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내몽공 푸른초원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기어이 한국에까지 와서 석.박사를 끝내고 현재는 대련에서 교수로, 대련조선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남춘애 교수의 수필은, 그 언어가 초원의 풀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 같다.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터치하며 감정의 터울터울을 조용조용 풀어간다. 절대 요란하지 않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써내려 갈 줄 안다....<편집자>   

▲ 南春爱 약력 : 중국 내몽골 우란호트 출생, 내몽골 우란호트 3중 –고중졸업. 연변대학 조문학부-언어문학 전공, 문학학사. 료녕성 무순시 조선족 고등학교 국어교사, 충남대학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문학석사, 문학박사. 대련민족대 외국어대 한국어학과 교수-재직. 대련조선족문학회 회장, 대련시 안중근연구회부회장. 저서: '중국 제재 근대조선이민소설의 서사주제론', '해방전 중국 조선족 소설문학의 파노라마'. 논문:  <강경애 소설의 중국 요소연구 >,  <안수길 북간도의 중국 요소연구> 등 35편 발표, 수필 <못난 귤> 등 60여편 발표.

제1편
봄의 기품
  봄이 풍만해진 앞가슴을 한껏 열어제치고 천하만물을 한품에 품기 시작했습니다. 살랑살랑 포근포근 봄의 가슴을 줄타고 흐르는 빛이 산과 들의 몸에 기지개마사지를 하고 있습니다. 산에는 희망의 첫시작을 알리는 온갖 봄소리가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올통뾰족 부끄러운듯 장난하듯 자연천사들이 그 소리에 첫걸음마애교를 부리고 있습니다. 애티도 못벗은 갖가지 들나물들의 부름에 못이겨 달려간 여인들이 수확의 즐거움에 퐁당 빠졌습니다. 연포름한 너울을 얇다라니 쓰고 인간을 향하여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릿다운 봄기상이 대지의 허리를 칭칭 휘감아돌고 있습니다. 그 매혹적인 자세에 심취한 인간들이 마음의 걸음따라 그침이 없이 봄산에로 봄들에로 나서고 있습니다.  계절에는 끝이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이 끝을 모르고 달리는 계절은 봄이라고 부 르는 리더의 눈짓에 따라 스타트한지도 한참 되었습니다. 아량이 한량이 없을 뿐더러 베푸는 성품으로 명망이 하늘같은 봄에너지를 얻어 챙기고자 사람들도 겨우내 한기에 바닥까지 죽어있던 기의 문을 활짝 열고 봄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고 있습 니다. 그들은 바람도 공기도 해빛도 나물도 잎도 꽃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간에 높이 바치는 넉넉한 봄의 품에 안겨 산들산들 촉촉한 감동을 한껏 맛보고 있습니다. 봄의 기품은 기쁨도 괴로움도 실패도 성공도 희망도 고민도 다 감내할 수 있는 열두폭치마를 닮았습니다. 사람들은 봄의 애무를 한껏 받아 어느덧 봄의 정열에 심취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 랑에 넋을 잃었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의 터널을 나와 잠깐 숨을 돌리 다가 봄에게도 원칙이 있고 성깔이 있다는것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봄이 주는 미소에 정신줄을 놓고 마냥 그가 하자는대로만 했다가는 봄의 아침에 숨은 꽃샘 감기네 집으로 잘못 들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봄은 자기의 표정 앞에서 쩔쩔매는 사람들을 조롱 하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래서 어느 누가 곰차림으로 집 문을 나서면 따뜻한 미소로 다가가 겹옷들을 한층 두층 슬금슬금 벗겨주고, 하르르차림으로 집을 나선 사람을 보면 냉기품은 바람으로 냉큼 다가가 도톰한 옷을 한겹 두겹 껴입게 튕겨주곤 한답니다. 이처럼 봄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 준비와 대비의 양호한 습관을 배우도록 따끔한 가르침을 한답니다. 그래서 봄선생님의 그 배려에 감동먹은 사람들이 배낭 이나 팔걸이에 항상 도톰한 옷가지들을 챙겨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가끔 예고없이 표정을 고치는 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랍니다. 그가 누구든 자연의 일인자인 봄의 권위를 거슬렀다가는 만병의 집중영인 병원의 손님으로 대접받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정복자의 팔자를 타고 났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정복의 보좌지 킴이로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봄이 보내는 다스림의 세례를 수시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게 또한 인류라고 합니다. 세상룰을 뜯어고칠때는 고치더라도 나중에는 자연의 섭리에 허리굽히는 유연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리유로 사람은 항상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나 봅니다. 자연봄과의 대화가 쉽지만은 않을진데 다스리기도 하고 다스림을 받기도 하면서 수평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인가합니다. 만물의 룰을 쥐락 펴락하는 령장이란 이름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봄을 땅만큼 좋아하고 하늘만큼 사랑합니다.왜 그런고 하니 봄이 한 번씩 올 때마다 꿈나무 한 마당을 옮겨 심을수 있다는 리유 때문인가 합니다. 지난해 양지바른 언덕에 심었던 꿈나무가 때아닌 폭설에 요절 했다고 해도 문제시될건 전혀 없습니다. 올해 다시 꿈나무묘목 한그루 옮겨다 심으면 꿈나무에 재생이 올테니 괜찮다고 봄은 좌절자의 허리를 편하게 펴 줍니다. 봄은 인간에게 새로 옮겨진 꿈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기어코 꽃이 피게 하겠노라 충천의 희망을 가지도록 마음의 등을 밀어줍니다. 이처럼 봄은 사람들의 희노애락 성화에도 끄덕없이 견뎌내면서 자신의 양양분을 고스란히 바치는 상록의 존재입니다. 그만큼 봄에게는 자기가 하사하는 갑진 선물들을 넙적넙적 잘 받아 챙기기만 하는 공짜에 재미 본 사람들을 그대로 얼싸안아주는 아량을 갖고 있나 봅니다.  인간도 봄을 닮은데가 있습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헐떡거리며 달리다가 여름에게 자리양도를 하는 그날을 맞이할지언정 쉼을 두지 않는 봄의 그 품성이 인간의 몸에 서도 숨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투를 향한 인간들의 일편단심들은 순간을 놓칠세라 노력의 방향을 따라 달리고 또 달리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과정이 값진 인생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엄마와 연결된 태줄를 끊고 지구에 생명의 점을 찍는 순간부터 한줌의 재로 골회함에서 마감의 점을 찍을 때까지 왼눈 한번 안팔고 달리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쉼표가 유행되는 요즘에 자주 찍고 가는 쉼표 또한 더 잘 달리기 위한 충전일뿐 정지는 아니랍니다. 이처럼 인간은 잠시의 끝냄으로 모든 것이 종식할 듯한 페허위에서도 참신한 시작의 출구를 찾는 봄의 품성을 지녔습니다. 봄이 올때마다 땅의 뚜껑을 살짝살짝 밀어내고 생명의 기적을 이루어내는 새싹처럼 인간 또한 혈통과 실적과 이념의 맥으로 영구한 삶을 이어가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봄이 주는 지존의 선물로 모든 생명들이 분투의 그물에 자진하여 뛰어들면서도 행복 하다고 웨치는 아름다움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봄이야말로 한이 없는 삶을 그려내는 전설을 한해 또 한해 이어가는 영원한 시작의 신화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굳이 장생불로 무한생명의 천사를 물색한다면 봄이 첫 순위로 당선이 될 겁니다. 봄은 무한리필이 가능하여 시간의 구속에서 빚어지는 시행착오에도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흉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품성이야 말로 생존마당을 독점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혜의 심장이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와같은 대범함이 사람들이 봄을 좋아하는 리유가 되어 ‘봄사랑무한금자탑’이 쌓아졌나 봅니다.  물론 봄의 인격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봄의 사랑을 별개로 알고 봄이 제집 문안으로 찾아들어 포근한 애교를 부려도 개나 소가 오가듯 알은체조차 않는 고약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작은 심장에다 기억한 봄은 바보스러운데가 있어 그를 어떻게 구박하고 무시해도 안색조차 흐릴줄 모르니 아무렇 게나 대해도 괜찮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봄과 만났을 때 그저 스쳐지나기만 하고 그와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던가 그의 깊은 의미를 가슴에 새긴다든가 하는 일은 커녕 조금도 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열리고 땅이 웃는 봄은 또 끝이 없기 때문에 내키지 않을 때는 함부로 등져도 해될 것 없이 무난하다고만 생각합니다. 봄이 집앞에 놀러와서 아지랑을 만들고 어깨동무를 하자고 소식을 보내 와도 안방자리만 지키고 앉아 컴퓨터의 노예로만 사는데서 만족을 얻습니다. 그들은 방안에 있으면 머리카락을 잡아일으키는 봄바람의 성가시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봄그네를 타고 공중을 휘젓고 다니는 미세먼지를 흡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봄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사실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 다. 물론 인간마음을 알아내는것만큼 어려운 과학도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하여 마음을 알면 모든 것을 안 것이라고 하는 말이 생기기도 했나 봅니다. 봄의 마음을 읽기란 그리 난해하지가 않습니다. 봄과 함께 걸어보시면 알게 될 것 입니다. 봄이 닦아놓은 길에는 꽃샘추위가 강한척 버티고 있어 그에 대해 미운 생 각도 없지 않겠지만 봄을 걷는 당신의 자세를 좀만 달리한다면 그 길 위에 널려 있는 갖가지 아름다운 생각꽃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생각의 꽃을 한송이만 꺾어도 당신의 마음에 뭉치고 체했던 덩어리들이 훈풍만난 얼음인양 슬슬 풀려 당신삶의 에너지원이 만들어질겁니다. 만약에 마음의 손을 내밀어 한송이를 더 꺾 는다면 몸에 필요한 베타카로틴이나 융복합비타민들이 줄을 서서 당신의 체내로 흘러들어 건강 제를 무료로 듬뿍듬뿍 기부받는 꽃다운 기분이 될겁니다. 그대가 만약 세번째 송이를 꺾는다면 겨우 내내 해이해지고 느슨하니 풀어져 찌그려져버렸던 정신력이 탄탄하니 살아나고 그것이 다시 당신육신의 마당에 희망의 아름다운 탑으로 우뚝 솟을겁니다. 아마도 이러한 봄습성에 감동을 먹어서 사람들은 봄의 숨소리만 약간 들려와도 약속이나 한듯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집문을 나설 용기로 충만되는가 봅니다. 그 숨소리가 고르로울 때나 고르롭지 못할 때나 단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몸속에 자고 있는 새 세계를 두들겨 깨우기에는 충분하다는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기 저 산 아래로 펼쳐진 바다의 품이 제아무리 넓다고 한들 사계절의 수석(首 席)인 봄의 아량에 견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경창파 한 가운데에 폼잡고 한껏 뽐을 내고 섰는 저 섬이 제아무리 높다한들 봄의 꿈나무 옆에 세우면 일등 난장이 격이 되고 말겁니다. 넓고 높고 깊고 길고 영구함으로 축조된 봄은 무한함 그 자체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예로부터 봄을 읊는 시인은 유난히 많았던거 같습니다. 두보는 ‘춘풍은 화초의 향기를 전한다(春风花草香)’고 했고 소식은 ‘봄밤의 일각은 천금이라 했거늘(春宵一刻值千金)’라고 봄을 읊었습니다. 송나라 주희의 칠언절구 <봄날>에 서는 새록새록 녹음이 오르는 강가의 나무들을 통해, 그리고 몸과 얼굴을 스다듬는 바람에, 자연을 울긋불긋 물들이며 만발준비를 하고 있는 꽃망울들을 보면서 ‘봄이 왔구나’하고 감탄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희의 원문시 <봄날 (春日)>을 읽으면 자연의 기상을 업시키고 인간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생동하는 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날 꽃 찾아 사수 강가에 왔더니 胜日寻芳泗水滨끝없는 광경이 새롭기만 하구나. 无边光景一时新한가로이 거닐다 봄바람이 얼굴에 닿자 알았네 等闲识得东风面꽃망울이 울긋불긋 만발을 준비하니 봄인가 하노라! 万紫千红总是春 이처럼 봄은 보이지 않는 스승이고 가르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자연의 봄이 열어주는 꿈의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 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천리만리에 만만리를 이어가며 걷고 있습니다. 저 멀리 에서 아지랑이가 봄바람을 타고 춤을 추고 있고 길가 양지바른쪽에는 뾰족이 내민 새싹이 양광의 애무에 새물새물 웃고 있습니다. 봄의 산행길에는 그야말로 자연이 선사하는 노다지보배들로 빼곡그득합니다. 봄을 걷고 걸으면서 옷자락을 귀엽게 살짝살작 들춰주는 봄의 몸짓을 살펴도 보고, 상긋하고 싱그러운 봄의 내음을 맡아도 보고, 새싹을 출산하는 봄의 아픔을 위로도 하고, 얼음을 이기고 달려온 봄의 몸체를 안아 녹여주기도 하고, 봄이 만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하면서 걷고 또 걷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봄을 걷고 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 시작의 기(气息)를 개개인에게 억만번 채워주는 봄의 축복을 받으면서 걷고 있습니다. 이렇게 걷고 있으니 심중엔 봄에 대한 감사로 한가득 차오릅니다. 세상을 채우는 봄의 아름다운 기품에 감사패 (感谢牌)를 만들어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 어둑한 거리, 님은 멀리 떠났고, 겨울비는 마음에 내리고 있네. 너는 나의 겨울비, 외로움이란 이런 겨울비인가요?...<편집자>
  제2편  배움의 머리맡에 핀 한송이 꽃  요즘은 외계로부터 미와 진실과 사랑을 구할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도 강아지가 고양이를 만났을 때처럼 가급적이면 피해서 지내게 되는 시대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발전의 끄터머리에 선 문명의 시대위를 무사고로 걸어가려면 자신의 내부에 양가성의 수양을 간직해야 합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러한 간법들에는 비관의 색체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진하다고 꼬집힐지도 모르나 인간 문명을 확대하여 들여다보고 얻어낸 나름의 답이니 참고가치로 알아두기를 제안합니다. 그래도 인간이 행복이라는 무한 대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행운을 갖고 있다는것은 인생이란 페이퍼가 수학문제처럼 단 하나 의 해답만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산 아리랑>에 관련된 자료가 필요하여 도서관을 가고 있는데 눈이 와야하는 12월 겨울이건만 을씨년딱지가 붙여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악전고추하여 모셔온 문명의 시대에 겨울비가 자연의 호적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제갈길을 가고 있습니다. 겨울비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삶을 벌려놓은 지구의 마당을 고약하게 더렵혀놓을 양으로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에 줄 불편의 너울을 쓰고 파워의 배짱을 부리면서 끊임이 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비는 푼수를 알아서인지 소나기는 쏟아붓지 않았습니다. 비방울들이 간격을 두고 방울방울 내립니다. 비를 맞으며 도서관 쪽을 향한 오르막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쩐지 겨울비가 내 신발에 진 흙을 붙여 주고 내 마음을 나쁜 기분으로 전염시키자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속에서 걷는 사람들의 씩씩한 걸음걸이에 찌끄러짐이 더해집니다. 겨울비의 표정에 소금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것이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울비 역시 변덕과 변화의 영혼을 지녔나봅니다. 겨울비에는 내 삶의 고운 한 페이지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이 밉다고만 여기는 겨울비의 등줄기를 타고 내 마음을 울려주는 멜로디가 다시 한번 전해옵니다. 그리운 목소리를 전해주고 생업의 길을 열어주는 삶의 밧떼리 같은 휴대폰의 분실로 헝컬어졌던 심상을 치유받았던 그날, 그날은 비가 내리는 겨울의 12월 중순이었습니다. 나의 심장은 도우미천사나 된 것처럼 회색실망을 지워버리고 반짝반가움을 전해오는 겨울비를 포옹했습니다. 그날도 시간에 쫓겨서 버스를 탔었습니다. 버스전용선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기사님의 빨리빨리성미때문인지 시내버스들은 고속도로의 운행속도를 닮았습니다. 교통의 전체적 흐름에 편리를 주고는 있겠지만 나와 같은 외국인이 도착지에 따라 하차 버튼을 눌러야 하는 부담도 있어 버스에 앉아있으면서도 신경은 잠시도 풀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좀만 마음의 게으름을 부려 차창밖 세상을 구경하는 날이면 정차역을 몇 개씩 지나가버리는 무료체험도 하게 된답니다. 그날은 출발이 좀 늦어졌기에 일단 애니콜 휴대폰으로 좀 늦어질것 같다는 이야길 학생에게 문자로 날렸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후 6분정도를 만사대길양으로 신경의 선을 놓고 뒤로 물러가는 것들에 호기 심을 달았습니다. 한주에 두 번 정도 항상 이 노선의 버스를 이용하지만 보고 보아도 새롭기만 합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해물샤브샤뷔페집을 하나 봐두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있어서 음식은 향수를 달래기 위한 전략의 중요한 일방도였습니다. 나는 그 식당 이름과 위치를 메고하고는 그만 휴대폰을 의자위에 놓은채로 차에서 내려버 렸던것입니다.  피곤에 반죽이 다 된 몸이라 기억은 선심을 베풀지 않았음입니다. 목행지에 도착한 다음에야 실수를 와들짝 발견했고 기분은 금방 하늘만큼한 멍이 들어버렸습니다. 소를 잃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다음에 다시 잃는 일이 없다는 이치는 모르는바 아니나 고치기 전의 일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잠시간의 망각이 이제 천하 아픔으로 변신하 였습니다. 깨닫음을 아는 동물은 사람외에는 없다고 하지만 땀과 속앓이 없이는 한술의 밥숟가락도 뜨지 못하는 배움과 생활의 최하층에서 이 이치를 읽게 되는 괴로움은 내 마음의 사전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그때는 구름을 구름이라고 명백하게 부를수 있는 하많은 주변인들의 환한 느낌이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나는 뛰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휴대폰을 싣고 종적을 감추어버린 버스는 나에게 아무 배려를 되보내오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잊어진 놀람과 아픔을 무마하느라 늦어진 시간을 다시 메우기 위해 땀을 흘리며 뛰었습니다. 인생이란 이러한 코스에 코스를 이어 달리고 달려 생성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일조각들로 가득채워진 접시가 내 과외 학생의 공부방 테이블위에 놓여있었습니다. 다른때 같으면 ‘고맙습니다’로 그집 어머니께 인사보냈겠지만 오늘은 잃어버린 휴대폰 생각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첫시작이 학생의 손전화로 내 휴대폰 번호를 손끝이 아프도록 수없이 누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산도 강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심장이 쩌억 하고 두동강 되는 분열의 외마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 쳤는지 지각도 없이 시간의 낰시코에 물리워 과거의 배안에 신속히 육박해 들어가 버렸습니다. 뇌의 집에선 휴대폰이 온갖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오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내가 막 과외를 마치고 다른집으로의 출발을 시작하려는데 ‘야근중이여서 전화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하며 어떻게 이 휴대폰을 돌려드려야 하는가를 상세히 물어왔습니다.  그때 나는 지붕을 뚫으면서라도 훌쩍 올리뛰고 싶은 심정의 환희를 겨우 억제했 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분은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그렇게 듣기 좋은 목소리는 처음인듯 했습니다. 아침의 찬란한 태양이 숨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자기가 야근을 마치면 내일아침이 되는데 마치는 길로 내가 짐풀어 놓은 배움터로 와서 되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침 9시 도서관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감동의 옷을 입은 내 마음은 그채로 하루밤을 지냈습니다. ‘나만 좋으면 최고’가 되여버리는 현대의 윤리에 깔린 불의를 향하여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이 있음으로 하여 실망의 쓰림끝에 젖어있는 나에겐 고약과 붕대와 같은 치유의 길이 열렸습니다. 새벽녁에야 잠이 좀 들었습니다. 엄마의 약손아래 잠든 아이마냥 숨소 리도 한결 고르로왔을 겁니다. 마음의 해일이 잠잠하니 멎었으니 바람막이 찾기에 동분 서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길로 나는 안심의 진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가까운 실망을 먹고 쪼각난 마음들이 다시 부활의 도장을 찍기 시작했 습 니다. 걱정이 웅성거리던 내 호흡의 집에 안정이 찾아들었습니다. 잠시 잃어버렸던 모바일은 내 기억의 소포트웨어이고 소중한 정보의 보험고입니다. 이제 찾게된 이 모바일은 또 오빠네 부부가 동대구의 한 모텔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던 부의 첫발을 담은 기억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엄마의 사랑이 널려있고 남편의 그리움이 숨쉬고 있으며 아들에게 넘겨 줄 포만된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거기엔 학구적인 자세가 담겨있으며 선배의 가르침이 깃들어있습니다. 거기엔 시간의 룰이 정해져 있으며 마음의 정박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금방 터쳐놓은 내 생활의 흐름의 논고가 있으며 디자인 미완성인 미래의 설계도도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언제 솟아날지 기약할수 없는 침몰과 같은 고통의 의미입니다.  상쾌하던 아침에 이어 얼굴을 흐리지 않은 하늘에서 주룩주룩 겨울비가 쉼을 망각하고 내리고 있습니다. 저 먼발치에서 손에다 자주색 액세사리피리가 달랑거리는 모바일을 들고 오르막 길을 올라오는 멋진 남자가 보였습니다. 나와 생사고락을 같 이하는 애니콜 모바일이 분명했습니다. Anycall이라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고마움을 먹은 걸음을 신나게 옮기며 마중하여 걸었습니다. 중앙도서관 옆에 있는 캠퍼스화원가의 길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마주 섰습니다. 인사치례를 별로 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여차여차하다는 자기확대의 찬양을 일언도 내비치지 않고 휴대폰을 넘겨주며 ‘그럼’ 하더니 마침 지나는 택시에 앉아 허리만 약간 굽혀보이고 가버렸습니다.  그때 나는 내품으로 돌아온 휴대폰과의 재회에 빠져 그분의 직장, 이름, 고마움, 사례, 모든것을 제로로 떠나보냈습니다. 이렇게 나는 인생의 아쉬움을 적는 메모장에 진한 한획을 그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릴때 마다 자아원망의 우주문이 열립니다.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날아나오는 공격의 화살에 자진하여 가슴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지나온 날에 대한 경의의 궁전을 지어줍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뒷모습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읽었습니다. 아무것도 바람이 없이 자신의 소신을 깔끔히 실천해놓고 가버리는 인간됨에서 나오는 향기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억해갈겁니다. 바람을 닮은 순간적 만남이 세월의 무정한 토벌을 이기고 내 마음의 집에 무지개의 아름다움으로 마냥 살아있을 겁니다.  도선관을 향한 내 걸음걸음의 밑에서 겨울비는 음악의 무지개로 변신합니다. 알았습니다! 그날의 겨울비가 품은 무지개는 지금도 내생의 머리맡에 한송이의 꽃으로 피고 있다는 진실을!  

▲ 김치 이미지를 편집하고 보니 "어, 먹고싶어"하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 민족 말고 누가 또 그런 말을 불쑥 내뱉을 수 있을까?  맵고 신 맛이 곧장 군침을 삼키게 한다. 김치와 더불어 오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엄마 맛!'- ...<편집자> 

 제3편  맛의 부자  음식의 진미를 가르는 입맛에도 민족이나 국적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케이 스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거나 장기 여행길에 나선 사람의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한 입천정의 느낌은 어쩌면 엄마의 손끝 사랑이 담뿍 담긴 음식맛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있던것이 곁을 비웠 기에 그리워지고 갖고 있을 땐 몰랐던 소중함이 느낌의 세계를 윤색해주는 법이니 말입니다. 타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면 먹고싶음을 길어올리는 맛의 시달림 역시 하나의 어려운 시험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하는 나날들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사실 나의 입맛은 튀김음식의 본토에 고향을 두었더랬습니다. 귀국을 할 때마다 한번씩 맛보고 나면 식도가 금방 미소를 하고 온몸에 도사렸던 궁증의 집념은 모래탑 마냥 순식간에 허물어져버립니다. 하여 식욕의 품에 안겼던 욕망은 금방 퇴색해 버리게 되고 일단 ‘말자’라고 하면 단념이 자진하여 따라나서줍니다. 한두번 먹는것으로 수년간 터실터실해진 입맛에 달램을 줄수가 있고 지금은 그리운줄 별로 모르니 말입니다. 이런 맛은 마음의 시킴을 곰상곰상 들어주기에 접어버리기도 쉬웠고 있어도 없어도 별 할일없는 그러한 먼거리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치만은 아닙니다. 식사상의 찬들이 아무리 푸짐해도 김치는 꼭 곁들여야만 먹음의 직성이 코대를 수그립니다. 전라도 한정식 밑반찬 가지수가 어마어마하리만큼 많다고 하지만 거기에서 김치를 빼버린다면 살을 다 뜯어낸 뼈골같아 금방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하게 될 것입니다. 꽁꽁 어는 부엌방에 쪽걸상 놓고 앉아 대독 에다 김치를 담그는 날은 지금 생각해봐도 기분의 마당을 흥성거리게 하는 설날과 같습니다. 엄마가 양념장 입은 손으로 뚝 잘라주시는 통배추김치는 정말 맛의 하늘입 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한 엄마사랑을 고스란히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릴때 한번은 바로 그맛에 꽁꽁 묶여서 잠자리에 지도를 그려놓을 만큼 탐식을 했던 일이 무던히도 행복한 기억으로 되어 지금도 내삶의 나무를 푸르게 수놓아 주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맛의 집에서 떵떵거리며 세습황제의 틀을 차릴 자격자는 김치뿐인 것 같습니다. 편한것에만 눈밝히는 인간의 게으름이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요즘분위기가 어짢긴 하지만 세월은 그런 일군들에게 찬의 천태만상을 함유한 슈퍼문화라는 행운을 풀어주었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다종의 김치들 이 하나같이 빨강 화장을 하고 줄을 서서 ‘날 좀보소’ ‘날 좀 사주소’를 부르고 있는 호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돈의 냄새를 맡고 이루어진 아이디어 조각들이라 엄마의 포기김치 앞에선 아전이나 시녀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스턴트가 살판을 누리는 세월에 어쩔수 없이 수긍하고 맙니다. 엄마의 김치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먹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김치가 먹고 싶을 땐 매장 앞으로 가서 가격표 눈요기를 합니다. 어떤 때는 반포기씩 사서 먹기도 합니다. 비록 김치갈증을 푸는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맛을 핥게 하고 기억하게 해 줘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외국에서의 공부생활이란 가난과 고독이 없이는 하루도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 수입의 제로형 소비자라 인스턴트일망정 누리는 시늉만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맛부자와 혼인하는 사치나 다름이 없습니다.  풀무원 김치가 맛있다고 칭찬들이 높아 가길래 어떤땐 시식코너를 돌아보며 둬 조각쯤 먹어보는것으로 그 맛을 입에 감아보고 마음에 느껴보군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먹고 싶은것의 욕망을 더 조장해줄 뿐입니다. 먹고는 싶은데 먹을수는 없게 될 때 삼시세끼를 이어 싫컷 먹어보았으면 하는 소원이 생겨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월이 겹쳐겹쳐 어느덧 마음의 약을 필요로 하는 김치게걸병이 뼈속에까지 침투되어버렸습니다. 김치의 집에는 맛만 들이면 잊음이 안될만큼 입맛구 미를 꽉 붙잡아버리는 그러한 김치의 얼이라는 것이 들어있는거 같습니다..  정말 달랠 길 없는 맛의 독촉앞에서 나는 부끄럽게도 가끔은 눈을 피하여 학교구내식당김치를 도시락에 좀씩 챙겨오는 것을 범하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맛의 괴로움을 엿보기라도 한듯이 중국어 과외공부중인 박씨성을 가진 학생 엄마가 김치를 싸 주기도 했습니다. 식당김치에 비해선 엄청 맛이 뛰여올라 맛의 행복감을 환호하며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 김치는 엄선된 배추에 가족인의 입에 들어가는 사랑까지 넘치게 담긴 것이라 그것을 먹고있을 땐 정말 두끼쯤 굶은후 신라면을 만나는 일미의 맛이었습니다.  그 김치는 맛의 배가 참으로 넉넉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먹고 맛의 배가 그렇게도 불러있는지 알순 없으나 그 김치의 맛은 지금도 늘 식미의 자락에 매달려 나를 못 살게 굽니다. 본인의 재주로는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이 온다고 해도 그 맛의 묘미를 못 살릴 것 같습니다. 절인 배추포기에 마늘과 무우와 고추가루로 반죽된 양념장만 갈피로 넣어주면 그만인줄 알았던 그런 초라함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랍스타나 전복이 왔다가 울고 갈 화려하면서도 김치원조의 소박함을 잃지 않은 그러한 맛이이였습니다.  좋은 세월은 인색한 법이라고 합니다. 이 유자를 잘 챙겨주던 그 집에선 뉴질랜드로 이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김치의 공급원은 이렇게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고픈 김치배를 달래주는 마지막 출로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품어주는 교회의 사랑손이었습니다. 봉사의 넋을 먹고 만들어진 것이 여서 그 맛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한주에 한번씩은 원없이 먹을 수 있어서 늘 고맙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무에 껍질이 있고 사람에겐 체면가죽이 있는 법이라 스스로 이 김치원을 잘라버렸습니다. 이는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만들어낸 사랑음식에 대한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생각의 벽돌을 쌓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영원히 김치를 먹을수 있는 식사법의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말입니다.  사람이 못해내는 일은 없는가 봅니다. 나는 마음은 갖는대로 된다는 천하 최첨단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돈 천원이면 김밥 한 줄에 된장국과 김치가 나오고 김치와 된장국은 한 두번 더 요구해도 식사비가 덧붙지 않아 김치를 톡톡히 먹을수 있는 법- 김밥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김밥천국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식당입니다. 구멍가게처럼 작기는 하나 내집 안방에 온것 같이 편해서 크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벽이나 한 밤이나 나에게는 단돈 천원이면 입을 호강시킬수 있는 식사의 천국입니다. 가격기준도 나에게 맞춰서 정해진듯 하고 시간의 성화를 받는 사람인 나에겐 항상 자유시간의 자리가 되어주었고 김치게걸증 치유의 최고만족을 주었습니다.  가끔은 ‘이 아줌마 김치 정말 좋아하시네’ 에 ‘너무 많이 먹는거 아니세요’ 를 곁들이는 그 말을 비위좋게 받아 넘겨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얼굴에 쇠가죽을 씌우는 것 역시 바탕생존의 철학이라 행하며 자신의 초라함에다 금의를 입혔습니다. 팔아서 사는 세월은 변함없지만 땀을 팔아서 지식을 팔아서 땀냄세 다분해진 지갑은 활짝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딱함에 맞뛰울때면 무언의 미소를 팔아 김치를 바꾸는것도 악덕의 출연은 아닌줄 압니다. 반대로 그것은 삶의 그릇을 채우는 재산의 씀바귀꽃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나의 발길이 닿는 김밥집들에는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 생각없이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김밥한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그 맛이 다하기도 전에 허기에 쫓겨 구수한 장국을 마셔넣을라치면 “김밥 많이 좋아하세요” 라는 물음에 담은 구면이 맞아주군 합니다. 아울러 나그네의 고달픔을 동정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언제나 많은 양의 김치로 배려되여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손은 자꾸 눈가로 올라가고 가뭄에 타던 마음의 터전엔 보슬비가 보슬거립니다. 돈이 사람행객을 하는 작은 지구촌에 아직도 인심이 인격이 되었던 어젯날 큰 아량이 다 죽진 않았나 봅니다.  세월은 내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을는지 몰라도 내 삶이 적힌 마음의 역사책에는 김치가계부가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치가 먹고 싶을 때 계절을 타지 않는 엄마의 김치독같이 함께 있어준 그 맛이 저생이 가서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가산을 털어서래도 나에게 정을 주고 내일을 묻어준 김밥집 김치에게 목걸이 팔걸이 귀걸이를 다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가슴에다 맛의 부자란 명찰을 척 붙여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김치는 맛의 고향에 늘 녹아있으면서 삶의 길에서 뛰고 있는 나에게는 생명의 작은 고임돌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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