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안나 약력 :
2010년 '부산시인', '시에' 등단.
시집 ‘양파의 눈물’, 시낭송집(cd) ‘추억으로 가는 길’
2017년 ‘중국 도라지 해외문학상’
2018년 ‘한중 문화예술교류공헌상’
2018년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수상(방송,신문기자가 선정한 시낭송가상)
2019년 ‘경기문창문학상’ 수상
주소 : 부산시 영도구 청학남로 29번 (청학동 150-23)
5988182@hanmail.net

 

대한시문학회 시인마을 문학상 최우수상 작품

 

바다를 읽다


고 안 나

 

아버지와 딸이 바다를 보고 있다
잠 깬 바다는 갓잡아 올린
고등어 떼처럼 싱싱하다
구순 아버지는 바다 속을 읽고
딸은 *북항대교 난간에 매달렸다
수평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배들
베란다 창을 밟고 가는 갈매기가
힐끔 돌아보며 눈 맞춘다
봐라 이 얼마나 좋누
바다가 살아있어

배가 뜨고 새가 날고
허, 참! 뱃고동 소리도 살았구나
야! 참 좋다
시(詩)도 생명이 빠지면 파이야
죽어 천년은 산 하루 보다 못하지
명 떨어지면 그만이야
잠잠하던 바다가 고등어 떼처럼 들썩거린다
다 읽지 못한 바다
눈길 떼지 못하시는 아버지
사연도 모른 채
밑줄 한 줄 진하게 그으며
부산항으로 진입하는 *설봉호
난간에 매달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북항대교 : 부산 영도에서 남구를 잇는 북항대교

*설봉호 : 부산에서 제주 운항하는 여객선

 

사월, 어느 날

 

늙은 목련나무 밑에 앉아
겹겹이 포개 입은 꽃 속으로 들어간다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을 들어 올리는 목련꽃
힘에 부친 탓일까
손에 들었던 치맛자락 휘청
달갑지 않은 황사 탓에 얼룩진 꽃잎들
너덜너덜 찢어진 치마처럼 벗고 있다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일
거무죽죽한 살갗들, 땅바닥 뒹굴다
여기 저기 버려진 몸들

오! 눈부신 때도 잠깐
봄날도 순간
병상에 누워 빤히 올려다보시던
팔순 엄마도 그랬다
서둘러 발길 돌리는 길목
애 터지게 봄비가 울어 쌓는다

 

어둠속에 벨은 울리고

 

잠들지 못한 소리가
잠들지 않은 시간을 깨운다
어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구순의 몸 벗어 놓은 채
귀를 찾아 온 정정한 목소리
시간을 밀쳐놓고 엉키는 말과 말들

해질녘 시문학에 입문한 딸
그 숱한 시인들 재다 파 묵고 간 땅
밤새도록 파 엎는다고 잠도 못 자제
이미 다 파 묵고 씨알도 없을 낀데
빈 땅엔 암만 파 봐야 헛기야
이왕 파 뒤 볐으니 물줄기 하나쯤
터져야 되지 않겠나
구순의 아버지, 보고 듣지 않아도
술술 풀어놓는 시(詩) 한 수
어딘가 있을 詩의 물꼬 틔우는 밤
쩍쩍 갈라터진 마음밭 슬슬 허물어진다

 

목련 연가

 

병상에 앉아 거울 보시던 울 엄마
딸 온다며 붉은 연지 꺼내어
입술 바르시고 목련꽃처럼 환하게 앉아
창 밖 바람을 불러 들였다

올 때가 됐는데
차가 많이 밀리는 갑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됐네
혼자서 묻고 답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며칠 만에 찾아가면
반가워서 울다가 섭섭해서 울다가
목련꽃 지듯 봄날은 가고

곱게 해라, 다 때가 있는 기다
늙어 봐라 암만 해도 고운태가 않나
목련꽃도 한 때야

가고 없는 사랑을 부여잡고 엄마엄마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윽한 그 목소리
보이지 않는 얼굴은 어디서 필까

 

닮은 사람들

 

대낮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얼마 있지 않아 저녁이 걸어오고
어둠이 내리는 밤이 오듯
너희들 인생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부디 명심하며 살기 바란다

구순의 아버지가
칠순 육순의 아들 딸 여섯을 앉혀놓고
새벽부터 쉼 없이 걸어 온
고단했던 발자취를 들춘다
그 속에서 풀벌레가 울고
천둥 번개 소리가 나고
입술을 떠난 말들이
칠순도 육순도 아닌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고 눈시울을 붉힌다

백발이 성성한 주름진 눈가
이슬 감추시던 아부지
우린 서로 눈 껌뻑거리며
눈물 콧물 찔끔거리며 웃었다

이미 한 생을 마감한 함박꽃 가지에는
멀어진 얼굴 하나 함박꽃으로 다시 핀다
눈매 닮은 아이들은 돌아오고
웃음소리 닮은 사람들은 돌아가고
초승달은 나뭇가지 위에서 젖니를 살짝 내민다

 

 

시인마을 문학상 최우수상 서평

 최성열

 

1) 바다를 읽다

 

아버지와 딸이 바다를 보고 있다

잠 깬 바다는 갓잡아 올린

고등어 떼처럼 싱싱하다

팔순 아버지는 바다 속을 읽고

딸은 *북항대교 난간에 매달렸다

수평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배들

베란다 창을 밟고 가는 갈매기가

힐끔 돌아보며 눈 맞춘다

봐라 이 얼마나 좋누

바다가 살아있어

배가 뜨고 새가 날고

, ! 뱃고동 소리도 살았구나

! 참 좋다

시도 생명이 빠지면 파이야

죽어 천년은 산 하루 보다 못하지

명 떨어지면 다 그만이야

잠잠하던 바다가 고등어 떼처럼 들썩거린다

다 읽지 못한 바다

눈길 떼지 못하시는 아버지

사연도 모른 채

밑줄 한 줄 진하게 그으며

부산항으로 진입하는 *설봉호

난간에 매달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북항대교 : 부산 영도에서 남구를 잇는 북항대교

*설봉호 : 부산에서 제주 운항하는 여객선

 

방금 찧어낸 빵이 얼마나 맛있던가! 햅쌀로 지은 하얀 쌀밥은 어떻고! 등푸른 생선 마냥 생기 가득한 바다가 배하고 친구하며 갈매기와 어울리는 자연을 생각해 보라. 대왕인 바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바다를 읽을 수 있는 아버지와 그것을 눈치 챈 딸의 느낌은 독자로 하여금 신선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편의 시 속에서 삶의 정겨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각박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을 캐내어 구수한 사투리와 투박하지 않은 맑은 시샘으로 가락을 내어주니 더욱 그렇다. 한 아버지와 그의 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말하고 있으니 읊기에 더 흥미롭지 않은가. 또한 자연이 말하는 소리에 순종하려는 모습 속에서 이 시가 주는 묘미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팔순을 지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위대한 삶을 발견하며 찬양할 수 있다. 왜인가? 그는 인생이 주는 맛을 그보다 못한 자들보다 더 만끽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나이가 그냥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경험과 함께 생의 파고를 넘어왔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가 얼마나 큰데 그 바다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바다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신의 경지에 도달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맞다. 신의 경지에 오른 이치를, 바다를 읽는 아버지에 노래로 화답한 시적 화자로 하여금 우리 인생이 결코 힘겹지만 않다는 것을 배운다. 아니! 더 없는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재미를 깨닫는다.

기대수명치 100세를 살고 있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서에, 인생이 강건하면 70이요 80이라고 한다. 그 말이 틀림없다. 더불어 시적 화자가 이 땅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죽어서 천 년을 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실감난다.

아버지가 읽고 있는 바다와, 딸이 보고 있는 바다는 서로가 뗄 수 없는 진한 끄나풀로 엮어진다. 작가는 이것을 무대로 설정하고 피벗 기법을 사용하여 둘의 만남을 상이한 기대감으로 맞물리게 한다. 어찌 둘을 분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버지가 읽은 자연동화에 맞장구치고 있는 딸의 깨달음이 잘 어우러진다. 좋은 시를 읊고 나서 자기 안에 있는 기쁨을 알 때,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그저 하늘보며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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