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송미자 시인이 보내온 '한국생활 시편'을 싣는다. 송미자 시인은 몇 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학창작과 시낭송 활동을 열성스레 해온 시인이다. 김관웅 전연변대학교 교수는 송미자의 시에 대해 "송미자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위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자기의 시창작에서도 이런 시학관을 견지하고 있다"며 송미자의 많은 시들은 바로 '우리 민족의 현실적인 생존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그것을 표현한 시작'들 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평론했다. 또 송미자의 시는 중국 조선족의 오늘날의 삶의 현장성을 살리면서 그 현장속에서 벌어지는 우리 동포들의 희노애락을 시화하는 데만 그친것이 아니라 중국조선족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깊이 사색하고 시로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편집자 주>

▲ 송미자 약력 : 연변시낭송가협회 회장, 시인. 동북아신문 특약기자. 국내외문학상 다수 수상. 시집 <당신의 이름으로> 출간.  

1.
한국행

 

기차는 나를 싣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고
나는 설음을 싣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굽어든다

대리석위를 구으는 로라는
리듬을 타고 웃고
트렁크속 꿈은
눈덩이처럼 부풀어간다

겨울강처럼 흐르던
수십만의 내가 언제부터
오디세우스의 행렬이 되여
봄강물처럼 달려갔던가

2003년 8월

 

2.
사랑의 회의

 

사랑이 너무 바삐 도망간
안개 자오록한 골목에서
빗겨나간 나의 고백
-사랑합니다

해뜨면 승천하는 안개같이
사랑포탄 터진 연기 흔적없고
사랑의 화염으로 달구었던 골목엔
찌무르는 연기만 질식을 부른다

지금은 떠나야만 하는 골목
아리고 쓰린 추억 내동댕이치고
뒤돌아보지 말고 미련없이
탈출해야만 하는 골목

사랑은 꿈처럼 몽롱하고
먼 옛날 이야기처럼 아리숭할제
비껴간 나의 고백만이 골목에
가쁜 마지막 날숨 흘린다

-- 사랑…
했…어…요…

2003년 12월

 

3.
서울의 겨울


어머니는 떠났습니다
항아리 가득
김치만 남겨주고

짜디짠 소금과
매운 고추가루와 마늘과 생강으로
익은 인생살이를
이 땅에 별사태로 장식하고
어머니는 떠났습니다

별이 되여
달리는 모든것이
별이 되여
일어서는 모든것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할때

어머니는 떠났습니다
항아리 가득
김치만 남겨주고

2004년 1월

 

4.

바람개비

 

바람개비야 바람개비야
네가 사는 세상
그 어디가 바람의 품이 아니더냐

미풍에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너
세찬 바람에 현운증은 얼마나 심했을가
죽음보다 암흑한 회오리의 심연속
피기 잃은 이그러진 네 얼굴
눈물마저 체념한 네 맘속 한을
전봇대가 토하며 얼마나 흐느꼈던가

누웠던 풀들이 다시 일어나
꽃이 진 자리에 열매 웃을 때
미풍이 하늘대는 바람의 언덕에서
너의 몸부림은 어느 아이의 손에
장난감으로 들려 있을가

2004년 12월

 

 

5.

순희야 , 너는 행운의 여자냐


창문을 열어도
하늘 한쪽 볼 수 없는
서울 가리봉 지하쪽방에서
소주 한잔에 고독을 안주하는
순희야, 너는 행운의 여자냐

향수병이 도지는 명절날
력사의 자취마저 아득하여
고향의 타작소리 멀어가고
님과 같이 첫 사랑을 심던
해란강변도 몽롱하게 잊혀가는 밤

혼신을 내 던졌던
분식집의 열네시간 외
일벌레에서 탈출한 순간은
홀로의 명절 파티로
고독을 달래야 하는 순희야,
너는 행운의 여자냐

가난을 털며 행복을 꿈꾸는
순희야 너는 복받은 여자냐
돈 많이 버는 네가 부러워
동네 여자들 들떠 있단다

낮에는 뼈를 갈고
밤에는 피를 말리는
눈멀고 귀 먼 돈벌이에
젊은 령혼을 맡긴 순희야
너는 행운의 여자냐

2006년 9월 

 

6.

망향의 한

 

 울 아버지는
구중천 그 어디에
떠 다니실가

귀신들도 귀가하는 명절날
집 없어 못 오실가
자식 없어 못 오실가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명절도 모르는 이 몸은
타향 그 어디에서 류랑하는걸가

아버지 타향이였던
나의 고향은
뉘집 세방살이였던가

아버지의 고향이였던
나의 타향은
뉘집 머슴살이였던가

주인 노릇 한번 할 수 없는
실향의 설음
망향의 한이여

서러운 그 한이
응고된 육체는 땅에서
흩어진 령혼은 하늘에서





네.

 

7.
부 부 ( 1 )


묻노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우스의 야망에
아폴론의 수술칼에*
온전했던 인간이 쪼개져
반쪽이 된 당신과 나

목마른 그리움을 거쳐
이승과 저승을 돌고돌아
겨우 찾아 맞춰진
한쌍의 부절(符節)

지금 우리는
그 누구의 맷돌에
또 쪼개지고 있습니까
아니, 부서지고 있습니까

묻노니
나는 누구입니가

 

 

8
부부 ( 2 )

 

여보
당신은 뉘 마누라냐
국적취득할때까진 참아야지
보내줘야하는 난
너의 남편아닌 남편이지

당신
어서 가보세요
그 녀자 부르는데
어느 등록 하나 빠져도
불법 되잖아요

십여년 나란이 한
결혼증은 초개같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위장결혼증이
두 사람의 가방속에서
삶의 무게를 대신할제

모국에 온 부부
연분에 암(癌)이 돋은
남남이 아닌 가짜부부
남남이 된 진짜부부

철이는 몰라
순이는 몰아
한국 간 울 엄마 아빠
돈 많이 번다고
자랑만 흐늘흐늘 늘어졌네
 

9.

부 부 ( 3 )

 

세상을 체념한듯한
허공에 딩구는 당신 눈길앞에
나는 반짝이는 보석이고 싶다

구름처럼 떠도는
갈곳없는 당신 령혼을
내 목에 스카프로 걸치고

사랑이 고갈된
사막 같은 당신 가슴속에
내 푸르른 정이 오아시스로 펼쳐지고

고된 일에 지쳐
휘청거리는 당신 육체를
내 품이 시몬스침대 되여 받아주고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보석 같은 당신 눈에서
나는 고운 눈물로 굴러떨어지리

-이상송미자 시집 <당신의 이름으로>(2010년 5월 출판)의 제4부 “서울의 겨울”중에서

 

10.
부산 아구찜 아줌마찜

 

아구찜 맛이 유별나다
아줌마찜과 어울린 맛이니깐

소문난 신사동 부산아구찜 먹으러 온 손님들은
소문과 같은 아구찜맛에 거나하게 취한다
허널널 돌아가기 싫었다가 다시 찾는다

맛으로 소문난 아구찜은
사실 사람 찜 인 것을 아는 사람 있을까
한 평도 안 되는 주방에 찜 하는 다섯 아줌마
아니, 찜 당하는 다섯 아줌마

큰 솥에 삶기는 콩나물
큰 냄비에 삶기는 아구
차디찬 물에 담그었다가
뜨고운 불에 들어
소금 고춧가루 마늘과 조미료에 볶이는 찜

허리 구부릴수조차 없는 주방에
다섯 아줌마 선채로
물에 볶이운다
불에 볶이운다
땀에 볶이운다
양념에 볶이운다

아구는 순간 볶이어 나가고
아줌마는 열두시간 볶이운다
아구보다 더 처량하게 볶이운다
그렇게 볶인 맛이 별맛이라
사시장철 손님 끊는 날 없다

볶이운 아구찜은
얼큰한 맛으로 손님을 유혹하고
볶이운 아줌마찜은
쌓이는 돈으로 행복을 낚는다

2011년 10월

 

11.
서울지하철

 

그녀는 뛰여간다 긴 시간의 질주속에
빨리빨리라는 지령은 무색하다.
빨려 들어가는 삶의 블랙홀

밀물처럼 밀려나오는 사람들과
썰물같이 감겨들어가는 사람들
칼치의 몸뚱아리 같은 패턴 만들며
시간이라는 바다속을 헤염친다
기인 행열의 꼬리를 휘저으며

먹을 알 없는 칼치의 가늘어진 꼬리가 칼에 잘리우듯이
스크린도어가긴 행열의 가늘어진 꼬리를 썩뚝 자른다
치렬한 분초를 망각한자에 내리는 엄벌

칼에 잘려진 갈치의 꼬리가 쓰러기통에 버려지듯이
막끝 꼬리 되여 짤리운 그녀는 헐떡인채 폴싹 주저앉는다
그녀에게 사분이라는 시간이 어느만큼 긴지는 아무도 모른다
멀어져 가는 전철의 경적소리가 그녀의 이마를 찢는다
주름살이 한 줄 더 패인 그녀의 사분은 사년인 것을
누구도 모른다 그녀 자신조차도
후ㅡ유ㅡ

2012년 2월

▲ 송미자시인

 12.

려행자 1

 

일찍 떠나자
맨날 떠날 차비 바쁜 몸

갈곳도 거기뿐
다시 돌아올 곳도 여기뿐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일이 예사로와
멀미도 치유됐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는 령혼
안식처가 어디메냐
잠깐 머물은 자리 정리하고 떠나고
또 정리하고 또 떠나야 하는

나의 긴 여행은
허구한 날같이 맨날 시작이다
그 시작의 끝에는 푸념이 흐른다
돌아온다는 똑딱소리

쾌종시계 태엽이 다 풀릴때까지
시계추는 멈추지 않는다고
땡-땡- 시간이 선언한다

어서 떠나자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오자

떠나는 곳은 거기뿐
돌아올 곳은 여기뿐

 

13.
려행자 2

 

주섬주섬 보따리에 싸놓은
못난 미련 한 무더기
허름한 정보자기에 싸서
구석진곳에 모아놓고
이젠 그만 떠나자

그 무슨 아쉬움이냐 뒤돌아보니
못난 것들 머리 내 민것이 없구나
그 누구에게 보이기 싫은
욕심낼 것 없는 미련 한 무더기
버려도 좋을 미련 한 무더기
구질구질한 미련 한 무더기
투레기같은 미련 한 무더기
낯선 구석을 지키는 내 아둔한 정아

발이 대인 곳 몸이 주춤했던 곳
습관된 기인 려행에 끌려 다니는
트렁크엔 내 헤픈 정만 한가득
자리 없어 데리고 가지 못하는
숨죽여 흐느끼는 미련 한 무더기

홀로의 집착임을
누구의 기억에는 흔적조차 없을
약속같은 트렁크엔 미련이란 없다

또 떠나는 나의 긴 여행은
허구한 날같이 맨날 허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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