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한국과 조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또 연변에서 장백산을 무시로 오르내리며, 그렇게 문학의 삶을 살아온 리임원의 시는 이제 바야흐로 홍시가 된 것 같다.. .<편집자>   
▲ 리임원 약력: 1958년 연길 출생. 1998~2017년: 연변 작가협회 부주석 역임. 연변일보사 편집국장. 연변문화예술연구소장 역임.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제1회 연변지용시문학상 수상), <작은 시 한수로 사랑한다는것은...>,<바다가 육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등 출간. 현재 연변포석문학회장. 연변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협회 회장.
  1. 가을편지 보고싶은 사람에게 모두 편지를 띄우라
그러면 그중 돌아오지 않는
편지가 있다
 
그리고
굳이 기다리지 말라
어떤 편지는 락엽으로 아름답게 내려
땅에 따뜻한 체온을 불어넣어주고
 
어떤 편지는 낡은 파편처럼
땅에 떨어져 녹이 쓴다
 
어떤 편지는 글자글자마다
한알한알의 밀알 되여
어느 따뜻한 가슴에 심어졌다가
이듬해 봄에 피여나리니
 
굳이 사랑을 탐하지 말라
사랑은 긴 인내의 시간으로
봄까지 기다리고 기다려볼 일이다.
  2.  씨 앗
    
 바람속에 청자빛
고운 무늬를 새기고
어둠의 턴넬속에
차거운 라신으로 외로와도
긴 세월
기다림을 아는자
천년동안 푸른 울음을 울고
천년세월 해빛속에
눈부신 작은 섬으로 남는다.  3.
세상읽기  시골은 반디불과 반디불이 서로 밝혀
외롭지 않고
 
거치른 지붕우에 내려도
달빛의 차거움을 모른다
 
비여있는 뜰에는 매일같이 해빛이
내려서 노닐고
 
걸인 같은 초가앞에는 비둘기가
사모곡을 연주한다
 
시골은 골골마다 작은 풀잎 하나도
또렷한 이름을 지니지 아니하고
사시절 사립문가에 편지 한통 없어도
푸른 주문이 매일 익어가고있다
 
시골은 립스틱이 빨간 아가씨의 꽃가게
아니라도
무수한 꽃들이 렬을 지어 해빛과 입맞춤을 하고있다
 
우리가 시골서 꽃 하나 감히 밟지 말아야 함은
꽃과 꽃이 마음을 부딪치며
매일매일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해나가기때문이다
노래는 날마다 어두운 새벽을 깨우는 때문이다  4.
동해바다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에 가면
유난히 크고 밝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해가 있고
비취색 바다는 깨끗하다 못해
바다속에 있는 광어, 고래치, 문어…가
손에 집힐듯 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라진시 웅상군 앞바다에 가면
유난히 크고 밝은 아침 해가 뜨는 동해가 있고
비취색 바다는 하늘보다 맑고 청청해
수십길 바다도 거울같이 들여다보이는데
지난해 속초 앞바다에 있던
 
광어, 고래치, 문어…가 이곳에 와서 즐기면서
하나의 바다
하나의 식솔
하나의 보금자리라고들 한다.  5.
백두산  전설은 가고
전설의 언어 껍데기만 남았는데
이제 그 청청한 빛의 소리
언어는 안개처럼
사라질것인가긴 긴 세월
수많은 전설들을
봉우리마다 뿌리내리며
하나의 민족
하나의 력사
하나의 꿈을 길러오시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
아름다웁던 전설은 가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수모의 날들을
 
참고 견디는
애처로운 어머님의
젖은 눈동자. 
6. 사랑연습  사랑을 하기 먼저
새벽마다
철뚝밑
키 큰 나무들 사이에 끼여사는
어린 꽃 하나를
착실히 가꾸어가는 연습을 하자
 
사랑한다고 말하기전에
자기가 아는
모든 꽃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평화로 맥맥히 이어지던
소꿉친구들의 별명도 하나하나
기억해 올리는 연습을 하자
 
사랑을 하기 먼저
비둘기도 서너통 갖춰놓고
자연처럼
비둘기가 날아와
어깨에 내리게 하는
마음밭을 만드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또한
전날밤 술취한 장소에서의
실언을 잊어버리듯
잊고서는 대견해하듯이
조금씩 좀씩
잊어버리는 연습을 하자.  
▲ 이생에서 반드시 이루고자 소망탑이 사람 얼굴을 하고 손님을 맞는, 그곳의 시를 찾아본다... <편집자>
 7.
천 지  세상에서 가장 큰
천연거울이다
맑고 파아란 거울속에
우리는 매일 머무른다
 
거울속에 있는 마음들은
일년 삼백륙십오일
항시 깨끗이 가리마 내고
한소리 내고
하얀 빛으로 세탁을 한다.
 8.
원추리  새각시들 가슴에
피여나는 꽃이다
 
가슴에 노랑꽃
꺾어다 꽂으면
생남한다는 상서로운 꽃
시골 새각시들이 부끄러워
저고리 고름 풀고 속가슴에 살짝
숨기고 다니는 꽃이다
 
원추리 꽃밭으로 가자
꽃피는 윤사월
사랑에 푹 빠져버린
젊고 예쁜 녀인들이 있다  9.
꽃의 언어  꽃의 언어는
무지개보다 더 빛나는것
 
선화야, 경아
우리가 불러줄 때
꽃은 아침에 피는 신선한 몸짓으로
그리고 밝은 모습으로 대답해주고
백일홍, 방울꽃, 아이꽃…
하고
이름 지어주면
비에 젖지 않은이만이 듣게
구겨지지 않은 마음만이 받게
대답한다
 
꽃의 언어는
수정보다 더욱 순수한것
 
형님, 교수님, 국장님…
하는 직함이 하나도 없이
프랑스어, 라틴어, 영어, 일본어…
계선이 없이
꽃의 언어는 숨쉬고있다
 
꽃의 언어는
꽃만이 서로 통하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슬픔을 위로할줄 알고
꽃의 언어는

한두돌이 되는 아이들만이 듣는
소리 나는 말이다.  
▲ 만경대의 전설을 가만히 들어본다...<편집자>
10.
락  조 
           
 
육십이라는 휘우둠한 언덕을 올라서서야
비로서 저 멀리 사랑의 색갈이 보인다
 
사랑은 아침에 피여나는 화사함보다는
저녁의 강뚝 산책길을 밝혀주는
은은한 달빛이였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봄날의 햇구름처럼 흘러가는
이십대라면
사랑도 봄날처럼
황금의 빛갈 따라 오고 가고 하겠지만
 
세월의 락조가 비껴가는 오후 즈음
애상한 노을처럼
사랑은
흔들리고 흔들리다가
석양노을빛
은은한 빛갈을 머금고
떠나는 모습이 멋스럽다.
 
 11. 슬픈 시
 
 
이 현란한 봄을 맞기엔 나의 시가
얼마나 초라한지 모른다
 
오늘의 세상은
빛과 속도의 화려한 잔치판
 
우리가 잠을 자고 일어나기도 전에 또다른
새 세상이 잉태하거니
 
릴케(*)의 가슴으로 사랑을 노래하던
폼나고 여유로운 봄날은
이미 흘러가 버린 옛노래
퇴색한 기발처럼 허공에 나붓기고 있나니
  
이제 녹슬은 펜과 종이에다가
시를 엮는것은 볼일없는 짓거리가 아닌가 사랑에는 지탱 못할 아픔도 있는데,
시에는 밤바다같이 깊고 외로운 사랑도 있는데
 
그런 여유로움이 어디 잠잘데가 있는가
아침의 피여나는 해살을 붙잡고 시를 엮을만큼
그런 한가로운 짓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나의 슬픈 시는
세기의 부역자나
거리의 로숙자처럼
다시 나의 심장속을 파고 들어와
정갈한 노래를 만들고 있나니
 
이제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수없이 맹세하던 어제밤의 고백을 잊어비린채
오늘도 나는
하늘 닮은 호수가
나무가지 사이를 새여 들어오는 해살처럼
혼줄을 담아다가 시를 엮는다
  
*릴케-19세기 독일 시인.
 
 12.
꽃   잠
 
친구들이 멀-리
배낭 지고 하나 둘 떠나고
한줄금 해살만이 내 방에 남아 나를 지켜주네아직은 한뼘 되는 공간이 남아 있고
나를 피울수 있는 한줌 흙이 있어서 좋네새벽이면 초롱꽃보다 더 작고
더 보잘것 없는 꽃들이
무수히 피여나 나를 반겨주고
귀가할때면 먼지를 뒤집어 쓴 나의 가슴을
윤기나게 세탁을 해 주네무수한 욕심들이 쓰나미처럼 세상에 번져갈대도
작은 꽃밭에서 나는
아직도 해살이 감겨드는 한줌 흙이 있어서
오늘도 흙냄새에 취한채
멀쩡하니 꽃잠 자고 있네
 
 
13.  고향집
 
시는 나를 이끌고
모아산 언덕길로
오르자고 한다하얀 해살이 머무는 곳
나의 옛 달래동 고향집이
그대로
나를 붙잡고 놓지를 않는다세월은 흐르는 구름처럼 흘러흘러 갔건만
나의 옛 고향은 오늘도 봉창문 닫고서
오롯히 기다리고 있다수십여년 도시에서
헐레벌떡 동분서주하던 걸음 멈추고
옛 사립문 살며시 밀으니
엄마,
계시다   14.  홍시
                           
   
청자빛 가을 하늘 아래
홍시가 걸려 있네날이 새고 눈을 뜨니
어느덧 내 뜰안에 익어 있네 저렇게 맑고 고운 홍시를
 나는 여직 본적이 없네청산류수같이 하많은 세월
흘러 지나가도
여직 만난적이 없거니                                                        
오늘밤이 다흐르기전에
내일 찬서리가 새벽을 불러오기전에 저 홍시를 내 눈동자속에
가둬놓을수가 있을가,추풍에 락엽들이 모두 지고나면
졸고 있는 까마귀도 그 앞에서
얼굴 붉힌다는 홍시                                                        
지금 저멀리
마지막 가을 해빛이 타들어가는
북녁 마을 연변에도
마지막 눈서리가 내릴 즈음일러니오오라, 이제 농익어서
꽃가루 부서지는 냄새
천지를 진감하면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으리
-2018년 10월 한국 충북 영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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