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박장길 시인은 시가 흐르는 숨결과 영혼을 찾아 부드럽게 터지할줄 아는 듯 싶다.

                                                                                                             <편집자>

 

▲ 박장길 시인, 노신문화원 연수시절, 강소성 삼청산에서.

 

 
1.

낡은 구두

 

 

내가 신고 다닌 세월만큼 

가버린 나의 생명을 묶어서 

낡은 구두는 간직하고 있다 

 

내가 신고 다닌 세월을 

버리지 않고 꽁꽁 챙겨서 

신장구석에 보관하고 있다 

 

바위에 바다에 찍은 발자국 

모두 모아 한자국으로 서서 

차렷하고 뒤축을 보이고 있다 

 

지금 나 대신 허무가 신고 

사바세계 바람을 등에 업고 

내리 잠자는 과거를 꺼내 버린다

 

또 천만리 나를 싣고  

수고로운 새 신이 올라가  

휴식할 자리를 비워준다

 

2017 ,2,5

 

 

 2. 

  

 

흙속에서 나왔기에 

흙냄새가  나서 좋다 그보다 

죽은 사람과 살다가 와서 

반가운 풀이다 

아버지 명복하고 계시겠지 

 

봄이면 아버지의 심부름 오는 풀 

가을이면 나의 심부름 가는 풀 

지금 이 시각도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으리

   

내가 잡고 

사바세계를 건너가는 푸른 끈이 

이승 저승 륜회하며 

폭풍에도 끊어지지 않는 푸른 끈이 

 

푸른 피줄로 뻗어 들어 와서 

땅의 기운이 도는 온 몸을 

살이 돋는 땅에 엎드려 등으로 본다 

겨울을 지나며 허기져 목이 긴 새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의 눈빛! 

 

슬픔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세상을 감아버린 아버지에게 

전해다오 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인다 

 

있음이고 없음이며 또한 

그것을 넘어서 있는 아버지의 죽음은 비싸다 

목구멍을 울리며 우는 비둘기가 

내 안에 날아들어와 앉아있다

  

  2018 , 2, 24

 

 

3. 

  

 

꽃은 필 자리에 핀다더라 

근심을 잊게 하는 꽃이여 

 

꽃은 늙어도 뿌리는 늙지 않는다더라 

피면 찬란한 꽃의 격정이여 

 

천년울음을 마시고 

붉은 단심의 자색단심의 꽃들이 

종종걸음으로 피고 있다 

 

꽃속엔 신의 속눈섭이 보인다더라 

작은 꽃이라도 찾아보리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꽃은 삶을 계획하지 않는다더라 

꽃이 되기 위하여 꽃이 지는 꽃이여

  

해볕 다녀가는 소리 

개미굴 흙거품이 인 내 가슴에 

누가 봄을 전해주고 있다 

 

  2016,8,30

 

 

 4. 

솔그늘(2)

  

 

소나무따라 하늘 향해 

가슴열고 팔을 뻗는다 

하늘에서 룡이 팔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와 

온 몸을 휘감아서 

나는 소나무가 되였다 

그늘 한채를 펴들고 

둥근 해님을 받는다 

 

   2018, 2, 24

 

  

 5. 

흰 장화 신은 가로수 

 

 

 가로수들  푸른 치마 펴들고 

횐 장화 신은 처녀들처럼 

외다리로 춤을 춘다 

 

바람의 지휘에 휘늘어지는 

싱그러운 대지의 무용수들 

만져보면 땀에 젖어있다 

 

눈부신 솟구침이여 

푸른 황금이여 

서정의 혼이여 

 

가슴은 만발하며 로천무대로 열리고 

바람현의 연주속에 

횐 장화 외다리 무용수들은 간다 

 

푸른빛에서 

더욱 푸른빛으로 

백년 넘어 간다 

 

 2017, 11, 28 

 

 

 6. 

피아노 

 

 

검은 짐승 한마리 큰 몸집 웅크리고 

이발을 빛내면서 노래부른다 

노래소리 집을 메고 나가 

여기저기 자리잡고 

무게를 누르며 꿈틀거린다 

하얀 이발 까만 이발 바꿔가며 

계속 노래 부른다 

퍼져오르는 노래를 타고 

검은 옷 천사들 줄쳐 날아오른다

하늘을 부채질하는 

날개속에서 까나 온 새끼들 

날아갔다 날아왔다 포물선 그린다 

태양의 얼굴에 황금화살를 꽂는다 

벽을 뚫고 들어간다 

나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한갈래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2014,7,16 

 

 

 7.

 허공의 꽃 

 

 

행선지가 저승행인 전차가 

종횡무진 달리는것을 가까이 보면서  

 

육신에게 바친 수고로움이 

한갓 허공의 꽃으로 무상하고 무상타 

 

언젠가 세상에 없을 우리에게 

죽음의 전차는 제시간에 와 서버리고 

 

온갖 욕심을 담고 있던 육체는 

무정하게 자연으로 가버린다 

 

생과 사 낮과 밤처럼 마주하는 

이 세상 공허를 느낄 가슴을 허락하면

  

혼자 누울 때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그 서늘함이 서늘하지 않다

 

  2017 ,1, 17

 

 

8. 

나는 달이 되고 달은 내가 된다 

 

어둠이 색바래가는 새벽 

잠을 개여 높이 베고 

달을 마주보고 있다

  

창문 넘어 고요히 들여다보는 

하늘의 저 흰 눈동자 

 

손바닥으로 달을 막아 나를 숨긴다 

나의 손바닥으로 달도 숨었다 

 

배구로 두터워진 손바닥으로 

뻥 ㅡ 달을 쳐서 깨뜨리니 

몸에 쏟아지는 달부스러기들

 

문득 달이 깨진 하늘 한가운데 

내가 고요히 누워있다 

 

밤도 낮을 낳으며 희여진다 

밤은 낮의 어머니 

 

몸에 마음을 입고 

나는 달이 되고 달은 내가 된다 

 

달이 되여 나를 들여다보니 

혼자서도 여럿이 놀고 있다

  

  2018, 9, 9

 

▲ 눈 내리는 백두산에서 남긴 사십대...  

 

  

9. 

해아래 달아래

  

 

그림자는 산아래에 눕고 

나는 백합속에 들어가 앉는다 

빛뿌리는 언어들이 

내 안에 모여들 때까지 기다리겠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생각을 쉬게 하리라 

생각을 놓아버리리라 

 

강은 름름하게 넘실거리고 

저기 산은 거기 그대로 가만히 있다 

어떤 구실로도 

이 평화를 양보하지 싶지 않다 

 

내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더욱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 이 모든 것들 

 

어깨에 불고 가는 

한줌 바람이 무겁다 

불행도 한 조각의 행복인 것을!

 

 머문듯이 가는 세월옆에 앉아 

큰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내 인생의 구경군이 되겠다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 ㅡ 

보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것을 

이제는 알았으니 

 

저승에 목숨을 주어버리기전엔 

푸른 창공에 기대고 있는 

산이 설하는 법에 귀를 주며 

 

하늘의 낮 눈인 해아래 

하늘의 밤 눈인 달아래 

좌선을 풀지 않으리 

백년천년 모자라다고 절규한 릴케여! 

 

 2018, 6, 20 ㅡ9, 26 

 

 

10. 

순례객 

ㅡ 불탄절에 

 

 

이 세상에 더 볼것이 없다고 

완전히 눈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부처님 주변에 노란 꽃들이 

송이송이 봄이 모여있다 

 

부처님의 향기에 푹 젖으며 

활짝 깨닫게 해주소서! 

관솔이 밴 소나무 옆에 서서 

손바닥에 소원을 딱 붙혀 합장하고 

 

지성으로 비는 나에게ㅡ 

간절한 마음이 곧 부처니라. 

풍경 같은 새가 하늘 깊숙이 

울음 묻어두고 날개 터는 소리 

 

하얗게 눈에 들어오는 

저 녀인은 누구인가 

나를 언제부터 기다린 것일가 

 

부처를 이루려고 

끝내 파계를 하지 않고 

수많은 세월을 수행하며 

설법을 듣고 있는 석상

 

 천년이 하루같이 

세월의 시작을 알리는 목탁소리 

납자들의 고요의 깊이 

부처님 가르친 길이 보인다 

 

온갖 것에 두루하고 있는 

법문에 평화를 얻어갖고 

넉넉한 승복에 나를 감싸안고 온 

스님의 빛깔을 묻히고 있다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은 

살아있는 산신령은 

내 가슴속에서도 가고 

내 가슴바깎에서도 가고 있다

 

  2018, 4, 18

  

 

 11. 

화가에게 

 

 

한폭의 명화를 그려서 

당신은 그 속으로 들어가 앉아 

영원한 집으로 쓰고 

지금껏 나오지 않는다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그림을 보면 

우리 안의 화가가 깨여나 

당신의 그림은 

우리 안의 화가에게서 

재창조 되면서 계속 

되여지는 과정속에 있다

 

  2018, 4, 24 ㅡ9, 26

 

 

12. 

뿌리,  대지를 움켜쥔 손 (1)

 

  

거치른 손이 

깊이 땅을 움켜쥐고 있다 

 

손을 놓으면 목숨을 버리는 것 

온 몸으로 힘주어 

움켜쥔 대지 

 

힘을 쓰며 

근육으로 튼튼한 몸에는 

계절이 업혀 살아간다 

 

머리채를 잡은 

비바람 눈보라 

또 이기고 가슴을 펼 때 

 

땅을 거머쥔 그 푸른 힘 

전신에 휘도는 싱싱함의 무게!

  

 

힘살 오른 뿌리의 손이 

내 가슴 뻗어와 움켜쥔다 

갈지자로 걷고 있는  

나를 잡아주는 아버지의 손! 

 

나 언제 드디여 나무 될가? 

 

2016 ,9, 25

 

 

 

 13. 

나무아래 의자 

 

 

버드나무아래 

의자들이 가지런히 앉아있다 

바쁜 세월 쉬며 가라고 

자기를 비워놓고 있다 

 

바쁜 사람 앉을 시간 없고 

앉아있을 시간 있는 사람은 

앉아있을 시간 많지 않다

  

저승 가는 대합실 

또 새 손님들이 

천천히 가려고 천천히 오고 있다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앉아 

이 세상 소풍을 한 이들을 

 

한명 한명 세면서 

나뭇잎만 피고 지며 

명복을 빌어주는 저승 가는 간이역 

 

 2017, 2, 17

 

 

  14. 

가대기 

 

 

력사의 유골이 살아있다 

날기 위해 퍼덕이는 

새의 모양으로 서있다 

 

남자이던 시절이 그리워 

세월의 어깨에 기대고 서서 

날개을 푸덕이고 싶은 

저 령혼의 마른 그림자 

 

천년의 잠을 끌어안고 돌아누워 

천년의 처녀를 바친 

첫남자를 잊지 못하는 대지도 

 

흰이불을 개여 하늘에 얹고 

부채살 펼친 깊은 속살의 바줄로 

첫사랑에 묶어둔 마음

 

백년 또 백년 풀지 않는다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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