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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2019년 작품특집23]전월매 칼럼 '디아스포라 조선족 아리랑의 서사와 담론' 외2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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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2  12: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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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평론으로 보는 동포문인의 문학세계...

   
▲ 전월매 약력: 천진사범대학교 한국어학과 부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장,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중앙인민방송국 여성수필 우수상,흑룡강신문 교원수기 우수상, 중국조선어문 정음상 은상 등 수상. 시, 수필 다수 발표, 저서 『재중조선인 시에 나타난 만주 인식』(역락, 2014), 『한국문학 연구와 교육의 현장』(학술정보, 2016), 국내외 학술지 40여 편의 논문 발표.

 

제1편

디아스포라 조선족 아리랑의 서사와 담론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민족의 노래이다. 아리랑은 적대적 남북관계에도 동질성의 끈이 되어 '국가'의 경계를 넘어 '민족'이란 호명으로 하나로 묶어주고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시켜준다.

아리랑이 널리 확산되고 한민족의 아이콘이 된 것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예술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나운규 감독은 나라 잃은 설음을 영화에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영화 스토리는 간단하다. 대학을 다니다 3.1운동의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주인공 영진에게 아끼는 여동생이 있었다. 일본 경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기호가 어느날 여동생을 겁탈하려고 하자 영진은 기호에게 낫을 휘두른다. 영진은 일본 순경에게 붙잡혀 수갑을 찬 채 끌려간다. 이때 주제가 ‘아리랑’이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 영진의 모습이 마치 나라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어 한반도를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이주하는 수난당한 한민족과 같다고 생각한 관객들은 영화의 주제가인 ‘아리랑’의 흐름과 함께 영화관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영화의 주제가는 우리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가사이다.

1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네
2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3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4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예전의 지역적인 민요아리랑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불러졌고 공동체적 집단의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가사에서는 '우리네 살림살이' '이 강산 삼천리'라는 국토관념, 민족이라는 더 큰 대자아로 비약하게 된다. 이는 영화안팎의 사람들을 이 강산의 일원으로 동참시켜 노래의 민족 정서적 공감 속에서 집단적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상상의 공동체로 메아리치게 하였다.

일제는 <아리랑>이 민족의 얼이 깃들어있다고 하여 상연금지령을 내렸고 아리랑노래를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조선인 작가들을 동원하여 대동아공영을 위한 황국신민의 친일아리랑을 만들게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윤해영의 <만주아리랑>이다.

그러나 조국독립을 위해 항일투사들이 건너온 만주나 중국지역은 항일독립운동근거지가 되면서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아리랑이 탄생하였다. 여기에는 <광복군아리랑>, <독립군아리랑>, <혁명아리랑> 등이 있다. <독립군아리랑>의 "일어나 싸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놈 쳐부셔 조국을 찾자/.../부모님 처자들 이별을 하고서 왜놈들 짓부숴 승리를 하자//(후렴)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가사에는 총칼 들고 일제놈 싸워 이겨 조국을 되찾자는 항일의 의지, 저항의 의지가 굳게 표현되어 있다.

민요뿐만 아니라 중국지역에는 항일의식과 항전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아리랑> 무대가 열렸다. 그 일례로 1938년 조선의용대가 계림에서 공연한 연극 <아리랑>, 1940년 서안을 비롯한 전선지역이 가까운 서북지역에서 순회 공연한 한유한의 가극 <아리랑>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의용대의 <아리랑>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 고향을 떠나 이역을 유랑하는 조선민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하였다. 일제강점기 늙은 농부와 소녀가 침통한 표정으로 한번 떠나면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아리랑고개를 넘는 장면들이 나오고 극의 결말은 죽더라도 조국의 품안에서 죽겠다고 절규하는 청년들의 굳은 의지로 끝난다.

예술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유한이 창작한 가극 <아리랑>은 극정이 조선의용대의 <아리랑>에 비해 심오하다. 평화로운 조국의 품에서 살던 목동과 촌녀는 연인관계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아리랑산 정상에 일본국기가 걸리고 강산은 혈흔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늙은 부모와 이별하고 산 아래서 보국을 맹세한 뒤 한국혁명군에 가담한다. 그 뒤로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 년 전 떠나온 고향에 돌아와 전투에 임한다. 그러나 적의 포화 속에서 장렬히 희생되고 한국 국기는 다시 아리랑산 위에서 나부낀다.

이국에서 망국노로 살아가면서 독립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인에게 아리랑은 저항의 상징이었다. 공연이후 공연대가 지나간 서안외곽 전쟁구역에는 아리랑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호응이 대단했다한다. 이 공연은 항전에 참전하고 있는 독립군을 독려하였고 중국인들에게 조선인은 함께 일본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항일역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으며 그들을 항일투쟁으로 끌어들이는 구국투쟁운동의 대외선전역할을 하였다.

해방 전 동북을 비롯한 중국지역에는 항일아리랑이 있었는가 하면 일제의 수탈을 피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살길 찾아 북간도로 이주하는 이주아리랑이 있었다. 여기에는 민요 <신아리랑>, <북간도> 등을 들 수 있다. <신아리랑>의 "밭 잃고 집 잃은 동포들아 어디로 가야만 좋을까보냐 /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북간도>의 "문전옥답 다 빼앗기고 거지생활 웬 말이냐" 등 가사들은 이주시기의 어려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일제에 삶의 뿌리가 뽑혀 고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랑고개는 이별고개이고 원한고개이며 설음고개이다. 이주아리랑은 이산의 상징이고 민족수난의 상징이다.

그 외에도 이주역사에 관한 아리랑으로 실제사건에 의거한 리혜선의 논픽션 『두만강 충청도 아리랑』(2001)을 들 수 있다. 이 저서는 1938년에 충북지역에서 180여호가 집단적으로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서 생겨난 마을 도문시 량수진 정암촌 사람들의 이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집단이주, 광복, 한국전쟁, 집체화와 문화대혁명 등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이주민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하였다. 특히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으로 기인된 뜻하지 않은 고향과의 이별, 그 이별의 아픔을 삭이며 살아야 했던 애절한 삶을 그려냈다. 이는 조선족 이주사의 축도로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랩소드 오프 C 아리랑'(일명 청주아리랑) 제작진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현장조사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소설 속 인물들과 일일이 접촉하면서 세세한 감정까지 포착하여 다양한 예술장르를 접목한 스팩타클한 공연을 2014년 서울 구로에서 선보였다.

1945년 한반도의 광복과 1949년 중국의 해방이후 동북지역에 100만 명 정도 남은 조선인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인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갔다. 해방초기 조선족의 아리랑은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아오다가 중국현지에 맞는 가사와 한국의 아리랑과 중국의 아리랑 선율을 혼합한 조선족특색의 아리랑을 창출하였다. 여기에는 <새아리랑2>, <장백아리랑>, <연변아리랑>, <장백송>, <장백가요> 등을 들 수 있다.

<새아리랑2>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새로운 이 마을에 봄이 왔네/보슬비 내리여 땅이 녹고 흙냄새 구수하다/..../ 뻐꾹새 밭갈이 재촉한다" 가사는 중국의 건국토지개혁정책아래 분배받은 땅에 씨앗을 뿌려가는 농민의 기쁜 심정과 삶의 활력을 표현하였다. <장백의 새 아리랑>의 "장백산 마루에 둥실 해 뜨니 푸르른 림해는 / 록파만경 자랑하며 설레이누나/ 칠색단을 곱게 펼친 천지의 폭포수는/ 이 나라 강산을 아름답게 치장하네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리아리스리스리 아라리가 났네/..../ 아리아리아리스리스리 아라리가 났네 장백산은 우리의 자랑일세" 가사는 백두산과 장백폭포를 통해 조국 산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였다. 여기에서 아리랑은 기쁨의 아리랑이고 행복의 아리랑이다.

연변가무단은 아리랑을 주제로 가극, 무극을 창작하였다. 1989년에 창작된 대형가극 <아리랑>은 민간에 유전되고 있는 '아리랑설'을 기초로 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2016년의 대형무극 <아리랑꽃>은 근 3년간의 시간을 들여 창작하였는데 중국조선족무용가를 창작원형으로 하였다. 꽃의 고유한 속성인 향기에 입각하여 서막'향기 속으로', 1막'파란 향기', 2막'빨간 향기', 3막'하얀 향기', 4막'노란 향기', 종막'천년 향기' 등 6개 부분으로 나뉘어 입체감을 살리는 현대적이고 몽환적인 조명, 전통악기와 관현악을 결부한 음악과 판소리, 다채로운 무용형식을 아울러 화려한 그림으로 펼쳤다. 플래시백(倒叙)형식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한 중국조선족무용가의 인생을 다루었다. 극은 무용가 순희의 해방 전부터 지금까지의 파란만장한 예술인생과 피타는 노력으로 우수한 예술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중화대가정 속에서 중국조선족의 불요불굴의 정신과 민족의 전통문화를 집중적으로 나타냈고 이를 통해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길림성 여러 민족 군중들의 정신면모와 번영발전하고 조화롭게 진보하는 변강의 국면을 표현했다.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공연에서 출중한 표현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으며 조선족의 열의 높은 매일투표와 함께 고득점으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 북한의 아리랑 공연, 백의 민족의 혼은 '아리랑~아라리요~"...

이상 디아스포라로서의 조선족 아리랑은 이주역사를 반영하는 아리랑,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아리랑, 내 고향과 내 조국을 찬양하는 아리랑으로 나눠보았다. 이는 한민족의 근현대역사와 함께 중국 지역의 현실성이 결부된 조선족 특유의 아리랑이다. 조선족아리랑은 조선족의 운명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노래이다. 거기에는 이주할 수밖에 없는 한이 서려있고 침략자에 대한 저항이 표현되어 있으며 새로운 삶에 대한 신명이 체현되어 있다.

남북의 삼각점에 있는 중국조선족은 어제도 아리랑을 불렀고 오늘도 부르고 있으며 내일도 부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하여 아리랑 고개를 넘을 것이다. 국제정세에 긴장이 감도는 갈등의 현대판 아리랑고개, 그 해법을 아리랑으로 풀었으면 한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유전자 압축파일같은 존재다. 현재 50여종의 갈래에 8천여수로 세계로 널리 퍼져있는 아리랑에는 민족정서인 한과 대동정신의 신명과 같은 감성, 하나가 되는 어울림 정신이 있다. 민족모순, 국가모순, 체제모순을 녹일 수 있는 창조적 힘과 가치가 내재되어있다. 한국 아리랑을 대표하는 한류의 세계적 열풍,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의 아리랑대집단체조, 그리고 세계스포츠대회에서 여러차례 남북의 스포츠단일팀의 국가나 응원가로 된 아리랑은 민족과 세계 통합적 이데올로기로서 남북의 화합과 세계 화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을 넘어서서 아리랑을 부르며 손에 손잡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동과 상생의 한마당, 남북이 그리고 세계가 아리랑 정신으로 통섭의 장, 세계평화의 장을 열어가는 그날을 바란다.

(인민넷 정음문화칼럼 61, 2017.4.17.)

 

 

제2편

중국조선족의 융합문화

 

중국조선족은 19세기중엽에 한반도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이주한 한민족의 후예로서 인종적으로 조선(한)반도와 뿌리가 같고 국가적으로는 중국국적을 소유하고 있다. 이주 100여년이 넘는 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한편으로 조선반도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오면서도(해방이후는 조선문화의 영향을, 중한수교이후에는 한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른 한편 중국문화의 환경 속에서 조선반도문화와 중국문화를 혼용하고 융합하여 생활하면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조선족 자생문화를 창출하였다. 이 글에서는 자생문화에 앞서 조선족문화 특징 중의 하나인 융합문화에 대해 담론하고자 한다.

'융합融合'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비빔', '섞음'이라 말하기도 한다. 둘이상이 모여 새롭고 유익하게 만들어진 창조적 섞임을 말하기도 한다. 민족문화와 중국문화가 공존하면서도 둘이 섞여 만들어진 조선족특유의 혼종 문화, 융합 문화는 조선족 삶의 가장 기본요소인 언어와 음식, 거주문화에 체현되어 있다.

우선 한반도에서 내려온 우리말 단어자체에서 융합의 정신을 볼 수 있다. 외래어가 들어오면 중국의 경우는 중국식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의 경우는 외래어를 그대로 쓴다. 그러나 우리말은 한자어나 외래어가 들어와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융합 정신이 있다. 예로 한자어와 결합된 '황토흙', '초가집', '역전앞' 등을 들 수 있다. 한자어에 '토土', '가家', '전前'이 있음에도 고유어인 '흙', '집', '앞'자를 추가하여 융합시켰다. 외래어와 결합된 단어로는 '닭도리탕', '모찌떡', '라인선상', '지프차' 등을 들 수 있다. 외래어인 '도리', '모찌', '라인line' '지프jeep'에 우리말인 '닭', '떡', '선', '차'를 겹쳐놓아 융합시켰다. 이는 한자어나 외래어가 들어왔을 때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 우리말과 접목하여 한데 아우르는 융합 정신을 보여준다.

중국조선족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습관적으로 조선어(중국조선족), 한국어(한국), 문화어(조선), 한자어(중국), 외래어(외국)를 혼용하여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조선어에 흔히 쓰는 한자어 '소학교', '공작단위(工作单位)', '견지하다'; 연변방언 '와늘', '얼빤하다', '탈망살이', '매짜다'; 문화어 '끌신', '창문보', '물보라'; 한국어 '몸짱', '얼짱' '짱짱하다' 등을 두루 쓰고 있다. 거기에 제지해야 할 사항이겠지만 '쌍발(上班)', '츠판(吃饭)' ‘샹차이(香菜)’ 등 통째로의 중국어단어들까지 가세하여 일상용어로 혼용하여 사용한다.

단어뿐만아니라 언어구사에서 중국조선족은 어릴 때부터 조선어는 모국어로, 중국어는 일상용어로 하면서 이중언어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즉 중국조선족은 태어나서부터 자연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우리말과 중국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조기이중언어구사자이다. 과학자들이 12세를 기준으로 조기와 후기로 나누어 이중언어구사자들의 뇌활성화 이미지를 관찰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2세 이전에 배운 제2언어는 제1언어와 뇌활성화 부위가 같지만 12세 이후에 배운 언어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즉 12세 이전에 배운 제2언어는 동일하게 모국어가 된다는 것이다. 조기이중언어발달자는 단일언어학습자에 비해 타외국어를 습득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월등히 높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족의 융합된 민족언어구사는 중국이란 한자문화권에서 남과 북의 삼각점에 있는 중국 조선족지역은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한국어와 조선의 문화어, 중국의 한자어의 자양분을 나름대로 섭취하는 '융합의 장'이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1992년에 이루어진 중한 수교, 그리고 사회주의 체재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에서, 원형의 민족적 정서와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중국조선족지역만이 남과 북의 사람들, 중국인, 조선족이 공존하고 여러 언어를 받아들여 혼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음으로 음식문화에서도 융합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족 음식의 특징은 한국음식과 중국음식의 융합에 있다. 상차림을 보면 김치, 된장찌개와 같은 한식과 볶고 지지고 한 볶음반찬 중식의 융합이다. 중국음식만 먹으면 기름기가 많아 느끼해서 김치와 찌개를 찾게 되고, 김치와 찌개만 먹으면 속이 허해서 금방 배고프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의 음식인 한식과 중식을 한꺼번에 차려서 먹는 조화로움은 조선족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이다. 그러나 한식이나 중식을 그대로 두지 않고 나름대로 입맛에 맞게 조화, 융합시킨다. 조선족들이 즐겨먹는 개장국, 동북생채무침(东北凉拌菜), 건두부무침, 양꼬치, 순대 등 음식은 모두 조화와 융합의 산물이다.

개고기는 서양에서는 기피하지만 동양에서는 즐겨먹는 음식이다. 개고기를 된장으로 끓인 국에서 말아먹는다는 말에서 비롯된 '개장국'은 '개장'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신탕', 조선에서는 '단고기'라 부른다. 개장국은 삼계탕과 함께 삼복절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개고기의 식용에 관한 역사적인 최초의 자료는 사마천의 『사기』진기제 5장에서의 "진덕공 2년(기원전 679)에 삼복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성내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는 기록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명청시기까지 개고기는 상류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고급음식이었다 한다. 한반도의 개고기 식용은 고구려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개잡는 장면으로 그 시기를 추측하고 있다.

중국조선족의 개장국은 한식과 중식의 융합이다. 한반도의 개장이 대체로 삶아서 잘게 찢은 개고기와 함께 파, 고춧가루, 생강 등을 넣고 푹 끓인다면 조선족의 개장은 그 기초 위에서 중국요리의 향료인 팔각회향(大料)과 중국인이 즐겨먹는 향내음 나는 고수풀(香菜)을 더 넣는다. 향료는 노린내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된장, 고추장, 시래기 등을 넣기도 하고 양념으로 소금, 고춧가루, 후추가루, 간장, 깨, 파, 마늘, 고수풀 등을 넣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복날 뜨거운 개장을 먹고 땀을 흘리고 나면 더위를 물리치고 몸의 혈맥을 다스려 허한 기운을 보충하는 데 이는 건강유지에 필수음식이라 한다.

동북생채무침은 생배추, 오이, 숙주, 건두부(干豆腐),묵랭채(拉皮),돼지살고기, 고수풀재료에 소금, 설탕, 미원, 간장, 후추, 향유, 기름고추가루 양념을 넣고 비비고 섞어 담백하고 시원하게 먹는 중식요리중의 하나이다. 중식이 담백하다면 조선족은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설탕과 식초를 내서 맵고 달고 신 맛을 낸다. 건두부무침도 마찬가지로 건두부를 주재료로 파, 오이, 고수풀, 마늘 등을 넣어 맵고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양꼬치의 양념은 대체로 소금, 커민(孜然), 고춧가루, 생강가루, 양기름(羊油) 등을 섞는다.

국이나 무침은 색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각 종류의 야채와 고기, 맛이 부동한 양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섞고 비벼서 조화를 이루어내고 융합을 이루어 맛을 내는 것이다. 조선족 음식의 특징은 대체로 맵거나 혹은 맵고 달고 새콤하거나 혹은 향료를 써서 자극성이 있다. 이는 중국 동북3성의 추운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진 알콜 농도가 높은 술과 궁합이 맞아떨어진다. 한식이나 중식을 토대로 나름대로 재료와 양념을 추가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시키는 것, 이는 한식과 중식을 아우르는 양극단의 통합과 융합으로 얻어낸 조화이다.

그다음으로 주거문화인 가옥에서 동북의 조선족마을 가옥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문화를 한 공간에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방문화인 온돌과 남방문화인 마루를 하나의 공간에 만나게 했다는 사례이다. 중국은 온돌이 있고 마루가 없으며 일본은 마루가 있고 온돌이 없다. 한반도는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는데 이 둘의 결합은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한국거주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한다. 한국은 대부분이 온돌은 집안에 낮고 평평하게, 마루는 바깥에 있다.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한국거주문화의 기초 위에서 중국의 온돌문화를 답습하여 동북의 추운 기후에 알맞은 온돌문화와 마루문화로 변형시켰다. 온돌과 마루를 하나의 방 공간에 공존하도록 설계하였다.

온돌은 겨울을 대비하여 아궁이와 구들로 만든 난방장치이다. 조선족 가옥의 온돌은 아궁이는 집안이나 정주간에 있고, 구들은 한국처럼 신 벗고 들어가면 평평하고 낮은 것은 일부분이고 대부분이 중국 한족의 구들을 모방하여 걸터앉기 맞춤한 높이로 쌓아올린 구들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넣어 가열하면 방전체가 보온을 유지하고 온돌은 좌식생활의 공간으로 사용된다.

구들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는데 아랫목은 아궁이에서 땐 불기운으로 가장 따뜻한 곳이고 윗목은 아궁이로부터 거리가 가장 멀어 불기운이 거의 닿지 않는 가장 추운 곳이다. 이러한 아랫목과 윗목은 방 안의 공기 순환을 돕는 자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한다. 즉 아랫목에서의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윗목에서의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저절로 공기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적인 공기 순환은 더운 것과 찬 것을 융합시켜 집안 온도를 높힌다.

마루는 여름을 대비하여 만든 더위를 식혀주고 습기를 차단하는 공간이다. 조선족 가옥의 마루는 추운 기후의 특성상 대부분이 안방의 온돌과 이어지고 온돌과 공존하며 간혹 바깥에 설치되기도 한다. 집안의 마루는 불을 지펴 음식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여름에 구들이 더워나면 거기에서 생활하고 취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바깥의 마루는 무더운 여름의 휴식처나 각종 곡식들을 널어 말리는 등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겨울과 여름이라는 계절적 수요에 따라 한집안에 공존하는 조선족 가옥의 온돌과 마루는 융합의 가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조선족문화에서의 융합의 정신은 언어와 음식, 거주문화 뿐만아니라 수전과 한전농사에서, 그리고 문화와 예술 등 기타분야에도 반영되어 있다. 중국조선족의 이주역사는 한반도에서 만주(동북3성)로, 동북3성에서 연해도시로 다시 한국이나 일본 혹은 기타 세계로 이어지는 중첩된 디아스포라이다. 조선족 특성이 융합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나아가서 조선족 삶을 반영하는 독특한 자생의 문화(조선족문학, 조선족예술 등)를 창출하지 않았나싶다.

21세기는 통합과 융합의 시대이다. 섞여야 아름답고 섞여야 강해지며 섞여야 살아남는다. 중국조선족의 언어와 음식, 거주문화에 담겨진 융합의 정신은 화해와 공생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나눔, 어울림 등 의미의 글로벌 가치가 담겨있다 할 수 있다.

(인민넷 정음문화칼럼 79, 2017.8.28)

 

제3편

디아스포라 경계인으로서의 글쓰기


스웨덴 한림원은 2017년 10월 5일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수상이유는"정서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인간의 환상 아래 숨어있는 심연을 드러냈다."라고 밝혔다. 영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이번이 열 번 째이고 일본 출생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는《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만엔 원년의 풋볼》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1994)에 이어 가즈오가 세 번 째이다.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세 때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1978년 켄트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철학 학사를 받고 1980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를 받은 뒤 1982년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데뷔작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를 배경으로 한 《창백한 언덕 풍경》(1982)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나가사키에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정서를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으며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1986년 출간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도 같은 상을 한 번 더 수상한 데 이어 그의 대표작이자 1930년대 영국 격동기를 배경으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가치관 혼란을 담아낸 《남아있는 나날》(1989)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역사소설 뿐만아니라 과학환상소설, 추리소설,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로 첼트넘상을 받았고 같은 해 대영제국훈장(OBE)을 받으며 영미권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가즈오는 모국인 일본과 거주국인 영국을 잘 아는 ‘중간상태’의 경계인으로서의 디아스포라 작가이기에 일본과 영국을 아우르는 글들을 쓸 수 있었다. 가즈오처럼 노벨문학상을 획득한 이민작가로는 아일랜드 출생의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사뮈엘 베케트(1969), 폴란드 태생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교수인 체스와프 미워시(1980), 포르투갈 출생이지만 추방당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1998), 터키 출생의 오르한 파묵(2006), 토니 모라슨(1993) 등이 있다. 적지 않은 이민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수는 디아스포라문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현대한국문학에서 디아스포라 해외작가로 손꼽히는 이들로는 미국의 이창래; 일본의 유미리, 이회성, 이양지, 현월; 중국의 허련순, 김인순 등을 꼽을 수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동사 ‘speiro씨를 뿌리다’ ‘dia’(넘어서)에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은 후 세계 각지로 떠돌이 생활을 해온 그러한 비참한 상황, 원거지에서 다른 곳으로의 집단 이주를 가리킨다. 1900년대 들어서서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국제 이주, 망명, 난민, 소수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근현대 디아스포라는 세계나 국가적인 정치권력이나 경제력, 군사력 등에 의해 국가들지간의 경계지대에서 이동하는 개체 인간이나 혹은 한 국가의 주변부에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로 확장되었다. 한 국가의 주변부에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로는 일본의 재일조선인과 재일한인, 미국의 재미한인, 러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이 있다. 이들은 한 국가에서 소수민족이나 소수자이다.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는 대개 고향에 대한 끝없는 향수와 고향과 관련된 기원신화를 공유하는 것, 모국과 거주국사이에서의 정체성 갈등, 이주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는 변두리상태, 경계인으로 살아가기 등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는 1995년 장편소설 'Native Speaker'(영원한 이방인)를 출간해 헤밍웨이문학상 등 6개 문학상을 휩쓸며 해마다 노벨상 단골 후보로 꼽혀왔다. 《영원한 이방인》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미국인 헨리 박을 앞세워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던 한 남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 즉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주류의 사회에 끼지 못하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헨리박은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자신 스스로에게 또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재일교포작가 이회성은 1971년《다듬이질하는 여인》으로, 유미리는 1996년《가족시네마》로, 현월은 1999년《그늘의 집》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들의 작품들은 재일교포들의 애환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1988년《유희》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양지의 장편소설《나비타령》은 거주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모국에서도 자기의 귀추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원한 이방인의 애환을 그렸다.

중국조선족작가 허련순은 중국에서 전국소수민족문학준마상,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바람꽃》(1996)은 한중수교이후 조선족들이 한국인들에게 동포포서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돈 때문에 엄청난 모멸을 느끼고 불법체류자로서 법적, 제도적 억압을 경험하면서 한민족이라는 민족정체성보다 중국공민으로서 국민정체성을 강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2004)에서는 이중적 정체성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조선족의 과거와 현실을 통해 고향상실과 더불어 목숨을 내건 고향 찾기의 실패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색시》(2014)는 재외동포법의 개정으로 조선족의 한국이주가 자유로워지자 한족과 조선족의 혼혈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여성과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로 자기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남성이 자신의 상처에 함목되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결혼에 파탄에 이르고 긴 시간 뒤에 사랑의 힘으로 화해하는 모습으로 한국인과 조선족의 협력과 화합을 그리고 있다.

중국조선족작가 김인순은 장편소설 《춘향》으로 중국소수민족문학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재미교포작가나 재일교포작가들처럼 그녀도 거주지언어로 창작활동을 한다. 김인순의 《춘향》(2008),《판소리》(2000),《기》(1999),《고려왕사》(1999) 등 작품들은 민족을 소재로 하여 끊임없는 민족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 외에도 1993년 작품《택시광조곡》이 영화로 제작돼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던 재일교포작가 양석일은 재일한국인들의 정체성을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삼았는데 그는 장편《피와 뼈》에서 한국인들의 생활지역인 오사카를 배경으로 재일교포 1세들의 삶과 이데올로기를 유장하게 그려내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작가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미라 스타우트는 그의 첫 작품인《천 그루의 밤나무》에서 자신의 외갓집인 고 씨 가문을 소재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하였다.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노라 옥자 켈러는 등단 초기부터 꾸준히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써왔는데 소설 《종군위안부》를 출간했다.

중간상태에 처해있는 디아스포라의 개체인 이민작가들은 모국과 거주국의 문화계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3의 문화계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3의 문화계통을 가진 경계인들은 자유롭고도 보다 넓게 경계의 공간을 넘나들 수 있어서 풍부한 소재를 갖고 있다. 이들은 모국과 거주국 인 두 나라의 자연, 인정, 세태를 잘 이해할 뿐아니라 이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자기 민족과 문화를 비춰볼 수 있다. 나아가서 여러 문화와의 접목을 꾀하는데 예술적 형식에서도 고금중외의 우수한 문학과 예술의 기법을 적극 수용해 변형, 환몽, 패러디, 아이러니와 역설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하고 시도한다. 이는 단일문화구조에 비해서 더욱 강한 문화적 기능과 예술 창조력을 가지는데 그 결과 문화적 변이와 혼종성을 일으켜 다중문화신분을 갖게 된다. 다중문화의 풍부함과 심오함이 최근에 세계적 범위에서 디아스포라작가, 디아스포라문학이 각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2018-1-8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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