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보는 한국문인의 정감세계... 
▲ 이종영 약력 : 詩 부문 문학21 등단, 수필부문 문예 감성 등단. 중원대학 중원문학상. 들소리 신문 문학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63.5그램 .첫눈역에서, 늦가을 그들의 삽화, 우리가 비 그대는 시 공저. 월간 곰단지 자문위원. 글동네 작가회 회장, 화숲 동인.
  1.날품 3 
 
재 넘는 새벽달에
낮게 깔린 어둠 걷히고
앙금처럼 가라앉은 거친 숨소리
서리진 새벽을 가른다버거운 삶 짊어진 채
관심 주지 않는 생에 순종하는
허기진 눈망울
 
땅의 무게만큼
무거운 하루해에 저당 잡힌 육신은
마디진 손 부여잡고 일어선다
 
조각으로 기워진
무지개 드리운 하늘
엉킨 실타래 풀리는 날이면
산 달처럼 쌓일 꿈의 산물들   2. 음주운전
              
미워한 적 없는데싫어한 적 없는데백년손님이나를 울리고내 딸을 울린다내일모레면 하얀 모래 눈부신 사이판으로신혼여행 비행기 타야 하는데코끼리처럼 코에 호스 끼운 채입춘 지난 지 한참인데이제야 겨울잠 자려는 듯미라처럼 붕대 휘감고 침대에 누워있다떨림 없는 손가락은 병실 천장 가리키고희미한 숨소리 들어야 하는 심장은숯검정으로 타들어 가는데지난밤왜 그랬는지물어도 대답이 없다.   3. 괴산, 현장사무소를 떠나며
 
잊지 않으리 비 내리는 날
바람 부는 날도 잊지 않으리
스물여섯 달 아침을 깨우던
문수산 깊은 골 산울림
 
산허리 감아 도는 잦은 운무는
욕심 없는 촌로의 미소처럼
한 폭의 선한 그림이 되고
 
나무 사잇길 산길마다
인연의 탑을 쌓으며
남겨두고 담아 가는 연민
 
그것은 남은 자의,
떠나는 삶 모두가
추억이기를 아름답기를
한때 푸르던 시절은 두고 가리라  
4. 냄새가 난다 
화장기 없는 민얼굴의 글을 쓰고자 하나익숙지 못하여자꾸만 로션 병에 손이 간다뻗치는 손 다시 거두어 들이지 못하는습관이 무섭기까지 하다스스로 느끼는냄새는 그 실체의 본질이 아닌가이미지란 어차피 진가를 체험하지 않으면각자의 몸에 희열의 날개를 달기는 쉽지 않을 터손결이 한번 스치고 지난 자리는 빛이난다그 빛 속에 무엇을 더 보태야 하는가가그린으로 잇몸을 청소하고 장미 향수로 제 몸을 물들인 사람들그런데 인간의 교만과 위선은그 원초적 냄새를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그렇게 편승하여 살아가려 한다아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하얗게 분칠하고 감추어 둔속의 냄새는 어쩌려고들 그러는지그걸 풀어내지 않으면 고여서 곪아서 악취가 날 텐데뿌리를 보고 싶다그곳의 뿌리가 깊다면 좀 더 파고들 텐데...  
5.오십천
           
                    
세월의 수레 따라수채화 같이 빛바랜 그리움 묻어두고돌고 도는 굽잇길 지쳐가는희미한 눈길로 바라본다12월에 짧은 해는 쪽문으로 파고들고어긋나는 인연 하나 걸어둔아득한 거리 지나순서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급할 것 없는 일이건만바삐 걸어온 길변해가는 시간 속우두커니 앉아기약 없는 기다림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행복 있는그곳으로 가고 싶다색바랜 환상의 도시 뒤로 한 체원초적 본능이 기다리는 곳아무런 욕심도 시기도 없는그곳에 나를 내려놓고 싶다다소, 찬바람 불어 옷깃 여민다 하여도...
 
*오십천 :삼척으로 흐르는 천(川)  
▲ 무인도가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6. 무인도 
오지 않는 그들은 다시오지 않으려나아직도 새벽이 멀다어둠으로 번지는 물 밀듯외로움이란 아픈 것이라외기러기 부초처럼 내려앉네 기다림으로 녹아드는 섬몸을 짓이겨 살오른 섬처럼너의 그리움은 쌓이는데그도 알아챘는지후두둑 떠나네 날아가네 혼자의 섬이었을까새벽은 멀고오늘은 바람조차 없다.  
 7. 남이섬                
 
못다 한 삶의 그리움무형으로 떠도는 유배지  요절한 장군의 넋굽이치는 물안개로 씻기어호반 어귀마다 이슬로 흩뿌리고
 
장구한 세월소나무 나이테로 야위어 가는 숨결
 
묵묵히 낮은 곳으로 흐르는순종의 북한강물마저머물다 간다 한들 누가 막을쏜가
 
회한의 뒤안길휘날리는 꽃잎처럼 벗고픈 누명 삼켜소리 없이 흐르는 물길에 씻어가 두고
 
사무치는 하늘빛 물들여애당초 정들이지 못한 설음소멸하지 않은 영원한 향취로 남아미리내 굽이진 물길에 누웠네라 
  
8. 폭설 
기차는 오늘도 연착이란다밤새 내린 눈으로지난밤 막차를 놓쳤는지새우잠 자는 두 사내바짝 오그라 붙은 나무의자엔그나마 앉을 곳이 없다밤새 타다 남은 갈탄 열기에굽은 손을 녹이며 소년은 중얼거린다오늘은 또 몇 시간 지각일까청량리에서 출발한 급행열차는 밤새 달려와설렁설렁 묶은 몇 뭉치의 신문을내동댕이치고 달아나는데사무실 통난로 옆을 왔다 갔다시무룩한 역장의 침묵이 지쳐 보인다기말고사,시험만큼은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기차가 울지 않는다언제쯤 기차가 올까지워가는 철길 따라내 어린 청춘 위로 눈이 내린다  
9.어머니
 
              
불면의 밤으로지새우는 가슴앓이깊이 서린 한숨 세월
 
희미해져 가는 여든 해 인생연민에 강 되어 흐르고               흐르는 세월에 묻어둔빛바랜 삶의 애환낮은 한숨 잦아드니
 
소맷자락 옷고름에 
눈물 훔친 날 몇 날인가
 
쇠한 눈, 마디진 손길주어도 못다 한 참사랑
무엇으로 갚으리까 끝없는 눈물기도  
10. 고향 그리기

 
                                        
겨울 한나절 느리게 저물고전깃줄 아래 느티나무연결이 사슬로 매듭으로그래야만 안심이 되는삶이라니,서 있는 자체가 고역이다
 
시들고 말 서산 노을 바라그냥 서 있기만 해도 좋을,아주 먼 고향이 그립다
 
너른 황토밭 봄밭에씨앗을 뿌리던, 그렇지훠이훠이 날개의 봄날의
내 어머니 당신이 날던
고향이 그리울 만하지  
11.  엘림 금식 기도원
                                        
가야산 산허리 한자락  은혜로운 주님의 전
언약의 씨앗 심을 옥토 두루 찾아
하늘에서 이룬 뜻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연단의 세월
 
간구와 헌신 속 맺힌 땀방울   벽돌마다 새겨진   눈물기도 얼마인가
천군 천사 응원 지붕으로 덮고  갈 곳 잃고 방황하는 메마른 영혼   부르시는 애절한 사랑
 
엘림 성전에서 기도하는 자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열두 샘물 마시고
종려나무 칠십 주 그늘 아래 흐르는  호산나 찬양으로, 병들어 지친 몸  외양간 송아지처럼 기뻐 뛰리라
 
오호라! 기쁨일세  응답받는 기적의 기도원으로  온 누리에 퍼지리   온 누리를 품으리 주의 사랑으로.  * 엘림 금식 기도원 : 충남 서산 운산면 세광교회 기도원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