해!” 잠기 어린 소리로 대답하였다. 알긴 무슨, 식구가 없어서 뿐이 아니야...환갑이 넘은 여자가 말이야, 한 밤중에 두 다리가 걷잡을 수 없이 움씰거릴 때가 있지, 웬일인지 몰라 뒤척거리다 비로소 느낌을 알게 되는데, 손을 팬티 속에 넣고 엉성해진 털(거웃) 등에 대고 투정부리는 애 얼리듯 그 외로워하는 것을, 한참 문지른다는 사실 상상해봤니?
나는 자던 잠이 싹 달아났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었지? 숨을 죽이고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나같이 남편을 아직 옆에 두고 사는 다른 사람이 그의 이런 “시크릿”을 들으면 분명 육십 줄에 들어선 늙은 여자가 미친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이튿날, 날이 새어 한결 환해진 방안을 보니 구석구석 손갈 데가 너무 많았다. 여기저기 청소를 하며 침대 밑을 보니 하느님 맙소사 이걸 어찐 담? 강아지들의 똥 덩어리, 털 무더기들이 수북수북 쌓여있었다. 강아지들은 그 어둑한 곳을 자기들의 변소 칸으로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허리를 조금도 구부릴 수 없는 예금이는 그 침대 아래를 한 번도 내려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청소를 마친 나는 그에게 돈 오백 원을 주며 강아지들 집을 하나 사다 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론 다른 수요 되는 물건도 사라고 하였다. 이렇게 큰돈을 주느냐며 그는 거의 허리를 굽히며 받았다. 물론 당시에 그 액수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 익숙해 왔던 콧대 높은 친구의 보지 못했던 자아비천의 자세가 너무나 낯설게 안겨왔다. 닭똥 과자 하나도 쪼개 먹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너 왜 이러니? 나는 가슴이 저렸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북경의 친구 하나가 오늘 강성에 오는데 어느 공무원 국장으로 있는 동창 집으로 오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금이도 동창이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는 아주 좋아하였다. 그는 장롱의 많은 옷들을 꺼내놓고 고르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많은 옷들은 대부분 Y시에 있을 때, 그 사랑하는 시인 남편이 사준 거라고 하였다. 잠시 눈시울을 붉히는 덧 하더니 금방 기분을 되살리며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견주어 보았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하나 골라 가지라 하였다. 나는 저 옷이 꾀 예쁜데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보아하니 이런 모임에 오랫동안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의 아픈 다리와 허리가 엄청 불편해 보였지만 모처럼 좋아진 그의 기분이 보기 좋았다. 국장 집은 넓고 고급스러웠다. 강성에서는 꽤 손꼽히는 사람들이 모인 듯 했다. 내가 절룩거리는 예금이를 데리고 들어서자 나를 반겨 맞던 북경의 그 친구가 금방 낯색이 흐려졌다. 다른 동창들도 애써 불쾌감을 감추고 있었다.
“너 아직도 쟤하고 친하니?”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어제 저녁도 예금이네 집에서 잤다고 말하였다. “쟤 강성에서 소문났어! 미쳤다고 부르는 사람 없어. 툭탁하면 분수없는 말이나 지껄이고 저 주제에 노래도 뭐 가수보다 지가 더 잘 한다나 ”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였다. 그런데도 눈치 없는 예금이는 내가 그에게 돈까지 줬다는 자랑까지 하였다.
며칠 후, 나는 다니던 직장에 볼 일도 있고 하여 그녀와 함께 세린하가 흐르는 고향을 찾아갔다. 우리는 세린하 강변을 거닐며 옛날을 얘기하였다. 그리고 세린하 다리에 서서 다니던 모교 저 멀리 높은 굴뚝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를 태우는 화장장의 굴뚝이었다. 그 화장터를 학교 근처에 지을 때 우리 모두가 재수 없다고 몇 날 며칠을 불평을 부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 그 굴뚝을 바라보는 감회가 또 달랐다.
“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어떤 한들을 풀어내고 있을까?”
 예금의 이 뜻하지 않은 말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글쎄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한들을 풀려고 할까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갔던 이런저런 일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특히 예금이의 낯설게 변화된 모습은 계속 나를 우울하게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폰을 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돌아온 후 잘 있느냐고,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굳세게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전화를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받았다. 그런데 내가 미처 인사를 다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내 그 옷 가져갔어? 나비리본의 하늘색 블라우스 말이야?”
“뭐? 무슨 말 하는 거야? 옷이라니?”
“그 있잖아, 그날 놀러가던 날, 내가 너에게 보여줬더니 네가 엄청 예쁘다고 했잖아 그 옷 Y시에 있을 때, 우리 그 선생님이 사주신 건데?”
나는 예금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가까스로 용건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한대 얻어맞은 것 마냥 띵했다. 설마 나를 도적으로?
“너밖에 왔다간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심장이 쿵쿵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참 심호흡을 한 후, 나는 소리 질렀다.
“너 과연 미쳤구나! 정말 무섭다!”
그리고 휴대폰을 콱! 닫아버렸다. 이런 상대에겐 구구절절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나를 그렇게 모르고 사귀어 왔단 말인가? 어쩌면 나를 그런 상상으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위 친구들이 왜 그를 피하며 미쳤다고 하는 지 비로소 깨달음이 왔다. 이렇게 그와 나의 우정은 끝을 맺었다.

약 1년쯤 지나서였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고향에 갔다 온 친구가 나를 특별히 찾아왔다. 역시 우리 강성 사람이었다. 그가 예금이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예금이가 고향에 돌아온 그녀를 찾아 왔더란다. 예금이는 우리 둘 사이에 벌어진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반년 후에 그 옷을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찾아내었다고 했다. 생전 손님이라곤 없는 자기 집에 나밖에 왔다간 사람이 없었기에 경솔하게 판단하였다는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강아지들의 수작이었단다. 그러니 부디 용서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바뀌어 진 전화번호도 보내왔다. 제발 전화 한 통만 걸어달라는 것이다. 할 말이 많다고 하였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 강성에 갔다 오는 친구들은 번번이 나를 찾아와 그의 용서를 전하였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나의 마음은 풀리지가 않았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나는 문득 예금이를 떠올렸다. 소녀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갖가지 색상으로 떠올랐다. 생각지 않던 회한과 성찰이 내 가슴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용서를 “구걸”했던 예금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다.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또 다시 고향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강성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예금이부터 먼저 찾아갔다. 그녀가 살던 집에는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번화해진 강성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아는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그녀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 전화를 받은 친구가 분명한 소식을 말하였다.
“내가 그 집 큰딸을 만났었는데 저네 엄마 소식을 물었더니 엉엉 울더라!”
“왜?” 나는 다그쳐 물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었나봐. 집안에서 목을..., 무슨 한이 그렇게 쌓였는지 끝까지 눈을 뜨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딸들이 기절 통곡을 했단다”

그 뒤에 친구가 뭐라고 세세히 상황을 얘기하는지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살!’ 이란 두 글자만 내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엄마를 방치하고 무관심했던 딸들의 마음도 얼마나 큰 천벌을 받고 있으랴.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이름 모를 무엇인가를 원망하고 한탄하며 밤거리를 방황하였다. ‘용서!’ 란 한 마디가 그렇게 힘들었던가!
 이튿날, 직장 퇴직금 때문에 다시 세린하가 흐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일을 마치고 혼자서 세린하 강변을 찾아왔다. 둘이서 닭똥과자를 먹으며 마냥 즐겁기만 하던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가 큰 소리로 낭송하던 고리키의 “해연의 노래”가 귀에 쟁쟁히 들려온다.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가슴을 파고드는 자작곡들...
 저 멀리 화장터의 굴뚝에선 오늘도 연기가 피어오른다. 저승에 가는 저 사람들은 어떤 한들을 풀어 놓고 있는 것 일까? 아아, 사라져 버린 하얀 무지개...
  ***
         2016.12.19. 서울에서   
           
창작후기
색 바랜 세월 속에 묻혀 졌던, 희미한 기억이 어느 날인가 핏빛 물포를 튕기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오래오래 소외되었던 그 누군가의 외로웠던 이야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그 소리는 내 마음속에 응어리를 만들고 풀리지 않던 그 응어리는 끝네 수많은 바이러스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드리며 머리통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마침네 내 머리뚜껑을 열어버렸다…
 

 

길림성반석인.

중국작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 북경민족출판사, 서울'과학과 사상사' 출판
'도라지' 해외조선족 문학상',  '설원문학상'소설대상 등등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