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이 이전에,뮤지컬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더 쉽게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 서구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를 테면 <캣츠>와 같이 여러 번 들어 귀에 익어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뮤지컬은 더 광범위한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랑스어 뮤지컬 <로큰롤 모차르트>가 이토록 열기가 뜨거울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암표상을 통해서도 티켓 한 장 구하기 어렵다. 현장의 분위기는 스타의 콘서트 같다. 뮤지컬이 중국에서 봄날이 왔을까?

중국신문주간기자/쿠이옌장(隗延章)

짱리(张力)는 이제 막 상하이문화광장극장에 앉았는데 조금 어색하다. 무대에서는 마침 뮤지컬 <로큰롤 모차르트>의 전반부가 공연되고 있다. 곡의 반주가 울릴 때마다 젊은 관중들은 환호하고, 소리지르며, 심지어 무대옆으로 달려나가서 배우와 교감을 한다. 이렇게 떠들썩한 장면은 뮤지컬현장에서는 극히 보기 어렵다.

짱리는 전에 베이잔(北展)에서 일했는데 이번에 뮤지컬의 현장분위기를 보고 심지어 그는 마치 쭝관센(纵贯线), 우웨텐(五月天)의 콘서트 같이 느꼈다. 후반부에 이르자 그는 분위기에 감염되어 저도 모르게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2018년초 <로큰롤 모차르트>의 상하이 첫 공연의 한 장면이다. 짱리는 당시 쥬우워이문화(九维文化)의 이사장이었다. 그의 회사는 뮤지컬 순회공연 주최를 주업으로 한다. 단일한 도시에서 공연하는 것에 비해서 순회공연은 뮤지컬의 질, 관중수량에 대한 요구가 더 높다. 짱리는 일 때문에 바로 이번 공연을 보았다. 직접 보고 <로큰롤 모차르트>를 전국공연으로 확대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2월 27일 그는 <중국신문주간>에 이 뮤지컬을 처음 보았을 때의 소감을 말했다. “시작할 때 나는 전통적인 뮤지컬 관객처럼 조용하게 앉아 있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이 뮤지컬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로 융합된 감정이 들었으며 마음껏 쏟아내려는 감정이 들었다.” 현재 짱리가 수입한 <로큰롤 모차르트> 순회공연은 이미 전국적으로 열기가 뜨겁고 팬 층이 두텁다. 그 전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작은 언어권인 프랑스어 뮤지컬 한 편이 암표상거래로 티켓 한 장 구하기 어려울 줄이야.

단지 팬들의 뮤지컬이 아니다

짱리는 공연을 보기 전 지난해 초에 이미 <로큰롤 모차르트>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었다. 줄거리는남다른 방식으로 개성이 충만한 모차르트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가 유럽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2009년 이 뮤지컬이 파리에서 공연된 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5주내에 전 프랑스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고, 11주내에 여전히 앞 5위내에 들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각지, 일본, 한국, 우크라이나 등 국가의 순회공연에서 모두 성공적이었다.

이 뮤지컬이 전세계를 들끓게 한 배후에는 높은 제작원가가 있다. 짱리는 이 뮤지컬의 원가는 1,000만 유로 전후가 된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 뮤지컬의 복장, 무대장치가 다른 많은 뮤지컬에 비해서 정교하다고 말했다. 전에 그가 다른 순회공연을 조직할 때는 도구를 운송하는 트럭이 대개 3~5대 필요했지만 이 뮤지컬 운송을 위해서는 10여대가 필요했다.

2011년, 이 뮤지컬 해외공연 현장에서의 동영상이 네티즌에 의해서 중국내 동영상사이트 B사이트에 업로드 되었다. 표현방식의 새로움과 주연의 개인적인 매력으로 이 뮤지컬의 배우는 중국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했다. B사이트의 방대한 팬 층이 짱리가 이 작품을 전국순회공연으로 바로 수입하기로 한 최초의 이유이다. 공연을 보기 전 짱리는 여전히 이것은 팬들의 뮤지컬이라고 걱정하였다. “팬들은 3, 5차례만 지탱하고, 순회공연을 지탱하지 못한다.”

공연을 관람한 뒤 짱리의 이전의 의혹은 사라졌다. “그는 제작이 정교하고, 프랑스극의 모든 장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프랑스극의 이야기 서술에서 힘이 부족한 약점을 피해갔다.” 이 전의 그의 경험상 전통적인 런던 서구 셰익스피어 뮤지컬에 비해서 프랑스어 뮤지컬은 희극성은 비교적 약하고, 음악성을 더 중히 여긴다.

2018년초 상하이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짱리는 무대 뒤로 가서 프랑스 측의 제작자에게 말했다. “내가 보건대 이 뮤지컬은 중국에서 OK이다.” 그러나 그는 제작자에게 몇 가지 수정 의견을 제출하여 이 뮤지컬이 중국관중에게 더 잘 받아들여지게 했다. 우선, 그는 전반부에서 10분간의 춤 관련 내용을 줄이기를 요구했다. “프랑스인들은 느리고 춤을 좋아한다. 중국 관중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춤은 연극줄거리가 시원스럽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밖에 그는 제작진에게 뮤지컬에 일부 중국적인 요소를 넣을 것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중국 가요 <말리꽃>을 부른다거나, 일부 지방특색이 있는 구어적인 토속어를 넣으라고 했다. 예를 들어서 베이징에서 공연할 때 ‘뉴비(牛逼, 쩐다)’, 상하이에서는 ‘뻬산(瘪三, 뜨내기)’, 광저우에서는 ‘푸쩨자이(扑街仔, 거지)’라는 지역 토속어를 넣었다. “모차르트는 품위 있는 공자가 아니고, 구속 없이 자유분방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런 토속어를 넣으면 모차르트의 인물성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짱리는 최근 <중국신문주간>에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러 매체의 장면도 조정이 필요하다. 모차르트가 사망하는 이전 장면에서 배경은 한 갈래의 흰 빛이었다. 조정 후에 하나하나의 시간통로처럼 검정 원들로 이루어졌다. <진혼곡> 음악에 맞춰 모차르트가 무대에서 솟아올라서 다른 한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전에 홍보할 때 팀은 자신의 팬들을 이용하여 홍보를 한다. 쥬우워이문화는 전문 팬들 중의 주요인물과 소통하는 것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뮤지컬 주변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배우와 만나고, 같이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주요인물의 뮤지컬에 대한 열정을 끌어올린다.

지금 <로큰롤 모차르트>는 이미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했다. 짱리는 평균 좌석 판매율이 90%이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중 구성이 예전과 다르다. 다른 뮤지컬 관중은 25세 이하의 여성이 10~20%인데, 이 뮤지컬의 50%는 25세 이하의 여성관중이다.

원래의 출연진(班底)

짱리가 최근 주관한 <로큰롤 모차르트>의 중국 순회 공연은 실질적인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실제로 그보다 먼저 뮤지컬을 수입한 것은 상하이문화광장이다.

페이웬훙(费元洪)은 상하이문화광장의 부사장이다. 몇 년 전, 그는 이 뮤지컬의 DVD를 보았다. 2,3년 전 그는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서 이 뮤지컬이 B사이트에서 열기가 뜨겁다고 듣고 인터넷에서 일부 단락과 정보를 찾아 보았다.

그는 그 때 B사이트에 이 뮤지컬의 조회수가 몇 만 차례에 달한 것으로 기억한다. B사이트에서 수입 대상 항목을 찾는 것은 그로서는 낯선 경험이다. 전에 그가 뮤지컬 항목을 찾는 것은 대부분 직접 유럽, 미국의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페이웬훙이 B사이트에서 이 뮤지컬과 일부 자료를 본 후, 이 것은 90후, 심지어 95후에 속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연극이라고 판단했다. B사이트에서 이 뮤지컬의 자막은 여러 팬들이 자발적으로 번역해서 “언어사용이 현란하고 심지어 조금은 궈찡밍(郭敬明)의 소설과 같았다”. 극중 로큰롤은 일종의 프랑스식 낭만이 있어 서정감이 강하여 젊은이의 입맛에 맞았다. 복장은 정교하여 B사이트 네트즌들이 극중인물을 코스프레했다.

이밖에 그는 모차르트가 자아를 추구하는 특질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역사상 작곡가의 처지는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데 모차르트는 그 임계점에 놓여 있다. 그는 자의로 궁전을 떠나기를 선택했고, 주류에 반항하는 독립음악가가 되어서 일생 동안 754편의 작품을 창작하고 결국엔 35세 한창 나이에 죽었다.

회사에 돌아와서 페이웬훙은 몇 명 1990년대생 동료와 교류하여 그들도 이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프랑스측의 제작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뮤지컬을 상하이에서 24차례 공연할 것을 희망했다. 그 외에 B사이트의 원래 멤버들이 출연하기를 희망했다. “프랑스어의 극은 왕왕 출연진이 극의 내용보다 중요해서, 관중은 누가 출연하는지 신경을 쓴다. 그러나 런던 서부와 브로드웨이는 이런 현상이 없다”고 페이웬훙은 말했다.

사실 페이웬훙과 상대방이 연락이 닿았을 때 이 뮤지컬은 이미 6년동안 공연이 중단된 상태였다. 2011년 순회공연 이 후, 제작진은 이미 해체되었고, 도구, 무대장치는 이미 소멸되었다. 중국측의 요청으로 프랑스 제작진은 다시 이 극의 구성원을 모집하였고, 도구의 일부분은 한국에서 빌렸으며, 나머지는 프랑스에서 다시 제작하여 항공편으로 중국으로 보내서 중국에서 조립하여 완성하였다.

“프랑스 뮤지컬의 배우 출연은 중단됐다 이어졌다 하는데 브로드웨이처럼 장기간 한 공연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사전에 그들과 얘기하면 기본적으로 섭외가 된다”고 페이웬훙은 <중국신문주간>에 말했다. 비록 그 공연이 이미 오랫동안 중단됐지만 같은 분야에서 다시 프랑스 뮤지컬 원래 제작팀을 모으는 것은 상상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다.

배우들이 중국에 온 후, 상하이의 극장 대관료가 너무 비싸서 그들은 지앙쑤(江苏)성 하이안(海安)시의 어느 극장에서 1개월 연습한 후 상해로 가서 정식으로 공연했다.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한 후에도 페이웬훙은 이 뮤지컬이 뜰 수 있는지 아직 감이 안 왔다. 티켓판매 시초에 그의 걱정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전에 티켓은 70%가 판매됐다. 총 24차례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서 티켓의 판매 열기는 더 뜨거웠다. 공연이 최종에 이르기까지 암표상은 3~5배의 가격으로 극장 밖에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페이웬훙은 <로큰롤 모차르트>가 상하이에서 첫 공연을 한 후, 초기의 상품 포장이나 홍보상에서는 별로 큰 특별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후에 이 뮤지컬이 왜 열기가 뜨거운지 회고할 때, 그는 더 깊은 원인이 중국과 프랑스 양국의 심미 유전자가 가깝고 모두 ‘사의(写意, 회화에서 사물의 형식보다도 그 내용•정신에 치중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를 추구하는 심미적 경향이 있다고 여겼다. “고대 중국인이 희곡을 볼 때,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 양식,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이 프랑스의 심미적 경향과 많이 닮아 있다”고 페이웬훙은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그가 뮤지컬을 수입하는 경향도 점차적으로 이 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에 비해서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의 꼽추> 등 프랑스 뮤지컬이 중국에서 왕왕 더 환영을 받는다.

중국의 수입 뮤지컬

지금까지 <로큰롤 모차르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언어 뮤지컬에 대한 화제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작은 언어 뮤지컬이 중국에 들어 온지는 이미 8년이 되었다. 뮤지컬 수입은 중국에서 하나의 큰 산업을 이루었는데 이미 17년이 되는 역사가 있다.

뮤지컬 수입이 중국에서 산업화의 출발점이 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상하이대극장과 영국매킨토시회사가 <레미제라블>을 수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레미제라블>은 2002년 7월 12일에 상하이대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됐고, 연속 21차례의 공연을 마쳤다.

그때까지 상하이대극장은 연속 10차례 이상의 공연을 한 적이 없었다. 한 번에 성공하기 위해서, 상하이대극장은 텔레비전, 평면매체, 고가도로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대규모 밀집형의 홍보를 했다.

첫 공연 전에는 단지 이후 21차례 공연의 30% 정도의 흥행성적을 얻었다. 첫 공연이 끝난 후 상황은 반전됐다. 더 많은 관중이 입소문을 타고 극장에 들어섰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500위안의 표가 암표상의 수중에서 2,500위안에 팔렸다. 최종적으로 전체 흥행수입은 1,200만 위안에 달했고 중국뮤지컬시장 산업화의 출발을 알렸다.

그 후 수년간, 상하이대극장에서는 매 해마다 한 편의 뮤지컬 대작을 수입한다. 2003년 <캣츠>, 2004년 <사운드 오브 뮤직>, 2005년 <오페라의 유령>, 2006년 <리어왕>, 2007년의 <맘마미야!>…….

이 기간 뮤지컬을 수입하여 연속 공연한 횟수는 최초의 <레미제라블> 21회로부터 최고로는 <오페라의 유령》> 100회로 주로 브로드웨이와 런던 서부 뮤지컬 중심이었다.

2011년 상하이문화광장이 건립되어 뮤지컬에서는 다원화의 경영 전략이 이용됐다. 후에 프랑스어의 <노트르담의 꼽추>, <로미오와 줄리엣>,독일어의 <모차르트> 등 작은 언어권의 뮤지컬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르기까지 중국내 관중은 해외로 가지 않아도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풍격의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해외에서는 매우 드물다. 페이웬훙의 경험상 미국, 프랑스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뮤지컬을 볼 수 없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프랑스의 뮤지컬을 보기 어렵다. 런던 서부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전혀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러시아의 뮤지컬을 볼 수 없다. “심층 원인은 이런 국가는 심미적으로 상호 호환성을 가지기 어렵기기 때문”이라고 페이웬훙은 말했다.

몇 개 국가의 뮤지컬에 대해서 중국 관중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낮지만, 런던서부의 뮤지컬과 <로큰롤 모차르트> 이 작은 언어권의 뮤지컬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는 비교적 좋다. 페이웬훙이 보건대 이런 경향은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유구하고 복잡한 역사, 특히 근대사는 역사상 전례 없이 복잡하고 거대한 변화가 있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정서와 사유상의 다양성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사상적으로 단순하고, 서정성이 부족하며, 형식이 ‘짧고 평이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예술작품은 왕왕 중국인의 마음속의 공감을 일으키기 어렵다.”

최근 몇 년간 2015년 베이징텐쵸예술센터(北京天桥艺术中心)의 설립 등 객관적인 조건의 성숙에 따라서 뮤지컬 시장도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과거에는 한 곳에서만 공연을 해서 원가가 매우 높았다. 현재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서 모두 공연한다면 해외 이동 경비 등 원가를 나눠가질 수 있어서 더 많은 공연을 와서 하려고 한다”고 페이웬훙은 말했다.

그렇지만 뮤지컬 시장은 여전히 아주 작은 시장이다. 중연푸화산업연구원(中研普华产业研究院)의<2017년 중국뮤지컬시장 규모분석 및 지역시장규모 현황>에 따르면, 2017년 중국 뮤지컬시장의 총 흥행수입은 3억4,800만 위안이다. 같은 해 영화의 흥행 1위인 <전랑(战狼)2>의 흥행수입은 56억8,000만 위안으로 뮤지컬시장 전년 총 흥행수입의 16배이다.

한 뮤지컬업계 인사가 이전에 일본, 한국 뮤지컬 산업의 발전사를 참고하여 1인당 GDP가 1만 달러에 달하는 시점이 뮤지컬 산업의 폭발점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사실상 일찍이 2015년 중국의 15개 성시가 이 표준에 도달했지만 뮤지컬 산업이 아직 폭발적이지 못했다.

현재 <로큰롤 모차르트>가 예상을 뛰어넘음에 따라서 사람들은 다시 하나의 질문을 한다. 뮤지컬 시장이 폭발 전야에 이르지 않았는가?

적어도 페이웬훙이 보건대 길은 아직 멀다. “이것은 GDP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는 극장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직 그렇게 많지 않다.” 한 차례의 취재에서 페이웬훙은 뮤지컬 시장에 대해서 “현재의 문제는 아직 진정으로 시장이 개발되지 않은데 있다. 아직 뮤지컬 시장이 블루 오션인지, 레드 오션인지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모두 아직 대양을 논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호수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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