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탈출/ 메딘 차이나'

[서울=동북아신문] 소설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강호원 (姜虎遠) 약력: 2003-2005년 도문시 작가협회주석 역임. '인천부두' 등 중 단편 50여편 발표. 윤동주문학상, 연변일보CJ문학상 등 다수 수상. 최근 연변작가협회 계약작가로 장편 “추적”발표.


제1편  

탈  출

 

비몽사몽 잠결에도 김호성은 곁에서 구시렁거리는 마누라를 의식했다. 그만 화가 울컥 치밀었다. 물론 이른 새벽부터 마누라가 남편의 단잠을 깨워서가 아니다. 필시 십여 년을 함께한 마누라였으니 굳이 아침기상을 알리는 시간 종이 울리지 않아도 용케도 시간 때를 맞춰 일어나는 마누라다. 문제는 연 몇 일 심한 독감으로 곁 사람 듣기도 끔찍한 기침소리를 내면서도 집요하게 출근은 고집하는 마누라 거동이 얄미웠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어이 나가는 거요?
김호성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강아지처럼 쪼크리고 앉은 아내 박씨에게 넌지시 말을 건넜다.
-그럼 당신 대신 나갈 건가요?
말 속에 뼈가 있은 마누라 박씨의 날 선 대꾸다.
마누라가 쿨룩거리며 기신기신 자리에서 기어 일어났다.
-쯧쯧… 나 원 기막혀 말이 안 나가네. 그래, 살던 뒤지던…
-뭐라고요?
마누라와 등지고 누운 김호성이지만 등골이 섬뜩해 났다. 마치 선뜩한 비수가 날아와 등에 꽂히는 듯 마누라의 날카로운 시선을 육감 했기 때문이다.
-이 인간 아침부터 괜히…
보나마나 마누라가 표정은 살벌했다. 이제 한마디만 더 했다간 남편이 덮고 있는 이불을 확 낚아채던지 뭔가 발작할 것이다.
마치 먼저 싸움 걸던 강아지가 상대의 기세에 되려 기죽어 꼬리를 내리듯 김호성은 그만 몸을 움츠렸다. 숨을 죽이고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하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행이 마누라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시름 풀린 듯 김호성은 긴 숨을 내 쉬고는 신경질적으로 담요를 확 뒤집어썼다. 지금 김호성 눈에는 마누라가 마치 상대편의 된 주먹을 한방 맞고도 기절하지 않고 다시 기어이 일어 나는 독종 싸움 군 같이 보였다. 하긴 평소에 순한 양처럼 유순하던 마누라가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독을 품은 마누라는 바로 공포 그 자체다.
누가 여자이름은 눈물이라 했던가? 말 짱 허튼소리다. 눈물은커녕 찔러도 피한 방울 안 나오는 독종이라면 어떨까? 암 그렇고 말고.
거실과 바로 맞붙은 화장실에서 변기에 물 내리는 소리를 이어 세수 대야에 수도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구한날 내내 이블 속에서 엿듣는 이른 아침 출근을 앞둔 마누라 기척 소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젠 그 기척에 적응했을 만 한데도 김호성에겐 그냥 새벽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다.
벌써 며칠째 쿨룩거리며 일 나가는 마누라를 진작 주저앉히고 싶었지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주눅에 마누라를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치 어느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신하가 유치한 여왕의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쩔쩔 매듯 그로선 속수무책이다. 미상불 말릴 수 없다는 말은 그만큼 힘이 없다는 말이다. 김호성을 화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마누라 앞에서 큰 소리 쳐 본 기억은 별로 없지만 역시 가부장제가 흥행하는 이“동네”나 원래 자기가 살던 “동네”에선 분명 마누라는 천둥소리 내면 벌써 비 소식을 알린다는 이른바 정통적인 착한 아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마누라가 그 자신도 알아 볼 수 없는“괴물”로 돌변해 버렸는지 스스로도 서서히 저물어 가는 자신의 힘, 한 가족을 통솔하던 카리스마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을 그는 애탄 했다. 아마 “일락천장”一落千丈 사자성어도 이렇게 생겨난 말일 것이다. 마치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가 하루 사이에 내시가 된 기분이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마누라가 어느 사이 화장실에서 나와 방 전등을 켜고 화장대에 마주 앉았다. 곁에 남편이 누워 있는지 없는지 아예 무시하고 화장품들을 딸각거리며 화장에 열중했다.
이불 속에 머리를 파 묻은 김호성이지만 진작 잠이 날아가 버렸다.
언제부터 슬슬 마누라 눈치를 보게 되였는지 그 자신도 딱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한국생활을 계기로 가내 서열에 변동이 생긴 것만 사실이다. 마누라는 한국생활에 척척 적응을 잘 하는데 웬 일인지 자기는 그것이 잘 안 된다. 
아마도 열심히 일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누라가 일 다니는 식당주인이 식당 모든 사무를 마누라한테 떠 넘기고 자신은 다른 사업에 전념한다고 한다. 물론 그만큼 마누라를 신뢰한다는 뜻일 것이다. 마누라한텐 당연히 기회였다. 그에 따르는 수익도 꽤나 짭짤했으니깐. 그러니 마누라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거이 쉬는 날 없이 식당 일에 전념했다. 고향에 모든걸 때려 치고 한국에 나온 목적이 바로 돈 벌자는데 있으니 사실 마누라는 자기 사명에 충실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김호성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한국 땅을 밟은 지가 거이 십 년 가까이 오는데도 그는 아직도 이 곳이 뭔가 낱 설고 생소하기만 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정신 없이 뛰어야 하는 한국 현장막판 생활도 견디기 어려웠고 대한민국을 전전하다가 어렵게 취직한 직장인데 매일 같이 뭐가 여의치 않은지 검었다 퍼랬다 하는 사장님의 변덕 많은 얼굴을 보기도 싫었다. 게다가 나이로 따지면 띠 동갑 한순 차이나 어릴법한 작업반장의 무작정 내쏘는 반말은 더욱 질린다. 하기야 돈 좀 벌게 일 시켜 주십사 하는 “을 방” 쪽이 더 열정을 보이고 주동적으로 이 사회에 다가서야 한다는 도리를 교사출신인 그 자신도 모르리 없지만 생각과는 달리 여태까지 이 곳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일 자리 다시 찾지 않을 것 같으면 내가 한 말 잘 고려해봐요.
이어 출입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누라가 출근길에 오르는 듯 했다. 김호성은 자리를 차고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누라가 남기고 간 찬 기운이 아직도 방안에 서려있다.
지랄하고 있네. 내가 아무리 못나도 설마 마누라가 다니는 식당에 취직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나마 내 집 안방 목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행이지 이런 사연이 바깥 세상에 알려진다면 쪽 팔려서 어떻게 얼굴 쳐들고 나 다니나?
이른바 마누라의 “내가 한 말”이란 이곳 저곳 떠돌며 일자리에 찾지 못할 바엔 차라리 자기 식당에 와 일하란 말이다. 하기야 한 곳에서 한달 이상 버티지 못하고 허구한 날 집에 처박혀 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얄미운데 마누라야 오죽했으랴. 처음은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 벼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누라 말이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사면 초가에 이른 김호성에겐 어쩌면 마누라가 내린 최후의 통첩 같았다. 자기 식당에 취직하던지 아니면 집에서 나가던지, 만약 나가기가 싫다면 자기가 나가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갑자기 김호성은 간이서랍장을 열고 뭔가 뒤적였다. 드디어 그는 한 달 전 끊었던 담배 곽을 서랍 속에서 뒤져냈다. 곽 속에 아직 담배 몇 개비가 남아 있었다. 물끄러미 담배 곽을 내려다 보던 김호성은 갑자기 담배 곽을 구들바닥에 동댕이치고 다시 자리에 들어 누웠다. 불시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울분이 치솟아 금방 눈물이라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한 달 전 힘들게 끊은 담배다.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에서 끊은 것도 아니고 바야흐로 이 사회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설 자리를 박탈해간다는 데서 생긴 위구심에서 끊은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이젠 하루에 담배 한 곽 피우는 것도 그에겐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꼴이 이 지경에까지 닿으니 짜증나지만 김호성은 부득이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바다 건너 이 곳에 온지도 어언간 십 년이 다 돼 가고 있지만 그는 한번도 한 곳에 정착해 꾸준히 일해 본적 없었다. 당연히 일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고 그는 단호히 부인했다. 하지만 일에 적응할 것 같으면 사람이 적응이 안 되고 사람에 적응 할 것 같으면 일이 힘들어 그만 둘 때가 다반사란 것을 그 자신도 인정했다. 말 그대로 하루 고기 잡고 사흘 그물을 말리는 꼴이니 그 사이 마누라가 집 한 채 살 돈 마련했다면 그는 지금 담배 한 곽 사 피우기도 힘든 형편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야 그는 돈의 가치와 파워를 절실히 의식한 듯 했다. 돈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부르짖는 사람들, 한낱 허풍쟁이들이 멋 부리는 흥 타령이라고 그는 진작 결론을 내렸다.
빌어먹을, 그나저나 일은 나가야 하는데…
뭔가 또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팽개쳤던 담배 곽을 다시 집어 들고 그 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집어 입에 물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았지만 그윽한 담배향기가 그의 의식 속에서 끄덕끄덕 졸고 있던 니코틴을 깨웠다. 니코틴은 갑자기 요염한 창녀로 둔갑하여 몸 속 어디선가 어서 오라고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김호성은 또 한번 뜻하지 않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피우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하지만 먼저 떠 오르는 것이 텅 빈 주머니 사정이다. 이제 만약 담배연기 한 모금만 삼켜도 그 후 효과가 어떤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담배 값 만만치 않은 요즘 세월에 정부에선 또 담뱃값 대폭 인상한다고 매일 떠들고 있다. 그지 않아도 마누라한테 용돈 한푼 얻어 쓰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든 현 상황에서 담배 사 피우겠다고 마누라에게 괜히 손 내밀었다가 돈커녕 어떤 굴욕이 그를 기다릴지 불 보듯 뻔했다.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가까스로 다시 뱉어 버렸다. 어차피 날이 갈수록 저주 받는 담배니 어떤 이유에서 끊던 손해 볼게 없었다.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몰래 주어 피우는 노숙자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역시 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더구나 억지라도 한달 가량 견지했는데 이제 다시 붙인다면 그 사이 노력이 도로물릴 수밖에 없는 이른바 “도루묵”이 될게 뻔하다.
김호성은 뜻밖에 몰려오는 담배 생각을 물리치려고 필사적으로 주의력을 딴 곳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느닷없이 김호성은 지나간 세월이 그리워졌다. 하기야 그 동안 마누라 덕에 그나마 배는 곯지 않았지만 역시 굶어봐야 세상을 안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 다만 김호성은 마음 고생으로 세상 뭔가를 보아냈을 뿐이다.
애초에 무슨 정신으로 이 곳을 택했는지? 한심한 것은 그 시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꽤 인정받는 교사 직까지 포기하면서 이 곳까지 온 이유를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필시 돈의 작간이란 것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렇다고 직업까지 포기하고 여기까지 온다는 건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이다. 누군가 천국은 전복된 지옥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 시기 그는 전복된 지옥, 다시 말하면 이른바 천국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지옥에서 산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복중에 살면서도 복을 모른다는 말 또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유가 교사의 낮은 임금 때문일까? 별로 그것도 아닌 같다. 애초부터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였으니깐. 하다면 처음부터 그 자신이 교사란 이 직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사실 처음부터 김호성에겐 교사란 직업이 그다지 달가운 직업이 아니었다. 훈장이 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고정관념에 매료된 것은 아니지만 학생수가 줄어들 때로 줄어든 자그마한 성진 (城鎭) 학교에서 몇 명 안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노릇해 먹기도 재미가 없었다. 울고 싶자 매가 날아 든다더니 마침 돈 벌려고 교포 이세들이 대거 진출하는 한국 쪽에 그는 시선을 옮겼다. 하긴 대부분 사람들이 돈 벌이를 목적으로 한국에 진출했다면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돈보다도 조상의 유골이 묻혀있는 저 땅에 무슨 신비가 숨어있는지 오로지 그것이 궁금했다. 자신이 도대체 뭘 추구하는지 스스로도 아리송했지만 어쩐지 한국이란 저 지평선만 넘어서면 자기가 바라던 뭔가 보일 거란 기대감에 벅차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호성은 지금처럼 우유부단하고 바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사십 대에 진입할 나이지만 주눅이란 걸 모르고 생각이 서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타입이었다. 드디어 한국에 사는 사촌 형이 그들 부부의 한국진출을 도와주겠다는 대답까지 전해오자 그는 아내의 드센 반대도 불구하고 원래 그다지 애착을 가지지 않던 교사 직을 미련 없이 사직했다. 금방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아예 처가에 맡기고 마누라까지 휘동 하여 한국 행에 오른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 당시 그만큼 한 가족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애기다. 사실 아내 박씨는 처음부터 남편이 직업까지 버리고 한국에 나가는 것을 절대 반대였다. 하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매너 스타일이라고 한다. 너도나도 돈 벌러 고향을 떠나는 세월에 낮은 월급쟁이 직업을 버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아내는 남편의 선택을 극구 반대해 나섰다. 이유라면 단 한가지였는데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랬다고 아직 앞에 탄탄대로가 놓여 있는지 가시덤불이 놓여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직업까지 포기한다는 건 너무도 대책 없는 처신이란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되려 남편에게 끌리다시피 한국으로 따라 나오게 된 것이다.
드디어 동경과 푸른 꿈이 움트는 신비의 땅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들을 기다린 건 정신 육체적으로 피곤만 불어오는 고된 노동뿐이었다. 후회막급 몇 번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지만 오히려 거이 억지로 끌고 온 마누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유가 간단했다. 이제 돌아가서 뭘 해먹고 살겠는가 하는 마누라 물음에 김호성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말 그대로 가자니 첩첩 산중이요 돌아가자니 다리가 끊긴 상황이다. 한마디로 그에겐 퇴로가 없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김호성은 이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생각도 가끔 들었다. 하지만 자살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누구처럼 저 높은 건물에서 뛰어 내리자 해도 용기가 필요했고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자 해도 용기가 필요했다. 차라리 피곤한 속세를 떠나 깊은 절로 들어가 부처님을 섬기는 삭발 중이 되는 것도 지금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지만 그것 역시 용기가 있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자기한테서 용기를 빼앗아갔고 지금의 이 꼴로 만들어 놓았는지 자문해 보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그렇게 착하고 유순하던 마누라가 무서운 “모야차”로 변한 현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격변하는 시대라도 이건 뭔가 반칙이고 이율배반이라고 내심 절규도 해봤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아마도 마누라가 자기보다 돈 잘 번다는 어떤 위축감에 자신 심과 용기가 증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독한 여편네…
김호성은 입 속으로 게두덜거리며 마누라를 또 한번 원망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비행기표 끊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갑자기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늦가을 날도 채 밝지 안은 이른 아침에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김호성은 깜짝 놀랐다. 그는 전화번호도 확인할 사이 없이 허겁지겁 수신버튼을 눌렀다.
-김호성씨 일 나가죠?”
저쪽 상대가 별 문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물어오는 말이다.
-다 당연하죠.
오래 전 연락이 없던 일용직 용역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에 김호성은 좀 당황했다.
-지금 나오세요. 그냥 그 지점으로.
뭐라고 대답할 사이 없이 상대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 나갈 사람 없나 보지. 왜 불시에 날 부르지?
얼결에 일 나간다고 대답했지만 김호성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자리에 누운 채 멍한 눈길로 방 천정만 쳐다보았다. 어느 지역 어느 곳에나 똑 같겠지만 일군이라면 일 잘해야 고용주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김호성 스스로도 인정하길 자기는 아닌 것 같았다. 오래 동안 연락 없던 용역사무실에서 느닷없이 연락 온건 아무래도 부를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선택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기야 지금 상황에 더운밥 찬반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어쩐지 기분이 씁쓸했다. 갈수록 저렴해지는 자신의 존재감에 그는 또 한번 환멸을 느꼈다. 헌데 갑자기 조금 전 마누라가 남기고 간 그 살벌한 말이 다시 떠 올랐다.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바로 이혼을 암시하는 마누라 위협적인 언행에 신경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간다. 굳이 네 식당이 아니라도 아무 곳에나 일 나가면 될게 아니야…
그제야 김호성은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얼굴에 뭔가 시름이 잔뜩 실려 있었다. 아마도 처음 멋 모르고 일용직용역에 나갔다가 고된 일에 혼 난 첫 기억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일단 용역사무실에서 전화가 오면 지레 겁부터 집어먹는 김호성이다. 일 찾는 일용직자라면 당연히 반가운 소식인데도 그에겐 불러도 걱정 안 불러도 걱정이다. 체질상 별로 약골도 아닌데도 웬 일인지 체력노동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타고난 “노가다” 체질은 따로 있지 않을까? 사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이른바 지적 노동계층에만 속하는 인텔리로 의식하고 있었다.
김호성은 작업복이 든 배낭을 챙겨 메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단가는 어떻게 받던지 상관 없지만 제발 오늘 배당 받는 일이 힘든 일이 아니길 그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저물어가는 늦가을 날씨는 제법 서늘했다. 이맘때면 고향 같으면 진작 눈송이가 날릴 법도 한데 오로지 길옆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새가 늦은 가을을 알릴 뿐이다.
인행도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김호성의 마음은 착잡했다. 시 좀 쓴다는 시인들의 필 끝에서 극찬을 받는 가을이다. 바로 울긋불긋 산천을 수놓는 그림 같은 계절, 황금나락의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도 오히려 이 계절이 쓸쓸하기만 했다. 실로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이를 악물고 용케도 버틴 하루였지만 대신 이런 지옥 같은 현장엔 다신 안 나온다고 미친 듯 혼자서 횡설수설하며 누구에게 쫓기듯 귀가 길에 오른 김호성이다. 하기야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마음 가지기에 달렸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일용직 자에겐 쉬운 일이 차려지지 않는다는 게 김호성이 내린 결론이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침 출근하면서 걱정했던 일이 그대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설현장 지하층 기계실에 설비자재를 날라 내리는 일인데 대형트럭 세대에 실려온 자재들을 퇴근 전에 지하층 작업현장까지 내려야 한다는 현장소장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쇠파이프로부터 펌프, 대형밸브, 그 자신도 처음 보는 이상한 기재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한마디로 가벼운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도 네 명의 인부가 하나하나 맨 손으로 내려야 했으니 김호성에겐 말 그대로 수난시기가 닥쳐 온 것이다. 이제 다시 용역에 나간다면 성을 고치겠다고 몇 번인가 속으로 부르짖었다.
김호성은 버스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는 단풍 든 가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가을은 예술의 계절, 수확의 계절? 어디 한번 일용직 일군으로 노가다 현장에 나와보시지 예술의 계절인지 슬픈 계절인지 정신이 번쩍 들 테니. 그나저나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생각을 흘려버리던 김호성은 또 다시 깊은 고민 속에 빠져들었다. 죽기도 살기도 힘든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개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젠 하루를 더는 구렁이가 담 넘듯 어물쩍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십 년 내내 이 사회에 따돌림 당하고 (적어도 김호성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엔 마누라한테까지 버림받을 이 시점에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입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고민수준이 아니고 심각한 상황이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에겐 이젠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진작 한국이란 이“동네”에 어울려야 할 자신이 여태까지 어울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니 결국 오늘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한테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뭔가를 보아낸 듯 했다. 하지만 그냥 거기까지다. 이제 모든 것을 자기 잘못으로 인정한대도 뭐가 달라질게 없었다.
거대한 항공기가 부근 공항에서 이륙하는 장면이 버스차창 밖으로 언뜻 보였다. 거대한 비행물체는 스크린 화면을 꽉 채우듯 굉음을 울리며 버스차창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빨간 저녁 노을 진 높은 하늘로 사라졌다. 실로 인간과 자연의 힘이 한데 뒤엉킨 장엄한 한 순간이다.
문뜩 김호성은 뭔가 큰 결심을 내린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더는 이 꼴로 버틸 수는 없지. 죽이되 든 밥이되 든 돌아가는 거야…
일 현장과 집 사이 거리가 서울근교 치고는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 거리라 김호성이가 집에 들어섰을 땐 날도 이미 어두워진 때다. 이상한 건 아직 마누라가 퇴근할 시간 때가 아닌데 뜻밖에 마누라가 집에 먼저와 있었다. 주방에서 뭔가 지지고 볶고 하면서 분주히 보내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주방이 주방답게 익어가는 요리의 향기가 진동했다.
웬 일이지 혹 누가 오시나?
김호성은 어깨를 지지 누르고 있는 배낭을 내리는 것마저 잊고 문어귀에 어두커니 서 있었다.
-아니, 빨리 올라오지 않고 뭘 하세요? 멍청히 서있지만 말고 일단 샤워부터 하세요.
뭐야, 지진이 올려나?    
도대체 마누라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갑자기 눈앞에 벌어지는 마누라 행각에 김호성은 신경이 곤두섰다. 항시 일찍 출근하고 늦은 저녁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 들어서는 마누라니 김호성은 허구한날 혼자서 끼니때를 해결해야 했다.   
한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던 김호성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천천히 등에 멘 배낭을 벗어놓고 방안에 들어섰다. 바짝 마른 몸에서 무슨 땀이 그렇게 흘러나오는지 급기야 겉옷을 벗고 땀내가 풀풀 풍기는 속 옷들을 훌훌 벗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김호성은 지금 주방에서 분주히 저녁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마누라한테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쩌면 지금 마누라가 “최후의 만찬”을 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미 마음도 정했고 어차피 한번 벌어질 일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다짐하면서도 웬일인지 영문 모를 긴장감이 속을 조이고 있었다.
샤워를 끝내자 김호성은 오랜만에 마누라가 차려주는 풍성한 저녁밥상에 마주앉았다. 인삼, 황기, 대추로 장식한 삼계탕을 호위하듯 계란 마리를 비롯한 맛깔스러운 온갖 반찬들로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어느 사이 올랐는지 냉장고에서 금방 빠져 나온 듯 찬 기운이 살살 감도는 맥주까지 대령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나 이 풍성한 저녁을 먹다가 체할 수도 있으니 이유나 좀 알고 먹읍시다.
간만에 김호성은 존대어까지 써가며 마누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유라니요? 아무 이유도 없어요. 어서 드세요.
마누라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 먼저 젓가락을 잡고 이것저것 반찬들을 맛보는 체 했다.
-나 이제 준비가 됐으니 말해도 괜찮소.
-준비라니요? 뭔 준비가 됐다는 거죠?
마누라가 젓가락을 상우에 내려놓고 정색했다.
-당신 이 집 나갈 필요가 없소. 이 집 전부가 당신 거니깐 당연히 내가 나가야지. 굳이 이럴 필요까진 없소…            
사실 어제도 오늘도 똑 같은 생각이지만 김호성은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정녕 마누라가 자기를 버린다 해도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 들려야 할 것이다.
-지금 무슨 애기를 하는 거죠? 이 집을 나간다 구요?
-이 집을 나갈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떠나겠소. 집에 가겠다는 말이요.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간만에 마누라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배짱을 보이는 자신이 스스로도 멋져 보였다. 미상불 잃어버렸던 용기를 어느 정도 되찾은 기분이다.
마주앉은 마누라 기색이야 어떻든 김호성은 우선 맥주병부터 집어 들고 주절거렸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십이 제자와 최후의 만찬에서 마신 술이 포도주라고 하던데 난 맥주를 마셔야겠구먼. 하기야 그시기 맥주가 있기나 했을까?
그는 주저 없이 병 뚜껑을 따고 유리컵에 잔뜩 부었다.
-뭐 여하튼 고맙소. 이런 저녁을 차려줘서.
그는 컵에 찰찰 넘치는 맥주를 한 모금에 쭉 마셔버렸다.
-그 동안 당신을 푸대접한 건 사실이에요. 미안해요...
문뜩 마누라가 뒷말을 맺지 못하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마누라 이상반응에 김호성은 당황해났다. 아침에 그렇게 살벌하던 여자가 갑자기 연약한 여자로 뒤 바뀐 이유가 뭔지, 실로 오뉴월의 날씨마냥 변덕 많은 마누라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마누라가 휴지함에서 휴지를 꺼내 눈 굽을 훔치는 같더니 갑자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겠지. 네 기본이 어디로 갈라니…
김호성은 이미 굽이 난 맥주잔에 다시 맥주를 따르며 이제 마누라가 어떤 식으로 횡포를 부릴지 배포 유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 동안 나도 많이 힘 들었어요. 물론 당신하고 전혀 상관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만 잘 알아 두세요.
천만 뜻밖에 마누라가 자못 차분한 기분으로 나왔다.
그럼 뭐야? 누가 또 괴롭혔다는 애긴가?
김호성이가 속으로 주절거렸다.
…당신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실 나 이를 악물고 오늘까지 견딘 이유는 당신 그 좋은 직업까지 버리고 여기까지 온 이상 누구든 그 자리를 대신해야 우리 가족이 살게 아닌가요? 게다가 아들 장가도 보내고 집도 마련해 줘야겠죠. 적어도 요즘 부모들치고는 지나친 욕심은 아니겠죠.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
졸지에 김호성은 그나마 하루 종일 잊었던 담배생각이 또 되살아났다.
…지랄하고 있네. 남편은 지금 담배 한 곽 사 피우기도 힘든데 역시 돈 많은 부자와 돈 없는 가난뱅이 차원은 틀리는 가부다.
헌데 지금 감히 입 밖으로 한마디도 발설 할 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어딘가 억울한 생각에 김호성은 가슴이 답답해 났다.
-이제 결실이 좀 보일까 하니 당신이 바로 냉수를 끼얹는 구만요.
-결실? 냉수? 그러기에 난 오히려 당신 부담 덜려고 떠나려는 거요. 아마도 여태까지 내가 내린 결정 중 제일 위대한 결정이라 봐야 할 거요. 나 못난 놈인걸 나도 인정하고 있으니 미안해 할 것 하나도 없소. 근데 저 냉장고에 맥주가 또 있소? 먹는바 하고 확실히 먹어줘야지.
…젠장, 죽은 돼지가 뜨거운 물 두려워하랴?
어차피 올 데까지 왔다는 생각에 김호성은 짐짓 느긋함을 보이며 이미 굽이 들어 난 맥주병을 쳐들었다. 그러자 마누라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 한 병을 꺼내 상우에 올린다. 어떻게 나오나 그냥 해본 말인데 마누라 예전과 전혀 다은 반응을 보인다. 잠시나마 느긋해졌던 마음이 어쩐지 다시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여자의 속에 뭐가 들어있지? 금방 뭐랬나? 결실이랬나? 무슨 결실? 분명 뭐가 있는 같은데...
-사실 나 오늘 사장님한테서 식당을 인계 받았어요. 왜 다른 날도 아니고 굳이 오늘을 택했는지 아시겠어요?
-뭐… 뭘 인계 받았다는 거야? 오늘 무슨 날인데?
그제야 김호성은 상황이 자기가 상상했던 바와는 달리 완전히 엉뚱한 데로 흘러감을 직감해다. 다른 때와는 달리 잔잔한 기분으로 다가오는 마누라의 이례적인 압박에 김호성은 또다시 바짝 긴장해졌다. 방금 전까지 집 나간다고 큰 소리는 쳤지만 어쩐지 잠시나마 생겼던 용기마저 실바람에 물안개 날려가듯 자취를 감춰 버린다.
-오늘은 우리가 여기 한국에 나 온지 꼭 십 년 되는 날입니다.
새삼스럽게, 대충 십 년이 다 돼가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네.
김호성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난 십 년 동안 제가 하루도 잊지 못하고 속으로 내내 별러왔던 일이 뭔지 아세요?
바로 정면으로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마누라 눈길을 본능적으로 의식한 김호성은 도대체 입에 무슨 반찬이 들어가는지 맛볼 사이 없이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다만 한가지 생각뿐이었어요. 어떡하면 왕년에 당신이 쉽게 버린 직업을 보상받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유치하죠? 자기 스스로 버린 일자리를 누가 보상해준대요? 누군가 비운 그 자리를 채우려면 아무래도 식구 중 누군가 나서야겠죠.
웬만해선 술을 마시지 않던 마누라가 김호성 앞에 놓인 맥주잔을 덥석 잡더니 큰 모금으로 꿀컥 들이 마셨다.
…십 년 동안 부지런히 일한 덕에 함께 일하는 언니동생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사장님의 인정까지 받아내 가게를 인수하게 되였어요. 이미 말했지만 저 오늘 이 시각까지 버텨낸 데는 바로 당신이 버린 그 ‘직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됐든 잃은 만큼 뭐든 보충이라도 해야 할게 아닌가요? 그런데 뭐? 이제 집으로 도망간다 구요? 당신 집이 어딘데? 집에 가면 반겨줄 사람이라도 있어요? 왜, 학교에서 당신 다시 돌아오라고 부르던가요?
마누라의 기관총 쏘듯 퍼붓는 되알진 소리에 김호성은 그만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사실 마누라 말이 한마디도 틀린 데가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오르는 술 기운에 자기도 뭔가 말하고 싶어졌다.
-사실 나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소…
결국 김호성은 입을 열었다.
…처음 당신 말을 듣지 않고 대책 없이 직업까지 버리고 이곳까지 온 내가 한심했지. 게다가 안 오겠다는 당신까지 억지로 끌고 왔으니 이제 무슨 더 할 말이 있겠소.
처음과 달리 진지해진 남편의 태도를 의식했는지 마누라 박씨도 사뭇 조용해졌다.
…당신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 달갑게 받겠소만 한가지만 미리 말해두지. 사실 나 여기서 더 버틸 힘이 없구먼. 정말 면목이 없소.
김호성은 체념한 듯 세 번째 맥주병을 땄다.
-그렇지 않아요…
마누라는 또다시 차분하고 보다 상냥한 어조로 남편한테로 다가왔다.
…당신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는지 알만해요. 처음부터 눈 높이를 너무 높인 게 문제였거든요…
마누라는 마치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마냥, 어쩌면 자기가 옛날 어린 학생 가르치듯 한국이란 이 사회에 왜 다가서야 하고 어떻게 다가서야 한다는 도리와 방법론을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 여태까지 이곳에서 쌓은 경험으로 봐도 그녀는 남편 에게 이 사회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6개월 후, 서울 한 시장골목이다.
행주치마를 두른 한 남자가 머리에 음식쟁반을 떠 이고 어디론가 급한 걸음으로 음식배달을 나선 모습이 띄었다. 아마도 주방일 보던 중 식당에 딸린 일손 때문에 대신 배달을 나선 모습이 분명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웃 가게주인들과 인사를 건너는 여유까지 보인다. 활기로 넘친 그 얼굴에서 몇 달 전 그늘졌던 우울한 표정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김사장, 김치찌개 하나.
길 건너 과일가게 아줌마가 급히 걸어가는 김호성에게 높은 소리로 음식을 주문한다.
-알겠습니다. 김치찌개 하나! 좀만 기다리세요.
김호성은 빠른 걸음으로 골목 어디론가 사라졌다.


              2014,.10.26

 

▲ 홀로 바위 지키고 서서 하염없이 손님맞이 차림새의 ‘영객송(迎客松)', 그 소나무의 의젓한 자태와 인내...

                                                                                                 
      제2편 

메딘 차이나


반 지하 방이고 바로 앞에 빌라가 창을 가로 막고 있는데도 강한 아침햇살이 용케도 빼곡한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공간을 요리조리 뚫고 방안을 희끄므레 비췄다. 이것 역시 아인슈타인의 빛이 굴절원리인가, 아니면 그냥 빛의 반사광인가? 무릇 태양의 은혜로움을 모르면 지구의 생물체가 아닐 것이다. 헌데 가끔씩 저 빛이 싫을 때도 있으니 실로 인간은 가장 은혜를 모르는 간사한 생물체이기도 하다.
힘들고 짜증난 하루 시작이다. 누가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나는 잠을 설친 어린애마냥 잔뜩 얼굴 살을 찌푸렸다. 휴일이라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사흘전인가 평소에 별로 연락 없던 고향친구한테서 아들 결혼식에 “자리를 빛내달라”는 청첩장이 날라 왔기 때문이다. 한국 문턱이 많이 낮아진 탓일까 요즘은 전과 달리 가족단위로 대거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들은 자식의 결혼식이라든가 어린애 돌 생일 같은 가내 대사를 아예 한국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다. 매번 공휴일 다가오는 전 날 저녁 퇴근하면 막걸리 한잔 먹고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는 것이 이젠 향수인지 악습인지 나도 뭔지 모를 버릇으로 남았다.
치 솔 물고 화장실 거울 대에 마주서니 뜻밖에 거울 속에 코밑과 턱주가리에 검은색 흰색, 거기에 머리털까지 반 이상 빠져나간 반백에 흉물스러운 노인이 나타났다.
도대체 넌 누구냐? 언제부터 요 모양 요 꼴로 변했지?
눈을 치뜨고 어깨 근육에 힘도 확 실어봤지만 때이르게 저물어 가는 못난 상통은 역시 그 놈이 그 놈이다.
-젠장   
대충 샤워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결혼식 장소가 강원도 춘천이라니 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치고는 또 별로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기왕 가기로 작정했으면 일찍이 서두르는 것이 기본이다. 온 사회가 마치 군부대 움직임 같이 빠른 리듬을 타는 대한민국 생활에 나도 이젠 어지간히 적응 했나 보다. 자부심도 아니고 실망도 아닌 혼돈한 사색 속에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우쳤다.
급하다 와 빠르다는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이다. 빠름은 가끔 재난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나 급함은 되려 재난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요즘 들어 느닷없이 영문 모를 화가 자주 나고 누구한테 쫓기는듯한 압박감에 괜히 허둥대며 급해지는 이유가 뭘까? 아마 그래서 성질머리가 처음과 달리 x같이 더러워졌다는 말을 듣는 걸까? 바로 어제 회식자리에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 앞에서 사장이 내린 이른바 “시국선언”이다. 아마 아침 우울해진 심기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성질머리가 처음과 달리 x같이 더러워졌다는 장본인이 바로 나니깐…
기왕 사장이 이런 “선언”을 했을 땐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던 사람들의 사례를 봐도 이제 회사를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하기야 사장의 심기를 어지간히 건드려 놓았으니 그런 예감이 온 것도 당연했다. 별로 큰일도 아닌 일 가지고 사장의 눈에 나고 회사까지 그만두어야 할 위기에 처했으니 어쩌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사장한테 “사과”하라고 슬며시 귀 뜀 해주는 공장동료의 권장을 따르기도 싫었다. 도대체 뭘 사과해야 하는지 답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허리 굽혀 “사과”만하면 오히려 세상살이 편해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규칙이다. 나이 들면서 세상살이에 노련해진 건지 아니면 비굴 해진 건지 무작정 거슬리지 말고 순응만하면 흥한다는 고대 정치인들의 논리가 이제야 가슴에 와 닿은 듯, 내가 뭔가 큰 실수했다는 느낌이 점점 짙어갔다.
-아저씨, 다음 역 서울역이유?
-아닙니다. 그 다음 역입니다.
아침마다 대략 같은 시간, 버스, 구간에서 마치 정해진 방송 프로그램처럼 진행되는데 정신지체장애자인 듯한 한 아주머니와 버스기사의 대화다. 일년 사시절 뭐가 들었는지 터질듯한 배낭에다 춥지도 덥지도 안은 똑 같은 패션으로 나타나는 저 아줌마는 도대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거의 같은 시간 때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저 형상이 어쩌면 홀리우드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천사의 모습 같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갔다.
-내가 왜 이러지?
어이없는 황당한 상상도 한 순간 역시 사장과 어떤 위기감에서 나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별것도 아닌 일 그 자체였다. 회사 일이란 이른바 “철” 일이라 매일같이 철판을 잘라내고 때워 붙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매일 공장의 다섯 여섯 대 되는 대 공율 용접기기가 만 부하로 가동 되는데 이상하게 용접봉 소실 량이라면 또 모를까 발생하지 말아야 할 용접기홀더 소실 량? 아니 파손 량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취약한 재료로 만들어진 중국산 홀더 방전 차단제가 쉽게 깨어지고 부숴지고 하니 당연히 사장본인이 받은 손해피해 의식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장에서 사용하는 메딘차이나가 근근이 용접홀더 뿐이 아니다. 사소한 연장공구로부터 생산자제에 이르기까지 허다한 부문에 중국산에 목을 맨 상황이다. 하기야 누가 목을 매라고 강요한 상황도 아닌데도 번마다 반복하여 기재를 사들인 장본인 역시 사장이다.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나? 실로 웃기는 사람들이다, 매일 같이 저질, 값싼 중국산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지만 정작 물건을 고르고 살 땐 역시 값싼 메딘차이나를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질 좋은 국내산이 없어서 구매하지 못했다면 뭔가 말이 되는데 한마디로 국내산은 비싸고 중국산은 값 싸기 때문에 중국산을 선호한 것일 것이다.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기 막힌 것은 물건을 사들일 때 마다 사장님의 그 예사롭지 않은 넋두리 같은 망발이다. ‘왜 니들 중국산은 한결같이 이렇게 부실하냐’라는 둥 농담도 아니고 진담도 아닌 애매한 말투로 누군가를 골려 주는데 문제는 부실한 중국산과 그 누군가를 은밀하게 “접목”시키는 것이다. 한결같이 부실하다면 그 한결같다는 중국산은 두말할 것 없이 바로 공장에 하나밖에 없는 “중국산”나일 것이다. 그냥 스쳐가면 술 먹은 뒤 망발이고 크게 덮어씌우면 인격비하, 더 크게 덮어 씌우면 같은 동족인데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이라고 어느 진보성향이 있는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리도록 고발 할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아버지가 이민간 나라에서 2세로 태어나 뼈가 굳을 때가 받은 교육이 바로 누굴 고발하는 것이 제일 큰 수치라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기야 요즘 시대 와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나 법보다 인적관계가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특정시대에 살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쩍 하면 남을 고발하는 습성은 필경 좋은 습성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값싼 메딘차이나에 인건비 싼 차이니스를 고용하면서도 늘 그것이 불만인 사장의 사고방식이 이상했고 또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인간한테 천대받고 괴롬 받는 나 자신이 슬퍼졌다. 죽은 메딘차이나는 뭐래도 괜찮겠지만 산 “차이니스”가 괴롭다. 한 두 번이면 또 모를까, 번번히 사람 멸시하고 괴롭히는데도 역시 능수다. 하기야 어느 나라 막론하고 참담한 밑바닥현장에서 예의 바른 신사적 대화나 예우를 바라는 건 사치다. 그렇다고 허구한날 야유와 놀림을 당하는 굴욕도 지겹다. 게다가 인간 사장이란 위인이 절대 외래 식 교육을 받은 “신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른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는 이 나라의 정통교육을 받은 양반후손인건 더욱 아닌 것 같았다. 설사 그렇다 해도 맥이 끊긴지 오랠 것이다. 하긴 나 역시 나 자신이 양반후손인지 상놈후손인지 모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인간 앞에서 내가 한풀 꺾이고 주눅들 필요까지 있을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난 도대체 뭐냐?
때가 되면 뭐든 한마디 하겠다고 다짐했다. 언감생심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건 모두 사장 본인이 자초한 거라고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을 주었다.
나는 마치 싸움을 앞둔 투견마냥 괜히 으르렁거리며 진작 사장과 대결을 기다렸다. 마침 전날 회식 자리에서 사장 입에서 그맘때 그런 오류, 망발이 터져 나오자 마치 사전에 시간을 맞춰놓은 타이머가 작동하듯 나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대놓고 사장을 꼬집고 망신시켰다.
-그러면 차라리 중국산 빼고 사장님이 선호하는 독일 제, 미제, 일제 뭐 그런 게 많지 않나? 왜 하필이면 질 나쁜 중국산 번번히 사들이고는 나중에 누구 탓같이 구질구질하게 물건 괴롭히고 사람 괴롭히나? 콩 짚을 때서 콩을 삶는 인간들, 똑똑하고 강한 체 우쭐대지만 한낱 빈약한 인간들이다’
술기운에 한바탕 망발을 쏟고 나는 단연히 자리를 차고 술좌석을 떠났다. 하기야 대한민국에서 망발, 언어폭력이 흥행, 유통하는 유일한 지대가 바로 “노가다”현장이니 그깟 막말 몇 마디 했다고 문제될 건 없다. 근데 왜 속이 이렇게 허전할까?    
-빌어먹을
속에서 뭔지 모를 울화가 욱 치밀어 올랐다.
어느 사이 버스가 서울역 서부 고가도로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교각을 의지해 지저분한 담요 깔고 무리 쳐 누운 노숙자들, 아마도 지난밤 거나하게 마셨는지 머리맡에 막걸리병과 소주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하긴 휴일 빼고 거의 매일 이곳을 오가며 버스 속에서 내다보는 서울역 뒤 골목, 진풍경이기도 하다. 실로 늘어진 팔자를 가진 인생들이다. 때론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이없지만 어쩌면 하늘을 지붕삼고 산천을 벗을 삼았다는 방랑시인 김사갓 낭만이 그들한테서 엿보이는 같기도 했다. 인간이 장기간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으면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인다더니 아마도 몇 년 한국생활에 많이 지쳤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나는 또 한번 슬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자리에서 잘리면 저들처럼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으니 환장지경이란 사자성어가 바로 이런걸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사장이 “고집 세고 성질머리가 더러워졌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걸핏하면 짜증내고 세상 만사가 귀찮은 이유가 뭔지… 혹 나한테도 갱년기 우울증인가 뭔가 하는 증세가 때이르게 찾아온 게 아닌지?
오, 메딘차이나
그제야 나는 지금 깊은 곤혹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도대체 왜 그깟 별것도 아닌 일 갖고 언감생심 사장과 맛 짱 떴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갔다. 혹 내가 저 태양빛의 은혜도 모르는 얌치의 인간이 아닐까? 뭐가 어떻게 됐든 그래도 몇 년간 밥줄을 준 사장이다. 무지막지하게 회사전원들 앉은 자리에서 떠받았니 실로 무식하고도 어이없는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금방 생각을 뒤집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래, 비록 부모님 고향이 여기라도 저 만주대륙에 이민 가 나를 낳았으니 필시 나도 틀림없는 “메딘차이나”이다. 어쩔래?
나는 마치 앞에 사장이 마주앉고 있는 듯 이를 악물고 눈알을 부라렸다. 그런데도 역시 뭔가 시원치 않다. 마치 화장실에서 볼일보고도 뭔가 개운치 않은 그런 느낌이다. 처음 대한민국 땅을 전전하다가 어쩌다 꼬박 5년이란 세월 말뚝 박은 회산데 이제 그만 두어야 하나? 한마디로 범의 등에 올라탄 꼴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실은 지금 대결 상대가 사장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란 것을 나 스스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공장동료 권장대로 사장한테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해결 볼 일인데 굳이 그것이 싫은 이유가 뭔지? 한마디로 “사과”하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스스로 자신을 이기면 회사에 남는 거고 지면 퇴출하는 거다.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바로 사장한테 항복하는 것이고 되려 지는 것이 나름대로 내가 이기는 것인데 그 대가가 일 자리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으흠…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갑자기 터져 나온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에 스스로도 놀라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이 나를 여겨보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내린 나는 바로 버스환승센터로 연결된 지하철 입구로 내려갔다. 춘천으로 가려면 개통 된지 얼마 안 되는 경춘선을 이용해야 했기 문이다.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려는 순간 느닷없이 발 밑에 뭔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얼결에 내려다보니 누군가      의해 버려진 싸구려 신발 밑창이 발 밑에 애처로이 깔려 있었다.
역시 틀림없는 메딘차이나 구먼. 주인이 어떤 양반인지 속을 꽤 썩였겠는데…
와중에도 중국산이라면 무조건 비꼬는 사장이 떠올랐다. 나는 짓궂게도 발 밑에 깔린 누군가의 신발 밑창을 한쪽으로 차버리며 주절거렸다.
-나처럼 재수없는 놈이 또 있나? 오, 메이딘 차이나.
동병상련, 나같이 재수가 구겨진 놈이라고 나는 괜히 싱겁게 코 웃음 치며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갔다.
헌데 걸음걸이가 좀 이상해졌다. 편한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것도 아니고 어딘가 홀가분한 것이 오히려 꺼림직했다.
-아닌데?
차라리 승객들이 붐비는 평일이라면 좋겠는데 공교롭게도 공휴일이라 열차 속에 승객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 누군들 나의 발 밑 사정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괜히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슬며시 한쪽발로 “병신”된 다른 한쪽 발을 가렸지만 찜찜한 기분은 여전했다.
-멍청한 놈, 스스로 제 뺨 친 게로군. 자기 ‘밑창’이 물러 난 것도 모르고… 
평일 같으면 콩나물 시루같이 꽉 박아선 전철 속에 별스럽게 오늘만 횡덩그레 하여 유독 나만 유난히 돋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 이제 난감한 “지하”를 벗어나면 바로 근사한 신발 하나 사 신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주인의 체면을 깎을 대로 깎는 신발 자체가 메딘차이나다. 길가에 천막치고 “창고정리, 할인 대 행사”라는 간판에 유혹되어 다짜고짜 구입한 건데 사고 보니 역시 중국산이다. 그것도 몇 번 신어 봤다면 모르겠는데 아껴뒀다가 결혼식 때문에 예의상 폼 잡고 처음 신고 나선 신발이다. 
환승역 청량리 역에 도착하자 만사불구하고 신발부터 챙겨야 했다. 하지만 군자는 대로 행이라 했던가? 그럴듯하게 양반걸음 치며 계단 올라왔다. 헌데 바로 지하에서 지면에 올라서자 뜻밖에 저 고마운 태양빛이 또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차라리 어스름한 저녁이나 밤이라면 내 추함을 어느 정도 가려 주겠는데 저 얄궂은 태양은 벌 거 벗은 내 모습을 나 자신과 아무런 협상타협도 없이 거리에 노출시킨다. 도대체 신발가게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역시 나는 천재다. 대한민국에서 길 모르는 택시기사가 없다.
나는 바로 지나는 택시를 잡고 택시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저 기, 기사님 신발 가게 좀 찾아 주세요.
-예?
택시기사가 이상한 눈 길고 나를 바로 보았다.
  -신발 가게가 바로 뒤에 있구먼.
  뒤돌아 보니 기막히게도 금방 내가 택시를 세운 뒤 쪽에 나를 비웃듯 신발 매장대가 즐비하게 늘어섰다.
민망하기 그지 없지만 나는 대충 죄송하다는 어수선한 말을 남기고 다시 택시에서 기어 나왔다.
나름대로 내 맞춤형 이라고 생각되는 신발을 고르고 서둘러 발에 끼워보면서 나는 주인한테 가격을 물었다. 마침 가격도 합리 한 것 같았다. 계산하려는 순간 뭔가 문뜩 떠올라 나는 머뭇거리며 주인한테 다시 물었다.
-혹시 한국산 맞습니까?
-국내산은 아니지만 국내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생산한 거니 국내산과 다를 게 없습니다.
신발업체도 중국에 진출했나?
애매한 신발가게 주인 대답에 나는 그만 심드렁해졌다. 언젠가 여행용 트렁크가 필요해 남대문 시장에 나갔는데 가게주인 이 똑 같은 말을 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만든 가방이라나 뭐라나…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름 놓으세요. 옛날 중국산과 틀리니 디자인도 좋고 질도 안심 할수 있어요. 요즘 많이 나가는 상품입니다.
어쩌면 가게주인이 나보다 더 중국 팬인 것 같았다.
-이것 역시 중국산인데 꼴 좀 보세요.
나는 밑창이 떨어져나간 신발을 쳐들고 가게주인한테 보여 줬다.
-아, 물건 들여오다 보면 당연히 잡것들이 섞이겠죠. 뭐 한국산이라고 그런 불량품이 없겠나요? 요즘 먹을 것 입을 것 중국산 없으면 장사 못해요. 중국산도 중국산 나름이지 좋은 물건은 진짜 괜찮다니 간요.
주인이 극력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국산은 어떤 것들이 있는데요?
뭔가 노파심이 발작한 나는 넌지시 주인한테 물었다.
-당연 있죠.
주인이 디자인이 거의 비슷한 신발 한 쌍을 재빠르게 매장 대 우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가격이 세배 반은 더 튀어 올랐다.
곤혹스러운 한 순간이 흘렀다. 질 좋은 “국내산”사자니 뭔가 버겁고 중국산을 선택하자니 또 뭔가 걱정스럽다.
신발 하나가 사람 더럽게 괴롭히네.
뭔가 조급해 나고 짜증도 났다. 아마 사장도 매장 앞에서 나와 똑 같은 당혹한 경우를 당했을 것이다. 원래 이기적인 인간의 유전자는 똑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낸 후 인간의 이런 이기심을 감안해서 초기 인간세상에 석가, 예수와 같은 여러 신을 보낸 게 아닌가 하는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환각에 가까운 엉뚱한 상상 속에 감격하기도 했다.
까짓, 송충이는 역시 솔잎을 갈아 먹고 사는 것이 본능이라 했나? 어떤 양반의 말씀인지 대단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값 비싼 국내산이면 어떻고 또 값싼 메딘차이나면 또 어떠냐? 근 반세기 메딘차이나를 먹고 마시고 또 입고 신고 여태까지 멀쩡하게 살아왔다. 올챙이가 어느 순간 개구리가 됐다고 어허 저놈들 왜 저 모양으로 못 생겼지 하고 비웃으면 안되지. 항시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생물, 먹고 살만하면 바로 근성을 들어 내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아울러 하나 얻으면 열을 탐내는, 도저히 만족을 모르는 생물 역시 인간일 것이다. 인간의 이런 탐욕이 결국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점점 높아가는 해수면, 여권비자 필요 없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드는 저 스모그, 바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일단 나한테 필요하다면 뭐든 발굴하고 파괴한다. “악마”란 실은 인간이 만들어 낸 낱말인데 궁극적 의미에서 보면 인간이란 자체가 결국 악마가 아닐까?
갑자기 나는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선각자마냥 흥분함과 아울러 희한하게도 또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욕심부리지 말고 내 적성에 맞는 걸 사 신으면 그만이지.
언제나 약자가 그러하듯 나는 스스로에게 합리 한 이유를 제공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치 노신 필 끝에 “아Q”마냥 “정신승리 법”으로 나 자신을 전승한 것이다. 결국 메딘차이나를 선택했다.
나는 모양 바뀐 신발로 춘천행 급행열차에 올랐다, 지하철 뛰쳐나올 때는 뒤가 달아 만사불구하고 탈출했는데 갑자기 느긋해지는 이유가 뭔지, 그래서 화장실 들어갈 때 기분이 다르고 나올 때가 틀린다고 했던가?
열차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소요시간 적어도 한시 간 반 정도는 잡아야 한다니 조금 전 급한 마음과 달리 이상하게 느긋한 마음도 생겼다.
그래 타협하며 살자. 내가 무슨 원칙주의자도 아니고 일편단심 무슨 주의나 신을 신앙하는 신도는 더구나 아니다. 바보같이 스스로 욕을 사서 볼 이유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철 같은 진리로 믿어왔던 헤밍웨이 아프리카 표범이 썩은 고기 날고기 가리지 않는 하이에나와 타협하기 싫어서 저 높은 킬리만자르에 올랐다는 설도 어딘가 회의가 생긴다. 지난 사고방식에 따르면 타협이란 오직 약자의 대명사라고 각인 되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자에겐 선택권이 없다. 전쟁이든 타협이든, 오직 강자에게만 그 선택권이 귀속된다. 저 용맹했던 아프리카 표범이라고 천적이 없을 순 없을 것이다. 아마도 끈질기고 단체심이 강한 하이에나가 두려워서 킬리만자르에 피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감생심 상상해본다. 그래 저 지구의 만물을 살리는 따사롭고도 강력한 태양빛도 중력의 작용으로 이리저리 휘어지고, 휘청거리며 지구까지 온다고 하는데 하물며 우주에서 작디 작은 태양계, 태양계에서 또 작디작은 지구에서 한낱 아침이슬과 같은 짧은 생물체가 자기 배짱으로 직진하겠다고 욕심 부린다면야 얼마나 어리석은 야망일까?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상 속에 열차가 어느 사이에 춘천역에 들어섰다. 늦은 가을 강렬한 해 빛을 맞받으며 나는 전철역을 나섰다. 이상하게 이른 아침 우울하던 기분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상쾌해졌다.
문뜩 바지주머니에 휴대폰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시간 전화 걸어올 사람 없는데. 아니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예감이 불시에 뇌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사장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장동료의 전화였다.
-나 잘린 거야?
이미 예상했던 바라고 상대가 뭐라고 말하기 전 내가 지레 앞섰다.
-뭔 소리 하는 거야, 그지 않아도 사장이 형이 춘천에 같단 소식 어디에서 들었는지 서울 돌아오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거기에서 하루 개기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가 오늘 춘천에 오는걸 너밖에 아는 사람 더 있더냐? 개기라니 뭘 개기란 거지?
사실 오늘 춘천행은 공장의 막내동료 김씨밖에 몰랐다. 공장에서 나하고 유일하게 “평화공처”(和平共处) “오항원칙’(五項原則) 규준에서 공존하는 존재이기도 하니 다만 김씨하곤 뭐든 터놓고 애기할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 김씨가 늘 사장한테 “물러터졌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내 눈에 착해 보이는데 사장 눈엔 물러터져 보이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춘천에서 하루 “개기”란 말 무슨 말인지 나에겐 실로 미스터리다. 물론 “개기란”말뜻을 몰라 어리둥절 해진 건 아니다. 표준어는 아니더라도 싫더라도 좀 견디고 기다리라는 뜻은 굳이 대한민국국민이 아니더라도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글을 깨친 조선인으로 그 뜻을 모를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헌데 내가 왜 여기 춘천에서 하루 “개겨”야 하는지 의문이다.
-우리 사장이 좀 거칠어 보여도 착한 면이 많다니 간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그만 삼켜버렸다.
-가끔씩은 산타할아버지 못지않게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사장님 고향이 춘천이란 걸 형도 알잖아? 내일 아예 직원들 전부가 휴가로 춘천으로 가 낚시도하고 그쪽 특산도 맛보고 좋잖아.
-웃기고 있네. 달력에 빨간 날짜가 연속 찍혀 있는 무슨 명절연휴도 아니고 갑자기 웬 일이라니?
-그러면 그냥 그런가 할거지… 내일 춘천에서 봐요.
김씨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숫제 허기와 갈증을 느꼈을 때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속을 쭉 내리 훑는 묘한 기분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사장이 나 때문에 공장 일을 중단하고 전체 직원들을 이끌고 자기 고향으로 휴가 나오긴 만무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혹시 사장이 그걸 의식한 걸까? 값싼 인력, 더 정확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값싼 기술인력을 놓치기 싫어서일까? 뭐가 어떻든 공장에서 5, 6년 굴렀으니 기술 고참은 아니더라도 준 기술자 자리매김을 한 건 분명했다. 허다한 기업들이 비싼 인건비 때문에 공장 통째로 인건비 싼 국외로 이주하는 오늘 현실을 감안한다면 싼 값으로 숙련공 하나 고용한다는 건 사장으로선 절대 밑진 장사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인력이 귀한 요즘에야…
나는 역시 내 나름의 합리 한 사고방식으로 사장의 이번 내린 결정을 해석하려고 애썼다. 아무렴, 무슨 상관이냐? 미상불 ‘물러터진’막내동료 김씨가 반가운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만은 사실이다. 적어도 당분간 공장에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물러터진” 막내동료가 사장 앞에서 나를 위해 좋은 말을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결혼 예식장으로 향한 나의 발걸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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