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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42]심종숙의 '구원의 빨강 플라스틱 꽃' 외2편심종숙 시 '회색빛 고독이 밀려와' 외2수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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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1  15: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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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가벼운 언어로 수식없이 수수하게, 그러나 속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스토리를 엮어가면서 생각의 실마리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것이 아마 심종숙 수필의 묘미인 것 같다. <편집자 주>
 
   

▲ 심종숙(沈終淑)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샘터문학 주간, 샘터문예창작문예아카데미 시창작 지도교수.

1968년 경북 청송 출생. 2012년 <동방문학> 문학 시부문 등단 /2013년 <동방문학> 평론 부문 등단./ 2005년 한국외국어대대학원 비교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미야자와 겐지와 한용운의 시 비교연구-주체의 분열과 소멸, 복권을 중심으로> /2016년 <니르바나와 케노시스에 이르는 길> 출판 /2013년 <바람의 마타사부로/은하철도의 밤> 번역 출간/ 1998년 <바람의 교향악> 번역 출간 /2007년 <만해학연구>에 『미야자와 겐지와 한용운문학의 個』와 全體』-타고르사상의 수 용과 근대 주체의 종말 게재.


                           

 제1편 

구원의 빨강 플라스틱 꽃                  

                                        


  가을학기를 종강하고 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수업 중에도 내리던 눈이 마치고 나왔을 때는 학교에서 내려오는 계단에 쌓인 눈 때문에 발밑을 조심해야 될 정도였다. 발끝만 보면서 얼굴쪽으로 돌진해오는 눈을 우산으로 막으며 옆 초등학교 부근까지 걸어왔을 때였다. 눈 오는 날의 고요함 속에서 쌓인 눈 위에 앉아서 얇은 플라스틱 꽃을 만들어 쉼 없이 꽂는 손이 있었다. 발그레한 손이 눈의 흰 빛 위에서 꽂아둔 빨강꽃 보다 눈에 띄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하는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꽃 한송이를 집어 들었다. 아이의 청아한 목소리가 고요함을 부드럽게 깨고 있는 중에도 아줌마는 그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부지런히 꽃을 만들어 꽂아댔다. 행색이 남루하고 머리도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오십대가 넘어 단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아주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도 보였다. 아니면 쌓인 눈을 깔고 앉아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까지 꽃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그녀의 사정이 있는 건지 어느 쪽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자 아이의 청아하며 생기 넘치고 아무런 경계를 두지 않는 인사말이 심산한 내 마음 속을 깊이 들어와 아름다운 감동으로 균열을 내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생기 있게 현실의 무겁고 차갑고 메마른 정서를 묻어버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였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 속에 팔아야 얼마 안 되는 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이상하려니와 그 행색과 눈빛만 보아도 알고도 남았지만 여자 아이의 인사를 받을 때 온통 미소로 가득 찬 그녀의 얼어서 붉으레한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이 도시에서 본적이 없는 붉으레한 빛의 그 얼굴은 창백하든지 인공적인 화장으로 꾸며진 얼굴과는 달리 온정을 느끼게 하면서 밝고 생기가 넘치는 건강한 얼굴이었다.   
 
어린 소녀가 그런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답게 인사하면서 한 송이의 꽃을 사는 그 모습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주는 것이 곧 나에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너무 많이 따지고 살았다. 유유상종, 관계가 피곤하면 피하든지 끊기......,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빌려 들어갈 때까지 문전박대를 받았다. 예수님의 강생은 없는 것 마저도 있는 하늘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다. 많은 거절과 무시와 모욕과 박대와 인간 동료의 존엄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웃을 구원하러 예수님은 오셨다. 많은 거절과 무시와 차별과 박대와 인간 동료의 존엄한 가치를 외면하면서 자신만의 구원을 빌어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우상에 빠져 완고하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자비롭게도 그런 우리를 구원해주시겠다고 한다.
 
 
 
제2편 
성체와 아버지의 심장
 
 
                       
  나의 아버지는 작년 8월 21일에 돌아가셨다. 향년 84세의 일기였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고 아무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순간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더구나 나는 수년 전 아버지가 두 차례의 수술을 받으셨을 때 옆에서 병간호를 하였고 그 후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검진이 필요하였지만 내가 외국에 나가 있거나 남편과 이혼한 이후 자신을 추스르는 것도 힘들어서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 검진을 해주었으면 바라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돌아가셔서 나로서는 말할 수 없이 자신에 대해서도, 내가 힘들 때 나 대신 병원에 검진 가주지 않는 형제들에 대해서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늘 큰 그늘이었으므로 그런 그늘이 나에게 부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현실에서 아버지가 지어놓으신 농사를 거둬들이기 위해 시골집에 몇 차례 내려갈 때 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면서 먼 길 온 딸과 외손자를 반겨주시던 그 분이 안 계시는 친정집이 나에게 너무 낯설고 힘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갔을 때 유난히 나와 아들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정을 표현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아버지가 당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느 날엔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수술을 하고 회복되어 퇴원하셨을 때 친정집에 모셔다 드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나에게 아들 하고 둘이 살게 된 나를 고생하겠다면서 눈물을 철철 흘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처음 보아서 내가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질렀구나도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왔던 생각도 났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도 좋은 것이건 아픈 것이든 생각하면서 시간이 슬픔을 낫게 해주리라 믿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들과 늘 가던 수녀원의 전례에 참석하여 미사를 드리던 도중에 나에게도 사랑하는 육친의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치유 받는 순간이 왔다. 수녀원 성당의 제대 중앙 벽면에 성체가 조각 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이 두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몇 번을 갔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인 작년 성탄 전례 때 그 성체 모양에 나의 시선이 머문 것이다. 응시함을 통해서 주님은 내 기억을 2008년 봄으로 돌리시더니 그 때 아버지의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 사인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주셨다. 그 때 의사 선생님은 “아버님 심장 판막이 두 부분인 채로 이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셨다는 것이 참 믿기 어려운 일이군요” 하면서 심장의 모양을 볼펜으로 그려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판막이 이런 모양인 것을 몰랐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 전에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그 때는 그런 사실을 애기 해주지 않아서 모른다고 하였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는 나중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80세 된 연세에 처음으로 당신의 심장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들으셨다. 주님은 그 때의 아버지를 떠올려 주시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자신과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하여 불편한 내 마음을 고쳐 주셨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순식간에 온 얼굴을 덮고 콧물까지 나오고 내 입에서는 믿기 어렵게도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이런 심장으로 저희와 83년을 함께 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어머니와 형제들도 모두 저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웠겠지요?’ 이런 감사의 기도가 나오는 게 아닌가?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한 놀라우신 그분의 사랑의 치유 덕분에 그 후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슴을 누르고 있던 아픔을 떨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슬픔의 운명공동체인 가족 안에 진정으로 편입되면서 가족들도 모두 슬프고 고통스러웠다는 걸 받아들이고 마음으로부터 화해를 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식전에 들에 일하시러 가서, 여느 때보다 늦게 오시는 것 같아 밭으로 찾으러 간 남동생에게 발견되셨을 때는 이미 심장마비로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 늘 쓰시던 밤나무로 짠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들에 가기 전에 그 날의 일기를 간략하게 습관대로 써놓으셨다, 2012년 8월 21일에 멈춰 있었다.
 

 
제3편
 
소에 관한 단상
 
-되새김질 하는 문학-
 
 
 한 마리의 소가 외양간에 앉아있다. 구유에 볏짚으로 쑨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을 맛있게 먹고 부른 배로 나른한 가운데 소는 끊임없이 입가에 하얀 침이 묻어나오도록 씹고 있다. 봄의 한낮이다. 날이 풀려 따뜻한 대기에는 봄이 무르익으려 한다. 이 공기 속에서 소는 나른하다. 아침밥을 먹은 주인은 소를 몰고 지게에다 바수가리를 얹고 그 위에다가 쟁기를 쟁이고 소를 몰고 계곡의 골짜구니를 지나고 산에 붙어 있는 비스듬한 경사면을 개간하여 일군 밭을 갈고 온 것이었다. 소는 무념무상으로 끊임없이 씹어대다가 눈꺼풀이 내려온다.

  여러 마리의 소가 풀이 많이 나 있는 숲이 가까운 들판에 서 있다. 입으로 고개를 들어 나뭇잎을 뜯거나 고개를 숙여 발밑에 나 있는 풀을 뜯어먹는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초식동물인 소는 순하디 순하다. 그렇게 풀을 뜯어먹다가 배가 부르면 서거나 앉은 채로 끊임없이 씹는다. 왜 소는 이렇게 끊임없이 씹을까? 소는 반추위를 가졌다. 음식을 반추위에 넣어놨다가 다시 꺼내서 그것을 꼭꼭 씹어서 소화를 시킨다. 그렇게 하면서 소는 먼 곳으로 시선을 두고 눈을 끔뻑끔뻑한다. 꼬리로는 달라붙는 쇠파리를 간헐적으로 쫓으면서…….

 소의 되새김질과 함께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되새김질을 많이 하여도 소의 이빨은 넓적하고 단단하여 부서지는 일이나 충치 생기는 일이 없다. 여러 마리의 송아지를 낳아도 소는 겉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온갖 들일과 논일, 갖가지 짐을 실어 수레를 끄는 일이나 농사와 농가의 잡용으로 운반책을 맡은 소는 귀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소가 과로하여 쇠죽을 먹지 않으면 주인은 큰 걱정을 한다. 그러다 이틀 정도 잘 먹이고 쉬게 하면 소는 또 기운을 차려서 쇠죽도 잘 먹고 원기를 회복한다. 소는 늘 초식하면서도 어떻게 저런 큰 덩치와 배를 갖고 있으며 말에 비하면 비교적 잘록하고 뭉툭한 다리를 가졌을까 생각한다. 이 다리는 오래 서서 무거운 짐을 지탱하는 데 유리하다. 소는 주인이 어떤 것을 시켜도 다 한다. 논밭을 갈거나 써는 일, 짐을 나르는 일 등에도 소는 불만이 없다.
 
이런 역사를 지닌 소이기에 소는 말없이 주인이 부리는 대로 일하고 먹이를 먹고 서서 혹은 앉아서 쉬거나 자면서 지낸다. 한 번도 소가 밤에 어떻게 자는지는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밤마다 누워서 자는 것과 달리 소는 앉아서 잘 거라고 상상한다. 가끔씩 음매하는 소리나 가까이 가야만 들리는 소의 폐에서 뿜어져서 나오는 센 콧숨소리나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씹을 때 나지막하게 나는 싹싹하는 소리가 전부이다. 그리고 소가 뒤로 쇠똥을 눌 때나 오줌을 눌 때, 걸을 때 발굽에서 나는 따각따각하는 소리 이외에 소에게서 나는 소리는 없다. 젖은 듯한 눈을 할 때나 공간적으로 어딘가 멀리 바라보듯 하거나 시간적으로 먼 옛 일을 생각하는 듯한 눈을 하는 것도 소의 인상이다. 소가 눈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열어놓는 시간과 공간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 짐작을 할 수 없다. 소가 지닌 매력이라면 아마 이것이리라.
 
이렇게 시공간을 확대하여 과거와 미래에까지 열어두는 데는 소가 지닌 느림과 되새김의 미학이 있어야 할 게다. 몸의 움직임도 느리고 어떨 땐 아주 둔해 보이는 소이지만 농사가 절기에 맞추어져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니 서두르거나 빨리 해치워야 할 일이 없다. 그 때 그때 지구가 태양 주위를 자전하는 시간들에 맞추어 소를 쓰면 된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고 묵은 논과 밭을 한 번 갈아엎어 농사지을 준비를 하고, 이랑을 만들거나 못자리를 만들어 파종하여 벼가 한 웅쿰 쥐어질 정도로 자라서 개구리가 울 무렵이면 물을 대고 썰어둔 논에 모를 내면 된다. 소가 쟁기를 끌고 논밭을 갈아엎어주지 않으면 농사는 되지 않는다. 소는 논과 밭을 갈 때 가장 힘들다. 겨우내 딱딱해진 농토를 쟁기의 보습을 넣어 깊이 갈아엎어 줘야 씨앗을 품어서 키워줄 좋은 논밭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거름을 넣어주는 것도 소가 거름을 실어서 옮겨주기 때문이다. 소가 이렇게 농부에게 충실한 종이다.

 부리는 농부도 소를 존중한다. 소를 막 대하면 안 된다. 느린 소를 너무 다그치면 소가 아주 화를 낸다. 하루에 너무 많은 양을 과적하거나 과로하게 하면 소는 혹사당하여 쇠죽을 먹지 못하고 몸살을 하기 때문에 현명한 주인은 소가 병이 나지 않게 먹이도 좋은 걸 먹이고 적당히 쉬게 하고 과로나 과적을 피한다. 그리고 외양간도 알뜰히 돌보며 소의 잠자리인 마른 짚도 자주 바꾸어 깔아준다. 여름에 너무 더울 때는 시원한 물로 등목도 시켜주고 겨울에 몹시 추울 때는 등에다가 모포로 덮개도 씌워준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에는 겨나 깻묵 같은 걸로 아주 잘 먹여서 겨울을 잘 나게 하여 소가 한창 일해야 하는 봄이 되면 전통적으로 사람도 춘궁기인 계절을 소가 그래도 무난히 일하고 지낼 수 있게 체력을 다진다.
 
소는 말과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다그치면 안 된다. 소는 느린 걸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걸을 때도 느릿느릿 걷고 먹은 것도 다시 토하듯이 하여 되새김질을 통해 느릿느릿 소화시키는 것이다. 소의 이런 생활과 섭생이 육신에 배어있으니 쇠고기가 제일 인간에게 맛있는 지도 모른다. 소가 그렇게 자신을 인간에게 다 바치는 짐승이라 생각하게 되면 눈물겹게 된다. 주인을 위해서 자기를 전소(全燒)하는 순하기만 한 소, 이 소는 전생에 그 주인과 어떤 인연이었을까 생각한다. 또 본유(本有)을 그렇게 한 생을 마무리하는 소는 후생에 무엇으로 전생(轉生)할까. 아마, 소는 내생에 부리는 사람으로 태어날 게다. 그 반대로 주인은 소로 태어날까? 이 주인과 소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 과욕을 부리는 주인은 소를 병나게 한다. 소는 과로하게 하거나 과적시키면 반드시 병이 난다. 마음이 온유하고 소를 섬세하게 돌보는 주인은 순하고 건강한 소를 갖는다.
 
그는 소가 지치지 않도록 잘 먹이고 다그치지 않고 혹사시키지도 않고 외양간을 깨끗히 하고 소가 누울 자리에는 늘 마른 풀이나 짚을 깔아주어 질척질척하지 않고 포송포송하게 소를 기분 좋게 해준다. 때로는 아침볕을 쐬면서 등을 긁어주거나 등에 달라붙어 소의 피를 빨아먹는 동그랗고 까만 벌레나 쇠파리를 쫓아주고 소에 기생해서 사는 동물이 달라붙지 않도록 소똥이 묻지 않게 깨끗하게 돌본다. 목덜미를 긁어주거나 등을 쓰다듬어 주어 소에게 주인은 사랑을 표시한다. 이런 소는 주인의 말을 잘 듣고 부지런히 일도 잘 하고 암소의 경우는 새끼도 잘 낳아준다. 소가 늙어서 더 이상 부리지 못하게 될 때 팔려나가면서 소와 주인은 눈물 짓는다. 소는 주인에게 큰 돈을 마련해주고 소장수를 따라 가서 도축된다.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그 때 그때 가난한 농가의 살림에 보탬을 준, 순한 소는 충실한 종이나 하느님을 닮은 것 같다.
 
물론, 거기에는 소 주인이 소를 어떻게 길들였느냐도 있겠지만 소의 타고난 천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타고난 마음의 바탕이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듯 소의 품성도 똑같다. 소나 사람이나 천품은 타고 나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지어지느냐는 우리 인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부모의 유전인자라고 현대의학에서 말한 뿐이지만 그것으로는 해명이 다 되지 않는다.

  소는 되새김질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소의 특성은 인간에게도 있다는 점이다. 사람도 반생을 살고나면 지난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 역사를 되돌아본다. 소의 되새김질이 바로 이런 시간들이란 의미이다. 문학은 하나의 반추이다. 되새김질이다. 이것을 일컬어 ‘반추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소가 음식을 목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씹어서 반추위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그것을 오래 씹어서 위장으로 보내어 다시 소화흡수 시키듯이 사람도 살아오면서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의 내용물을 반추위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곱씹어 보는데 이것이 문학일 게다.
 
구약성서의 모세오경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나라가 망하고 남의 나라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수난 속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반추하는 가운데 집필된, 문학적인 기획의 성격을 가진 경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이들은 왕국분열 이후 어지러운 역사와 패망의 원인을 비추어본 결과 출애굽에서 보여준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말씀에 따라 살지 않은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성찰에서 집필하여 유배생활의 현재와 미래를 바로 세워나가려는 궁핍한 시절의 반추를 통한 뼈아픈 회개의 기록문학인 것이다. 문학은 이렇게 종교경전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되새김질은 바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시구절인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바로 그 여인의 자세이며 모습일 게다. 그러니 되새김질의 문학은 국화꽃처럼 수수하면서도 곱고 향기로우면서도 그윽하며 절조와 여유,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가진 문학이 될 것이다.
 
  
 
   
소를 보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삶이 보인다...
 
                                                                                                                                                                                                                            

<심종숙 시 3편> 

 
 1. 
회색빛 고독이 밀려와
 
 
입추가 지나도 하늘은 불비를 내리고
나는 두 노 시인을 낙성대에서
만나고 돌아온다
점심 먹은 후 카페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내를 잃은 한 시인은 눈시울을 붉히고
그를 위로하는 후배시인
두 노년은 시간의 무상함을 말했다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깜빡 잠이 들고
나는 수유에서 눈을 뜬다
고요하고 메마른 고독
뜨겁고 미식한 고독
무기력하고 낭창한 고독이
매달려온다
수많은 발자국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놓여있다
열풍은 고독을 무찌를 수 있을까
녹지 않고
단단하게
둥글게 굴러가는
한 덩어리의 고독을
나는 가졌다
눈시울 젖을 일 없이
시간을 탓하지 않고
그저
구르는
고독의 바퀴를 보았다
그 속에서 나는
신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2. 
 
 백화白樺
 
 
 
자작나무 숲은
시온을 그리는
유배지의 백성들
두 팔 벌리고
그들의 하느님께 구원을 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끌려온 이들
자루옷과 재를 뒤집어 쓰고
정죄하여 희어진 나신
깊은 겨울의 한기로 태질 당한다
얼마나 숭고한가
잎을 떨군 빈 자리에
찬 바람이 쉴 새 없이 흘러
몸을 헹구는 의식
자작나무는 듣는가
먼 고향의 전령을
예세의 그루터기에 새순이 돋아
새 하늘 새 땅을 그리는 마음은
기도로 닿는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기도가
 
 
   3. 
 -5․18 영령들께 바치는 헌시
                           심종숙
 
     당신이 가신 길 위에
     꽃들이 피어납니다
     1980년 오월의 광주
     봄하늘에 종달새 울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태양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달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부모는 별을 잃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당신이 흘리신 피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태양이
     달이
     별이
     머무는 그 나무에
     천 송이 만 송이
     민주주의의 꽃이
     평화의 꽃이
     지지 않는 기억의 꽃으로 피어
     작은 길이 됩니다
     작은 길이 큰 길로 이어집니다
     꽃과 꽃이 마주 보고
     길과 길이 손 잡고
     거대한 꽃길을 냅니다
    시대의 어둠을 밝혀
    빛이 되고
    불의가 쓰러지고
    정의가 서며
    숨긴 것을 드러내며
    생명을 되살리는 꽃길
    당신이 가신 길 위에
    꽃들이 피어납니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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