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홍연숙 시에 대한 정의를 무엇이라고 내릴까? 정제되고 운률화한 기존 시의 격식 타파? 시의 산문화? 산문화 된 시의 내적 운률 잡기? 예전 시에서 볼 수 없었던 디테일한 묘사? 비유와 상징의 적절한 조합?...아무튼 나름대로 자기 시를 만들어가고 있어 사뭇 개성이 있는 것 같다.  뭔가 부족한 점들을 따끔히 지적해 주기 바란다...<편집자>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나와 소

홍연숙


올해 나는 오십이 되었고
당신 장모 닮았다는 소리를
밥먹다가 듣게 되었고
우욱 올라오며 주체가 안되는 갱년기에
화나다가 슬프다가
몸도 찌뿌둥하고 불편해서
또 슬프다가 화나다가
책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운동하다가
여행으로 달래보는 그 정성에
강가의 돌들이 짜그라지게 웃어버리고
엄마는 밭으로 김매러 가고
엄마는 논으로 피 뽑으러 가고
엄마는 도랑으로 빨래하러 가고
콩잎이 사그락 사그락 위로 해 줬는지
벼들이 새벽에 함께 울어 줬는지
도랑물이 왈그덕이며 시원하게 풀어 줬는지
나는 엄마도 갱년기가 있었는지 몰랐고
일손을 놓지 못하는 엄마는 생전 아픈 적도 없었으니
아주 건강한 체질이라고
소가죽보다 질긴 삶이라고
다 부려먹고 이젠 꿈뜨다고
빨랑빨랑 걸으라고
입에서 채찍을 쭉쭉 뽑아대면
히죽히죽 웃어주는 저 느린 소는
잼있다고 음마음마 하며
노망들어 가는데도
왜 저리 멀리 가는지
쫌 천천히 가라고 울고 불어도
저 느려터진 것이 음마음마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꾸만 간다

2019.2.28

 

착한게 죄야
 

절인 삶으로
발자국마다에 짠내를 뿌리고
억척으로 다져진 생을
후회로 거뒀지
사기꾼으로
도적으로 살았더라면
제멋대로 살았더라면
한달 15만원의 보조금에 부끄럽진 않았겠지
배운대로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착하게 살다가
통닭처럼 구워져
동생이 떼여 먹고
친구가 떼여 먹고
마누라가 뚝 떼여 달아나
부모님도 주지 못하고
아픈 자식 손 쥐고 공원에 갈 손가락도 남기지 못했지
하면 된다고
모든 게 자신 한테 달렸다고
성공했다면 저렇게 떠들었겠지
세상은 공평하다고
뿌린대로 거둔다고
얼굴에 뿌리면  몇십만원이 날라가는
화장품 좋지
유기농 자연산이 몸에 좋은 줄
누가 몰라
유행따라 사입는 고가의 옷들에
억대의 외제차들에
꿈은 있었지
컵라면 하나 놓고 둘이 먹으며
죄인같이 이눈치 저눈치 보며
찍 소리 못하고 빈대년도 못 잡고 쥐새끼도 못 잡더니
너를 죽이고 세상을 버린 살인자
넌 착한게 죄야


세상의 기원*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고
아무나 보여주지 마라고
학자들은 예술이랍시고 머리만 처박고 연구만 하거든
금도 못 캐고 금기만 자꾸 생산하면서 말이야
땅에 코박고 농사짓는 농부들은
들숨을 심고 날숨을 끊임없이 수확하는데
들판에 드러누운 목동을 봐
音符에 익숙한 듯이 마음대로 주무르고
새어버린 황홀한 음률에 이 세상이 무아지경이야
저 위대한 시인들은
사계절 바람타고 꽃들만 찾아다녀
도포자락에 몽오리가 터지고
노래들이 비적비적 쏟아지잖아
감추지마
세상에 널리 알려줘
그 고귀한 이름이 참월한 보지라고
가슴뛰는 저 작품이
세기의 예술이라고

 *19세기 사실주의 사조의 거장인 쿠르베가 1866년에 그린 "세상의 기원"은 여성의 성기와 체모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작품이 공개되어 1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논쟁의 단골소재가 되고 있다.

2019.2.25

  

삼윌의 하오
 

요즘 집집마다 들썩이는 건
살창으로 찍어대는 햇님의 성화라지
창으로 들이미는 삼월에 숨이 차는 건
뾰족한 입으로 조잘대는
백합싹들의 옹알이에
잠에서 깬 장미순들의 짝짜꿍소리에
얼음골에서 이사온 복수초의 시시대는 애교에
검푸르게 조숙한 튤립의 사랑놀이라지
봄맛 죽이는 건
달래 캐서 새콤달콤 무쳐
소라지 캐서 향긋하게 밥을 하고
냉이 캐서 구수하게 된장국 끓이며
시집놀이 장가놀이 끝내 준다며
클클대고 킬킬대는 마을이
삼식이 삼순이들로 들끓는 거라지
삼삼사게 식어가는 커피잔을 들고
삼삼하게 떠오르는 그날을 끄집어 내고
여자는 뜨거위 진다지
삼월의 어느 하오에

2019.3.5

 

풀의 이야기
 

봄입니다. 기다리지 않았던 봄입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들이닥친 봄이 왠지 모르게 언짢아 집니다. 더불어 슬퍼집니다. 눈꽃 한송이 내려주지 않았지만 희미해져가는 겨울의 뒤모습이 아련해 옵니다. 저기 가라앉는 목소리가 처량합니다.

보세요. 톱이로 흙 물고 올라오는 초록들을 보세요. 온 들판에서 날바람 피웠던 우리의 뜨거웠던 일기들이 마구마구 헤집히고 그 비밀들이 밖으로 쏟아집니다. 이미 시들어졌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던 한때 우리의 싱그러웠던 사랑이 풀썩풀썩 허물어지네요.

그랬었죠. 그때도 봄이었죠. 우리도 저렇게 끓어 넘치는 욕망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 어느 캐캐묵은 이야기들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거죠. 그만큼 치렬한 우리의 삶이었으니깐요. 한 눈 팔다가는 삶의 한 모퉁이가 언제 뜯겨 나갈지 모르는 전쟁같은 날들이었죠.  그 속에서 키워온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열했겠습니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들만의 질퍽한 사랑이었죠.

푸르렀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대로 영원 할 것 만 같았습니다. 변함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여린 속살들을 서로서로 탐닉하며 마음껏 사랑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더 짙은 농담으로 한결 단단해진 근육들을 질척이며 지나가는 바람도 건드려 보기도 하고 툭 터져 쏟아진 달의 영혼으로 빠져  환상의 밤들을 보냈습니다. 또 찬란하게 달콤한 태양의 속삭임들을 우리의 사이사이에 눌러 앉히고 마음껏 감상하며 뿌리가 저리도록 사랑을 나눴지요. 누구도 감히 간섭할 수가 없는 대 자연법칙같은 카리스마가 흐르는 무법자의 사랑이었습니다.

행복은 짧다고 했던가요? 영원은 없다고 했던가요? 여름은 언제 갔는지요? 가을은 누가 데려 갔는지요? 겨울은 또 언제 왔는지요? 그렇게 끝날 줄은 별빛 꼬투리 만치도 생각지 못했던, 영원히 푸르를 것 만 같았던  우리의 사랑이 아니었던가요. 그따위 눈꽃도 날려보지 못했던 겨울 바람에 휘청대는 그렇게 허망한 것이였던 가요? 가네요. 풀풀 날려가네요. 가볍게 흔들리며 가네요.

안돼요. 그렇게 보낼 수 없어요. 태풍에도 부둥켜안고 입술터지게 굳게 다졌던 맹세들은 어쩌구요. 잡초라고 무시하고 마구 칼질해대던 제초기한테도 굴복하지 않았던 우리들이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그냥 먼지처림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던 것 처럼 사라진단 말입니까. 우리들의 진득했던 사랑을 깃털같이 날려보낸단 말입니까. 아... 안돼요... 안돼요...제발...

한 잎의 마른 풀이 파 삭 부서져가며 이야기가 끝나갑니다. 저기서 재클린의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201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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