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가세계...

 

▲ 주해봉 약력:중국 흑룡강성 탕원현조선족고급중학교 교사출신. 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회원.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송화강잡지, 은하수잡지 등 신문과 잡지에 단편소설/수필 수십 편 발표.  mbc신춘편지쇼 본상 수상, kbs한민족방송 우수상(3회)흑룡강신문 '녹환컵'수필공모 우수상 수상. 현재 경기도 고양시 모회사에 근무. 

 

제1편 

산다는 것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지긋지긋하고 끈적끈적한 무더위도 자연의 섭리에는 어쩔 재간이 없었나 보다. 어느덧 한밤중에는 창문을 닫고 자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가을이다. 울긋불긋 코스모스 꽃밭위로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듯 한 가을 하늘, “천고마비의 계절”이란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가을 하늘은 어김없이 쪽빛 바다처럼 깊고 높고 푸르다. 어느새 등산에 최적인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솔직히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거의 등산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반급 학생들과 여름 방학에 소풍삼아 아름드리 소나무로 꽉 들어찬 소흥안령 자락의 량자하 유원지에 도시락 싸들고 가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서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원들과 함께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1922년 에베레스 북벽8230m 까지 처음 무 산소 등정을 했던 영국 등산가 조리 맬러리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간다.”고 했다. 1801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 됐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등산은 외로움을 다래기 위해서였다. 건강, 친목, 등등 등산 목적은 등산객 수만큼 이나 많을 것이다.

 등산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 머물러 온지도 어언 20년이 가까워 오고 산을 타기 시작한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정확히 산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느닷없이 등산을 하는 꿈을 꾸면서부터였다. 어느 날인가 나는 꿈속에서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한라산 등정을 하였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바닷가에 서서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해돋이를 구경했다. 8월인데도 바다 바람은 차가웠다. 온 몸이 오그라들 정도여서 전신을 부르르 떨며 수평선을 응시했다. 동쪽 바다에서 선홍빛 점이 아른거리나 싶더니 불덩이가 불쑥 수평선 위로 솟아올랐다. 순간 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황홀경에 나는 귀가 먹먹해지며 온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느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서 이 제주도 바다 가에서 일출을 꼭 구경해야지.” 바다가의 싸한 새벽공기와 함께 뭔가 뭉클한 것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일출 구경을 끝낸 나는 본격적인 한라산 등정을 시작하였다. 헌데 워낙 산행 경험이 부족하고 체력적으로 딸리는 상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던 나는 그만 다리가 풀리며 실족을 한 채 아찔한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넌 이젠 죽은 목숨이다. 만약 다시 살고 싶거든 앞으로 꼭 등산을 견지 하거라 ” 소리 없이 나타난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산신령님의 간곡한 귀띔이었다. 필경 꿈이었다. 꿈이었지만 그처럼 생생하였다. 헌데 아무리 황당한 꿈이라 하지만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어수선하고 느낌이 이상야릇하게 침침했다.

 

거짓말 같이 꿈을 꾼 후부터 난 시간 나는 대로 꾸준히 산행을 견지하였다. 꿈이지만 산행을 멈추면 죽을 수 있다는 산신령님의 충고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것이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만큼 꿈에서의 죽음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수시로 되돌아본다.

 

더듬어보면 30대 후반의 텅 빈 배낭에 삶에 대한 물음표만 한가득 집어넣은 채 코리안 드림의 열풍에 휘말려 한국행에 몸을 던진 나, 분명 조상님들이 살아온 고국 이었지만 나에겐 엄연히 낯선 이국이었고 마냥 따뜻한 보금자리만은 아니었다. 사유재산이 최우선시 되고 금전만능이 판을 치는 익숙하지 않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온 몸으로 받아 안은 첫 느낌은 놀라움과 망설임과 의구심이었다. 상상을 완전 벗어난 냉혹한 현실 앞에서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건설현장의 철근, 형틀목수, 깊은 산속의 돼지농장 사양 원 ,아파트 청소부, 일용직 잡부, 호프집 주방장, 그리고 회사원, 내 작은 몸뚱이에 이처럼 수많은 직명을 달아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부평초 마냥 한국 팔도를 떠돌며 눈물과 피땀으로 곳곳에 아픔의 흔적을 남겼던 지울 수 없는 자취, 듣기 거북한 말로 표현 한다면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며 살았지만 긍정적인 언어로 구사한다면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라 하겠다. 그 대가로 꿈만 같게 아파트도, 자가용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다. 끝없는 욕심이 작간해서만은 아니다.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우선시 했던 시간들, 남에 뒤지지 않는 열정과 끈기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지만 결코 충만 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가슴, 자신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에 꿰맞춰 살아온 껍데기 삶, 능동적이 아닌 피동적인 움직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중국)에 대한 고민, 나의 근원과 조상의 나라인 한국과 조선의 대조적인 현실로 더욱 갈피를 못 잡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이데올로기에 대한 갈등으로 본의 아니게 이중삼중으로 무거워지고 아프고 슬프고 외로워진 심신 때문일 수도 있겠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훌쩍 뛰어 넘어 반백의 중반에 머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그간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깨우친 것들을 현재가 아닌 과거 20년 전의 30대에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과연 물불 가리지 않고 교사의 옷마저 벗어버리고 한국행을 단행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원인여하를 불문하고 분명 마음이 시킨 결과물이다. 내가 저지른 인생연극의 한 토막이다. 모르는 게 약이 되고 아는 게 힘이 될 때도 있다. 어쩌면 앎은 또 다른 새로운 의문을 낳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사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 같은 반백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혹과 고민을 한 가득 짊어지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어딘가 서글픈 마음 금할 길 없다.

 인간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며 더 잘 살기 위하여 때론 고통과 위험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어쩌면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한국행에 뛰어든 것 역시 보다 잘 살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지금 난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생각보다 생은 너무 짧은데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의 늪에서 허덕인다.

 돌아가신 삼촌의 모습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항상 당당하고 떳떳하게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을 모습으로 마을에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시던 삼촌이다. 마을의 초상집을 도맡아 언제나 시신을 다루며 유가족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시던 삼촌, 시도 때도 없이 밤을 패가며 고생 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게 여겨져 집식구들이 “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니 이젠 그만두세요.” 라고 거듭 만류하였지만 그때 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할뿐이니 걱정마라 ”며 그 일에서 끝내 손을 떼지 않으시던 삼촌, 그런 삼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위암말기 진단이 내려졌다. 죽음 앞에 선 임종환자들을 밤을 패가며 위로하고 사후 뒤 수습을 해오던 그에게 ,정말 한 번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삼촌에게 시한부 선고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당시 끝없는 절망과 회한 속에 빠져 있던 삼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팔에 꽂은 링거를 빼버리고 약을 거부하며 빨리 죽고 싶다며 안락사를 요청하였고 뜻대로 안 되자 일절 말 한 마디 없이 무 대응 하시다 갑자기 성경책을 읽어 달라하시던 그 모습, “ 후회가 없어, 나 편하게 갈 거야 ” 유언처럼 남기신 그 마지막 한 마디는 결국 삼촌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진심이셨다. 처음에는 부정과 분노, 다음에는 절망과 타협, 우울의 단계를 거쳐 마침낸 수용의 단계까지 고스란히 밟는 과정, 그처럼 세상에 무서운 것 없이 당당하기만 하던 당신도 역시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는 여느 암환자와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아마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두려움이 인생을 휘 감는 순간 누구나 엄청난 내면의 변화를 겪지 않을까 싶다.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의 죽음을 잠시 경험하였지만 이제부터 남은 시간만이라도 철저히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거짓 없는 생각이 집요하게 갈마든다. 어차피 살면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이별, 상실, 고통, 죽음 같은 것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할 때 궁극적으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그리고 무엇이 진정 의미 있는 인생일까? 불철주야 미친 놈 마냥 너무 바쁘게 달려온 거칠어진 내 모습이 허허벌판에 세워진 허수아비처럼 어설프고 엉성하게 비껴온다.

 살아가면서 아파트가, 자가용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인생의 전부만은 아닌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이 더 망가지기 전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뻐하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남김없이 녹여가는 것, 그런 것들이 진정 현실로 탈바꿈 되었을 때 “아! 이제는 죽어도 좋다”는 감탄이 내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을까! 어쩌면 그 순간이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꺾이지 않고 관철하는 찰나가 아닐지?

 고즈넉한 시골에서 텃밭 가꾸며 조용히 살아가는 것도, 고층빌딩 즐비한 대도시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동분서주하는 것도, 그리고 단풍 깃든 가을 들녘에서 무르익은 전야를 바라보며 사색의 나래를 펼치면서 휴식의 한 때를 즐기는 것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울고 웃으며 그리워하고 미워하며 후회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가 그려가는 저마다의 자화상이 아닐까? 그렇다할 때 어쩌면 산다는 것은 마냥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것이 아닐지?

 갈피 잡을 수 없는 그 복잡한 울타리 속에서 흔들림 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한다는 것, 어쩌면 삶에 있어서 그것이 가장 후회 없이 살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옆에서 바라보기엔 시도 때도 없이 시신 주물며 살아오신 삼촌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겠지만 삼촌 자신은 꼬물만한 대가도 없이 일하셨지만 자신이 원해서 하는 봉사였기에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찌그러져 가는 오막살이에서 조밥에 된장 찍어 먹어도 웃으며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면 그것이 행복이여!” 평생 고향마을에서 똥냄새 맡으시며 소 키우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버릇처럼 외우시던 말씀이 귀전에 쟁쟁하다. 엽초 태우시며 소리 없이 미소 지으시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혀온다.

 쏜 살 같은 세월이다. 들이미는 가을의 뚝심에 못 이겨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간 여름의 뒷모습, 늘 이렇게 가고 오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가을의 언덕에 서고 보니 스러져간 여름이 벌써 아쉬워진다. 유난히도 끈적끈적하게 무더웠던 날들조차 그리워진다. 고등학교 시절 소흥안령 자락에서 눈도장 찍었던 그 아름드리 소나무의 모습도 그리움의 꼬리를 물고 점점 짙어진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후회하고 고민하는 것인가 보다.

  

제2편 

잠들지 않은 겨울 소백산

 

일상의 잡다한 것에 매여 다른 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면 갇혀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이 그래도 산행이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으로 2018년 무술년 첫 산행의 행선지를 소백산으로 정했다.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 그리고 경북 봉화군에 걸쳐있는 국립공원 소백산은 오래전부터 다녀오고 싶었던 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심과 더불어 근심스러웠던 것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강력한 한파에 억눌려 도무지 엄두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조화라고나 할까! 연일 영하 20도를 밑돌던 기온이 유독 산행 당일(1월28일) 영하 8도로 상승 했으니 하늘의 일은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버스로 숨 가쁘게 2시간 남짓이 달려 충북 단양군의 천동주차장에서 소백산 주봉 비로봉(해발1,439m)을 향한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들머리에서 마주한 산악인 허영호님을 기리는 기념비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무자비한 동장군의 기승에 다리 안 폭포도, 계곡도 꽁꽁 얼어붙었다. 아치형다리를 지나니 흰 눈으로 뒤덮인 산기슭이며 산등성이에 소소리 높이 하늘을 찌르고 들어선 미츨한 잣나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경이로웠다. 겨울잠에 든 듯 소백산의 겨울 숲은 유난히 고요하였다. 긴긴 세월 속에서 온몸으로 갖은 풍상고초 다 겪어온 나목들! 어쩌면 지독한 외로움에 지친 모습이고 차가움보다 목마른 그리움에 넋 잃은 모습이지만 , 이제나 저제나 늘 그 자리에서 푸른 꿈을 꾸고 있는 겨울 나목의 벌거벗은 육체지만 영혼만은 파랗게 숨 쉬고 있는 나목들! 부질없는 욕심과 끝없는 욕망을 미련 없이 뒤로 한 채 올곧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나목들을 바라보며 겨울 소백산의 첫 느낌을 신선함과 작은 감동으로 수놓았다!

며칠 전보다 추위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산속의 냉한 공기는 장난이 아니였다. 뽀드득~뽀드득~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 눈길이 처음엔 재미스럽게 까지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고 산길이 점점 가파로워 지면서 그 흥미로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힘들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숨은 가빠지고 추위는 점점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 옷을 껴입으면 땀이 나서 견딜 수 없고 그렇다고 벗으면 추위가 엄습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걷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여겨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선에 안겨온 아름드리 천년 노송! 삭막한 겨울 혹한 속에서도 푸른빛을 발하며 드팀없이 꿋꿋하게 버티고 선 천년 노송! 노송을 바라보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 늠름하고 웅위한 천년 송을 조심스레 껴안아보았다. 터실터실한 표피를 접하는 순간 와락 눈물을 쏟을 만큼 애달픈 이야기가 있는 시처럼 아니, 오랜 시간 떨어졌다가 문득 만난 친인인 듯 친근미와 함께 몽환적인 기쁨이 가슴으로 소리 없이 고여 들었다.

 

 

노송이 안겨준 특유의 느낌을 새김질하며 오르다가 다시 시선을 사로잡은 고사목! 은빛(흰 눈) 바탕에 나 홀로 자리 지키고 선 흑색의 고사목!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저렇듯 단순미라는 순간적 느낌! 단조롭지만 무채색 빛깔의 농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줄 것 같은 그 모습은 가히 한국미의 극치는 아닐까?! 더불어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본연적이며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미의 극치가 아닐까 조용히 되새겨 보았다!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의 징표라고나 할까!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함없이 그 한 자리를 지키고 선 고사목을 이윽토록 바라보다 정상 비로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의 마지막 남은 거리는 이제 근근이 0,6km! 헌데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휘몰아치는 칼바람이 얼마나 매섭고 강한지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으며 설한풍에 얼굴은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칼로 에이는 듯 아리고 아팠다. 일찍 추위의 절정을 논할 수 있는 시베리아 광야를 헤매고 다닌 적도 있지만 이처럼 미친 바람은 처음이었다. 소백산에 이런 미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칼바람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너무도 갑작스럽게 맞딱들인 매서운 칼바람 앞에서 솔직히 겁이 나며 마음이 흔들렸다. 어쩔까? 이대로 돌아설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수없이 서로 치고받았다. 진퇴양난의 고심 속에서 망설이던 나는 홀연 머리 속에서 정상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머리를 숙이고 아무 생각 없이 힘겹게 발걸음만 옮겼다.

“어서 정상에 올라야지!” 하는 급한 마음을 가지고 근심을 앞세우면 그 순간부터 산행은 상상할 수 없이 더 힘들어 질뿐이다. 그것은 과정의 소중함보다 목적에 대한 욕심과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다. 욕심은 과정을 힘들게 하거나 파괴시킨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무시하면 목적에 다다를 수 없다. 위를 보지 않고 묵묵히 앞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것 , 생각의 차이란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순식간에 두려움도 동요심도 사라지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평정심을 되찾으니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이 시선에 안겨왔다. 체감온도가 거의 영하30도에 가까운 강추위임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정상을 향해 줄을 잇고 있는 인파들! 그리고 그 추위 속에서도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산객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시선을 타고 안겨왔다. 좀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였지만 그 모습 바라보며 뭔가 알 것 같았다.

사람으로 인해 슬프고 아프고 속상하고 괴로워도 그래도 사람이 좋다는 것!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런 일들이 없을 순 없다는 것!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 괴로웠듯 사람으로 인하여 또한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함께 일 때 모든 것에 의미가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을 더듬으며 오르다보니 칼바람이 막아선 깔딱 고개를 넘어 어느새 정상 비로봉에 다다랐다. 잊을 수 없는 소백산산행을 기념하기 위해 비로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이리저리 셔터를 눌렀다! 드디어 미친 칼바람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 길에 올랐다. 소백산 겨울산행은 그야말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극기에 가까운 힘든 산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아팠던 삶속의 상처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던 시간들이어서 너무도 소중하고 보람된 산행 이었다! 하늘을 찌르고 선 잣나무! 아름드리 천년노송! 죽어서도 꿋꿋이 자리지킴 하는 고사목! 그리고 정상 비로봉을 지키고 선 미친 칼바람!...소백산 겨울산행 ,어쩌면 그것은 마침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야말로 무수한 쉼표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하산 길 끝자락에서 내심 겨울 소백산을 잊을 수 없어서 석양 속에 비낀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혹한의 인고 속에서 잠든 듯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선 소백산의 겨울나목들! 정녕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묵언으로 봄을 향한 푸른 생명의 찬가를 소리 없이 부르고 있었다.

 

제3편

가을단상 


가을은 꽃이 만발하는 봄 못지않게 눈이 즐거운 계절임이 분명하다. 도심의 가로수는 물론 내가 주거하고 있는 주택 주변의 낮은 야산은 온통 울긋불긋 단풍으로 눈이 황홀하다 못해 부시다. 당나라 시인 두목은 칠언절구 “산행”에서 “서리 맞은 잎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며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봄꽃 보다 높이 찬양하였다.

단풍에는 생각밖에 신비함과 오묘함이 적잖게 숨어있다.

소개에 의하면 단풍의 붉은 색소 “안토시아닌”은 강렬한 가을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크림”역할을 하는데 이 색소가 없으면 나뭇잎이 약해져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뿌리로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토시아닌이 갑작스런 추위에 나뭇잎 세포가 얼지 않게 하는 “부동액”역할과 열매주위에 해충이 꼬이는 것을 막아주는 “구충제”기능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잎이 땅에 떨어졌을 때 독소를 내뿜어 경쟁관계에 있는 주변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한다. 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단풍은 몸치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인 셈이다.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산야가 빨갛고 노랗게 물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지난 주말 온 종일 내린 가을비로 인해 도심의 가로수 주변과 마당의 이 구석 저 모퉁이에는 벌써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나뒹굴고 있다. 지는 단풍을 미처 아쉬워 할 새도 없이 우리는 금세“바스락 바스락 ”낙엽소리에 마음을 빼앗길게 틀림없다.

꿈 많은 아이들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을 테고 한 장 넘어가는 달력에 시선이 멈추는 누군가는 떨어지는 가랑잎 하나에도 인생을 담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보면 낙엽은 나무가 살기 위해 버린 유기물에 불과하다. 본래 나뭇잎은 물, 이산화탄소, 햇빛 에너지를 이용해 영양분을 만드는 광합작용을 한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고 햇빛이 약해지면 그 기능을 못하게 된다. 영양분도 못 만들고 나무가 머금은 수분만 빼앗아 가는데 이때 나무의 전략은 이별인 것이다.

나뭇가지와 잎 사이에 얇은 막을 만들어 물과 영양분이 잎으로 흘러가는 길을 막는데 이로써 잎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 낙엽, 어쩌면 저 뒹구는 낙엽은 나무가 남긴 이별의 손수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버림받은 낙엽이 어딘가 가엽고 애처롭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그나마 갓 떨어진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으로 새롭게 단장된 가로수 길을 홀로만의 사색에 잠겨 거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좀은 안위가 된다.

가을을 맞은 뭇나무들, 가을과 몸을 섞으며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들, 그리고 나무가 남긴 이별의 손수건으로 탈바꿈하여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있는 낙엽들!...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며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다.
떨어진 단풍잎의 갈피갈피에 직업상 장기출장으로 홍콩과 마카오에 집처럼 머물고 있는 귀여운 딸애와 가족과 떨어져 중국 연해도시에서 혈혈단신으로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어린 아들의 장한 모습, 그리고 생업을 위해 삶의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나그네들의 고단한 모습이 고스란히 어려 있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더해지는 사색의 계절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떨어진 낙엽보다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이 아직은 훨씬 더 많다. 핏빛 단풍잎이 가을바람에 산들산들 춤추며 쉴 새 없이 추파를 던져온다. 노란 은행잎도 뒤질세라 나를 향해 윙크 한다. 꽃보다 잎이 더 아름답다는 새로운 느낌을 난생 처음 몸으로 감수했다. 말 그대로 환상적인 가을 산, 가을을 맞은 산과 가로수들은 그렇게 단풍잎으로 불타고 있다.

어쩌면 단풍은 사랑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갈마들기도 한다. 눅잦출 수 없이, 멈출 수 없이 확 타오르는 불타는 사랑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사랑과 계절(단풍)의 공통점은 시작과 끝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 알 수 없이 시작되고 알 수 없이 끝난다. 는 점을 느끼게 된다.
절정을 이루며 불타고 있는 저 단풍잎도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멀지 않아 언젠가는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다 저렇게 가슴 저리게 긴 여운만 남겨놓고 짧게 머물다 어디론가 홀연 떠나버리는 것일까?! 아쉽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절정이던 가을 단풍이 이제 곧 낙엽으로 변할 것이다. 그 절정과 낙하사이의 시간적 여백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나무들은 떨어진 잎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운할까, 아쉬울까, 안타까울까? 솔직히 옆에서 바라보는 나는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시간이 길지 않고 짧기에 더욱 절절하고 소중하게 까지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나무로 놓고 볼 때 내년의 새로운 삶을 생각하면 반드시 잎을 떨어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안타깝지만 부득이하게 버려야 할, 혹은 이별해야할 것이 적잖은 것 같다. 버리고 이별하면 당장에는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런 아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은 온통 아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 온통 아픔이기 때문에 비틀거릴 지라도 그것을 이겨내며 각자가 그려나가는 인생이라는 그림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짧고도 아쉬운 것, 어쩌면 단풍뿐만 아니라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절정은 생각과는 달리 짧다. 아니, 어쩌면 찰나이고 순간이다. 간혹 오래된 책들을 다시 뒤적이다 어린 시절 곱게 물든 단풍의 낙엽을 골라 책갈피에 끼워놓은 것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단풍든 낙엽의 윤곽이 책속에 그리기라도 한 듯 스며있을 때 짧게 산 단풍의 그 여운이 얼마나 길고 깊으며 진한 것인지를 다시 느끼게 된다. 이미 낙하한 가을 낙엽 하나에도 길고 충만한 생명의 기억들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단풍의 황홀함은 짧고 낙엽의 조락은 길다. 우리 인생도 짧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분명 있다. 그것에 진짜 인생의 참맛 또한 숨어 있는 것 아닐까! 그 짧지만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이 깊어가는 가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잊을 수 없는 여행, 친인들을 향한 따뜻한 엽서 한 장,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읽기 ...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지만 이 핑게 저 구실로 마냥 스치고 지날 수만은 없는 소중한 순간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짧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적극 활용한다면 어차피 짧은 인생이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던 단풍이 바야흐로 고엽이 되어 떨어지는 조락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서운하고 아쉬운 생각이 자꾸 갈마들지만 왔으면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
여태껏 가을이 되면 오로지 황홀한 단풍 빛깔에만 도취되어 좌충우돌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단풍놀이 할 때는 예쁜 단풍만 보지 말고 단풍나무의 치열한 삶도 생각하며 그리고 낙엽의 아픈 사연도 조용히 더듬어야겠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찬란하고 황홀한 가을 빛깔로 내 마음의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물들여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그늘 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고 뽀송뽀송 윤택하게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 끝자락에 달콤한 추억 한 꿰미 엮어서 달아매야겠다. 힘들고 지칠 때 마다 ,아니 그냥 틈나는 대로 바라보며 미소라도 지을 수 있도록! 

가을이 있고 단풍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2018년12월1일
한국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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