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련]술이라는 인생의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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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련]술이라는 인생의 비타민
  • 정련
  • 승인 2019.05.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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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련약력: 본지 칼럼니스트.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 [업무경력] : 2006년 9월 ~ 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 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 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만명 이상의 도시가 생겨나면서, 상하수 시스템이 없는 도시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깨끗한 물을 먹고, 깨끗한 물로 씻는 일이었다. 외과 수술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는 절개 수술이, 결석 제거술이었던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깨끗한 물을 보관하고 마시기 위하여 발명된 것이 맥주와 와인이라고 한다(“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발효”라는 것이, 정말 신의 선물과 같은 오묘한 과정이다.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여 먹기 어렵던 시절, 우리는 김치나 된장과 같은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술은 그런 맥락에서 그에 못지 않은 위대한 발명품이고, 그 영향력 또한 지연적인 “김치”, “된장”을 훌쩍 뛰어넘어 세계 만인 공통의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주량과 관계 없이, 그 오묘한 맛과, 그 맛 이후의 즐거움을 모두 즐긴다. 가끔 혼술도 하지만, 더 많이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멤버로 “술”을 등장시킨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작년에 모 대학 학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학부1학년 학생들이 똘망한 눈으로 나에게 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직장생활에 있어서 술은 중요한가요?"였다. 짧은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 했다. 

 

우리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여서 말도 어휘력도 따라서 친구들과의 놀이에 있어서 지배력도 조금 빨리 가졌었다. 5살이 되면서, 본인 스스로 “언어”로 많은 것이 해결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을 막 가져갈 때쯤, 남자친구들의 신체 위주의 감정표현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의도치 않은 잘난 척이겠지만, 그 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말귀를 못알아 듣고, 대화가 안되고 불편해서, 도무지 그들과 놀 수가 없다. “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사윤아, 놀이터에서 뛰어 놀면, 남자친구가 잘 뛰니 아님 니가 더 잘 뛰니? “

“당연히 남자친구들이 더 잘 뛰지. “

“그럼 남자친구들이 너 잘 못 뛴다고 너랑 안 놀아? “

“아니. “

“그래, 사윤아, 누구나 먼저 잘하는 일이 있고 늦게 잘하는 일이 있고, 좀 더 잘하는 일이 있고 좀 덜 잘하는 일이 있어. 먼저 잘하는 애가 양보하고 놀아주는 거지, 덜 잘하는 애가 놀아줄 수는 없는 거잖아. “

“아~”

나는 그 학생들에게, 직장생활에 있어 술은 정말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술만큼 사람과 친해지기 쉬운 좋은 방법은 흔치 않다. 다만, 술 또한 조금 잘 마시는 사람이 조금 덜 마시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좋은 방법인 것이다. 

 

사람이 밀을 정복하여 정착생활을 이루어 냈는냐, 아니면 밀이 사람을 정복하여,수많은 면역력 저하 및 전염병을 감수 하면서도 밀 농사를 위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느냐 라는 유발하라리(“사피엔스”)의 질문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크게 설득력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으나,“술에 취한 세계사”(마크 포사이스, 서정아 역, 미래의창 출판)에서는 알콜 섭취를 위하여 인간이 정착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과감한 가능성을 던진다. 

 

술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흔히 “이성”과 혼동하여 생각을 많이 한다. 엥겔지수를 가난 여부에 대한 지표로 본다면, 알콜중독자 비중을 빈곤지역 여부에 대한 비 공식적인 지표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살이라는 전염성이 있는 사회적 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콜중독과 자살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자살론”, 에밀 뒤르켐).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상태”라는 것이 여러가지 사건에서의 “논거”로 남용되는 것과 더불어 술취한 사람에 대한“만행”에 대한 훈방조치 등을 근거로, “술이 문제야”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히 있고, “술”이라는 검색어를 네이버에 입력하면 “술”에 의하여 가정이 파탄 나는 수많은 사례들이 수두룩이 튀어 나온다. 

술의 첫번째 순기능, “마취”가 이런 맥락이다. 

의학적 마취 및 소독 등 “알콜”이라는 화학물의 효용은 여기에서 논하지 않기로 한다. 

 

주량을 물어보면 흔히, 이렇게들 이야기 한다. 

일때문에 긴장해야 할 자리에서 정신 차리고 마시면 얼마 정도 마실 수 있고, 편한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마시면 얼마 정도 마실 수 있다. 

주량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개인 기준이겠지만, “블랙아웃이 오지 않고 큰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라고만 하여도 상당히 Rough한 기준이다. 어쨌든, 많게든 적게든 “술”은 어떤 부분의 뇌를 활성화 시키고 어떤 부분의 뇌를 마취시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한국에서 연간 가장 많이 쓰인 외래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전민 건강검진 시대에 이어 전민 스트레스 컨트롤 시대가 시작되면서, “술”은 폭행을 유발시키는 “독”의 역할 뿐만 아니라, 수면제나 신경안정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싶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수업시간에, 우리만의 단톡방에서, “끝나고 한잔 하자”라는 이야기가 격하게 돌기 시작하는 타이밍이 있는데, 전형적인 스트레스 해소 수요라고 나는 본다. 

 

친구랑, 금융회사에서 살아남은(아직?) 여자사람으로서, 혼술을 안해봤으면 힘들어봤다고 말을 하지 말라고 한 적 있다. 정말 심란한 어느날, 혼자서 머리 숙이고 쉬지 않고 한라산을 훌쩍 넘고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갈치조림에 한라산 한병을 살폿이 마시고 나온 적이 있다. 제주도라는 특성 때문에 정말 호강스러운 혼술을 하긴 했지만, 혼자이기에 조용히 술마시며 오버할일 없이 조용히 내 마음에 집중했고, 또 혼자이기에 살짝 무서워서 두병까지 도전하지 못하고 곱게 호텔로 돌아갔다. 집에서 집안일에 땀을 쏟다가, 아이들이 잠든 저녁시간, 라면 한그릇 끓여놓고 소주 한잔 조용히 마시는 기분이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에게 위로의 시간이 된다. 

 

어제 예술의 전당에 가서 디자인관련 전시회를 보는데, 태여나서 처음으로 집에 데려가고 싶은 그림을 발견하여, 그 앞에 한참 머물렀었다. 해볕이 너무 따뜻하다 못해, 별도 땅도 희미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옥상 같은 곳에 날리는 빨래 한줌 밑에 덩그러니 놓여진 의자 하나가 전부인 그림이다. 따뜻하고 나른하여, 지금은 게을러도 괜찮아, 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일과를 정신 없이 보내고, 티비를 켜고 시원한 맥주 한캔을 들고 드디어 기대여 앉은 그런 기분인가. 그보다는 훨씬 분주하지 않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기분 좋은 나른함이다. 

마음만은 다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 몸과 마음 모두 쉬어가게 할 수 있는, 그런 나른하고 따뜻한 시간이 “술”일 수 있지 않을까. 

 

주류회사의 상술로 주종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나, 시장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것이고 주류 시장 또한 소비자 주도적인 부분이 크다는 이유로, 풍성해진 “술”의 시장은 풍성해진 “술” 문화 또한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잘 먹는 나지만, 가끔 남편이랑 한번 다시 와야지 싶을 “맛집”을 메모한다. “술”을 찾아서 안주를 찾기도 하지만, 좋은 안주에 또 그만한 “술”을 찾기도 한다. 술이 다양해서인지, 안주가 다양해서인지, 좀처럼 잦아들기 어려운 “한잔”이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온다고 한다. 

김치 전을 붙여 먹을까 생각하면서, 그러면 막걸리를 사와야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회사 뒤에 와인샵 하나를 발견했는데, 한식에 와인이라는 신선함으로 찾아 갔었는데, 정말 안주가 맛있었다. 얼마 전에 대학원에서 진행한 와인특강에서, 소믈리에님의 강의에서 사실 레드와인에 정말 어울리는 안주는 “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 입맛 또한 이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그 와인샵에서 느꼈다. 사소한 팁을 드리자면, 스파클링와인에 어울리는 안주가, 놀랍게도 튀순을 드셔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파클링이니까, “치킨이요, “했다가 소믈리에님이, “양심적으로 치킨엔 맥주죠!”라고 하신다. 소믈리에도 소맥을 즐겨 마신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술”을 한가지의 기호 또는 한가지의 능력으로 흔히 이야기한다. 즉, “저는 술을 잘 좋아합니다”, “쟤는 술을 잘 마십니다”라는 식이다. 

 

“주폭”도 “술병”도, 무식한 음주 때문에 민폐도 많이 생긴다고는 하나, “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와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가 늘 같은 맥락이라는 점도 상기시켜 줬으면 좋겠다. 삼국연의의 도원결의부터, 수호지의 영웅 등장마다,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나는 영웅이고 싶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들과 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일 뿐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의 술자리 문화, 그 지역의 술이 특징을 가지게 된 과정 이런 것들도 가볍게 즐겁게 글로 풀어보고 싶다. 간만에 날이 너무 좋은 나른한 오후, 다시 한번 노트북 앞에서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그것,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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