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55]송연옥의 수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외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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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55]송연옥의 수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외2편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9.03.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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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곁에서 일어나는 신상의 이야기를 살살 풀어내며 삭이고 기어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가는, 그것이 수필인생인 것 같다...<편집자> 

 

▲ 송연옥 약력: 흑룡강성 계서시에서 출생, 필명 송 이. 중학시절부터 작품 발표 시작, 각종 간행물, 방송 등에 60여수(편)발표,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 북방문단 흑토문학상 수상, 다인집“흑룡강땅에 핀 야생화”(한국 초지일관출판사)등이 있음. 흑룡강신문 산동지사에 근무. 2008년부터 한국에서 거주, 현재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전자상거래 사업자.

 제1편

벚꽃이 필 무렵이면

송연옥

 

4월은 나에게 잔인한 계절이다. 4월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데 그 중에는 벚꽃이 절정을 이룬다. 벚꽃을 보면 5년 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기억의 빗장을 열고 튀어 나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무거움의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벼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아픔이 복사한 듯이 고스란히 머리에 남아 있다.

5년 전 4월의 어느 날 나는 병원으로부터 유방암진단을 받았다.

그때가 마침 벚꽃이 가득 피어 있을 무렵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병원에서 진단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은 나에게 슬픈 풍경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나는 순간 가장 가까운 남편부터 내 주위 모든 사람들 한명 한명씩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자괴감에 들었다. 내 인생의 수레바퀴는 어디서부터 잘못 돌아간 걸까?!

한번쯤은 이렇게 글로서 이 힘들었던 시간들, 이겨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싶었다.

5년의 투병생활이 없었다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지금처럼 많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지나왔기에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보람찬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 그 시간들, 5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암,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암진단을 받는 순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인생 다 못 살고 이렇게 곧 가는 건가?…두려움과 공포가 순간순간 나를 찾아왔다. 나의 아픈 육신과 함께…과연 누가 죽음 앞에서 담담해지고 초연해질 수 있을까?…

항암 2차를 마친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데 머리카락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베개수건 위에 떨어졌다. 치료 끝나면 다시 자란다는 누군가의 귀띔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에 나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졌다. 동네 미장원에서 삭발하는데 어디서인가 꾸역꾸역 모여든 슬픔의 조각들이 비수처럼 마음을 찔렀고 나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정상세포까지 죽게 만드는 강한 항암제 때문에 다른 기관들이 기능이 떨어져 신장내과, 안과, 내분비내과 등 다른 분과들을 전전하면서 나는 8차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부친상, 그리고 이 세상과 저 세상

그해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걸려온 한통의 전화, 부친의 사고 소식이었다. 어딘가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아버지는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설상가상,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나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너무도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간 아버지, 사고 직전 고통스러웠을 그 끔찍함, 그리고 못난 자식 도와주려고 일하러 나갔다가 당한 사고라는 생각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게 했다.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아버지와 같이 한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투병중이라는 이유로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것을 왜 자식들은 항상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일까.

아버지는 떠났는데 장례식을 마칠 때 까지도 아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납골당에 모시고 날이 갈수록 상실감이 마음을 파고들었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내 힘과 노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절망으로 다가왔고, 순간순간 마음에 찾아오는 그리움과 아픔은 몇 년 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헤어져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서야 나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와의 모든 추억과 기억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데 정작 사랑하는 아버지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아버지는 한줌의 재로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

항암중에 아버지를 보내고 나는 또 투병과 치료를 이어가야 했다.

가슴전절제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수술을 포기할거라고 했다. 설득하려는 가족과 의료진을 피해 도망 다녔다. 게다가 전절제를 대비한 복원수술 때문에 성형외과 진료를 받아야만 했는데 성형외과 의사를 마주하고 설명을 듣는 순간 견디기 힘든 슬픔 때문에 오열 속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여자에게 가슴이 갖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일까…건강할 때는 소중한 줄 몰랐던 가슴, 가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는 의료진의 세 번의 설득으로 결국 수술 받기로 했다.

어머니와 남편의 배웅 속에 수술실로 향했다. 그 시각,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지……수술전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어머니, 미안합니다……”한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건강하게 낳아준 몸을 잘 간수 못한 죄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이 마음에 가득했다.

수술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끼는 죽음 같은 외로움, 이대로 갔다가 못 나올 것 같은 두려움, 그 곳은 수술을 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통로 같았고 수술 전 마취를 하는 순간, 내 육신은 이미 완정한 내가 아니었다. 마취로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수술 전과 수술 후의 나로 달라져 있었고 인두 같은 수술자리가 흉터로 남았다. 간절함 때문일까, 성공적으로 마친 부분 절제수술로 나는 건강과 한발자국 가까워 졌다.

30여일 매일 매일 진행된 방사선 치료로 피부는 거멓게 어두워져 갔고 그때의 치료 후유증으로 아직도 피부에 가끔 상처가 나곤 한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

못살 것만 같던 괴로움, 그리고 슬픔, 그리움들이 시간 속에서 쌓이다가 허물어지고 또 쌓이다가 허물어지기를 5년,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그리움 속에 나는 괴로우면 괴로운 데로 슬프면 슬픈 데로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대로 그렇게 세월을 살았고, 이제는 고인이 남기고 간 추억으로 살지만 그리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 순간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무디어지고 옅어지고 연해져 갔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던 그 순간들이 지나고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리라. 또한 내일도 오늘처럼 살리라. 그 하루하루를 모아모아서 후회 없는 삶을 살리라. 이 순간 떠오르는 한마디“견딤의 크기와 깊이가 쓰임의 크기와 깊이를 결정한다.”나는 이 지구 위에서 어떤 쓰임으로 남을 수 있을까?

5년의 투병생활로 나는 좀 더 성숙된 자세로 내 인생을 마주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심각한 상황이란 없다. 심각한 것은 바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의 빛깔이리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인 것처럼 살자.

올해에 피어날 벚꽃들은 어쩐지 찬연하게 아름다울 것만 같다.

 2017년 1월, 내곡동 자택에서

 

▲ 감이 발갛게 익을 때면 마음도 농익어 마냥 풀어진다...<편집자>

제2편   

마당쓸기

 

마당에 툭- 감이 떨어진다. 익기 시작한 감은 떨어지는 순간 깨여져 주황색 속살이 터져 나온다. 마당에 감 세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감나무잎과 함께 감이 마당에 떨어진다. 이 계절이 되면 우리 부부는 일상중에 한가지 일이 추가된다. 바로 마당쓸기이다.

감나무잎이 크고 나무가 세 그루인데다가 나무가 크기 때문에 매일 한번이나 두 번은 마당을 쓸어야 한다. 주인집 내외가 2층에 살고 우리가 1층에 사는 데 어찌 생각해보면 마당을 사용하는 사용료같은 거라고 해 두자.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다. 아직은 낮에 더위가 있어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고 일 하면 모기가 물기에 모기향은 필수로 피워 놓고 쓸어야 한다. 잠시 잠깐이라도……. 

가끔 우리집에 놀러오는 지인들은 산이라는 자연경관과 마당, 텃밭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부럽다고들 한다. 물론 얻는 것이 많다.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차 한잔 하고 음악 듣고 수다 떨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식탁이 풍성해지고 봄, 여름, 가을을 자연속에서 지낸다는 것 역시 축복이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감수를 해야 한다. 오래 된 주택이다 보니 화장실, 욕실도 밖에 있고 여름이면 벌레의 습격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하고 장마철에는 습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게 있기 마련, 여름의 불편함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기다려질 때면 다 잊으니 또 한해를 보낼 수 있는 면역력을 그때 키우는 것 같다.  

언제 마당을 쓸어봤을까…… 시골에 살 때는 어린 시절이라 쓸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진 마당쓸기를 한국의 서울에서 체험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할 때가 많다. 우리집 청소 담당은 남편인지라 대부분 그이가 쓸고 나보고도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비자루를 들게 된다. 대충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쓸고 난후의 기분이 좋아진다. 사르륵사르륵 소리내며 비자루의 끝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려가는 낙엽, 그 낙엽을 보며 청소의 즐거움과 가을이라는 계절과 단풍이라는 색채도 느껴본다.  

가을에 많은 사람들은 수확을 생각한다. 자연속의 많은 현상이 그리 말해주기 때문이다. 봄에 파종을 하고 가을에 수확을 하듯 우리네 인생도 젊을 때 뿌리고 나이 들어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나는 요즘 마당을 쓸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굳이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여야만 할까...농작물같이 익는 농사는 그렇다쳐도 마음속에 가을은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또 다른 시작일수도 있을 것이다.  

마당을 쓰면 낙엽으로 덮혔던 공간이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모습이라기보다 낙엽이 내려 앉기전 모습이리라…그래도 그 시간 그 공간은 한번뿐이니 새로운 모습일수도 있을 것이다. 마당을 쓸며 내 마음의 먼지도 쓸어 본다. 빗질 한번에 마음 한번 쓸고 빗질 두번에 마음을 두번 쓴다. 누군가에게 담았던 서운함, 미움, 원망 등을 쓸어내고 용서와 이해를 그 자리에 담아 본다. 마음이 편해진다. 미움의 상대가 변한 건 아니고 변한 건 내 마음뿐인데 마음이 행복해진다. 마음을 청소하며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내일을 시작한다면 가을은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항상 스타트가 늦어 막바지에 힘을 내 일등을 쟁취했던 학창시절 백미터달리기가 생각난다. 출발이 좀 늦으면 어떠하리…… 출발이 늦다고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목적지를 바라고 더 힘을 내 뛰어가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 마음 또한 시작과 과정, 결과라는 것은 내가 정하는 법, 이 가을에 수확다운 수확을 못했다면 새로운 시작으로 출발선에 서 보자.  

가끔은 하늘도 쳐다 보고 코스모스 보며 잠시 쉬어가기도 하자. 내 방과 몸을 깨끗이 하듯이 마음도 비워서 깨끗이 해 보자. 비우고 희망, 믿음, 사랑을 담아 보자.  

늦은 기상을 하고 문을 여니 오늘도 먼저 마당에 낙엽이 반겨준다. 쓸어달라는 듯이 누워 있다. 그 낙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을은 가을인데 이 가을이 작년의 가을은 아니고…마당 쓰는 나도 작년의 내가 아니다. 내가 오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 뿐, 오늘도 마음을 청소하며 시작하자……. 

가을비가 내린다는 예고에 맞게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비가 내리기전에 마당을 쓸어야겠다. 나에겐 매일 매일이 시작이다. 그 시작을 마당쓸기부터시작하자……. 

감나무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마당쓸기는 계속된다.  

2017년 10월 10일 내곡동 자택에서

  

▲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이 밤에 무슨 말들을 하고 있을까. 넘 궁금해서 죽을 지경인데...<편집자>

제3편  

우리집 비정상회담

 

13억 인구중의 한 녀자와 5천만 인구 중의 한 남자가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중국을 대표하는 녀자와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가 한집에서 사니 두 사람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 아닌 정상인 셈이다.

서로 다른 나라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는 뜻이다. 굳이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가정에서 몇십년을 살다가 한 집에서 살다 보니 부딛치는 일이 없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결혼해서 3년이 고비라고 하고 3년을 넘기면 5년, 7년이 고비라는 말도 들은 것 같다. 련애할 때는 서로의 다름에 끌린다고 하지만 결혼해서는 그 다름 때문에 싸우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사랑의 설레임은 길지 않다는 것이고 부부의 많은 시간은 책임감과 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불 같은 련애와 신혼이 지나고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일년, 이년 해가 거듭할수록 결혼전의 내 꿈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안정된 수입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원했으나 남편은 취직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질 못했다. 자신이 오너를 했었기에 본인만의 경영마인드로 새로운 회사의 중간관리직에서 적응을 못하고 취직과 실직을 번갈아 갔다. 그리다 보니 재취업을 하기까지 공백기간은 오롯이 나의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니 세계에서도 물가가 높은 수준인 서울살이가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안의 모든 수입과 지출 그리고 가정운영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가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 나가는 편이라 남편 만나기 전에도 그런 독립된 성격으로 살았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와 다투는 것도 싫어하고 더우기 여자들이 잘 한다는 잔소리도 잘 못한다.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립장에서 생각을 하면 내가 굳이 잔소리를 해야 하나 싶어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나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지라 서운한 게 생기고 참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그때면 우리 집 비정기적인 비정상회담을 내가 주도로 열게 된다.

소통이라는 것이 대화이고 대화를 할 때 서운한 감정을 많이 담으면 싸움이 되기에 대화야말로 지혜가 필요한 소통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마음에 서운함이 있어도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기에 웃으면서 “여보, 우리 중한회담 좀 합시다.” 하고 제안을 한다. 그렇게 차 한잔 나누면서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를 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니 우리집 비정상회담은 국가간의 정상회담과 같이 문제해결을 위한 회담이요, 이 가정을 더 화목하게 행복하게 꾸려 가기 위한 대화의 방식이다.

몇년전까지는 이런 비정상회담이 한달에 한번 열릴 정도로 자주 있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해 두해 흐르다 보니 삶의 지혜가 생기고 회담은 해를 거듭하며 차수가 줄어들었고 요즘은 거의 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서운함이나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서로를 완전히 받아 들이고 체념하였다고 할까…

부부금슬이 좋아지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결혼초반에 자주 부딛쳤던 리유가 바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남편은 정리정돈을 잘 하는 편이지만 대신 요리는 잘 못한다. 나는 요리는 잘 하지만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한국가정생활의 정서상, 남편은 나에게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여러 번 불만이 오가고 나서 내가 말했다. “우리 서로를 바꾸느라 하지 말고 각자 잘 하는 걸 합시다, 당신은 청소당번, 나는 주방 요리부 담당으로 삽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을 하고 받아 들였다. 그렇게 또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남편과 만난 지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그 동안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비 정기적인 비정상회담이 한몫을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까 하고 고민을 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마련이다.

앞으로 우리 집 비정상회담은 문제 해결을 위한 자리 보다는 좋은 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자리가 될 것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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