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1.통영편

 

 한려수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서 사천.남해 등을 거쳐 전라남도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연안수로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 8경 중 하나로 거울같이 잔잔한 물결, 곳곳에 떠있는 섬들, 고요한 포구, 한가로이 떠있는 범선 등 경관이 아름답고, 곳곳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1968년에 한려해상국립공원(국립공원 제4호)으로 되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유서 깊은 한려수도 푸른 바닷가로 운 좋게도 얼마 전에 2019 재한 중국동포 역사교육 문화탐방을 다녀왔었다. 충무공탄신일(양력 4월 28일)에 즈음하여 충무공의 숨결이 살아있는 통영과 거제도를 4월 27일(토) ~ 28일(일), 1박2일로 다녀왔다. 한국글로벌피스재단 주최, KC동반성장기획단. 한중무역협회. 한마음협회 주관, 행정자치부 후원으로 조직된 이 역사교육 문화탐방의 주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데 그 취지는 재한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사 및 민족의 역사문화 탐방과 교육을 통해 민족적 혈통과 뿌리를 알고, 역사적 동질감 회복 및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함이다. 더불어 ‘코리안 드림’을 통해 우리들의 미래 비전과 역할을 발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 박영진 yongzhenpiao@naver.com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수기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동포문학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지난 4월 27일, 오전 7시에 서울 대림역에서 출발한 한가람관광버스가 첫 문화탐방지인 통영충렬사에 도착하니 점심 12시가 넘었다. 통영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1606년) 이씨조선 선조임금의 왕명에 의해 건립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삼도수군통제영에서 관리하였으며, 춘.추 향사를 모시던 곳이다. 전국에 47개소를 제외한 모든 서원과 사당을 철폐하게 한 서원철폐령에도 이순신 사당 중 유일하게 철폐되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에도 존속된 정통사당이다. 원래 이순신의 사당은 충무공의 순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하여 남해와 충무 두 곳에 건립되었다. 1606년(선조 39년) 이순신의 휘하장군이었던 이운룡이 삼도수군통제사(지금의 해군참모총장)가 되었을 때 어명에 의하여 창건한 충무충렬사와 남해충렬사가 그것이다.

 충렬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두 번째 탐방지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통영시의 지명이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이 통제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본영(현재 진해에 있는 해군본부)을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통제사로 임명되었던 이순신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으며, 현 통영에 위치한 삼도수군통제영은 6대 통제사인 이경준 통제사 때 설영된 장소이다. 이경준 통제사는 이순신장군의 후예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7년 동안 국토가 완전히 초토화 되고 1200만 인구 중에서 300만 인구를 손실 본 조정은 왜군에게 치가 떨려서 삼도수군통제영을 마련한 것이다. 뼈아픈 치욕은 무너진 궁궐의 재건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통제영의 중심 건물로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목조건물 중 하나인 세병관(국보 제305호)이 있으며, 지방 공방 중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통영 12공방 등이 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 즉,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씻을 세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이 된다. 평상시에는 세병이나, 유사시에는 선병.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 세병관의 현판은 한국에서 제일 크단다. 목이 아프도록 현판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세병과 선병 모두가 결국은 백성과 조국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을.

 통제영에서 조금 걸어서 세 번째 탐방지인 벽화마을(동피랑과 서피랑)로 가는 길에 통영중앙시장이 있었다. 요즘 한국에는 벽화마을이 참 많아졌다. 전국 대도시와 오래된 도시들에 가보면 꼭 하나씩은 있는데, 그들 중 동피랑 마을은 원조에 해당하며,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때마침 장날이어서 장보러 온 사람들로 번화한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울과는 달리 통영에서는 인구가 적은지라 2일장과 7일장을 본다고 한다. 모처럼 통영에 왔다가 이곳 상권도 활성화 시키고 기분전환도 하려고 만원어치에 빠나나 세 송이를 사서 함께 온 탐방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내가 사준 과일을 맛나게 먹는 동행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무척 즐거워 났다. 동피랑과 서피랑, ‘피랑’이라는 말은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는 뜻인데 동피랑은 동쪽벼랑을 의미하는데 본래 조선시대 통영성을 방어하던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다른 지방의 다른 벽화마을들과는 달리 유독 이곳에 그려진 벽화들은 2년이면 무조건 한 번씩 다 새로운 벽화들로 바뀐다고 한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구경하면서 동포루(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서피랑 공원을 거쳐 내려오니 그림같이 펼쳐진 황홀한 항구- 강구안이 반겨준다. 오늘 통영에서의 마지막 탐방지이다. 강구안은 육지로 바다가 들어온 항구로, 강구안 바다는 다른 항구보다 상쾌하고 활기차다. 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며 바다가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 위에 고깃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줄을 지어 정박해 있다. 또 항구 앞에는 유명한 충무김밥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풀무와 화덕이 있는 철제공작소에서는 옛날식으로 쇠를 다루어 각종 연장을 만들어 내며, 부근에 있는 중앙시장에는 수산물은 물론 공산품까지 없는 게 없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나 시장사람들이나 그리고 우리 일행처럼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 모두가 강구안의 상쾌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고 또 향유한다. 한국에서 밤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전라남도 여수항이라면 낮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는 경상남도 통영의 강구안이다. 통영이라는 이름 앞에는 어김없이 비경, 예향,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수식어 대신 ‘동양의 나폴리’만으로도 불린다. 그것은 천하의 절승경개- 강구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구안 항구에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세척의 거북선과 한척의 판옥선이 묵묵히 말없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수군의 주력함이었고 거북선은 세계 4대 해전에 속하는 한산대첩을 거두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철갑선이다. 4대해전이란 테미스토클레스 제독(고대 그리스)의 살라미스해전, 하워스 제독(영국)의 칼레해전, 넬슨 제독(영국)의 트라팔카 해전, 조선시대 이순신 통제사의 한산도대첩(한산대첩, 한산해전)인데 그 중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이끈 한산대첩이 세계 해군사에서 가장 위대한 해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1990년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시가 해군에 의뢰하여 제작비 22억을 들여 실제 크기로 복원한 거북선이며, 분단이후 굳게 닫혀 있던 한강하류(비무장지대)의 빗장을 52년 만에 풀고, 2005년 11월 16일 한강시민공원(뚝섬유원지)에 정박해 있던 거북선을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 전승지인 통영시로 옮겨 전시하게 되었다. 거북선 안에서 당시 통영시장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서한내용이 전시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통영시장(진의장): 거북선을 한산대첩의 고장인 통영으로 보내주세요. 서울시장(이명박): 통영으로 가져가세요. 2005. 10. 20

 강구안에서 즐거운 포토타임(자유시간)을 가진 우리 일행은 내일 있을 거제도에서의 일정을 위하여 신거제대교를 건너 숙소가 마련되어 있는 거제도로 떠났다. 거제도에서 손꼽히는 최우수 숙박업소인 오아시스 같은 오아시스호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9. 04. 29 김제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