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소설로 보는 한국문인의 정감세계...

 

김호운 약력 : 現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유리벽 저편」이 당선되어 등단함. 창작집 『겨울 선부리』 『무지개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 부』, 장편소설 『빗속의 연가』 『불배』 『풀잎 사랑』 『바람꽃』 『황토荒土』(전2권) 『님의 침 묵』(전3권) 『크레타의 물고기』 『아내』(전2권), 꽁트집 『궁합이 맞습니다』(전2권) 『바람잡힌 남편』 『재미없는 세상 재미있는 사람들』. <궁합이 맞습니다> SBS 수목 드라마로 방영. 사진 에세이집 『연꽃, 미소』 (약력 상세, 아래 참조)

 

단편소설

 

   봉숭아꽃물  

 

               김호운 

 

 

친정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달포 전이다.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야 친정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내가 ‘엄마’라고 하지 않고 ‘친정엄마’라고 부르는 것 또한 그간 엄마와 나와의 거리가 너무 아득하여 쉬 ‘엄마’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아서다.

내가 친정엄마와 등을 돌리게 된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다. 친정엄마는 나의 결혼을 사생결단으로 반대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사위가 될 사람이 천애고아이고 직업도 변변치 않는다는 거였다. 내가 이 결혼을 고집하는 통에 어머니는 평생 다니던 교회에도 발을 끊었다.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남편을 만났다는 그 이유 하나로 당신이 그토록 섬기던 신까지 버린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딸자식과 사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친정엄마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 해는 유난히 더웠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겨야 할 4월 중순부터 섭씨 28도를 오르내렸으니 한여름 폭염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나는 평소 유난히 더위를 심하게 탔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맥을 못 춘다. 나는 교회 봉사단원으로 매달 한 번씩 사회봉사 활동을 나가는데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날 회사에서 야근까지 한 터라 몸이 천근만근 늘어져 도저히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없었다. 거기에다 그 날은 최고로 무더울 거라며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져 있었다. 눈은 떴지만 침대에 누운 채로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몸을 뒤척이는데 교회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은희 씨.”

“네, 총무님.”

“어찌 목소리가 안 좋네. 어디 아파요?”

“아녜요. 막 일어나서 그래요. 오늘 봉사 나가는 날이죠?”

“네, 그래서 점검 중이에요. 나올 거죠?”

“그럼요. 나가야죠. 준비해서 나갈게요.”

“그럼 이따 봐요.”

마음과 달리 나는 딱 부러지게 못 간다고 말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봉사단 총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끌리듯 간다고 말해 버렸다. 몸은 피곤했지만 나는 그렇게 누군가 나를 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즈음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다운되어 있었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고 나니 점점 외톨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결혼 전에는 서로 친구가 제일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자 언제 그랬었냐는 듯 제 가족이 첫 번째고 친구는 그다음이다. 그래서 자연히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한 살씩 늘어나는 나이 탓인지 하는 일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회사 일도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힘에 부대껴 쉬 지쳤다. 어머니와도 데면데면 지내는 터라 그렇게 피로에 절어 집에 들어와도 별로 위안받을 처지가 못 되었다.

 교회 봉사단원들은 용인에 있는 한 보육원으로 갔다. 그 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봉사 활동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툇마루 한쪽에서 한 남자가 아이들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들이 하는 일을 성인 남자가 하고 있어서 우선 낯설었고, 어릴 적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 설레기도 하여 한참 동안 훔쳐보고 있었다. 봉숭아 꽃물 들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중학교 다닐 때 한 번 들여 봤는데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톱 위에 정확하게 올려놓고 랩으로 감은 뒤 실로 다시 묶는데, 그걸 얌전하게 붙이지 못해서 몇 번이나 떨어뜨렸다. 그러느라 손톱뿐만 아니라 손가락 전체가 지저분하게 물들어 며칠 동안은 미운 모습으로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남자는 으깬 봉숭아 꽃잎을 아이들의 작은 손톱에 딱 알맞게 올려놓고 비닐로 감싸고 실로 묶는 행동이 마치 무슨 기계 같다. 한 치 실수도 없이 척척 해내고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도 금세 뚝딱 해치우는 것이다. 또 놀라운 것은 내가 봉숭아 꽃물 들일 때는 문방구에서 가루를 사와 간단히 하는 거였지만, 남자는 진짜 봉숭아꽃과 잎을 으깨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색깔이 나올까 궁금해서 나는 남자에게 다가 갔다.

나는 남자를 방해하기 싫어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지켜보았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 봐서 알지만, 자칫 흐트러지면 망치기 때문에 초집중해야 한다. 나는 인기척을 감추느라 숨소리까지 죽이며 내려다보는데 남자가 먼저 알아차리고 돌아봤다.

“어머, 죄송해요. 방해해서…….”

“천사님이 오셨네요.”

“감사해요, 그 칭찬. 봉숭아 꽃물 들이는 솜씨가 훌륭하세요. 신기하네요.”

“허튼일도 몇 번 하다 보니 늘더군요.”

“아이들이 기다리네요. 마저 하세요. 방해하지 않을게요.”

“네, 이제 세 꼬마 천사님들만 하면 돼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까지 ‘꼬마 천사님’이라고 말하는 그의 넉넉한 마음도 전해져 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

그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주홍빛 봉숭아 꽃물이 들여져 있었다. 남자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다는 게 신기하고 생소해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귀엽고 앙증맞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배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남자일까. 나는 이 남자에 대해 갑자기 궁금해졌다. 봉사 활동은 대개 단체로 오게 된다. 혼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곳에서 일하는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도 낯설어하지 않고 무람없이 대하고 있었다.

마지막 아이까지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고 나서 그는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남자는 돌아앉자마자 내게 물었다.

“지난겨울에 한 번 오셨죠?”

“네에? 제가요?”

“저도 떡국 한 그릇 얻어먹었는걸요.”

“아, 네. 맞아요. 그때도 여기 계셨어요?”

나는 그제야 지난겨울에 이곳에 봉사활동 나온 걸 기억했다. 매달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이곳에 두 번 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교회에서 보통 20여 명 정도가 함께 봉사 나오는데 특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고 있는데 그가 나의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손은 괜찮죠?”

“손? 아, 맞아요. 그때 그분이군요. 정말 감사했어요. 손 이렇게 말짱해요.”

아이들에게 떡국 그릇을 들고 가다가 식탁 모서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뜨거운 떡국을 손에 쏟아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그때 한 남자가 재빨리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내손을 잡고 차가운 물에 푹 담가 주었다. 그렇게 하면 덧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남자가 이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놀라기도 했고, 사람들이 우 달려와 야단법석을 하는 바람에 미처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창피하여 얼른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고맙다는 말도 미처 전하지 못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손을 내밀어 보여주며 “덕분에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해요. 지금 생각하니 그때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네요. 정말 고마웠어요.” 하고 그를 기억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내가 천사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죠?”

나는 내가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을까 얼른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가 또 내 기억 하나를 건져 올려 주었다.

“손에 화상을 입고도 상처 걱정은 안 하고 쏟아진 떡국 걱정부터 했어요. 네 명이 먹을 떡국을 버렸다고 걱정하는 걸 보고 정말 천사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그런 말 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무의식중에 한 말이라 기억 못 하겠죠. 그래서 천사님이에요. 천사님들은 늘 착한 일만 하기에 착한 일을 하는 줄도 모르잖아요.”

“그럼 세상 사람들 모두 천사네요.”

“ 가끔은 도장 받으러 오는 천사님들도 계셔요.”

“도장 받으러 와요?”

“네. 학생들은 숙제하러 오고, 죄를 지은 분들은 법원에 낼 서류를 만들기 위해 오기도 해요.”

“그래요? 첨 알았어요. 그런 제도도 있군요.”

“그렇게라도 꼬마 천사들을 위해 오시니 고맙죠.”

“참, 저기…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꽃물 들였네요?”

“이거요?”

그는 봉숭아 꽃물이 든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직접 한 거예요?”

“네, 내가 먼저 해보고 아이들에게 해줘요. 뭐 안 해도 잘 하는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안 하려고 그래요. 그러다가 이걸 보여주면 너도나도 해달라고 그러죠. 말하자면 미끼?”

“아, 그래서 물들였군요.”

“사실 꼭 그런 의미만 아니고… 울 엄마 생각해서 물들여요.”

그는 어릴 때 엄마가 늘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었다고 한다. 사내아이라 처음에는 싫다고 도망 다녔는데 자는 사이에 그의 엄마가 몰래 물을 들여놓고는 했다. 창피해서 비누로 아무리 박박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 그는 물든 손톱이 다 자라 봉숭아 꽃물 이 사라질 때까지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감추고 다녔다고 했다. 그래도 무심결에 손가락을 펼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들켜 놀림을 받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미워하고는 했다. 그래서 봉숭아꽃이 피는 여름에는 어머니보다 미리 자지 않으려고 졸린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고는 했다. 그 바람에 학교 성적이 늘 일등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봉숭아 꽃물 들이는 걸 피하려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늘 어머니에게 져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새끼손가락이 발갛게 물들어 있곤 했다.

▲ 울바자 밑에 엄마가 심어놓은 봉숭아꽃,  "봉숭아꽃 연정"...

 “여름이 되면 내 새끼손가락은 늘 봉숭아 꽃물이 들어 있었어요. 어머니는 나보다 늦게 잤기 때문에 내가 이겨낼 자신이 없어,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는 아예 미리 어머니에게 물들여 달라고 했어요. 잠이라도 좀 편히 자려는 생각에서였는데, 그 무렵부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게 싫지 않더군요.”

“참 좋은 엄마시네요.”

“중학교 2학년 여름이 마지막이었어요.”

“엄마가 다 컸다고 안 해주셨어요?”

“아뇨.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

나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 폐휴지를 주웠고, 저녁에는 봉투 붙이는 일을 했어요. 그날 새벽에 손수레를 끌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전날 저녁 늦게까지 봉투를 붙이고 새벽같이 또 일 나갔는데…아마도 잠이 모자라 사고를 당했을 거예요.”

그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다 오갈 데 없던 그는 그 뒤 이 보육원에 와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있었다. 규정상 더 머물 수 없어 지금은 보육원에서 나가 공장에서 일한다. 매주 주말이 되면 그는 보육원을 찾아와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이렇게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기도 한다. 그에겐 이 보육원이 고향이요 집이고, 보육원 아이들이 형제들인 셈이다.

“어머니가 생각나서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거군요.”

“속죄하는 거지요.”

“속죄라뇨?”

“어머니는 졸린 잠을 쫓기 위해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저녁 늦게 일하다가 잠이 오려고 하면 자는 내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었어요. 내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도 사내아이 손가락에 기어이 봉숭아 꽃물을 들인 건, 말하자면 어머니에겐 받아온 일을 마무리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겁니다.”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예쁘고 앙증맞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아름다움 속에 그런 슬픔 사연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불쑥 말했다.

“제 손가락에도 물들여 주세요.”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이 가볍게 떨린다. 나는 주먹을 한 번 쥐었다가 다시 폈다. 그래도 여전히 손이 떨렸다. 난생처음 낯선 남자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손이 예쁘네요. 봉숭아 꽃물을 들이면 더 예뻐질 거예요.”

그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으깬 봉숭아꽃을 손톱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아까 아이들에게 해줄 때는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했는데, 지금은 두 번 세 번 손길이 갔다. 그러다 하나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핀셋으로 주워 다시 조심스럽게 손톱 위에 올려놓으며 그가 말했다.

“어른 손에 물들이는 건 첨이라… 좀 서투네요.”

“여자에게는, 내가 첨이란 뜻이죠?”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속을 들킨 사람처럼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예쁜 손에 밉게 물들이지 않으려고 조심하니 실수를 하네요.”

그럼 모습을 보며 나도 웃었다. ‘참 착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뭔지 아세요?”

“봉숭아 꽃잎을 으깬 거 아녜요?”

“틀렸어요.”

나는 여태 봉숭아 꽃잎을 으깨 손톱을 물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가 아니라고 한다.

“꽃이 아니고, 봉숭아꽃 이파리를 으깬 겁니다.”

“그래요? 꽃으로 물들이지 않나요?”

“꽃으로 물들이기도 하지만, 잎으로 하면 더 예쁜 색이 나와요. 신기하죠? ”

난 처음 알았다. 꽃나무 이파리로도 물들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초록색 이파리를 으깨 물들이면 초록색이 되는 건가?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럼 이파리로 물들이면 초록색이 되나요?”

“아뇨. 예쁜 주황색이 됩니다. 꽃으로 물들이면 붉은빛이 더 도는데, 이파리로 하면 부드러운 주황색을 띠게 돼요.”

“정말 신기하네요. 초록 잎에서 그런 색이 나온다니. 그걸 어떻게 아셨죠?”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으깬 꽃잎을 다 썼는데 한 아이가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이파리를 으깨 얹어 주었더니 더 고운 색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부터 꽃보다 이파리를 으깨 물들여 줘요.”

그는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에만 물들였다. 남자는 전체 손가락을 물들이는 것보다 그게 더 예뻐 보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별로 없다. 여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내겐 그저 평범한 어머니로만 기억될 뿐이다. 사실 나는 어머니와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 우연히 어머니가 친구들과 하는 얘기를 엿들었는데,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2대 독자인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딸을 내리 둘을 낳자 할머니가 어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할머니 편에 서서 어머니를 나무라고는 했다. 그러면서부터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술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고, 산부인과에서 딸이라는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임신중절수술 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 가서 진료신청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어머니는 그대로 병원을 나와 버렸다. 옆에 함께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한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이다. 그분은 결혼한 지 6년이 넘었는데 임신이 안 되어서 실험관아기 시술 상담받으러 온 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사라질 운명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행운을 붙잡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자기 아이를 없앨 생각을 했을까 하는 분노가 솟구쳤다. 어머니가 그 낯선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게 아닌가. 그것도 자기 어머니의 손에 의해 사라질 뻔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불청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이후부터 난 무엇이든 어머니의 말이라면 꼭 반대하곤 했다. 어머니가 하는 일은 무조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소시지 반찬도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듯 “왜 그 좋아하는 소시지를 안 먹니?”하고 물었을 때 “그냥…….”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내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턱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와 결혼을 했다. 힘들게 대학까지 시켰더니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며 어머니는 아예 나를 보지도 않으려 했고, 교회에서 가족들만 참석하여 조촐하게 올린 결혼식에도 불참했다. 부모가 모두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아버지 혼자서 참석을 했는데 그 바람에 어머니는 아버지와도 한동안 불편하게 지냈다.

당시 남편은 문래동에 있는 조그마한 철공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때까지 공장 한쪽에 딸린 직원들 숙직실에서 기거했다. 그러니 부모님 도움 없이 신혼집을 장만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회사 상조회와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하여 겨우 변두리에 사글셋방 하나를 얻었다. 올해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겨우 사글셋방 신세를 면하고 전셋집을 얻었다.

 

며칠 전이다. 내 이름으로 등기우편물이 하나 우송되었다. 우편물을 받아들고 발신인을 확인하다가 나는 화들짝 놀랐다. 친정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나도 연락한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던 친정엄마가 갑자기 왜 우편물을 보냈을까. 그것도 등기로. 나는 손이 떨려서 봉투를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뭣이 들었을까?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가끔 결혼한 언니로부터 친정집 소식은 간간이 듣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친정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자세한 병명을 물으면 내가 더 괴로울 것 같아서 묻지 않았는데, 혹시 엄마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

내 이름으로 된 은행 통장과 내 이름을 새긴 도장이 하나, 그리고 짧게 쓴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통장에는 꽤 큰돈이 예금되어 있었다.

아마도 너에게 이게 너에게 쓰는 첫 편지일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편지일지도 모르고…….

어제 너희네 사는 집 앞까지 몇 번 가 보았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 왔다. 며칠 전에는 네가 붕어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봤다.

이제 와 네 선택이 옳고 그름을 지금 따지고 싶지 않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내가 낳고 길렀지만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게 옳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이런 생각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했다. 엄마도 너만큼 철이 덜 든 모양이다.

이 돈은 네 결혼식 때 쓰려고 오래 전부터 엄마가 모아 오던 것이다. 어차피 네 몫이니 전해 준다. 잘 살고 못 사는 건 행복의 기준이 아니다는 건 네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네가 선택한 길 아니니. 그래서 나는 네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추운 날 밖에서 그러지 말고 이걸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얻어라.

엄마는 네가 미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읽고 있는 편지지에 눈물 몇 방울이 뚜두둑 하고 떨어졌다. 결혼한 이후 친정과 담을 쌓고 지내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처음으로 친정엄마 생각을 했다. 두렵고 외로웠다. 갑자기 미운 친정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시가 쪽 식구들도 없어서 출산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만삭의 몸을 이끌고 몇 군데 산후조리원을 알아본 뒤 비교적 저렴한 한 곳을 선택하여 출산했다. 위로 두 언니는 모두 친정어머니가 출산을 돌봐주었고, 직장에 다니는 터라 아이까지 친정엄마가 돌봐주었다. 나 혼자서 아이를 출산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다니던 직장까지도 그만두어야 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떠오를 때마다 친정어머니를 미워했는데, 그게 다 내가 만든 굴레였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다시 은행 통장을 넘기며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또 한 번 놀랐다. 마지막 입금한 날짜가 일주일 전이었다. 그동안 친정어머니는 나를 위해 계속 돈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추운 날 밖에서 그러지 말고 작은 가게라도 하나 얻어라’, 이건 무슨 말인가. 편지를 살피던 나는 ‘며칠 전에는 네가 붕어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봤다.’라는 글을 읽고서야 자초지종을 알아차리고 하마터면 방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 와중에 웃음까지 터져 나왔다. 슬픈 감성이 한껏 부풀어 오르다가 그대로 뻥 터져버린 기분이었다. 슬픈 감정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낯설었다. 한동안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웃집 아는 아주머니가 시장 입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시장에 나갔던 길에 붕어빵을 사러 들렀는데, 마침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서 잠깐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대신 붕어빵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 손님 두엇이 다녀가서 붕어빵을 대신 팔기도 했다. 친정어머니가 그 모습을 어디에선가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엄마에게 몹쓸 딸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내 생각만 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일도 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야 엄마의 몫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결혼까지 하겠다고 하는 남자를 싫어하는 엄마가 밉기만 했는데, 그 싫어하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이번 주말에 친정에 가요.”

“응? 무슨 일 있어?”

남편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남편이 내게 수없이 했던 말이었다. “아이들에게 외가라도 있어야지. 나처럼 외톨이로 키울 수는 없잖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내 앞에서 친정 이야기 꺼내지도 마.” 그런 내가 갑자기 친정에 가자고 했으니 남편이 놀라는 건 당연하다.

“엄마가 좀 아프대.”

“알았어. 그럼 주말까지 갈 거 뭐 있어. 내일 당장 가자. 낼 휴가 낼게. 그렇게 알고 준비해.”

나는 이미 통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쥐고 계속 귀에 대고 있었다. 들떠 있던 남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듯해서였다. 그러면서 봉숭아 꽃물을 들인 왼손 새끼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물들여 준 건데 이제 초승달처럼 손톱 끝에 걸려 있었다. 남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어머니를 이렇게 하여 내 어머니를 불러준 모양이었다.

-끝-

     
 
<김호운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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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1977년 국립철도대학 졸업2017년 숭실사이버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졸업 수상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2016년 한국소설문학상 수상(단편소설 「아버지의 녹슨 철모」)2017년 한국문학백년상 수상(소설집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부』)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소설집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부』)2017년 제6회 녹색문학상 수상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회 우수콘텐츠 선정(장편소설 『漂海錄표해록』2018년 ‘시선·올해 최고 작품상’ 수상 경력 계몽사 단행본사업본부장, 도서출판 책읽는사람들 대표, 월간 <책읽는사람들> 발행인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심의위원MBC롯데문화센터 분당점 소설창작반 교수(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현) 한국소설가협회 상임이사 겸 편집주간(현)MBC롯데 문화센터 소설창장반 교수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현)국립한국문학관 건립운영소위원회 위원(현)통일부 산하 한반도평화네트워크 통일위원(현)  문학 활동 및 저서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유리벽 저편」이 당선되어 등단함. 1988년 ◉ 창작집 「겨울 선부리」(청림출판사) 출간◉ 장편소설 「빗속의 연가」(청림출판사) 출간1989년 ◉ 장편소설 「불배」(도서출판 심지) 「풀잎 사랑」(도서출판 작가정신) 출간◉ 연작 꽁트집 「한살박이 부부 신혼 방정식」 전 2권(도서출판 글사랑) 출간1991년 ◉ 창작집 「무지개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동아출판사) 출간◉ 장편소설 「바람꽃」(도서출판 강천) 출간◉ 꽁트집 「바람잡힌 남편」 (도서출판 작가정신) 출간1992년 ◉ 연작 꽁트집 「한살박이 부부 신혼 방정식」을 <궁합이 맞습니다>로 개제 출간. ◉ <궁합이 맞습니다>, SBS 수목 드라마로 방영.◉ 단편 <호랑나비의 꿈>, KBS 미니 시리즈 <위기의 남자>로 방영됨.◉ 전작 장편 「황토荒土」 전 2권(동아출판사) 출간◉ 꽁트집 「재미없는 세상 재미있는 사람들」 (도서출판 두로) 출간1993년 ◉ 장편소설 「님의 침묵」 전3권(도서출판 청마) 출간1995년 ◉ 장편소설 「크레타의 물고기」(도서출판 강천) 출간1998년 ◉ 장편소설 「님의 침묵」(‘개작')전3권(도서출판 밀알) 출간2001년 ◉ 장편소설 「아내」전2권 (예문당) 출간2016년 소설집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부』(인간과문학사) 출간2017년 에세이집 『연꽃, 미소』(도서출판 도화) 출간2017년 소설집 『스웨덴 숲속에서 온 달라헤스트』(도서출판 도화)2018년 장편소설『소설 漂海錄표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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