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한국문인의 동심은 어떨까? 그 동심을 또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엄연, 동포들과 살아온 세상은 다르지만 피도 생각도 똑 같다는 것을 느께게 되네요...<편집자 주>
1.
이슬
아침 이슬 속에 해님이 떴습니다
저녁 이슬 속에 달님이 떴습니다
해님과 달님은
서로 서로
그리워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그리움이 점점 부풀어 갑니다
해님은 저녁을 기다리며
달님은 아침을 기다리며
2.
달팽이
달팽이는 풀잎과 풀잎 사이를 건너갈 때도
달팽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갈 때도
느릿느릿 간다
풀잎들이 나무들이 느림보라고 놀려도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들여다보며
나무에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웃으면서 간다
햇볕이 쨍~ 내려쬐는 한낮에도
서산으로 해지는 저녁에도
앞만 보며
천천히 간다 집을 향해
3.
호박꽃
꽃 중에서 무시 받는 꽃은
호박꽃이지요
호박이 열리면 호박전 생각 하지요
호박이 익으면 호박죽 생각 하지요
호박전을 먹고 호박죽을 먹으며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호박꽃이라고 놀리던 일
호박꽃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요
4.
아기 게
아기 게가 바닷가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본다
해를 보려고
갈매기를 보려고
아기 게가 바위틈에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바다를 본다
파도소리를 들으려고
뱃고동을 들으려고
아기 게의 두 눈은 망원경이 되었다
아기 게의 두 귀는 안테나가 되었다
5.
청보리밭 축제
할머니를 따라서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갔다
바람이 불자
청보리들이
일제히
파도처럼 출렁이었다
손을 흔들자
청보리들이
일제히
보리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축제장에서
할머니의 보릿고개는
멀리 멀리 날아갔다
6.
파도
파도가 바닷가 백사장까지
밀려오는 것은
물새의 발자국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파도가 푸른 것은
용왕님의 수염이
푸르기 때문이다
파도가 철썩철썩 노래하는 것은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그립기 때문이다
7.
세상
세상이라는 말은 참 넓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표정을 짓고
수많은 말과
수많은 글을 가지고
지구라는 별에서
함께 살지요
세상이라는 말은 혼자서 살수 없다는 말이지요
8.
가로등
밤새 골목을 밝혀주느라 한잠도 못 잤다
눈이 벌겋다
날이 밝자
잠시 눈을 붙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등에 철썩 전단지 한 장을 붙인다
9.
가을마당
참새들이 마당에서
가을을
쪼아 먹고 있다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울타리에 기대 선 깨단
우물가 두레박
마당 구석의 늙은 감나무
가을마당은
전부
석양에 잠겨있다
10.
작은 것
제비가 강남을 갔다 왔다
새싹 뿌리가 지구를 들어 올렸다
참새가 알을 낳았다
여치가 여름밤을 지켰다
빗방울이 바위를 뚫었다
달팽이가 백리 길을 갔다
개미가 자기 몸 보다 큰 빵부스러기를 지고 왔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갔다
눈이 모여 우리 마을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작은 것이 자기 할 일을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