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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문학특집 36]조원의 소설 '좌망, 빛이 기다리는 곳으로' 외1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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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1  1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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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 소설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조원 약력: 본명 조룡기. 1972년 흑룡강성 해림시 출생.  수필집 <떠돌이수첩>, 소설집 <항주를 지나면 천당?> 출간.각종 문학상 다수 수상.

 

제1편 

단편소설

좌망, 빛이 기다리는 곳으로
 
조원
 

불타는 금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토요일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또한 일요일 밤은 우울해지고 월요일 아침은 늘 난데없이 찾아오는 듯 하고.
샐러리맨은 아니지만, 요즘 나는 샐러리맨의 절박한 주일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알람이 울린 후 30분이나 지나서야 잠에서 깨는 바람에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대충 준비를 마치고 카메라를 챙겨서 나는 작업실이자 거주공간인 집을 나섰다.
바깥은 짙은 안개가 서려있었다. 얼굴은 없지만 수많은 손가락을 갖고 있는 가을바람이 안개의 립자들을 밀어가면서 세집 너머의 가시거리를 확보해주고 있었다. 가로수들의 록음은 여름이 남긴 자취로 여직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경계가 흐릿하면 사물을 살피려는 시선은 오히려 살아난다.
내가 몰고 다니는 낡은 찦차 한대는 집앞 골목길에 세워져 있다. 어디든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기에 자리는 일정하지 않다. 매일 일이 끝나고 차에 실었던 자재와 공구함과 연장들을 지하 창고로 옮겨둔다. 차에 두면 도적맞힐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창고로 내려가 공구함과 연장들을 차에 실어나르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웅이네 전원주택의 다락방과 아래층의 거주공간을 이어주는 계단을 들이는 날이다. 그 뜻인즉 웅이네 다락방 증축공사가 마무리가 되여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직원도 없고 사무실도 없는 단독작업의 인테리어사업자인 나에게 주어진 다락방 증축공사는 대공사임에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웅이네의 나에 대한 신뢰와 나의 출중한 기술이라고 자부했지만 마무리가 되여가면서 왜 꼭 나였을가 하고 반문을 하게 된다. 요즘 부쩍 떠오르게 되는 생각이다.
2개월 전, 함께 공사현장을 다니다가 작은 규모의 건축회사에 취직한 장위에게서 전원주택의 다락방 증축공사건을 소개받았다. 위치와 사전 검측을 거친 뒤 설계도면, 작업기획서, 견적서를 제출한 결과 오다가 떨어졌던 것이다. 최소한의 인력 동원이라는 주인집의 특별조건을 장위가 알아내고 귀뜀해주어서 “콘크리트기초공사 2명, 전기공사 1명, 난방 및 단열공사 2명, 배수공사 1명, 페인트 공사 1명, 보조 한명과 본인. 총 9명 인력 동원” 이라고 견적서 하단에 상세한 인력배정계획을 첨가했던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근간에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지인들의 인사말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어서 좋다. 불평을 늘여놓지 않아도 좋다. 그들이 인사처럼 물어오는 말에는 어떤 부정적 의도가 들어 있지 않지만 내게는 수많은 생각과 느낌을 가져다 주군 하였다. 이번 공사가 끝나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듯 싶기도 하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에 들어섰다. 웅크리고 앉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짐승이 기습하듯 안개무리들이 재빠르게 덮쳐왔다. 바다바람을 타고 차창으로 날려드는 안개에는 날이 서있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시려왔다. 도어를 올리려다 말고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두손은 내 나이는 물론 내가 하는 일과 잘 어울린다. 큰 상처는 없지만 여기저기 다친 자국이 남아있다. 하지만 손가락은 열개 모두 성하다. 그 손이 바로 나, 인테리어업자의 손이다. 피부는 거칠고 두껍지만 굳은 살은 없다. 손이 단단하면 리력은 두툼할 것이다. 다만 복잡한 과거가 아니라 파도를 넘어온 력사.
어쨌든, 나는 가장 단순하게 살기로 했으며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손으로 바다마을 좌망 뿐만아니라 시내 여러 공사장에서 한몫을 했다. 얼핏 어떤 건물들을 스쳐지날 때면 살아있는 존재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손을 댄 건물은 잊는 법이 없으니까.
웅이네 집은 시내에서 동쪽으로 40킬로메터 떨어진 도시 외곽의 바다마을 좌망에 위치하였다. 웅이네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좌망이라는 마을자체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휘여진 해안을 따라서 주택들이 산비탈에 제멋대로 앉아 있기에 걸어서 가기에는 불편한 거리였다.
웅이네 집 경사진 옆골목에 차를 세우고 공구함과 연장을 부리우고 있는데 웅이가 엄마와 함께 대문에서 마침 나서고 있었다. 녀인과 아이가 서있는 뒤쪽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안개가 걷혀져 가면서 바다가 어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목청껏 기분좋게 인사를 보냈다.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녀인은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어보였으며 웅이는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추스려 올리면서 아저씨다. 엄마. 하면서 환호에 가깝게 소리질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곧 이어 웅이의 인사가 들려왔다.
나는 공구함과 연장을 들고 그들이 서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엄마, 오늘 유치원 가지 않으면 안돼요? 보고 싶어요. 신기하잖아요. 천정이 뚫리고 계단으로 통할수 있다는게 얼마나 신기해요. 그 순간을 확인하고 싶단말이예요.
엄마에게서 웅이가 오늘의 공사일정을 들었던 모양이였다.
유치원 가야 한다.
녀인은 아이의 말을 잛게 끊었다.
웅이는 애써 애원을 가장한 교활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나는 설핏 아이들의 어른스러움과 교활함은 어쩌면 어른들의 순탄치 않은 삶의 반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였다. .
공사현장은 아이들이 함부로 들어서는 곳이 아니라고 몇번을 말했지. 어른들의 허락없이는 한발짝도 넘어서서는 안되는 금지구역이야. 오늘은 더욱 안돼. 위험해.
나는 손의 들것을 내려놓고 웅이의 뒤통수를 가볍게 다독이였다. 촉촉한 물기가 기분좋게 손바닥에 닿았다.
녀인은 계단제작의 하청업체에서 열시쯤에 도착될 것이며, 오늘은 하루 집에 있을 것이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올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옆골목에 주차된 차쪽으로 옮겨갔다.
나는 웅이네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증축공사계약서에 녀인은 공사 중에서 류의해야 할 점을 세부적으로 명백하게 기재했었다. 작업시일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있게끔 다락방의 공사는 완전 분리상태에 진행, 다락방 진입은 뒤마당에 위치한 철제계단을 리용할 것, 다락방을 이어주는 계단은 작업완료 5일전 장착, 주5일 근무에 작업시간은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 당일 발생되는 건축쓰레기는 당일로 처리할 것 등등의 작업규칙을.
나는 마당에서 집 출입문으로 향한 몽돌을 깔아놓은 좁은 길 따라 잔디밭을 지나고 화단을 에돌아 뒤마당의 철제계단쪽으로 향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외양의 웅이네 집의 흰색으로 매끈하게 페인트칠한 외벽을 따라 걸었다. 아주 오래전 파란 페인트칠을 했을 철제계단은 녹물로 번졌으며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떨어져 나간 부위에는 녹쓸어 있었다. 작업하는 사이에 오르내리면서 손길이 자주 닿았던 부위는 녹들이 밀려가고 더러는 철색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다소 가파른 계단을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유심히 계단을 보는 여유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다락방은 성인의 보통키 높이로 2인용 침대 세개 정도 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앞마당을 향한 작고 낡은 창틀을 떼여내고 거의 벽면전체를 통유리로 방의 채도를 넓혔으며 다락방에 서면 멀리 아래쪽으로 가물가물 바다가 보일 정도의 시야를 확보해주었다. 바닥은 쪽매널 대신 옅은 커피색의 원목마루로 마무리를 해주었다. 벽면은 오늘 계단이 들어서고 뒤마당으로 향한 문을 완전 봉합 한 뒤 우유빛 벽지를 바르면 마루의 어두운 색상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좁은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이 날 것이다.
공구함에서 공구와 연장을 꺼내다 말고 나는 잠깐 쉬기로 했다. 혼자 힘으로는 계단이 들어설 자리를 떼여낼수도 없거니와 웅이네가 집으로 돌아와야만 작업을 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통풍구 창을 열어두고 창가에 앉았다. 눈을 뜬채 들숨 한번 길게, 날숨 한번 길게 반복해서 쉬고 있으니 동공이 커다랗게 열려가면서 침침했던 눈은 다른 세상의 눈이 되여갔다.
마당 화단 곁, 똬리를 틀고 수도꼭지에 맞물려 있는 호스.
담벼락 너머로부터 떨어져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능소화 몇송이의 잔해.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듯 대문쪽으로 핸들을 틀고 있는 파란 어린이용 자전거와 빙하기의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건거 바구니에 꼬꾸라진 채 꼬리를 치켜든 공룡 장난감.
긴 밤의 외로움과 새벽 안개의 공포, 그 시간을 홀로가 아닌 셋이서 무난히 견뎌온 안도감으로 파라솔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진 둥근 탁자 하나와 의자 하나와 쪽걸상 하나.
외출해서 밤새 귀가하지 않았는지 길건너 이웃 울안의 빨래건조대에 걸쳐져 있는 빨래들.
경사진 아래쪽으로 보이는 앞집의 지붕과 그 사이로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
내 시야로 들어오는 사물들은 낯설었다. 이 낯섬을 카메라 렌즈속에 담으면 적격이겠다 싶었지만 바로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때로는 사물들의 적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나는 낯설어지는 자신을 느껴가고 있었다. 증축전 처음으로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들어섰을 때의 낯섬과 이질감과는 또 다른 낯섬이였다.
다락방에 널려있던 웅이네의 물건을 아래 마당으로 운반하던 날의 낯섬도 떠올랐다.
공사 시작과 함께 다락방의 물건들이 마당 주변에 흩어지면 집주인은 갑자기 바빠졌다. 내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무의미하게 여져졌던 물건들이 갑자기 의미라도 지니기라도 하는걸까.
타인의 어둡고 내밀한 구석을 파헤치고 들추어내던 서걱거리던 감정과 설핏설핏 호기심이 발동되는 충동은 혼잡스러웠다. 매사에 서늘한 구석이 있던 웅이네도 마당의 해빛속으로 다락방의 물건들이 하나 둘 널러져 가면서 더는 거만함이 숨겨져 있는 오기도 허물어져 갔다. 어쩌면 오래동안 쓸모없이 적치되여 있던 물건들처럼 그녀도 초라하게 오그라져 가는 듯 하였다.
셀로판지를 두르고 붉은색 비닐끈으로 십자모양으로 포장된 케이스일 듯한 물건을 계단에서 들고 내려 오는 나에게 그녀가 덮치기라도 하듯 나꿔채가면서 나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아귀에 잠깐 잡혔던 그 순간은 시도 때도 없이 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 순간 뿐인 것처럼.
코팅장갑이 끼여진 나의 손이였지만 그녀의 길쭉한 손가락의 단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함부로 타인의 손에서 나돌게 해서는 안되는 방어같은 것도 느낄수 있었다. 그 순간이 떠오르면 자꾸 셀로판지에 포장되였던 그 물건의 정체에 내 사유의 흐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아마도 웨.딩.사.진. 일 것이다, 라는 추측에 까지 몰고 갔다.
대문이 열리면서 코마루가 유난히 날이 선 곽명이 마당에 들어섰다. 내 눈앞에 펼쳐졌던 풍경들은 편린처럼 쪼개지면서 허공으로 날려갔으며 나는 다시 익숙한 나로 돌아왔다.
곽명은 작업시간 외에 사고를 몰고다니는 사고뭉치였지만 협동작업 중에는 상대의 몸의 리듬을 온 몸으로 흡수해들이는 센스있는 나의 파트너였다.
다락방에 들어온 곽명은 마루에 앉아있는 나와 마주 앉았다. 오후에는 타업체의 창틀 바꾸는 일감이 있으니 계단들이기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형님, 집주인말인데… 여기 좌망으로 이사든지 일년도 안된답니다.
곽명이 은밀한 화두를 꺼내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의 눈섭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듯 움뜩이였다.
수상하단란 말입니다. 떠도는 소문은 한두가지가 아니구요.
곽명은 상대에게 간질거리게 하회를 기다리게 하는 짓거리로 말을 끝내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소문이라는 건 그저 소문일뿐. 우리 일군들은 집주인의 사생활과는 무관하게 할일만 하면 되는게 아닌가? 자, 일어서. 일이나 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나는 말했다.
칫, 30대 중반의 녀자가 아이 하나 데리고 시내도 아닌 바다마을로 이사든다는 자체가 사연이 있단 말입니다.
곽명이 나를 붙잡아 앉히며 말을 이었다.
그 녀자, 남편이 바다에 빠져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남편이 어느 고위층 관리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으로 갔으며 고위층 관리가 대가로 녀자에게 좌망에 전원주택을 사줬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생각해봐요. 30대 중반의 녀자가 무슨 실력으로 좌망에 전원주택을 살수 있겠습니까?
곽명의 바다눈섭은 파고의 떨림이 더 격렬해졌다.
유명인사의 부도덕한 성공에는 찬미를 보내면서 백성들의 하잘것 없는 부도덕한 성공에는 도덕의 자대를 휘둘러서야 쓰겠냐? 조용히 하라.
나의 랭소는 뜨거워지려고 하였다.
형님, 형님의 그런 지적인 표정이 싫단 말입니다. 뭔가를 자꾸 생각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가짜라니까요.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하는게 진짜란 말씀입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에 복잡하게 생각할게 뭐 있냐고.
상관이 없다고요? 맙시사 형님, 상관이 있고 없고는 천천히 들어주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한심한건 고위층 관리가 이 집으로 드나든다는 소문도 있고, 더 나아가서 고위층 관리가 탐오혐의로 조사받고 중인데 이 집이 압수당할지도 모른답니다.
너 성깔머리와는 별개로 드라마 꽤나 봐왔네. 공사일 그만 두고 드라마 극본이나 쓰지 그러게.
아핫. 형님도 참. 그리 추측이 안된단 말입니까? 최소한 인력투입도 사생활 보장하기 위해서란 말이구요. 고위층 관리와의 똥구린 내연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서는 형님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뜬금없이 거기에 내가 왜 들어가냐구.
잠깐만,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몰라도, 그 녀자… 형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도 있단 말입니다.
뭐야?
내가 내지르는 소리에 곽명이 주춤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녀자 대형 인테리어업체들의 견적서 다 패스해버리고 형님에게 일 맡긴 자체부터 의도적이라는 추측도 나돌구요.
허참. 됐고, 나는 못들은 걸로 한다.
나는 다시 일어서면서 마당쪽을 내려보았다.
웅이네가 들어서고 있었다.
자, 서두르자.
나는 곽명을 재촉했다.
곽명과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하면서 가끔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흥겹게 몸을 흔들기도 했지만 오늘은 방금전의 대화로 서로의 눈치가 겉돌기만 하고 손발이 엇나갔다. 게다가 아래층에 있을 웅이네가 괜히 신경쓰였다. 다행 계단이 들어설 자리를 이미 먼저 사각으로 구멍을 내고 덮개식으로 막았던 것이여서 얼마 품을 들이지 않고 우리는 들어낼 수 있었다.
진공청소기로 다락방 구멍 주변을 청소하고 아래층 거실에 떨어진 먼지와 부스레기들도 깨긋하게 청소하였다. 아래층 청소를 곽명은 고약하게 나에게 떠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짐짓 도와줄 것이라도 있는 듯 다락방의 바닥에 엎드려 사각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짙은 파도눈섭을 움쭉대면서 아래층의 동향을 살폈다. 웅이네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든 벌어지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눈빛은 간절한 기다림으로 번뜩이였다. 하지만 웅이네는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래층에 들어 섰을 때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사진은 물론 내가 단정짓던 웨딩사진, 하다 못해 촌스러운 유화를 담은 케이스 따위는 벽의 어디에도 걸려있지 않았다.
오늘은 두번째로 웅이네 살고 있는 공간에 들어선 것이다. 공사가 시작되여 며칠 후, 계단이 들어설 자리에 구멍을 내던 날 제외하고는 다락방 공사는 완전 분리상태에서 진행이 되였으며 그녀도 일절 다락방으로 올라오지 않아 그녀와는 거의 스치는 일 따위 조차 없었다. 아주 드물게 정원의 파라솔 아래에 등을 지고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다락방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집에 사람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틀어놓았던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었다. 내가 흥얼거렸던 노래소리를 그녀가 들었다고 생각을 하니 심히 부끄러웠다.
열시 정각에 계단하청업체에서 도착, 두시간 남짓 시간을 들여서 계단이 장착되였다. 그 사이에 나와 곽명은 다락방 뒤마당으로 향한 문을 벽돌로 막았다. 그러니까 다락방과 아래층은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졌으며 다락방으로 올라서려면 아래층을 걸쳐야만 했다. 계단하청업체 일군들이 물러나고 나와 곽명도 점심 식사하러 나서려고 정원쪽의 수도꼭지를 틀고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손을 씻을 무렵 그녀가 정원으로 나왔다.
그녀는 엷은 미색 코드로 치마를 입었을 몸을 가린 차림새였다. 덕분에 슬리퍼가 신겨진 맨발과 종아리가 오히려 시선 집중을 강요하는 꼴이였다. 간단한 점심을 준비했다면서 파라솔 아래 탁자우에 토스트와 빈유리컵 두개와 우유팩, 커피 두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 하나를 더 꺼내서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웅이네 집의 창문을 등지고 앉아 양고기즈란토스트를 먹고 앉아있던 나는 야릇한 웃음을 입꼬리에 달고 토스트를 베여먹으며 이따금씩 내 어깨 너머로 집안쪽으로 힐끔대는 곽명을 의식하고 있었다. 파라솔 아래 음지쪽에 앉아있는 나였지만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뒤통수가 후끈거렸다. 점심식사를 후닥닥 끝내고 곽명은 서둘러 떠났고 나는 오후 작업을 계속 해야 했으므로 쟁반에 빈그릇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부엌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잠깐 멈추어섰을 때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부엌이 그쪽에 있었다.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서 은근히 부유하는 아로마향을 맡으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바닥에는 부엌 미닫이문의 마름무꼴 무늬의 뚜렷한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그 그림자를 밟으며 부엌문쪽으로 가까워졌을 때, 짧은 실크 잠옷 치마자락에 감싸여진 동그랗게 말려진 녀인의 엉덩이를 나는 보고 말았다.
앞쪽으로 허리가 굽혀진채, 파여진 엉덩이골의 륜곽까지 드러난 엉덩이는 찰랑찰랑 물결이 번지듯 좌우로 일렁이고 있었다. 내 눈길은 보라색 슬리퍼 사이로 꽃처럼 피여난 녀인의 발꿈치에서 하얀 종아리를 훑고 지나 탄력있는 허벅지 우쪽으로 거침없이 기여올라갔다. 종당에는 살랑대는 실크 잠옷 치마자락 밑에서 숨쉬고 있는 팬티의 오목부분에서 멈추어버렸다.
황급히 돌아서려는 찰나, 녀인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녀인의 손에 들려있는 매뉴큐어붓은 빨간 혀끝처럼 보였다. 녀인은 그 자세로 발톱에 매뉴큐어를 바르고 있었던 것이다.
녀인은 나를 등지고 선채 고개만 내쪽으로 틀었다. 녀인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정오의 해빛이 사정없이 부엌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녀인이 허리를 한껏 펴면서 가슴쪽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를 어깨 뒤쪽으로 넘겼다. 훤히 드러난 오른쪽 어깨, 겨드랑이 사이의 접혀진 살, 쇄골의 굴곡과 실크 잠옷속에서 갑자기 놀라서 튕겨올라온 듯한 노브래지어의 젖가슴은 강렬한 해빛 아래에서 오히려 헛 것처럼 보였다. 녀인의 몸에서 피여오르는 냄새는 아득하기만 하였다.
금방 잠에서 깨여나기라도 하듯 가늘게 치켜 뜬 녀인의 눈과 나는 마주쳤다.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는 행위를 감추려고 숨을 잠깐 멈추었던 것이 오히려 나의 머리속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나는 머뭇대다가 재빠르게 쟁반을 녀인에게 내밀었다. 녀인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쟁반을 받았고 나는 휘청대며 계단을 밟고 성급히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때로는 특이하다. 출입문만 닫으면 다락방은 독립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계단으로 이어졌다는 의미 하나로 다락방은 더 이상의 홀로가 아닌, 거실공간에 존속되여 있는 부가공간으로 된 듯 싶었다.
다락방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아래층 녀인의 시간을 함께 나누어 쓰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일을 하면서 나는 자꾸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녀인의 발자국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있었다. 쟁반을 받으면서 던졌던 녀인의 그 웃음, 차라리 위선남에게 일격을 가하는 모욕의 화살이였다면 속이 편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 웃음의 정체를 되새겨보면서 고양이처럼 달랑 의자에 올라앉아 엄지발톱에 톡톡 매뉴큐어를 바르는 녀인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라서 진저리쳐질 정도였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혼이 빠져나간 몸은 무기력하였다. 마루에 주저앉아 멍청히 앉아있다가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네시가 되여가고 있었다. 도무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던터라 오늘 일은 이대로 마감하려고 공구들과 연장들을 정리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주인집 녀자의 폰번호가 액정에 떠있었다.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말하는 쪽은 녀인이였으며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듣고 있는 쪽은 나였다. 불과 일분도 안되는 전화속 녀인의 말을 듣고 있는 사이에 내 머리속은 휙휙 거센 바람이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는 듯 하였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에 서서히 발을 내디뎌 간다는 불안, 그 불안속으로는 기필코 빨려들지 않겠다는 다짐, 그러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유혹에 기댄 사소한 희망이 그 다짐을 쓸어갔다가 다시 밀려오면서 혼란스러웠다.
녀인은 언제 집을 나가고 없었다. 시내로 나갔다가 웅이의 하교시간을 맞추어 돌아온다는 게 교통체증으로 제 시간에 웅이를 마중할 수 없는 사태이니 웅이를 집에 데려다 줄수 없겠냐는 간곡한 부탁이였다.
결국에는 그녀의 부탁을 수락하고 말았다. 어차피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음에야. 때로는 선택은 머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입이 먼저 주도권을 잡게 되며 머리가 뒤따라 나와서 선택의 당위성을 강조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한가 보다.
유치원을 향해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이미 후회를 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무가내에 체념하는 낯설어지는 자신을 다시 느껴갔다.
웅이를 유치원에서 마중해서 차에 태웠다.
아저씨, 계단 들어섰어요?
웅이가 옆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물었다. 엄마는? 하는 질문도 없었다. 가방을 무릎에 올려둔채로.
응. 그래. 집에 가면 올라가 볼 수 있을거야. 계단을 타고 다락방을.
나는 웅이쪽으로 허리를 굽혀 안전벨트를 점검하였다. 웅이 몸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오늘 바다로 나갔댔어?
고요한 저녁 나절의 바다가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나는 웅이에게 물었다.
어, 신기하다. 어찌 알아요? 아저씨. 오늘 생활체험 수업이 있었거든요. 바다가 쓰레기수거 수업.
아저씨 코는 개코다. 생선냄새에는 환장하거든.
아, 그거요…
하면서 웅이는 말을 흐리면서 옷깃을 당겨 코끝으로 냄새를 맡았다.
무릎에 놓여진 가방을 다시 한번 품에 꼭 안는 웅이의 곁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웅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웅이 쪽 차창밖으로는 듬성듬성 앉은 주택들과 산비탈이 뒤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나와 웅이 사이에는 서걱거리는 침묵이 갑자기 끼여들었다. 내쪽의 차창 밖으로는 썰물이 밀려가면서 시꺼먼 개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워져 가는 바다가는 허무한 시간들의 파편들이 널려있는 듯 하였다.
바다가 대로변에서 웅이네 집쪽으로 올라가는 올리막길로 차의 방향을 틀려는 무렵이였다.
아저씨, 함께 바다 구경하고 집에 가면 안돼요?
웅이가 가방을 꼭 그러안고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나는 차를 언덕길 옆에 주차시키고 내렸다. 뒤따라 웅이가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꽤나 무거워보였다. 내가 들어준대도 품에 꼭 안고 내 뒤를 따라 길거너 바다가의 몽돌밭까지 따라왔다.
우리는 나란히 몽돌밭에 앉았다. 한낮의 따가운 해볕에 달구어졌던 몽돌은 온기가 여직 남았있었다. 가까운 포구쪽에는 난파어선 한척이 거뭇거뭇해져가는 어스름속에서 힘빠져가는 마지막 몸부림인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갈매기들의 무질서한 비행은 노을을 준비하며 높아져가는 하늘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저씨, 비밀이 생겼다는 건 근심이 생겼다는 말이겠지요?
웅이가 두팔로 무릎을 감싸고 머리를 떨구고 나직이 물어왔다.
근심이 생겼다는 건 어른이 되여간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나는 웅이의 조그만한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혹시 가족이야기? 하면서 나는 다소 긴장해졌다.
어른들은 말이죠. 의심하면서도 믿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오른쪽 볼을 무릎에 대고 나른해진 얼굴을 내쪽으로 돌리면서 웅이가 말했다.
어른들이라고 무조건 그런건 아니야. 예를 들면 아저씨 같은 어른.
가슴팍을 두드리며 사뭇 사내다운 티를 끌어올리면서 나는 말하고 있었지만 살짝 동요가 일었다.
머뭇거리면서도 애써 태연한척 하는 내 마음속에 현미경이라도 들이대려는 듯 웅이의 깜박이는 두눈은 오래도록 나를 훑어내렸다. 이윽고 말이 없던 웅이가 몸을 돌려 가방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의 몽돌밭에 내려놓았다.
그럼 아저씨를 무조건 믿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언이라도 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많은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배구공만한 정체불명의 물건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따개비 사이에는 해파리들이 얼기설기 말라붙어 있었다.
쓰레기수거 수업 중, 바다가에 주운건데요. 따개비속에는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 물건이 들어있어요. 혼자 따개비를 뜯어내다가 아무래도 무서워졌어요. 그렇다고 시시하게 선생님에게  바치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란 말이죠.
웅이는 좀전의 침울속에서 빠져나와 활기를 띠며 당당해지고 있었다.
그래, 스타일 멋있지.
나는 엄지척을 내보였다.
해적들이 탈취했던 보물섬 지도가 들어있을 수도 있어요. 양피지에 그려진 지도.
웅이의 얼굴은 은밀한 기색이 너울치다가 이내 비장함으로 바뀌여갔다.
나는 풉 하고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광풍이 휘몰아친다, 창대같은 비줄기가 밤의 장막을 드리운다, 번쩍하는 번개에 그 장막은 찢어진다, 그 번개빛 속으로 한척의 배가 뒤엉켜 몸부림 치는 검푸른 바다속으로 서서히 침몰되여 간다, 양피지 지도 한장이 선채쪽에서 휘뿌려져 나오고…
아이가 상상했을 머리속 정경이 피끗 머리속으로 스쳐지나면서 나는 차츰 재미있어지려고 하였다.
무슨 근거로?
나는 웅이에게 진진하게 따져묻기로 하였다.
봐요. 여기… 제가 따개비들을 떼여내다가 그만 둔 곳에서 가죽이 만져진단 말이예요.
나는 웅이가 가리키는 따개비가 떨어져 나간 쪽으로 머리를 낮추어 살폈다. 그리고 식지와 중지를 넣어서 만져보았다. 과연 미끌미끌한 것이 손가락 끝에 만져졌다. 웅이의 말대로 가죽임에 틀림없었다.
오, 가능성은 있겠구나. 그럼 어쩌지?
뜯어서 확인해봐야죠.
단호하게 말하는 웅이였지만 분리작업은 은근히 나에게로 떠맡기는 얄팍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나는 따개비들을 조심스레 뜯어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오래동안 그곳에 붙어있었는지 더러는 쉽게 뜯어지지 않았다. 웅이는 쪼크리고 앉아 떨어져 나오는 따개비들을 부지런히 옆으로 밀어냈다. 따개비들이 거의 떨어져 나가면서 물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내 판단으로는 카메라 케이스였지만 섣뿔리 입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두손을 무릎 사이에 끼여넣고 쪼크리고 앉은 웅이는 어깨를 달싹거렸다. 케이스의 쪼르래기를 열었다.
카메라였다.
웅이의 반짝거리던 눈이 맥없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애끌이며 기다리던 공항에서 허술한 나무배 한척을 마중한 기분이였을가?
EOS 800D형 Canon 카메라, 내가 쓰고 있는 카메라와 똑같은 것이였다. 축축한 습기가 번져왔지만 그렇다고 질퍽한 물끼가 있는 것은 아니였다. 왼쪽 모서리는 케이스 바닥에 몰려있던 모래알갱이에 긁혀지고 닳아진 자국들이 살짝 남아있었다. 따개비들이 악착같이 붙어서 서식을 했을 정도이면 바다물속에 잠겨있던 시간은 오래된듯 싶지만 카메라는 다소 멀쩡하다 싶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여 있었다. 버튼을 눌러보았다. 깜박 불이 들어오는 듯 싶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웅이는 이미 흥미를 잃고 나와 멀어져서 차가 세워진 방향으로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웅이의 뒤모습과 바다를 번갈아 보았다.
시월 오후 다섯시의 빛은 너무 짧았다. 오늘의 빛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팔을 잡는 사람의 손 같았다. 차가워지는 팔뚝에 얹히는 무게감과 온기의 감촉이 닿았다. 빛이 산란되여 가고 있었다.
웅이의 뒤모습은 불그스레한 노을빛 물감에 풀어져서 륜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슬픔의 덩어리가 굴러가고 있었다. 상대의 슬픔에 적절한 거리를 지켜주는 례의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슬픔의 원인을 추측하지 않고 위로의 형태로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저 바라보는 것.
웅이네 집에 들어섰지만 웅이네는 그때까지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면서 웅이는 다시 활기찬 아이로 돌아왔다. 문이 열려지면서 바로 거실로 뛰여들어가 전등을 밝히고는 곧 바로 계단쪽으로 뛰여갔다. 쿵쿵쿵 계단을 뛰여올라가는 소리가 내 앞에서 들렸다. 나는 웅이를 따라 캐논 카메라를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웅이는 다락방의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천정을 쳐다보다가 다시 쪼르르 달려가 다락방 아래 계단 아래를 허리를 굽혀 살피기도 하였다. 이 시각부터 다락방의 주인은 자신이며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자신의 아지트가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벽지가 도배되지 않은 뒤쪽 벽이 웅이에게는 커다란 캔버스처럼 보였던 모양이였다.
아저씨, 여기에다 그림을 그려도 되는 거죠?
웅이의 물음은 언제나 간청이 아닌 허락을 강요하는 식이였다.
나는 공구함에서 목수용 사각형 연필심을 꺼내 웅이에게 넘겼다. 웅이에게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시 아래로 급히 뛰여내려 갔다. 차에 챙겨둔 내 캐논 카메라를 갖고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웅이는 이미 사다리에 올라고 서있었다. 아이가 올라서기에는 위험한 사다리였다. 웅이는 벽면에 분수를 뿜어대는 고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조심해. 떨어지지 말고.
나는 건성으로 웅이에게 주의를 주고 내 할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바다가에서 주어온 캐논 카메라를 마른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내고 카메라 청소용붓으로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모래알들을 털어낸 뒤에 밧데리를 탈거했다. 내 손놀림은 바빠졌으며 호흡도 빨라졌다. 내 관심은 언녕 웅이에게서 멀어졌다. 내 캐논 카메라의 밧데리를 뽑아서 바다가에서 주어온 카메라에 끼워넣었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전원버튼을 눌렀다.
성공이였다.
카메라는 거짓말처럼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였다.
앨범의 버튼을 눌러가면서 나는 위험하게 타인의 생활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빨라지는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속의 이미지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덧 나는 그 이미지들에 물음표를 슬쩍 걸어두었다가 느낌표를 떨구면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타인의 생활속에서 나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이야몬드 빛이 마루바닥에서부터 내 눈을 찔러왔다.
뭐지?
하면서 카메라 화면에서 눈을 떼고 다시 마루바닥을 내려보았다. 빨간 발톱 우에 박혀있는 큐빅이였다.
뭐지?
하면서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빨간 발톱은 보라색 슬리퍼에서 삐죽 나와 있었다.
보라색 슬리퍼? 빨간 매뉴큐어의 발톱!
웅이네가 언제 내 옆에 와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와 함께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몸 뒤쪽으로 숨기면서 튀여올랐다. 그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코끝을 스쳤다. 입속이 바짝바짝 말라가면서 나는 현기증으로 어질거렸다.
뭔가에 그토록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롭군요.
그녀는 입가에 신비로운 웃음을 피워올리면서 말했다. 비난은 아니였다.
빌어먹을, 또 그 웃음.
내가 막 카메라 출처에 대해 설명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웅이가 끼여들었다.
엄마, 멋지죠?
웅이가 사다리에서 내려와 그녀를 벽면쪽으로 끌어갔다. 동시에 고개를 탈고 내쪽으로 찡긋 눈짓을 보내왔다. 카메라 사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는 널려진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웅이네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먼저 샤워를 해야 했다. 먼지와 때는 땀구멍속에 박혀있는 듯 깨끗이 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문지르고 씻다보니 곧 깨끗해졌다. 문제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문제 될 일이 많았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떤 미묘한 일은 이미 진행되여 조여오는 듯 하였으며 웅이와는 웅이가 말했듯이 비밀을 공유한 공모자로 되여 있었다. 그이들 모자 사이에 나는 엄연히 개입되고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먼지와 때처럼 시간을 들여 거뜬히 씻어낼 일이 아니였다.
나는 저녁 식사도 뒤로 미루고 바다가에 주어온 캐논 카메라의 사진을 컴퓨터로 옮겼다. 그리고 동영상도 있었다.
어느 해살 맑은 날이였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무릎 아래 종아리와 발이 서로를 밀어내려는 듯 서로를 끌어당기려는 듯 엇갈리여 바다물속에 잠겨 있었다. 투명한 바다물은 깊이를 알수없게 아스라니 펼쳐져 있었으며 해빛은 물 표면에서 자잘한 물고기 비늘로 반사되여 일렁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한장씩 반복 대조해 보아야만 미세한 차이를 분별해낼 수 있는 발 사진 스물세장이 카메라 앨범에 저장되여 있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놓으니 이미지들은 생생히 살아서 움직이였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어지름증이 나는 수족관의 유리벽처럼 컴퓨터 창은 몽환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남자와 녀자가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시간들과 캐논 카메라가 바다물속에 잠겨 따개비들이 들러붙고 해파리들이 감겨가고 있었을 그 시간들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와 녀자의 발은 카메라속에서, 어쩌면 바다속 깊은 곳에서 마지막 한순간까지 서로를 념려하면서도 서로에게 뛰여들지 않는 그 자세로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카메라가 바다가로 밀려온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을 주어온 웅이도 잘못한 것이고, 기어이 그것을 재생시킨 나도 잘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문득 카메라 주인을 찾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카메라에는 발 사진을 제외하고는 얼굴 사진은 없었다. 다만 일분 이십삼초의 동영상 하나가 있을 뿐이였다.
파란 물하늘이 흐르는 곳, 울긋불긋 피여난 산호초 사이로 까만 오리발이 신겨져 있는 발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의 투영으로 한껏 길어진 까만 수영복 차림의 다리가 물을 휘젓고 있었다. 일분 이십삼초 동영상의 전부의 기록이였다.
내 인터넷 SNS에 동영상과 사진을 올리는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메라가 내 손에 까지 들어온 경과를 생락하고 카메라가 발견된 좌망 바가가 위치를 밝히고 주인을 찾고 있다는 문구와 메일주소를 남겼다. 휴대폰 번호를 추가했다가 다시 삭제해버렸다. 별 볼일 없는 자들의 시끄러운 통화가 걱정되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올리고 난 뒤에야 짧은 하루의 긴 이야기가 이미 과거형으로 나에게서 멀어져 갔으며 나는 안온하게 맥주를 마시며 여유있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녀인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없을 것이다.
그 뒤로 나의 일상은 고요하게 흘러갔으며 마무리 공사는 계획보다 이틀 먼저 끝나게 되였다.
공사가 끝나고 삼일후, 나는 웅이네를 만나러 갔다. 정산과 함께 추후 발생될 공사 중의 실수건을 합의하러 웅이네 집으로 갔다.
녀인은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녀인이 부엌으로 커피 내리러 간 사이, 쏘파에 앉아있던 나는 탁자에 엎어져 있는 책에 눈길을 주었다.
그저 눈으로 들어오게 된 걸 봤을 뿐, 부러 알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
하면서 나는 책 제목을 훑었다.
<<바다>>였다. 작가는 존 밴빌, 아마도 외국소설인가 보다 하면서 손이 막 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정을 멀뚱히 올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내리고 있을 때 엎어진 <<바다>>밑에는 메모지 한장이 깔려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 놓여진 무테안경도. 메모지에 한장 가득 메모글이 적혀있는 듯 하였다. <<바다>>밖으로 로출된 부분에는 검정깨알같은 글씨가 박혀있었다. 나는 무엇에라도 홀리듯이 허리를 굽혀 그 메모를 보았다.
시간은
바다, 그 어두운 방에서 숨을 고른다
그는
철창 밖, 그 어두운 방에서 숨을 고른다
그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바다, 그 어두운 방…
책속의 구절은 아닐 것이다.
나는 허리를 펴고 눈을 지긋이 감고 메모지에 적혀있는 그 어두운 방을 생각했다. 숨을 고르면서.
녀인은 커피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녀인은 공사 시작 전 빈틈없이 계약서를 작정했듯이 추후 발생될 실수건들도 명료하게 작성해놓았었다. 인테리어 나머지 비용은 이미 계좌이체 시킨 상태였다. 녀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해주었다. 녀인과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공사건에 대해 말이 오가면서 나는 자꾸 <<바다>>에 깔려 있는 메모지에 눈길이 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녀인도 내 의중을 눈치채는 듯 하면서도 굳이 메모지를 따로 치우지 않았다.
녀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웅이네 집에서 나왔다. 곽명을 불러서 저녁에는 근사한 축하파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차가 세워진 옆골목으로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 한통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떠있었다.
오후 세시, 좌망 바가가 좌망커피숍에서 만납시다.
캐논 카메라 주인입니다.
들어가는 말, 나오는 말, 호칭도 모두 생락한 메일답지 않은 건조한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서 심장이 뛰는 박동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동안 SNS에 올렸던 게시물은 조회수는 물론 공유수도 폭증했으며 마음을 보내주고 따뜻한 댓글이 끊이지 않고 갱신되여 갔다. 가끔 오버 잘하는 네티즌이 보내오는 응원의 메일도 날아들었지만 만나자고, 그것도 주인이라며 사뭇 건방지게 날려온 메일은 처음이였다. 메일의 진가를 떠나서 고의적인 해프닝일지라도 나는 만나기로 하였다. 헛물을 켜도 별로 억울할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갑자기 백수가 된 상태가 아닌가.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세시까지는 넉넉히 세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차를 몰고 좌망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와 양고기즈란토스토를 시켜놓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도 해결하고 그동안 미루었던 독서도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멀리서 잘 보이도록 캐논 카메라를 테이블 오른쪽 모퉁이에 얹어놓았다.
그리고 앉아서 책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모범생 자세의 책읽기는 몸을 써서 하는 일에 익숙해진 나에게 자꾸 흡연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책을 읽다가 몇번을 커피숍 뒤마당의 지정된 흡연구역으로 들낙거렸다.
두시사십분이 되여서 나는 책을 가방에 넣어버리고 뒤마당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커피숍에 들어갔다.
한 녀인이 내가 앉았던 자리의 맞은편에 와서 앉아있었다. 정물화속의 사물처럼 보였다.
캐논카메라녀인.
나는 괜히 긴장해졌다. 까만 벨벳핀으로 머리를 단정히 묶어올린,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녀의 뒤모습을 살피며 녀인에게로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녀인이 머리를 돌렸다.
나는 그만, 악하고 비명을 지를뻔 하였다.
오전에 금방 만났던 웅이네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설마, 하면서 나는 어정쩡 그녀와 마주앉았다. 둘 사이에는 어색하면서 간단한 목례만 있었을 뿐이였다. 한동안 나와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탁자밑을 살폈다.
나는 곽명이 말하던 떠도는 소문을 곱씹으면서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되는 우연은 죽었다 다시 깨도 없다면서 그녀가 캐논카메라의 주인이 아니라고 강한 부정을 보냈지만 오전에 훔쳐 보았던 “바다, 그 어두운 방” 메모를 떠올리면서 가능성에 대해서 류추해보았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네요. 소문을 믿어요?
그녀가 침묵을 깼다.
나는 굳이 무슨 소문? 하면서 금시초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나의 대답하지 않음이 대답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우연을 믿고 있어요? 의심하면서 믿고 있어요?
그녀가 또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이미 체념한 질문이였다.
편견과 맞서는데는 오만뿐만이 아니겠지요?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타인의 시선에서 멀어져서 나를 잊으면서 살 수 없을가요?
그녀는 차창밖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은 오후 세시의 해빛으로 나른해진 바다의 물결로 차있었다.
2018-09-20
 
 
   
▲ 이곳에서, 명상에 잠기면 무엇이 나올까...?

 제2편  

단편소설

좌치, 입술을 깨물었을 뿐
 
 
 
모든 대화는 위험하다,
는 생각이 피끗 스쳤을 때, 사무실 공간에 흐르던 정적이 은근히 나를 감싸오고 있었다. 공간을 지배하던 전등 빛에도 다른 어떤 온도와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틀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때 아닌 11월 초에.
푸른 새벽, 으스스한 추위에 잠에서 깨여 이불을 끌어 올리려다가 옆자리를 살폈다. 이불깃을 한껏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벌레처럼 몸을 이불로 동그랗게 말고 잠에 빠져 있는 찬연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던 생각이였다. 모든 대화는 위험하다.
지난 밤 우리는 무수한 말을 했었다. 어둠 속에서,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앉아. 침묵이 끼여 들면 우리 사랑이 거짓이라도 될 것 같은 불안을 밀어내려고 화제를 옮겨오고 옮겨가면서 시간을 소비해 갔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은 도리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 넣었다.
잠 자면 안돼, 찬연은 그랬다.
잠 속의 너의 세계를 내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너도 자면 안돼, 내가 그랬다.
너의 꿈을 내가 조종할 수 없다는 게 슬픈 일이야, 찬연은 그랬다.
눈을 감은 너의 저쪽 세상에도 온통 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억울해, 내가 그랬다.
찬연의 고집스럽게 가냘픈 벗은 등에 내 맨 가슴을 밀착시키면서 나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잘 포개진 두개의 숟가락 자세로 딱 붙어 누워서는 눈 감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잠이 들면 내밀한 각자의 세계가 뻔뻔스럽게 열려 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잠들어 버렸는지 누구도 몰랐다. 하지만 눈을 뜬 아침부터 우리는 각자 해야 될 일을 해야 했기에 떠날 준비로 분주했다. 눈을 떠도 각자의 세계는 따로 있었다.
눈송이는 제법 커져 갔다. 땅에 닿으면 금방 녹아내릴 듯한 습기를 물고 있는 진눈깨비의 락하는 게으르면서 무거웠다. 창가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10층 사무실 아래, 차량의 흐름은 물론 인행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걸음도 느슨해진 듯 하였다. 눈은 지상의 온갖 흐름들을 저속으로 행진 시키며 소음들도 가만히 덮어주는 듯 하였다. 길 건너 낮은 건물들의 옥상의 환풍기, 가로수와 가로등, 간판과 얼기설기 뻗어 있는 전선줄은 눈의 정적을 저항없이 온전히 받아드리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여진 휴대폰 벨이 울렸다. 휴대폰 벨 소리는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기회의 호출, 위기의 소음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든, 기회가 위기가 되든 아무튼 휴대폰 벨 소리는 언제든지 울려야 일을 한다는, 바쁘다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휴대폰 밧데리의 소진이 몰고 오는 공포스러운(?) 불안 보다는 소음의 시끄러움을 인내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나는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여진 휴대폰을 들었다. 룡문사 (龙门寺)의 전화였다.
“아, 네. 스님.”
나는 해법스님임을 미리 알고 목청을 돋구었다.
“아하, 오래만일세. 반갑네. 조사장.”
스님은 아하 하는 감탄사도 뚜렷한 발음을 넣어서 느리고도 울림이 있게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안녕하세요? 해법스님, 찾아 뵙는다 뵙는다 하면서도 전화 한통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조사장님께서 이 늙다리 친구를 잊었나 걱정하고 있었다네. 하하. ”
스님의 장난끼가 발동되고 있었다.
“그럴리가요. 스님친구님, 하하.”
나도 스님의 말소리와 억양을 흉내내서 하. 하. 웃는 것도 사이를 두어 또렷하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거기도 눈이 내려? 풋눈인줄 알았는데 여기 산속은 새벽부터 눈이 내리더니 지금은 완전 눈 천지가 되였네.”
“눈님이 오시니 스님친구님의 전화님도 오신답니다. 축복의 전화.”
“복 많이 받게. 그런데 오리목여자랑 결혼은 했어? ”
“오리목? 아하. 스님도. 아니요. 아직…”
“어흠, 오리목 한접시의 유혹에 이 늙다리 친구를 배반했으면 얼른 결혼을 했어야지. “
“네. 곧 하게 됩니다.”
“ 축하하네… 그러나 저러나 자네, 한번 이쪽으로 다녀왔으면 하네. 부탁할 게 있네. 전화로는 어려운 일이라 한번 이쪽으로 행차하시게.”
“아, 그래요? 오늘, 지금 바로 갈까요? 산중의 설경도 구경하게요.”
“지금 바로? 눈길에 조심해야겠는데, 아무튼 여기로 올라오게.”
“네, 알겠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스님.”
스님과 나는 중국어로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떠날 준비를 하였다.
서류와 사무용품 수납장 오른쪽 맨 끝의 문을 열어 목에 머플러를 걸치고 양복 위에 검정 코드를 받쳐 입었다. 겨울 남자, 거울에는 남성 잡지의 패션모델이 선보이는 사업형 남자의 럭세리함과 품위를 골고루 갖춘 또 하나의 나가 서있었다. 너무 티가 나지 않으면서 무난한 세련됨.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다. 거울을 마주하는 일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리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정장차림에는 어색해 했던 촌놈이였다. 촌놈은 찬연이가 해주었던 말이다. 흰 샤쯔를 입으면 기필코 안에는 런닝그를 받쳐 입는 나를 보고 찬연은 촌놈이라고 놀렸다. 우리 모두가 촌놈의 자식이면서 대놓고 비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번역회사 사무실을 내면서 나는 찬연이 시키는 대로 맨 몸에 샤쯔를 입어야 했으며 넥타이로 울대뼈 밑까지 단단히 졸라매고 있어도, 런닝그가 없는 윗 몸은 자꾸 벗어버린 허망함으로 적응하는데 꽤나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남자들은 우선 옷걸이가 좋아야 된다며 찬연은 헬스클럽 회원증을 만들어 왔다. 일단은 어깨와 가슴의 근육 키우기, 쵸콜렛 복근 만들기가 급선무라고 했다.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찬연이 준비해주는 닭 가슴살을 보약처럼 먹어야 했고 운동 음료를 꼬박꼬박 챙겨 마이면서 몸짱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3개월이 지나니 근사하게 근육이 붙어가면서 체형은 균형을 찾아갔다. 따라서 자신감은 앞가슴만큼 팽팽해졌다.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찬연의 말을 빈다면 못 말리는 광적인 자기애 환자가 되였다. 그후부터 나는 흰 샤쯔도 라인을 살릴 수 있는 밀착형 샤쯔를 선호하게 되였다.
거울에서 물러선 다음,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사무실 직원 박미나양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위탁 받은 론문의 책 장정으로 인쇄소로 간 그가 돌아오려면 시간적으로 보면 30분 뒤면 될 것 같았다. 전화로 통보하면 아싸 좋아 하면서 사무실을 비워두고 시내돌이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 놓여진 캘린더에 “오늘은 잠깐 출장, 오후에 돌아올지도 모름. 조. ” 하고 메모지에 적어서 끼워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와서 차를 몰고 나는 룡문사로 향했다.
내리던 진눈깨비가 멈추면서 하늘이 개여가고 있었다. 시야가 밝아지니 차량들의 움직임은 신났다. 빵집, 문구점, 옷가게, 우체국, 백화점, 정육점, 과일점, 커피숍, 쌀집, 음식점, 네일샵, 목욕탕, 학원, 꽃집, 동물병원, 치과, 려행사… 차창 뒤쪽으로 밀려가는 거리의 풍경들,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참말로 지구의 어떤 곳이든지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여 있는 듯 하였다.
시내를 벗어나서 외곽 쪽으로 운전을 해나갔다. 고속도로를 타게 될 톨게이트 바로 앞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룡문산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열리면서 희끗한 눈발에 덮여 있는 무연하게 펼쳐진 논밭과 옥수수밭이 보였다. 군데군데는 흙빛을 드러냈다. 차가 경사진 언덕길로 올라갈수록 쌓여진 눈의 두께는 릉선을 따라 두터워져 갔으며 울퉁불퉁한 언덕길 덕분에 상하로 움뜩이는 차의 이동으로 주위의 눈밭은 새하얀 물결이 넘실대는 설해의 전경으로 안겨왔다. 내 눈은 눈빛으로 시려왔다.
아주 잠깐, 찬연을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은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날이 된다. 선글라스를 걸고 도어를 내리니 한결 정결해진 공기가 바람을 타고 폐부 깊숙이 위로가 되여 파고 들었다. 아찔한 여유로움.
해법스님과의 인연은 5년전, 대학졸업을 하고 나서 취직된 신문사 새내기 기자 시절에 시작되였다. 시청의 문화종교처에 출근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룡문사 취재와 해법스님 인터뷰가 있으면서부터 였다. 신문사라는 곳은 력동적인 작업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약간은 침체된 분위기였다. 나에게 배당된 일은 고작해야 중국글 신문에 실린 글을 발췌하거나 전문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한낱 지루한 작업 뿐이였다. 어차피 기자 직업은 나의 취향이 아니였기에 실망 따위는 없었다. 나의 꿈은 소설가로 문단으로 데뷔하여 대소설가로 성장하는 것이였다.
밤샘을 하면서 소설을 줄기차게 써내려 갔으므로 출근해서는 틈만 나면 졸았다. 그러다 보니 사내에서는 눈에 나는 건 뻔한 일이였다. 그렇게 2년을 온갖 정력을 쏟아 부으면서 장편소설 한부와 중단편소설들을 써서는 문학상공모에 보냈어도 가작상에도 걸리지 않았다. 문학잡지에 투고된 수많은 원고 중에서 간혹 가다 발표된 소설은 격월비평에도 언급되지 못하는 투명 소설이 되여 갔다. 출판사에 취직된 찬연은 벌써 책 다섯권을 편집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찬연과의 데이트도 즐거울 수 없었다.
소설쓰기, 그리고 그것과 련관된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했던 적이 도대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어를 사랑하고 문장을 두고 고민하는 것,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 등등이 작가가 해야 될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단어를, 문장을 찬연이 보다 사랑할 수 있었고 세계에 대한 관심은 찬연과의 결혼에 대한 관심보다 더 심각했으면 심각했지 그 이하는 아니였다. 그렇다면 나의 문학적 재능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의심해 오던 것을 마침내 그렇다고 인정을 하게 되니 나는 결함이 있고 아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여 갔으며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불완정성, 무가치함을 점점 느꼈다. 문학을 빼면 내 삶은 색채가 없다는 아득한 절망 속으로 추락되면서 자신을 비루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과도한 반응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사람들이 두려워 지기 시작하였다.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입술을 한번 단단히 깨물었다. 신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찬연은 물론,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라져버렸다. 룡문사 해법스님을 찾아갔었다. 받아주십시오 하고. 스님은 그 어떤 권유도 명령도 그렇다고 동조도 없이 조용히 스님의 방 뒤쪽의 쪽방을 내여 줌이 전부였다. 내가 해야 될 일도 딱히 없었고 스님은 아예 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정도로 취급하였다. 어데 가나 나는 투명 인간이였다. 산 아래 동네의 리발소에 가서 삭발을 하고 절에 있는 스님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흉내를 내였다. 불경을 독송하는 시간에도 몸은 절에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말그대로 좌치 (坐驰). 그것도 지겨우면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비몽사몽의 흐릿함 속에서 수음을 하고 나서 허탈해 지면 산속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룡문사에 있는 동안 해법스님의 <<산중락서>> 노트를 훔쳐보는 것은 나의 유일한 위안이였다
차는 산길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고 있었다.
눈에 덮였던 산길은 룡문사를 다녀오고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눈길이 나져 있었다. 룡문사 대웅전의 지붕 끝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룡문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룡문사 입구와 이십여메터 떨어진 빈터에 주차를 시키는데 찬연의 전화가 왔다.
“지금 뭐 해? ”
“룡문사야”
“어디냐고 묻지 않았거든.”
“니 전화 지금 받고 있어. 지금. 그럼 됐냐? ”
“오, 룡문사에 갔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쪽에 입문을 한다는 뜻은 아니겠고.”
“그럴지도 몰라. 입문. 해법스님께서 호출 하셨어. 축복을 내려 주신 대. 눈의 축복.”
“아, 거긴 산속이라 눈이 제법 왔겠다.”
“지금 올래?”
“미쳤어?”
“언제는 정신 있었어?”
“정신은 모르겠고 령혼은 남아있어.”
“내 몸은 너의 령혼을 기억하고 있어.”
“내 령혼은 너의 몸을 기억하고 있어. 됐고, 오리목 사 들고 절에 다시 찾아가게 하는 일만 빼면 미쳐가는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아.”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점심밥 잘 챙겨 먹고, 저녁에 보자.”
“그래.”
나와 찬연의 통화는 대개 이랬다.
오리목으로 벌써 두사람이 나의 심기를 유쾌하게 건드리며 유머로 소비하고 있으니 오리목 사건의 자초지종을 밝혀야겠다.
룡문사에 박혀 있었던 58일 째 되던 날, 찬연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내가 룡문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룡문사까지 나를 찾아왔었다. 58일간 빨지도 않은, 더럽고 땀내 나는 승복을 청승맞게 입고 빡빡 밀었던 머리가 자라 올라 감방 죄수의 머리 모양새를 닮아 가고 있었을 무렵이였다. 찬연이 찾아 왔던 날, 삼복 더위가 한창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쪽방의 문을 닫아버리고 안에 박혀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해빛에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손으로 눈썹 위를 가리며 온돌에서 일어나 보니 문 밖에는 찬연이 단단히 작정하고 서있었다. 빛을 등진 찬연의 얼굴이였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련민으로 촉촉해지던 찬연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이내 분노가 눈썹 사이로 몰려들면서 눈물을 거두어 가는 것을. 애써 가부좌의 몸 자세를 보여주려고 내가 다리를 꼬아 모이려는 순간, 찬연은 내 손목을 무작정 잡아채서는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찬연에게 끌려가는 꼴이 되였다. 찬연의 분노는 내 손목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대웅전 뒤 울안의 숲 속으로 끌고 가서 풀밭에 나를 떠밀어서 앉혔다. 그리고는 내 앞에 통닭구이 한마리와 오리목 간식을 꺼내놓았다. “꼴이 뭐야? 먹어!” 찬연은 악을 쓰듯 소리쳤다. 나는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어 집어 들고 입에 욱여 넣었다. 날개, 목, 가슴팍… 닭 한마리가 순식간에 소멸되였고 오리목을 뜯기 시작하였다. 오리목을 반쯤 가량 먹고 나니 배가 불러왔으며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앞에 버티고 서있는 찬연을 의식할 수 있었다. 찬연의 얼굴은 무성한 나무 잎이 드리운 그늘과 그 사이를 통과하는 해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찬연을 바보가 되여 올려 보다가 내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오리목을 입에 물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찬연은 꼼작 않고 제 자리에 서있었다. 나의 흐느낌은 온통 슬픔이였으며 그 슬픔은 이내 숲 속의 정적을 깨뜨리는 커다란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몰려왔으며 해법스님도 모습을 드러냈다. 내 주위에 마구 흩어져 널려 있는 닭뼈들, 일회용 접시에 반나마 남아 있는 오리목, 내 입 속에서 밀려나와 기름으로 번질대는 내 손에 들려진 먹다 만 오리목, 고기 냄새를 맡고 몰려온 개미무리들, 닭발 뼈에 붙어 기여가는 지네 몇마리. 달려 온 스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리를 숙이고 나무아미타블을 중얼거렸다. 해법스님은 뒤짐을 하고 자리를 피해 가면서 허공에 대고 지나가는 소리인 듯 탄식처럼 뱉어냈다.
“따라 가게.”
이렇게 나는 찬연을 따라서 산에서 내려왔다. 혼자 두면 어떤 더 큰 불상사라도 생긴다면서 찬연은 나를 자기의 세집에 눌러 앉혔다. 뭐 할 것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사항들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집에 있으면서 나는 틈틈이 찬연의 인맥으로 받아오는 번역고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찬연의 제안에 번역회사 사무실을 내게 되였다.
번역회사, 말이 좋아 번역회사이지 주요 업무는 대필 업무였다. 작게는 취직의 리력서와 함께 따르게 될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기도 하고 그럭저럭 돈이 되는 것은 론문을 대신 작성해주는 업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과류 론문을 위주로 취급, 직장인들의 방송통신대학 졸업론문과 등급시험의 론문이 대부분이였다. 이런 식의 론문은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반복해서 하다 보면 별 게 아니였다. 때로는 대학교수들의 론문을 대신 써 주기로 한 대학생 제자들이 위탁해 오는 론문이 섞여 있었다. 교수님들은 연구과제의 테마를 조각을 내서 숙제를 내주듯이 여러 제자들에게 분산적으로 맡기고 다시 거두어 들인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다시 분석과 종합을 거쳐 슬기롭게 붙여서 완정된 론문으로 마무리하는 시스템이다. 위탁해 오는 론문들을 분류해 보다 보면 무질서 중의 이런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총체적인 구상을 안고 입술 한번 슬쩍 깨물어 보고는 교수님이 직접 되는 보는 것이다. 위탁자가 보내오는 자료(유관된 자료를 찾아 볼수 있는 도서관까지 은밀히 알려주기도 한다)에 근거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서는 그럴 듯 하게 꾸며주면 끝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문학적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본질에 천착하면 랭소주의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모든 일에 심플해 지기로 하였다. 한번, 두번 하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과제의 론문이라도 대처하는 노하우가 별도로 있기 마련이다. 업무들은 처음에 대부분 인테넷으로 련락이 닿았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직접 방문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특대필이라면 성공인사의 자서전 대필과 특정 직업인의 대필 에세이집이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공한 기업가 자서전 대필 3건, 그리고 에세이집 한권을 번역 출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수입은 괜찮았다.
나는 룡문사로 들어갔다.
룡문사의 마당은 눈이 깨끗이 쓸려갔으며 평화롭고 고즈넉하였다. 큼직한 향로에서 타 오르는 향불의 연기를 따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눈이 쌓인 룡문산을 배경으로 대웅전은 순백의 고결한 상징으로 우뚝 치솟아 있었다. 나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대웅전 바로 앞의 향로에 향불을 켜서 꽂고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올렸다.
대웅전에서 나와 다시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데 해법스님은 외출하셨댔는지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스님과 눈이 마주치면서 나는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스님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스님의 방은 아늑하였다. 비닐로 방풍 된 자그마한 창으로 비쳐 드는 해빛 줄기는 온돌에 밝고 선명한 빗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온돌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스님이 회색 승모를 벗었다. 스님이 앉아 계시는 우듬지 쪽은 스님의 머리 광택으로 한결 밝아지는 듯 하였으며 사람 좋게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내보이는 흰 이는 방안 전체를 환해지게 하는 듯 하였다.
“눈길에 오느라 수고 많았네.”
스님이 말했다. 미소를 거두어 간 스님의 얼굴은 주름살이 사라졌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남아있었다.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찾아 뵙지 못해서요.”
나는 고개를 숙여 사죄 들였다.
“아니, 내가 되려 미안해지려 하네. 눈길에 오라 가라 하는 이 주책을 널리 양해해주게. 딱히 뭐 그리 급한 일도 아니긴 한데…”
스님은 눈웃음을 거두면서 잠시 뜸을 드렸다.
무릎에 얹었던 두손을 모으면서 지긋이 깎지를 끼였다. 잠깐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스님의 행동을 살피면서 나는 대뜸 스님이 어떤 피치 못할 사태에 직면했으며 또한 나에게 어떤 난처한 부탁을 해올 게 분명함을 알고 있었다. 늘 여유롭고 대범한 스님에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거동.
나는 일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사무실에 앉아 꺼벅꺼벅 졸고 있던 나는 문득 룡문사에 기거하고 있었을 때 훔쳐보았던 해법스님의 <<산중락서>>를 떠올렸다. 에세이집으로 출판이 되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룡문사로 가서 스님의 노트를 훔쳐왔었다. 스님을 설득할 가능성 또한 거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먼저 재독을 하고 검토하기로 하였다. 정작 출판을 기획하고 다시 살펴보니 락서가 락서인 만큼 입말이 많았으며 한권의 에세이집으로는 분량이 너무 적었다. 고민 끝에 나는 1개월의 시간을 들여 <<산중락서>>에 가필하게 되였다. 스님의 정서를 살리면서 한권의 에세이집 분량의 글로 완벽하게 재탄생 시켰다. 그리고 나서 타자본을 들고 스님을 찾아갔었다. 타자본을 훑어보던 스님은 대뜸 자신이 썼던 <<산중락서>>임을 알아보고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슬며시 <<산중락서>> 정본을 스님의 가부좌 튼 무릎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우선 나의 무례함을 빌었다. 스님의 반응을 여탐하면서 조심스럽게 출판 의향도 밝혔다. 스님은 묵묵부답이였다. 즉각적인 스님의 호통이 떨어질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스님의 무심함에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스님의 존함으로 에세이집이 출간되면 룡문사의 위상은 물론 지역홍보에도 도움이 된다며 사뭇 공적인 일이라는데 그루를 박아 말씀드렸다. 그때 바로 스님의 무릎 위에 얹어져 있던 두손이 바로 오늘처럼 지긋이 깍지를 끼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스님은 밖으로 나갔다. 대답 없음이 바로 동의된 걸로 자기 판단을 내렸다. 나는 찬연이 다니는 출판사 문학 담당 팀장님을 만나 출판하기로 합의하게 되였다. 원고료는 물론 인세까지 합의를 보았다. <<산중락서>>는 출간되여 1개월만에 초판 1쇄가 매진 되였으며 지금까지 16쇄의 기록을 올리고 있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부응하여 각종 매스컴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스님은 인터뷰를 완곡히 사절하였다. 스님은 처음 내가 출판 의향을 밝혔을 때 이 정도까지의 국면을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며 아니면, 나의 재능과 판단을 아예 무시하고 출판도 못할 거라는 추측으로 그냥 무심하게 넘겼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스님의 겸손은 <<산중락서>>를 한층 매력적인 책으로 신비화 시키면서 더욱 큰 화제가 되여 갔다. 그리고 나는 <<산중락서>>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서 출판, 한국에서도 역시 화제의 책으로 되였다. 따라서 역자인 나도 원고료와 인세를 톡톡히 받고 있다.
손의 깍지를 풀면서 해법스님은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명년 봄 룡문사 확장 공사를 하게 되네. 규모가 지금의 3배 정도가 될걸세.”
“잘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섣불리 축하한다는 말을 여쭈어서는 안되였다.
“그렇긴 하겠다 만.”
스님은 창 밖으로 눈길을 던지면서 말 끝을 흐렸다.
나는 대뜸 확장 공사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회적 선금을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지원금 요청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엉덩이를 뭉기적대면서 뒤로 조금 물러나 앉았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어느 기업인의 경제 지원으로 이루어 지게 되였네. 고향이 여기인데 일찍 미국으로 가서 파란만장의 인생고를 겪으면서 끝내는 성공한 기업가로 될 수 있었다네. 그분의 어머니는 우리 룡문사의 신실한 보살님이셨네. 그분의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딸에게 거듭 이런 말을 했다네. 룡문사가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 대신에 룡문사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네.”
스님은 조용히 말하였다.
나는 서서히 어떤 일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의 사업가에 대한 인터뷰를 부탁할 수 있다는. 인터뷰는 별로 문제 될게 없었다. 한때 동료로 있었던 기자들에게 부탁하면 되였다. 스님이 직접 자기 의도를 밝힐 것 같지 않았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나서 주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스님, 그분을 신문 인터뷰로 모실까요?”
나는 스님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물었다.
“미리 뭐 그렇게 떠들어 댈 일은 아닐세. 공사가 끝나고 나서 해도 늦지는 않겠지.”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나는 도리어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였다.
“자네가 하는 일인데, 물론 내가 자네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네.”
“그랬지요. 스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산중락서>가 일을 냈네. 일을.”
스님이 무가내하게 뱉어내는 듯 하였다.
나는 꽂혀 오는 스님의 시선을 피했다.
<<산중락서>> 에세이집의 원고료는 해법스님이 극구 사절을 해서 내가 받아 챙겼으며 인세는 해법사 계좌로 지금도 입금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님도 다른 말씀이 없었다.
“<산중락서>를 읽은 그분은 내가 문학계 또는 출판업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믿고 있는 눈치라네. 그러니까 나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줄 작가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네. 중요한 건 그분이 자네와 같은 민족이라네. 내가 추천하는 사람은 무조건 믿겠다고 그러네.”
스님은 어렵지만 분명하게 말하였다.
내 마음속으로 아, 하는 어떤 바람이 쓸고 지났다. 막대한 확장공사 전액 비용을 후원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분이라면 대필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무작정 달려들어서 빼앗고 싶은 감정이 솟구쳤다. 그러나 스님 앞에서 그런 속물근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실례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기로 하였다. 그러나 너무 시간을 끌어서는 안되였다. 필경 스님은 유력자로 나를 점 찍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음을 은연중 내 비치였다. 그러니 내가 자진해서 나서야 했다.
“스님, 제가 그 일 맡아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빨라지는 호흡을 조절하며 입술을 깨물고는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은 창 밖으로 고정했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돌아앉으셨다. 그리고 장롱 서랍을 열어서 메모지 한장을 나에게 건넸다. 스님은 굳이 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나는 메모지를 받아서 코드 안쪽 호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때 마침, 종소리가 덩덩 울려왔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나는 해법스님을 따라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대나무로 된 큼직한 통들에는 고사리무침, 더덕구이, 차를 마시고 남은 잎을 꼭 짜서 만든 록차잎무침, 오이장아찌와 두부국이 담겨져 있었다. 스님께서 먼저 식사하시고 나는 보살님들과 함께 식사하였다. 대부분 낯익은 보살님들이였다. 절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조용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비운 그릇을 헹구어 씻어내고 해법스님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룡문사를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다.
시내로 돌아와서 나는 사무실 옆 건물의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흥분된 내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업 관련의 대인관계에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커피 한잔이 거의 다 비여져 가서야 나는 미국의 사업가 김녀사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해법스님이 그 사이에 미리 김녀사에게 귀띰을 해놓은 상태였다. 김녀사는 가능하면 빨리 만났으면 하였다. 한시간 후면 어떠냐고 내가 제안을 했을 때, 김녀사는 그럼 본인이 투숙한 드래곤 호텔로 와주면 고맙겠다고 하였다.
한시간 후의 드래곤 호텔 커피숍, 나는 김녀사와 탁자를 사이 두고 앉게 되였다.
“<산중락서>의 역자로 해법스님에게서 소개받았습니다. 조선생.”
김녀사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서 커피숍으로 이동할 때까지 고개 짓으로 인사를 했을 뿐 입을 열지 않더니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50대 중반의 세련된 녀인이였다.
“네, 그렇습니다. 자그마한 번역회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약간 떨구면서 말했다.
“<산중락서> 중국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을 다 읽었어요. 신기하더라구요. 저자와 역자가 한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정서를 온전히 받아들여 역자가 바로 저자인 듯 했네요. 내공이 보이더군요.”
공적인 장소에서 사뭇 진중하게 말하듯이 김녀사가 말했다.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써 태연해 지려 했지만 나는 김녀사의 통찰력에 괜히 놀라서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솔직히 말씀 드려야겠네요. 자서전 대필로 만났던 작가님이 이미 두분 있어요. 조선생은 세번째 분이시구요. 문학에 관심 있다면 먼저 만났던 작가님들은 이름을 대면 바로 아실 수 있는 나름대로 유명하신 분들이였어요. “
김녀사는 능수능란한 사업가임에 틀림없었다. 미리 경쟁자 후보를 거론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김녀사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재밋더라구요. 작가님들의 그 쓸데없는 자존심과 억지스러운 허세. 각자의 목적과 거래가 분명한 자리에서 그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지요.”
김녀사는 손으로 커피잔을 쥐면서 말했다. 김녀사의 손은 아주 작았다. 김녀사의 말 속에서 그 어떤 비난도 그렇다고 그 어떤 거만함은 느낄 수 없었다. .
“작가님들의 입장을 대충은 알 것 같지만, 그걸 허세라고 하시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봅니다. 굳이 허세라고 한다면 김사장님의 자서전 대필 자체가 허세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허세를 허세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임이 거래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김녀사에게 휘둘려서는 안되는 생각으로 먼저 도전장을 던져 보기로 하였다..
“의외로 솔직하시군요. 조선생. 그러니까 서로가 포장할 필요가 없는 믿음이 최고라는 말이 되겠죠. 흥미롭군요.”
김녀사의 주름진 입가로 미소가 비껴갔다.
나는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면서 김녀사의 탁자에서 약간 들려진, 오른손 약지에 끼여진 루비 반지를 일부러 시간을 들여 뚫어지게 보았다.
“아, 이 반지요? 엄청 비싼 돈을 주고 산 건데요. 저는 이 반지가 어디 긁히지 않게 항상 손을 들고 보호한다죠.”
김녀사의 가늘게 뜬 두눈은 치켜든 반지를 향해 있었지만 내 얼굴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은 내 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김녀사는 막장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머리가 깡통으로 비여 있는 졸부의 부인처럼 부에 대한 가치관을 뻔뻔스럽게 연기하면서 일부러 나의 인내를 떠 보고 있었다.
“그렇겠지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도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친구로 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저에게 사물 친구 일번이라고 하면 대학 다닐 때 쓰던 노트북이였지요. 중고였지만. 그 노트북이 더는 작동할 수 없게 되여 전자제품회수처에 넘길 때 마음이 아릿하더라구요. 내 찌질하고 은밀하고 또한 슬픈 청춘의 기록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친구였기 때문이였습니다.”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 보기로 하였다.
“사물 친구, 새로운 표현이네요. 그래요. 이 반지를 저의 친구로 생각해주셔서 고맙네요. 속물스러운 끔직한 금전의 과시 앞에서 눈을 내리 깔던 작가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때 저는 치떨리는 모멸감에 괴로워하는 그들의 령혼을 보았다죠. ”
김녀사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김녀사의 민 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때로는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우렁이 속을 꺼내 보일 때도 있더라구요. 낯선 사람은 일단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냥 한번 흘려 듣고 말 뿐,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위험이 없다는 게 장점이 되겠죠. 부담스럽지 않다고 해서 낯선 사람을 친구로는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편한 것과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겠지요.”
나는 김녀사에게 말했다.
“고수이시군요. 역시 해법스님의 사람 보는 눈이 적확하군요. 그러니까 자서전 대필이 이루어지려면 위탁자는 자기의 이야기를 고백할 수 밖에 없고 대필자는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네요. 편한 친구는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낯선 사람 정도로 대해줄 수 있냐는 질문이기도 하구요.”
김녀사는 내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쳐 오다가 도로 가져갔다.
“자선전 대필도 저는 창작의 행위라고 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타인의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타인은 나의 함정이 아니겠지요. 역설로, 아니면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서전을 위탁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온 인생의 편린들의 총결산이 되는 셈이겠지요. 다만 려과없이, 부풀림없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열어 보여 줄 수는 있어야겠지요.”
김녀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잠자코 있던 김녀사가 말했다.
“그만큼의 필력과 사고의 깊이라면 소설가로도 충분하겠네요. 아니, 뭐 대필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구요.”
김녀사는 왜 소설가가 되지 않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였다. 나의 아픈 구석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질문은 피하면 지는 것이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이 주는 아우라가 있긴 하겠지만, 글밥을 먹고 살아가는 소설가가 몇 명이라도 될 것 같습니까? 없어요. 대충 짐작이 안되십니까? 나름대로 유명한 작가분임에도 김사장님과 자서전 대필건으로 만난다는 자체가 어렵다고 자기 고백을 해버린 것과 뭐가 다를 게 있겠습니까? ”
나의 감정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락관주의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 감정을 지배해갔다.
창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갔으며 거리의 가로등과 간판들의 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의 바쁜 걸음과 꼬리를 물고 천천히 기여 가는 차량들이 유리창에 언뜻 비쳤다.
그때, 찬연의 전화가 왔다.
나는 김녀사에게 잠간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량해를 구하고는 커피숍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 찬연의 전화를 받았다.
“일찍 연락한다는 게 깜빡했네. 저녁에 고중동창모임이 있어.”
“어, 알았어. 어차피 나도 바빠.”
“룡문사에는 잘 다녀 왔어?”
“그래, 스님이 나에게 큰 놈 하나 선물했어.”
“뭔데?”
“자서전 대필.”
“그래? 일단은 축하하고. 그런데 남자야 여자야?”
“이쁜 아가씨.”
“막 시들어가는 화류계의 파란만장의 아가씨?”
“잘도 아네. 나 지금 바빠.”
“알았어. 그런 스타일의 아가씨들과는 령혼 보다 몸을 잘 챙겨야 돼. 알았어?”
“네.”
나는 찬연과 통화를 끝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여친에게서 전화 왔나 봐요. 어떤 아가씨인지 행복하겠어요.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적인 몸짱의 남친을 포획해서요.”
김녀사는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면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거래는 이쯤이면 거의 성공된 셈이였다.
호텔 2층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면서 김녀사는 스치듯이 내 손을 잡았다 놓았다. 식사에는 술도 곁들였다. 시간은 사람을 쉽게 변하게 하지 않지만 공간은 사람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느닷없이 타인으로 변하게 한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도 공간을 바꾼 다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구면이 되면서 서로에게 가까워 지는 경우도 있다.
식사를 하면서 김녀사는 대필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총30만자 분량으로 상,하권의 책이 되여야 하며 원고료는 30만원이라고 하였다. 출판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중국어판과 영어판까지 고려한다고 하였다. 나는 목 울대뼈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나는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술잔을 잡고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미국으로 초청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겼었던 일들은 거의 미국이 무대가 되기 때문에 미국 생활체험을 어느 정도는 해야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술이 들어가면서 나는 흐트러져 갔고 김녀사도 수다스러워 졌다. 김녀사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겪었던, 흔한 영화 속의 이야기 같은 옛일을 말하면서 슬픔으로 울먹이였다. 이미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나는 김녀사의 슬픔에 쉽게 공감하게 되였다. 나는 취기로 흐릿해진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녀사는 어느 순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해지다가도 어느 순간은 또한 깊은 비애에 빠지면서 감정선의 굴곡은 깊었다. 마침내 김녀사의 볼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나는 김녀사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주었다. 김녀사는 잠깐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외로움, 김녀사의 짙은 외로움이 내 몸으로 전해왔다.
레스토랑을 나섰다. 나와 김녀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녀사는 휘청대는 몸을 가누려고 가까스로 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녀사는 몸을 휘청이며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허리를 굽혔다. 닫혀 가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김녀사의 손이 불쑥 나오더니 내 손목을 잡아채서 안쪽으로 당겼다. 나는 문짝에 부딪치며 허망 끌려들어 갔다. 그녀의 앞가슴은 나를 문 정면 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숙인 머리 너머로 나는 바뀌여가는 현시판의 수자가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가만히 안았다.
나는 파르르 떨려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을 뿐이였다.

2018.11.19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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