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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54]신매화 수필 '엄마의 향기' 외1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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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7  10: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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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수필은 기억을 부드럽게 풀어쓰는 작업인지 모른다. 신매화 선생은 수필 '커피'를 타는 연습을 많이하고 있다. <편집자> 

 
   
▲ 신매화 약력 : 중국 동녕현 조선족소학교 교사.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연변조선족 자치주 아동문학 학회 회원. 흑룡강신문사 여성수필 공모 동상, 2012년 한국신춘문예상. 현재 한국 체류 중.

제1편

엄마의 향기                                                    

 
신매화


한국에서 돌아온지 20여일이 지났다. 한국에서는 꽃축제도 참 많았다. 매화꽃축제부터 시작하여 메밀꽃축제까지 계절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꽃축제들이 화려하게 열리고 있었다. 마치도 한국의 꽃들은 어떤 축제를 위해서 피여나듯이. 중국의 북방에 자리잡은 내 고향도 한창 꽃피는 계절이다. 뜰안의 연분홍 앵두꽃, 하얀 살구꽃과 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 꽃향기를 풍기고 있다. 산에도 들에도 어느새 꽃들이 만발하지만 축제는 없다. 축제가 없어도 이모쁘게 피여난 꽃들이 풍겨주는 진한 향만이 가슴 가득 넘쳐나고 있다. 

꽃향에 취해있노라니 문득 엄마도 한점 이름없는 꽃향이 아니였을가 생각된다. 고향의 꽃처럼 어떤 화려한 축제가 없어도 자식에게 자신의 남은 한점 향까지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런 꽃향이 아니였을가고.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산에 들에 일하러 다녀오면서도 언제 한번 다른 집 엄마들처럼 철철이 피는 꽃가지들을 꺽어온적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품에는 늘 꽃향기가 숨겨져 있었다. 분처럼 보얗게 흙먼지 바른 얼굴과 파란 풀물이 든 손과 땀으로 얼룩진 하얀 적삼 잔등에서도 언제나 꽃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가끔씩 엄마가 따다가 가만히 건네주던 달콤한 산딸기, 새큼한 산딸기나 고소한 깨암들에는 엄마의 향이 묻어서 더욱 달콤하고 맛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머루잎에 정히 싸다가 주던 산딸기 향은 수십년이 지나간 오늘도 입안에서 넘치고 있는것은 언제나 내게는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어서일것이다. 
밤늦게까지 토닥토닥 다듬이질하여 새로 꾸민 이부자리에서는 엄마의 향기가 그윽했으며 희미한 등잔불밑에서 해진 우리 옷들을 기우시는 엄마의 얼굴에는 꽃향기 같은 미소가 가시줄 몰랐으며 앞뜰의 살구나무 밑에서 아버지의 약을 달이시던 엄마는 살구꽃보다 더 진한 향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엄마의 향기는 사계절 사라질 줄 모르는 향기였다.
입맛 돋우는 봄나물 반찬은 엄마의 거칠어진 손 향기였다. 일하다 쉼에 캔 엄마의 달래와 민들레와 냉이는 우리 집 밥상에서 향기를 풍기며 밥상을 풍성하게 하였으며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이 캔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산나물은 엄마의 지친 물집투성이 된 발 향기였다.
여름날 터전의 오이와 도마도 향은 언제나 엄마 품에서 춤추었고 가을날 옥수수와 고추향기는 엄마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으며 겨울새벽 마당의 눈을 쓸고 들어온 엄마의 상큼한 눈꽃향기는 나의 코끝을 쨍 하게 하였다. 그것은 엄마만의 향기였다.

그때는 엄마가 꽃향기가 좋아서 뒤뜰의 포도나무 밑에 앉으셔서 먼 곳을 응시하는 줄 알았지 멀리간 오빠와 언니의 걱정이 엄마를 잠시나마 포도꽃향기에 취하게 하는 줄을 몰랐다. 가을날 벼를 베다가 잠간나마 누렇게 익은 벌판을 바라보는 것도 가을 향기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지 아직도 다 못낸 나와 언니의 학비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가을민들레를 캐서 말리는 것을 보면서 엄마는 민들레 향이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지 아빠의 병을 위해 약재로 캐는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어쩌면 힘든 세월과 함께 야금야금 파먹은 엄마 몸에서 풍기던 향기는 우리 다섯남매가 의젓하게 자라날수 있던 그 무엇으로도 살수 없는 비타민이 였던 것이다.

불혹이 나이를 넘어서도 아직도 엄마의 향기속에서 살아가는 나다. 
그 소중한 향기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그 소중함을 가끔씩 망각하면서 살기도 했다. 나도 이젠 엄마라는 리유로, 내 엄마보다는 내 자식을 언제나 앞에 놓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들애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고 아들의 옷들은 철따라 꼭꼭 챙겨주면서도 엄마에게는 선물하나 온전한것 사드리지 못했다. 한주에도 몇번씩 아들과 통화하면서도 엄마에게는 명절이나 생일에나 문안하는 것 뿐이였다. 

나도 엄마라는 리유로 엄마의 향에 묻혀 있으면서도 그 향을 소중히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한국에서 부랴부랴 돌아와서도 며칠이 지나서야 엄마를 찾아갔었다. 귀국 전날까지 출근하다보니 엄마에게 가서야 내 손이 비여있음을 보았다. 아들에게 줄 선물들은 이미 틈틈히 갖췄었는데 엄마에게는 그냥 고향에 갈 때 사지 하면서 미루다가 결국 빈손으로 엄마를 마주앉은 것이였다.
“휴, 너 많이 축갔구나. 몸 좀 챙기면서 일해라.”
빈손으로 나타난 딸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딸을 위해 정성 담아 키우던 닭을 잡아 닭곰을 해놓고 내게 고기를 뜯어주는 엄마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세월이가도 지지 않는 엄마의 그 진한 향 때문이였으리라. 언제나 어디서나 사라질줄 모르던 엄마의 향기였다.

천사처럼 고왔던 엄마가 우리 다섯 남매를 위하여 허리끈 졸라매고 가시밭길 헤쳐가며 살아오실 때 엄마의 그 향기는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로 되여 끊임없이 흐르고 흘
렀다. 하지만 지쳐온 세월만큼 쪼그라지고 말라붙어 버린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세월이 그토록 흘렀건만 여전히 사라질 줄 모르는 향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문득 맹자의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십여년 엄마의 향기를 맡고 머금으며 살아온 나에는 왜 엄마의 향기가 담겨 있지 않았을가? 그러니까 향기는 꼭 꽃속에서만 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사람에게서 품향이 나타나듯 어쩌면 향기는 꽃을 속으로 머금고 있을 때의 숭고함과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아닐까. 후날 나는 어떤 모습, 어떤 향기로 아들애에게 기억하게 될것인가? 계절의 꽃향기속에서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수필2

정상

  
 
가을이다. 나는 지금 북한산을 마주하고 있다.
주간에서 야간으로 일 바뀌는 사이의 휴가, 그 틈을 북한산 나들이로 마무리하기로 하고 떠난 길이다.
한국100대 명산중에 하나인 북한산, 그 북한산을 아름답게 단장한 단풍들을 뉴스로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오늘 이렇게 내 발길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북한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시간은 열두시를 톱고 있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였다. 해발836.5메터가 되는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면 시간을 톱으로 켜도 모자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40여분 전철을 타고 한시간, 다시 버스타고 40여분 더 가야하는 회사. 래일의 출근을 위해서는 저녁 9시전까지는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총총한 하루 휴가의 일정, 결국 내 발길을 둘레길이 아닌 경험자들도 오르기 힘들다는 백운대 정상으로 향한다. 어차피 왔으니깐 정상에 올라야 하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내 욕심이 바위길을 선택한 것이다.
나무계단으로 시작되는 산입구와 산기슭의 밋밋한 오솔길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이 점점 험해지기 시작했지만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단풍잎을 잡고 갖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바위에 걸터 앉아 정상과는 무관한 한담을 늘여 놓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데 신경을 도사릴 여유가 없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은 가파르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닳다보니 미끌미끌한 곳도 많아 지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였다. 안전줄도 늘여져 있었다. 나는 잠간 휴식하기로 하고 길옆에 비켜서서 목을 추키면서 산꼭대기를 올려다 보았다. 점점 더 험한 코스가 나타나고 있었다. 한사람만이 올라갈수 있는 좁다란 반질반질 닳아진 바위길은 길가의 삐여진 바위나 나무라도 잡지 않으면 한걸음도 옮겨딛기 어려웠고 미끄러워 사고가 나지 않게 한결 조심해야 했다. 길옆의 가끔씩 보여지는 표시판으로 봐서는 백운대가 아직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직 멀었어요?”
내려오는 등산객과 물었다.
“아니요. 거의다 왔어요.”
그의 대답에 다시금 힘내여 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쫓는 시계바늘은 편히 앉아서 쉬여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 할수 없었다. 무슨 일에서나 정상에 올라야만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 도저히 포기라는 단어를 용납할수 없었다. 마침내 정산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안전줄이 보였다. 바위벽에 붙어서서 안전줄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마침내 커다란 화강암을 딛고 정상을 밟았다.
하자만 정상에 오른 더없는 성취감과 기쁨으로 머리를 드는 순간 북한산보다 더 높은 산이 나의 시야를 잡았다. 북한산 정상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웬 일일까?

산우에 산이라더니 갑자기 북한산 정상에서 맞혀오는 다른 산에서 우리 삶에도 정상이 없다는 느낌이 뇌리를 쳤다.
인생의 정상은 무엇이 였을가? 한번 다시 되새겨 본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내가 부지런히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다그치는 사이에 많은 등산객들은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해 있었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즐기는 사람들과 산중턱의 빨갛고 노랗게 물든 예쁜 단풍잎 구경,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옆의 넙다란 바위우에서의 가족끼리 혹은 동아리 끼리 즐거운 식사시간, 올려다 보이는 주위의 다른 산봉들과 단풍나무앞에서 기념사진도 찍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정상만을 바라고 발걸음을 다그친 내게는 내가 걸어온 뒤에 잃어버린 가을향들로 그들먹해 있었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단풍잎도 멋진 나무도 집채같은 너럭바위로 만들어진 북한산의 멋진 모습도 느껴보지도 못한채 정상에만 올랐다.

정상만을 바라고 고개를 숙이고 걸음만 다그친 나, 그런 내가 흘려버린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면서 나는 마침내 내 삶의 정상을 떠올려야 했다. 북한산 정상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하듯 크고 작은 일에서 매순간 마다 언제나 정상만 바라보고 달리다보니 스치고 잃은 것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어쩌면 삶의 매순간마다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 차 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스치는 바람처럼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무슨 일에서나 항상 정상으로 향해 신들메를 조이다 보니 많은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말았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매우 소중한 것들이고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생의 행복을 맞추어간다는 것도 모르는 채 그 무슨 일에서나 오직 정상에만 도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얼굴은 항상 굳어져 있었고 삶이 힘들고 버겹고 외로운 것이 아니였을까?

어쩌면 살아오는 동안, 그 순간순간들 모두가 내게는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였을 것이다. 내게 힘들고 지쳤던 일들까지도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돌아봤으면 또 다른 잎새가 되었을수도 있다. 허나 나는 허위허위 앞만을 보면서 뛰여왔다. 북한산을 딛고 서서 그보다 더 높은 산을 쳐다보듯 하나 또 하나의 인생의 정상에 오르겠다고 발버둥쳤지만 어쩌면 인생 자체에는 정상이란 존재도 하지 않고 끝없는 욕심만이 내 눈을 흐리게 한 것이 아닐까?

크고 작은 일에서 언제나 정상만 바라보고 달리다보니 스치고 잃은 것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가족과의 함께 보내야 할 정겨운 시간도 친척간의 오고가야할 따뜻한 정도 친구와의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우정도 동료지간의 정다운 관심도 나는 많이 잃은 것 같다. 남보다 더 좋은 아파트를 얻기 위하여 나는 방학간에도 동료와 가족들의 만류도 마다하고 한국행을 했다. 몇 년간의 노력으로 크고도 널직한 아파트를 갖게 되였건만 나는 또 동료가 끌고 다니는 멋진 외제차가 눈에 안겨왔고 또 해변도시의 해경 (海景)이 바라보이는 별장이나를 유혹하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나는 마침내 하산을 준비한다. 하산은 바위길이 아닌 둘레길을 선택한다. 내가 이미 지나오면서 보지 못한 가을의 풍경은 내 몫이 아니듯 과거에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후회보다는 내가 가야 할 길에 마주할 풍경들을 주으면서 가리라 다짐하면서 하산을 준비한다. 북한산 정상을 향해 오르듯 살아야만 하는 또 다른 내 삶의 여정을 정상만이 아닌 내 주변의 작고 사소한 풍경들로 가득 채우면서 살리라 다짐하며 나는 그렇게 하산을 준비한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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