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김학천 시인의 노래 가사 '장백송(长白頌)은 너무 유명하다. 장백산의 웅장한 기상과 또 그와 같은 조선민족의 도도한 기백이 잘 어울어져 중국 지역 여러 행사나 노래방에서 잘 불려진다. 그의 시도 스타일이 사뭇 큰 편이다. 중국 현대시와 조선족 시, 또는 한국 시의 장점들을 접목해서 자기만의 스타일에 스케일을 만들어, 또 스토리를 중시하며 시 창작을 해온 듯 싶다. 김학천 시인은 연변에서 중국어로도 시를 쓰고 한글로도 시를 쓰며 중국 글 시집과 한글 시집을 펴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편집자>    

▲ 김학천(金學泉) 약력 : 시인, 번역가.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 중국 연변작가협회주석 역임. 현임 중국작가협회소수민족문학위원회 위원, 중국시가학회 이사, 중국 신강사범대학 특약연구원. 시집 <찬연한 계절>, <봇나무숲 情結> 등 다부 출판. 번역시집 <민들레>, <은장도여 은장도> 등 다부 출판. 제4기, 제7기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수상. 제4회 한민족글마당문학상 수상.
     
             
                
 1

명   상

 

드디여 비는 멎는다
구름은 서서히 흩어지고
달이 얼굴을 내민다

달은 우에서도 아래에서도
살짝 웃으면서 서성이고
그 중간에는 봇나무 한그루가 처연히 서있다

“진시명월한시관”(秦時明月漢時關)이라더니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툴때
항우와 류방이 어이하여 형제가 원쑤로 되였던가

달은 그대로 진(秦)나라때의 달
구름과 봇나무와 나는
어느때의 구름과 봇나무와 나일까

스치는 바람에
바람보다 더 가벼운 꽃향기
나의 마음은 설레인다


      

  2

 

해빛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먼산은 흰색으로 찬연하다

푸르른 하늘아래
성스러운 광환속에
천년의 적설(積雪)은 흰빛으로 눈부시다

반만년의 로고한 전설이
반만년 한개 민족의 정신이
고스란히 하아얀 빛으로 섬뜩인다

원시림속의 봇나무숲
수많은 인간속의 백의민족
티없이 깨끗한 흰색에서 자아를 알게된다

봄날의 아지랑이와 여름날의 안개속에
그리고 가을의 찬비와 겨울의 칼바람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본다


     
  3

별다른 고독

 

방금 고향의 고독에서 헤쳐나와
금방 또 다시 타향의 고독으로 말려든다

해녕(海寧)의 밤하늘에 떠 있는 달님아
어이하여 서지마(徐志摩) 의 시처럼 이슬이 맺혔을까

와당탕 거센 진동 울리는 전당강(錢塘江)의 파도소리
이맘때면
시공의 테널을 뚫고 나가는 광음(光陰) 처럼
추석의 밤을 랑만과 허무로 현시한다

혹시는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을 재현시키는것이 아닐까
천군만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는
싸움터마냥 여직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

야밤에 파도소리 듣고
백주에는 조수가 구을러가는 장관(壮观)을 지키면서
마음은 쪽배처럼
우주의 조용한 곳에서 기묘하게 대안(彼岸)으로 건네간다

방불히 어디에서 본듯이
방불히 타향에서 고향의 친지를 만난듯이
모든것은 이처럼 례사롭고 탄연하고 자연스럽다

가슴이 오래간만에 심하게 들뛰더니
문득
디지털카메라가 의미깊은 춘추를 렌즈에 담아넣는다
                 

      
    4 

고향의 어느 한번 월식에 관하여

 

고로한 전설에 의하면
멀고 먼 옛날에
큰 하늘개(天狗) 한마리가
종내 굶주림을 못이겨
달을 떡으로 간주하고
그만 넝큼 한입에 삼켜버렸다한다

그래서
온 하늘이 어두워졌고
구름도 종전의 풍채를 잃어버리고
온 누리에
몽환만이 흐느적거리며 떠돌아다녔다한다

별들도
이왕의 빛을 잃고
오로지
긴 꼬리를 질질 끌면서
륙정산(六鼎山)뒤로
줄행랑을 놓는다

하늘개의 수명은
왜 이다지도 길었던지
지금까지도
가끔씩 뛰쳐나와
오동(敖東) 황성터의 밤하늘을 종힁하며
으르릉거리고 왕왕 짖어댄다

물론
달님의 생명력도 엄청나게 끈질기다
하늘개에게 수없이 먹히워도
용케
오늘까지 예쁘장하게 버텨낸다

▲ 겨울, 조선 쪽에서 올라가서 본 백두산, '장군봉', 어쩐지 햇빛도 비장하게 비춘다...<편집자> 

      
   5

함형주점(咸亨酒店)

 

9월하순의 소흥(紹興)은
여전히 불같이 무더운 날씨다
이는 혹시 관광열과 관계있으리

일단 이땅을 밟았으니
나는 우선 함형주점을 찾기에 바쁘다
그러고나서 선생의 모양새를 따서
회향두(茴香豆)를 안주하여
천천히 황주잔을 들고 진미를 가늠한다

당년의 그 정경(情境)을
당초의 그 기분을
애써 음미해 본다

골목거리에서는
어디가나 술향기가 풍긴다
령상 37도의 공기속에
산지사방에서 온 사투리가
함께 융합되여 서서히 퍼져간다

공을기(孔乙己)의 검은 무쇠조각상은
해빛에 쬐여 될듯이 따가운데
세월의 메아리는 이미 상당히 완약(婉約)하다

 

 6 

로신 생가

 

삼미서당(三味書屋)에서 백초원(百草園)까지
불과 200메터 가량의 거리
이렇게 짧은 길에서
선생은 어이하여 그렇게 많은 독자들을
감탄케하는 글발들을 쓰셨을까

그래서 소문이 자자한 백초원도
사실은 채소전에 불과
이렇게 례사로운 곳에서도
선생은 어이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상상할수 있게 하였단말인가

삼미서당은 그래도 꽤나 특별한 처소(處所)여서
분명한 강남의 전형적인 서당
단 <<조(早)>>자가 뜻하는 의미로만도
당년 선생의 선생은 얼마나 엄하였으며
애어린 선생은 얼마나 각고하였는가를 알겠다

문앞의 내가에는
쪽배가 종용히 머물러 있어
마치 선생이 먼길을 떠나시려는것처럼
아니면 선생이 먼곳에 돌아오시는것처럼
소리 없이 기나긴 기대를 걸고 있다

문화
정신
그리고 사상은
이렇게 여기에서 일떠서고 진흥하여
방황(彷徨)에서 헤여 나온다

 

 7    

구정전후

 

섣달에 들어서면
향진과 촌마을의 그림자는
휘날리는 눈발에 장식되여
동년의 애어린 기대에서 응고 된다

하루 밤사이에
마술마냥 온세상을 뒤덮은 흰눈은
성결(聖潔)한 동화마냥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설이다
고향마을에서 친정(親情)으로 꼰 엿을 녹이면서
기나긴 한 동삼을 회상한다

한살 더먹었으면
한해의 동경(憧憬)이 많아지고
미래에 관한 퀴즈의 답이 하나 더 알려진다

붉은 초롱불이
집집의 울안에서 빛을 뿜으니
애들의 놀음에서 밝은 새해가 보인다

점차
폭죽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더니
설기분이 공기속에서 늙지 않는 세월을 로출한다

금방
설전 설후의 한가로운 나날들이 줄지어 지나가더니
설후 설전의 다망한 나날들이 또다시 줄지어 이어진다

 

  8

봄날에 관한 어떤 화제

 

화제(話題)는
어쩌면 길고 또 길고
어쩌면 많고 또 많다

남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떼처럼
하늘의 천막을 서서히 가위질하여
우주는 류성우(流星雨)의 전설을 퍼붓는다

민들레의 상상
진달래의 화창
모두가 아침해처럼 하늘끝에서 솟아오른다

화제는 바로 이렇게 지속되고
계절은 바로 이렇게 련결되고
스토리는 바로 이렇게 시공간의 륜곽을 그려낸다

한송이의 장미
한잔의 와인
한번의 의외로운 스침

어떤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위하여
혹은 어떤 불가능함과 가능함을 위하여
울고 웃고 간혹 웃고 운다

그런후이면
총망한 모습으로
그 울퉁불퉁하게 험한 화제를 따라 방랑한다

 

▲ 배낭 메고, 산천을 두루 밟는다. 산도 알아가고, 물도 알아가고, 구름과 바람과 벗하는 인생은 나그네...나그네 길이 기분 좋다...<편집자>

  9

뽈스까에서 불의에 마주친 로씨야의 눈길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채
푸르른 동공(瞳孔)에서는 해맑은 추파가 알른거린다
이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풍경
이것은 미묘하기가 둘도 없는 정경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하고있다

해빛이 찬연한 정오
우연히 마주친 눈길
공기는 새파란 색채였고
지어 대지도 푸르른 색채이고
모든것이 한찰나에 그렇게도 순결했다

이것은 분명히 창구(窗口)
여기에서 우주를 남김없이 바라볼수있다
청푸른 시공에
아롱다롱한 색채들이 류슬처럼 흘러가고
이채를 돋구는 뭇별들이 유혹을 반짝인다

이번의 마주침이 혹시 무지개로 탈변되여
영원히 창공을 가로 넘어을수 있겠지
그러면 나는 무지개다리로 걸어가서
서서히 그곳에 융합되여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지켜보리라

깊은 호수처럼 푸르고 맑은 눈동자
비취와도같이 파란 눈동자
유유히 빛뿌리는 보석처럼
홀로 종용히
나름대로 세인들의 찌걸임을 듣고만있다

 

 10  

해   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기반(棋盘)
중원(中原)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창한 초하(楚河)와 한계(汉界)를 사이 두고
우리는 기약없이 만난다

당신은 대안(对岸)에 서있는데
바람결에 나붓기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형양(荥阳)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나들면서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의 사랑을 려과(滤过)해낸다

리상은(李商隐)의 너무나 많은 재간을 이어받았고
류우석(刘禹锡)의 천고에 전해지는 시구를 터득하였거늘
담담한 눈길에는 당송(唐宋)의 완약한 운치가 비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경전적인 예쁨이 반짝인다

나는 오로지 묵묵히 그대를 지켜보면서
오랜 옛적의 순진함이 9월의 하늘로 탈바꿈하여
제 멋대로
진주같이 령롱한 비방울을 뿌려준다고 생각해본다

맑은 렌즈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면서
경치의 깊은 배경에 따라 머나먼 창상(沧桑)을 그려보고
생긋이 웃는 한 찰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풍경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는다

 

   11

중원의 가을비

 

원래는 가물고 비가 적었던 중원의 9월이였건만
지금은 련이어 몇일간 찹찹한 보슬비가 내린다

누렇게 퇴색한 력사는 누런 땅과 함께
세차게 흘러가는 누런 황하의 숨결을 더듬어본다

파아랗게 되여야는 곳은 여전히 파아랗고
누렇게 된 이미지에는 그래도 마냥 푸른 시의 미(美)가 맴돌고 있다

당년의 우석(禹锡)형과 상은(商隐)형이 남긴 천고의 유풍은
오늘도 늘늘이 묵향(墨香)을 풍겨 준다

나는 룡만 있으면 령(灵)하다는 여기의 물가에서
그때 그 비속의 향수(乡愁)를 음미해 본다

몽롱한 비속에서 자세히 살피면서
불후한 세월의 오묘한 퀴즈를 열심이 풀어본다

 

12

 란    정(兰亭)

 

오로지 술과 시로써
구곡류상(九曲流觞)이라는 이야기가 류전됐겠지
마흔한분 문인들의 재간과
설흔일곱분 문인들의 시편들은
그 불후의 서문과 함께 세월속에서 류전됐겠지

왕희지(王羲之)선생의 소탈한 서예와
재간으로 넘쳐나는 문장은
지금까지 류전되여
자유로운 령혼은 어떤 흔적으로
전설적인 색채를 하늘가의 락조로 물들여겠지

물 세통으로 련습하고 씌여진 <<太>>
오직 그 한점만 희지선생을 닮았건만
그래도 놀라운 진보
군이 보다시피
정자체로 쓰인 글이
서예의 전당에 정히 앉아 있지 않는가

란초와
청죽(青竹)과
곡경(曲径)은
여기에서 혼연일체로 조화되여
세세대대 이어가는 문화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13    

세 사람의 산행 


      
백두산의 복지(腹地)에서
울창한 수림의 한 모퉁이에서
락엽이 두툼이 깔려있는 오솔길에서
두 남자와 한 녀인은
발밑에서 률동하는 가을의 정치(情致)를 귀담아 들으며
소슬한 계절에서 흩날리는 몽롱한 시구들을 음미한다

잎새들은 이렇게 깨끗히 떨어져
지어 공간에 아무런 궤적도 남기지 않는다
라체바레무인양 나무가지들은 한껏 하늘로 솟구치며
무형의 속박에서 뛰쳐나려 시도하지만
어쩐지 자신의 그림자는 잘 숨겨지지 않는다

산새들의 지저귐은 들려 오지 않고
미풍도 이미 숨을 죽이고 있어
더욱이 찾기 힘든 계기가 되고
더욱이 보기 어려운 경우가 되여
한차례의 자연과 령혼간의 어울림으로
주변의 옛적부터 고유한 정적을 계속 이루어간다

이렇게
한 한국인과 두 중국인은
심산속에서 산책하며 동일한 언어로 찌껄인다
산의 웅장함과 황혼의 부드러움을 감지하면서
해질무렵의 약수동에
석양의 몇오리 여광(余光)이 황홀하게 물들일제
얼마간 따스함을 마음으로 조용히 느껴본다 

 

▲ 나무숲이 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전설로 굳어진 이곳의 수림이야기, 억겁의 세월을 만나는 시간이네요...<편집자> 
 

14  

 그저 그렇게 바라본다

 

5월 초순의 산과 들에
어쩌면 푸른색이 담담하게 물들었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그 푸름은 어디로
그 부름은 어디로
그 이름은 어디로
가뭇없이 사라졌을까

초색요간근각무(草色遥看近却无)라더니
한유(韩愈)선생이 말씀하시던
천년전의 그런 오묘한 정경이
어떻게 오늘까지 지속되고있었는지
오늘의 중국 북방의 땅우에서
나는
그저 그렇게 바라본다

혹시
또 혹시
잘못된것은 아닐까
문득
천년과 천년의 언덕을 넘어서
회의(怀疑)보다 부끄러움이
끈질기게 앞다툰다

 

    15 

산림풍경

 

이름모를 고독한 산새
피곤한 몸에 자지색 황혼빛을 싣고
몇바퀴 빙빙 날아 돌다가
갑자기 내리꼰져
나젊고 깨끗한 봇나무숲속에 투숙한다

별찌가 고요한 호수에 떨어지듯
일장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밤별들은 잠기어린 눈을 반짝이며
낮설은 음부(音符)들을 파역(破译)한다

민들레꽃은 적막에 달갑지 않아
환상에 잠겨 본분을 지키려 하지 않는데
마침 한오리 미풍은
살그머니 보수(保守)의 정을 훔쳐간다

나리꽃은 청춘의 소동에
시달리여 경련을 일으키며
정어린 눈으로
시공(时空)의 외부를 목빼여 건너본다

산등에서 놀다 싫증이 난 초생달은 트림을 하며
싱글벙글 산림속 수없는 나무의 말초를 누비여
엄연한 풍채로
황홀한 야경을 흔상하다가
이쪽에 대고 돼는대로
알은체를 하며 마른 기침을 한다

 

    16 

천년의 사념

 

당신이 없는 나날은
무엇때문에 눈물이 흘러나옵니까
초봄의 랭기에
라목의 흔들리는 가지를 바라보며
나는 어쩔수 없는 전률에 흐느낍니다

쓰라린 마음과
외로운 령혼은 손잡고
여직 없었던 나약함을 시인하며
돌연히 거울같은 평온한 수면에서
여울지는 정서를 느껴봅니다

새천년의 이 강산에
진달래는 미처 피여나지 못했는데
무정한 세월은 벌써
북중국의 살벌한 계절과 더불어
무엇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드넓은 우주에
풀들은 아직 푸르르지 않았었고
꽃들은 아직 피여나지 않았었고
새들은 아직 노래하지 않았었고
심지어 해님마저
빈혈인듯 창백한 혈색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념은 가까스로 웃음을 지으며
옥처럼 청신하고
얼음처럼 랭철한 정적속에서
담담한 장미향을 뿌리며
평소의 당신마냥 사뿐사뿐 걸어와
유모어로 나의 슬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17  

송    별

 

6월의 여름비에
대지는 상상을 파랗게 편다
나는 묵상의 파도에 실려
려명이 깃을 펴는 항구에서
떠나는 태양과 송별한다

날으는 갈매기처럼
마음은 파도치고
바람에 허연 안개가 걷히면
바다의 하늘엔
한폭의 생생한 그림이 걸린다
어제밤의 수축과
오늘 새벽의 팽창이

계명성도 바다에 잠들었건만
나만은 부두에 나무처럼 섰다
배고동소리 나의 그리움을 길게 늘구며
아득한 물보라를 일군다

한점의 손수건만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점점 짙어가는 향기를
나의 눈앞에 날린다

륙지 한끝엔
들풀이 무성하고
파란잔디 우엔
조각상이 옥처럼 아름답다
해안선은 지도우에
굴곡이 뻗은 내마음과
파도처럼 울부짓는 내 부름을
말없이 선언하고 있다

 

▲ 어딘지 모르겠네,  해는 뜨겁고, 자연은 꽃으로 만발했고, 셔터 한번 누르니 추억도 꽃이 되네...<편집자>  

       
    18 

장마철의 외로움

 

길고
단조롭기가
너의 걸음걸이 같다
 
끝없는 비소리에
꿈자리가 촉촉히 젖어들어
잘 삶긴 풋강냉이 향내음을 상기한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울고 웃으며
낮과밤은 질서를 모른다

점점 작아지는 이 세상은
너와 더불어
끈질기게 밀착해 온다


     
    19 

진 달 래

 

설쇠는 날에
애들이 터치운 폭죽이
어쩌면 4월의 비속에서
또 불꽃을 튕길가

떨리는 연분홍치마에
찹찹히 스며드는
비의 이미지
살짝 화장한
예쁜 웃음이 조금은 경솔하다

비속에서
어떠하면 쾌활할수 있는지
찬연한 색조로
풍경을 만드는것이 어색하다

그후
비가 멎으면
아름다운 해님앞에서
부끄러워 도망갈것이다


       
     20

가을 역전

 

님은 떠난다
귀청을 찢는듯한 기적소리
가을의 깊은 꿈을 깨여뜨렸다

록색은 말없이 자취 숨기고
울긋불긋한 산야 눈앞에 선뜻 다가선다
산넘어 또 산이 있고
하늘밖에 또 하늘 있거늘
그곳은 어떠한 풍경일가

오가는 기차는 가끔
거칠은 숨 몰아쉬며 잠간씩 쉬여간다
먼지따위를 약간 부려놓고
얼마간의 정적을 실어가며
부산을 떤다

붉은, 푸른 신호등은 멋적게 마주보고
푸른기와 붉은기는 짜증을 내며
자아를 몸부림으로 표현한다
철길은 한가할 때 기지개를 켜며
나란이 허리를 쭉 뻗치고 누워 졸고있고
정오의 해빛은 여느때보다 심드렁하다

님은 떠났다
님이 떠남으로 하여
알지 못할 허전함이 점점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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