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이 전하는 고사성어4] 담하용이(談何容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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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이 전하는 고사성어4] 담하용이(談何容易)
  • 김태권
  • 승인 2019.01.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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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 고사성어 담하용이(談何容易)는 말씀 담(談), 어찌 하(何), 얼굴 용(容), 쉬울 이(易)로서, 간자로는 谈何容易, 병음은 tán hé róng yì라고 표기한다. 말이 어찌 그리 쉽게 용납될 수 있겠는가, 입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며 유의어로는 내지불이(來之不易)이가 있고 반의어로는 경이이거(輕而易擧)가 있다.

 

 무제(武帝)는 한(漢)나라 왕위에 오르자 나라 안에서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사람도 장안에 찾아와 자기를 인재로 추천했다. 한무제는 상시랑(常侍郞) 직을 동방삭에게 주었다. 한무제가 사냥터를 일구기 위해, 장안 근처의 땅을 징용하라는 명령을 하하자, 동방삭은 이 공사계획은 백성들을 어렵게 하고 국고를 낭비하므로 나라에 이로움이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한무제는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방삭은 다시 부국강병의 의견을 올렸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망을 한 동방삭은 한무제를 풍자하는 〈비유선생론(非有先生論)〉이라는 글을 썼다.

 非有先生仕於吳, 進不稱往古以厲主意, 退不能揚君美以顯其功, 默然無言者三年矣. 吳王怪而問之, 曰, 寡人獲先人之功, 寄於衆賢之上, 夙興夜寐, 未嘗敢怠也. 今先生率然高擧, 遠集吳地, 將以輔治寡人, 誠竊嘉之, 體不安席, 食不甘味, 目不視靡曼之色, 耳不聽鐘鼓之音, 虛心定志, 欲聞流議者, 三年於玆矣. 今先生進無以輔治, 退不揚主譽, 竊不爲先生取之也. 蓋懷能而不見, 是不忠也. 見而不行, 主不明也. 意者寡人殆不明乎. 非有先生伏而唯唯. 吳王曰, 可以談矣. 寡人將竦意而覽焉. 先生曰, 於戲. 可乎哉. 可乎哉. 談何容易. 夫談有悖於目拂於耳, 謬於心而便於身者, 或有說於目順於耳快於心而毁於行者, 非有明王聖主, 孰能聽之. 吳王曰, 何爲其然也. 中人以上可以語上也. 先生試言, 寡人將聽焉.

이 문장의 뜻은 이러하다.

<비유선생은 오나라에서 벼슬을 하면서, 앞에서는 옛일을 기려 널리 의견을 내지 않고 뒤에서는 임금의 좋은 점을 칭송하여 그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말없이 조용하게 3년을 보냈다. 오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비유선생에게 물어봤다. “과인은 선인의 공로에 힘입고 많은 현사들의 의견 제시에 기탁하여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감히 태만하지 않았소. 선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리에서 오나라로 와 앞으로 과인을 보좌할 것으로 알고 진실로 기뻐하며 몸은 편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눈은 호색(好色)거리를 보지 아니하고, 귀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 않으며, 마음을 비우고 뜻을 정하여 고명한 의견들을 듣기를 바랐던 것이 3년이나 되오. 그런데 지금 선생은 나아와서는 보좌하지 않고, 물러가서는 군주의 영예도 드날리지 않으니 내가 생각건대 선생이 취할 도리가 아닌 것 같소. 무릇 능력을 품고도 드러내 주지 않으면 이는 불충이요, 보고도 행하지 않으면 이는 군주가 현명하지 못한 것이오. (그대가 아무 의견도 주지 않는 것은)과인이 밝지 못하다는 뜻이란 말이오?” 비유선생은 엎드려 예예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왕이 말했다. “이야기해 보시오. 과인은 뜻을 집중하여 살펴 받아들일 것이오.” 선생이 말했다. “아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씀드리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말에는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며 마음에 어긋나지만 몸에 편안한 것이 있고, 혹은 눈을 즐겁게 해 주고 귀에 거슬리지 않으며 마음에 즐겁지만 행위를 훼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밝은 임금이나 성명한 군주가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오왕이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오? 인품과 덕이 중간 이상인 사람은 깊고 오묘한 도리를 말할 수 있다 하오. 선생께서는 말씀하시오. 과인은 잘 듣겠소.”>

 비유선생은 또 이어 관용봉(關龍逢), 비간(比干), 백이(伯夷), 숙제(叔齊), 태공(太公), 이윤(伊尹) 등 역대의 충신들이 충정의 간청을 하다가 불행한 처지가 된 일을 예로 들며, 세 번이나 ‘담하용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니, 도리어 군주의 행위를 비방했다고 여겨지고, 신하로서 예의가 없다고 여겨지며, 그 결과 몸을 다치게 되고 죄도 없이 허물을 뒤집어쓰고 선조까지 형벌을 받아 천하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 어찌 쉽겠냐고 한 것입니다.(今則不然, 反以爲誹謗君之行, 無人臣之禮, 果紛然傷於身, 蒙不辜之名, 戮及先人, 爲天下笑. 故曰談何容易.)」

 「이런 까닭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를 떠나 수양산에서 굶어 죽어 후세 사람들이 그 어짊을 기리었습니다. 이처럼 사악한 군주는 두려워하기에 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 어찌 쉽겠냐고 한 것입니다.(是以伯夷叔齊避周, 餓於首陽之下, 後世稱其仁. 如是, 邪主之行, 固足畏也. 故曰談何容易.)」

 「태공과 이윤은 이처럼 되고, 용봉과 비간은 저처럼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 어찌 쉽겠냐고 한 것입니다.(太公, 伊尹以如此. 龍逢, 比干獨如彼, 豈不哀哉. 故曰談何容易.)」

 오왕은 비유선생의 말을 듣고 그 이후로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널리 덕정과 인정을 펴고, 스스로 절검하고, 간신들을 멀리하고, 가난한 자와 노인과 홀로된 사람들을 무휼(撫恤)하고,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가볍게 하기를 3년 동안 하여 나라가 크게 다스려지고 천하가 안정되었다.

 한무제는 〈비유선생론〉을 읽고 동방삭의 의견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담하용이’가 유래했다.

 해석하자면 원래는 신하가 군주에게 진언하는 것이 쉽지를 않다는 뜻이었는데, 후에는 일을 하려고 하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고사성어 쓰임을 예로 들자면 <평화와 경제를 빨리 춰 세우면 좋겠지만, ‘담하용이(談何容易)’라고 어찌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인내를 가지고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 만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할 수 있다.

        ▲ 김태권 약력: 발관리白雲堂 원장,중국평형침구학회 회원,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동북아신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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