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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작가작품특집81-1] 허련순의 중편소설 <거미를 살려줘>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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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1  10: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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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련순(许连顺) 약력: 필명 문현(问玄). 연변대학조선어학부 졸업, 한국광운대학 대학원 석사 수료. 제11기 연변주정치협상회 위원,연변작가협회 전부주석,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여성문인협회회장.장편소설:“바람꽃”,“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잃어버린 밤”,“중국색시”,“춤추는 꼭두”,“안개의 문”.중단편소설집:“우주의 자궁”, “사내많은 녀인”,“유혹”,“바람을 몰고 온 여인”,“그 남자의 동굴”.수상: 전국 소수민족준마상,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동북3성 금호상, 주정부 진달래문예상, 장백산진흥문학상, 단군문학상, 민족문학상 (한문 3차), 연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장백산모두모아문학상, 민족문화발전공헌상, 18회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상, 한국한송문학상등 *단편소설 <고리>,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동북3성 고중교과서에 수록.*단편소설<가출풍파>동북3성 초중교재에 수록.

   [허련순 ∥ 중편소설]

                              거미를 살려줘

 

운명이란 순응하는 자는 태워가고 거부하는 자는 끌고간다
- 세네카


1.

남자는 이쪽건물에서 저쪽건물을 유심히 바라보고있었다. 오래된 회색건물의 창문마다 쇠철창이 단단하게 고정되여있어 짜장 감옥을 련상시킨다. 바람이  뿌연 먼지를 감아올리면서  건물사이를  빠져나가고있었다. 남자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아, 오늘도 저기 있네. 빨간원피스를 입은 한 녀인이 남자를  바라보고있었다.  얼굴이 어제보다 좀 부어보일뿐 별다른 변화는 없는듯 했다. 남자는 저도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안심하고  일을 할수 있을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남자는  매일 아침에 자리에서 눈을 뜨면  자신에게 이런 최면을 걸었다. 
<건너편 건물에 그 여자가 나타나면 오늘 일이 잘 될것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일이 잘 안되는  날이 될것이다. >
그 자신도 그런 최면이 실제에 이루어지는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믿고싶을뿐이였다.

남자는  요즘 녀성문제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있었다.  해마다 그랬듯이 올해에도  << 3.8 >>절에는 녀성게스트를 초청하여 녀성문제에 관한 생방송 토론을 진행키로 하였다. 하지만  해마다 되풀이하는 그런 식상한 내용은 집어치우고 새롭고 참신한 내용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라는  편집부장의 주문이  있어서 그는 바짝 긴장하고있었다. 녀성문제하면  녀성의 사회적 지위, 가정에서의 녀성의 부담, 그리고 고부간의 갈등, 자식교육에 대한  문제 등이 방송의 단골화제로 되여왔다.  우선 이런 단골화제를 제외시켜야 했다. 

 남자는  아직도 <파격적인 변화>에 해당하는 토론의 주제를 정하지 못하여 고심하고있었다. 당치않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 건물의 그 녀자에게 해답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녀자를 알지 못한다. 이름도 신분도 모르는데다 아직 한번도 말을 건네 본적도 없다.  그뿐인가. 방송국 건너편 회색건물은 정신병원이다. 그속에 그녀가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알지못하지만 그곳에 있기때문에 그녀를  미친녀자라고 한다. 그런 녀자한테 남자가  관심을 가지는것은 이상했다.   편집실의 다른 사람들도 녀자에 관심을 가지기는 남자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는것은 궁금증이나 호기심이라고하였다. 그리고 눈요기라고 롱담삼아 진담을 쏟아내는 남자들도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관심을 가지는것은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이상하게  녀자를 보고있으면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을 떨칠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닮은것인지, 한마디로 딱 찍어 말할순 없지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군한다. 그리고  웬지,  가슴 한구석에 바람이 스며드는듯  아리고 시리다. 자신이라면  그 녀자의 모든것을   리해할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했다.   
 복도가 잠깐 발자취 소리로 소란스럽더니  편집실  리주임과 서희기자가 나란히 들어온다. 어디서 만나서  함께 오는것인지는  모르나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야릇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자네, 또 그 여자를 보고있구만.  그러다 미친여자땜에 자네가 진짜  미치는 수도 있네.>
리주임이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봐요. 내말이 맞았죠?>
서희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낄낄 웃었다.   
<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매일 이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말이야. 그래.  서희말이 맞었어.>
두 사람은 남자를 두고  내기를 하였던모양이다. 오늘도 그 녀자를 보고있을가, 아닐가를 가지고  말이다. 하여간 할일이 없는 사람들이야! 남자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창가에서 물러나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말야, 암만봐도 미쳤다고 하기엔 너무 아까워. 얼마나 젊고 이쁜가? 안 그런가? 박기자? >

리주임이 남자가 섰던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대로  빨간 원피스를 입은 녀자는 너무 젊고 예뻤다. 그리고 다른 정신환자들처럼 산만하거나 수선스럽지도 않고  늘 얌전하고 조용했다. 매일 한곳에 서서 멍청히 한곳만 바라보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남자에게 녀자는  해빛에 놓여진 아이스크림처럼 슬그머니 녹아버리거나 사라져버릴것 같은 아슬한 존재였다. 
리주임이  등을 돌리고있는  남자의 어깨를  다시  툭툭 건드린다.
<자네 왜 대답이 없는가?>
<글…쎄요.>
남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는 뭐야? 옳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자네는 그게 문제야. 매사가 애매해.  딱부러지게 말을 하는 습관을 좀 키우라구. >
<뭘요?>
<자네 내말을 어디로 들었나?>
<잠깐 다른 생각을 했나봐요.>
<잠깐이 아니라 자넨 늘 그래. 넋 빠진사람처럼 말이야.>
<죄송해요. 근데 방금 뭘 물어보셨죠?>
<그건 그렇고…자네는  저 여자가 왜 매일 저기 저러고 서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남자도 그것이  궁금하였다.  저 녀자는 왜 저기 저러고 서있을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혹시 저기 저렇게 서있을려고  이 세상에 태여난건 아닌지….하지만 본인이 말을 하지 않는데  남의 속을  남이  어찌 알겠는가.  벙어리 속은 난 에미도 모른다지 않는가.
남자는 자판을 뚜드리며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매일 그 여자를 구경하는것처럼 그 여자도 우리를 구경하고있겠죠. 그리고 우리처럼 궁금해하고있을지 모르죠. 저 인간들은 도대체 저 건물속에 모여서 뭘하고 있을가?>
<어?>
리주임이 눈을 치떴다. 그리고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안되는듯하면서도 말이 되네. 자넨 진짜 생각의 달인인듯 하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할수 있는가?>
<립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그런 답이 보입니다. 례를 들자면 저쪽 건물과 이쪽 건물을 바꾸어 생각하면 저쪽에 있는 정신병자들이 오히려 정상적일수 있고 이쪽 건물의 정상인들이  정신병자일수도 있다는거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기발하지 않습니까?>
<기발한것이 아니라 거의 무모하고 극단적인 발상이죠. 박기자는 어떻게하나 저여자를 미치지 않았다고 보고싶겠죠. 하지만 저 여자는 미친것이 확실합니다. >
서희기자가 끼여들었다.
<미치지 않았는데 미친척 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그건 또 뭔 소린가? 미치지 않았는데 미친척할수도 있다니…자네 저 여자에 관하여 새로운 정보라도 입수한게 있는가?>
<말하자면 그렇다는거죠.  다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렇지 않더라 뭐, 그런일이 있을수도 있다는거죠.>
<그것도  가설인가?>
<네.>
<그것은 가설이 아니라 망설입니다. 그런일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수 있는 일이죠.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은 엄연히 정신병원입니다. 미쳤으니 저기 들어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기들어가 있겠습니까? 박기자같으면 그럴수 있습니까? 하긴 박기자의 말대로 두 건물의 립장을 바꾸어놓는다면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왜서인지, 서희기자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있었다. 리주임과 남자가 의아한 눈으로  망창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흥분하죠?>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무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거야, 박기자가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하니깐 그렇죠.>
<나는 보여지는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싶었을뿐입니다. 보여지는 그대로만 리해하려는 서희기자야말로 왜 그러는지 리해가 안됩니다. >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입으로 허, 하고 김이 새는 소리를 냈다. 남자와 대화하다보면 늘 머리에 쥐가 일어나는 느낌이 든다.  분명 안되는 말인데 남자는 되는 말로 만들어버린다.  지금도 그랬다. 미친녀자를 놓고 미친척할수 있다는것은 분명히 가설이다. 가설이지만 그 전제로  보여지는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보편적인 원리를  내세우고있어 아니라고 말하고싶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상황을 만든다. 상당히 억울하고 안타까워 화나지만 서희는 오히려 파르르 웃었다. 
<미친녀자를 미친척할수 있다는 가설을 해서 도대체 무엇을 어쩌자는건가요? 혹시 박기자가 미친녀자한테 관심이라도 있는겁니까? 그렇다면 다른 문제이죠. 참, 남자들의 취미란 다양하네요.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발상을 할수 있는지…>
그녀는 이런 독한 말을 끝까지 웃으면서 했다.
 <뭐, 뭐요?  돌았다구요?>
남자가 침방울을 튕기면서 손가락으로 그녀를  삿대질을 하였다. 째려보는 그의 눈에는  미친사람의  광기가 서려있었다. 서희는 이런 남자의 눈을 처음 본다.  평소에 남자는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대화를  할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당장 집어삼킬듯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품이 례사롭지가 않았다.
어머, 미쳤나봐!

서희는 다급히 눈길을 피했다. 이럴땐 무조건 꼬리를 내리는것이 상책이다. 서희는 남자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해에  방송국에 입사한 동기여서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였다. 그녀가 시사에 밝고 순발력이  뛰여나다는  평가로  면접에서 무난하게 통과되였다면 남자는 저돌적인 발상과  뛰여난 감각이  주목을 받긴했지만 너무 강한 개성이  오히려 문제가 될수 있다는 일부 심사관들의 반대로 어렵게 통과되였다.  심사관들의 말을 빌면 <이런 사람은 되면 큰 인물이 될수있지만 안되면 골치덩어리가 될것이다>고 하였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을가? 

 

2.

면접시에  심사관이 적은 기록을 보면  이랬다.
심사관:  <당신의 특기는 무엇인가?>
남자:    < 번역가이고 시인입니다.>
심사관:  <당신이 번역가이고 시인이라고 누가 인정했는가?>
남자 :   <누가 나를 인간이라고 인정을 했지요?>
심사관은 허虚를 찔린 표정으로 그저 남자를 쳐다보고만있었다. 다른 심사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남자의 질문에 대답을 주지  않았다. 하긴 누가 대답을 해도 대답한 사람이 바보가 되였을것이다.  세상에는 묻지 말아야 할 말을 묻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바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누가  인정을 해야 인간이고  번역가이고 시인이 되는가. 태여났으니 인간이고 번역을 했으니 번역가이고 시를 썼으니 시인이지 않겠는가?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인가, 그런것을 시험이라고 물었으니…
심사관중에 제일 권위가 있는  한 사람이 남자한테  < 철학적인 사고와 깊이가 있는  질문으로 대답을 주었다> 는  평가을 내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잇따라 <하긴,  기자가 되려면 적어도 저런 정도의 예리한  문제 의식과 사회성은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칭찬을 하였다.

남자의 <누가 나를 인간이라고 인정을 했지요?> 하는 말은 한때   방송국에서  류행어로 되기도 하였다.   특히 일을 많이 하고도 인정을 받지 못하여 불만이 있던 기자들이 이 말을 자주 써먹었다. 그들에게 이것은 호신용이요, 불만 표출방식이기도 하였다.   남자는 확실히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심사관들의 평가대로  뛰여난 발상과 창의성을 가지고있어  일약 천재적인 기자란  소리까지 듣게 되였다. 그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대신 서희기자의 인기는 떨어졌다.  그녀는 사사건건 남자에게 비교되면서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참신하지 않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남자가 없었다면 굳이 그런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텐데도 말이다.  그녀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다른 기자들에 비하여 떨어지지도 않았으니말이다. 

남자는  이런 상황이  모두 자신때문인것 같아 그녀와 마음 편하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불편해서 자꾸  피해야 했고 피하다보니 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여 아무 갈등 요인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질투하는 라이벌이고   천적처럼 비쳐져버렸다.   남자는 남자로서 녀자를 위하여 이 관계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회식의 자리에서  그는 놀라운 선언을 하였다. 
<면접때 제가 했던 말은 사실 저의 말이 아닙니다. 1964년 <기생충>이란 시로 재판받아 5년의 강제로동형을 선고 받은 쏘련 시인 브로스키가  재판중에 했던  말을 내가  패러디 한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특별한것도 아니고 천재는 더욱 아니란 말씀입니다. >
패러디라니? 그게 뭔 말인가?  좀 자세하게 알아듣게 말하라구, 브로스키가 재판중에 도대체 어떤 말을 했단 말인가? 사람들은 중구난방 떠들었다. 할수없이  남자는  판사와 브로스키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판사: 귀하의 직업은 무엇인가?
브로스키: 번역가요,시인입니다.
판사 : 당신이 시인이라고 누가 인정했소?  누가 당신을 시인에 포함시켰소?
브로스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지요?

그럼, 그렇겠지, 브로스키의 명언을 흉내냈을뿐이구먼, 아니지, 흉내가 아니라 베낀거지.  좀 의심스럽더라니깐, 어리버리한 박기자가 어떻게 천재란 말을 듣는지 말일세.  하긴 천재란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잖은가. 그래서 그런가부다했지….
웬일인지 사람들은 조금씩 분노하고있었다. 우리 모두 속았다는 배신감때문만은  아닌듯 했다.  전에없이 분발되고 앙양된 의기에는  쾌감과 흥분이 묘하게 어울어져 있었다.  한사람의 추락은 여러사람을 구하는 모양이였다. 누구보다 서희의 목소리가 컸다.  그녀는   어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브로스키를 패러디 한 사실을 숨길수 있느냐며 속은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의미로 폭탄주 이십잔을   벌주로 마시길   제안하였다. 뜬금없이 웬 이십잔이냐고  남자가 반발하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주위를 가리키며 좌석에 있는 사람이 더도 덜도 아닌 딱 이십명이라 했다. 동료들은 역시 서희기자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며 폭탄주 스무잔! 폭탄주 스무잔!  합창을 하면서 남자를  다그쳤다. 그녀는 마지막 한잔까지 알뜰하게 마시도록 남자를 도왔다. 그동안  쌓인것이 많았던모양이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리해했다. 립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수가 있다고말이다.  남자는 순순히  폭탄주 스무잔을 받아 마셨고 개소리를 내보라는  짖꿎은 동료의 지청구에 <왕왕> 개짖는 소리까지 시원하게 내고  개처럼 기여서 처소로 돌아왔다. 

 3.

그후  두 사람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되였다. 서희는 영웅이 되고 남자는 개가 되여버린셈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아무려나 좋은데 서희는 왜 그러는지 남자는 몹시 원망스러웠다.  그녀를 도와주려고 자신을 낮추는 일을 서슴치 않았는데 녀자는  오히려 그 사실로 그를 흠집내고 다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치밀하게 롱담으로 일관했다. 화가난다고 그녀의 롱담에 말려들어 토를 달았다간 자신만 찌찔이가 되고 말것이여서 남자는 그냥 당해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줍지 않은  동정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남자는 후회막급이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그날 남자는 만취상태에서 자기 집이 아닌 아래층 벨을 눌렀다. 아래층에는 과부가 살고 있어서 어쩔수없이 남자는 <혼자사는 녀자집에 뛰여든 치한> 으로 몰리게 되였다. 남자가 취중에 자기집인줄 착각을 하였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문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는 혼자사는 남자였고 그래서 딴 마음을 먹고  혼자사는 녀자집에 뛰여들었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기때문이였다. 사단은 그날 술을 너무 먹은것이 잘못이였다. 버선목이면 번져보일가,  벙어리 랭가슴 앓듯 꿍꿍거리던 남자가 참을수 없어  시골에 계시는 큰형한테 하소연을 하였다.
<큰형, 이 무슨 개같은 경우입니까?  어떻게 인간이 이럴수 있지요?  내가 누구때문에 그 사실을 말했는데요?  다 그녀를 위해서 그런거 아닙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벌주를 먹입니까?  그것도 폭탄주 스무잔이나 말입니다.>
<인간아, 그 나이에 너처럼 단순하다는게 더 신기하다.  인간이란 원래 잘해준 인간한테 당하는 법이야!  그래서 불행해지지 않을려거든  인간을 멀리하라는 말까지 있는거지…>
이 무슨 개같은 궤변인가. 남자는 큰형의  말에 별로 위로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말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공감해서가 아니다.  성공을 위한 온갖 정보와 테크닉을 고루 갖추고있는 이곳 사람들과 맞서싸워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냥 수긍해버린것이다. 그는 큰형의 말대로 인간을  멀리하였다. 그것은 일종 도피였지만 약자가 자신을 보호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듯 싶었다. 그는 회식이나 모임이 있을때면 되도록이면  핑게거리를 만들어 피하군하였다. 몇번 불참을 하였더니 그것이 당연지사인듯  사람들은 알아서 그를 부르지 않았다. 습관이란 법보다 더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법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남자는  해방감을 느낄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불편하고 외롭지만 혼자있는 시간은 평화롭고 자유로웠다.  그런 안정감속에서 남자는 나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한다고 자처했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관념과 지배적인 질서에 적응하지도 편입되지도 못한채  남자는 스스로  부동의 상태, 또는 최소한의 행위속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벌을 주듯 살아왔던것이다. 남자는 점차  자페의 언어속에 함몰되여갔다. 그는 그런 생활에 만족했다.
하지만  오늘은 침묵하면 안되였다.  그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서희의 입으로 기어이 듣고 만것이다.  엄마를 잃은후 남자는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 말고도  또 참아내야 하는것이 바로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망언이였다.  쟤 머리가 이상하다>는 말과 <유전>이란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신이 갈기갈기  분렬되여 누더기가 된다. 정신의 분렬이란 미치고싶은 광기이다. 그리고 뼈에서 생살을 발가내는 처절한 아픔이고 고통이다.

 남자는 주먹을 불끈쥐고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서희를 향해 불끈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당장  한대 후려칠 기세였다.   하지만 남자는 종당에 천천히  주먹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단김이 뿜겨져나가는 숨을 고르고나서  천천히 말했다.
<기억하고싶지 않은 일이지만 제가 알고있는 사람중에 진짜로 미치지 않았는데 미친척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거너편 건물의 여자도 혹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모를겁니다. 함부로 하는 망언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치유할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것을 말입니다. >
<상처가 되였다면 사과할게요.… 그런데 미치지 않았는데 미친척 한 사람은 사연이 많으신 분 같은데 그 분은 누구신데요? 혹시 가족분이신가요? >
서희가  한풀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여서 말할수 없습니다.>
<자네  궁금증만 유발하고 말셈인가? 누군지는 말할수 없더라도 왜 미치지 않고 미친척할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선  알려줄수  있지  않는가? >
리주임은 원래 궁금증에 약한편이다. 그는  남자의 곁으로 걸상을 옮겨가면서 적극 밀어부쳤다.  하지만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다시 입에 올리기 싫은 기억이라서요.> 

4.

그것은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 남자의 젊은 시절을 통채로 잠식했던 기억이다.   남자가 아직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중국 전역에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구성장을 엄하게 단속하였다. 특히 다출산문제가 심각했던 농촌지역의 산아제한 정책은 더 엄했다. 아이를 낳으려면 반드시 지역 부녀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임신과 출산이 가능했다. 만약 허가가 없는 아이를 임신하면 반강제적으로 락태수술을 받아야 했고 숨겨서 낳았다해도 호적에 올려주지 않고 벌금을 시켰다. 남자는  우로 형이 셋이였다. 어머니는 그를  네번째로 임신한것이다.  

어느날, 산아제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향에서 내려온 공작대원들이 마을어구에  <몰래 출산하는것을 척결하자. 한번은 숨을수 있지만 결국 도망가지 못한다.> 는 프랑카드를 걸어놓았다. 그것은 남자의 어머니에게  상당히 위협적이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가 철저히 감추고 다녀서 마을에서는 그의 임신사실을 누구도 몰랐다. 점차 배가 불러오자 남자의 어머니는 생산대의 회의나 학습에도 나가지 않고 아프다는 핑게로 집에만 칩거해있었다. 하지만 프랑카드의 내용대로 결국 공작대원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공작대원들은 잠은 한집에서 잤지만 밥은 하루에  한번 순으로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어느집에 숟가락이 몇 가락이며 저가락이 몇 모인가까지 꿰뚫고있었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무리 남편의 큰 상의로  배를 가리웠지만 깐깐한 공작대원의 눈을 피하지 못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배속에 있는 남자를 도적아이라고 불렀다.  정부의 허락이 없이 몰래  가만히 밴 아이라는 뜻이였는데 한족사람들은 <헤이하이즈>  (黑孩子)라고 불렀다. 이런 말들은 세속에서 불리워졌던 말이고 산아제한 문서에는 명백히  <잉여아이> 즉 <超生儿>로 표기되였다. 남자는 뱃속에서부터 나오지 말아야 할 잉여아이였다. 

 남자의 어머니에게는 신속히 수술날자가 정해졌다. 이는 어머니와 아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작대의 결정이였다.  락태수술과  절육수술은 동시에 진행한다고 하였다. 락태만 하고 절육수술을 하지 않으면 또다시 임신할 위험이 있기때문이였다. 영구불임수술로 불법 출산을 원천봉쇄하자는 전략이였다. 남자의 엄마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내 아이를 내가 낳고 내가 키울것이며 누구도 내 아이를 사산시킬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수술을 거부하는것은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행위로서 엄연히 투쟁의  대상이 될것이라고   공작대원들이 울러멨지만  남자의 어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미여서 그런지 그녀는 고집이 세고 타협을 잘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외계인 답게 그녀는 공작대원들의 어떤 위협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녀이니 가능했던 일이다. 공작대원들이 오면 그녀는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았다. 공작대원들은 할수없어 남자의  아버지를 설득하였다. 아버지는 온순하고 나약한 성격이라 거역하지 못하고 공작대원들을 도와  아내를 설득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아내에게  아직 태여나지도 않은 아이때문에 가족이 폐족이 되는것은 가장으로서 두고 볼수없다며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말을 들은 남자의 어머니는 뱃속의 아이가 듣고 있으니 말도 안되는 말을 할거면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쫒아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공작대원들은 부녀위원회와  함께 남자의 어머니를  강제로  향병원으로 끌고 가 수술을 할  계획을 세웠다. 그 소식을 들은  남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맨발바람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하루종일 노래를 하다가는 춤을 추고 그러다가는 또 누군가에게 알아들을수 없는 욕을 퍼부었다.  공작대원들은 그가 아이를 류산하지 않을려고  미친척하는것이 아닌가는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웃통을 벗어버리고 동네를 활보하고 지어 쓰레기더미에서 음식을 주어 먹는 모습을 보고는 미친척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미쳤다고 판단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이가 태여나더라도 벌금을 시키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시켰다.     

그리고 다섯달후에  남자아이가 태여났다. 아이가 태여나는 날, 남자의 어머니는 정색을 하면서 주위를 살피더니   남편한테만 가만히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요 놈을  낳기 위해 미친척했어유. 안그랬으면 내가 어찌 천사같은 내 새끼와  만날수  있었겠수. 깜쪽같이  속았지유?>

아버지의 이런 진술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일곱살때까지 엄마의 미친 모습을 보면서 컸다.  옷은 람루하고 얼굴에는 때국이 흘렀다. 그리고 늘 맨발이였고 자주 혼자 중얼거렸다.  남자는 <너를 낳기 위해 엄마가 일부러 미친척했다>는 아버지의 말에 확신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머니가 애기를 낳기 위해서 미친척했다면 왜 출산후에도 계속 그런 모습을 하고있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아버지가 당신의 바램을 엄마의 입을 빌어 증명하고자 그런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5.

    편집부장이 등기표 석장을 들고 편집실로 들어왔다. 기자들에 대한 기술 평의가 시작되였다는것이였다.   왕년과는 달리  등기표에는 타인에 대한 평가란이 더  있었다.  이번 평의는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타인의 평가를  합산하여 점수를 매기는데  평가에 따라서 대대적인 인사변동이  있기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참답게 림하라고 부장이 주의를 주었다.    점수에 따라 승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격 미달로 편집이나 기자자리에서 밀려날수도 있다고하였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아주 낯선 이들처럼  서로 어색하게 침묵을 했다. 이제부터 세 사람은 동반자가 아니라 서로 밥그릇을 뺏는 경쟁자가 되였기때문이다.

주관적인 평가와 타인의 평가의 합산점에서 타인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타인에 대하여 과연 어느만큼 정확하게 평가할수 있는지,   남자는  시골에서 돼지를 팔고 살때 중량에 따라서 등급을 매겼던 생각이 떠올라 차라리 그 방법이 더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평가하기란 얼마나 애매한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어찌 나를  알것이며  거기다가 무게를 재거나 키를 재서 수자로  평가하는것도 아닌데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를 무슨 수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단말인가.  물론 평가기준이야 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저울눈이 다를텐데 말이다. 그러니 사람이 돼지에 대한 평가는 믿을수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것은 믿을수 없다.  지금도 이렇게 낡아빠지고 후진 방법으로 사람을 평가하다니, 남자는 듣지 못하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지...>
등기표를 돌리고나서 부장이  남자에게  물었다.
<자네, 생방송 주제가 정해졌는가?>
<아직…생각중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 보게. 그게 자네 특기 아닌가?  명심하게. 자네 그거 빼면 시체라는걸 말일세?>
뭐야? 이게 칭찬인가 아님 욕인가? 잘못하면 기술평가에서 떨어질수도 있다는 경고같이 들렸다.  등기표를 든 남자의 손이 떨렸다. 이 자리는  마흔이 되도록 장가도 가지 않고 지켜온 자리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남자는 방송일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결혼을 포기하더라도 일은 포기할수 없다고 말을 해왔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때는 그가 결혼하지 않는것이 마치 방송일때문인것처럼 들린다.  어찌되였던 그의 생각은 진실이였다. 그는 자신의 일에 모든것을 걸고있는 사람이였다. 

  부장이 편집실을 나가자  리주임도 서희기자도 등기표를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가는것인지  남자는 묻지않았다.  두 사람이 가는 곳은 물으나마나 같은 곳일것이다. 거기가서 둘이서 서로에게 밑지고 손해볼것이 없이 후한 점수를 주면서 좋아서 갈매기처럼  낄낄  거릴것이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 편이다. 언제부터인지  웃음마저 둘이 닮아가고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비쳤을가, 오랜만에 남자는 그게 궁금하였다.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지  정치가나  사교가는   아니라고 고집하며 남자는 일에만 파묻혀왔다. 그러다보니 방송국에서 일한지 십년차 되지만 아직 한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편집부장과 함께 편집실에 온 다른 부의 기자를 방송에 초대된 게스트로 잘못 알고 인사를 해서 사람들에게 외계인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외계인이 좋은 점수를 바랄수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점수는 바라지 않지만  응당 받아야 하는 점수는 받고싶었다. 그렇지않으면 대단히 억울할것 같았다.  인간관계가 좀 소홀하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화제가 되는 톱기사도 많이 써냈고  인기프로의 편집도 차질없이 잘하였다.  일에 들어가서는 누구보다 잘 했다고 자부한다. 남들이 술을 먹고 녀자를 만나고 놀음을 놀고  마누라의 비위를 맞추고 자식새끼들 교육때문에  신경을 쓰는 시간에 그는 오직 어떻게 좋은 기사를 쓸것이며   좋은 프로를 만들것인가만  고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의 생각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들의 생각이였다. 그는 렴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리주임과 서희기자에게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남자는 다른 때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아직 이른시간이여서 그런지 방송국 정문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문 바로 옆에있는  슈퍼에 들어가 음료 두 박스를 샀다. 한 박스는 리주임을 주고 다른 한 박스는  서희를 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데 맨입으로  할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이라 음료박스를 들고있는 자신이 어색하고 낯설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아는 사람을 만날가봐 련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슈퍼를 나왔다. 그가 걱정하던 일이 바로 눈앞에서 생겼다. 슈퍼문앞에서  남자는  편집부장과 마주쳤다.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눈에 티가 들어간듯 눈을 비볐다.  아, 이런 개망신! 그는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확확 달아올랐다.  부장은  음료박스를 보고 벌써 다 알아차렸을것이다. 남자는  손에 들린 음료박스를 땅에다 메치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다.
 바보 천치!  왜 하지 않던 짓을 하고 이런 개망신을 당해!
남자는  툴툴거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바보라니? 누구 말인가?>
 리주임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남자가 다급히  구십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필요이상으로 높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리주임이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서있자 남자가 두손으로 음료박스를 쑥 내밀었다. 
<이게 뭔가?> 
<이것은 저의 약소한 성의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
리주임이  수상쩍은 눈빛으로 남자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뭘 부탁한다는건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번 기술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싶습니다. 그러니 잘 봐주십시오.>
<자네, 어디 아픈가?>
리주임이 불쾌한듯 얼굴을 찡그렸다.
<…. >
<자네 갑자기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나?  원래 하던대로 하게. 이러는게 자네한테  어울리지 않네.>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네. 아주 이상해.>
   이상하다는 말에 남자는 음료 박스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금단현상처럼 손과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에게 이상하다는 말은 미친 사람 혹은  정신병자란 뜻이다. 그것은 정신병자로 살았던 엄마때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상한짓을 하고 일상처럼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지만 그는 달랐다. 아버지가 엄마는 미친것이 아니라 미친척했을뿐이였다고 해도 다를바는 없었다.  엄마는  미친사람이였고 그 자식은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언제든지 미칠수 있기때문이였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채 뚜벅뚜벅 편집실로 향하였다. 량손에는 천덕꾸러기처럼 음료박스가 흔들거린다. 복도에서 서희를 만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하라던 리주임의 말이 귀가에서 여름철의 매미처럼 와그르르 울었다. 서희는 편집부장실로 들어가고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주저하지도 기죽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왜 다른 사람들이  하면 괜찮고 내가하면 이상한가? 내가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도 아니고 왜 나를 거부하는건가? 왜, 왜란 말인가?
편집실에 들어서자 창문에 마주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건너편  건물을 보고있던 리주임이 다급히 남자를  불렀다.
<박기자, 얼른 여기 와서 보게. 오늘은 빨간 원피스가 아니라 검정색 원피스를  입었네. 그런데 왜 갑자기 검정원피스를 입었을가?  무슨 심경 변화라도 일어난게 아닐가?>
남자가 음료 박스를 책상밑에  밀어넣고 천천히 창문가로 다가갔다. 리주임의 말대로 녀자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그래서인지 얼굴색이 유난히 창백하다.  
<자네 보기에는 어떤가? 옷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때보다 많이 슬퍼보이는것  같지않나? >
 남자는 말없이 녀자를 보았다.  녀자는 다른 곳을 보고있었다. 한곳을 보고있는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불안하게 옮겨다니고있는 시선이 마치 떠날 차비를 하는 사람이 떠날곳이 없어 서성거리는것처럼 보였다.  한곳에 걸쳐져있던  평소의  눈빛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아! 남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박기자 ! 왜 그래?>
리주임이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있었다.
<여자가 죽었습니다.>
<여자가 죽다니?>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저기,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 자네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
남자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리주임의 말대로 녀자는  멀쩡히 서 있었다. 환각이였을가?   남자는 분명히 검정옷을 입고 목을 맨 녀자의 시체를 보았다. 순간이고 찰나였지만 너무도 생생하여  소름이 돋았다. 한참후에야 남자는 그것이 허청칸에서 목을 매고 죽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였음을 눈치챘다. 너무 어릴적의  일인데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미 삭제된 기억이였는데 이리 생생하게  복원될줄은 몰랐다.

엄마도 그날에 검정옷을 입었다. 원피스는 아니고 검정양복이였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건너편 건물의 녀자처럼 아무말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이였지만  눈빛은  무언가에 쫓기듯  허둥거렸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것으로만으로도 안도했던 식구들은 그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루종일 해빛앞에 꼼짝않고 서있던 어머니가 해가 서산에 꼴깍 넘어가자  허청칸에서 목을 맸다. 평소의 그 들끓었던 성미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조용하고 편안하게 운명을 하였다. 
그녀가 엄마처럼 검정옷을 입은것은  우연한 일치일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두사람은 어딘가  닮은데가 있었다. 혹시  어머니는 건너편의 검정원피스를 입은 녀자의 또 다른 모습이였던건  아닐가.  아니면 검정원피스를 입은  녀자가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거나… 원래부터 두 사람은 한  인물일지도 모를일이다 …남자의 생각은 복잡했다.

어머니가 그날 검정옷을 입은것은 의도적이였다.  미친 사람이 죽음을 택할때는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때라고한다. 그말이 맞는다면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검정양복을 꺼내입었을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스스로의 례의를 갖추고 싶었을것이다.  그리고  온갖 수모와 천대를 받았던 자신의 인생에 애도하고싶었을것이다.
남자를 낳는 날  어머니는  절육수술을 하였다. 그뒤, 웬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한해 겨울을  꼼짝못하고 자리보전하고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여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식구들은 기뻐했지만 그것은 잠간이였을뿐이였다. 어머니는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쓰레기를 뒤졌다.
그쯤에 아버지가 그랬다.
<아마, 넷째를 낳기전에는 가짜로 미친척했는데 지금은 진짜로 미친거같어.>
절육수술을 하고 몸이 급격히 쇠약하여 정신병이 생긴거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형들도 그렇다고 했다.  남자는 뭐가 뭔지  알아 들을수 없었다. 그때 그는 겨우 일곱살이였다. 언제부터 미친척한거고 언제부터 진짜로 미친것인지, 늘 희미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신의 몸속에 있을 어머니의  유전자가  두려웠다. 그리하여 되도록이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지우고싶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에 대해 실제로 많은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고있는것은 모두 후에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얻어들은것뿐이였는데  밤에 벽을타고 기여내리는 거미를 거침없이 손으로 때려잡던 어머니의 모습만은 액자처럼 그의 기억에 단단히 응고되여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보다 더 질긴 기억이였다.  그리하여 지금도 거미를 보면 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어머니는 왜 그리도 밤거미에 집착했는지 알수없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거미를 때려잡았는데 마치 태엽을 풀어놓으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난감같았다.
<밤 거미를 죽이면 밤 손님이 온대. 그러니 제발 좀 거미를  살려줘.>
 아버지가  극구  말렸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머니는 다른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장난감이였나보다. 
<아버지, 밤손님이 뭐예요?>
<밤에 오는 손님이 뭐긴 뭐겠어? 도둑이지.>
아, 밤거미를 죽이면 도둑이 온단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자꾸  밤거미를 때려잡는걸가? 혹시 밤거미를 죽이지 않으면 도둑이 온다고 거꾸로 기억한것은 아닌지 남자는 그게  궁금했다.  그러는 어머니덕에 남자는 밤이면 늘 복면한 도둑이 집으로 들어와 목을 조이는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대낮에도  누군가의 손이 목을 조이는듯한 섬찍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거나 목을 만져보군한다.     

어머니가 죽고나서 아버지는 남자에게 엄마가 그에게 남긴 유언이라며 종이 한장을 보여주었다. 연필로 또박 또박 눌러서 쓴 글이였다.
<넷째야, 너를 만나서 엄마는 행복했어. 이제  널 버려두고 떠나는  엄마를 용서해. 잘 크거라, 아가야!>
그 글을 읽고 남자는 너무 슬픈나머지 경기를 일으키며 미친듯이 울었다. 그러는 남자를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그들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의 죽음은  슬프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것 같았다. 남자에게 어머니는 어떤 모습이든 어머니였다. 정상적인 어머니를 여읜 다른 집 아이들과 똑 같이 남자는 슬프고 불행했다.
 어머니의 유언을 보니 날자가  엄마가 남자를 낳고 집에서 모진병을 치루고 다시 집을 나가기전에 쓴 글이였다. 엄마는 오랜 시간동안  죽음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가족은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날, 단 한번이라도 엄마의 검은옷에 신경을 쓰거나 불안한 어머니의 눈빛을 주시했다면 어머니는 그렇게 가지 않아도 되였을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우리 모두가 무심했다고 탄식했다. 가족의 무심함이 어머니가 죽어가도록 방치한것이다.  채 키우지도 못하고 서둘러떠날것을 왜 그리 큰 대가를 치루면서 기어코 아이를  낳고싶었는지  남자는 알수 없었다. 혹시  엄마는 완전한 죽음을 맞고 싶어서 그랬던건 아닐가는 생각을 하게 된것은 방송국에 입사한  후였다.  이세상에 자신을 닮은 또 다른 당신을 남겨서 그가 자신의 흔적을 따라와 주길 바랐던것일가 …그렇게해서라도  이 세상에 왔다간 당신의 흔적을 남기고싶었던것은 아닌지… 

6.


남자가 창가에서 물러서면서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저 여자를 만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리주임이 해괴하게 바라본다.
<뭐? 여자를 만난다고? >
<네.>
< 만나서 뭐하겠다는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저 여자의 말을 들어주고싶습니다.>
<저 녀자가 말을 할것이라고 생각하나?>
<말을 하지 않으면 그냥 옆에  서있어주겠습니다.>
<그랬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적어도 죽을 생각은 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 엄마를 봐도 그랬습니다. 엄마가 죽을때 아무도  옆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혼자라고 생각될때 죽을 생각을 하는것 같습니다. >
<하지만 그것은  병원에서 할일이지, 기자가 할일은 아니네. 그리고 자네가 지금 그 녀자 걱정을 할땐가, 자네 코가 석잔데?>
<내 코가 석자라니요? 무슨 말씀인지…>
<만약 자네가 저 녀자를 만났다는것이 소문이 나가 봐.  자네는 진짜로 미친사람 취급을 받을거네. 그러면 자네의 방송일도 끝나는거고…안그래도 요즘 기술 평가를 할땐데  이상한 짓을 하지 말고 어서 3.8절 생방송원고나 작성하게. 그것이 자네의 돌파구가 될거네. 음료박스가 아니라… >
말을 마친 리주임은 남자의 책상밑에서 음료박스하나를 집어다 자기 책상위에 턱하니 올려놓는다. 
<자네는 참 눈치가 없어. 이런걸 거기서 주면 어떻게 해?  사람들의 시선도 있는데…>
남자는 리주임책상위에 올려진 음료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3.8절 방송원고를 생각했다. 맞어!  3.8절 생방송원고가 기술평가에서 살아남을  히든카드야. 이참에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로 내 존재를 확인시키는거야. 그는 부산스레 컴을 켰다. 그런데 켜진  화면에 검정 원피스를 입은  녀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종시 다른 글을 써내려갈수 없었다. 
<이 미친여자야! 나도 살자!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거야!>
남자가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이때 머리속에서 섬광같은 빛이 번쩍하더니 등곬으로 전류가 쫙 흘렀다. 그는 두주먹을 번쩍 추켜들고  소리쳤다.
<심봤다! 심봤다!>
음료를 마시고있던 리주임이 사레가 들어 련신 캑캑거리다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자네, 정말 미쳤나? >
<드디여 령감이 왔어요. 령감이 떠올랐다구요. >
남자가 아이들처럼 폴짝폴짝 두발뜀을 했다.
<뭐길래 이리 야단인가?>
<결국 저 녀자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제가 왜 저  녀자한테 끝없이 집착을 했는지 말입니다.>
<좀 알아듣게 이야기 하라구. 그 녀자랑 방송이 무슨 연관이 있나?>
<’미친녀자와의 대화!’ 이게 제 방송주제입니다.>
<미친녀자와의 대화? 그게 과연 가능한가?>
<가능해야 합니다. ‘미친녀자와의 대화’는 바로 ‘엄마와의 대화’ 이지요. 더는 엄마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유전자를 무서워하지 않겠습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단절된 우리 사회의 병폐를 말하겠습니다.  단절은 정신적인 분렬과 죽음을 초래하고  소통만이  희망이고 삶이라는것을 말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에 더는 억울하여 정신이 분렬되는 고통을 겪는 일이 없는 행복한 사회가 되여야 한다고 저쪽 건물의 녀자한테도 말하겠습니다. >
리주임이  엄지를 흔들면서  빙그레 웃었다.
<’엄마와의 대화’ 굿!  베리굿이야. 자넨 역시 머리가 좋아. 대단해!>

남자는 본인이 직접 생방송 게스트로 나갔다.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건너편 건물의 이름모르는 녀자의 별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생방송을 진행했다. 방송은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게 하는 따뜻한 방송이였으며 이런 솔직하고 감동적인 방송을 계속 들을수 있게 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전화가 빗발쳐서 한때 방송국 전화가 마비되기도 하였다.  생방송은 성공적이였고 남자의 위상은 다시 세워지는듯 하였다.

그날 이후로 건너편 건물의 그 녀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녀자가 없는 회색건물이 버려진 상여집처럼  쓸쓸하게 숨을 죽이고있었다. 녀자는 어디로 간 것일가? 병이 다 나아서 병원을 떠난것일가? 아니면 기어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세상으로 떠난것인가?  녀자는 떠났지만 남자는 그 회색건물을 포기하지 못했다. 남자가 창문에 서서 넋을 놓고  건너편을 바라보는 차수는 날마다 늘어갔다. 저러다 남자도 녀자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부장실에 불리워갔다. 후추와 소금을 고루 뿌려놓은듯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올리며  부장은 남자에게 기술평가에서 점수 미달로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할것같다고 말했다. 그게 어딘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왜요? 제가 왜 떠나야 하는데요? 저 잘 하고있지않습니까? 지난 3.8절 생방송평가도 높지 않았습니까?>
<사회적 적응이 안된다는 평가요. 이는  기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요.>
<저 지금 잘 적응하고있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그런 소견들이 다수였소.>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결국 저의 발목을 잡는군요. 저…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렇고 그런세상이니깐요.>
남자는  부장 앞에서  자신이 마치 펼쳐놓은 일기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든 부장은 미리 할말을 다 알고있을것 같았다.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부장실을 나와버렸다.
발밑이 자꾸 꺼져들어가는것 같고 눈앞이 흐릿했다. 자기도 몰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마음을 알아챈듯 하늘에서는 눈발이 휘여휘여 날린다. 남자는 눈내리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전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것 같습니다. 제가 사회에 적응이 어렵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는게 사회에 적응하는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전 진짜 바보인가봐요. 이제 전 어쩌면 좋습니까?

남자는 몸을 움츠렸다. 삼월인데도  지난해 일월만큼 추웠다. 남자는 거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아빠트로 돌아왔다.  집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들어 난방회사에서는  스팀을 보내는둥 마는둥 했다. 남자는 옷을 벗지않은채  몸을 덜덜떨며 전등을 켜고 라디오를 틀었다. 그리고  뭔가 속을 따뜻하게 해줄만한게 없나하고  주방의 수납장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인스턴트커피도 차도 없었다.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할수 없이 지난 밤에 마시고 개수대에 놓아둔 차잔에  반쯤 말라붙어있는 국화차를  꺼내 끓인 물에 다시 담궜다. 따뜻한 국화차에서는 생콩 비린내가 났다. 이상하게 남자는 국화차를 좋아한다. 그 비릿한 생콩 냄새때문인지, 차를 마시면 마음이 바로 가라앉는다. 남자는 차를 마시면서 방송을 들었다. 뉴스를 전하는 녀자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때 거실 한쪽벽에서 커다란 거미가 내려오고있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들고 거미한테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거미가 낌새를 느낀듯 죽은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는 죽일가, 말가, 한참이나 궁리하다가 들었던 손을 도로  내리웠다. 그때 우연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거미를 잡으면 밤손님이 온대. 제발 좀  거미를  살려줘.>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남자는 손바닥으로 거미를 탁 내리쳤다.  손안에서 뭉클하고 거미가 터진다. 으스스한  혐오와 징그러움이 몸을 훑고지나간다. 그리고  여태 단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거슬리지 말아야하는것을 거슬렸을때의 경희로움과  억눌렸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을떄의 통쾌함, 그리고 죽은자의 앞에서 느끼는  살아있음의  희열이였다. 어머니도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가.  매일같이 상실되고 피폐해가는 고통스러운 생활속에서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거미를 죽이면서 확인하고 싶었을것같다. 

남자는 거실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또 다른 거미를 찾았다.  거실에서 서재로 서재에서 다시 안방으로 찾아들어간다. 거미들은 모두 숨어버린듯 어디에도 없었다. 남자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안방에서 다시 서재로, 서재에서 다시 거실로 손으로 더듬으면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걸을수 있는지 늘 궁금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책을 세워두는것이 사회에 잘 적응하는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술래잡기를 하듯 눈을 감고  집안의 곳곳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문뜩 남자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불길에 휩싸인것처럼 더웠다가 곧 얼음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지독한 오한을 느꼈다. 그는  온기라곤 하나도 없는 방바닥에 철부덕 무너져내렸다.  랭기가 몸속을 거미처럼 스밀스밀 살을 간지럽히며 깊이 파고든다. 다시 일어나 어머니처럼 거미를 잡고싶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고싶다. 죽었음 좋을 이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리유는 없어보였다.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죽었을것 같다. 그런데 남자는 죽어도 결코  검은 양복을 입지않을것이라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위하여 양복이라도 입을 생각을 했겠지만 나야 양복을 입었다고 의미를 되새길 자식도 없지 않는가?
곁에 아무도 없다는것은 편안하게 죽을수 있다는 다른 의미인듯 싶다.  검은 양복을 입은 어머니가 멀리에서 천천히 걸어오고있었다.  그리고 검정원피스를 입었던 녀자가 그 뒤를 사뿐사뿐 걸어온다. 그녀가 걷는 모습을 남자는 처음 보았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한곳에만 서있던 그녀도 이제 제 갈길을 가고있는것이리라...
바깥세상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는 현실이 계속되고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세게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공포와 희생자들 그리고 인간의 광기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남자의 귀에 띄염띄염 흘러들었다.

< 중동 어느 지역에서는 뻐스가 폭발해 스무명이 사망했고 남미의 어느 감옥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간수들이 감방문을 제때에 열어주지 않아 백여명 죄수들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 사망했다 >

누구나 죽을수 있다. 그리고 죽는다.  삶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있는것일가.  삶의 게임을 지배하고있는 힘은  숙명일가 ? 아니면 운명일가?  남자는 천천히 깊은 잠에 떨어졌다.

2012년 3월 1일 완성.
[주] 본작품은 2012년 2기 도라지에 실림 2012년 7기 민족문학에 실림
2012년 12월 민족문학상 수상 

* 본 글은 중국조선말 표기법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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