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박사학위 취득자 전은주와의 인터뷰

[서울=동북아신무]전은주 박사(시인)는 재한동포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동포문학(1~8호)’에 실린 시작품들을 읽고 논문을 펴내, 한국 굴지의 대학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른바 “‘동포문학’이 배출한 첫 박사생”이다. <편집자 주>
 
인터뷰 일시 :  2019년 2월 11일
이동렬 : 소설가, 동북아신문 대표(사장)/재한동포문인협회 대표
전은주 : 시인, 연세대학교에서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로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수여 받음.

▲ 전은주 약력: 1986년생, 2008년 계간 ‘창작21’ 신인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 부분과장, 연세대학교 현대문학 박사.

이동렬 : 안녕하십니까? 이번 연세대학교에서 취득하신 박사학위를 축하드립니다.

전은주 : 감사합니다.

이동렬 : 논문의 주요 텍스트가 재한 조선족 문인협회에서 발간한 ‘동포문학’에 실린 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동포문학을 발간하는 대표로서 정말 반갑고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으로 이주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그 지치고 힘든 노역의 과정에서도 문학적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틈틈이 시를 써온 재한 조선족 문인들의 문학정신이 발현되는 아주 귀중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전 박사님께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와 동시에 피땀으로 작품을 써주신 우리 회원들에게 치하의 말씀도 올립니다. 한국의 문학적 풍토상 학위논문은 대체로 작고한 문학인을 대상으로 한다는데, 전 박사님의 논문은 당대의, 그것도 현재에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수록된 시인들의 시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이채로운데, 이 점을 좀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전은주 : 그렇습니다. 작가에 대한 개별 연구인 ‘작가론’은 대체로 그 작가의 전체 작품을 통해 평가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작가라면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대체로 사후에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학적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문학연구는 현재적 시점을 기준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이십 년이 채 안 되는 한국으로의 조선족 이주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와 그 해결의 전망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조선족의 현실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조선족이 겪는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시작품이 필요했습니다.  

이동렬 : 소설을 쓰는 제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족의 현실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시보다 소설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전은주 : 그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소설은 현실적 상황을 여실히 그려 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갈등의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세계는 주로 ‘의식의 세계’에서 ‘현재적 상황’을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논문에서 ‘시적 언어 사용’과 ‘산문적 언어 사용’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적 언어 사용이 무의식 또는 심층의식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조선족의 한국 이주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무의식의 요소, 즉 ‘그리움’, ‘고향’, ‘고향집’, ‘귀환’ 같은 요소의 연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조선족의 심층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요소들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시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동렬 : 그렇군요, 수긍이 가네요.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의 기능이나 시의 역할 같은 점에 부연설명을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전은주 : 네.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시의 정의가 아니라 제 방식의 설명입니다.

첫째, 시는 ‘말걸기’와 ‘답하기’라고 봅니다. 시인이 외부 세계에다가, 외부 사람한테 물어서 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자신의 심층 의식에다 말을 걸고 답합니다. 이것은 ‘주체되기’나 ‘자아성찰’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만, 시인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김소월은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그런 슬픈 일을 당하게 되며,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라고 답합니다. 물론 이 물음과 답에는 아주 많은 사연과 정서와 사유의 폭과 깊이가 내재되어 있지만, 근본적인 형태는 ‘말 걸기’와 ‘답하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둘째, 시는 ‘발견’ 또는 ‘깨달음’이라고 봅니다. 삶의 과정에서 평범한 것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상황과 자신의 감성과 이성적인 사유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는 한 구절만 보아도 그 속에는, ‘떠나가는 님’이라는 상황에 대한 발견, 님은 가셨지만 시적 화자의 정서적 조건에서는 ‘님이 남아있다’는 발견, 및 님의 떠남으로서 새롭게 전개되는 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성적 사유 같은 여러 층위의 ‘발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결국 님에 대한 깨달음, 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 님을 통한 나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에 대한, 자연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발견’ 또는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재한 조선족 시인들의 시도, 한국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답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사회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 깨달음은 그 개인이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조선족 집단 전체의 정서나 사유가 동원된 것이며 조상들로부터 전승 받은 오래된 체험, 정신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무의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겠지요. 

이동렬 : 논의가 좀 원론적인 쪽으로 갔지요? 인터뷰를 학위 논문 쪽으로 방향을 틀겠습니다. 전 박사님의 이번 학위 논문이 조선족의 한국 이주의 연원과 이를 통해 비롯되는 여러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이며, 조선족의 미래 사회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훌륭한 논문이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으며 조선족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이 특히 관심이 갔습니다.

전은주 : 과찬의 말씀입니다.

이동렬 : 논문 제목이 ⌜한중 수교 이후 재한 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지요? 제목에서부터 벌써 몇 가지가 궁금해집니다. 첫째, 연구 기간을 ‘한중 수교 이후’로 잡은 점, 둘째 디아스포라에 대한 개념, 셋째 정체성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것에 이 논문의 방향성이나 핵심이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이 논문의 목적이나 방향성이 드러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한중 수교 이후’의 기간 설정과 관련하여>

전은주 : 대표님의 질문에서 이미 제 논문의 핵심이 요약된 듯합니다. 세 가지 질문을 하나씩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첫째 질문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연변의 조선족들은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 ‘특별한 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민족’이라는 조건에서 보면 한국 또는 한반도의 주민은 모두 조선족과 같은 단일민족에 속하지요. 둘째, ‘국가’라는 조건에서 보자면 중국과 한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고,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민족이면서도 서로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다른 국가에 속합니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이 대거 한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은, 외면적으로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의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주에 해당되지만, 내면적으로는 단일민족인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모국으로 ‘귀환’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문제의 기본은 민족과 국적의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족들의 생각에는, 돈을 벌겠다는 ‘자본 욕망’도 있지만 비록 노동이주를 했다고 해도 한국인들이 조선족인 자신들을 한민족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격 회복’의 소망이 깔려 있습니다. 

이동렬 : 조선족 처지에서 보자면 당연한 게 아닌가요? 한국 사회 또는 한국인들이 조선족의 처지나 조선족의 중국 이주와 정착의 피눈물 나는 고통의 역사를 너무 등한시한 것이 아닐까요?

전은주 : 그렇습니다.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한국인 쪽에서 보자면 적성국가의 국민이 돈 벌려고 몰려와서는 손님이나 친척 대접을 해달라는 것과 다름없었겠지요. 한국인들도 처음에는 독립군의 후예로 ‘중국 동포’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가짜 중약을 파는 조선족들과 불법 체류자들이 많아지면서 점차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인 갈등 앞에서 과거는 쉽게 잊혀지지요.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의 눈물겨운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알아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이동렬 : 그렇겠지요. 하기는 그들 뿐만 아니라 이주 3,4세대 조선족도 선조들의 피맺힌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배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우리 조선족 사회의 형편도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알아서 이해해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겠지요.  

전은주 : 아시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은 아주 빨리 전개되기 때문에 우선은 눈에 보이는 것, 겉으로 드러난 것을 통해 판단하고 결정해버립니다. 조선족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그 빠른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 한국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친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부담스러워 외면하려 들겠지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조선족들이 볼품없고 부담스러운 친척 같은 존재여서 외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태도에서 냉대와 차별을 감지한 조선족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자신을 싸구려 외국인 노동자로, 범죄자로 대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조선족들은 연변에서 개명치 못한 일부 한족들로부터 설움과 여러 고난을 받으면서도, 민족 위주로 똘똘 뭉쳐 한민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한글과 풍습을 꿋꿋하게 지켜왔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조선족들은 ‘민족과 민족정신’을 무엇보다도 앞자리에 놓는 그런 인식을 유지하려 들었지요. 그러므로 한국사회에서도 자신들을 자랑스러운 동포로 대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조선족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인들은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로 보고 차별하고 냉대하기에 이릅니다. 조선족은 이 지점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분노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중 수교 이후’라는 이 시기는 조선족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종래에 지녔던 조선족의 인식을,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구의 기간을 ‘한중 수교 이후’로 한정했지요.

이동렬 : 그렇겠군요. 전 박사님의 말씀은 이 갈등과 혼란의 위기가 우리 조선족들의 물질적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삶, 다시 말하면 우리 조선족의 정체성을 재정립하여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전은주 : 제가 생각하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인식의 전환’을 뜻합니다. 인식은 세상을 만나는 기본 태도, 가치 기준, 행동 원칙 같은 우리 정신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 의식의 ‘프로그램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식이 바뀌게 되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가치 체계가 바뀌기 때문에 종전에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기준과 조건이 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혁신이고 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선족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이주와 정착의 초창기에는 대부분 ‘이민족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은 한민족인 한국인들과의 갈등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 우리가 종래에 지녔던 인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뜻입니다.

조선족의 역사를 큰 범주로 개괄해보면 네 시기로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첫째가 ‘중국 이주 시기’이고, 둘째가 ‘중국 정착 시기’이고, 셋째가 ‘한중 수교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이고, 그리고 넷째가 ‘정체성의 재정립 시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네 번째에 대해 제 논문에는 가능성과 방향성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추후의 연구 과제로 남겨놓았습니다.

이동렬 : ‘정체성의 재정립 시기’는 우리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혹시 그것이 이 논문을 쓰게 된 목적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전은주 : 네, 그렇습니다. 제가 학위 논문의 주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조선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어려운 현실과 만났습니다.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절망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중국으로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런 질문들은 저를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질문의 밑바닥에는 중국인이 되는가, 한국인으로 귀화해야 하는가의 전제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난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면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이동렬 : 조선족이라면 누구나 만나는 문제와, 누구나 다 아파했던 그 고통과 만났군요.

전은주 : 그러다가 ‘동포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실린 시인들의 시의 기법이나 소재를 다루는 시적 이해 정도가 더러는 소박하고 서툴렀지만, ‘민들레의 재발견’에 관한 시를 비롯하여 여러 시 작품에서 저는 조선족 정체성의 재정립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 이주한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의 차별과 냉대를 통해 혼란스러워 하고 서럽고 슬퍼하고 동시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나 생각에 젖어 마음을 모질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한 조선족 시인들 중의 몇 분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 시인들은 한국인을 탓하고 운명을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자신’을 성찰하며, ‘가장 귀한 자신’을 진지하게 돌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시는 자신의 내면에 ‘말걸기’와 ‘답하기’이며 ‘깨담음’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시는 객관 세계의 주체인 ‘자신의 주관 세계’를 성찰하는 것이지요. 그 시인들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동렬 : 지엽적인 문제이지만, 저도 이 논문을 읽으면서 민들레꽃에 대한 분석이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시인들이 연변에 핀 민들레꽃과 한국에 핀 민들레꽃의 같음을 통한 서로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그리고 두만강 물과 속초 앞바다의 물이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이 그들의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그 부분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조선족 시인들이 했던 그 ‘자아성찰’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자아성찰’이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몇몇 시인의 자아성찰이 조선족 사회의 미래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할까요?

전은주 : ‘자아성찰’은 자신에게 진실되게 ‘말걸기’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본질적인 문제, 현실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모순된 문제를 가지고 ‘자신에게’ 묻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적 여러 상황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골고루 사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여러 가능성,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 모두를 ‘열린 마음’으로 사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열린 마음’이라는 것은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자신의 가치나 선입견 등을 내려놓고 사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남을 탓하고, 세상이나 운명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자신보다 위에 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이 그 위에서 살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태를 자신이 주인공인, 자신이 선택한 것으로 봅니다. 자신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그 사태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은, 모든 책임이 자신한테 있다는 것을 듯합니다. 물론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공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향해 실천을 시작하는 시인이 있더라고요. 정말 놀랍지요?

이동렬 : 그런데 몇몇 시인들이 실천하기 시작한 그 ‘자아성찰’이나 ‘깨달음’이 어떻게 조선족 사회의 미래와 연결되고, 정체성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전은주 :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장마에 둑이 무너지는 것은 애초에 바늘구멍 만한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그 시대, 그 사회의 미뢰(味蕾), 즉 맛을 먼저 파악해서 전달하는 혀의 맛돌기 세포와 같다고 했습니다. 개체 발전과 종의 전체 발전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면, 동남아시아에 사는 한 원숭이가 불을 피우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면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같은 종(種)의 원숭이도 얼마 뒤에 그 방법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 원숭이끼리 교신을 한 적이 전혀 없어도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끼리도, 예를 들면, 아마존강 유역 깊은 밀림 속에 수백 년을 외부와 교류없이 살아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문명인들과 인간의 근본은 차이가 나지 않다고 그러지요?

조선족 디아스포라 시인들의 그러한 자아성찰을 통한 깨달음이 불씨가 되어 들불로 번져 조선족 전체로 파급되고 널리 이어지면 운명을 바꿀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시인의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우리 조선족 전체의 인식의 전환과 깊은 고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사회학이나 정신학 학자들의 확신이고, 저의 전망이고, 저의 확신입니다. 

이동렬 : 전 박사님의 조선족 미래 사회에 대한 그런 전망에 마음이 뿌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선족 전체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도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답변이 ‘한중 수교 이후’라는 기간 설정에 대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이지요? 그러면 둘째, 디아스포라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박은  전은주 박사의 논문집 표지


 <2. ‘디아스포라의 개념’에 대하여>

전은주 : 설명이 너무 앞질러 간 듯합니다.

이제 이 대표님께서 해주신 둘째 질문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겠습니다. 이 용어가 전문적인 듯하지만, 조선족의 삶과 연관지어보면 싶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모국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 와서 이주지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온 ‘고향’을 지속적으로 찾고자 하는 집단을 가리킵니다. 이 집단은 이주의 고초를, ‘위기감’이나 ‘공포감’을 심하게 겪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지니게 됩니다. 이 ‘트라우마’는 그 이후 인간의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어떤 정신적 장애인데, 이것은 과거의 격렬한 감성적 충격 때문에 형성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디아스포라는 ‘위기와 공포’라는 부정적인 고초를 겪을 때마다 정신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상상속의 고향’을 미화시키고 ‘귀환’의 욕망을,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을 점점 확장시키게 됩니다. 그러니까 디아스포라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두 가지 측면으로 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첫째가 ‘이주’의 측면입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쫓겨났든지 버리고 왔든지 어쨌든 그들 자신이 선택한 ‘떠남의 행위’가 수반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떠남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왔든지, 웃으면서 왔든지 떠났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의식 밑바닥에 언제나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과 도전의식 또는 ‘개척정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가 ‘정착’의 측면입니다. 그 ‘떠남’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정착’하기 위한 것이지, 떠나기 위해 떠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식은 언제나 현재보다는 과거와 미래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특히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언제나 과거나 미래에 더 연연하게 됩니다.

이동렬 : 그것 참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가 그것으로도 설명되는 부분이 크겠군요. 조선족들은 연변 지구나 중국의 집단 거주지에 대한 애착보다 ‘과거’에 살았던 ‘고향’에 대해, ‘미래’에 귀환하고자 하는 ‘고향’에 대해 더 연연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현재적 삶의 공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떠날 작정을 하고 사는 사람들, 나그네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러면 조선족들은 언제나 떠돌기만 하는 집단이 된다는 것인가요? 그러면 너무 슬프지 않나요?

전은주 : 참 재미있는 점을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조선족은 아무리 억압되고 척박한 곳에 거주해도 ‘미래’로 상징되는 ‘상상속의 고향’을 언제나 꿈꾸기 때문에 떠나갈 그날을 그리며 견뎌왔고, 반대로 아무리 평안하고 풍족한 곳에 거주해도 그곳이 ‘과거’의 ‘상상속의 고향’보다 더 나은 곳이 아니므로 안주하지 않고 떠날 기회만을 기다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족이 자신에 대한, ‘자아성찰’이 없다면 언제나 ‘부초’처럼 떠돌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성찰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선족은 자신이 떠나고 정착하고 다시 떠나기 위한 존재라는 이 평범한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즉 ‘성찰’해야 그 수레바퀴 같은 이산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렬 : 그렇다면 조선족의 ‘상상속의 고향’이 한국인가요?

전은주 :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지칭하겠지요. 출신지를 뜻하지만, 조선족의 마음에 있는 ‘고향’은, 모든 인류가 본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유토피아’와도 같은 그런 곳일지도 모릅니다. 간도로 이주한 조선족의 선조들은 삶이 각박하고 두려울 때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상상속의 고향’의 형상은 뚜렷해지고, 그 고향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의지는 강해졌을 것입니다. 물론 이푸 투안 같은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그리워하고 귀환하고자 했던 곳은 고향이라는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집’으로 표상되는 ‘장소’라고 합니다. 이산의 출발이 ‘고향’이기보다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리적 위치로서의 ‘고향 ’땅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전하고 풍족하고 행복한 어떤 안식처로서의 ‘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슐라르 같은 학자는 ‘집’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만 조선족들은 ‘고향=집’이라고 설정하고 한국으로 이주합니다.

이동렬 : 그렇다면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한국으로의 이주가 ‘고향’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집’을 찾아왔다는 뜻인가요?

전은주 : 미리 핵심을 말씀하시는군요. 조선족들이 ‘상상속의 고향’을 그리워하여 ‘귀환’을 꿈꾸어 왔고, 한중 수교 이후 ‘고향’을 찾으려고 한국을 찾지만 그들은 고향을 찾지 못합니다. 그들이 그리워한 것이 문화적인 총체로 이루어진 기억속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 때문에 결코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운 그 집’이 실제로 따사로웠던 ‘어린 시절’의 그 ‘장소’이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이라는 것이지요. 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은 한국에서 ‘상상속의 고향’으로 ‘귀환’했지만 그 고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동렬 : 시인 정지용이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고뇨”라고 노래한 것도 그런 의미인가요?

전은주 : 정지용뿐만 아니라 모든 ‘고향’ 또는 ‘(고향)집’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고향’도 ‘집’도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고향’을 찾으려고 왔지만, 잠재적으로는 ‘집’을 찾으려 왔던 것이지요. 그런 혼란이 ‘정체성의 혼란’으로 전이된 것이겠지요. ‘그리움의 집’을 찾으려 왔으면서 ‘고향’을 찾으려고 온 줄 알고 헤맸으니 당연히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집’ 또한 ‘존재론적 불가능성’을 지닌 장소이기 때문에 ‘집’조차 찾을 수 없었겠지요. 한국 이주의 초기에는 조선족 시인들도 그리던 고향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합니다. 그러나 그 감격은 곧 환멸로 바뀝니다. 그래서 한국에 ‘집의 부재’를 확인하고, 자신들의 ‘상상속의 고향(집)’이 환상이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동렬 : 그 환멸의 충격이 혼란과 갈등으로 표출되겠군요. 그것이 분노의 형태로, 증오의 형태로 드러날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그 좌절감이 방향감의 상실로 드러날까 염려스럽기도 하고요.

전은주 : 그렇습니다. 그들이 찾고자 했던, 그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에 와서 ‘고향’도, ‘(고향)집’도 찾지 못하는 그 박탈감은 컸겠지요. 그래서 그들 중의 일부는 다시 떠나온 연변의 집이 그들이 찾던 ‘고향’이고 ‘(고향)집’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이 지녔던 ‘그리움’이 사라진 그 허망함 속에 무엇인가를 대체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변으로 되돌아가서도 이웃이나 친구도 모두 사라진, 조선족 집단 거주지가 한족들의 거주지로 변해버린 ‘기괴하고 낯선 고향’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번 돈으로 장만한 아파트도 가족이 사라진 ‘빈 집’임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다시 무의식적으로 ‘집’을 찾으려는 ‘떠남’을 통한 이주를 계속해서 미국 등지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방향을 상실한 채 우선은 대림동이나 가리봉동 같은 곳에다 그들 만의 ‘조선족 타운’을 짓기 시작합니다.

이동렬 : ‘조선족 타운’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군요. 그들이 대림동 같은 곳에다 조선족 집단촌을 만드는 것이 ‘집 찾기’ 또는 ‘고향 찾기’나 ‘(고향)집 짓기’로 설명될 수 있겠군요. 생존만을 위한 집단촌이 아니라 우리 조선족들의 의식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 찾기’와 ‘집 찾기’의 애절한 욕망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은주 : 저도 그렇게 파악합니다.

이동렬 : 그렇다면 조선족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된다고 보시나요? 우리 조선족의 의식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그 ‘그리운 고향집’은 영영 찾을 없다는 것인가요? 앞에서 언급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전망하나요? ‘고향’이 환상이라는 것을, 다른 외부적 요인에 의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남’을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뭐가 달라지나요? 그리고 우리 조선족의 미래는 의식의 전환, 정체성의 전환과 어떻게 연결된다고 보아야 하나요?

전은주 : 예리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바로 제가 논문에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것을 이 대표님께서 꼭 찍어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한국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고향’과 ‘(고향)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간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그리움은 원초적인 그리움과도 통합니다. 그렇다고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리움’을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에너지로 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족 스스로가 이루었던 마을이, ‘연변’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고향과 다르지 않고, 우리가 지은 집이 그리움 속의 ‘(고향)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것만이 아니라 지금 짓고 있는 그 ‘집’이 ‘고향집’이고, 우리가 짓고 있는 그 ‘마을’이, ‘조선족 타운’이 ‘고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는 행위가, 그것이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든지 그것이 우리 자신을 가장 잘 구현해 나간다는 자부심도 함께 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연변대학교의 학자인 김호웅 교수가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에서 조선족의 올바른 미래가 ‘디아스포라 되기’를 통해 열린다고 말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조선족의 나아갈 길은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디아스포라가 되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면 답이 보인다는 말씀인데, 앞에서 말한 ‘자아성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3. 정체성의 개념에 대하여>

이동렬 : 조선족들의 ‘인식의 재정립’이 ‘자아성찰’ 또는 ‘디아스포라 되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이것이 전 박사님이 논문에서 자주 쓰고 있는 프랑스 학자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의 혁신’과 상통하는 것인가요? 그 학자의 이론도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전은주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셋째 질문인 ‘정체성의 개념’ 설명과 함께 하겠습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에서 교육 혁명을 일으킨 사회학자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그는 ‘인식의 혁신’ 곧 ‘아비투스의 혁신’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했던 분입니다. 그는 그 혁신을 통해 교육혁명을 성공했습니다. 그는 젊은 지식계층, 부르조아 계층을 설득해서, 인식의 전환으로 이끄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상위계층의 부르조아들이 나이가 들자 다시 보수 쪽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말해줍니다. 인식의 전환이 충분히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완전한 인식의 전환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아비투스’란 어떤 집단의 사회적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도 의식과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총체이지요. 인간의 뇌는 90% 이상이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식과 무의식을 혁신시키는 일이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부르디외는 첫째, 지속적인 교육, 둘째는 과거의 형성된 인식이 새로운 상황과 만나 일관성이나 응집력이 파괴되고 분열되는 충격을 통해 ‘아비투스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족도 한국사회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분열과 충격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정체성’은 한 집단이 지속적으로 동일성을 유지하고, 다른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그 특성이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동일성(identity)’이라고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또는 ‘동일성’을 증명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신분증’이지요. 그 개인의 ‘동일성’, 어제의 그 사람과 현재의 그 사람, 그리고 미래의 그 사람이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신분증’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에서의 조선족 ‘신분증’은 ‘한족’과 달리 한글도 함께 적습니다. 아무리 중국 국적이라고 해도 ‘신분증’은 우리들은 한족과는 다른 민족, 조선족이라고 밝혀주지요. 그런 정체성으로 조선족들은 중국 땅에서도 한족들과의 다르다는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너희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것’으로 독특하게 형성됩니다. 조선족은 조선말을 해야 한다든지, 조선족은 조선족과 결혼한다든지, 조선족은 조선학교에 다녀야한다든가, 조선족끼리 뭉쳐야 한다든가, 조선민족 전통을 지켜야 한다든지, 조선족은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은 우수한 민족이라든지 같은 ‘조선족끼리’ 지니고 있는, 또한 앞으로도 그것이 전승될 조선족만의 인식체계, 그들만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동일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조선족의 정체성’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동일성’이 한반도에서 기원했으므로 조선족과 한국(조선)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조선족의 뿌리라고 생각했던 한민족의 근원인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족들이 지녔던 그런 정체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인의 차별과 냉대는 한국인들이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족들이 한국 사회에서 마주치는 이 혼란의 충격이, 이 갈등과 분노의 힘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재정립시키는, ‘아비투스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혁신의 방향성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원동력을 통해 조선족이 당면하고 있는 이 모든 문제의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동렬 : 혁신의 방향성을 말씀하셨는데, 조선족들이 그 충격과 혼란을 통해 이미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은 중국의 한족보다 더 싸가지 없다”, “한국인들은 돈 밖에 모른다”, “민족이 무슨 소용이냐, 돈이나 힘이 최고다”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인식이 형성되지나 않았나 하는 염려가 듭니다.

전은주 : 정말 훌륭한 지적입니다. 물론 그러한 정체성이 개인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인식의 변화는 쉽게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조선족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오랜 시기 동안 집단적으로 형성된 인식 또는 정체성은 쉽사리 변하지는 않는다고 했지요? 그러나 이 대표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 정체성이 형성되지는 않느냐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면, 그것이 정당성을 통해 스스로 설득이 되면, 충격으로 받아들이면 혁신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방향으로 형성하게 하는 조선족 집단의 노력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동렬 : 논문을 읽다가 보니 ‘타자에서 주체로’와 ‘기대에서 관심으로’라는 부분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자신을 타자로 만드는 것이 한국인이나 중국의 한족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타자로 만든다는 것에 전적으로 수긍이 갑니다. 그리고 ‘기대와 관심’에 좀 쉽게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방법론을 전 박사님께서 새롭게 규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전은주 : 제 논문을 꼼꼼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흔히 우리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인공 또는 주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주체 또는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지요. 남의 탓, 세상 탓, 조상 탓, 나라 탓, 한국 사회 탓으로 돌립니다. 남이 욕을 해서 화가 났지 내 자신이 선택해서 화를 낸 게 아니라고 하지요. 세상의, 내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임을 알아서 나를 주체로 놓을 때 당당한 인간으로 거듭 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이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期待) 속에 삽니다. 한국에 와서도 조선족인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 사회가 조선족을 어떻게 잘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면 슬퍼하거나 분노합니다. 원망하고 마음속에서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타자’로서의 삶이 되겠지요. 그러므로 기대가 아니라 ‘관심’(觀心)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방법의 골자입니다. 관심(關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인식을 보는, 자신의 여러 반응을 성찰하는 것이 ‘관심’(觀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자로서의 삶에 익숙해 있고, 기대하는 삶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식을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세계에 대해 ‘관심’(觀心)을 가진 시인이 등장했습니다. 주체로서의 삶을 실천하려는 조선족 디아스포라 시인이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아성찰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족 사회의 미래’가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동렬 : 전 박사님의 말씀에 저도 덩달아 기뻐집니다. 저도 주체로서의 삶, 기대가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삶을 실천해보도록 노력해야 되겠군요. 이제 세 가지 답변을 종합해주시겠습니까?

전은주 : 저도 이 대표님의 질문을 통해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제가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상상속의 집’에 대한 환상이 깨졌지만, 그것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가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도, 그 어느 곳에도 우리가 그리움으로 찾던 ‘고향’과 ‘(고향)집’이 없다는 그 환멸감과 우리 조선족들이 마주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빚어지는 그 분노의 힘을 ‘인식의 전환’ 또는 ‘정체성의 재정립’하는 원동력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고, 우리의 삶, 나의 삶의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지요. 그것을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우리와의 ‘다른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의 첫 단계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산 트라우마’를 지녔듯이 한국인도 ‘분단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들에 대해 관심을 지님으로써 우리의 혼란의 힘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재정립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디아스포라 되기’를 받아들여, 이런 인식의 전환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 조선족들이 지금 가리봉동에 짓는 ‘조선족 타운’이 우리가 찾고자 했던 ‘고향 마을’이고, 우리가 짓는 그 집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고향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연변’에서 이룬 그 마을이 고향 마을이고, 예전에 지었던 그 집이, 지금 연변에 있는 그 집이 고향집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우리 조선족 사회의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꿈이고,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동렬 : 이 대담을 읽는 독자들의 인식이 전 박사님의 설명을 통해 인식이 전환되고, 수긍과 인정의 큰 힘으로 작용하여 우리 조선족 전체의 인식을,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체로서의 삶’, ‘기대가 아닌 관심을 가지는 삶’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전환할 때 우리 조선족 사회의 미래도 열리고 정체성의 재정립도 이루어 우리 조선족의 삶이 긍정적인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전 박사님께서 앞으로 연구하실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은주 :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이 말이, 제가 쓴 논문의 주제와 제 소망이 약간이나마 전달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조선족 사회의 문제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전에 학술지 ‘통일인문학’에 발표한 “재한 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에서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나아갈 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논문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아성찰’을 통해, ‘자기완성’을 통해 우리 자신과 조선족 사회가 진화하는 방안도 모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주체로서의 삶, 관심의 지속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조선족의 ‘정체성의 혁신’을 꿈꾸며 그에 적합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더욱더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날카로운 질문으로 저의 인식을 폭을 넓혀 주시고 제 생각을 더 잘 정리하게 해주신 재한조선족문학회의 이동렬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포문학’에 좋은 시를 발표해주신 재한 조선족 시인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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