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김병민 교수는 2003년부터 9년간 중국 연변대학교 교장을 역임한 학자이고 교육 경영자이시다. 그는 2013년 3월에 '제17회 KBS 해외동포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신채호 문학연구', '신채호 문학유고집' 등을 저술한 단재 신채호의 권위자로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이외, '조선문학사' 등 10여부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써냈으며, 연변대학교를 중국 '100대 대학교'에 진입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여 학계와 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다...<편집자> 

▲ 김병민 약력 : 문학박사, 연변대학교 교수. 2003년 1월-2012년 6월 연변대학교 교장 역임. 제10기,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전국유학귀국우수인상, 국가교수연구 2등상, 길림성사회과학연구 1등상, 한국용재학술상, 한국해외동포상 등 수상. <신채호 문학연구>, <조선중세기북학파문학연구>, <조선문학사> 등 10여 부 저서 출간,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과 평론 100여 편 발표, 장편 회고록 <와룡산일지>외 다수의 수필 발표.

               

제1편

학문은 인격으로 한다

 

요즘 학술계에서는 학술부패에 대하여 늘 거론된다. 그 무슨 다른 사람의 논문을 뻬겨서 발표했다느니, 한편의 논문을 쪼개서 두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다느니, 또한 같은 논문을 약간 윤색해서 두개 잡지에 발표하는 등 온갖 수단을 써가며 론문을 발표하고 그것을 교수 승직의 밑거름으로 한다. 어찌 이뿐이랴? 어떤 이는 정치풍향에 맞추어 학문의 분야를 이리저리 옮겨가는가 하면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추기에 신경전을 벌인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학술의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로 반드시 극복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 나게 되는데는 당면  대학의 학술문화 나아가서 대학의 학술평가제도, 그리고 정부에서 만들어 낸 교수승진 학술조건 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것은 학자들의 학술리념과 학술인격이다. 대학교수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생명의 선택이고 생활의 전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대학교수는 학술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기본적인 사명, 즉 지식생산의 사명을 수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문을 살아가기위한 수단으로 인식함은 교수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의 정신은 학자의 인격이기도 하다. 

얼마전 나는 연변대학교 력사학부의 젊은 교수들이 조직한 로교수 박진석교수 90 탄신 및 교육종사 6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였다. 기념행사는 박교수의 제자 수십명이 참가하였고 박교수의 대학동창생들인 박문일 총장, 허청선교수 등 원로들도 참가하였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박진석교수의 학문정신을 찬양하였고 그 학술성과의 가치와 위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그 날 여러분들의 발언을 귀납해보면 첫째는 한마음 한뜻으로 학문에 정진했고 둘째로는 중요한 학술령역 즉 고구려 연구에서 풍부한 성과를 따냈으며 셋째로는 학술 쟁론에 대담히 나서 자신의 학술견해를 피력하여 학술계에 신선한 기운을 몰아온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모두 정평이라 하겠다. 박교수는 9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서하시고 계신다. 또한 론문을 써서 얼마지나지 않아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로 되여 있어 모두들 감격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날 나도 발언 할 기회를 얻어 언감생심 로교수의 삶과 학문정신에 대해 찬사를 한바 있다.

나는 1980년대 후반 박사과정 공부할때 박교수에게서 조선력사 과목을 경청한바 있는데 박교수의 첫날 강의는 참고서와 참고론문을 제세해주는 날로 되였는데 무려 30여부 저서와 160여편의 론문을 참고문헌으로 제기하였다. 박교수가 앍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써야 했는데 두시간 남짓이 받아쓰고 나니 손목과 팔꿈치가 시쿰시쿰했다.  강의시간에는 교재내용대로 강의 하지 않았고 주로는 학술계에서 쟁론되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학술견해를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조선력사에서의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겠는가? 조선 삼국시기와 일본의 관계에서 어떤 학문적인 쟁론이 있는가? 리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뚤러싸고 어떤 부동한 견해들이 있는가 하는 내용들이였다. 이런 강의내용은 조선력사를 처음 배우는 우리 들에게는 매우 큰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따라서 박교수의 강의를 통해 학문의 취지, 학문의 내용, 학문의 목표 등이 무었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터득할수 있었다. 종강이 되자 학기말 성적으로 한편론문을 쓰되 반드시 발표할수 있는 수준이여야 했다. 그해 나는  력사학 관련 론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했다. 아무튼 박교수의 강의는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문학연구의 력사학시각, 그리고 풍부한 력사지식과 함께 문학과 력사학의 학제적인 연구에 좋은 길잡이가 되였다. 그때 나는 학자의 권위성은 학술수준, 그리고  론문수준으로 평가됨을 터득하였다. 

박진석교수님은 일심정력으로 학문에 정진한 분으로 학문이외 다른일에 한번도 정신을 팔아 본적이 없다한다. 이를테면 형정보직이라던가, 명예이다든가 하는것에 대해선 넘겨다 보지 않고 초월한 자세로 살아오신분이다. 특히 중년 이후로는 매일 건강관리를 위한 산책 외는 독서와 론문 집필에 몰두하여 학자의 귀감이 된분이시다.

박진석교수의 학자적인 인격은 학문적인 쟁론에서 추호의 양보도 없는 대쪽같은 정신에서 찾아볼수있다. 그는 호태왕비 연구를 둘러싸고 일본학자의 그릇된 관점에 대해 충분한 근거로 비판하고 자신의 독보적인 관점을 제시하여 학계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박교수의 학술적 거작인 <<호태왕비 연구>>는 그 풍부한 지식성과 학문적 견해의 독창성으로 학술사에 길이 남을것이다. 따라서 이 저서에는 박진석교수의 학술인격 즉 학자적인 독립성이 잘 반영되여 주목된다 하겠다.

 진정으로 휼륭한 학자가 되려면 학술적 인격이 구비되여야만 한다. 가령 학문적으로 독립정신이 없이 갈대처럼 바람에 따라 좌왕 우왕한다면 학자로서 자격미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릇된 지식으로 만사람에게 해를 끼칠수가 있다. 또한 사이비학문으로 하여 력사에 죄를 지을수도 있다. 우리는 문화혁명시기 정치적인 풍향에 따라 자신의 지위, 명예, 리익 등을 위해 학문을 외곡하고 세상을 크게 그르친 사이비 학자들을 얼마든지 볼수가 있다. 박진석교수는 문화혁명시기에는 진정한 학문을 할수가 없어 절필하면 했지 어용학자격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특히 한떄 고구려연구가 국제정치관계문제로 오도되여 일부 청년학자들은 적지않게 고구려연구에 손을 떼려고 할때도 박진석교수는 오히려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연구가 요청되않겠는가? 부동한 견해를 서로 내놓고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 진상을 밝히는 것이 력사학자의 사명이니 절때 뒤로 물러 설 수가 없다.>>라고 했다. 박교수는 이렇게 말씀했을 뿐만아니라 실행에 옮기여 고구려에 대한 학술 연구를 심입시키였고 좋은 논문을 써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하여 나중에는 국가 주요 연구기관의 학자들의 주목한바 되였고 두나라사이 학술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어감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휼륭한 학자는 진정한 학문성과를 통해 진리창출을 실현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박진석교수의 학문적 인격과 독립정신은 연변대학교 인문정신의 일부분으로 길이 남아있을것이다. 

 

제2편

언어정체성에 대한 단상

 

민족정체성이란 한 민족 구성원이 자기가 귀속되여 있는 국가, 민족 및 그 문화가치 등에 대한 인정, 찬성을 말한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귀속감이라고 할수 있다. 정체성은 고정불변한 존재가 아니라 주체의 변형에 따라 변형되는 존재이다. 례를 들어 식민시대 조선민족의 정체성은 아주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었는바 항일투사, 량심적인 지식인과 이민들 등은 민족정체성에 있어서 확고한 자세를 갖고 있었다. 이와 달리 일제의 강권과 문화패권에 협조한 친일분자 혹은 리기적인 지식인의 경우는 민족정체성에 있어서 흔들려 있었거나 아예 부재한 상태였다. 이와같이 민족정체성은 민족의 존재와 발전과 밀접히 련관되여 있는 문제였다. 하기에 일제는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없애려 하였고 이른바 “내선일체”란 구호로서 일본과 조선인의 동일성을 주장하였는데 조선민족으로 하여금 “천황의 신민”이 될것을 강요하였고 조선어말살정책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여  조선민족정체성을 부정하였다.

중국 조선족은 국가정체성에 있어서는 확실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문화정체성에 있어서는 이중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점은 과경민족인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이다. 민족정체성, 특히는 문화정체성에 있어서 언어정체성은 가장 뚜렸한 정체성이라고 할수가 있다. 언어를 잃은 민족은 력사의 뒤안길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현금 글로벌시대의 경체일체화에 따른 제국주의의 문화패권으로 하여 민족문화정체성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인데 아직까지 민족언어정체성만은 고수되고 있다는것이 문화학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언어는 력사서류라고 하며 또한 민족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민족문화의 발전과 교류에 있어서 매개자와 담지자이다. 따라서 언어는 민족의 의식구조특징과 행위, 심리특징을 직접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언어에 의해서 지식/권련 담론이 이루어 지는데 철학자 푸코는 “담론의 사용없이 권력은 행사되기 어렵다. 담론은 권력이 행사되는 수단일 뿐더러 공간”이라고 했고 사상가 응기구는 “언어는 한 민족의 력사적 경험의 집단적 기억 저장소이다. 문화는 언어와 구별 될수 없는 것으로 언어는 문화의 기원, 성장, 저장, 구현 그리고 한세대에서 다음세대로의 전달을 가능케 한다. ”라고 하면서 식민주의자들이 언어식민주의로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함을 비판했다. 한마디로 민족정체성에 있어서 언어정체성은 첫째가는 문제인것은 자타가 인정하는바이다. 에이츠가 “……그 누구도 모국어를 쓰지 않고는 정력적으로 사유하고 쓸수없다”라고 한것 역시 언어정체성이 민족발전 나아가서 주체—자아의 실현에 있어서의 특수한 위치 내지는 역할을 지적한것으로 된다. 

다민족 국가에 있어서 소수민족의 언어정체성문제는 지극히 복잡하다고도 말할수 있겠다. 왜냐하면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주류언어—국어가 있기 마련이므로 소수민족의 언어인식 내지 언어정체성은 주체-자아에 따라 선택되고 형성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언어와 소수민족언어 관계는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세계적인 상황을 보면 주류언어, 주류담론과 동일화, 역동일화, 비동일화 등으로 나뉜다고 할수 있다. 동일화는 개별적인 주체가 담론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받아들일때 발생하며 지배적인 담론에 갖혀 있으며 역동일화는 주체가 론쟁의 용어를 거부하고 그것의 근거를 거부할때 발생한다. 특히 식민자가 부과한 정체성에 맞서서 피식민자의 언어정체성을 정의하려고 한다. 비동일화는 지배적인 담론은 회피할수 없으며 늘 항상 그곳에 있다는 인정을 수반하는 변형의 전략으로 미리 존재한 언어를 통한 그리고 그 언어에 근거한 작업 즉 개념의 전유를 요구한다. 제국주의의 언어패권(혹은 언어식민)에 탈식민주의 학자들 특히 가야트리 스피박은  반기를 들었는데 특히 대학의 언어교육에서 영어의 패권을 부정하고 남부 지역 언어 특히 소수민족 언어교육도 대학에서 진행할데 대해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교문학 교수인 그는 강대국사이의 문학만 비교연구 할것이 아니라 약소민족의 문학도 비교문학의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것을 촉구했다. 그의 탈식민주의 주장은 언어로 부터 문학, 녀성문제, 교육기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심주의의 해체를 철저히 시도한 저명한 녀성학자로 세계학계에 이름떨쳤으며 그것이 인정되여 하버트대학 비교문학학부장으로  특별초빙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의 언어정책은 소수민족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스스로 제일 언어로 사용할데 대한 정책을 제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은 자신들의 민족언어에 대한 정체성은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중심부와 주변, 주류담론과 소수담론 등 구도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수민족의 경우 언어선택에 있어서 복잡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시장경제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지각적인 변동은 소수민족들의 언어정체성 확립에 상당한 장애로 되고 있다. 당면 민족어와 주류언어 교육을  병진시키자는 주장도 있지만 아예 민족언어를 버리려는 현상이 없지 않다. 특히 내륙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민족의 경우  언어교육과 언어정체성문제는 초미의 문제로 제기된다. 하여 조선족언어학교들이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민족지성인들의  언어정체성문제에 대한 고민에 따른 대안이라고 할것이다. 

민족언어정체성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도경은 역시 민족 교육에 있다.  그가운데서 정규적인 민족학교에서의 교육이 주요한것이다. 교육의 본질적 속성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를 념두에 둘떄 민족교육의  본질적 속성은 조선족인재양성, 조선족의 문화를 전수하는 데 있다. 따라서 조선민족교육을 통하여 조선족의 정체성확립을 촉진해야 하며 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 해야하며 나라의 다원문화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민족교육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정당한 파악은 언어정체성 교육의 동력으로 될것이다. 조선민족교육에 있어서 언어정체성교육은 주로 조선언어문학교육을 통해 가능할 줄안다. 따라서 조선어문교육을 통한  언어정체성 확립에  있어서 조선족의 력사교육, 인문지리교육, 미풍량속교육 등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는 비단 언어정체성확립에서 더 효과적 일수 있을 뿐만아니라 전반 민족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클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족언어교육에 있어서 민족고유언어교육은 아주 중요할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정체성문제는 역시 뿌리의 문제와 관련되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언어정체성을 강조한다고 하여 결코 주류언어교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족언어교육을 잘 진행할 경우 주류언어교육이 더 잘 될것으로 생각해야 할것이다. “자기의 것을 버려야 남을 것을 가질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며 오히려 “내것을 보존하면서 남은것도 함게 가지겠다”는 다원문화의식을 수립할 때 이중언어정체성과 문화의 혼종성을 가진 주체의 주류사회 진출은 더욱 용이주도하게 될것이다.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세계를  해석한다”란 말은 의미심장한 담론이기도 하다. 물론 주류사회 진출과 주류담론의 참여는 현시점에서는 한어, 한자를 떠나서는 불가할줄로 안다. 그러나 한어, 한자교육은 “내가 내 자신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내가 내 자신이 아님”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으로 되여서는 절 때 안될 줄로 생각한다. 한어, 한자를 더욱 잘 장악함은 민족언어정체성 확립에 모순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더 도움이 될줄로 생각된다. 기실 력사상 한자문화권의 각 나라들에서 한자는 공동문자로 인정, 사용되였다. 따라서 조선민족언어문자와 한자는 상당한 교차관계에 있는만큼 두가지 언어문자를 두루 잘 장악하는 것은 생활주체로 하여금 문화소질과 기능의 다양성을 가지게 할것이며 나아가서 주류사회진출과 주류담론의 참여가 가능할것이며 따라서 민족문화발전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것이다.     

조선의용대(군)은 민족언어정체성을 확고히 가졌으나 주류사회진출을 위해 한어, 한자를 끈질기게 배워 나갔고 지어는 조선문, 한어문 잡지를 10여개나 병진해서 꾸렸다. 하여 주류 담론에 참여했고 항일전장에서 공동담론과 공동인식을 형성시켜 나갔던것이다. 그들은 이중적인 언어정체성과 문화의 혼종성으로 항일의 최전선에서 대적무장선전을 뛰여나게 전개했고 다양한 민중교육을 진행했었다. 특히 그들은 언어의 이중 정체성뿐만아니라 문화의 혼종성을 한몸에 지니고 그 유명한 “아리랑가극”, ”조선의 딸” 등 연극을 항일투쟁이 고조되는 나날, 항전문화도시-계림에서 공연하여 수많은 중국의 문화지성인들, 군인과 민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피지기”란 말도 있거니와 자기를 잘 알자면 우선 자기민족의 언어부터 알아야야 하고 남을 잘 알자면 역시 남의 언어부터 잘 알아야 할것이거늘 나는 민족언어정체성문제를 정치행정인들 , 문화지성이들, 아니 온사회가 관심할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조선민족의 언어는 일제와의 투쟁에서 생명으로 지켜온 우리글 , 우리말임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 200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기간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이며 국무원 부총리인 장덕강은 중남해에서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1차회의에 참가한 연변대학 김병민교장(좌)을 접견하였다.


 제3편

소년시절의 기억과 교사의 의미

 

한 인간에게 있어서  어린시절의 기억은 대단히 중요한줄로 안다. 특히 소학교 교육은 성장기 소년, 소녀들의 심신 모두에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지어는 삶 전체에 영향을 줄수가 있다. 그 시절은 사회인이 아닌 가장 순수한 인생의 한 단계이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아 영원한 것이다. 내 기억속의 소학교시절 역시 순수와 감동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요즘의 소학교는 나의 기억과는 어딘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얼마전 과학연구프로젝트 심사회의 참석차 북경에 갔었다. 회의전 우리 몇몇 학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담을 했다. 우리중 어느 국가급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있는 거물급학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인즉 요즘같은 세상을 살아가자면 유치원 원장, 소학교 교장, 병원 원장 등을 잘 사귀여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치원 원장, 소학교 교장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손자, 손녀들을 잘 키울수가 있다는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을 잘 사귀어둬야 교사와도 친해질 수 있어 손자, 손녀들이 홀대를 받지 않음은 물론 깨끗한 밥과 간식을 제때에 먹을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장, 위원 등 “벼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분이 거들기를 이들과 가까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봉투”를 건네는 것인데 자기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루한 소문이야 들은적이 있지만 중국의 최고학자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같은 말들이 오고감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하기야 모두들 손자, 손녀를 키우는 분들이니 당연히 관심을 가지는 화제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이 나로서는 듣기에 거북했고 못마땅했다.

심신을 키워가는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서 교육생태환경은 지극히 중요한것이다.  “령혼의 공정사”인 교사들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여야 한다. 가장 깨끗하고 진정성있는 마음으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살펴야 하는 교사들은 속세에 물들지 말아야  그 존귀한 사명을 다할수가 있을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잠이 들수가 없었다. 북경의 화려한 네온불빛이 스며드는 호텔방에서 나는 어느덧 자신의 소학교시절을 떠올리게 되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해지게 하는 소학교 때 담임교사이신 리순희선생님이 있다. 60년전 나는 소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는 목단강 건너편 마을에 있었고 나는 등하교길에서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때의 다리란 쇠바줄 몇가닥 위에 널판자를 깐 구름다리였는데 몇이서 같이 걸으면 출렁거리곤 했다. 특히나 짐을 잔뜩 실은 소달구지라도 만나면 심하게 출렁이는 다리때문에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원래 잔뜩 긴장해서 강을 건느던 우리는 출렁대는 다리 아래 사품치며 흐르는 목단강의 물결을 내려다 보면 소름이 끼쳐 한 발자국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등하교길을 이순희선생님은 우리들의 손목을 꼭 잡고 매일 함께 다녔다.

어찌 이뿐이랴! 시골에는 이발소 하나도 없어 학생들은 머리를 기를수밖에 없었다. 리순희선생님은 주말이면 남학생들에게 이발을 해주었다. 얼마나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인가!

2학년 때였던것 같다. 반급에서는 집체사진을 찍었는데 한 학생당 비용은 20전이었다. 째지게 가난했던 우리 집 형편에서 20전도 낼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던 날 오후, 나는 일부러 학교에 가지 안았다. 다음날, 이순희선생님은 나를 불러 돈을 내지 못해 사진을 찍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할수밖에 없었다. 이선생님은 돈을 내기 어려우면 자신이 대신 내줄수도 있는데 그냥 빠져버리는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타일렀다. 숙인 머리를 든 나는 리선생님의 눈빛에는 책망보다 측은함으로 가득차있음을 보았다.

며칠이 지나 사진이 나오자 동학들은 서로 돌려보며 웃고 떠들었다. 사진을 찍지 않은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진값을 대신 물어주시겠다던 리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 고맙고 또 따뜻했다.

리선생님은 우리를 2년 가르치고 대학교수인 남편을 따라 할빈의 대학도서관으로 전근되어갔다. 철모르는 우리들은 아쉬움을 표할줄도 몰랐고 그저 묵묵히 선생님과 헤여졌다. 하지만 리선생님은 내 마음 깊숙히 남게 되였고 어머니같은 그 자애로운 모습이 늘 내 기억속에 남아있게 되였다. 그분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고 나는 그 분의 영원한 어린 학생이다.

그러던 2003년 3월, 나는 머나먼 할빈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내가 연변대학 교장을 맡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축하전화를 보낸것이였다. 나는 너무나 고맙고 또 황송하여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 제가 곡 한번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선생님은 “난 이미 일흔 가까운 로인이요. 바깥출입도 힘든 형편이니 절대 와 보느라 할것이 없네. 그냥 너무 기뻐서 전화를 했을뿐이네.”라고 했다. 수십년이 지나도 제자의 성장에 자기일처럼 기뻐해주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나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기간 리선생님은 혹시라도 내 모습이 중앙텔레비죤방송 뉴스에 나오는가 해서 매일 텔레비죤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뒤로 10년이 지난 뒤 나는 교장직에서 퇴임했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의 임기도 만료되였다. 내가 리선생님에게 안부전화를 드리면서 “선생님, 저는 10년을 무사히 봉사를 마쳤고 이제는 집으로 들어가게 되였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게 무슨 말인가? 계속 해야지 집으로 들어가다니?”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나는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학생인것 같았다.

리선생님은 우리를 가르치고 보살핌에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우리에게 바란 것이라고는 우리의 성장과 진보뿐이였고 그외의 아무것도 없었다. 만년에 건강 때문에 무척 힘든 삶을 살고 계시지만 제자에 대한 관심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소년 시절에 리선생같은 휼륭한 선생에게서 교육 받았음게 늘 자호감을 가지게 된다. “인자한 사람은 장수하느니”, 나는 진정 리선생님의 건강장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진정한 스승이란 바로 리선생님같은 모습이 아닐까. 학생에게 지식을 주고 사랑을 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스승의 참모습인 것이다. 학생들을 키운다는 리유로  대가성을 따져가면서 보답을 바라고 손을 내미는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인 것이다. 그것은 학생을 해치는 일인 동시에 자기를 해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학생들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주고 지어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수도 있는것이다.

오늘 우리 조선족사회는 전례없는 격변기에 처해있고 기회와 위기가 함께 하는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와있다. 이런 시기 교육, 특히는 소학교 교육은 기초교육으로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있다. 나는 진정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을 위해 봉사한다는 교육리념을 분명히 알고 실천해가는 교사들이 줄지어 나서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되여야만 민족사회의 더욱 찬란한 미래를 열어갈수있을 것이다.

 

제4편

지식생산과  독서생활


독서는 왜 필요할가

우리들은 어린시절 부모들로부터 책을 읽어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온 세대들이다. 아이러니한것은 우리들의 부모들은 대개 문맹이여서 글을 읽지 않고 살아온 분들이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겐 책을 읽어야한다고 강요함은 무엇때문일가? 아마 책을 읽어야 출세한다는 전통가치관이 크게 작용했을것이다. 중국이나 조선 등 동아세아 국가들은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를 해야 신분의 변화 혹은 상승이 가능했기에 독서가 크게 권장되여왔던것이다. 그래서 가정생활이 어지간이 보장되면 자식을  서당에 보내여 “사서오경”, “제자백가”를 읽게 하였는데 독서의 목적은 출세의 길을 여는데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권좌에 오른 제왕장상들이 독서에 게으리한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 요구가 더욱 높았다. 강희, 옹정, 건륭 등 청나라황제들은 왕자들에게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공부를 하게 했는데 아침 5시부터 저녁9시까지 계속되여 하루종일 점심에 반시간정도 휴식을 가지는게 전부였다고 한다. 아마 유목민족인 만족이 중원을 차지고하고 보니 중화문화를 공부해야 장구한 통치에 유리하다고 생각했기때문일것이다. 

출세를 독서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몰아가서는 단순론리가 아닐수 없다. 출세나 신분상승과 같은 공리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심지(心智)를 수양하기 위함과 같은 초월적인 목적이 오히려 더 보편적이다. 말하자면 “경서(经书)”을 읽는것은 알곡의 맛을 얻는것이고,“사서(史书)”를 읽는것은 연회석의 풍성한 료리의 맛과 같고 “제자백가(诸子百家)”는 음식의 양념과 같다고 했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맛밖의 맛을 체험하는 것으로 참으로 무궁하다고 할수있다. “독서란 사람 사이의 대화이고 인생로정의 려행이며 거울 앞에서의 자아관조이다”라고 했고 “좋은 도서는 삶의 길잡이가 되고 지혜의 날개가 되고 가치의 척도가 되고 삶의 좌우명이 된다”라고도 했다.

로신선생은 어린 시절 “삼미서옥”이란 서당에서 공부를 할 때 책끼우개 세개를 만들고 각기 “마음으로 읽는다”, ”눈으로 읽는다”, “입으로 읽는다”라는 글을 써두었다고 한다. 소학교, 중학교때 어문시간이 되면 꼭 책을 들고 전반학생이 집체랑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책의 내용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 깊숙히 아로새긴다는 말이 되겠다.

독서는 외부의 강요로 할수있는 일이 아니다. 독서는 진정 마음이 움직여 흥취에 따라 읽어햐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야 하고 평생을 읽어야 할것이다.

독서와 지식담론

독서의 가치는 오늘의 “지식폭발의 시대”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과하지 않다고 할수있다. 한마디로 독서를 하지 않고서는 순식간에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을 알수가 없다. 독서를 통해서만 사회참여가 가능하고 지배담론의 중심에서 자신과 세계를 관조할수가 있다.

어찌보면 인간의 사회참여 내지는 권력담론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라고 할수도 있다. 아울러 발달한 사회일수록 권력담론으로서의 지식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푸코에 의하면 지식은 권력을 생산할 뿐만아니라 권력의 작동에 의해 지식이 생산된다고 하면서 지식담론의 사회성, 정치성, 륜리성 등에 대하여 강조한다.

권력담론으로서의 지식의생산은 독서라는 도경을 통해 그 힘을 발휘하는바 동서양 모두 이러했다. 중국에서 “경서”,“사서”와 “제자백가”가 핵심적인 권력담론을 구성하여 2000여년이나 정치담론과 륜리담론을 지배해왔고 서양에서는 근대이전까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신학이 기본적인 권력담론을 이뤄왔다.

산업혁명 이후의 서양에서는 무수한 철학가, 경제학자, 역사학자, 문학자, 과학자 들이 나타나 근대사회의 지식담론을 만들어 갔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의 주체철학은 지식생산의 주요 담론으로 리성의 합리화를 구축해갔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맑스와 엥겔스가 근대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세기적이고 혁명적인 담론을 창출하여 근대자본주의 리성에 대한 부정과 자본론리를 분쇄하고 공유제를 바탕으로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기획하였다. 니체 또한 “하느님은 죽었다”라는 혁명적인 명제를 내세워 자본주의 리성에 도전했다. 그 뒤 하베마스, 푸고, 들뢰즈, 데리다 등 현대주의사상가와 벤야민, 알튀세르, 제임슨 등 서방맑스주의사상가들이 탈자본주의의 미래사회를 기획했다.

그런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사상가들은 자본주의사회의 몰락을 설파하면서 인간의 삶과 가치에 역행하는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류의 평등과 공존을 주장한다.

독서와 사회의 발전

역사적인 격변기에 독서는 개인과 세상을 재인식, 재확인함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도경이 아닐수없다. 글로벌시대의 선진민족으로 부상하려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놓는 지식을 읽고 소화해야 하고 나아가 세계를 움직일수 있는 지식생산의 현장에 뛰여들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야 할것이다.

오늘날 이른바 선진민족은 그 독서의 량과 질적수준에서도 단연 세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년에 있는 책의 평균치를 보면 독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지적인 전통을 가진 서방국가들은 30권 이상이고 우리의 이웃인 일본도 30권 이상, 한국은 20권 가량이다. 중국은 그 수치가 많지 못한것이 유감이다. 바꿔 말하면 읽을만한 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사고하고 지식을 배우고 나중에 지식생산의 대가를 배출하게 되는 것은 일종 바람직한 량성순환이다.

오래동안 인류세계의 가장 중요한 지식생산의 중심지였고, 가장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이 근대에 이르러 몰락하게 된 것은 지식사회의 붕괴가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19세기 말 엄복(严复)이 서양의 진화론을 번역, 소개한 ⟪천연론⟫을 내놨을 때 중국의 지식인들속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진화론”의 적자생존의 론리와 사상은 중심주의의 “천하관”을 무너뜨릴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중국 봉건문화의 몰락이 걷잡을수 없었을 때였다. 그 뒤를 이어 주체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서양사상이 중국에 수용되여 지식령역에서 일대 혁명이 일어났고 드디여 과학과 민주를 호소하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나게 되여 지식령역에서 시작된 혁명이 정치와 사회영력에 확산되여 반제 반봉건 혁명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였다.

중국“신문화운동”의 맹주였던 로신선생은 10여년간 꾸준하게 동서양의 력사, 문학, 철학 등을 읽고 자신의 심각한 체험에 근거하여 국민성의 해부라는 시대적인 명제를 소설을 통해 보여주었고  손문, 모택동 등 중국의 혁명가들은 동서고금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중국문제에 대한 지적인 사고와 분석을 거쳐 삼민주의, 신민주주의 등 사회리론을 제기하고 그것을 혁명실천에 옮겨놓은 것이다.

오늘의 글로벌시대에 있어서 전 인류의 지식은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전파와 데이터베이스(数据库) 그리고 다양한 경로를 통한 번역, 소개 등을 통해 하나로 이어지고있다. 특히 글로벌시대의 번역은 이미 책뿐이 아닌 인류세계 자체를 번역하고있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일가?

글로벌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단순히 흥취에 의한 독서와 결별하고 의식적이고 사명감을 지닌 독서를 해야 한다. 오늘날 독서가 없는 인생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서가 거부된 사람은 모든 담론에서 참여의 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독서는 자기 자신을 구출하는 인생실천임을 자각해야할 시점이다.
기술문명과 지식, 정보의 발달은 그 역효과로 인간의 소외를 낳는다. 인간은 과학문명의 노예가 될 위험과 기계의 부속품으로 될 위험에 로출되여 있다. 소외는 곧 물화, 즉 인간성의 상실임을 자각해야 할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영원성 가치는 인간 자체에 있음을 조금도 잊어서는 안되는 이 시점에서 독서를 통한 자기 생명의 발견, 사회기획에 대한 공동참여, 미래에 대한 약속 등을 실현함은 현시대 인간의 행복한 선택이요. 존재와 가치실현을 위한 지름길일 것이다.

독서는 부동한 인간의 리성과 감성에 공동으로 작용함을 잘 알아야 한다. 각 민족은 물론 자기민족의 남긴 명저들을 읽어야 할뿐만아니라 타민족의 명저들도 읽어야만 한다. 문학독서만 보더라도 우리는 굴원, 리백, 두보, 소동파 그리고 “4대명작”을 읽어야 할뿐 아니라 인도의 타고르, 러시아의 뿌쉬낀, 영국의 섹스피어, 프랑스의 루소, 에스빠냐의 쎄르반테스, 미국의 헤밍웨이 등도 읽어야한다.

이러한 독서는 자기민족에 대한 리해와 더불어 인류의 대화와 공존에 불가결한것이다. 아울러 세계적인 사상가들과 과학자들의 명저들도 읽어야 한다. 물론 독서는 자신의 독서능력에 맞게 해야 할것이다. 동서양의 문명을 깊고도 쉽게 해석한 ⟪구라파문명소사⟫와 후기자본주의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설명한 ⟪그림으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 등 인문학 도서들은 동서방의 문명의 차이를 인식하고 현대사회의 발전을 인식함에 계시가 크다고 하겠다. 전자의 책을 통하여 우리는 동양과 근본적으로 다른 구라파문명 즉 “폴리스(도시국가)민주주의”와 과학기술문명, 그리고 전사문화에 대해 알수있으며 후자를 통해 중심과 권위를 해체시키고 있는 탈근대 사상의 발생과 특징을 이해할수 있다. 이러한 독서는 문화의 비교속에서 자신을 읽고 세상을 읽어갈수가 있다.

독서에도 옳고 그름의 시비가 있다. 모든 독서생활이 죄다 인류에게 정신적 량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도서는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해치는 독소물이 될수도 있다. 중국의 유수대학의 교장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양숙자원사는 지식인의 도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량심과 량지를 가진 지식인은 지식생산을 통해 인류에게 복음을 줄수 있지만 패륜패덕적인 지식인은 지식생산을 통해 인류에게 재난을 준다고 단도 직입적으로 지적하였다. 특히 그는 문화대혁명시기에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의 정치적 권위에 아부하여 기획한 지식생산 행위에 대하여 가차없이 비판했다.

인도출신의 탈식민주의 리론가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글로벌(全球化)시대에서도 구태의연하게 존재하는 중심주의 사고를 비판하면서 중심주의를 철저하게 해체할수 있는 별나라(星球化)시대를 만들어가야한다고 했다. 독서는 독자의 선택이 따르되 가치판단 기준이 중요한것 같다. 정확한 가치판단에 따라 인류의 문명과 다원공존,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사랑,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기획과 행복한 환상 등등으로 엮어진 책을 읽어 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저 푸른 하늘의 별빛을  찾아 줄기차게 걸어가는 황홀한 생명의 력정일것이다. 별빛은 인류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아름다움을 주기에 억조만리 먼먼 길이 될지라도 인류는 다같이 가기를 원한다. 나는 우리 조선족사회 모든 성원들이 이 희망의 별빛을 찾아가는 행렬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