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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글/김경애]사랑은 돌고 돌아서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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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1  16: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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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애 약력 : 중국 제4회 애심여성 컵 은상 수상. 시, 수필, 수기 다수 발표.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롯데면세점 동원 매니저, 승헌인터내셔널 대표, 한반도통일문학협회 이사,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서울=동북아신문]그날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출근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팽이처럼 돌아치는 나를 골려주려는 듯 집요하게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라고 생각하며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인사도 안하고 무작정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너무나 느긋하신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 있기는…오늘이 막내 네 생일이잖아~”

‘후~ 밤새 별 일 없었구나…’라는 안도감을 내려놓는 동시에 ‘어머 벌써 날짜가 그리 됐나?’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갸우뚱했다.
“아니 잠깐…엄마, 아직 설날이 멀었는데?…제 생일은 설 보름 전이잖아요? 그리고 무슨 생일?…바빠 죽겠는데…”
……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잠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래? 내가 잘못 봤나? 달력에다 표시를 해 두었는데?…”
아마 달력을 다시 보려고 주섬주섬 일어나는지 엄마의 무릎 관절이 따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엄마한테 변명을 널어놓았다.
“엄마, 전 매일 생일인 걸요…엄마가 저를 이렇게 멀쩡하게 낳아주셔서 매일 감사하니 매일 마다 생일인거죠?!” 나는 급기야 얼렁뚱땅 둘러대며 엎지른 물을 마구 퍼 담았다.

힘든 시절을 다섯 남매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우리 엄마, 당신 건강이 안 좋으면서도 늘 자식들 걱정을 하시는 우리 엄마, 어느덧 고우시던 얼굴이 언 감자껍질처럼 조글조글해졌고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꼬부랑 할머니가 돼 버렸다.

나는 엄마, 아빠의 막내 공주다. 태어나서부터 정신적 사랑과 물질적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나는 제멋에 잘난 것처럼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엄마가 요즘 소화가 너무 안 돼. 한번 모시고 병원 다녀 오거라.”
“시간이 없어요. 허구한 날 소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가까운 동네 병원 다녀오시라고 하세요.”

아빠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는 나의 퉁명스런 말투 때문에 점점 작아지는 듯 했다. 엄마는 평소에 너무나 건강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병약한 아빠가 아프다고 하시면 무작정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지만 돌 꼭대기 위에 올려놓아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성격의 엄마인지라 엄마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며칠 후, 아빠의 독촉 전화를 여러 번 받고서야 겨우 시간을 내어 엄마를 모시고 동네 병원으로 갔다.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기본 검사를 다 하고 나서 제일 마지막에 초음파 검사를 했다.

“난소 주위에 12cm 크기의 종양이 보입니다.”
의사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사 결과를 간단히, 아주 간단히 말해 주었다.

“아니, 소화가 안 되어서 소화기내과를 찾아 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예요?”
야구방망이에 귀뺨을 얻어맞은 듯 귀가 얼얼해 났고 억울한 나머지 목소리는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엄마의 손을 끌고 동네 병원을 뛰쳐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다. 돌팔이의사라 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기사아저씨한테 빨리 가까운 3차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 나는 의사선생의 말을 인정하기 싫었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몇 분 거리 밖에 안 됐지만 한 시간을 달리는 듯 병원은 꽤 멀어 보였다.

나는 엄마의 손을 놓칠세라 꽉 잡았다. 조글조글한 엄마의 손은 전보다 많이 작아진 것 같았다. 마음이 미어질 듯 아파서 엄마의 얼굴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애꿎은 창밖만 바라보았다. 차창 밖은 아무것도 안보이고 뭔가 언뜻언뜻 지나가는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눈물이 똘랑똘랑 떨어졌다.

결국 엄마는 암 전문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두 번의 대수술을 거쳐서 크고 작은 종양들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 달에 한 두 번씩 입 퇴원을 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병원에 가있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삼년동안 반복되는 항암치료 때문에 간병을 하느라 언니들과 나는 휴가도 휴일도 거의 다 반납했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각자 자기생활 때문에 다망?하다보니 가끔은 엄마를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 나는 차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근하느라 마을버스를 탔는데 뒷좌석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 아니니?”

흠칫 놀라서 뒤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 임자는 엄마였다. 엄마는 집에서 입던 꽃 바지를 그대로 입고 슬리퍼를 끌고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바로 뒷좌석에 않아 있었다. 나는 핸드폰에서 눈도 안 떼고 버스를 타느라 전역에서 탄 엄마를 못 알아봤다.

“이른 아침에 어디가세요?”
나는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서 인사 치례하듯 물었다.
“뜨개 실 사러 동대문에…”
엄마는 기침을 쿨럭쿨럭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밥은 먹고 다니니?”
“바빠 죽겠는데 밥 ,밥…엄마, 나 내릴게요. 환승해야 해서…”
나는 얼버무려 대답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까똑! 까똑 !!
아침부터 내 핸드폰이 까똑 거리느라 분주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요즘은 SNS에 생일이 공유되다보니 얼굴도 못 본 친구를 포함해서 연락처에 있는 분들 거의 다 본의 아니게 생일 날짜를 알게 된다. 거의 똑같은 생일 축하 메세지다. 하지만 누구나 축하를 받으면 당연히 고맙고 기분도 좋아 진다. 나는 흥얼거리며 파티 하러 가려고 거울 앞에서 꽃단장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문자 한통이 또 날아왔다. 우리 가족 그룹 방에 아들의 메세지였다. 며칠 전 이스라엘 연수 갔는데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준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어머니,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저를 키우느라 고생하셨는데 이제는 어머니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행복하세요. 저는 아버지와 함께 지지할게요. 그리고 어머니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순간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들은 저를 키워줬다고 감사하다며, 어머니를 낳아준 어머니의 어머니께도 감사하다는데 나는 도대체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들한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부모님께는 사랑한다고 말해 봤던가?

남들에게는 공손하게 말하면서도 엄마한테는 툭하면 화난 듯이 오뉴월의 개살구처럼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남에게는 밉보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정작 나를 가장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께는 잘 보이려고 애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고객들에게는 상냥하게 대해서 늘 칭찬을 받지만 툭하면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고 화를 내기도 했던 생각이 나면서 코끝이 막 찡~ 해났다. 거울에 비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얄미웠다.

얼마 전에 엄마 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 챙겨주신 검정 비닐봉투가 거울 속 저편에 있다. 성급히 일어나서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비닐봉투를 가져와 풀어 헤치자 꼭꼭 눌러 담은 알록달록 수세미들이 오물조물 부풀어 나왔다. 딸기 모양, 포도모양, 꽃모양, 인형원피스모양 등 각양각색의 수세미였다. 그것은 잠 못 이루는 밤, 통증을 이겨내면서 한 올 한 올 엮어낸 엄마의 사랑이었다. 치매 예방에 좋다고 뜨개를 배운다고 하시더니 언제 이리도 많이 떴을까? 부풀어 나온 수세미를 정리하다가 나는 그 속에 있는 엄마의 쪽지를 발견했다.

“경애야, 엄마가 틈틈이 만든 수세미를 잘 두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써라. 엄마가.” 비록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쪽지에서 풍기는 진한 사랑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서둘러 집 문을 나섰다. 오늘은 생일축하파티대신 입원해 계신 엄마한테 달려가서 더 늦기 전에 꼭 그러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 사랑합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 한수를 지어 나의 생일을 기념일로 만들어주신 병상의 엄마에게 선물로 바친다.

엄마는 아프다

부모형제 옷 젖을까 봐
천둥번개만 쳐도 아프고
자식들 추울까 봐
찬바람만 불어와도 아프다

그리움이 쌓여서
고질병이 되었고
걱정이 뭉쳐져서
무서운 종양이 되었다

병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빨대를 빠는 모습은
젖가슴을 탐하던 어른아이
엄마는 엄마와 걸음마 탄다

2019년 1월 20일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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