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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대림칼럼➁/전은주]‘차별’에 대하는 자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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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30  22: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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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은주 약력: 1986년 도문 량수 출생, 연변대학교 문학 석사, 연세대학교 문학박사, 현재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객원연구원, 2008년 계간 ‘창작21’ 시인 등단, 연변작가협회 및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원.
[서울=동북아신문]한국 개그 프로에는 심심찮게 조선족 캐릭터가 등장한다. 십 년 전쯤에 강성범의 과장된 몸짓과 우스꽝스러운 ‘연변말’로 “우리 연변에서는”으로 시작하는 ‘연변총각’이나, 이수지의“당황하셨어요, 고객님?”으로 시작되는 ‘보이스 피싱’ 전화나, 김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고 떼어먹는 개그맨의 형상 등으로 조선족을 희화화한다.

한국의 많은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개그로 받아들여 인기 코너가 되었지만, 당사자인 조선족들은 그것을 조롱과 혐오로 받아들여 분노했다.

“우리를 우스개거리로 삼다니! 동포를 이 따위로 박대하다니!”

거개의 조선족들은 화면에 비치는, 깔깔거리며 웃는 그 관객조차 다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화가 났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들의 그런 행동에 대해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계기는 경상도 출신 어떤 교수님의 일화를 들은 뒤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경상도에서 자란 ‘촌놈’이었다. 60년대 중반에 진학을 위해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와서 그에게 말을 붙이고는, 그가 하는 경상도 사투리에 박장대소를 했다. 그가 밖에 나올 때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를 보고 멀리서 소리쳤다.

“머라카노! 와 그람니꺼! 개안슴니더!”

그 시절에는, 그가 버스를 타거나, 가게에 가서 사투리를 쓰면 사람들이 신기한 듯 구경을 했고, 또 누군가는 흉내를 내며 깔깔거렸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말이 웃음거리가 될까봐, 말도 잘 못하다가 급기야는 말을 더듬거리게 되었고 대인기피증도 생겼단다.

70,80년대까지도 한국의 TV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부나 노동자 역할들은 모두 경상도나 전라도 말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울말이 아닌 기타 말투를 쓰는 사람은 모두 ‘촌놈’으로 취급하여 조롱거리로 삼은 것이었다. 악의가 없이 사투리가 신기하고 재밌게 들려서 그랬을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촌놈’은 이미 ‘문화적 불평등’이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 한국 사회는 박정희를 시작으로 줄줄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까지 경상도 사람이 대통령을 지내게 되었고, 웃음거리로 삼았던 경상도 말이 판을 쳤다. 어느 대통령은,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강간(관광) 도로를 내겠슴니다, 여러분!”이라고 당당히(?) 말했을 지경이었다.

「이솦 우화」에 연못가에서 재미로 돌팔매질을 하는 소년과 개구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소년들은 개구리들의 목숨이 걸린 줄 모르고 재미로 연못에다 돌멩이를 던졌다. 개그거리로 삼는 그들의 행동은 자칫 그 소년들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조선족을 비롯한 해외동포, 탈북민 및 동남아 등지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 등으로 다문화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촌놈’들이 대폭 늘어났다. 다시 말하면, ‘조선족만’ 그들의 조롱 대상이 아니라, ‘조선족도’ 그 범주에 속했다는 의미이다.

한국인들만 그런가? 최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린 북>(Green Book, 2018) 에는 미국의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백인들로 구성된 상류사회는 그를 초청해 그의 천재적인 연주를 감상하고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지만, 정작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장 화장실을 못 쓰게 하고, 공연하는 그 레스토랑에서 식사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60년대 미국 남부의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까지 미국사회는 흑인이나 동양인에 대한 차별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가하던 사람도 해외에 나가면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결국 ‘구별 짓기’와 ‘차별’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완전성’의 속성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느끼고 차별화 하고, 그 대상이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약한 존재라면 거침없이 ‘갑질’을 하는 것이 사람의 ‘원초적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촌놈’들은 그냥 당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그들이‘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분개할 수 있다. 그러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상대의 몫’이고, 우리는 상대보다 더 나은 행동을 찾아내어 품격을 지키면 그게 ‘우리의 몫’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개그프로에 ‘촌놈’만큼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는 대통령이나(SNL “여의도 텔레토비”), 회장님(개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또는 정치인(개콘 “민상토론”) 등이 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자신의 권력으로 코너를 폐지시키는 사례도 있지만, 반면에 ‘개그’를 통해 국민들과의 소통을 도모하면서 너그러움의 증표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쉽게 분노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질까? 개인이나 집단은 어떤 급박한 위기 상황에 처할 경우에 그 충격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 그 외상이 역사적 사건에 기인했을 경우 ‘역사적 트라우마’로 명명한다.(Dominick LaCapra, 육영수 편역, 󰡔치유의 역사학으로󰡕, 푸른 역사, 2008) 트라우마의 속성은 상처를 유발시킨 상황이 과거에 일어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유사한 경우를 만나면 의식 속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켜 현시점에서 고통을 받는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얕은 바다나 강가에만 가도 불안해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받기도 한다. 현재는 전혀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지만 실제 상황이 재현된 것처럼 반응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조선족들이 처했던 역사적인 극한 상황과 그 상황을 통해 의식에 강하게 새겨진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 선조들은 이주 초기부터 자연재해에 의한 기근과 청조 관리나 일제의 전횡과 폭압 등으로 눈물로 고향을 등졌고, 이국땅에서 갖은 차별과 무시를 당하며 공포와 위기감을 참고 억누르며 끈기로 살아남았다. 이방인들의 삶이란 두려움 삼키기, 서러움 견뎌내기, 눈치 보기, 체념하기, 극복하기, 억누르기 등으로 점철되어 그들의 심층의식에 트라우마로 새겨진다. 그리하여 조상들로부터 의식/무의식적으로 전수받은 트라우마 증상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노출되면, 지나치게 긴장하고 과민반응을 보여 분노하거나, 쉽게 좌절하여 자기혐오나 자기 부정에 빠지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트라우마’때문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오면, 다시 가스실로 보내지는 듯한 위기감을 느껴 폭력적으로 변하는 성향이 있다. 조선족들도 유대인들과 유사한 어떤 잠재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닌 채 이방인 또는 경계인으로서의 불안한 삶을 지속하며 자기부정의 모순에 빠진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점차 자기혐오, 연변 조선족 공동체의 해체, 반한 정서에 기반을 둔 재한 조선족 공동체의 게토화 같은 조선족 사회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현재 우리에게 닥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전반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러한 행동이 조선족한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성의 속성을 지닌 그들이 약한 존재한테 가하는 ‘텃세’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분노가 반쯤을 해소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우리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지닌 트라우마의 속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트라우마가 없다고 그것을 부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긍정하면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잘못이 전적으로 상대한테 있다고 보면, 상대가 변화되기까지 우리는 상대한테 종속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할 때, 우리가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남은 음식은 우리를 초대한 그 주인의 것이 되듯이, 누가 우리한테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을 해도 우리가 ‘먹지’ 않으면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욕을 들으면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나가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그것이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인식의 대전환’(아비투스의 혁신)도 가능하게 된다.

「이솦 우화」에서 개구리는 돌멩이를 던지는 소년들한테, “너희들은 장난삼아 재미로 던지겠지만 그 돌멩이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말한다. 개구리들이 돌멩이에 맞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 라고 항의하거나, 또는 그들한테 맞서서 돌멩이를 던지며 싸우거나, 아니면 돌멩이 던지면 우리가 죽을 수도 있으니 던지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해서 그들이 그만 두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개구리는 소년들의 돌팔매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면 된다. 그러니까 굳이 개구리가 되어서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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